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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백두대간(완주)

백두대간 8구간(우두령-추풍령) 종주산행

백두대간 제8구간(우두령 - 황악산- 추풀령)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3년         08월          13일          (월요일)

◎ 산행위치 : 전라북도 김천시 대항면 /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추풍령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우두령(牛頭嶺, 901번지방도) - 삼성산(三聖山, 986m) - 여정봉(旅程峰, 1,030m) - 바람재

                      형제봉(兄第峰, 1,040m) - 황악산(黃岳山, 1,111m) - 백운봉(白雲峰, 770m)

                      직지사갈림길 - 운수봉(천덕산, 680.2m) - 여시골산(620m) - 괘방령(311m)

                      가성산(柯城山, 716m) - 장군봉(長軍峰, 627m) - 눌의산(訥誼山, 743.3m) - 추풍령(4번국도)

                      

◎ 산행거리 : 우두령 ~ 3.8Km ~ 여정봉 ~ 3.5Km ~ 황악산 ~ 1.6Km ~ 백운산 ~ 4.1Km 

                      쾌방령 ~ 3.7Km ~ 가성산 ~ 1.2Km ~ 장군봉 ~ 1.9Km ~ 눌의산 ~ 3.5Km ~ 추풍령 

                      도보거리   =   약  23.3Km           실제도보거리   =   약 24.3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5 : 50 ~ 16 : 10  (10시간 20분)      ◎ 날씨 : 아주, 맑음

              

            ◐ 한반도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의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 산행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의 병사봉(兵使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江)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 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하며,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 금수강산이 되었으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여의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우두령(牛頭嶺, 720m)은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경북 김천시 구성을 잇는 고갯마루로

고갯마루 위에 동물이동통로가 있고 901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한 때 우두령을 한자로 우두령(牛痘嶺) 이라 잘못 써서

"종두고개"란 뜻의 고개였다가 최근다시 "소머리고개"란 뜻의 우두령(牛頭嶺)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우두령은 지형이 마치 소등처럼 굽어 소가 멍에(질매)을 진것 같다하여 질매재라고 하여

고갯마루상에는 황소 모양을 하고 있는 조각상이 있다, 소처럼 생긴 산으로

소의 머리 부분을 잘라서 고개를 만들었다 하여 우두령(쇠머리재)이라 부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덕산재에서 넘어와 황소의 조각상을 눈부시게 마주쳤던 설레임은 어딜가고

산행에 대한 설레임이 더 커서 그런지 무개념으로 쳐다보지도 않고 들머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좌측에 흥덕리(興德里)쪽으로 내려가면 설보름마을이 있는데

옛날 서(徐) 처사(處士)가 경상도에 갔다가 설 쇠러 돌아가는 길에 눈이 하도 많이 내려

길이 막히게 되어 이곳에서 설과 대보름을 쇠었던 곳이라서 설보름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황악산 하면 조선시대 풍류시인 김삿갓을 떠 올리게 합니다

영월 도호부 백일장에서 쓴 시가 조부를 지탄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 김병연은 일생을 방랑객으로 산다

나 또한 신용불량자가 되어 백두대간의 방랑이 되어 김삿갓의 시심에 젓어 진부령을 향해 올라간다

떠나가는 "김삿갓"을 흥얼거리며 가파른 길을 오르면서 김삿갓을 "임삿갓"으로 바꾸어 불러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흥얼거리며 첫번째 이정목이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산길은 부드럽고 바람결 또한 쾌적하며

산새소리도 정겹고, 숲이 내뿜는 향기도 좋고 하늘에는 새털 구름이 흘러가고

아침부터 까마귀가 "까악 까악" 하고 짖어대고, 아침이슬을 머금은 탓인지 들꽃 향기가 발걸음마져 가볍게 한다

 

 

 

 

여름 날씨에 무거운 짐을 메고 가파른 경사를 오르는 일은 고행을 택한 수도승의 몸짓과 다를 바 없다

누군가 시켰다면 도저히 못 할 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경험이 있는 산꾼들은 알 것이다 힘겹게 산정에 올라 하늘에 가까운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기분을 말이다

