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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낙남정맥(완주)

낙남정맥 제1구간(영신봉-고운동재) 종주산행

낙남정맥 제1구간(영신봉 - 삼신봉 - 고운동재)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4년         11월         23일         (일요일)

◎ 산행위치 :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 함양군 마천면 / 하동군 청암면, 화계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거림 - 천팔교 - 북해도교 - 세석교 - 세석대피소 - 영신봉(靈神峰, 1651.6m) - 창불대

                      음양수 - 의신마을갈림길 - 석문 - 한벗샘안부 - 삼신봉(三神峰, 1288.7m)

                      갓걸이재 - 외삼신봉(外三神峰, 1286.7m) - 묵계재 - 991m봉 - 고운동재(1047번지방도)

 

◎ 산행거리 : 거림 ~ 6.0Km ~ 세석대피소 ~ 0.5Km ~ 영신봉 ~ 1.3Km ~ 음양수 ~ 1.4Km 

                      석문 ~ 1.6Km ~ 1237봉 ~ 3.1Km ~ 삼신봉 ~ 0.5Km 

                      갓걸이봉 ~ 0.8Km ~ 외삼신봉 ~ 2.6Km ~ 묵계재 ~ 1.9Km ~ 고운동재(1047번지방도) 

                      도보거리   =   약 19.7Km           실제도보거리   =   약 20.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5 : 50 ~ 16 : 40  (10시간 50분)      ◎ 날씨 : 아주, 맑음

 

            ◐ 남부 해안지방의 내륙의 문화권를 가로지르는 낙남정맥(落南正脈)이란?

낙남정맥(落南正脈)은 낙동강 남쪽에 위치한 정맥으로,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끝나는 지리산의 영신봉에서

동남쪽으로 흘러 북쪽으로 남강의 진주와 남쪽의 하동·사천 사이로 이어져, 동쪽으로 마산, 창원 등지의 높이 300∼800m의

높고 낮은 산으로 연결되어 김해의 분성산(360m)을 지나 낙동강 하류에서 그 맥을 다하는 총도상거리 약 232Km의 산줄기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 낙남정맥 1구간(영신봉~고운동재) 등산안내도 *****

 

 

 

 

 

 

<낙남정맥에 대하여 정리해보면>

낙남정맥은 우선 명칭에서부터 정간이냐? 정맥이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정

간이 맞다는 의견은 산경표의 규장각본에 정간으로

표기한것이 있고 또 산경표 배열에서도 다른정맥은 대간에서 분기한 순서대로 위에서 부터 분가를 했는데

낙남은 대간 다음에 이어서 딴 정맥보다 앞에 있다는 것을 애기하며, 산경표에 있는대로 장백정간→백두대간→낙남정맥

이렇게 하는것이 국토를 지탱하는 원줄기가 아니지 않느냐 하는 애기들을 한다 그러나 보통은 낙남정맥으로 많이들 부르고 있다

<다음은 시작과 끝을 어디로 하느냐? 는 애긴데>

요즘 산경표와 다른 이견을 내는 신산경표는 우선 백두대간의 끝을 지리산 청왕봉이 아니고 영신봉 →삼삼봉 →돌고지재 →547봉

(옥산 근처인데 산 이름이 없어서 제일 가까운 옥산의 이름을 빌려서 옥산분기봉이라고 표기하는 모양이다)

계봉 →금오산 →노량을 백두대간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아마도 백두대간이 국토를 동서로 양분한다는 근본원리에

부합된다는 뜻인듯하다 그러다 보니 산경표의 낙남정맥 구간이던 영신봉 →옥산분기봉(547봉)은 백두대간에 넘어가고

옥산분기봉에서 낙남정맥은 시작된다 낙남정맥의 끝부분도 산경표는 김해의 분성산까지만 기술되고 있는데

보통 종주자들은 용지봉 →동신어산 →낙동강가의 매요2리로 종주하고 있는데

신산경표는 용지봉 →불모산 →굴암산 →보배산 →봉화산(입바위)로 보고 있다 전자는 분산 이후에 이어지는 산줄기는

신어산 →동신어산이나 또는 백두산으로 이어진다고 보고있다, 또 현재는 낙동강하구둑이 생겨서 배가 내륙쪽으로 못들어 오지만

산경표시절엔 내륙쪽까지 들어오고 했으니 정맥의 끝이 바다에 닿았다고 보고 있다 <반면에 후자는 봉화산쪽으로 본것은>

낙남정맥의 끝을 구지봉으로 보고 남쪽의 몰운대를 바라보고 있는데서 신어산쪽 보다 봉화산쪽을 낙남정맥의 끝으로 보고있다

 

