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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낙남정맥(완주)

낙남정맥 제4구간(솔티고개-계리재) 종주산행

낙남정맥 제4구간(솔티고개 - 실봉산 - 계리재)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5년         01월        10일         (토요일)

◎ 산행위치 :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 가호동, 내동면, 정촌면, 축동면, 곤명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솔티(덕천)고개(2번국도) - 태봉산(太峰山, 190.2m) - 바락지산(128m) - 유수교(가화천)

                      비리재(유수재) - 실봉산(185m) - 해돋이쉼터봉 - 진주분기점 - 화봉산(110m)

                      모산재 - 와룡산(93.8) - 109봉(산불감시초소봉) - 죽봉고개 - 고미동고개 - 계리재(1002지방도)

 

◎ 산행거리 : 솔티(덕천)고개 ~ 2.1Km ~ 태봉산 ~ 3.1Km ~ 유수교(가화천) ~ 3.1Km 

                      비리재(유수재) ~ 3.7Km ~ 실봉산 ~ 4.0Km ~ 진주분기점 ~ 1.9Km 

                      모산재 ~ 1.6Km ~ 와룡산 ~ 3.5Km ~ 고미동고개 ~ 1.6Km ~ 계리재(1002번지방도) 

                      도보거리   =   약 24.6Km           실제도보거리   =   약 25.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7 : 20 ~ 15 : 30  (08시간 30분)      ◎ 날씨 : 아주, 맑음

 

            ◐ 남부 해안지방의 내륙의 문화권를 가로지르는 낙남정맥(落南正脈)이란?

낙남정맥(落南正脈)은 낙동강 남쪽에 위치한 정맥으로,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끝나는 지리산의 영신봉에서

동남쪽으로 흘러 북쪽으로 남강의 진주와 남쪽의 하동·사천 사이로 이어져, 동쪽으로 마산, 창원 등지의 높이 300∼800m의

높고 낮은 산으로 연결되어 김해의 분성산(360m)을 지나 낙동강 하류에서 그 맥을 다하는 총도상거리 약 232Km의 산줄기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 낙남정맥 4구간(솔티(덕천)고개~계리재) 구글형지도 *****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슴 설레이는 마음으로 솔티고개에 도착했다

몹시 춥다는 일기예보에 중부장하고 들머리에 도착 하였지만~

어둠이 가시지 않았어도 예상보다 그렇게 춥지 않아 조금은 걱정을 덜어준다

 

 

 

 

<옥녀봉전설은 이 지방의 서사민요인 "진주난봉가"에 나오는 이야기다>

베를 짜서 덕천강에 씻어 팔아온 미모의 옥녀는 지나가던 민도령으로부터 청혼을 받고 과거에 급제하면

결혼을 하겠다며 민도령을 위해서 옷감을 준비하고 있는 중, 고을 사또가 자신을 탐하는 것을 알고

민도령을 위해 준비한 옷감을 모두 잘라버리고 여기 덕천강에 투신했다 한다, 그 사또는 급사하고

과거에 급제한 민도령도 따라 몸을 던졌고 이 벼랑 끝을 지나는 혼인행차가 매번 화를 당했다 한다

옥녀의 고혼을 달래고자 옥녀봉이 생겼고, 이 지역의 완사(浣紗)라는 지명도 옥녀봉의 전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고개 이름의 자료를 찾아 보지만 솔티(덕천)고개 각자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어 햇깔린다

개인적으로는 2번국도상의 이곳이 덕천고개가 맞을 듯하며, 솔티고개는

태봉산아래 솔티란 마을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쪽 부근에 솔티고개란 지명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삼성약국 건물 옆으로 SK주유소가 있고  옛날 손짜장이란 식당이 있으며

연평마을 이정석의 화살표 방향이 산행 들머리이며

연평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  오늘도 낙남정맥 한구간을 위해 힘차게 출발한다

 

 

 

 

진양호를 건설하면서 마을 전체가 수몰로 인하여

주민들이 이주해 온 연평마을이 있고

마을 애향비(愛鄕碑) 표지석 좌측으로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연평마을은 조평과 연향이 통합되면서 연자와 평자를 따서 연평이라 하였다