 

 

 

 

억새와 산딸기 넝쿨 등 잡풀이 무성한 등로는 산객들의 발길이 뜸 했었는지 거미줄이 얼굴을 감씨기도 하고

조금씩 맺혀있던 이슬이 바지가랭이를 타고 내려온 물이 시원해 좋기는 했으나 등산화까지

침범하려 하며 잡풀을 헤쳐 나가는 발걸음은 힘들어지고 멋진 하루가 예상되었지만 고행의 방랑 시인이 된다

 

 

 

 

아침을 알리는 온갖 산새들이 노래를 하고 풀벌레 소리가 옹알옹알 합창을 한다

이슬에 젖은 산길은 힘이 들지만 푸르름이 아름답고

화창한 날씨속에 모든것이 하나 하나가 감동이요 행복이 산길에는 넘고 넘치는것 같다

 

 

 

 

삼성산(三聖山, 985.6m)은 우측 산기슭에 위치한 삼성암(三聖庵)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보인다

김천시 대항면 주례리(周禮里)에 "주공"이란 마을이 있는데, 1970년 곡부 공씨가

이 마을을 개척했는데, 공자가 살던 주나라 주(周)와 자신의 성씨인 공(孔)자를 따서 공주(孔周)라 불렀다

공자는 중국의 삼성(三聖) 중 한명으로 꼽는 인물이다 남쪽의 대성리(大聖里)도 같은 지명이다

평소 자신들이 존경하고 있던 중국의 성인 "공자"의 이름을 따서 공자동(孔子洞)이라 불렀다, 그러다가

일제강정기에 대성리란 이름으로 개명했으며, 삼성산은 삼성암과 대성리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보아야 될것 같다

 

 

 

 

삼성산은 이곳 쉼터에서 우측으로 약간 비켜나 있으며 삼성암은 신라 중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될 뿐

언제 창건했는지 알 수 없는 산내 암자로 옛날 세 성현이 출현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일제 때 독립운동가 편강렬이 105인 사건으로 형을 받고 수형생활을 끝낸 후 출소하여 1915년부터

약 10년 동안 이절에서 왜경의 눈을 피해 제자들과 같이 무술을 익히며 조국광복을 위해 힘을 기른 곳이란다

 

 

 

 

저 멀리 보이는 황악산은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으로

악(岳)자가 들어가 있지만 골산이 아닌 육산이다

원래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黃鶴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좌측의 영동군은 고구려의 왕산악, 가야 우륵(于勒)과 함께 3대 악성 중의 한 사람인 난계 박연의 고향이다

고려 우왕 3년 심천면 고당리에서 태어나 난계(蘭溪) 박연(朴堧)은

조선 세조 때까지 활동한 학자이며 음악가로써 그의 집 정원에 난초가 많았기 때문에

난계라는 호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난계 박연은 집현전 교리를 거쳐 세종 때에 악학별좌가 되어

궁중 음악을 아악으로 대체하고 아악의 정리와 창작 및 석경, 편경 등의 악기 제작과 정리에 힘을 썼다고 한다

 

 

 

 

황악산은 우리 땅의 척추를 이루는 백두대간 중간쯤에 솟은 봉우리로

울창한 숲이 매력적으로 우리의 산하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고도가 1000m가 넘어 여름철에도 고산 특유의 시원함을 맛볼 수 있어 한없이 머무르고 싶어진다

 

 

 

 

여정봉(旅程峰, 1,030m)은 낙동산악회의 아크릴판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봉우리로

이곳에서 마루금은 우측으로 꺾어지면서 내려가야 한다

모든산에 표지석을 세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1.000m가 넘는 고봉에는 정상석이 세워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바람산은 1970년대 초에 콘크리크 구조물인 지하벙커와 막사, 물탱크, 화장실, 등으로

만들어진 통진기지였지만 사용하지 않아

각종 폐기물만 방치돼 있었던 곳을 남부지방 산림청에서

벙커시설을 철거하고 신갈나무 등을 심어 다시 원상으로 복원해서 본래의 모습으로 고쳐 놓은 곳이란다

 