 

 

 

새벽 3시 30분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차를 몰아 거림골에 도착했다

피곤한 몸이지만 지리산 풍경에 대한 설레임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는 것이 꼭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애인을 만나러온 기분이다^^ㅎ

 

 

 

 

버스는 거림 민박매점 주차장까지 진입할 수 있고 승용차는 종점주차장까지 올 수 있다

졸린눈에 힘을 주어 2시간을 달려온 주차장은 적막강산이며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한줄기 렌턴불빛에 의지하여 세석평전 영신봉을 향하여 몸을 맡긴다

 

 

 

 

공원지킴터 입구에 있는 마지막 식당가에는 불이 켜져 있네요

거림(巨林)이란 지명은  울창한 원시림을 뜻함이며

거림에서 계곡을 따라 세석평전으로 가는 등산로는 가장 가깝고 완만한 길이다

 

 

 

 

경방기간이라 산불예방을 위해 지리산 일부 탐방로가 출입동제되고 있었던 사실도 몰랐으며

벌금을 내는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벌금을 냄으로써 범법자가 된다

한반도의 지리, 문화, 역사공부를 하러 산을 찾아 왔는데 범법자라니~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면 양심과 법을 지키는 인간이 되어야겠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경방기간이라 렌턴 불빛을 끄고 떨리는 발걸음으로 조심스럽게

공원지킴터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칡흙같은 어두움속에서 어떠한 느낌을 가질 수 없지만 새벽 찬바람에 무사산행을 빌어야했다

 

 

 

 

거림골에서 남부능선 중턱으로 이어지는 자빠진꼴(일명:엎어진 뜰)은

세석평전으로 오르는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 골이며

골짜기가 자빠진 듯! 뜰이 엎어진 듯! 약간 기운 산세라 하여 자빠진골(엎어진 뜰)이라 부른다

 

 

 

 

거림골의 너덜길은 활엽수의 낙엽들이 카펫트로 수를 놓았고

계곡의 청정옥수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하고

어둠속에서도 지리산의 정기가 있어서인지 발걸음이 가볍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거림주차장에서 조금 올라오면 만나는 "지리산 공비 토벌 루트"안내판

다시 한번 현대사의 비극을 생각하면 아프다

요즘도 종북이니 친북이니 갑들을 떨고 있는데 이 땅에 동족상잔의 비극이 다시는 없기를 기도한다

 

 

 

 

새벽 찬바람에 제법 떨었던 몸은 어느새 후끈 달아 오르고 있다

어느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면서 거림골의 비경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소와 담의 아침 풍경은 무릉도원이 따로 있겠는가

 

 

 

 

천팔교는 해발고도가 1008m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기발한 지명의 명칭이 아닌가~

영신봉이 1651.4 m이면 앞으로 650m의 고도를 올려야 한다는 계산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반겨주고 있는 멋진 바위사이를 지나간다

빨치산들의 안전지대나 다름없었던 거림골!

당시의 상흔은 오간데 없고 거림계곡 어느곳에 걸터 앉아 있으면 신선이 된 기분일것 같다

 

 

 

 

거림마을에서 여기까지는 한겨울에도 추위를 느끼지 못할만큼 따뜻한 무풍지대인데

여기만 들어서면 추위가 느껴지고 눈도 녹지않고 있어

이곳의 일대를 일본 북해도의 기후와 같다고해서 다리 이름을 북해도교라 명명되었다고 한다

 

 

 

 

북해도교를 건너면 산길은 청정옥수가 흐르는 계곡길을 벗어나

제법 가파르게 된비알을 타고 오르며

반세기전 토벌군 화염공격으로 사라진 원시림이 지금은 무성한 활엽수가 빼곡하게 뒤덮혔다

 

 

 

 

