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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한남정맥(진행)

한남정맥 제3구간(하고개-양고개) 종주산행

한남정맥 제3구간(하고개 - 석성산 - 양고개)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1년         10월         22일          (토요일)

◎ 산행위치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기흥시 기흥읍, 구성읍, 포곡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하고개(용인대학교) - 부아산(負兒山, 402.7m) -질고개(지곡리도로) - 42번국도(성산주유소)

                      5번국도(멱조고개) - 통화사삼거리 - 석성산(石城山, 471.3m) - 작고개(마성IC)

                      할미산성 - 검단지맥분기점 - 아차지고개 - 무년산(202.2m) - 녹원마을 - 양고개(면허시험장 앞)

 

◎ 산행거리 : 하고개(용인대학교) ~ 1.6Km ~ 부아산 ~ 5.4Km ~ 멱조고개 ~ 3.9Km ~ 석성산 ~ 2.9Km

                      할미산성 ~ 3.8Km ~ 구성교차로 ~ 2.6Km ~ 아차지고개 ~ 4.2Km ~ 녹원마을 ~ 1.2Km ~ 양고개

                      도보거리   =   약 25.6Km          실제도보거리   =   약 26.5Km

 

◎ 산행인원 : 한~ 울 산악회와  함께     ◎ 산행시간 : 08 : 30 ~ 18 : 45  (08시간 15분)      ◎ 날씨 : 흐림, 맑음

 

                ◐ 한강유역의 수도권과 경기 서해안 지역을 가르는 한남정맥이란?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속리산 천왕봉에서 분기한 한남금북정맥이 청주의 상당산과 보현산을 거쳐 안성시 칠상산에서

두 개로 나뉘는 산줄기중의 하나로 광교산, 수리산 등을 솟구친 후 인천의 계양산을 지나서 김포시 문수산까지 180Km를

이어가는 산줄기를 말하며,  남한의 9정맥 중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어서 도로, 공장, 군부대 등으로 가장 훼손이 심한 산줄기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 한남정맥 3구간(하고개 ~ 양고개까지) 구글형지도 *****

 

 

 

 

 

 

 

용인대학교 바로 위에 위치한 하고개의 에코부릿지(동물이동통로)에 도착한다

학고개(鶴峴)은  삼거리 아랫고개라 하여 하고개로 알려져 있으며

이 고개에 학이 많이 서식했다고 하여 학고개라 불렀는데 이 말이 변하여 하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하고개터널은 경기도에서 만든 터널로 한남정맥이 가로 지른다 

하고개에서 산행준비를 하고 터널 절개지를 오르니

축구장만한 벌판에는 구절초, 쑥부쟁이 등 가을 들국화가 지천에 널려 있다

 

 

 

 

허물어져간한남정맥 마루금을 탈환하기 위해 정예의 특공대원들이 산행을 시작한다

동남쪽 옆으로 연결된 계단길은 초입부터 가파르게 오르며

오늘은 영동고속도로와 국도 등을 수시로 횡단하고 아파트단지를 통과해야 하는 어려운 구간이다

 

 

 

 

거북이가 부아산 정상을 향해 기어가는 모습이라 부아산 정상이 길지 명당이라 한다

하고개옆 역삼동 구성(九星)말은 아홉개의 별이 있는 마을이므로

마을 지명에 따라 3군 사령부가 들어서게  되었고

이동면 어비리(漁肥里)는 물고기가 살찌는 곳이므로 어비리저수지가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부아산(負兒山, 403.6m)은 용인시 역삼동과 기흥읍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남쪽의 서리 쪽에서 보면 사복 사면이 둥글게 돌출되어 있어

그 모습이 어린 아이를 업고 있는 형상에서 부아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말이 씨가 되어 부아산에서 어린이를 안고 구르니 용인대학교가 이곳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부아산(負兒山)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1시조 온조편에 의하면

주몽(고구려시조)의 곁을 떠난 비류와 온조는

열명의 신하를 거느리고 부아악에 올라 도읍이 될 만 한 곳을 찾았다는 내용이 있는 산이다

 

