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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낙남정맥(완주)

낙남정맥 제2구간(고운동재-백토재) 종주산행

낙남정맥 제2구간(고운동재 - 천왕봉 - 백토재)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4년         12월         15일         (월요일)

◎ 산행위치 : 경상남도 사천시 사남면 / 고성군 영현면, 상리면, 대가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고운동재(1047지방도) - 902.1m봉 - 798m봉 - 790.4m봉 - 주산갈림길 - 길마재

                      555m봉(산불초소봉) - 칠중대고지(565.2m봉) - 양이터재 - 방화고지갈림길

                      돌고지재 - 우듬지분기봉 - 천왕봉(天王봉, 602m) - 청수갈림길 - 백토재(1005번지방도)

 

◎ 산행거리 : 고운동재 ~ 4.0Km ~ 790.4m봉 ~ 1.3Km ~ 길마(질마)재 ~ 1.8Km 

                      칠중대고지 ~ 1.6Km ~ 양이터재 ~ 2.3Km ~ 방화고지 ~ 3.4Km 

                      돌고지재 ~ 1.8Km ~ 우듬지분기봉 ~ 1.0Km ~ 천왕봉 ~ 3.5Km ~ 백토재 

                      도보거리   =   약 19.7Km           실제도보거리   =   약 20.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6 : 50 ~ 16 : 20  (09시간 30분)      ◎ 날씨 : 아주, 맑음

 

            ◐ 남부 해안지방의 내륙의 문화권를 가로지르는 낙남정맥(落南正脈)이란?

낙남정맥(落南正脈)은 낙동강 남쪽에 위치한 정맥으로,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끝나는 지리산의 영신봉에서

동남쪽으로 흘러 북쪽으로 남강의 진주와 남쪽의 하동·사천 사이로 이어져, 동쪽으로 마산, 창원 등지의 높이 300∼800m의

높고 낮은 산으로 연결되어 김해의 분성산(360m)을 지나 낙동강 하류에서 그 맥을 다하는 총도상거리 약 232Km의 산줄기이다

 

***** 낙남정맥 2구간(고운동재~백토재) 구글형지도 *****

 

 

 

 

 

 

고운동재는 고지대라서 도로가 빙판이 되어 상당히 긴장하고 올라선다

처음으로 접하는 하얀눈이 우리를 맞이 하였지만

동장군의 시샘인지 고운동재의 새벽 기온은 차거운 바람과 함께 우리를 긴장시킨다

 

 

 

 

국공파가 "자연생태계 보전"이라는 미명하에 같다 붙인 출입금지

입산금지 안내판을 보면서 씁쓸한 웃음을 지어본다

오늘은 국립공원지역을 벗어나 낙남정맥 2구간 두번째 걸음을 나서기 때문이다

 

 

 

 

고운동재는 1200년전 통일 신라시대말 대학자로 이름을 날렸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선생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왕실의 무능과 부패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이상정치와 현실정치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모든 관직을 버리고 이곳 고운동계곡에 머물면서 청학동을 넘었다하여 고운동재라 부른다

 

 

 

 

고운동재는 하동군과 청암면과 산천군 시천면을 잇는 고개로

들머리 입구에는 아직도 어두움이 깔려있고

고운동재는 언제 다시 올 일이 있을라나 싶어 한장의 추억을 남기고 숲속으로 들어선다

 

 

 

 

산자락의 오름길에는 제법 많은 눈이 내려서 진행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첫 눈의 사각소리는 힘찬 발걸음으로 밀어 올렸으며

초입의 등산로는 산청군 시천면과 하동군 청암면의 군계(郡界)를 따라 진행하게 된다

 

 

 

 

능선으로 올라선지 얼마되지 않아 산죽길이 시작되고

좌측 아래로 고운호의 물결이 보이며

우측으로 구름속에 빨갛게 아침해가 드러나지만 찌뿌린 날씨탓에 볼 수는 없다

 

 

 

 

고운동재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지도상의 배바위는 확인하지 못하였으며

산죽속에서 한발자욱도 벗어나지 못할 지경이며

산죽밭을 잘 정돈되었다고 하였는데 등로를 다시 점령하여 인간의 손길쯤은 간단히 지워버렸다

 