산이 주는 넉넉함과 아늑함을 누리는 산꾼이 되어야 한다

깊이 사색하고 이러한 고적함을 느끼는 분위기는

지리산이나 깊은산이 아니면 어디에서나 느끼겠는가 아늑하고 그냥 좋을 뿐이다

 

 

 

 

삼천포가 보인다는 전망대에 오르니 아침 햇살에 유난히도 남부능선이 출렁인다

빨치산의 슬픈 역사를 가슴에 품고 있는 남부능선 그러나 찌든 세월속에서

중생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보듬어 주고 감싸주는 어머니 품처럼 편안한 지리산이다

 

 

 

 

거림계곡은 지리산 촛대봉과 세석평전에서 시작되는 본류와

연하봉과 촛대봉에서 발원하는 도장골의 지류

세석평전에서 남부능선의 한벗샘에서 발원한 자빠진골 등의 지류가 모여 형성된 커다란 계곡이다

 

 

 

 

청학동과 세석대피소로 갈리는 삼거리에 이른다

이곳에서 세석대피소는 우측이며

좌측은 청학동갈림길로 영신봉에서 내려오면 음양수에서 만나는 길이다

 

 

 

 

평상시 같으면  세석대피소가 산객들로 벅쩍벅쩍 할 것인데

경방기간이라 사람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가져온 식수를 버리고 지리산의 정기가 가득 담긴 물로 교체를 하고 바로 영신봉을 향한다

 

 

 

 

세석고원은 신라 때 화랑도의 수련장으로 이용됐으나 6.25를 전후해서는 빨치산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평화의 땅으로 말끔한 모습의 세석대피소가 들어서 있으며

세석대피소은 1996년에 건립되어 2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한국최대의 대피소이며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의 광할한 고산지대의 넓은 평야는

과거에는 작은 돌밖에 없는 토양지대라 해서 잔돌고원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바꾸어 세석평원이라 부르고 있다

 

 

 

 

영신봉 이정목을 중심으로 동서로 지리산 종주길이 열려 있고

경방기간이라 국공파의 눈에 보일세라

우측으로영신봉 정상을 바라만보고 낙남정맥의 무사산행을 빌어야 했다

 

 

 

 

낙남정맥은 지리산 능선상의 가장 신령스럽다는 영신봉에서 시작해

경남땅의 수려한 봉우리들을 두루거치고

낙동강하구 고암나룻터에서 꼬리를 담그는 도상거리 232Km에 달하는 낙남정맥의 첫발을 내딛는다

 

 

 

 

영신봉(靈神峰, 1.651m)은 산 이름 자체가 신을 맞이하는 봉우리라는 뜻으로

제단은 마련되어 있지 않지만 지리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며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들 중 가장 영험한 기운이 모였다해서 영신봉이라 불리우고 있다

 

 

 

 

울타리를 넘어서면 남부능선의 산줄기가 파노라마처럼 한 눈에 들어온다

지리산은 웅대한 기상을 상징하고 있으며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거칠것없는 조망이 장엄하기 이를데 없이 경이롭다

 

 

 

 

산죽은 아침햇살에 투영되어 오늘따라 아름답게 느껴진다

영신봉에서 음양수까지는 출입통제구역이라서~

세석대피소쪽으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본의 아니게 범법자가되어 도망치듯 내려가고 있다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자살바위와 건너편은 창불대(唱佛臺)풍경이다

아래로는 빨치산 비극의 현장 대성골이며

창불(唱佛)은 예불에서 오분향례를 염송하거나 부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뜻하니 정진함을 뜻한다

 

 

 

 

자살바위는 훗날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빨치산 여성대원들이 국군에 포위되자

이곳 자살바위에 올라 대성계곡 방향으로 몸을 날려

생을 마감 했다는 한국 근대사의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자살바위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웅장한 바위군과 까마득한 바위벼랑들!