 

 

 

부아산에서 지곡리 방향으로 올라선 만큼 고스란히 가파르게 내려선다

지곡리는 마을 한 가운데 못이 있어서 처음에는  이 마을을 지곡(池谷)이라 하였는데

여기에 달이 비치면 매우 아름답다고 해서 지월리(池月里)라 부르게 되었으며

일설에 의하면 용인시 처인구 초월읍에서 월(月)자를 따서 지월리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산줄기를 이렇게 잘라내는 도로공사는 지양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진다

산꾼들의 바램이지만 동물이동통로를 만들었으면 좋겠으며

절개지를 사면으로 돌아 내려오면 지곡리도로인 질고개에서 건너편 철계단을 오른다

 

 

 

 

부드러운 등로가 열리면서 노랗게 수놓은 단풍길이 아름답고

쌓인 낙엽을 밟으며 비단길 산행을 이어간다

비가와서 먼지도 없고 산행하기 좋은 날 발길은 참으로 호사를 누리는 시간이다

 

 

 

 

송전탑 19번 철탑에서 마루금은 우측으로 90도 꺾어서 철탑을 따라 한동안 진행한다

용인시(龍仁市)에서 용(龍)자 들어가게 된 유래는 용인시의 좌측으로

투구봉이 있고 우측으로 칼봉이 자리잡고 있는데 봉우리 형상이 투구와 칼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부드럽운 등로를 타고 세운지 얼마되지 않아 보이는 철탑을 따라 가다보면

철탑을 세우기 위해 파헤쳐진 산하가 속살을 드러낸다

65번철탑에서 첫번째 갈림길과 두번째 갈림길이 있는데 독도에 주의해야 하는 구간이다

 

 

 

 

앞에 보이는 주유소는 지도상에 표기된 42번 국도변에 위치한 성산주유소이다

인천에서 안산시를 거쳐 강원도 동해시를 연결하는 국도이며

도로를 무단행단해야 하는데 차량의 소통이 많으므로 조심하여 횡단하여 주유소 옆사면으로 오른다

 

 

 

 

42번 국도변의 성산주유소 좌측의 절개지를 타고 올라야 하는데

토사가 흘러내리지 못하게 그물망이 쳐져 있었지만

초록색 철 그물망이 미끄러워 직벽에 가까운 절개지를 오르기가 쉽지는 않았다

 

 

 

 

<부아산 유래에 관련된 애기중에 먹조고개는 할아버지를 찾아 넘던 고개라고 한다>

옛날에 홀로 된 시아버지를 모시고 외아들을 키우며 사는 한 부부가 있었는데

부부는 가난하지만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부친을 잘 모셨으며, 할아버지 역시 손주를 끔직히 아껴 항상 집안에 화기가 돌았는데

어느해 남편이 관가에서 시키는 부역 때문에 여러날 집을 비우게 되었다, 시아버지는 아들 대신 나무를 해서 시장에 팔았고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돌아 올 때쯤이면 항상 아이를 업고 고갯마루에서 시아버지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밤이 깊어가고 있는데도 시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아서 아이를 업은 며느리는 조금 더 조금 더 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가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길을 헤메고 있을 때 가까운 곳에서 사람 비명 소리가 들려와 그곳으로 달려 갔더니

시아버지와 호랑이가 죽음을 무릅쓰고 다투고 있었는데 이 광경을 본 며느리는 호랑이를 크게 꾸짖으며

네가 정말 배가 고파서 그런다면 내 등에 업힌 아이라도 줄테니 우리 시아버님은 상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어린 아이를 호랑이 앞에 주자 호랑이는 아이를 물고 어디론다 사라졌는데 겨우 정신을 차린 시아버지는

손자를 잃은 슬픔에 오열을 금하지 못했으나 며느리의 간곡한 애원으로 결국 집으로 돌아와 시아버지가 낙담하여

"나는 이미 늙었으니 죽어도 한이 없을텐데 어째서 어린 아이를 죽게 했느냐" 하고 묻자

며느리는 "어린 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지만 부모는 어찌 다시 모실 수 있겠어요" 하며 마음 상하지 않기를 부탁 하였다고 한다