 

 

 

무명봉를 넘어서면 등로 우측으로 약초 재배지역 출입금지 안내판이 보인다

전기줄이 설치되어 있어 조심스런 탐색전이 지나가고 하늘을 가리는

산죽숲에서 얼굴을 맞을때마다 아픔에 고통은 영원히 잊지 말라는 채찍으로 생각한다

 

 

 

 

산죽으로 뒤덥혀 있는 오늘의 최고봉인 902.1m봉은 삼거리 갈림길이며

삼각점은 찾지 못하고 마루금은 우측으로 꺾어진다

직진길 또한 뚜렸하여 아래만 보고 진행할 경우 알바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키를 훌쭉 넘는 산죽밭은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간직한채

끝이 없는 벌판처럼 드넓게 자리를 잡았으며

이곳도 묵계치 부근의 산죽밭 못지 않게 정맥꾼의 발목을 붙잡는다

 

 

 

 

산죽은 인간이 아무리 변형시키고 파괴하여도 죽(竹)은 죽(竹)이다

사군자(四君子)의 기상(氣象)은 눈밭에서도 변함이 없으며

눈덥힌 산죽과 한시간 가까이 시름한끝에 하늘이 열리고 앞쪽으로 지도상 875m봉이 보인다

 

 

 

 

짧게 끝나는 산죽지대를 벗어나 875m봉에 오른다

겨울이지만 가을처럼 느껴지는 봉우리

아무 특징도 없어서 고도만 확인하고 삭막한 구간을 묵묵히 지나간다

 

 

 

 

산정에는 제법 눈이 쌓여있어 겨울다운 모습을 본다

872m봉은 좌측 사면으로 우회하여

능선 방향이 동쪽으로 꺾어지면서 가야할 봉우리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872m봉을 사면을 따라 내려서면 시그널의 전시장이었는데

시그널이 동강이 나서 뒹굴고 있었으며

산속에서 시그널이 보일때마다 산꾼 한사람을 만난것처럼 혹자는 반갑다

 

 

 

 

갈색숲보다는 푸르름을 자랑하는 댓잎(산죽)이 그리워진다

스치는 바람에 손도 시럽꽁~ 발도 시럽지만

산록의 눈 덮힌 가경(佳景)을 보면서 계속해서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린다

 

 

 

 

개인적으로는 참 좋아하는 산죽(조릿대)이다

사시사철 그 푸르름을 간직하며

등로에 생명령을 불어주는 느낌이라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무거운 다리를 능선에 걸치고 걸어온 길을 뒤돌아본다

잊지못할 산죽밭이 가물가물하고

다시란 기약도 없기에 나무가지 하나라도 세심히 살피면서 가슴속에 담는다

 

 

 

 

모처럼만에 사방이 확 트이는 799m봉에서 조망을 즐긴다

천왕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우며

오늘은 하얀 중절모를 뒤집어쓰고 잠엄한 모습으로 주변산들을 호령하고 있다

 

 

 

 

산의 기준을 해발고도 200m를 기준으로 삼았을때 우리나라 산의 숫자는 4.440개라고 한다

우리땅의 왼만한 봉우리는 다 포함이 된 듯한데 엄청 많아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우리가 백두대간과 정맥을 하면서 만나는 무수한 봉우리들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많은것도 아닌것 같다

 

 

 

 

호남정맥 한구간을 넘을 때 20개 봉우리를 넘을 때도 있다, 그렇다면 20개에 24구간이면 480봉우리를 넘는다

백두대간 9정맥과 9기맥만 하여도 4.440깨의 봉우리를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한 하루에

한 봉우리를 오른다면 12년이 걸리고 일주일에 10개씩 오른다면 한달이면 40개이고 일년이면

480개를 오를 수 있으므로 혹자의 계산법이 맞다면 10년이면 우리나라 산을 다 오를수 있다는 계산이 아닌가

 

 

 

 

799m봉은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볼 수 있는 최대의 조망처이다

봉우리 이름하나 있을법한데 무명봉이라니~

사량도의 지리산처럼 지리산을 그리며 지리망산이라 하였듯이 천왕망산이라 부르면 어떨까?