 

 

 

능선에는 온갖 야생화의 들꽃들이 반기고 바람재로 가는 길이 정겹고

그래서 산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산책을 하는 기분이다

또한 억새풀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가을이면 억새풀에 취해 온통 정신이 없을것 같다

 

 

 

 

김천사람이라면 바람재는 거의 들어보는 말일 것이다~

찾기도 쉽고 가기도 쉽기 때문이다

사계절 언제나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는 대자연의 김천을 만나게 된다

 

 

 

 

<바람재의 표지석 글씨채가 바람에 휘날리는 듯한 흘림채이다>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주례리와 영동군 상촌면 궁촌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옛날에 성황당이 있어서 성황당고개로도 불리었던 곳이며~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하며 텅빈 공터에 수풀만 우거져 분위기가 스산합니다

 

바람재(風嶺, 810m)는 황악산과 여정봉을 사이에 두고 편서풍이나 북서 계절풍이 통과하면서

풍속이 매우 빨라지는 곳이어서 바람재 또는 풍령(風嶺)이라 불리었으며

바람이 얼마나 센지 갈대가 살지 못할 정도라 한다 그리하여 이곳에 풍력발전단지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바람재에서 한바탕 힘을 쓰고 올라서면 신선봉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신선봉(神仙峰, 936m)과 망월봉(望月峰, 580m)을 지나 능여계곡을 따라가면

직지사에 닿게 되며 직시사가 있는 운수리(雲水里)는

행운유수(行雲流水)와 같이 언제나 구름이 머물고 골짜기에 물이 흐르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다

 

 

 

 

형제봉(兄弟峰, 1,040m)은 황악산 비로봉과 함께 형제처럼 나란히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향제봉을 내려가면 우측으로 Rope로 차단되어 있고 상수원보호구역이라고

등산로가 폐쇄된 팻말이 붙어 있는곳이 있는데 그 길로 내려가면  비로통문(일명:문바위)이라

불리는 내원계곡과 능여계곡으로 하여 직시사로 향하게 되는데 등산로를 폐쇄한 것이라고 한다

 

 

 

 

황악산(黃鶴山) 오름길에 뒤돌아본 풍경으로 지나온 산줄기 파도처럼 일렁이며

한여름의 찌는듯한 폭염속에서 참 많이도 걸어왔다

힘든 사연일랑 발걸음에 묻어두고 뜨거운 열정으로 진부령을 향해 걷고 또 걸어갈 것이다

 

 

 

 

황악산으로 오르는 갈대 숲길! 한여름에는 안경을 꼭 착용하고 통과 하시길~

능여계곡(能如溪谷)은 내원계곡(內院溪谷)과 운수계곡(雲水溪谷) 등 황악산 3대 계곡 중에서도

폭포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능여천(能如泉)과 법수천(法水泉) 등의 약수가 있어

더욱 유명한데 옛날 능여조사가 멱원대(覓源臺)에서 황악산계곡의 원천(源泉)을 찾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곳으로 직지사 못미친 곳에는 사명대사가 즐겨 찾았다는 사명폭포(四溟瀑布)가 있다고 합니다

 

 

 

 

황악산에 오르니 평일인데도 일반 등산객들이 보였으며  황악산 정상은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답게 조망도 막힘없이 시원하며 동쪽으로 김천 시가지와

직지사가 내려다보이고, 남으로 형제봉과 동남쪽으로는 가야산(1,430m)이 하늘금을 그리고 있다

 

 

 

 

황악산(黃岳山, 1,111m)은 예전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黃鶴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직지사(直指寺) 현판에도 황악산(黃岳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그럼 지금은 빼빼로산(1,111m)이라 불러야 되지않을까요^ㅎ^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형제봉, 신선봉, 백운봉, 운수봉 등 다섯봉우리가 말발굽 모양으로 직지사를 감싸고 있다

 

 

 

 