자살바위 아래의 병풍바위다

깍아지른 절벽에 구상나무 등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저물녘에 창불대(唱佛臺)를 올라가 보니, 깎아지른 절벽이 하도 높아서 그 아래로는 밑이 보이지 않았고

그 위에는 초목은 없고 다만 철쭉 두어 떨기와 영양(羚羊)의 똥만이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서 두원곶(荳原串), 여수곶(麗水串), 섬진강(蟾津江)의 굽이굽이를 내려다보니

산과 바다가 맞닿아 더 기관(奇觀)이었다, <출처 :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 中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지리산의 유명한 기도터 중의 하나라고 한다

우리의 안전 산행을 위하여

외롭고 힘들때 산에 오르더라도 따뜻하게 안아주길 빌어보았다

 

 

 

 

일제강정기 때 정신대를 피해 지리산에 숨어 살았던 여성들!

6.25당시 정절을 지키려 피신한 처녀들!

정절을 유린 당하느니 당시 유교관념의  수많은 돌탑들이 우리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세석고원을 청학동이라 믿고 몰려든 비결장들이 만들논 청학연못을 비롯한 세석주변에는 "제단터"가 많이 있다

세석고원에 거주했던 비결장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산 아래 거림 지역이나 백무동의 지역민들 중 그들을

기억하는 후손들까지 있기 때문에 쉽게 들을 수 있고, 또한 옛날 선비들의 지리산 산행기에서도 접할 수 있다

 

그 들은 주로 세석의 음양수 부근과 청학연못 주변에 모여 살면서 음양수 부근을 적석동(積石洞) 또는 청학연못

부근을 미금동(美禽洞)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세석고원의 주변 골짜기들인 삼밭골(작은샛골), 대성골, 수곡골

도장골, 덕평골, 등에도 거주하는 비결장들의 가구 수가 일제강정기 때만 해도 일백여호가 넘었다고 한다

 

비결장들이 세석을 청학동이라고 믿고 찾아 든 직접적인 이유는 잦은 병란과 현세의 빈곤 등을 피하는 것이었으나

이 모든 이유들은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후손의 번영"을 위해서이다, 당시 청학동은

대물림 받은 가난과 또는 자신의 실패로 인해서 쇠락한 가문을 일으킬 희망이 자기

당대에서는 전혀 없었기에 다음 대에서는 꼭 한번이라도 "가문의 영광"을 맛보고 싶은 자들의 이상향이었다고 한다

 

 

 

 

너무도 장엄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금수강산이다

신선(神仙)이 따로 있겠는가~

창불대를 내려서면 너럭바위에서 가야할 남부능선의 선경이 펼쳐진다

 

 

 

 

우측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마치 용이 꿈틀대듯이 웅장하다

오늘따라 반야의 엉덩이는 더욱 이쁘게 보이고

노고단에서 만복대로 이어지는 백두의 산줄기가 지리산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지리를 사랑한 나머지 일본유학까지 다녀온 인재가 처자식을 내팽겨치고 20대의 젊은 나이에

초막 하나짓고 평생을 지리를 지키다, 홀연히 사라진 전설의 인물

우천 허만수가 좌선대를 만들어 도를 닦았던 곳이라고 한다<그의 추념비는 중산리 법계교에>

 

또한 전설적인 여성 빨치산 김점분외 14명이 1953년 쫓기다가 최후를 마쳤다는 반란의 역사 격전지다

남부군 몰락 후 토벌대 포위망에서 피할곳이 없게되자 음양수 주변에서 김점분이 이끌던

여성 남부군들은 권총으로 자결하였는데 그녀들의 애달픈 넋을 달래 주려고 쌓은 제단이라고도 전해진다

 

 

 

 

음양수(陰陽水)는 음양수제단이 설치된 바위 아래에 있는 석천(石泉)으로

햇볕이 드는 쪽이 양수(陽水), 그늘진 곳이 음수(陰水)라 하며

두 줄기 물이 음양화합이 되듯 자식없는 사람이 이 물을 마시면 아이를 낳는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사랑하는 여인의 전설이 깃든 음양수샘>

아득한 옛날 지리산에는 호야와 영신이란 남녀 뿐. 세석평전에 초막을 짓고 나무 열매를 먹으며 살고 있었다.

