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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백두대간(완주)

백두대간 10구간(큰재-신의터재) 종주산행

백두대간 제10구간(큰재 - 백학산 - 신의터재)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2년         09월          24일          (화요일)

◎ 산행위치 :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공성면, 외남면, 화도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큰재 - 회룡재 - 개터재 - 512m봉 - 463m봉 - 윗왕실재 - 477m봉 - 900m

                      백학산(白鶴山, 615m) - 개머리재(소정재) - 지기재 - 신의터재(어신재) 

                      

◎ 산행거리 : 큰재 ~ 3.8Km ~ 회룡재 ~ 1.7Km ~ 개터재 ~ 3.8Km ~ 윗왕실재 ~ 2.8Km 

                      백학산 ~ 4.5Km ~ 개머리재 ~ 2.5Km ~ 지기재 ~ 4.6Km ~ 신의터재(어신재) 

                      도보거리   =   약  23.7Km           실제도보거리   =   약 24.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8 : 40 ~ 16 : 20  (07시간 40분)      ◎ 날씨 : 아주, 맑음

              

            ◐ 한반도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의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 산행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의 병사봉(兵使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江)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 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하며,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 금수강산이 되었으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여의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큰재는 상주시 모동면과 공성면을 연결하는 68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며

추풍령 쪽에서 다가가면 평지의 고원지 같은 곳으로

그 이름이 어울리지 않지만 상주의 옥산쪽에서 오르는 길은

골짜기가 깊어 그 높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보여서 큰재라고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큰재의 폐교된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장에는 숲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백두대간 상에 있었던 유일한 학교였으나

1997년 3월 01일 폐교되어 없어지고 백두대간 숲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어 바뀌었다

 

 

 

 

오늘도 산행하기 좋은날 큰재를 출발하여

평균 고도높이가 해발 250m로

백두대간에서 가장 낮은 지역인 중화지구를 지나간다

 

 

 

 

우리 숲! 가꾸니까

백두대간 숲길이 너무 행복해요 라는

백두대간 생태 학습장 뒤로 난 대간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동네 뒷동산 같은 편안한 능선을 넘어서면 시멘트 임도를 만난다

이 도로는 큰재에서 "회룡목장"으로 가는 목장도로이며

좌측 능선길이 마루금이나 목장으로 인하여 맥길이 훼손되어 편의상 임도를 따라 120m정도 진행한다

 

 

 

 

목장입구의 철문이 있는 곳에서 우측 숲속으로

들어서며 이곳에서 우측 숲으로

접어들면 낮은 야산 구릉지대를 계속해서 오르내린다

 

 

 

 

축산 단지인 회룡목장을 지나 회룡재로 향한다 백두대간길이 행복해요

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역겹다

좌측 회룡목장 축사에서 나는 냄새가 대간 마루금까지 날라와 산행하는 대간꾼들의 코를 자극한다

 

 

 

 

정약용이 편찬한 역사지리서인 아방가역고(我邦疆域考)에서 전하는 말에 의하면

경상도은 본래 경주(慶州)의 경(慶)자와 상주(尙州)의 상(尙)자를 조합하여 경상도(慶尙道)라 하였다

경상도에서 경주와 상주는 대단히 중요한 도시였던것 만큼은 틀림없다, 그 예로서 신라의 서울이 경주였으며

가락국(駕洛國)>의 주 본거지는 상주였다, 그래서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에서 흐르는 강이기에 낙동강이라 한다

 

 

 

 

큰재를 출발하여 봉산리 골가실에서 회룡을 넘는 고개로 회룡재는 과거 마을 뒷산의 봉우리 형상이

하늘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는 용(龍)의 형국이라 하여

회룡(回龍)이라 불렀다고 하며 임진란 후에 생긴 마을로 예씨(芮氏)와 옥천 전씨(全氏)가 집성촌을 이룬다고 한다

 

 

 

 

골가실 마을은 경상도 방언으로 "갈가지(호랑이)"가 사람을 괴롭힌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우리나라는 호랑이와 관련된 옛날 이야기가 많다,  어느 책에 보면 동네 사람들이

일년 중 반년은 호랑이 잡으러 다니고, 반년은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문상을 다녔다고 하는 애기가 있다

 

 

 

 

회룡재에서 개터재 가는길은 목장으로의 진입을 막기 위해서인지

굵은 철사줄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곳도 있고

산 마루금이 아니라 사면을 가로 질러 가는데 낭떠러지 너덜길도 지나가는 구간도 있다

 

 

 

 