 

 

 

 

능선 좌측아래로 소박한 반천리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옛날같으면 쌀3되도 못먹고 시집갔을 동네

반천리마을에서 고운동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상부댐(고운호)에 이른다

 

언제가 TV에서 가족들에게 "스님이 되겠다"는 말만 남기고 가출했던 김병채(56)씨

세상과 담을 쌓고 지리산에서 약초를 캐고 살았던 남자

동생이 수소문끝에 20년동안 입산수도를 끝내고 어머니 곁으로 돌아갔는데 잘 살고 있는지~

 

 

 

 

굴참나무 숲길과 키작은 산죽길이 번갈아 나타나지만

산죽밭은 규모가 작아서 어려움이 없으며

산죽밭은 고개를 숙이고 양손을 앞으로 나란히 해서 물결 가르듯 전진한다

 

 

 

 

제법 가파르게 밀어 올리면 790.4m봉의 전위봉으로

지겹던 산죽밭과 작별을 한다

산은 한번도 나를 거부하지 않고 매번 오를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산을 올라갈 때는 숨이 차고 힘들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름답다

오늘따라 지나온 산줄기가 평화스럽게 느껴지고

우리가 사는 세상도 자연처럼 순리를 지키며 악의 없는 순수한 사람들로 평화스러운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처음으로 만난 790.4m봉의 삼각점을 반가운 마음으로 담아본다

코팅지가 퇴색되어 간신히 봉우리를 지키며

삼각점 봉우리에 준,희님의 아크릴판이 없는지~ 새삼 궁금하게 느껴진다

 

 

 

 

산을 찾는 이유는 산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산을 오르면서 모든 근심을 떨쳐버리고 세상을 둥글게

살고 욕심없이 빈 마음으로 살라고 가르쳐준것이 산이기 때문이다

 

 

 

 

주산갈림길에서 우측 진행방향에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 있으며

정면으로 보이는 산이 주산(主山, 828.2m)이며

좌측으로 길이 뚜렸하고 시그널이 한두개 있으므로 무심코 지나면 알바할 수 있다

 

 

 

 

주산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길마재를 향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겨울이지만 낙옆속에 파묻혀 가을을 만끽한다

거의 직벽에 가까운 내림길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조심하여 내려서야 한다

 

 

 

 

산죽밭을 헤쳐오면서 힘들었던 순간을 잊고 낙엽이 깔린 등로위해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추억 사진을 남긴다

등로상에 낙엽이 무릎까지 덮힐정도로 뒤덮혀 있어 이불삼아 한숨자도 될것 같았다

 

 

 

 

면천(眄川)박씨와 파평 윤씨(尹氏)의 합장묘를 지나면

산청군을 떠나 온전히 하동군으로 접어들고

등로상은 옥종면과 청암면의 면계(面界)능선을 따라 진행하게 된다

 

 

 

 

길마재란 이름은 고개의 지형이 길마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로 안현(鞍峴)이다

길마재는 "질마재, 질매재"란 또 다른 이름으로 전국에 두루 분포하고 있으며

짐을 실을려고 소나 말의 등에 얹는 안장인 길마(질마)를 뒤집어 놓으면 V형의 선명한 재의 모습이 된다

 

 

 

 

길마재는 산청군 시천면 궁항리와 하동군 청암면 상이리로 연결되는 고개로 1014번지방도가 지나간다

고개마루 좌측 동리가 빈이터라서 동리 사람들은 빈이터재라고도 부른다

꼬불꼬불한 모퉁이가 열둘이어서 열두 모랭이라고도 부르며,이념 대결이

한창이던 시절에 지리산에 은거하던 빨치산들이 자주 이용하던 고갯마루라 하니 더 자세히 살펴보고 간다

 

 

 

 

한차례 밀어 올라가면 "산불초소봉"이 나온다

국토지리원 지도상 555m봉으로

근무중인 산불감시원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주위를 살펴본다

 

 

 

 

