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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백두대간(완주)

백두대간 제12구간(늘재-비조령) 종주산행

백두대간 제12구간(늘재 - 속리산 - 비조령)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2년            10월            02일            (화요일)

◎ 산행위치 : 경상북도 상주시 화남면 화북면, 외속리면, 내속리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늘재 - 밤티재 - 문장대(文臟臺, 1.054m) - 신선대(1.026m) - 입석대(1.025m) - 비로봉(1.032m)

                      천왕봉(天王峰, 1.058m) - 대목재 - 피앗제 - 형제봉(兄第峰, 829m) - 갈령삼거리 - 못재 - 비조령

 

◎ 산행거리 : 늘재 ~ 3.2Km ~ 밤티재 ~ 4.1Km ~ 문장대 ~ 1.3Km ~ 신선대 ~ 2.6Km 

                      천왕봉 ~ 5.3Km ~ 피앗재 ~ 1.5Km ~ 형제봉 ~ 0.7Km ~ 갈령삼거리 ~ 2.4Km ~ 비재

                      도보거리   =   약 22.4Km           실제도보거리   =   약 24.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4 : 30 ~ 17 : 20  (12시간 50분)      ◎ 날씨 : 흐림 후, 맑음

 

            ◐ 한반도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의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 산행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의 병사봉(兵使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江)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 만으로

지리산의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하며,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 금수강산이 되었으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여의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별치 하나 없느 칠흑같은 어두움속에서 싸늘하게 느껴지는 늘재 고개이다

야광으로 만들어진 분수령의 표지판이 산객을 반기였으며~

늘재는 경상북도 장암리에서 충청북도 괴산군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이다

 

 

 

 

늘재-문장대구간이 가파르고 함란한 암릉으로 이루어져 입산통제 구간이다

국공파를 피해 통과해야 하는 구간이라 새벽에 역산행으로 시작하며~

출입금지 안내판 뒷쪽으로 목책을 넘는 순간 범법자가 되지만 당당하게 산행을 시작한다

 

 

 

 

한반도의 지리, 문화, 역사공부를 하러 산을 찾아 왔는데, 범법자라니~^

그래도 속리산 가을 풍경에 대한 설레임으로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움속에서 달빛에 의지하여 속리산을 향하여 몸을 맏긴다

 

 

 

 

지도상 629m봉을 넘어서고 고도를 높여가자 제법 난이한 암릉이 나타난다

무엇이 좋아 천리길 마다 않고 이 어둠속에서 암봉을 오를까요?

속리산 문장대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비경은 천하를 내려보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지도상 696m봉은 삼거리갈림길로 알바하기 쉬운 지점으로 주의 구간이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암릉으로 이루어진 바위 전망대이고~

마루금은 좌측으로 휘어지면서 급하게 떨어진다, 전망바위에 올라갔었지만 적막강산이었다

 

 

 

 

새벽 산행의 상쾌함은 온데간데 없고 무거운 마음으로 밤티재에 내려선다

여명이 밝아오면서 밤티재는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는데~

봉고차에서 4명이 내려서길래 좋아했는데, 약초꾼들이다

가을산에 맞추어 오고 싶었던 속리산이기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애인을 만나러온 기분이다

 

 

 

 

밤티재는 경북 상주시 화북면에서 충북 괴산군과 보은군을 잇는 고갯마루이다

밤티를 한자화 하여 밤율(栗) 고개티(峙)을 써서 율티라고 부르며~

"밤티"라고 부르게 된 것은 해발 500m로 앞뒤로 산이 높아 농작물이

잘 되지 않아 식량 걱정이 많게 되자 온 마을이 밤나무를 심게 되어 밤티라고 불렀다고 한다

 

 

 

 

밤티재~문장대 구간은 출입금지 구역으로 개발도 못하게 제한하면서 우리를 범법자로 몰아 세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양심과 법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만, 요즈음 백두대간을

관광 상품화를 외치고 고개마다 복원사업중인데, 국민들의 뜻을 져버리면서

백두대간을 걸어갈 수 없도록 하는 심보은 무엇일까요? 통제를 한다고 해도

산꾼들의 열정을 막아내지 못 할 것이고, 혹자도 뒤통수가 부끄럽지만 범법자가 되어 철조망을 넘어간다

 

 

 

 