개터재에 도착하니 우리보다 먼저온 일행들이 있었다

개터재는 산세의 모양이 개들이 모여 살고 있는 형상에서 비롯되었단다

상주시 공성면 효곡리와 봉산리를 연결하는 고갯마루로서

길을 고쳐(改)서 새로 낸 곳이라하여 개터재라 하며

이곳 사람들은 봉산리 임도라고도 부르며

개처럼 생겼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한다 지금은 인적이 끊긴지 오래인듯 잡초가 무성하다

 

 

 

 

개터재에서 한바탕 땀을 흘리고 올라서면 지도상 512m봉이다

오늘 구간중에 백화산을 제외하고는

제일 높다는 봉우리인데 선답자의 시그널 몇개만 팔랑일뿐 아무런 표식도 없다

 

 

 

 

지도상 463m봉 안부를 지나간다  참 날씨도 좋고~ 하늘도 파랗고~

상주시에서 곳곳에 이정표를 설치해서 알바 할 일도 없어 좋고~

마루길이 철길과 고속도로도 지나지만 이처럼 논과 밭이 보이는 인간 세상을 지나가는 구릉지대도 있다

 

 

 

 

어떤 사람이든 재물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고개 숙이며

신고하고 지나가야 하는 자연 나무목 문이죠

그렇지 않고 고개 뻗뻗히 들고 지나 가다가는 결과는 말 안해도 아시겠죠!

 

 

 

 

동물이동통로가 설치된 윗왕실재에 도착한다

윗왕실재는 상주시 공성면 효곡리 윗왕실마을과 외남면 소상리 좀실마을을 잇는 고개마루다

산세가 왕궁과 같다 하여 당초 왕재라 하였으나

민초들이 왕을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어 왕자와 재(峙) 사이에 실자를 붙여 왕실재라 불렀다고 한다

 

 

 

 

왕실(旺室)마을은 양편이 산으로 둘러싸여 그 모양이 왕궁과 같다고 해서

왕실(王室)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나

왕(王)자는 함부로 쓸 수 없다고 하여 왕실(旺室)로 부르게 되었고

여러 마을 중 가장 위쪽에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윗왕실리이라 부르고 효곡리는 그 마을에 열녀와 효자가 많이 배출되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네요

 

 

 

 

옛날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 서울 송도에서 한양으로 천도 시에 무학대사를 시켜서 새로운 도읍지를

알아 보게 하던 중에 지금의 왕십리를 살피던 차에 풍수의 대가인 도선비기의 도선이

노인으로 변장하고 나타나서 10리를 더 가라(往) 하여 10리 더 가서 잡은 터가

지금의 경복궁 터라고 한다 그래서 무학대사가 10리를 더 가서 터를 잡았다 하여 왕(往)십리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

 

 

 

 

봉우리 하나를 사면으로 돌아 좌측으로 꺾어진다

백학산 오름길은 활엽수가 많으며

제법 가파르게 고도를 높여가면서 가을 향기가 묻어나는것 같다

 

 

 

 

백학산은 어디가서 명함도 못내밀 높이인데

오늘은 구간중에 최고봉으로

세 개의 봉우리가 우람한 모습으로 낮은 구릉지대를 호령하고 있다

 

 

 

 

숲속에서 시그널이 보일때마다 산꾼 한사람을 만난것처럼 혹자는 반갑다

지도상의 477m봉에는 유난히 많은 시그널이 상징적인데

아마도 백학산을 오르기위한 된비알이 시작되므로 잠시 숨을 고르는 곳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백학산 오름길에 가을이 다가선것 같다

가을산은 황금빛으로 변했으며

오늘따라 사람의 마음을 쓸쓸하게 만든다

 

 

 

 

백학산(白鶴山, 615m)은 학이 알을 품은 듯 감싸 안은 형세라고 한다

이런 터를 포란지세(包卵之勢)라고 하는데

풍수지리를 하는 사람들이 으뜸으로 치는 명당이라 한다

국립공원 현충원터와 비슷할까요?

명당은 명당이길래 왕실(王室)마을이 있겠지요? 하지만 유명인사가 배출되었다는 말은 없으니....

 

 

 

 

백학산(白鶴山)은 물 좋고 공기 좋은 이 산에 수 많은 鶴들이 날아와 앉아 있는 모습이

눈이 내린 설산처럼 하얗다 하여 백학산(白鶴山)이라 부른다고 한다

일명 장자봉이라고도 하며 수목에 가려져

조망은 보이지 않지만 넓은 공터에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있고 오늘 구간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백학산을 출발해 대포리 임도에 내려선다

이정목에 가야할 방향이

"지기재"로 표시되어 있지만 "개머리재" 다음이 지기재이다

 

 

 

 

개머리재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50m정도 따라 내려서면

임도를 버리고 좌측 산으로 접어든다

넓은 임도는 공성면 효곡리에서 모서면 대포리로 넘어가는 도로라고 한다

 