원앙처럼 금슬이 좋았던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하루는 호야가 다래를 따러간 사이에 반달곰이 영신에게 음양수 샘물을 마시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 알려주었다

영신은 곧바로 음양샘으로 달려가서 음양수 샘물을 마셨다

그러나 곰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호랑이, 그 사실을 지리산 산신령께 고해 바쳤다

산신령은 천기를 발설한 곰을 토굴에 가두고, 호랑이는 그 공으로 백수의 왕이 되도록 했다

산신령은 샘물을 몰래 마신 영신에게 무거운 벌을 내려 철쭉이 빨갛게 물들 때까지 세석평전 철쭉을 가꾸도록 했다

영신은 낮에는 철쭉을 가꾸고 밤에는 촛대봉 정상에 올라가 촛불을 켜놓고

산신령께 자기의 죄를 빌다가 바위가 되었다, 촛대봉의 앉은 바위는 영신의 몸이 굳어진 모습이라 전해온다

한편,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영신을 찾아나선 호야. 영신이 촛대봉의

바위로 변한 사실도 모르고 헤메이다 결국, 그리움에 지쳐 호야가 바위로 변한 자리가 호야봉(지금의 영신봉이다)

 

 

 

 

음양수샘을 내려오면 옛날 민가가 살았던 흔적인 돌확이 길가에 있었다

돌확은 옛날에 고추와 보리쌀을 갈았던 돌절구이며

음양수부근에 물이 풍부하고 평탄해서 60년대만 해도 10여가구의 화전민들이 살았다고 한다

 

 

 

 

남부능선은 영신봉에서 삼신봉까지 유순하게 보이지만

큰 오름과 내림은 없지만  쉽지 않으며

주능선이 바위가 많은 지대로 우회하여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여야 한다

 

 

 

 

전망바위에서 뒤돌아본 영신봉에서 지나온 능선길

푸른 하늘아래 펼쳐진 산하가 아름답고

영신봉과 촛대봉의 아픈역사의 상흔은 사라지고 세석평전이 평화롭게 보인다

 

 

 

 

음양수의 전설 호야와 연진이 돌이되어 사랑을 나누는 모습같다

일명:사랑바위 또는 입맞춤바위라고 해야할까?

사랑을 이루지 못한 호야와 연진의 한이 돌이되어 이 세상에 나타나것이 아닐까

 

 

 

 

우측으로 대성(大成)골의 의신마을로 내려가는 삼거리다

백야전(白野戰) 전투사령부가 있었던곳!

토벌작전으로 수백명의 빨치산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피의 골짜기이다

 

 

 

 

지리산 남부능선은 이념갈등의 비극적 상흔은 근대사의 아품과 애환이 곳곳에 서려있는 곳이다

1951년 12월 2천여명에 이르는 이영회부대의 빨치산들이 군경토벌대의 막강한

화력에 밀려 수많은 사장자를 내고 숨어 들어간 골짜기에 그 이듬해인1월 마지막

토벌작전을 위해 화력공세가 10여일 동안 퍼부어진 곳도 이 능선 좌우의 거림골과 대성골이었다

 

 

 

 

남부군 사령관이었던 이현상 역시 부근의 지계곡인 빗점골에서 최후를 맞았으며

망실공비 정순덕이 겨우 목숨을 부지해 최후의 빨치산으로 남게 된 곳도

이쪽의 거림골이었으며 그래서 남부능선은 가슴으로 걸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지리산 남부능선의 명물 석문(石門)이다

자연적으로 생긴 문으로 삼신봉에서

지리산으로 가는 관문(關門)이라 생각하면 좋을 듯!

 

 

 

 

호야는 영신봉이 되었고 연진은 촛대봉이 되었다는 음양샘의 슬픈 전설을 가진 두 봉우리

오른쪽에 시루봉은 마치 중절모를 쓰고 그 들을 바라보고 있는듯하다

세석고원의 철쭉꽃이 유별나게 많고 아름다운 것은 호야와 연진의 슬픈 넋이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면으로 가야할 정맥길인 유장한 남부능선이 펼쳐져 있고 삼신봉이 도열해 있다

삼신봉을 중심으로 좌측으로 낙남정맥이 흘러가고 남부능선은

내삼신봉을 지나 형제봉, 신선봉을 거쳐 하동의 악양 평사리 섬진강에서 그 맥을 다한다

 

 

 

 

<전망바위에서 자빠진골 아래로 거림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정순덕-마지막 여자 빨치산(남편을 찾아 빨치산이 되 여인) 엄청난 화력공세를