그 후 부인이 아이를 업고 헤멘 산이라 하여 부아산이라 하였고 할아버지를 찾던 고개라 하여 먹조고개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오른쪽으로 용인배수지 정수장 펜스를 따라 멱조고개(먹조현)에 내려선다

삼거리 지점이 메주고개라고도 하고 멱조고개라 부르며

맞은편 철계단이 마루금이지만 경전선 철로가 가로막아 좌측으로 굴다리를 통과 우회한다

 

 

 

 

멱조고개는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고개로 용인 정신병원에서 용인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의 고개로

부아산의 효부 이야기의 전설에 관련된 "할아버지를 찾아 넘던 고개"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영남대로가 지나는 길목으로 현지인들은 메주고개라고 불렀으며, 지금은 고갯마루를 따라

경전철이 한양에서 부산(동래)를 연결하고 있으며 고려시대부터 역로(驛路)로 이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멱조고개에서 동백지구 방향으로 약 200m 내려오면

굴다리 맞은편에 S-OIL 주유소가 있다

경전철 아래의 굴다리를 지나서 바로 우측으로 철재 건물 뒷쪽으로 통과한다

 

 

 

 

철재 건물과 경전철 축대 사이의 조그만 통로로 진행하면

끝머리에 창고같은 건물이 가로 막았다

갈 수 없는 길이였지만 어렵게 창고를 타고 넘어가면 텃밭이 나온다

 

 

 

 

먹조고개는 20년전만 하드라도 편도 1차선 도로였는데 지금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 첫 현쾌열차인 수여선(水驪線)은 수원에서 여주를 연결하였는데

1930년에 개통한 이 열차는 일제시대 때 사설철도 회사인 "조선경동철도"가

여객과 화물차를 운영하면서 이천쌀과 소금을 운반하였으나 1972년에 적자폭을 감당하지 못하여 없어졌다

 

 

 

 

텃밭을 빠져 나오면 경전철 축대에 설치된 철계단을 바라보며

경전철 축대 사면을 따라 능선으로 올라선다

철계단 상단 능선에 올라서면 부아산에서 지나온 마루금이 한눈에 보인다

 

 

 

 

낮으막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한동안 호젖한 등로를 타고 진행한다

324봉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면서 다리쉼을 한뒤에

좌측으로 급하게 내려가니 "기다리는 편지"라는 시와 메주고개→성산 이정표가 나무에 걸려 있다

 

 

 

 

메주고개(먹조현)는 용인정신병원에서 용인시내로 들어오는 고갯마루를 말하는데

한남정맥을 종주하는 사람들은 "멱조고개"로 알고 있으며

고개에 얽힌 전설은 앞의 멱조고개를 내려서기전에 알려 드렸으며

이곳의 갈림길에서 좌측은 용인시의 호화청사로 내려가는 길이고 마루금은 우측으로 꺾어 내려선다

 

 

 

 

호화청사로 비난받은 용인시청이 등산로 정비는 잘 해 놓았다

활엽수와 소나무가 어우려져 운치가 있는 길이며

또한 주말이어서 그런지 석성산을 오르는 산객들이 많아 산객의 발길은 가볍기만 하다

 

 

 

 

통화사 삼거리 갈림길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가던지 만나는 길이며

윗길은 군부대 아래로 우회길이 있고 아랫길은 포장길을 따라가면 윗길과 만나게 되어 있다

 

 

 

 

옛날 석성산 정상에는 한양 남산 봉수대와 통하는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다

지금은 현대화된 통신군부대가 정상을 점령하고 있는데

석성산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통신(通信)의 요충지 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석성산은 용인시 구성동 포곡읍 마성리와 유림동 등에 걸쳐 있는 산으로