쾌청한 하늘 아래 속리산 주능선의 모습이 드러난다

한국의 팔경 중 하나라는 속리산(俗離山)~

피곤한 몸이지만 당신 품속에 안기려고 잠도 못자고 새벽같이 걸어 왔소이다

 

 

 

 

위험한 암릉 구간은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작은 석문도 통과하기도 한다

예전에 TV에서 "공주의 남자"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었다

김종서의 손자와 세조(수양대군)의 큰딸 세령과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었던 드라마다

야사집인 "금계필담(錦溪筆談)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수양에 반발해 궁에서 쫒겨난 공주가 은거한 곳이 바로 속리산 자락이라고 한다

 

 

 

 

문장대 암릉 오름기이 길 찾기에 험난하다고 하였는데

빨강 화살표가 안전하게 길을 안내하고 있었으며~

선답자의 따뜻한 배령에 쉽게 암릉구간을 올라갈 수 있었다

 

 

 

 

커다란 이끼가 인상적인 멋진 바위들! 안개가 잦은 고산 지역은 이끼가 많다고 한다

무시무시한 바위 능선에 올라서니 시야가 트이고, 서서히 속리산 품속으로

들어서려는지 바위가 점점 많아지고, 위험한 구간이 나타나면서 힘든 산행이 이어진다

 

 

 

 

힘든 구간일거라 예상은 하였지만 바위 틈새로 몸을 옆으로 꼬아서

힘들게 통과하는 암릉지대가 장난이 아니다

겨울철에는 힘겨울 것으로 생각되는 곳으로 통과하면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조망이 확 트이면서 속리의 속살이 드러난다

아름다운 한국의 팔경 속리산!

칠형제봉(七兄第峰) 능선이 화려한 모습으로 다가선다

 

 

 

 

오늘은 석문과 개구멍을 계속해서 통과하면서 여성들의 산고의 아픔을 이해할 것 같다

좁은 석문이 마치 거대한 암석을 조가해 놓은 듯하고  밧줄타고

올라가는 것보다는 개구멍 통과하는 것이 훨씬 편안하고 세상 밖으로 나올때가 이런 모습이었나 싶다

 

 

 

 

거대한 석문으로 들어서면 협곡속의 직벽 암릉 구간이다

오를 산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곳인데요~^^

숨겨진 속살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협곡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암릉 직벽에서 짧은 Rope 구간은 가장 위험하고 험난한 구간이다

그래도 신비한 미로속의 협곡을 오르는 듯 하였고~

자연미가 살아있는 즐거움에 힘드는 줄 몰랐지만 팔힘이 부족한 여성분들은 힘뎌울 것으로 보여진다

 

 

 

 

협곡을 통과해 오르면 바위밑을 통과하게 된다

전망바위에 올라서면 속세를 벗어나

천상에 나라에 온 것처럼 속리산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지도상 916m봉에서 뒤돌아보면 지나온 마루금이 선명하고 언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청화산을 비롯해서 조항산, 대야산까지 백두대간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화려한 단풍은 볼 수 없어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산하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울~몽실님 새벽부터 암릉을 올라오면서 힘든 모습이 역역하다

여성들이 오르기에는 조금 버거운 암릉 코스이지만~

눈이 호강이어서 오금저리고 힘들었던 순간을 잊어 버렸다고 한다

 

 

 

 

<칠형제봉 능선이 웅장한 모습으로 지척에 나타난다>

칠형제봉과 산수유릿지 능선은 화북 공원관리소에서 청법대로 연결된 능선이다

1995년 청주 청심 산악회에서 개척 하였는데, 개척당시 9피치 를 개척하던 김선주씨가 추락 사망한 곳으로

고인을 기리는 뜻에서 9피치 40M 벽을 <선주벽>이라 명명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그 때가 산수유 필 무렵이어서 그 능선을 산수유릿지 능선이라 루르며, 마치 용이 꿈틀 거리듯 웅장한 모습이다

 

 

 

 

암릉 구간을 통과하니 문장대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

고도를 높여 갈수록 속리산의 산하는

고운 단풍이 물들면서 서서히 가을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문장대 주변에는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제각기 우아함을 드러내고 자랑한다

속리산은 580여종의 동물과 670여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특히 희귀시물인 백색 진달래를 비롯한 금낭화 등이 많이 자생하고 있어 비경을 더하고 있다

 

 