600년동안 살아온 고향이 호수속에 잠겨 있다는 것을 상기코져 그 흔적을 남기기 위하여

돌에 고향 잃은 쓰라린 사연을 새긴다라고 적혀 있다

돌비석에 수몰로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애절한 심경이 절절히 묻어나는 글귀가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능선에 올라서면 시야가 트이고 넓은 묘지군을 만난다

묘지에서 우측으로 마루금이 꺾이며

낙엽이 수북히 싸인 지대를 지나 오늘의 최고봉인 태봉산을 향해 오름짓을 한다

 

 

 

 

오늘 산행의 첫번째 봉우리이자 최고봉인 태봉산에 도착한다

잡목속으로 진양호의 물 빛만 보이고

별다른 특징도 없이 그저 넓은 공터에 3등급 삼각점만이 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  희망의 일출이 시작되면서 산하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하며

하루를 열기 위해 분주하면서도 가장 극적인 순간이다

붉고 둥글게 떠 오르는 태양을 가슴에 담고 용광로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련다

 

 

 

 

성터의 흔적인지 돌담의 잔해가 옛 고도의 진주성 역사를 말해준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역사의 흔적이 가슴 아프게 하며

신라와 백제의 역사 현장이 잔존해 있는 듯 싶어 숙연해지는 마음으로 돌담을 돌아보고 떠난다

 

 

 

 

좋은 산이란 이름난 유명한 명산이 아니다

내 마음속에 좋은 산으로 들어오면~

이렇게 비산비야의 구간의 산이라도 좋은 산이라고 생각한다

 

 

 

 

태봉산을 내려오면 경전전 철로가 지나가고

인간이 사는 세상으로 뚝 떨어진다

길게 늘어선 철로가 어릴적 시골 풍경의 추억을 상기 시킨다

 

 

 

 

2번 국도 아래를 통과하면 박家네가든 표지판에서

우측 배수로 타고 올라간다

배수로 중간쯤에서 좌측으로 바락지산을 오르는 산길이 열려있다

 

 

 

 

한현우님의 코팅지가 아니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봉우리다

"바락지산"이란 이름이 참 특이한데

삼각점도 없는 봉우리에 어떻게 이런 작명을 하였는지 감사함을 전한다

 

 

 

 

등로는 분재같은 소나무를 식재한 농원으로 이어지고

낮은 구릉지대의 미로속을 헤메 듯

이리 저리 헤메며 말의 머리가 아니라 말의 꼬리를 잡고 달리는 기분이다

 

 

 

 

우측으로 지난 구간의 내동공원묘지를 바라보며

주인없는 텃밭을 가로 지른다

비산비야 구간에서 국토의 맥을 이으려는 산객에게 길을 열어 주신 농장주님게 감사드립니다

 

 

 

 

과수원 농가단지를 넘어서니 가화천을 가로 지르는 유수교가 눈앞에 다가온다

정맥길은 유수교를 지나 오른쪽 봉우리로 향하게 되는데

정맥길을 파혜치고 진양호 물 줄기를 사천만으로 흘러 보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현장이다

 

 

 

 

눈길를 좌측으로 돌리면 유수터널를 지나 순천으로 연결되는 

전선 기차 철교도 사진에 담아도 보고

진양호 수문에서 흐르는 물줄기는 사천시 축동면 구호리까지 흘러간다

 

 

 

 

한남정맥의 경인 운하처럼 맥길을 절개하여 비극의 장소로 남아 있는 곳으로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에 의해 물을 건너면 안되지만

물 난리가 났던 진주지방의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진양호 수위를 조절하기 위한 인공수로이다

 

 

 

 

유수교(가화천)를 건너자 마자 우측으로 진행한다

버드나무 캠핑장 우측 도로이며

사천시 곤양면 가화리에서 검정리에 이르는 가화천 하상에서도 공룡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

 

 

 

 

버드나무 캠핑장 우측으로 직진하면 농가 한 채가 나오는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산길로 들어 가려면

집마당을 지나 위쪽 노란 물탱크에서 좌측으로 올라서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노란 물탱크에서 가파르게 능선에 오르면