용인의 중심에 솟아 시민들이 즐겨 찾는 용인의 진산이며

산 전체가 화려하고 은은한 색감의 단풍들이 한남정맥길의 힘든 마음을 달래준다

 

 

 

 

통화사삼거리 갈림길에서 헤여지면 만나는 지점이며

군부대가 있어서 조금 햇갈릴 수 있으나

그냥 후답자들은 포장길을 따라 진행하면 쉽게 통화사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이곳은 조정 암사당으로 정암 조광조선생 영정을 모신 사당이며

사진상의 사람은 우리 일행중 "우보"라는 사람인데

산객이라기 보다는 마치 통화사 스님으로 무언가 사색에 젖어 가을을 노래한 시인처럼 보인다

 

 

 

 

통화사 갈림길에서 우측은 통화사 방향이고

좌측은 석성산을 오르는 길이다

활엽수가 많은 호젖한 산길은 가을 산행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경내로 들어가는 일주문은 없고, 마당에는 낙엽이 가득 쌓여 있었으며

아담한 경내에 들어가 원통보전을 마주보며

부처님께 두손을 합장하여 예을 올리고 석성산 정상을 향해서 발길을 옮긴다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에 용인 시민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단풍은 오를수록 형형색색 더욱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으며

산이 높지 않고 산새가 부드러워 건강 증진을 위한 명소로 각광 받으면서 남녀노소 쉽게 오를 수 있다

 

 

 

 

산성축조에 필요한 석재도 널려 있었고 정상 아래에는 샘도 있다

옛날 고구려시대에는 천연의 요새였다고 하며

현재는 이곳에서 산악인들이 매년초에 시산제를 지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샘에는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에 서울에 사는 벼슬아치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모실 명당을 찾아 기관과 용인을 지나다가

석성산에서 명당을 발견하고 이곳에 묘를 쓰려고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날을 잡아 가묘를 쓰려고 땅을 팠더니 그 속에서 물이 솟구쳐 나왔다는데

그 물이 그치지 않고 솟구쳐 산 아래는 홍수가 나서 벼슬아치는 크게 놀라

지관에게 연유를 물었더니 산 형상이 호랑이 형상인데

호랑이의 눈인 눈물샘을 건드려 물이 쏟아진 것이라고 설명한 하였다

그냥두면 산 아래 마을에 물난리가 난다며 이 일을 막으려면 저기 큰 바위로 막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큰 바위로 물을 막았다고 한다 그러자 물은 막히고 바위틈에서 물이 흘러 지금의 약수터가 되었다고 한다

 

 

 

 

석성산(石城山, 471.5m)이라는 지명은 성(城)이 있는 산이라고 하여

그 城을 돌로 쌓은 城이라고 하여 석성산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곳에는 城이 있는데 그 석성(石城)의 동문(東門)이 통화사 앞에 있었다고 한다

 

 

 

 

석성산은 성산 또는 보계산으로 불렀는데 1910년 석성산으로 이름이 바꾸어졌다고 한다

왼쪽으로 통신부대가 점령하고 있고 오른쪽으로 석성산 정상이 있으며, 석정산성은

고구려 장수왕이 개로왕을 죽이고 백제군을 몰아 남아 하면서 이곳을 장악한 475년에 축성한 것으로 추측한다

 

 

 

 

석성산은 용인8경 중에 제1경으로 정상에서 일출(日出)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제 2경의 어비낙조는 어비리저수지에 비치는 落照를 말하는데

언젠가 시간이 되면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을날을 기약해보며

정상석 뒤로 보이는 동백지구의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풍경에 한참을 머물러 본다

 

 

 

 

옛날 영남대로를 비롯해 풍수지리에서 명당이라는 명당은 모두 용인에 있었다고 한다

그 땅 구석 구석의 아름답고 향수 어린 정취는 찾아 볼 수 없고

마을앞을 지키고 있었던 장승들은 사라지고 새로 들어선 아파트단지가 마천루처럼 우뚝 솟아 있다

 

 

 

 

