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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낙남정맥(완주)

낙남정맥 제3구간(백토재-솔티고개) 종주산행

낙남정맥 제3구간(백토재 - 옥정봉 - 솔티고개)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4년         12월         22일         (월요일)

◎ 산행위치 :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옥종면 / 사천시 곤명면, 곤양면 / 진주시 내동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백토재(1005번지방도) - 안골고개 - 237m봉(감티봉) - 244m봉(옥정봉) - 마곡고개

                      원전고개 - 239m봉(산성산) - 234.9m(사립봉) - 딱밭골재(18번지방도)

                      205m봉(별악산) - 선덜재(1001번지방도) - 내동공원묘지 - 솔티(덕천)고개(2번국도)

 

◎ 산행거리 : 백토재(1005번지방도) ~ 2.5Km ~ 안남골재 ~ 2.8Km ~ 옥정봉 ~ 2.4Km 

                      마곡고개 ~ 1.9Km ~ 원전고개 ~ 4.6Km ~ 246봉 ~ 0.6K

                      사립봉 ~ 2.3Km ~ 딱밭골재 ~ 3.2Km ~ 선덜재 ~ 4.5Km ~ 솔티고개(2번국도) 

                      도보거리   =   약 24.8Km           실제도보거리   =   약 25.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6 : 20 ~ 14 : 30  (08시간 10분)      ◎ 날씨 : 아주, 맑음

 

            ◐ 남부 해안지방의 내륙의 문화권를 가로지르는 낙남정맥(落南正脈)이란?

낙남정맥(落南正脈)은 낙동강 남쪽에 위치한 정맥으로,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끝나는 지리산의 영신봉에서

동남쪽으로 흘러 북쪽으로 남강의 진주와 남쪽의 하동·사천 사이로 이어져, 동쪽으로 마산, 창원 등지의 높이 300∼800m의

높고 낮은 산으로 연결되어 김해의 분성산(360m)을 지나 낙동강 하류에서 그 맥을 다하는 총도상거리 약 232Km의 산줄기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 낙남정맥 3구간(백토재~솔티(덕천)고개) 구글형지도 *****

 

 

 

 

 

 

백토재는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하면서 이 길을 지났다고 하여 산경표상에 황치(黃峙)로

대동여지도에는 황령(黃嶺)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도로 좌측편에 자연석으로

"고향옥종(故鄕玉宗)"이란 표시석이 세워졌고 있고 우측 도로변에 낙남정맥 안내도가 있다

 

 

 

 

오른쪽에 하동군 북천면 방향으로는 "지리산요양원"이 자리하고 있고

옆쪽으로 고령토 집하장 (주)범우 라는 공장이 있으며

백토재는 하동군 북천면과 옥종면을 넘어가는 고개로 1005번지방도가 지나간다

 

 

 

 

새벽에 차를 몰아 다섯시에 도착하여 지리산요양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산행 준비 후 옥산으로 향하는 이정표를 담아본다

새벽 차가운 삭풍은 산행을 시작도 하기전에 몸속으로 파고들며 산객의 마음을 작게 만들었다

 

 

 

 

밤 하늘의 별은 초롱초롱하고 쏟아질 듯 하늘 가득하다

음력으로 11월 22일 동짓날 새벽이며

솔티고개까지 다소 멀지만 큰 오름이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산정에 오른다

 

 

 

 

어제 전국적으로 눈이 많이 와서 걱정을 하였는데

눈도 없고 산행하기 좋은 날이다

하지만 막상 길을 나서니 밤바람이 두려움과 걱정을 동반하는 시간이다

 

 

 

 

칠흙같은 어두움속에서도 우측으로 마을 불빛이 눈에 들어오고

임도 좌측 묘지에서 산속으로 접어든다

오늘도 자연과 함께 친구가 되어 지나온 세상을 돌아보는 시간이길 바래본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했던 낙남정맥길은 하동땅을 지나간다

사천시로 접어들면서 급격히 꼬리를 내리고 200m급의

산봉들이 고작인 미약한 산줄기의 정맥길을 이어가는 구간이다

 

 

 

 