진양호 홍수경보시설 철조망에

선답자의 시그널이 히말라야 베이스 캠프장을 방물케 한다

 

 

 

 

잡목과 말라붙은 잡풀들을 헤치고 171m봉에 올라선다

마루금은 좌측으로 틀어지며

진주시 내동면에서 이곳에서부터는 사천시 축동면 경계를 따라 걸어가게 된다

 

 

 

 

유수리는 유동의 유자와 수거촌의 수자를 따서 유수리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진주군 축곡면 지역이었으나

유동과 수거촌과 곤양군 가리면 가화동을 합치면서 진주시 내동면에 편입하였다

 

 

 

 

과수원 옆으로 전기철조망이 길게 세워져 있고

급경사 지역으로 조심스럽게 진행하며

과일 수학기에는 농장주와 마찰이 예상되는 까다로운 길이다

 

 

 

 

매실나무 과수원 중앙 사이를 통과한다

꽃피는 봄이면 좋으련만

매화꽃 없는 삭막한 과수원길은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매화나무 과수원 능선에 올라서면

정맥길은 우측으로 꺾어지며

삭막하지만 베낭메고 나서는 시간만큼은 행복하다

 

 

 

 

포장도로 삼거리가 나오고 정맥길은 직진 방향이다

낙남정맥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고도표에 나타난 전골갈림길로서 전골 마을은 사천시 축동면 반룡리에 속한 부락이다

 

 

 

 

정상부에 파란 물통 두개가 있는 봉우리가

지도상에 표기된 105m봉이다

우측으로 감나무에 시그널이 달려 있어 정상적인 등로임을 확인한다

 

 

 

 

오늘은 과수원 시찰을 왔다고 할까

견학을 왔다고나 할까

오늘 구간은 계리재까지 수많은 과수원단지를 지나게 된다

 

 

 

 

감나무 과수원 능선을 따라 비리재(유수재)에 도착한다

진주시 내동면과 사천시 축동면을 잇는 고개로

진주쪽 사람들은 유수재라고 부르고 사천쪽 사람들은 신촌재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도상에는 비리재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1049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비약산 동쪽에 있는 고개가 비리재(비리고개)인데

같은 동명이 아닐런지 의구심을 가져보며  좌측에 국가하천 가화강이란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쉬어간다

 

 

 

 

포장도로와 삭막한 과수원 단지만 걸어오다가

오래만에 소나무 숲길에 들어서니

소나무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는 양탄자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비산비야 구간의 맥 잇기 산행에 열정을 불태워 보는 시간이다

이젠 감나무밭 과수원 중앙을 가로 지르면서

퇴비냄새의 악취가 진동하건만  살아 있는 농촌의 모습이 결코 싫지는 않았다

 

 

 

 

폐허된 황토찜질방 건물이 보이는 유동재에 도착한다

산행지도에 외딴집으로 표시된 지점이며

도로를 따라 계속가다가 고개마루 정수리에서 오른쪽 산길로 접어든다

 

 

 

 

햇살농원 표지판 좌측으로 왼편 마루금을 이어간다

도로를 따라 올라가도 되지만

알면서 정맥길을 피해간다면 맥 잇기 산행에 있어서 대간꾼의 자존심이~

 

 

 

 

산길을 내려와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서 고개중턱까지 올라서자

우측으로 선답자의 시그널이 주렁주렁 펄렁인다

들길, 농로, 과수원길, 포장길, 그야말로 비산비야의 종합선물셋트 구간이다

 

 

 

 

임도와 마주치며 지도상의 삼면경계봉인 179m봉을 오른다

사천시 축동면를 완전히 떠나 보내고

여기서 부터는 진주시의 정촌면과 내동면의 면계(面界)을 따라 진행하게 된다

 

 

 

 

정촌 대축지구 임도를 내려가면 삼거리 갈림길에서

실봉산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의 심대마을은 옛적에 한골이라 하였는데 왜정말기에 심대라 개칭하였다

 

 

 

 

오늘 구간 중 유일하게 스텐으로 된 정상 표지판이 있는 봉우리다

실봉산(185m)은 진주시 내동면 독산리 뒷산으로

옛날에 천지가 개벽할 때 떡시루 정도 남고 물에 잠겼다하여 실이바위에서 전해지는 명칭으로 보인다

 