할미성산에서 향린동산을 지나야할 마루금을 숙지한 후 내려선다

가파른 곳에는 계단을 설치하여 어려움이 없었으며

호수마을 이정목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서니 영동고속도로 마성IC가 나타난다

 

 

 

 

작고개에 내려서면 저 멀리 에버랜드 출입구처럼 보이는 마성돌케이트가 독특하다

이 고개는 전대리에서 어정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원래는 잣고개로 잣나무로 만든 배가 지나갔다는 설과 잣나무가 많았다는 고개로 백현(栢峴)이라 한다

 

 

 

 

고속도로에 위치한 터키군참전기념비는 1974년 9월 6일 국방부에서 건립하였으며

1950년 6월 25일 북의 남침에 우리의 전세가 불리할 때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파병되어온 터키군은 휴전할 때까지

북한군과 격전을 벌리며 많은 공적을 올려 이를 기리고 산화한 넋을 위로하고자 비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의 흔적이 별로 없는 할미성산을 오른다

山을 지칭 할 때에는 할미城이 있는 산이라 하여 할미城山이라하고

성(城)을 강조할 때는 할미山에 있는 城이라 하여 할미山城이라 부르고 있으니 구별해야 한다

 

 

 

 

할미산성(山城)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의 할미성산에 있는 산성으로

마고 할미가 쌓았다고 해서 마고성(麻故城) 또는 할미산성이라 부르며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는 진흥왕이 한강유역 통치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축조한 성곽으로 추정한다

 

<할미산성의 전하는 설화에 의하면>

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성을 반씩 맡아서 누가 먼저 쌓는가 내기를 하였는데

할아버지는 돌을 잘 다듬어서 제대로 성을 쌓아가고 있었고

할머니는 치마자락에 돌을 줏어 담아 하룻밤에 석성을 쌓았다고 하여 할미산성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 옛날 역사적으로 중요한 산성이지만 역사를 보존하려는 후손들의 노력이 절실한 곳으로 생각된다

 

 

 

 

할미 성산을 내려오면 체육시설이 보이는 시설물 끝지점에서

좌측은 향린동산으로 하산하는 길이고

한남정맥 마루금은 우측 무너진 철조망을 넘어 진행해야 하는 주의구간이다

 

 

 

 

한남정맥과 향수산 가는 길은 철망으로 막아논 북쪽으로 진행한다

88CC골프장이 생기면서 마루금이 잘린 구간으로

이곳에서 조금 진행하다가 좋은 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검단지맥 분기점으로 올라서야 한다

 

 

 

 

검단지맥의 분기점에서 마루금은 무조건 좌측으로 내려서야 한다

향수산으로 연결되는 삼거리 갈림길이라

우측으로 나 있는 등로가 좋은 길이라서 알바하기 쉬운 곳이라 생각되는 지점이다

 

 

 

 

양쪽으로 설치된 철조망 사이를 따라 조금 진행하니 임도가 나타나고

산행기에 많이 보았던 안테나 두 개가 있는 지점으로

속으로 무척 반갑게 느껴지는 안테나이며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면 왼쪽으로 진행한다

 

 

 

 

산행기에서 사진으로 많이 남겼던 갈림길 삼거리가 나타난다

좌측에 승용차가 있는 좋은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통행금지 도로 표지판이 있는 포장도로를 따라 한동안 진행한다

 

 

 

 

포장도로를 따라 오는데 나무들이 널부러져 마음이 편하지 않았으며

88CC 골프장으로 통하는 철제문이 눈에 들어 오면

어렵게 우측으로 철제문을 넘어 골프장으로 진입하는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내려간다

 

 

 

 

88CC골프장 도로를 타고 정문으로 향하는 길에는 산행대장과 땡심이가 함께 한다

비산비야 구간에서 골프장으로 인해 마루금이 이어지지 못하고

우회하면서 알바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스럽게 어려움이 밀려 드는 시간이다

 

 

 

 