남쪽으로 청암면의 하동호(河東湖)가 내려다 보이며

박무로 인해 하동호가 선명하진 않지만

이곳에서 하동호를 바라보면 한반도(韓半島) 지형을 닮았다고 한다

 

 

 

 

칠중대고지가 보이는 전위봉에서 굶주렸던 배를 채우기 위해

베낭을 내리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소찬이지만 추울때 산정에서 먹는 라면은 임금님의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았다

 

 

 

 

칠중대 오름길 중간에 만나는 고인돌 형상의 바위다

"고인돌" 또는 "선바위"라고도 부르며

아마도 선답자들이 적적한 오름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자연석의 고인돌 모양이다

 

 

 

 

칠중대고지(565.2m)는 빨치산 토벌당시 칠중대가 주둔하였다 하여

산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산죽밭에 삼각점도 있고

평이했을 봉우리가 비운의 역사를 만나 그 슬픔을 간직한채 우리들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칠중대고지 아래에 속한 궁항리 마을은 활목이라는 곳으로

오대주산 아래 유명한 옛 오대사 절터가 있으며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로 철광맥이 있어 쇠를 구운 흔적도 남아 있는 곳이란다

 

 

 

 

칠중대고지에서 완만한 능선길의 특징없는 559m봉을 넘어서면

등로상에 추억의 TV안테나가 있고

우측 아래로 하동호를 흘러드는 횡천강(橫川江)과 청암면 상리 마을이 보인다

 

 

 

 

584m봉을 넘어서면 직진길이 정맥길인 듯 보이지만

좌측으로 U자형의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하동군 옥종면 위태리에서 청암면의 하동호를 연결하는 지리산둘레길인 양이터재에 내려선다

 

 

 

 

양이터재는 동학혁명 때 양씨, 이씨가 터전을 잡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칠중대고지 아래 옥종면 궁항리에 양,이터가 있으며

지금은 지리산둘레길이 지나가면서 쉼터와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어

배려를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기에 베낭를 내리고 커피를 마시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다 떠난다

 

 

 

 

둘레길 양이터재에 무명봉을 넘어서면

사거리갈림길이 나오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곳이 원래 양이터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산죽밭과 참나무가 주종인 등산길을 걸어 왔는데

이젠 아름드리 소나무도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소나무 숲길이라 한숨을 토해내는 오르막도 힘들지 않다

 

 

 

 

그동안 한달 가까이 제대로 된 땀 한번 흘리지 못했기에

입속으로 흐르는 땀방울이 짭잘하다

좌측에 646m봉을 오르지 않고 어깨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꺾어 진행한다

 

 

 

 

628m봉에 오르면 좌측으로 옥산과 천왕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약간의 고통이 수반되는 정맥산행

하지만 세상사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만을 느끼며 걸어가는 시간이 행복하다

 

 

 

 

정오가 되면서 햇볕이 산정을 파고들면서

동장군의 시샘은 물러가고

춥다고 산행을 포기했다면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애인을 두고온것처럼 자꾸만 뒤돌아본다

이젠 천왕봉도 멀게만 느껴지고

그래도 가끔씩 천왕이의 얼굴을 보면서 힘을내어 발길을 재촉한다

 

 

 

 

방화고지는 옛날에 봉화를 올려 국령을 알리는 "사고지"라 한곳이다

방화고지는 우측으로 살짝 떨어져 있으며

마루금은 좌측으로 떨어지면서 청암면을 버리고 옥정면과 횡천면의 면계를 따라 진행한다

 

 

 

 

특징없는 방화고지에서 제법 급하게 길게 떨어졌다가

652봉을 향해 한참을 밀어올려야 한다

등산하는 길이 그냥 평탄한 길이라면 둘레길을 걷지 누가 정맥길을 걷겠는가

 

 

 

 

봉우리처럼 느껴지지도 않은 봉우리들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힘든 몸둥아리를 652m봉에 올라선다

그래도 송송 맺힌 땀을 식혀주는 봉우리가 있기에 바람을 맞으며 금새 잊는다

 

 

 

 

652m봉에서 가야할 마루금이 일목요연하게 보인다

전망이 좋아서 베낭을 내리고

소찬으로 망중한을 즐기면서 세상 근심걱정 다 잊고 한참을 머물다 간다

 