 

 

 

실봉산(185m)은 삼각점의 기준점이 설명되어 있고

잡목으로 조망은 막혀 있으나

이곳에서 10분거리에 실봉산 해돋이 쉼터가 마련되어 있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실봉산을 내려서면 시야가 트이면서 진주 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경상대학교쪽의 고층아파트가 시원스레 조망되고

우측으로 해돋이 쉼터가 마련되어 있는 걸로 보아 이곳에서는 제법 높은 산으로 대접받는다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와룡산이 사천시를 감싸고 있으며

남해바다를 넘어 남해의 산줄기도 가물거리며

해돋이 쉼터에서 산불감시초소가 자리할 만큼 사방으로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해돋이 쉼터에는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해맞이 제단과 정자도 있으며

가까이서 자주 걸었던 산들이기에 추억에 미소를 지어 본다

 

 

 

 

해돋이 쉼터에서 내려오면 사거리 갈림길에서 직진한다

이정표의 낙남정맥을 따라 화원마을 방향이며

아래 사진처럼 고개를 넘어서면 안부에서 우측 숲속으로 접어든다

 

 

 

 

한 겨울에도 푸르름을 자랑하는 마삭줄 넝쿨이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진주는 조선시대 조정의 절반은 영남출신이고

영남출신의 절반은 진주출신인 姜, 河, 鄭氏들의 인걸들이 태어나 진주를 빛낸 성씨들이다

 

 

 

 

<우측으로 진주시와 사천시 중간의 농공단지도 보인다>

옛부터 진주지역은 안동과 함께 보수적인 도시로 지리산의 영향을 받음인지

상당히 반골기질이 강하다고 한다, 남과 타협하기 싫어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질이다, 임진왜란 때 김시민 장군을 비롯한 백성들이 나라를 지켰다

 

 

 

 

건너편 우측 파란 창고를 지나서 좌측으로 끊어 질듯한 맥길을 이어간다

우리의 산줄기를 두발로 걷고자 밤을 새워 공부를 했고

그 아픈 역사를 느끼는 시간이기에 밤잠 설치며 걸어온 시간이 아깝지 않은 순간이기도 하다

 

 

 

 

화원삼계탕 갈림길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화원삼계탕길이 맥길이라고 하지만

혹자가 생각하건데 직진길이 오히려 맥길에 가깝게 생각한다

 

 

 

 

시멘트길을 내려서면 선답자의 후기에 Post 역할을 해주는

화원삼계탕 건물이 오른쪽으로 있으며

이곳에서 부터는 진주분기점을 지나기 때문에 길 찾기에 주력하여야 한다

 

 

 

 

윗쪽의 갈림길에서 헤여졌던 마루금이 만나는 장소이다

좌측에 실봉산 등산안내도가 있으며

삼거리갈림길에서 정맥길은 녹색펜스 방향으로 진행하여 지하도를 통과한다

 

 

 

 

남해고속도로와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진주분기점은

국도까지 가세하여 미로속의 복잡한 곳으로

도로를 따라 지하도를 통과하고 가야 하기에 열심히 독도 공부를 하여야 한다

 

 

 

 

첫번째 지하도를 통과하여 왼쪽으로 올라서면

화원마을 표지석이 나온다

화원마을 표지석앞의 횡단보도를 건너서 두 개의 굴다리를 통과한다

 

 

 

 

정맥길이 어디쯤인지 짐작 하기도 어렵고

지하도 전시장에서 방향만 잡고

세번째 굴다리를 통과하면 반사경 거울을 지나 좌측으로 올라간다

 

 

 

 

이 지점에서는 좌측이 정맥길에 가까운 길이지만

과수원이 개인 사유지라서 성수기에는

농장주를 생각해서 마을로 돌아가는 마음도 산꾼의 미덕이다

 

 

 

 

지금은 겨울철이라서 그런지 출입금지 표지판도 없었고

주택의 농장주와도 조우도 없었지만

그러나 농가주택에는 두 마리의 개가 지키고 있어 도망치듯 내려선다

 

 

 

 