황악산은 전형적인 육산이면서 산 이름에 "岳"자 들어가 있다 이에 대해, 속리산 이후 추풍령에 이르기까지

낮은 야산 지대가 계속되다가 추풍령을 지나면서 갑자기 높은 황악산이 솟아 있어

놀라서 "악"하고 소리를 질러서 황악산이란 이름에 "岳"자가 들어갔다는 우수개 소리가 있다

직지사가 위치한 김천시는 진한, 마한, 변한의 삼한 중에서 가장 컸던 고을로

한때 삼한대처(三韓大處)라 불렸던 고장으로 100대 명산에 걸맞게 표지석이 거창군 지명처럼 거창하게 

만들었으면 좋겠고 전망테크를 설치하여 산객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마련되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황악산에서 달콤한 휴식을 마치고 괘방령으로 하산길에 들어선다

황악산을 내려서면 눈앞에 헬기장을 넘어 곤천산으로 가는 능선길이 잘 발달 되어 있어

무심코 지나가면 알바하기 좋은 지점으로 주의 지점이다

헬기장 직전 이정표에 쾌방령으로 가는 표시가 없고 직지사 방향인  우측 사면으로 마루금을 이어가야 한다

 

 

 

 

지도상에는 백운봉(770m)을 표기 하였으나 어딘지를 감지하지 못하고 지나쳤는데우측의 봉우리로 짐작을 해 본다

황악산에서 약 30분정도의 거리 백운봉은 백운마을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보이며

백운마을은 140여년 전 황악산 중턱에 마을이 생겼는데 항상 구름이 덮혀 있어 백운(白雲)이라 불렀다 한다

또한 박달나무로 가구를 만들어 팔았다고 하여 이 마을을 "박수점"이라고 불렀으며, 산중턱에 白蓮庵이 자리잡고 있다

 

 

 

 

운수봉으로 가는 울창한 숲 길은 하늘을 가리는 키큰 나무들이 길 양쪽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으며 직시사 부근을 제외하고는

소나무가 없는 곳으로 가을에는 단풍과 겨울에는 설화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는 신라 눌지와 2년(418)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한다

아도화상(阿道和尙)은 일명 묵호자(墨胡子)라고 하는 고구려 선교사이며 전교를 위해 신라에 들어와서

눌지왕 1년(1417년)에 신라 최초로 지금의 구미시 상촌면 태조산에 도리사(桃梨寺)를 창건하였다

그리고 도리사를 지으면서 아도화상이 황악산 쪽을 손가락(直指)으로 가리키며 저 산 아래에도 훌륭한 절터가

있다고 했단다 그리하여 그 다음 해에 직지사를 창건하였으니 직지사(直指寺)는 우리나라 두번째의 절인 셈이다

 

 

 

 

괘방령과 직지사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가면 운수암과 직지사 방향이다

직지사 이름이 붙여진 배경에 대해서는 첫째는 수행을 통해 욕심과 번뇌를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자기 자신이 부처요

그 마음이 곧 불심이라는 선종(禪宗)의 핵심 가르침인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맨 앞 글자인 직지(直指)에서 따 왔다는 것이고 둘째는 직지사를 창건한 아도화상(阿道和尙)이

구미 선산에 있는 태조산(太祖山)에 눌지왕 1년(417년) 도리사(桃梨寺)를 창건한 후 김천 황악산을 가리키며

저 산 아래에도 절을 지을 만한 훌륭한 터가 있다고 하여 곧을 직(直) 손가락 지(指) 자를 따서 직지사라

했다는 설이고 세째는 능여조사가 절터를 잴 때 자를 쓰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량한 데서 붙여졌다고도 한다

 

 

 

 

운수봉(雲水峰, 680m)을 천덕산(千德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임진왜란 때 정병(情兵) 양성(養成)을 위해

성(城)을 쌓은 곳으로 피난온 천여 명의 주민들이 이 산의 덕을 입었다고 하여 하늘의 큰 덕을

보았다고 하여 천덕산(天德山)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옛적에 황악산을 천덕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운수봉이라는 지명은 운수동이라는 지명에서 유래된것으로 보인다