우측은 한국의 전원주택 단지가 있는 향린동산으로 들어가는 서문이다

향린동산은 주택과 빌라 300여가구가 한가로이 들어서 있고

야외 수영장과 테니스장, 운동장 등이 갖추져 있어 전혀 딴 세상의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한다

 

 

 

 

향린동산 서문을 지나 정문을 빠져 나오면 아파트 단지가 나타난다

아파트가 들어서 마루금은 흔적없이 사라졌으며

골프연습장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백옥간판쪽으로 진행하면 물푸레 아파트단지가 나온다

 

 

 

 

아파트단지가 생기면서 정맥길이 사라지고 이렇게 방음벽도 걸어야 한다

사실상 철저하게 망가진 한남정맥길을 걸어야 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에 가슴이 아파오면서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싶어진다

 

 

 

 

방음벽을 빠져나오면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 좌측으로 내려선다

한남정맥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이며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구성교차로를 지나 동백주유소를 찾아가는 것이 최선에 방법이다

 

 

 

 

지도상에 표기된 구성교차로 부근으로 보여지는 곳이며

세월따라 자꾸만 변해가는 정맥길이기에

이렇게 그 의미만이라도 되새기며 진행할 수 있음에 스스로 위안으로 삼는다

 

 

 

 

영동고속도로 지하차도를 지나면 동백주유소 직전에 우측 능선으로 오른다

주유소에 들려서 식수를 구하는 산객들도 있었으며

참으로 어렵게 진행하는 한남정맥을 통해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생각하는 시간이다

 

 

 

 

절개지를 오르면 우측으로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가고 건너편으로 풀푸레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좌측에 법화산은 법회경에서 이름을 따온 구성동의 중심 산이며

옛날부터 물푸레 나무가 많고 항상 푸른물이 많이 흘러 내린다고 하여 창덕리 혹은 물푸레골이라 불리우는 곳이다

 

 

 

 

광도아파트를 우측에 두고 내려오면 폐보일러 보관창고 옆으로 내려온다

앞쪽의 능선을 바라보고 주택단지 앞마당을 지나는데

주인장이 이곳은 길이 아니다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덩달아 개들도 요란하게 짖어댄다

 

 

 

 

내 나라 우리의 산하를 마음껏 걸어 보겠다는 열망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철저하게 망가진 한남정맥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주택이 들어서면서 자꾸만 마루금이 사라지는 안타까움이다

하지만 더 망가지기전에 이렇게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편의점에서 캔맥주 한병으로 마음을 달래본다

 

 

 

 

나즈막한 능선을 따라 자린고비의 전설이 있는 아차지고개에 도착한다

그 옛날 영남대로로 알려진 아차현이라는 고개로

좌측으로 구성읍 동백리에 자리잡고 있는 어정가구단지가 보이고 정통 밥집 우측으로 오른다

 

 

 

 

<자린고비 전설에서 나온 지명에서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에 충북 충주에 사는 고비란 사람은 조선조 중엽에 실제 인물이라고 한다

선조(先祖)의 제삿날마다 "지방"을 쓰는 종이가 아까워서 한번 썻던 것은

기름에 절여서 두고두고 썻다 하여 "절인고비"로 불렀는데 이 말이 변해서 "자린고비"로 불리게 되었다

 

<아차지고개의 전설>은 지금의 삼거리 부근에서 열심히 일해 뙤기 밭을 갖게 된 부부가 콩을 심어 메주를 만드는데

수파리가 메주에 내려앉자 잡을 요량으로 부인이 주걱으로 내려쳤으나 피하자 부인은 메주가 엉망이 되어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나무주걱을 계속 휘둘렀다 쉬파리가 메주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날아 갔을 때도 포기하지 않고 뒤 따라갔다

지금의 멱조현을 넘어서자 쉬파리도 지쳤는지 날지 않고 한발쯤 떨어진 곳에 않았을 때에 이제는 꼭 잡아으라는 생각으로

몸을 던졌으나 이번에도 놓쳐 자신도 모르게 "아차"하는 소리를 질렸다 이 때문에 "아치지고개"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우리가 지나온 멱조현을 메주고개라 부른 것은 바로 이 아내가 쉬파리를 쫓아 넘었던 고개라 하여 메주고개라 부르게 되었다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란 단어에 어울리게 호화묘지가 많은 곳이다