좌측으로 대전-통영간 지하도가 보인다

네번째 지하도를 통과하여

한옥앞에서 우측으로 텃밭을 지나 오른쪽의 산능성이를 넘는다

 

 

 

 

화봉산 오름길에서 지나온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미로같은 진주분기점도 발 아래로 보이고

좌측으로 추억의 발바취를 남겼던 사천의 와룡산이 박무속에 가물거린다

 

 

 

 

화봉산(110m)은 태봉산, 실봉산 등 진주의 비봉산을 비롯하여

"봉산" 봉자가 많이 들어간 산이 많은 이유는

이 지역이 봉황의 날개를 편듯한 낮은 구릉의 형세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산재는 진주시 정촌면 정촌마을과 화개리 내동마을을 연결하는 고개로

주변에 자생하는 꽃들이 만발하였던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꽃골이라 부르게 되었고 화봉산, 화개리의 이름도 이에 연유하여 부르는 이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능선에 올라서면 의금부도사를 지냈다는 김해 김씨의 무덤도 지나고

나즈막한 뒷동산에는 지형이 좋아서 그런지~

주변에는 묘지의 전시장으로 불릴만큼  자주 만나게 되는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나그네는 묘지의 주인장한테 반갑게 인사하고 두개의 물통에서 우측으로 진행한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재벌들이 가장 많이 태어난 곳으로

의령에서는 삼성, 진주에서의 LG, 함안에서는 효성 등 그룹의 창업주 세분이(옛 진양 지수초등학교) 출신이다

 

 

 

 

오늘은 맥잇기 산행이 아니라 과수원과 묘지를 순례하는 느낌이 든다

과수원 창고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과수원 주인이

철망문이 열려 있으니 들어가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정말로 고마운 분들이다*

 

 

 

 

이곳은 정촌-호탄간 도로공사를 하면서 우회하는 길이다

좌측 노란선이 맥길이었으나

지금은 도로공사가 중단한 상태여서 정맥길 이어가기가 까다로운 구간이다

 

 

 

 

공사중인 신설도로개설로 인하여 산허리가 잘려나가고 없다

도로를 가로질러 화살표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며

상처투성이인 맥 산행에 가슴이 아파오지만 지리인식을 배우는 시간으로 생각하련다

 

 

 

 

고도가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수도없이 무명봉을 지난다

바로 이런 모습이 낙남의 진 면목이며

그래서 우리민족의 숨결이 묻어 있고 애환이 담겨있는 우리의 생활터전인 것이다

 

 

 

 

전봇대에 와룡산 삼각점을 가리키는 안내 화살표가 있다

하지만 그냥 지날칠 수 밖에 없으며

화살표 방향으로 와룡산에 삼각점을 확인하고 되돌아와 임도를 따라가야 한다

 

 

 

 

낙남정맥 이정표가 거창하게 와룡산으로 인도하고 있었는데

정작 와룡산(98.3m) 주변에는 이정표는 커녕

삼각점은 숲속에 보이지도 않고 고산마루의 코팅지는 땅바닥에 딩굴고 있어 안타까운 실정이었다

 

 

 

 

와룡산 삼각점을 확인하고 되돌아와 임도를 따라 진행한다

촛대석이 많은 무덤군의 야산을 넘고

대나무밭의 6번송전탑을 지나 삼거리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진행해야 한다

 

 

 

 

과수원 옆길을 따라 내려가다 시멘트길이 나오면

오른쪽으로 창고 옆을 지난다

비산비야(非山非野)의 구릉지대라 하지만 낙남정맥의 촤악의 구간이다

 

 

 

 

갈림길에서 정맥길은 오른쪽 능선으로 이어진다

오늘의  산들은 온통 과수원이지만

조금이라도 농부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산행이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은 맑고 깨끗한 하늘이다

하늘아래 펼쳐진 눈부신 풍경속에

우리의 마음이 정화되고 그리고 맑고 깨끗한 기분을 마음속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산불감시초소봉(109m)에 올라서니 지킴이께서 반갑게 맞아준다

시간되시면 커피도 마시고 가라고 하는데

시간상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좌측으로 진주시가 가까이 있어 주변을 둘러본다

 

 

 

 