폈음에도 불구하고 망실공비(亡失共匪) 정순덕이 산비탈을 넘어가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최후의 빨치산으로 남게 된 계기가 된곳이 거림골이라 한다

 

1933년 6월 경남 산청 출생 1951년 1월 빨치산 정석조와 결혼한후 본인도 빨치산에 입산

1963년 11월 체포된 후 대구, 공주, 대전교도소에서 모두 23년간 복역 

1985년 8월 비전향 장기수 공동체인 서울 봉천동 낙성대 "만남의 집"에 정착

1999년 3월 뇌출혈로 쓰러진 후 인천 나사렛 한방병원에서

투병생활, 2000년 9월 북송을 요구 했으나 제외되었고 2004년 4월 1일 사망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데올로기의 상처가 남아 있는곳

모순된 역사와 낡은 이데올로기가 빛은 참상

그로 인해 비참하게 목숨을 잃고 떠도는 영혼들의 한을 세월이 흘러가도 달래줄 사람은 없다

 

 

 

 

남부능선의 산죽과 함께하는길 1246m봉에 올라선다

남부능선의 중간지점으로 보여지며

촛대봉에 가려졌던 제왕적인 면모를 갖춘 천왕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남부능선의 참상을 공부하면서 산죽을 벗삼아 걷다보면

이제는 지나온길이 더 멀게 느껴지고

어느듯 묵은 헬기장(1237m봉)에 도착하니 좌측에 긴급재난 비상이동전화 안테나가 있다

 

 

 

 

헬기장을 내려서면 매끈하게 정리된 조릿대구간을 지난다

반세기 세월속에 묻어버린 역사의 현장

아침 이슬처럼 흔적없이 사라진 그들이 목숨을 받쳐가면서 지키려한것은 무엇이었을까?

 

 

 

 

편안한 발걸음으로 남부능선의 오아시스 한벗샘이 있는 안부에 도착한다

좌측으로 한벗샘가는길은 아예 목책으로 막아두었고

한벗샘은 자빠진골(엎어진 뜰)의 광활한 계곡의 수려한 경관을 만들어낸 발원지이다

 

 

 

 

한벗샘 안부를 벗어나 암봉을 오르면 삼신봉이겠지~  하면 아니다~

가까이 보이면서도 삼신봉은 애간장을 태우고

오래전 대형산불이 발생하여 죽은 고사목이 많은 곳이며   우측 뾰족한 봉우리를 넘어야 삼신봉이다

 

 

 

 

"지리산이 보고싶다면 삼신봉에 오르라"라는 말이 있다

만고강산 유람할제 삼신산이 어디메뇨!

적적한 산길에서 우리의 숨소리만 헉헉 할 뿐!  삼신봉은 좀체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지리산은 예로부터 삼신산(三神山) 중의 하나로 불려왔던 곳이며

지리산에 신(神)을 상징하는 봉우리가 셋이 있는데

남북으로 삼각을 이루고 있는 봉우리로 내삼신봉, 외삼신봉, 그리고 세석고원 서쪽의 영신봉이다

 

 

 

 

삼신봉에 올라 남부능선에서 뜨거운 피를 품으며 숨져간 영혼들에게 명복을 빌어본다

하나의 목숨을 버리면서 지키려햇던 궁극적인 꿈은 무엇이었을까?

미래의 역사에 그 서러움을 묻어야 할 영혼들이여!  이젠 통곡에 한을 지리산의 품속에 남기고 고이 잠드소서!

 

 

 

 

삼신봉(三神峯, 1.284m)은 어머니의 품처럼 지리산 자락에 흩어진 수십 봉우리 중의 하나로

영신봉에서 낙남정맥을 따라 남쪽으로 뻗어내린 남부능선상에 있으며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는 전망대로서 가치를 가질뿐만 아니라 남해바다의 일망무제의 확 트인 조망을 안겨준다

 

 

 

 

갑자기 몰려드는 안개와 구름때문에 주변이 몽환적인 분위로 바뀌면서

지리산 천황봉을 볼 수 없는 순간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몽환적인 분위기속에 장막의 산들이 파도를 치는 풍경이 마냥 황홀하였다