200여전 전부터 직시사를 찾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골짜기에 정착해서 마을을 형성해 터목이라 불렀다

한자로는 대항(垈項)이라고 표기를 했다 면사무소가 이곳에 생겨 면(面)의 중심지로 본리(本里)라 불렀으나

1914년 일제 때 본리와 돌모리, 백운동(박수점)을 통합해서 "운수동(雲水洞)으로 개명했다, 운수는

행운유수(行雲流水)와 같이 언제나 구름이 머물고 골짜기에 물이 흐르는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이곳은 여우굴(여시굴)로서 예로부터 여우가 많이 출몰하여 여시골짜기라 알려졌으며

그로 인해 여시골산이라고 불려진다 라고 설명을 하고 있지만

여우는 암벽을 뚫고 직각으로 굴을 팔 수 없으며 이곳은 일제 때 금광개발을 하던 곳으로 알려졌다

 

 

 

 

여시골산(620m)은 이 골짜기에 여우가 많이 살았다는 산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나무꾼이 이상한 소리에 지게까지 두고 도망 갔다는 이야기와

흰 털을 한 짐승이 나무를 타고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 나 돌았다고 한다

 

 

 

 

여시골산 내림길은 직벽에 가까울 정도로 아주 위험한 구간이었는데

김천시에서 통나무 계단으로 설치하여 놓았다

임도에 내려서면 전방으로 괘방령을 지나 앞으로 가야 할 가성산이 성벽처럼 올려다 보인다

 

 

 

 

백두대간 산악인들의 쉼터 공간인 "괘방령산장" 이곳에서 식수도 보충할 수 있으며

또한 간단한 음료수와 라면도 구입이 가능하다

"세월 흐르다 보면 조우화 해후의 만남 이슬이 산장을 지붕삼아

머물다 가는곳 굽이 굽이 산자락에 사람 그리워 손짓하네" 라는 글귀가 액자에 적혀 있었다

 

 

 

 

괘방령(掛榜嶺, 310m)은 옛날 속설에 의하면 조선시대 영남의 유생들이 과거 보러 한양으로 갈 때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 낙엽처럼 낙방한다는 징크스가 있어 괘방령을 넘어 갔다고 한다

괘방이란 방을 붙인다는 뜻 즉 과거에 급제한다는 뜻이어서 유생들은 추풍령 대신 괘방령을 넘었다고 전해진다

 

 

 

 

괘방령은 경북 김천시 대항면과 충북 영동군 매곡면을 잇는 고갯길로 906번 지방도가 지난간다

대동여지도(大東與地圖)를 보면 괘방령(掛榜嶺)이라 기록되어 있고

산경표(山經表)에는 계방산(桂榜山)이라 적혀 있지만

현지 주민들은 괘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일부 지도에는 궤방령(机榜嶺)이라 적혀 있는 경우도 있다

 

 

 

 

괘방령에서 서서히 고도를 높여 418m봉에 오르면 봉우리 정점에서

마루금은 좌로 90도 꺾어지면서 내려간다

날씨가 무덥고 모기떼가 극성을 부리면서 발걸음이 무기력해지고 힘겨운 산행이 이어진다

 

 

 

 

공수리마을에서 봉산면 신암리로 넘어가는 사거리안부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공수리 오리골 마을이고 우측으로 내려가면 신암리 고도암(道岩)이다

공수리(公須里)는 조선시대 때 관의 접대비나 역(驛)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지급하던 토지인 공수전(公須田)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며

노동운동가인 전태일(全泰壹, 1948~1970)을 따르는 노동대학인 마음수련원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가성산 오름길은 바위구간을 지나기도 하며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오르는 길목에는 정성이 깃든 돌탑이 있는데

대간꾼들의 안위와 무탈을 비는 돌탑이라고 하니 지나가는 산객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가성산 오름길은 멋진 풍경 하나를 제데로 담을 수 없는 지루함한 산길이었지만

그래도 가시덩굴이나 잡풀로 발길을 방해하는 산길에 비하면

갑갑한 숲속일지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연과 호흡하며 걸어왔다

고스락이 가성산인가 싶었더니 굴참나무가 울창한 정점에서 마루금은 우측으로 꺾어지면서 이어진다

 