건너편 복숭아 농장 창고 우측으로 정맥길이 이어진다

창고 우측으로 올라서면 공사현장이 보이며

공사현장으로 어지러운 산줄기가 있는가 하면 가슴 뿌듯한 산줄기도 가게 될 것이다

 

 

 

 

진주시 소곡리와 두산리를 연결하는 도로 확장공사로 파헤쳐진 마루금

길이 없어 절벽을 타고 간신히 내려가야 했으며

후답자들은 생태이동통로가 완공 되기전에는 좌측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감나무밭을 내려서면 죽봉동고개를 지나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정맥길을 이어간다

진주시 정촌면 화개리 죽봉동은 대나무가 많은 마을로서

처음에는 죽방이라고 불렀는데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대밭에 봉이 왔다 하여 지명을 죽봉이라 하였다 한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산행지도의 외딴집을 통과하고

새동네 마을이 나올때가지 진행한다

잘려진 마루금을 이어가려는 정맥꾼들의 노력이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새동네 빨간지붕이 보이는 삼거리에서 우측 방향이다

이곳은 진주시 문산읍 두산리 새동네이며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쉽게 고미동고개로 가는 지름길이 있다

 

 

 

 

진정한 행복이란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고

가고싶은 곳에 갈 수 있을때

어떤일에 열정적으로 몰두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고미동고개는 문산읍과 정촌면을 이어주는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가며

고개 좌측에 새말 마을이 있고, 우측에 옹골(소곡리)이 있다

콘테이너 박스 아래에 가족농원 표지판이 있고 감나무농장 중턱에 파란지붕 건물 옆으로 지나간다

 

 

 

 

좌측의 혹자는 ○○한울산악회를 따라 고미동고개를 통과하는 모습이다

2010년 10월 23일 맨처음 정맥길에 도전하는 날이며

정맥길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 남의 발뒷꿈치만 보고 따라 다녔기에 산행후기가 없다

 

 

 

 

○○한울산악회와 감나무밭에서 기념촬영한 모습이며 고암나룻터까지는 종주를 마쳤다

혹자는 낙동정맥 마지막 구간을 마치면 1대간 9정맥을 완주한다

하지만 산행후기가 없는 구간에 대해서는 2차 종주를 틈틈히 하면서 산행후기를 완성할 예정이다

 

 

 

 

<가족농장 파란 창고 좌측으로 감나무밭 중앙을 가로질러 정맥길을 이어간다>

진주시와 사천시의 경계인 두량저수지가 축조됨으로써 생활터전인 농토를 잃고 타 지역으로

이주를 하였다, 이주 하지못한 농가들은 경지 면적이 적어서 영세성을 면치못하고 어려운

여건속에서 생활하는 마을이었으나 1970년대 이후 과수원을 개간하여 단감의 주산지로

변모한 개척정신이 강한 농촌으로 탈바꿈하여 이곳에 감나무 과수원이 많은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가족농장 과수원 봉우리를 넘어 정맥길은 특징이 없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봉우리에 금바구산(金岩山)이라 작명을 해 놓았는데

주변에는 바구(바위)와 삼각점도 없는데 어떻게 산 이름을 작명을 하였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과수원 순례를 마치고 무탈하게 정촌면과 금곡면을 연결하는 계리재(鷄狸峙)에 도착한다

계리재는 닭(鷄)과 살쾡이(狸)가 이쪽 저쪽 있다고 해서

계리재라 하였다는 설과 정촌면의 관봉초등학교가 있는 고미동을

계미골이나 계미동으로 부르는데 이 지역의 산세가 고양이처럼 생겼다하여 계리재라 부른다고 한다

 

 

 

 

진주의 진양호는 인공호수로 물이 맑고 자연 경관이 훌륭하여 관광명소로 이름난 곳이다

오늘은 과수원과 묘지의 그리고 들길, 포장길 종합선물셋트 구간이었지만

우리 민초들의 숨결이 묻어 있고 애환이 담겨 있는 생활터전을 보고 느꼈기에 행복한 하루였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7 : 20 ~ 15 : 30  (08시간 30분)      ◎ 날씨 : 아주, 맑음

 

 

우리사랑은 - 노래 : 김성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