 

 

 

시그널이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열정의 산꾼들을 생각할 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으며

정맥산행이 끝이나면 체력이 다하는 날까지 이산 저산을 두루두루 살피고 해외 산들도 걸어 보련다

 

 

 

 

우측으로 청암면에서 돌고지재로 이어지는 도로가 지나간다

 

우리나라의 산중에서 가장 흔한 이름은 봉화산으로 47개나 된다고 한다

두번째로 43개의 국사봉, 세번째가 39개의 옥녀봉,

네번째가 32개의 매봉산, 다섯번째가 31개 이름을 가진 남산이며

우측으로 호남정맥의 최고봉인 백운산이란 이름도 많은데 순번에 들어가지도 못한 모양이다

 

 

 

 

지적삼각점이 있는 산행지도의 375m봉이다

국토지리원의 삼각점이 아니고

하동군 청암면에서 관리하는 삼각점에서 인증샷을 한장 남긴다

 

 

 

 

삼각점봉을 지나면 등로 우측으로 철조망이 막힌 등로를 타고 진행하면

잡풀이 뒤덮고 있는 개활지 봉우리를 좌측으로 넘는다

등로 좌측으로 목장인지 거대한 건물이 보이고 59번국도가 지나가는 돌고지재가 있는 곳이다

 

 

 

 

대나무숲 앞에서 우측으로 진행한 흔적이 있고

화살표 방향으로 등로가 열려있지만

지금은 표시기가 없어 내려가는 방향이 햇갈릴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돌고지재 우측 전대리는 횡천면 구간이고, 청암면 회신리에는 위태리라는 지명도 있다

횡천면은 얼핏 들으면 무시 무시한 뜻(횡천)과 흡사 하지만

읍내를 가로 지르는 횡(橫) 천(川)이 있다는 뜻이며, 위태리는 무언가

위태롭다는 뜻으로 해석할지 모르지만 원래 상촌(上村)이었으며 일제시 행정구역 통페합때 바뀐이름이다

 

 

 

 

돌고지재는 하동군 횡천면 전대리에서 옥종면 회신리를 잇는 59번 국도가 지나가는 고개로

교통이 발달하기 이전에 하동에서 진주나, 산청방면으로 가는 보부상들이

넘나들면서 "돌고 돌아 넘는 재"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이 고개를 넘는

서포~옥종간 도로가 돌이 많다하여 "돌고개"라 부르기도 하며, 다른 이야기로는

옥종면에 사는 한 참봉이 명당을 찾아 왔다가 다른 사람이 묘를 써 그냥 돌아갔다 하여 돌고지재라 한다

 

 

 

 

좌측 임도위에 건물은 강림자연농원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나

지금은 폐업이 되었는지 사람이 없으며

포장된 시멘트임도를 따라 오르면 생각보다 가팔라서 고개를 푹 숙이고 걷고 또 걷는다

 

 

 

 

돌고지재에서 10여분 가파르게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면

우측에 이정목이 있는 곳에서 숲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임도를 따라가도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능선에서 만나게 되어있다

 

 

 

 

원목계단 오름길은 산꾼의 인내를 시험하는것 같았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하고

임도와 만나는 능선에 오르면 좌측으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467m봉이다

 

 

 

 

산불감시초소봉(467m)에 올라 주변을 두루두루 살펴본다

하동 사람들은 고동바위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호남정맥의 최고봉인 백운산이 조망되고 날씨가 좋은날은 남해바다도 조망된다고 한다

 

 

 

 

이젠 낙남정맥을 출발했던 지나온 산줄기가 가물가물하고

하나하나 연결되어 있는 산줄기를 바라보면

내가 낙남정맥의 산줄기를 걸어야 하는 당위성을 가지게됨을 느끼게 한다

 

 

 

 

산불초소를 내려서면 또 다시 임도를 걷는다

임도를 따르는 우회길이 있지만

고집스럽게 정맥길을 이어가기위해 다시 이정목에서 산으로 접어든다

 

 

 

 