어두움속에서 임도와 산길을 반복적으로 이어지고

나즈막한 야산이고 밤나무단지라서

산행지도의 어디쯤인지 구분도 잘 안되지만 시그널이 밤길을 밝힌다

 

 

 

 

등산로 옆으로 임도가 유혹하면서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시그널만 잘 찾아가면 어려움이 없으며

지금까지 작은 봉우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정맥길에 충실하며 걸어온 우리다

 

 

 

 

낙남정맥에서 자주 지나가야 할 과수원 구간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과수원단지를 만나게 되겠지만

낮은 구릉지대에서 정맥길을 잘 찾아가는 묘미에 큰 의미를 두고자 한다

 

 

 

 

서서히 어둠이 가시고 가야할 능선이 뚜렸해진다

포장도로가 지나가는 안부를 지나고

마을이 깨어나면서 개짖는 소리와 소 울음 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안남골고개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앞에 보이는 산으로 향한다

등로 우측으로 안남골 마을이 있고 어두움을 헤치고

진행하니 여명이 밝아오고 여명의 빛을 받아 발걸음이 빨라진다

 

 

 

 

안남골고개를 지나와서 뒤돌아보니 지난번 구간의 옥산과 천왕산이 보인다

발아래 지나온 안남골재는 구분이 잘 안되지만

좌측에 북천면의 안남골과 우측으로 곤명면의 음달을 잇는 고개이며

음달은 은사리의 한 부락이지만 마을 부근의 큰태봉산은 세종대왕의 태실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세종대왕 태실(지)

조선 초 세종 즉위 년(1418년) 11월 5일 곤명현(昆明縣) 20리 북쪽 소곡산(所谷山, 지금의 은사리 큰태봉산)에는

전국에서 가장 좋은 길지(吉地)라 하여 임금(세종)의 태를 이곳에 안치하였다,태실(胎室)이란 왕자나 공주의

태를 안치한 장소이다, 왕가에서 왕자나 공주가 태어나면 한 치레(일주일)안에 좋은 날을 잡고 태를 씻어

백자 항아리에 넣고 백자 항아리를 다시 큰 항아리에 담는다, 항아리 사이의 공간에는 영사와 솜을

채운 후 밀랍을 녹여서 바른다 그 후 풍수지리에 밝은 관리를 각처에 보내어 명당터를 잡은 후 그 곳에 안치한다

 

 

 

 

완만한 등로를 타고 내려오면 조경재배단지의 포장된 임도를 따라 237m봉을 오른다

좌측에 은사리는 사인(士人)들이 은거(隱居)하여 여생을 보낸 곳이며

또한 난(亂)이 일어났을 때 선비들이 이곳에서 숨어 살았다 하여 은사동(隱士洞)이라 불렀다 한다

 

 

 

 

조경재배단지 넘어로 아침이 깨어나면서 마을이 평화롭게 보인다

하동군 북천면의 면소재지의 풍경이며

봉명산과 이명산은 이 지역에서는 고봉이며 다솔사(多率寺)를 기점으로 많은 산행을 한다

 

 

 

 

삼거리갈림길에서 차량 차단막이 쳐져 있는 곳을 지난다

포장도로 끝머리서 237m봉을 오르며

봉우리 좌측으로 아침햇살이 파고들면서 추위에 움추렸던 몸이 풀리기 시작한다

 

 

 

 

오름길에 시야가 확 트이는 곳에서 잠시 머물면서 환상의 풍경에 취해본다

옥산과 천왕봉은 아직도 당당해 보이지만

어머니 품속같은 지리산 천왕봉은 구름에 가리운채 더욱 영적인 산으로 만들고 있다

 

 

 

 

지형도상 감티봉(237m)은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감티봉이란 이름표를 달았는데

지명에 대한 명칭은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감티봉(237m)은 수풀속에 삼각점이 박혀 있고

마루금은 왼쪽으로 진행하며

자칫 생각없이 직진하면 알바하기 쉬운 곳이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산판도로 가운데서 아침해가 빨갛게 떠오르지만

산줄기와 나무들로 가려져 있어

오늘 일출은 만나지도 못하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옥녀봉을 오른다

 

 

 

 