용인은 명당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지만

지금은 죽어 용인이 아니라 살아서도 제일 살기 좋은 곳이 용인이라고 한다

 

 

 

 

호젖한 등로를 따라 한동안 완만하게 오르니

강남대학교 삼거리 갈림길을 만난다

이곳에서 마루금은 새천년성원아파트 방향인 우측으로 이어진다

 

 

 

 

그림같은 등로를 타고 천천히 진행하여 무년산(無年山, 202m)에 오른다

정자가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마루금은 꺾어지며

주변에 아파트가 있고 체육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다

 

 

 

 

무년산을 지나자 좌측으로 수원CC에서 설치한 철조망과 함께하고

우측으로 아파트단지와 영동고속도로가 함께 한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눈의 즐거움까지 가로막아 버린 골프장의 야속한 인심이 얄밋기만 하다

 

 

 

 

녹원마을 아파트단지와 수원CC 골프장의 통로를 따라가면 만수정약수터에 이른다

사각정자도 있고 물맛도 좋아서 정맥꾼들의 단골쉼터로 알려진 곳이며

이곳에서 시원한 약수도 들이키고 수통에 가득 채우니 식수에 불안했던 마음이 해소가 된다

 

 

 

 

녹원마을 새천년아파트 그린빌5단지 중앙이 마루금이다

주민들은 정맥길에 익숙해져 있었으며

자연은 사라지고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정맥 산행의 어려움을 대변해 주는 지역이 아닌가 싶어진다

 

 

 

 

산책로 나무테크 계단을 내려서면 주공부동산 간판을 만나게 된다

새천년그린빌 505동과 506동 사이로 내려서게 되는데

오늘은 국도와 고속도로를 건너고 전원주택과 아파트단지를 지나면서 산행이라기 보다 국토 순례를 하는 느낌이다

 

 

 

 

4차선 큰 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넌 후 좌측 주공아파트로 연결된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오르면 산양마을 푸르지오 아파트 입구가 나타난다

푸르지오 아파트에 들어갔으나 607동을 찾기가 힘들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푸르지오아파트 정문에서 우측으로 돌아오면 607동이 보인다

이런길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산줄기가 지나가는 마루금이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607동 뒷쪽으로 들어가면 맨 끝에 아파트 관리사무소 건물이 보이고

관리사무소가 있는 앞쪽으로 작은 쪽문이 있다

쪽문을 빠져나가면 오늘의 어려운 구간은 모두 통과하면서 3구간 종주시험에 함격하게 된다

 

 

 

 

이렇게 어렵게 마루금을 찾아가는 즐거움도 맛보는 시간이다

우측으로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으며

능선을 따라 진행하니 등로 곳곳에 체육시설이 갖주어진 곳도 나타난다

 

 

 

 

고속도로 방음벽과 아파트단지 뒷편으로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진행한다

우측으로 다음 들머리인 황도 칼국수집이 보였으며

오늘 산행의 종착역이 가까이 있음을 알았을 때 발걸음은 어느새 양고개를 내려서고 있었다

 

 

 

 

양고개는 경기도 용인시 구성읍과 기흥읍을 잇는 경계에 위치하며

23번국도 위로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으며

우측으로 연결된 지하도를 통과하면 황도바지락 칼국수집 좌측으로 마루금이 연결된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마루금이 허물지고 없어지면서 국도와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해야 했고

주택단지와 아파트단지를 통과하면서 국토 순례를 하는 느낌이 들었으나

어려운 구간들을 무사히 통과하고 제 3구간 종주시험에 합격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산행인원 : 한~ 울 산악회와  함께     ◎ 산행시간 : 08 : 30 ~ 18 : 45  (08시간 15분)      ◎ 날씨 : 흐림, 맑음

 

 

내가 부르는 너의 이름은 - 김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