이정목에서 시그널이 정맥꾼을 산으로 들어서라고 잡아당긴다

우측편으로 임도와 나란히 올라가고

소나무로 빼곡한 등로속은 어두움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한다

 

 

 

 

고도를 높여 능선에 올라서면 마루금은 우측으로 꺾어지고

진달래밭 좌측으로 약간 들어가면

526.9m봉의 삼각점을 확인할 수 있고 나뭇가지에 준,희님의 아크릴판이 걸려있다

 

 

 

 

옥산분기점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신산경표에 의한 백두대간 길이며

신산경표에 의하면 이곳에서 실질적인 낙남정맥이 시작된다

낙남정맥이 끝나면 신산경표에 의한 신백두대간 완주를 위해 저 마루금을 걸어볼 예정이다

 

 

 

 

옥산분기봉(546m)은 근처에 산 이름이 없어 제일 가까운 옥산의 이름을 빌려서 "옥산분기봉"이라 표기한 모양이다

 

"신산경표"를 발표한 박성태님의 백두대간 우듬지에 대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지리산 영신봉에서 가지를 쳐 지나온 낙남정맥이 옥산분기봉에서 남진하여 백두대간 우듬지구간을 형성하고 있는데

"우듬지"는 나무의 꼭대기 줄기"라는 뜻으로 백두대간 꼬리나 끝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조선후기 조선조 영조 때 실학자였던 여암 신경준(1712~1781)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산경표(山經表)와 달리

백두대간은 영신봉에서 천왕봉으로 향하지 않고 낙남정맥으로 이어지고 있는 맥을 따라 이곳 우듬지

남해 노량포에서 그 맥을 다하는 것으로 정하고 새로운 낙남정맥은 영신봉이 아니라 이곳 우듬지에서 분기하여

기존 낙남정맥을 따라 이어가는 것으로 정하자는 것이다

즉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산줄기는 물을 건너지 않고 산이 곧 물을 나눈다)의 원칙에 의거

이 땅의 산줄기가 되는 모든 맥은 내와 천을 형성하다 결국은 강이나 바다에서 그 맥을 다하는 것을 본다면

천왕봉은 단지 지리산의 최고봉일 뿐이고 천왕봉을 지나 동부능선의 웅석봉도 달뜨기 능선의

이방산이나 수양산도 백두대간의 끝이 될 수 없으므로 남해의 "노량포"를 백두대간의 꼬리로 함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지리산은 한반도의 모산(母山)이고 백두단은 부산(父山)임을 부정 할 수 없다

한반도의 모든 산과 산줄기는 지리산과 백두산의 자손이며

개인적으로 우듬지는 특별한 의미를 두고 싶지 않으며 지맥의 한 산줄기로 머지않아 걸어 볼 것이다

 

 

 

 

옥산분기봉을 내려서면 좌측으로 천왕봉으로 향한다

길 옆으로 철망이 쳐져 있고

"출입금지" 고사리, 더덕재배단지 라고 적힌 표지판이 걸려 있다

 

 

 

 

임도를 따라오면 이정목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천황봉을 오르고

직진방향은 옥산 방향으로 바로가는 임도이며

제법 가파르게 올라가면 이 길은 정맥길이다 라는 시그널이 힘을 내게 만든다

 

 

 

 

솔 갈비가 수북히 쌓여 황금카폣을 걷는 기분이다

완만하게 고도를 높여가지만

소나무로 빼곡한 숲속길이 좋았는지~  울몽실님 꼬랑지도 안 보인다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은 한국인의 기상이 살아있는 산이고

산꾼들의 고향같은 어머니의 산이다

하지만 감히 602m의 작은 몸집으로 천왕봉(天王峰)이란 이름을 가졌으니 놀래지 않을 수 없다

 

 

 

 

힘든과정을 인내했기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환상적인 풍경에 숨이 막힐 지경이며

정상에 올라서면 산은 생각지도 못한 깨우침으로 우리에게 많은것을 일깨워준다

 

 

 

 

옥종면 천왕봉에서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니 마음은 묘하지만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한 맥의 남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천왕봉

하지만 지리산 주봉에 예의를 갖추어 "소천왕봉"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면 더 좋지 않했을까 싶어진다