 

 

밤티재에서 대간기을 영구히 출입금지 한다고 공고를 해 놓았다

위반시에 50만원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말과 함께 백두대간 산꾼들을 범법자로 몰아가고 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자연을 아끼고 사랑한 사람들인데~

단속이 아닌 동식물 보호대책과 백두대간 종주를 위한 공존의 방법을 함께 머리를 맞대어 풍어야 할 것이다

 

 

 

 

포지석 우측으로 출입금지 구역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어 마음에 짐을 내려 놓는다

속리산은 조선 8경의 하나로 빼어난 암봉을 자랑하는 명산으로

9개의 봉우리가 있어 "구봉산"이라고 불었다가 신라 때부터 속리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문장대를 세번 오르면 극락에 간다고 한다>

필자는 이제 두번째 올라가므로 내년 가을에 한번 더 와서 극락의 한자리를 예약할까 한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극락에 갈 수 있다면 아무나 오르겠지요~^^

문장대에 오를 때처럼 교만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고 분별심을 버리라는 교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흰 구름이 봉우리 정상에 결려 있기 때문에 운장대라고 불리기도 한 문장대(文臟臺)!

정상은 수십명이 쉴 수 있는 암반으로 속리산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곳인데, 오늘은 박무로 인해서 시원한 조망은 볼 수가 없음이다

 

 

 

 

탁월한 조망과 암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관음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있다

묘봉과 삼학봉, 미남봉으로 이어지는 충북알프스 구간도 걸어보고 싶고~

관음봉 넘어로 묘보은 산세가 빼어나고 아름답고 묘하게 생겼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문장대(文臟臺, 1.033m)은 속리산에서 두번빼로 높은 봉우리이다

천왕봉으로 이어진 능선위로는 해가 솟아 있어 역광이라 아름다운 풍경은 육안으로 감상을 해야 했었다

문장대는 운장대라고 불리어 오다가 세조 임금이 복전암에서 감로수를 마시며 요양하고 있을 때

꿈속에서 월광태자가 나타나 인근의 영봉에 올라가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아리 현몽하여

운장대(雲藏臺)에 올랐더니 "오륜삼강"을 명시한 책 한권이 있어

세조가 그 자리에서 하루종일 글을 읽었다 하여 문장대(文藏臺)라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앞에 보이는 암릉 구간은 밤티재에서 우리가 올라왔던 능선이다, 속리산은 예로부터

산수가 아름다워서 그 아름다운 경치를 속리 36경이라 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문장대는 제 1경으로 문장기운(文臟起雲)으로 시인묵객들로 부터 절찬을 받아왔다

 

 

 

 

道不遠人 人遠道(도불원인 인원도), 山非離山 俗離山(산비이속 속리산)

바르고 참된 도는 사람을 멀리 하지 않는데, 사람은 그 도를 멀리 하려 들고~^^

산은 속세를 떠나 않으나~ 속세는 산을 떠나는구나~^^

신라 때 고운 최차원 선생이 속리산을 찾아보고 읊은 시를 떠 올리며 신선대를 향한다

 

 

 

 

속리산의 유래는 신라 말 진표(眞表)율사가 법주사를 중창하기 위해 보은 땅을 들어서는데

밭을 갈던 소들이 대사를 알아보고 일제히 무릎을 끓었다고 한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들이 저럴진대 하물며 우리야" 하며 대사를 알아보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그 길로 낫과 괭이를 버리고 속세(俗)를 떠나니(離) 속리산이란 이름이 유래 되었다 한다

 

 

 

 

<속리산은 예로부터 소금강산이라 일컬어 왔다>

호서 제일의 가람인 법주사가 있어 더욱 유명하여 1970년 3월 20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칡넝쿨, 할미꽃 모기가 없어 삼무(三無)의 산으로 유명하며 충청북도 보은군과

경상북도 상주시에 걸친 관계로 보은 속리산이라 부르기도 하고, 상주 속리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청법대는 다섯개의 봉우리가 마치 부처님이 앉아 있는 듯한 좌대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또한 옛날 어느 고승이 속리산 절경에 넋을 잃고 방황하다가

이 봉우리에서 불경 외우는 소리를 듣고 제 정신을 차렸다 하여 청법대라 불렀다고 한다

 

 

 

 