옥정봉(244m)은 오늘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지만 뒷동산 같은 느낌이다

역시 지형도상에는 없는 봉우리 명칭이며

아랫마을 옥정리에서 따온 이름이 아닐까 생각하며 표시판을 달아준 산악회에 감사한다

 

 

 

 

옥정봉까지는 북천면과 곤명면의 면계(面界)를 따라 왔는데

북천면을 떠나 보내고 온전한 곤명면으로 들어선다

또한 산판도로를 만나면 좌측으로 진행하다가 능선에서 우측 산으로 접어든다

 

 

 

 

선명한 임도삼거리 갈림길에서 좌측 넓은 임도를 따라 한동안 진행한다

오늘 구간은 철로와 도로에 끊기고, 농장과 묘지

그리고 친환경 운운하면서 그야말로 온 천지가 낙남정맥의 마루금이 파헤쳐져 있다

 

 

 

 

넓은 임도를 따라오면 시그널이 없어 에매하지만

조금 진행하면 묵밭이 나타나고

임도가 우측으로 휘어진 지점에서 마루금은 산으로 접어든다

 

 

 

 

유슌한 산길에 피톤치드를 마시며 편안한 산행이 이어진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진행하다보면

좌측으로 지도상의 송전탑(57번)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다

 

 

 

 

특색이 없는 155m봉은 마곡(麻谷)의 동명내력은 뒷산이 "매봉산(梅峯山)"이고

응실형국(應室形局)으로서 "매실"이 "마실"로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155봉을 매봉산이라 부르고 있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완만한 등로를 타고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흐릿하게 마곡고개가 보이고

고갯마루로 이어지는 58번지방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가파른 등로를 타고 내려서는 마곡고개(밤고개)는 사천시 곤명면 마곡리와 봉계리를 잇는 고갯길이며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때 명군(明軍) 제독(提督) 마귀(麻貴)가 우리 의용군과 연합하여

왜군(倭軍)을 격퇴하였으며 마귀(麻貴)의 성(姓)을 따서 마곡(馬谷)이라 하고

또한 갈마 음수정이 들 가운데 있었음으로 마곡이라고 하다가 구한말 때 마곡으로 개칭하였다

봉계리(鳳鷄里)의 유래는 앞산의 봉알자리(飛鳳包卵)와 초량천(草梁川)의 내가 흐르고 있으므로 봉계라 부른다

 

 

 

 

원전고개 방향 들머리에 낙남정맥 이정표도 있다

사천시에서 관심이 있어서 좋은데

이정표의 거리 표시가 모두다 엉터리라서 참고로만 보아야 할 것이다

 

 

 

 

선답자들이 이곳에서 제일 알바를 많이 하는 구간이다

지금은 나무토막으로 막아 두었으며

우측으로는 밤나무단지를 지나게 되는데 농장 주인이 능선 우측 사면으로 길을 만들어 놓았다

 

 

 

 

밤나무단지에서 정맥길은 우측 사면으로 유도(誘道)되어 있었다

과수원 주인이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은 좋았는데

시그널을 호치키스로 나무에 찍어 놓아서 아파하는 나무를 생각할 때 보기가 안 좋았다

 

 

 

 

밤나무단지를 벗어나면 소나무 향기속으로 한참을 걸어간다

엇그제 시작했던 한해가 져물어가고

오늘 산행이 마지막이 될런지 모르겠지만 한해를 뒤돌아보는 발걸음이다

 

 

 

 

거리표시가 제멋대로 표기되어 있어 산객들에게 햇깔리는 이정표다

사천-진주 구간은 산이 낮고 이름 없는 봉우리가 많아서

정맥이란 개념이 실감 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수계(水系)만은 확실하여 정맥의 개념으로 산줄기를 따라 가는 것이다

 

 

 

 

공사장 건축자재가 쌓여있는 넓은 공터를 가로질러

폐가 한채 좌측 임도를 따라가면

우측으로 2번국도가 지나가면서 곤양IC 교차로 교통표지판이 보인다

 

 

 

 

<알바주의지점에서 좌측 능선을 타고가면 명신레미콘 쪽으로 내려오게 된다>

좌측에 송림(松林)마을은 송비산(松飛山) 기슭이 되므로 송림이라고도 하고 흑룡은 이여송(利如松)이니

병화불침의 십승지처라는 구절의 송(松)자와 당시 정파의 극한의 대립과 잇단 사화(士禍)로

뜻있는 선비가 한적한 임천(林泉)을 찾아 운둔하는 시대였음으로 "임(林)"자를 넣어 송림으로 지칭한 것이라 본다

 