 

 

 

 

삼신봉은 진시황제가 오래살아 볼라꼬 불로초을 구하러 여기까지 사람을 보냈다는 전설이 있고

우측에 거대한 암봉으로 이루어진 내삼신봉은 신선대라 불리기도 하며

신선대를 지나면 자물쇠처럼 얹혀 있는 모양의 바위를 "쇠통바위"라고 하는데

청학동 마을에 있는 열쇠처럼 생긴 바위로 이 쇠통바위를 열어야만 천지개벽과 함께 새로운 천국이 열린다고 한다

 

 

 

 

삼신봉에서 지리산 장막의 산과 바다를 가슴에 담고 하산한다

이곳에서 외삼신봉은 좌측 청학동 방향이며

우측은 내삼신봉을 거쳐 성불재를 지나 북일폭포와 쌍계사로 가는 방향이다

 

 

 

 

갓걸이재에서 오른쪽은 청학동으로 가는 방향이며

고운동재까지는 출입금지구역으로

직진방향에 나무울타리에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을 넘어서 진행한다

 

 

 

 

산죽 사이로 난 길을 헤치고 올라가면 곰 모양의 바위가 있다

순간적으로 쳐다보면 곰으로 착각할 수 있으며

하지만 곰은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곰이 출현할 염려가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

 

 

 

 

외삼신봉(1.288m)은 지리산 주능선을 지척에서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봉우리다

천왕봉은 역시 제왕의 면모를 뽐내며 구름에 가리어 있고, 남쪽으로는

사천의 와룡산, 남해의 금산, 서쪽으로는 광양의 백운산, 발아래는 청학동을 품고 있다

 

 

 

 

산을 좋아하면서 지리산 능선을 일년에 한번쯤은 오르기를 몇 차례 하였던가

올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새롭고 가슴이 벅차다, 천왕봉에 걸친

저 구름이 바람에 모습을 드러낼까봐 소찬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한참을 머무른다

 

 

 

 

외삼신봉은 낙남정맥 종주가 아니면은 쉽사리 오지 못하는 곳이다

남부능선 끝자락에  우뚝솟은 외삼신봉 사방팔방 광할하게

펼쳐지는 산줄기의 파노라마에 벅찬 감동으로 영원한 추억을 남긴다

 

 

 

 

발아래 청학동(靑鶴洞)은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 있는 마을이다

도인촌(道人村) 또는 청학동이라 불리며, 조선시대 수많은 묵객들이

찾아 입산 은거하였던 살기 좋은 곳으로, 청학동은 신선이 학을 타고

노닐던 지상선경이라 하여 중국의 무릉도원과 같이 천하명소로 일컷는 곳이다

 

 

 

 

악양으로 흘러내린 형제봉 능선과 남해바다의  탁트인 조망이 일망무제이다

천왕봉은 육지의 제왕답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외삼신봉에서

지리산의 주능선을 한번더 가슴에 안고 영원히 잊지못할 감동적인 추억을 뒤로한다

 

 

 

 

외삼신봉을 내려서면 한군데 급피탈 암릉 릿지구간이 위험한 곳이다

여성산악인들에는 매우 버거운 난코스인데, 고약한 청솔모같은

국공파들이 생명줄(밧줄)을 짤라버려 실타래같은 밧줄을 부여잡고 힘겹게 내려선다

 

 

 

 

정맥꾼들이 걸어논 생명줄(밧줄)을 잘라버린 국공파들이 원망스럽기만하다

민족의 기상과 얼을 함양하고 끊어진 국토를 잇고 우리강산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지리를 공부하러 왔는데 생명줄을 짤라 위험천만하게 만들어 놓다니~^^

 

 

 

 

출입금지구역이라 고운동재까지는 산죽이 쪄들어서 한발짜욱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최고의 악명높은 공포의 산죽밭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운동재까지는 베낭에 불필요한 부착물은 떼어내고 썬그라스와 얼굴보호대를 꼭 준비하시길~

 

 

 

 

산죽(조릿대)은 5년에 한번 꽃을 피우며 백년만에 꽃을 피는것도 있다

꽃을 핀 산죽을 모죽(母竹)이라하며

새로 생기는 어린순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며 생을 마감한다

성질은 매우차고 달며 간열을 풀고 유황성분 때문에 몸의 독을 풀고 신경을 안정시킨다

 