천혜의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속리산은 봄은 봄대로 봄의 향기가 있고

여름에는 맑고 시원한 계곡이 으뜸이며

가을은 형형색색 고운 단풍의 자태가 장관이고

겨울은 설경의 아름다움이 있어 계절별로 많은 산객들이 한번쯤 찾고 싶은 명산이다

 

 

 

 

신선대에서 바라본 청법대는 문수봉과 신선대 사이에 위치한 암벽이다

등산로가 없어서 청법대를 오를 수가 없으며~

샛길을 돌아서 우뚝솟은 바위위를 올라서야 봉우리들을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신선대휴계소는 주막의 지글지글한 감자전이 비씨면 어떻고~ 속리면 어떻냐~

당귀주 맛은 마셔봐야 그 맛을 안다꼬~ 당귀주는 술술 넘어가고~

감자전은 어찌나 맛이 좋던지~ 담숨에 마셨더니 속리산이 빙글빙글 돌더라~^^

 

 

 

 

아늑한 옛날 속리산 절경에 혼을 빼앗긴 한 고승이 청법대에서 불경소리를 듣고 멀리 남쪽 능선을 바라보았는데

산봉우리에서 백학이 수없이 날아 오르며, 춤을 추고 있고 백발이 성성한 신선들이 앉아서 놀고 있엇는데

그 모습은 고승이 평생 원하는 신선세계 인지라 황급히 청법대를 떠나 달려 갔으나 막상 당도하여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실망하고 아쉬워 하면서 그 자리를 떠나 다음 봉우리로 가서 다시 그곳을 바라보니

여전히 주위에는 백학이 놀고 신선들이 있었는데, 고승은 아직도 자신이 신선들과 만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느 그곳으로 달려갈 염두도 못했다고 한다, 그리하려 신선들이 놀던 봉우리를 신선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선대를 내려서면 경업대(慶業臺)와 법주사 갈림길을 만난다

경업대는 임경업 장군이 독보대사(獨步大師)를 모시고 심신을 단려하던 곳이다

법부사는 신라 진흥와(539~575) 14년(553)에 천축에서 불법을 구하고

돌아온 의신조사에 의해 창건 되었는데, 불법이 안주할 수 있는 탈속의 가람이라 뜻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사방이 험준한 이곳이 속세를 떠나 불법의 진리를 펼친곳이라 여겼다고 했다

 

 

 

 

조망바위에 올라 한동안 쉬면서 속리산의 아름다운 속살을 구경한다

이곳도 땅만 열심히 쳐다보고 걸어가면 찾을 수 없는 곳이며~

속리산 산행의 묘미는 숨어 있는 비경을 감상하는 것이지만 갈길이 바빠 아쉬운 마음이다

 

 

 

 

<입석대(立石臺)는 신선대와 비로봉 사이에 위치해 있다>

조선후기의 임경업장군이 7년동안 수도를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청법대와 마찬가지로 매무 험준하여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조선왕조 제 16대왕 인조 때 임경업장군이 이곳에 이르러 6년동안 마음을 달련할 때

그가 어느 정도의 단련이 그의 체력 한계가 어느 정도 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는 그것을 시험하러 했으나

기준조차 알 길이 없어 당혹하게 여겨오고 있었는데, 하루는 석굴에 앉아 정신을 통일하고 있는데

그 뇌리에 홀여히 형체는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임경업이 정신을 차리고 그 말을 들으니

"마주보는 석벽에 올라가 그 옆에 누워있는 돌을 비석처럼 세워 놓으면 그 힘을 측정할 수 있으리라" 하는 말이었다

임경업은 곧 경업대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 올라가 커다란 돌을 세우려 했으나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이에 임경업은 그 힘이 모자람을 깨닫고 다시 열심히 체력을 단련하여 마침내 수도 7년째되던 해에

반석(般石)위에 돌을 세우는데 성공 하였다, 그 후부터 "돌을 세웠다"고해서 입석대(立石臺)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비로봉(1.022m)은 진표율사가 속리산 법주사에 온 이튼날 아침 새벽 방안에서 자선을 할 때

밝은 빛이 방문 가득히 비쳤고, 이에 대사가 감짝 놀라 방문을 열었더니 맞은편 산봉우리에서

눈부신 햇빛이 오색 무지개를 띠고 비추고 있었다, 대사가 황급히 합장배례를 한 후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비로자나불 암석에 앉아 있다가 서쪽 하늘을 향하여 구름을 타고 떠났다, 대사는