 

 

 

가성산 능선상에 자리잡은 분재같은 명품소나무에서 바라본 김천시 풍경이다

고행끝에 찾아오는 쾌감은 은근한 중독성이라 할까요?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으며 고속도로가 보이면서 추풍령이 지척에 있는 듯 하여 마음이 가벼워진다

 

 

 

 

가성산(柯城山, 716m)은 김천쪽으로 가성마을과 외가성마을이 자리잡고 있으며

산 중턱에서 옛 성터가 마을을 병풍처럼 들러싸고 있어

가성(柯城)이라 하였기에 가성산의 지명이 유래된 듯하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가재산"이라 부른다

 

 

 

 

장군봉(長君峰, 627m)은 장군봉(將軍峰)로 착각할 수 있으나 長君峰이다

임금의 왕자(王子)중에서 맏아들을 장군(長君)이라 부른다

하지만 어떤 임금의 맏아들과 관련된 기록이 없어 지나가는 산객에 마음은 답답할 뿐이다

 

 

 

 

장군봉을 지나고 눌의산 오름길에 양쪽으로 바위가 있는 개천문을 통과한다

개천문이란 용어를 거창하게 표현 한것은 한 여름의 무더운 날씨에 너무 힘들어서 한말이다

계속되는 완만한 오르막길이 가도가도 애간장을 태우며

이열치열(以熱治熱)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라지만  35도를 육박하는 날씨가 숨이 막히면서 정말로 힘든 산행이다

 

 

 

 

눌의산(訥誼山, 743m)은 조선시대 까지만 해도 눌이항봉대(訥伊項烽臺), 눌이항산봉대(訥伊項山烽臺)

눌이산(訥伊山)으로 표기되어 있었으며 언제부터 이(伊)가 의(誼)로 표기가 바뀌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현재는 눌의산으로 부르면서 눌이항산, 누리산, 선개산 등으로 표기하고 있는 산이다

 

 

 

 

눌의는 한자어로 정의가 눌하다  혹은 더디다는 뜻이며,  추풍령의 영마루를 사이에 두고

충청도와 경상도의 양쪽 교류가 뜸하다는 것을 눌의 라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또한 신선이 도포를 입고 앉아있는 형태와 같다고 하여 선개산(仙盖山) 또는 누리봉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눌의산은 눌이항산봉수대(訥伊項山烽燧臺)가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주변 조망이 뛰어나다

지금은 봉수대의 흔적은 완전히 파괴되어 없어진곳에

헬기장이 자리잡고 있는 상태이지만 옛날에는 중요한 거점구실을 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추풍령(秋風嶺, 225m)은 경상도와 충청도 사이의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죽령(689m)이나

조령(362m) 등의 이름난 고개들에 비하면 고도가 아주 낮다

또한 김천시의 고도가 해발 100m이고 황간쪽은 추풍령 마루턱 높이를 거의 유지하면서

넌지시 기울 뿐이니 "늘잇재"라는 이름은 산이름이었다기 보다는 추풍령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감나무밭을 내려서면 다시 좌측 숲으로 들어서며

백두대간 종주는 내 생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 동안 살아왔던 삶을 돌이켜 보는 백두대간 종주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금산아래로 추풍령고개가 지척에 있으며 우측에 자리잡은 돈목(敦木)마을은 임진왜란 직후 난을 피해

광주 이씨와 청주 한씨가 이주해 오면서 우루어진 마을로 마을 입구에 돌이 많아 돌목이라

부르다가 나중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이씨와 한씨 두 집안이 서로 화목하고 정답게 살라는 뜻에서 돈목이라 했다

 

 

 

 

이곳에서 좌측 "은평마을"로 돌아가라고 안내를 하고 있다

아마도 마루금이 농로라서 우회하라고 한것 같으며

하지만 등산안내도 삼거리에서 마루금은 우측 방향으로 직진해야 한다

 

 

 

 