1, 고혈암, 동맥경화 등 혈압을 내려주는 효과가 있고

2, 심장을 튼튼히 하고 당뇨의 혈당치를 내려준다

3, 감기나 몸살등으로 고생을할 때 열을 내려주며 면역력을 강화하고 신경을 안정시켜준다

4, 위염, 장염, 간염에 아주좋은 효과가 있으며

5, 항암작용이 강하며 산성체실을 알카리성 체질로 바꾸어주며

(물2리터에 산죽잎 20g을 약한불에 2시간 정도 달여서 복용한다)

 

 

 

 

외삼신봉 릿지구간을 내려서면 산죽밭과 그야말로 전쟁을 치른다

또한 내림길은 낙엽속에 급비탈이라 엄청 위험하고

가야할 길조차 보이지 않은데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환장하고 미칠지경이다

 

 

 

 

청학동갈림길에서 묵계치는 거리상은 얼마되지 않지만 산죽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도 널찍한 너럭바위에서 천왕봉에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뒷다리 근육이 뻐져근하도록 쉼없이 고도를 낮추는데도 묵계치는 천당과 지옥을 오가면서 나타난다

 

 

 

 

신이시여!  우리에게 왜 이런 시련을  2시간을 산죽과 싸우다 묵계치에 도착한다

헬기장인 묵계치는 산죽으로 뒤덮혀 한치앞도 볼 수 없으며

묵계치 아래로는 하동군 청암면과 산청군 시천면을 연결하는 삼신봉터널로 1047번지방도가 지나간다

 

 

 

 

묵계치를 지나면 991m봉 오름길은 그야말로 공포의 산죽터널길이다

V형의 가파른 오름길에 산죽이 뒤덮혀 있고

산죽으로 얼굴을 얼마나 맞았는지 얼얼하고 얼굴은 긁히어 정신을 못차리는 정글속이다

 

 

 

 

991m봉은 형채를 볼수가 없을정도로 산죽이 뒤덮혀 꼭지점을 알 수가 없었다

베낭 옆주머니에 허술하게 꽂아놓은 물건은 내것이 아니며

바짝마른 산죽가지가 얼굴을 할퀴고, 옆에서는 배낭을 붙들고 3시간 넘게 산죽과 사투를 벌여왔다

 

 

 

 

991m봉 꼭지점에서 우측으로 반쯤 내려서면 숲속모드로 바뀐다

우리가 무슨 개선장군처럼 자랑스럽게 느껴쪘으며

이런곳이 천당인가 싶고 "하느님"감사합니다 그리고 "부처님"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나이다

 

 

 

 

평온하고 순탄한 활엽수의 낙엽길 따라 내려서면 철조망이 막아서면

철조망 우측으로 돌아서 고운동재에 도착한다

경방기간에 오늘하루 산길을 열어주시고 공포의 산죽터널을 무사하게 헤쳐올 수 있어 감사한다

 

 

 

 

고운동재는 하동군 청암면에서 산천군 시천면 고운동마을 잇는 고개이다

철조망에는 국립공원에서 입산금지, 벌금이 어쩌고, 저쩌고~

고운동이라는 한글 어감은 곱디고운 느낌이지만,  한자로는

고운(孤雲) 즉 외롭게 떠도는 구름이라는 최치원 선생의 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경주 최씨의 시조인 최치원은 신라말기 정치에 회의를 느끼고 은퇴를 한 문장가이다

지리산에는 그와 관련된 지명이 많이 있으며, 가야산에 있는

해인사에서 죽었다는 설도 있고 이곳의 고운동에서 죽어 산신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지리산 남부능선을 타고 가면서 삼신봉과 외삼신봉에서의 조망은 우리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또한 창불대의 신비로움과 자살바위의 가슴아픈 사연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으며

역사적인 애환을 간직하고 있는 빨치산 격전지의 남부능선은 잊지못할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5 : 50 ~ 16 : 40  (10시간 50분)      ◎ 날씨 : 아주, 맑음

 

 

Amazing Grace - Melinda Dumitresc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