 

 

 

소심했던 마음에 여유가 생긴것도 산이 내려준 처방이고

산을 닮아가는 마음도 산이 준 선물이다

자연은 그 만큼 마음을 넉넉하게 하는 에너지 공굽원이기도 하다

 

 

 

 

소나무 숲길의 무명봉에서 이정목을 따라 좌측으로

푹신한 소나무잎이 깔린 황토흙 냄새와

소나무 향기가 품어져 나오는 피톤치드 때문인지~ 발걸음도 가벼웁고~

 

 

 

 

작은 구릉지대을 오르내리며 내려서면 임도 사거리를 만난다

고개이름이 있을듯 한데  無고개이고

좌측으로는 농경지가 보이고  경사진 언덕으로 정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소나무 향기가 품어져 나오는 피톤치드길~

발길에도 엔돌핀이 팍팍 솟구치고~

가슴속깊이 스며드는 시원함에 노래 소리가 절로 나오고~

 

 

 

 

 

야산을 넘어서니 인삼밭이 나오고 논길, 밭길, 구분이 모호한 대간길이다

인삼밭 우측의 임도를 따라 숲길로 들어서고

이정목이 없으면 길 찾기가 애매할 듯 하지만 곳곳에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어 어렵지 않다

 

 

 

 

넓은 임도에 올라서니 포도밭이 펼쳐지며 정맥길은 좌측으로 휘어진다

중화지구 마루금상에 있는 농경지들은

거의 같은 고도를 유지하고 있어 농사도 잘되고 당도도 높아 농산물이 유명하다고 한다

 

 

 

 

농장주님! 죄송합니다~ 사과을 딸려고 한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으려고 포즈를 한번 잡아 본것 뿐이다

사과가 탐스러워 하나 따 먹고도 싶었지만

여름내내 고생한 농부에 마음을 생각하니 보는것 만으로도 행복 합니다

 

 

 

 

개머리재는 산세가 개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개머리재라 한다 또한 일부에서는

소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소정재라 불리기도 하며

상주시 모서면 소정리와 모서면 대포리 함박골을 잇는 고갯마루로 주변에는 온통 포도밭과 사과밭이다

 

 

 

 

백두등산로 이정목이 참으로 건창한 모습이다

우측 임도와 만나게 되는데

마루금은 임도를 따라 진행하여 이정목이 나오면 우측 산으로 진입한다

 

 

 

 

산허리를 돌아오면 다른 임도와 교차하는 지점을 지나면 우측으로 오른다

산을 찾는 이유는 내마음을 다스리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산을 오르면서 모든 근심을 떨쳐버리고

세상을 둥글게 살고 욕심없이 빈 마음으로 살라고 가르쳐준 것이 산이기 때문이다

 

 

 

 

중화지구의 야산이라고 하니까 얕은 구릉지대로 생각하면 안된다

이렇게 통나무계단과 밧줄이 있는 길도 있으며

백두대간의 험준한 산들과 비교하면 야산이라는 것이지 그래도 500m급 되는 산들이다

 

 

 

 

무명봉을 내려서면 또 다시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올라서야 하며

갈림길에서는 항상 이정목이 길 안내를 하고 있다

 

 

 

 

등로 곳곳에 며느리 밥풀꽃이 피어 있었다 그래서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전설적인 애기이다

옛날 옛날 한 새댁이 있었는데 그 새댁은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너무 혹독했단다

시어머니는 하루조일 며느리를 감시하면서 괴롭힐 구실이 없나 찾는 그런 아주 독한 시어머니였다고 하네요

어느날 새댁이 밥을 짓다가 밥에 뜸이 잘 들었다 밥알 몇알을 입에 물고 맛을 보았다

마침 부억으로 들어오던 시어머니가 그걸 보고 대뜸 며느리를 호통치며 "야 이 망할년아

내 년이 감히 어른들도 손대지 않은 음식에 손을 대" 하면서 며느리를 호되게 내리쳤다고 한다

어찌나 호되게 쳤는지 며느리는 넘어지면서 부엌 모서리에 부딪쳐 그만 죽어 버렸다

며느리가 죽어서 하늘에 올라가자 며느리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던 옥황상제는

그 못된 시어머니를 지옥에 보내고 며느리는 꽃이 되어 세상에 뿌려졌답니다 그 꽃이 며느리 밥풀꽃이라네요

 

 

 

 

낙엽송 군락지역을 내려서니 마치 평야지대를 만난다

통신탑이 있는 곳이 지기재이며

지도상 395.4m봉은 산아래 금은골 마을이 있어 금은봉으로 명명하여 부르고 있다

 

 

 

 