이렇게 밤나무밭 중간을 가로 질러 가는데 좋아 할리가 없겠지요

하지만 돌아가는 마루금은 멀기도 하거니와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어서 우회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밤나무밭을 지나면 가족묘지 상단을 지나 우측으로 내려선다

앞으로 보이는 산 능선이 마루금이나

경부선고속도로와 철도가 지나가면서 등로를 막고 있어 굴다리를 통과하여 우회하여야 한다

 

 

 

 

"추풍령"이란 노래를 흥얼 거리면서 산길을 내려서니 "경부고속도로 굴다리"가 보인다

구름도 자고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 추풍령 구비마다 한많은 사연

흘러간 그 세월을 뒤돌아 보는 /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 그 모습 그립구나 추풍령고개

어쩌면 저의 인생 역경을 뒤돌아 보는 노래가사 마냥 가슴이 뭉클하여 더욱더 톤을 올려 목이 터져라 불러본다

 

 

 

 

고속도로 간판이 추풍령 휴게소가 가까이 있음을 알려준다

추풍령휴게소는 우리나라 고속도로휴게소 가운데 가장먼저 1971년에 세워진 곳으로

휴게소가 들어선 일대의 지명과 관련한 일화에 의하면

옛날 이곳을 지나던 노승(老僧)이 장차 전국에서도 이름난 놀이터가 될 것이라고

예언해서 이 골짜기를 다락골(多樂谷)이라 불렀다고 하며 지금의 추풍령휴게소가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경부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하면 양쪽으로 온통 포도밭이며 경부고속철도 지하도를 향해 걸어간다

추풍령을 백령(白嶺)으로도 불렀는데 이는 물이 적고 토지가 척바하였던 과거

이 지역에서는 메밀 농사를 중심으로 하였기에 새하얀 메밀꽃이 고갯마루를

뒤덮은 흰 고개라는 의미로 불리게 된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메밀꽃 척박한 땅이 온통 포도밭으로 변했다

 

 

 

 

포도밭 도로를 따라오면 경부고속도로 아래를 지나고

경부고속철도 지하도를 들어가서

굴다리에서 우측으로 계속 직진하여 우리식당이 보일때까지 진행한다

 

 

 

 

경부고속철도 지하굴다리를 통과하여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추풍령리 삼거리에서 우리식당이 보이면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가다보면 추풍령노래비가 있는 고갯마루가 추풍령고개이다

 

 

 

 

추풍령(秋風嶺)은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과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의 경계지점으로

예로부터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을 잇는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로

조령을 통과하던 교통량이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추풍령으로 흡수되었고

이곳이 경부고속국도의 중간 지점에 해당되어 우리나라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곳이 되었다

 

 

 

 

추풍령 표지석이 있는 이곳이 당마루고개라고도 불리었던 추풍령인데

가을에 풍년을 뜻하는 추풍(秋風)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언제부터 추풍으로 변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으며

당마루는 옛날 당나라 병사들이 진을 친 곳이라 하여 당령(唐嶺)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구름도 자고간다는 카리브모텔 도로 건너편으로 추풍령 소공원에는 팔각정도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역활을 하기도 하였으며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들이 추풍령을 넘어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고 하여 괘방령으로 돌아 갔다고 한다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기도 한 추풍령 표지석은 88서울올림픽 성화 봉송기념으로 만든 것으로

표지석 중간에는 전범성 작사, 백영호 작곡의 남상규가 부르는 "추풍령" 이란 가요의 가사가 새겨져 있다

오늘은 "떠나가는 김삿갓"을 흥얼거리고 추풍령이란 노래을 부르면서 추풍령에 도착을 하니 감회가 새롭다

힘들수록 하늘을 올려다 보라고 했던가~ 하지만 지겹도록 무덥고 먼 길 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산과 하나가 되어 완주를 했으며 다음기회에 또한번 추풍령이란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으니 다음을 기약한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5 : 50 ~ 16 : 10  (10시간 20분)      ◎ 날씨 : 아주, 맑음

 

 

Je t`aime mon amour (사랑하는이여) / Claudia 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