 

 

 

 

병은 하늘이 고치고 돈은 의사가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산은 무능한 자를 현명하게 만든다고 하였던가

아팠던 허리 통증도 지리산 천왕봉의 천기를 받으니 힘들고 아픈곳도 사라졌다

 

 

 

 

남동쪽으로 복천면 너머로 사천시 와룡산이 가물가물하고

우측으로 노량의 금오산이 우뚝하다

산은 낮아도 시원한 조망에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짐을 챙겨 길을 나선다

 

 

 

 

선답자의 산행기에서 볼 수 없는 새로지은 정자도 있다

정상석 뒷쪽에는 天王峰의 氣와 血을 받은

우리 후손들은 그 발자취를 남기고자 이 碑를 세웠노라 <楊川人의 一同>이라 새겨져 있다

 

 

 

 

좌측에 옥산(玉山, 614m)은 옥종면과 북천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천왕봉의 주능선은 물론 합천의 황매산이 조망되고

우람한 기세와 포근한 산세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 옥종면의 진산으로 알려져 있다

 

 

 

 

옥산은 정맥길에서 좌측으로 1Km정도 비켜나 있지만

한번쯤 꼭 올라 보아야할 산이다

하지만 숲속에 어둠이 깔리고 있어 오늘은 포기하고 정맥산행에 충실하기로 한다

 

 

 

 

옥산에 관련된 자료를 보면(위 가져온 사진임)

먼 옛날 하늘에 있던 옥황상제가 한반도의 명산들은 지리산에 모이라는 명을 받았는데

진주 근방에 있던 옥산은 지리산으로 가기위해 길을 떠났다,

옥산이 하동의 옥종에 이르렀을 때 마침 통샘에 물을 길러 가던 청수마을의 얼굴이

발그레한 처녀가 옥산을 보고 "산이 가네" 하고 외치는 바람에 그 처녀 말에 놀란 옥산은

그만 그 자리에 멈춰 버리고 지리산까지 가지 못하고 하동 옥산면의 진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옥산갈림봉에서 백토재로 향하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길이며

솔숲길이라 솔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청수갈림길에 도착하니 백토재까지1.5km남았다고 가리킨다

 

 

 

 

평이한 마루금을 타고 부드럽게 고도를 낮추어 내려가면

사진처럼 이정목이 있는 사거리가 나온다

사거리에서 무심코 직진할 수 있으므로 좌측에 시그널을 확인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백토재가 눈앞이라 마지막 봉우리에서 여유로움을 즐긴다

숲길이라 속도가 절로 나오고 솔 갈비가 발바닥에

느껴지는 촉감은 어둑하지가 않은다면 계속 걸어가고 싶어진다

 

 

 

 

지리산요양원을 우측에 두고 내려가면 오늘 구간의 종착지인 백토재다

백토재는 경남 하동군 북천면과 옥종면을 넘어가는 고개이며~

1005번지방도가 지나가는 백토재에 도착하니 택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른쪽에 하동군 북천면 방향으로는 "지리산요양원"이 자리하고 있고 옆쪽으로

고령토 집하장 (주)범우 라는 공장이 있으며, 북천면 화정리 일대는

온통 백토 채굴 광산이었고 옥종면 정수리에는 백토고개라는 지명도 있다고 한다

 

 

 

 

배토재는 옛날에 도자기의 원료인 백토(白土)가 많이 나는 동네라 백토재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배토재로 변음되어 불리고 있단다, 한문으로 백토(白土)는

흰 흙을 말하며 도자기, 보온재, 내화벽돌, 농약, 고무신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든다고 한다

 

 

 

 

백토재 고개마루에는 아름답게 단장을 한 커다란 자연석 돌비석이 세워져 있다

한자로 이 고장 고향옥종(故鄕玉宗)"을 알리는 표시석이 새겨져 있으며

우측으로 낙남정맥 구간을 알리는 안내도와 이정표를 확인하고 산행을 마무리한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6 : 50 ~ 16 : 20  (09시간 30분)      ◎ 날씨 : 아주, 맑음

 

 

when i dream - Carol Ki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