 

 

 

경남 사천시 곤명면 송림리(松林里)에는 2번국도와 경전선((慶全線)이 지나고

도로와 철길, 과수원 등으로 마루금은 흔적조차도 없다

산꾼들이 길을 찾지 못하고 알바하기 좋은 곳이지만 선답자들이 걸어둔 시그널로 길을 찾을 수 밖에 없다

 

 

 

 

등산안내도에서 우측으로 경전선 아래 굴다리를 통과하여 건너편 201m봉을 오른다

2번국도와 경전선이 있는 이곳을 원전고개라 부르며

경전선(慶全線)은 진주와 순천을 잇는 철로로 경상도와 전라도의 첫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원전(院田)은 조선조 때 완사역에 딸린 봉계원(여관)이 있었으므로 원골 또는 봉계원,봉계라 하였다

일명 완사에서 15리의 거리에 있는 원이라 하여 십오리원(十五里院)이라고도 하며

충무공 난중일기(亂中日記)에 백의종군(白衣從軍)으로 삼가(三嘉)에서 노량(露梁)쪽으로

행여(行旅)할 적에 수군패보(水軍敗報)를 들은 십오리원(十五里院)이란 곳이 오늘의 원전(院田)이다

 

 

 

 

굴다리를 통과하면 선답자 시그널이 우측으로 오룡마을 쪽으로 안내를 한다

고약한 산꾼들은 곤양IC가 있는 교차로 교통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4차선국도와 경전선 철도를 무단횡단하여 오량마을

우측 능선으로 마루금을 이어가는 고집스런 선답자들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량도(五郞洞) 마을 입구에 정자(쉼터)가 있고 "추락위험! 도로끝" 표지판

우측으로 마을길 따라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오량동은 시랑(侍郞), 정랑(正郞), 좌랑(佐郞) 등

오랑(五郞)의 벼슬아치가 살았다하여 마을 이름을 오량동(五郞洞)으로 불렀다고 한다

 

 

 

 

마을길을 따라 능선에 올라서면 페축사 옆으로 감나무밭 사이로 오른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팥죽을 짓기 위해 군불을 때면

연기가 피어 오르면서 드리워졌던 추억을 떠 올리며 고향생각에 잠겨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산행지도에 표기된 헬기장을 지나면서 팥죽을 생각하니 오늘이 "동짓날"이다>

동지를 동지팥죽 먹는날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동짓날의 뜻은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원래 동지의 의미는 24절기의 하나로서 일년 중 밤이 가장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을 지칭하는 말이며

일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것은 "음"이 극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고

동짓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양"의 기운이 싹트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실상의 새해를 의미하는 날이 바로 동지라고 한다

이 이유 때문에 옛 사람들은 동지를 경사스러운 날로 여겨 "작은 설"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하네요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의 유래도 바로 동지를 "작은 설"이라 부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201m봉에서 올라서면 사립재까지 숲속을 지루하게 걸어야 한다

또한 우리가 모르는 동지의 재미있는 말은 동지는 날씨가

춥고 밤이 긴 날이기 때문에 호랑이가 교미한다고 해서 "호랑이가 장가 가는 날"이라고 한다

 

 

 

 

비록 우람하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소나무숲을 지난다

산악 마라톤을 할 수 있는 길이며

솔잎이 떨어져 푹신거리는 등로를 타고 상쾌한 하루를 열어가는 시간이 행복하다

 

 

 

 

하동정씨와 김해김씨묘앞에서 배낭을 내린다

따사로운 햇살에 몸을 맛긴채

소찬이지만 컵라면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다시 산중에 주인공이 된다

 

 

 

 

오늘은 시작부터 끝까지 임도와 산길을 숨박꼭질 한다

무엇이 친환경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뭐 때문에 얕으막한 산들을 도로를 만들어 허리를 잘라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

 

 

 

 