상주지방의 중화지구대는 고원의 저지대로 기온이 온하하고

평균기온이 5도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따라서 상주는 당도가 높은 양질의 사과와 포도같은 과수가 각광을 받고 있다

 

 

 

 

오늘 구간에서 유득히 포도밭이 많은것은 상주시 모동면 일대에서

1984년 "백화명산 모동포도회"가 결성이 되면서

화서면, 화동면, 모서면 일대로 광범위하게 넓어지면서 우리나라 4대 포도 생산지로 부상하였다고 한다

 

 

 

 

지지재는 동네 뒷산에 도둑이 많았다 하여 한 때 적기재(賊起峙)라고도 불렀다고 하며

지금은 마을 이름을 따 지기재라고 부른다고 한다,  상주시 내서면과 모서면을

연결하는 901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고갯마루로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기도 한곳이다

 

 

 

 

지기재에서 시멘트 도로를 따라 오다가 우측으로 지기재동마을로

들어서면 백두대간 이정목이 있다

지지재동 마을은 석산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대포리의 노산으로 넘나드는 마을이다

 

 

 

 

숲길 임도를 지나서 농기계가 있는 곳에서 우측 산으로 접어든다

약간의 고통이 수반되는 백두대간 산행

하지만 세상사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만을 느끼며 걸어가는 시간이 행복하다

 

 

 

 

지기재에서 야산을 넘어서 능선을 가야할 길이 금은골 마을로 내려선다

사유지 과수원이라 주인이 임의로 길을 돌려 놓았는데, 백두대간을

관리하는 산림청이나 관계기관에서는 땅을 매입을 해서라도 하루빨리 대간길을 돌려 주어야 할 것이다

 

 

 

 

동구밖에 미루나무가 한 줄로 서 있는 석산리 금은골 마을을 지나간다

왠지 기억속에 남아 있는 마을인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고향마을 이웃동네 모습처럼 보이고 미루나무 꼭대기이에

조각구름이라도 걸려 있음직한 풍경이 아무리 바라보아도 정겹기만 한 시골마을이다

 

 

 

 

좌측에 금곡(琴谷) 금은골 마을은 이곳 지형이 거문고처럼 생겼다고 한다

처음에는 검골-거문골-금곡 으로 변했으며

"골"은 골짜기의 뜻도 있지만 마을의 뜻도 있으므로 큰마을 또는 큰 골짜기의 뜻이란다

 

 

 

 

슬랩구간을 올라서면 능선분기봉이다

이곳에서 좌측방향은

금은골 뒷산인 은왕봉으로 가는길이고 마루금은 우측으로 내려선다

 

 

 

 

분기봉 내림길도 바위 슬랩구간으로 사면을 돌아서 내려간다

전설적인 이야기처럼 은왕봉 뒤 산은

암벽으로 되어 있는 듯 전설적인 이야기를 뒤밭침하고 있는것 같다

 

 

 

 

지도상으로 쑥밭골재에 이르게 되는데  중화지구는 충북과 인접한 지역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말씨도 충북 사투리와 경북 사투리가 뒤섞인 형태이며, 해발 300m로 평지보다

평균기온이 차이가 있는 고원지대로 일조량이 많아 당도가 높은 포도, 사과 등의 과일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문화식당 이정목에는 진부령까지 무사완주를 기원한다고 씌여 있다

경상북도 화령(화서면)의 장터에 문화식당이란 곳이 자리하고 있는데

허름한 식당이지만 주인의 마음이 담겨 있는 글과 함께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꾼들에게 맛 있는 식사와 잠자리를 내어주고 있다고 한다

 

 

 

 

소공원처럼 제법 아름답게 꾸며 놓은 신의(新義)터재에 내려선다

일제 때 민족정기를 말살한다고 해서 "어산재"로 개명 되었는데

광복 50주년을 맞아 옛 이름을 되찾고 이곳에 표석과 의사비를 세웠다고 한다

 

 

 

 

이 고개는 임진왜란전에는 신은현으로 불리다가 임란때 의사 김준신(金俊臣)이

이곳에서 의병을 모아 최초의 의병장이 되어

상주진에서 많은 전동을 세우고 임란 4월 25일 장렬하게 순절한 후부터 신의터재라 불리었다고 한다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호젓한 동구 밖 과수원길을 따라 신의터재에 도착했다

사과 향기속에 성큼성큼 다가오는 가을이 풍성했던 길 사람들이 중회지구를

"슬리퍼구간" 또는 "실버산행"이라는 말이 실감이 갈 정도로 편안하였던 길이었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8 : 40 ~ 16 : 20   (07시간 40분)      ◎ 날씨 : 아주, 맑음

 

 

Hearts Don't Lie - Joana Zim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