우측에 245.9m봉은 오늘 산행 중 가장 높은 봉우리이지만

정맥길은 좌측으로 살짝 비켜간다

체력이 허락한다면 삼각점을 확인하고 다녀오는 것도 괜찮겠지만 그냥 지나친다

 

 

 

 

고도가 낮은 관계로 수많은 묘지를 지나치게 되는데

잘 정돈된 진양정씨와 김해김씨묘지로

좌측으로 묘지를 관리하는 박스가 있고 잘 가꾸어진 동백나무 사이를 지나간다

 

 

 

 

잘 가꾸어진 묘지를 내려서면 사거리 임도를 가로질러서

직진방향의 능선길 임도따라 진행한다

지도상의 53번송전탑을 지나고 52송전탑 축대 우측으로 올라가보면 헬기장이 있다

 

 

 

 

능선 자락에 가선대부 곡부 공씨묘는 오래된 비석이라 글씨조차 희미하다

곡부는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중국 산동성의 지명으로

공자가 태어나고 사당이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혹시 고인은 공자의 후손이 아닐런지~

 

 

 

 

봉문은 볼품없지만 양지바른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 혹자가 보아도 명당이다

하동 금오산이 눈에 들어오면서 조망 또한 빼어나고 신백두대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금오산(849m)은 주변의 산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우뚝하다

 

 

 

 

산성산(239m)은 흙과 돌로 쌓은 작은 규모의 테메식 산성으로

선조들이 자연을 이용하여 쌓았던 성터의 모습이며

석장대라 불리기도 하는 산성으로 지금은 굴러다니는 돌만이 성터의 흔적을 말해준것 같다

 

 

 

 

울~ 몽실님 봉우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세심히 살핀다

혹시나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아닐까 해서~

겨울이지만 따사로운 햇살이 파고들면서 산행하기에는 최적의 날씨가 아닌가 싶어진다

 

 

 

 

제법 이마에 땀방울이 솟을쯤에 큰 바위가 나타난다

지도상의 224m봉으로 짐작되지만

조망도 트이지 않은 작은 무명봉을 오르내리며 지루한 산행이 이어진다

 

 

 

 

평이한 등로를 타고 한동안 콧노래를 부르며 진행을 해 본다

수풀속에 삼각점이 있었지만 어리둥절하다

사립재라 생각했었지만 지도상에 살펴 보아도 전혀 알 수 없는 고도의 봉우리다

 

 

 

 

사립재(仕立峙, 234.9m봉)로 추정되는 봉우리에 올라서니 삼각점에 누군가 사립봉으로 적어 놓았다

사립재는 진주(晋州) 산청(山淸) 등지에서 곤양(昆陽)으로 통하는 대로였으며

곤양의 동북방(東北方) 관문격(關門格)이라는 뜻에서 민가의 사립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고개이며

"사천시 문화원 자료에 따르면" 사립재는 봉우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봉우리를 사립봉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사립재는 봉우리를 지나고 내려서는 안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곧장 남동진 하던 마루금은

사립봉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며

솔티고개를 향하여 북동진 하면서 진주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넓은 임도에 내려서면 좌측 임도를 따라 계속 진행한다

가슴을 열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노라면

우측으로 나무가지 사이로 확 트이는 남해바다 사천만이 시야에 들어온다

 

 

 

 

갈라지는 임도삼거리가 나타나면 왼쪽으로 진행한다

좌측에 225m봉 오름길에 띠지가 걸려 있어

혹시나 하고 올라가 보았지만 그냥 넓은 임도를 타고 진행하는것이 무방하다

 

 

 

 

등로는 임도 우측의 능선으로 이어졌다가 다시 임도와 만나게 되고

임도 우측으로 숲속에 건물이 보이는데

진주 성광교회 사유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옆으로 쇠사슬이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난다

 

 

 

 

산판 임도는 딱밭골재까지 마루금과 숨박꼭질하면서 이어지고

우측 산길로 내려서야 하는데

어찌보면 능선으로 직진하는 임도길이 정맥길에 가까운 길인지도 모른다

 

 

 

 

안부를 지나서 완만한 경사를 올라서면  

곤명고개의 외딴집에 이르는데

인기척이 없는것으로 보아 일정 기간만 주거를 하는 농막 같기도 하다

 

 

 

 

외딴집에서 딱밭골재로 가는 길 주변에는 농장이라

그 사잇길 임도를 따라 진행한다

울타리에는 마가목이 붉은 열매를 가득 메달고 길손을 잡아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양지 바른 능선에서 조망이 시원하다 

좌측으로 사천시가 지척에 보이고

산의 형상이 거대한 용 한마리가 누워 있는 모습과 같다는 와룡산이 우뚝하다

 

 

 

 

농작물과 묘목을 재배한 비탈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길 좋은 평이한 임도를 따라 계속 진행한다

참으로 조용하고 아무 특징이 없는 구간을  콧노래 흥얼거리며 지나간다

 

 

 

 

산행지도상에 외딴집으로 표시된 지점에서 왼쪽 능선으로 진입한다

능선에 올라서면 우측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시그널과 길이 없어 조금 혼란스럽지만 조경수가 심어진 우측으로 내려서야 한다

 

 

 

 

딱밭골재에 내려서기전 예전에는 감나무밭으로 내려섰는데

주민과의 마찰이 있었던 관계로

우측으로 급경사 지대로 내려서 건너편 포장도로를 따라 205m봉을 오른다

 

 

 

 

급경사 지역을 내려서면 도로변에 철조망펜스가 길을 막아선다

딱밭골재는 사천시 곤양면과 흥사리 딱발골마을과

곤명면 작팔리 작팔마을을 잇는 고갯마루로 18번지방도가 지나가는 곳이다

 

 

 

 

유림(儒林)의 고장에서 산꾼들을 "개구멍"으로 통과시켜야 되겠는가

知天命의 나이에 점찬치 못하게 서리~

하지만 체면같은건 팽개친건 오래전이다~ 개구멍을 만든것은 산꾼들이 아닌가~

 

 

 

 

딱밭골재는 좌측 아래 동네 이름이 "딱밭"으로 닥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지를 만드는 재료인 닥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왕성하게 자랐으나

옛날 방식으로 수작업을 해야하는 고된 일때문에  수요도 제한적이어서  극히 일부 사람들만 만든다고 한다

 

주의사항 과수원쪽으로 올라가 205m봉을 오르게 되는데  오르는 길이 뚜렷하지 않으므로 잘 찾아서 올라가야 한다

 

 

 

 

감나무밭을 지나 편백나무 숲에서 좌측으로 시그널이 있었지만 올바른 마루금이 아니었으며

혹자가 생각하건데 우측 능선이 마루금이 아닐까 생각되며

별악산(205m)에 올라섰지만 가시밭으로 인해 삼각점은 찾지도 못하고

구분이 쉽지 않아 헤메이다가 시그널을 따라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면 억새 풀숲사이로 와룡산이 보인다

 

 

 

 

드디어 문제의 악덕농장주의 경고문 문구들이 나타난다

사냥개가 물여도 책임을 안진다는 ..등등

경고성 문구 코팅지를 따라 진행하면 고약한 농장주의 농막을 만나게 된다

 

 

 

 

낙남정맥꾼들에게 악명 높은 농장주란 닉네임이 붙은 민가 앞을 지난다

사냥개와 악덕 농장주는 조우하지 않았지만

좋은 집과 농장을 버리고 주인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문제의 민가 앞 마당을 지나면 직진 방향의 숲으로 들어선다

우측 출입문 방향에 임도가 지나고 있어

잠시 주위를 살펴보니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남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노송이 아름다운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올라서면 잘 정비된 묘지를 만난다

고려시대에 장군을 지냈다는 함안조씨 가족묘지로

묘지 중앙을 가로질러 내려가다가 좌측 밤나무단지 능선으로 붙여서 내려가야 한다

 

 

 

 

딱밭골재에서 우측으로 임도를 따라오면 조우하는 곳이다

우측 산속으로 접어 들어 183.5m봉을 오르며

마루금이 과수원이 되버린 농장을 정맥꾼들은 악착같이 고집하면서 길을 만들어 놓았다

 

 

 

 

몇 기의 울산 김씨의  무덤이 있는 183.5m봉을 지나고

능선에 올라서면 41번 송전탑이 있으며

진양호(晋陽湖)가 보이는것으로 보아 진주가 가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선들재(仙讀峙)는 사천시 곤명면 신흥리와 곤양면 흥사리 마을을 잇는 고개로

한창 생태이동통로 공사중으로 어수선 하였으며

선들재는 신선(神仙)들이 글을 읽었다고 해서 기인된 이름으로 1001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40번송전탑을 지나고 조망이 트이면서 억새가 무성한 공터에 도착한다

툭 터진 공간에 공원묘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지도상에는 나동공원으로 표시되었으나 공원 입구에는 내동공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중국 하남성에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간다는 북망산이 있는 도시가 바로 낙양이다

그 북쪽 십리 정도 되는 거리에 북망산(北邙山)이 있다

북망산 주변에는 옛날부터 도읍지인 탓으로 귀인. 명사들이 살았다

그래서 제왕이나 명사들의 무덤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죽으면 북망산천에 간다고 하였다

 

조선의 민요 <성주풀이>에 조선의 도시로 "낙양"이 나온다

낙양산 십리 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아!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내 인생도 한번 가면 저기 저 모양 될터인데......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호걸도 절세 미인도 죽으면 다 같은 모습으로 저 봉분 아래에 잠들어 있을 것을......

 

 

 

 

천주교 묘역인 성모마리아 상에 앞에서 묵도를 하고 능선길을 따라 진행한다

생은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뜬 구름이다

그러므로 별 것 아닌 일로 다투지 말고 서로 사랑하리라

앞이 시원하게 트이는 광활한 묘역! 죽어서도 조망이 필요한가~ 산 사람들이 필요한것이지~

 

 

 

 

공원묘지를 조성하면서 산을 깎는 작업을 하는데 190.5m봉의 삼각점이 문제 였다고 한다

필요치 않은것은 묻어버리거나 골짜기에 버리면 문제가 없는데

삼각점은 국가시설물이었기에 처치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봉우리 꼭대기에 삼각점을 나둔채 분위기를 살려 탑모양의 조형물화 하여 놓은 것이란다

 

 

 

 

돌탑모양의 190.5m봉을 넘어 시멘트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새로 조성해 놓은 넓은 잔디밭이 나타나고

성남교회 묘원 잔디밭을 가로질러 능선 우측으로 마루금이 연결되어 있다

 

 

 

 

겨울철이라 잡목과 가시덩굴이 없는 관계로 편안한 산행이다

187m봉을 오르면서 굴참나무가 주종이라~

낙엽이 가득 덮혀 있어 마치 가을산처럼 느껴지는 정맥길을 걸어간다

 

 

 

 

오늘의 마즈막 158m봉 가는 길은 한적한 오솔길로 바뀌었고

땀방울을 흘리는 체력적인 부담도 있었지만

날머리가 가까이 있기에 산악 마라톤 정도의 발걸음으로 달리듯 걸어간다

 

 

 

 

해발고도 158m봉은 악을 쓰고 올라가면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봉우리 직전에 우측으로 꺾어 진행하게 되는데

산행은 고도가 중요하지 않음을 새삼 깨달어보는 순간 솔티고개가 눈앞에 다가온다

 

 

 

 

진주시 내동면과 사천시 곤양면을 이어주는 2번국도인 4차선 도로상이 솔티고개다

고개란 개념은 사라졌지만 이곳을 덕천고개라도 부르기도 하고

솔티고개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솔티마을이 있는 부근을 말한다

고갯마루 주변에는 약방, 주유소, 모텔, 온천, 등이 있고 진주와 사천은 택시로 20분거리에 있다

 

 

 

 

삼성약국 우측으로 SK주유소가 있으나 지금 페업중이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간단히 씻을 수 있으며

약국옆으로 옛날짜장의 손맛도 볼 수 있고 주변에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오늘 하루도 안 좋은 기억들을 자연속에 버리고 멀고도 길었던 하루가 지나간다

이제 낙남정맥길은 어머니 품속같은 지리산의 남부능선권을 벗어나

진주~사천 구간에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바라보며 걸어가게 된다

연평마을 표지석 옆으로 다음 산행 들머리를 확인하고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6 : 20 ~ 14 : 30  (08시간 10분)      ◎ 날씨 : 아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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