비로자나불를 직접 배알 할 수 있었던 산봉우리를 비로자나불의 이름을 붙여 비로봉이라 하였다

 

 

 

 

비로봉 직전 침팬치 모자바위를 어떤분들은 오리처럼 생겼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원수이처럼 생겼다고도 하는데, 뭐 바위 모습이야

보는 사람에 따라서 생긴 모양새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해본다

 

 

 

 

속리산은 산세가 웅대하고 수려하여 옛날부터 선인들은 봉우리들을 푸른 연꽃

또는 옥(玉)으로 빚은 연꽃같기도 하고,또는 처음피는 연꽃 같기도 하고

멀리서 횃불을 벌리어 놓은 것 같다고도 하면서 이 산을 금강산에 버금가는 명산으로 일컬어 왔다

 

 

 

 

천왕봉 가는 능선에서 만나는 기암들의 천국이다

돼지바위, 물개바위 등의 형상이 마치 풍족한 충청도 인심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또한 사람키보다 큰 산죽군락이 사시사철 그 푸르름을 간직하며 생명력을 불어주어 더욱 좋아 보인다

 

 

 

 

<속리산의 능산길은 자연 그대로의 수석전시장이다>

보는 마음에 따라 갖가지 형상으로 보이는 기암괴석의 풍광을 눈에 하나 하나 담았다

걷다보면 지리산 천왕봉 아래 통천문과 같은 천황석문을 지나게 되는데~

아마도 욕심을 부리지말고 고개를 숙이고 숙연하게 걸어가라는 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상고암 삼거리갈림길이다, 속리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상고암이다

상고암(上庫庵) 산신각 뒤로 올라가 너럭바위에서 바라보면~

음부처럼 감추어진 계곡 구석구석이 보이고 속리산의 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장각동 갈림길의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조망도 시원하다

장각동(長角洞)은 소의 뱃속 모양의 명당터를

일컫는 우복동(牛腹洞)의 쇠뿔에 해당한다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천왕봉(天王峰, 1.058m)은 속리산의 주봉으로 한남금북정맥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속리산 9개 봉우리중 가장 남쪽 끝머리에 있는 봉우리이며~

옛날 대자재천왕이 해마다 10월 인일 축시에 내려와 법주사에서 45일 동안 머물다 하늘로 올라 갔다고 한다

 

 

 

 

속리산 주능선의 암릉이 수석전시장 같아 보인다

신라 진표율사가 비로자나불을 직접 배앐할 수 있었다는 비로봉은

천상선경(天上仙境)처럼 보이고 비로자나불의

의미처럼 진리의 햇살에 온 누리의 사바세계를 비추고 있는 듯하다

 

 

 

 

문장대의 유명세에 가려 속리산 주봉으로서 대접을 받고 있지는 못한다

속리산의 지면목은 아무래도 천왕봉에 올라보아 알 수 있으며~

사방천지 골과 산들이 겁쳐 구봉구대의 절경에 그윽한 맛은 단연 천왕봉이다

 

 

 

 

천왕봉에서 50m정도 내려오면 출입금지판 뒷쪽으로가 한남금북정맥이 시작된다

천왕봉은 백두대간이 가지를 친 한남금북정맥의 분기점이 되는 곳이며 ~

칠장산에 시작한 금북정맥은 태안 안흥진에서 사라지고 한남정맥은 문수산을 지나 바다로 사라진다

 

 

 

 

대목재 사거리갈림길에서 오른족은 도화동 대목리 가는 길이고 좌측은 장각동 방향이다

신라의 마지막 경순왕이 고려에 신라를 이양하고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는  영화를 누렸지만, 그의 처자식들은 어떠했는가!

마의태자는 월악산 덕주사에 동생 덕주공주를 두고 망국의 한을 품고

백두대간 하늘재를 넘어 소백산 국망봉에서 만을 달래다

금강산으로 들어가고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경순왕비 행적은 장각동 상오리마을에 있다고 한다

 

 

 

 

703m봉의 바위전망대에서 뾰족뾰족한 암봉이 병풍처럼 펼쳐진 구병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웅장하고 힘차게 요동치는 모습이 한 마리의 용이 살아 움직이는 듯 장쾌하며~

속리산 남단에서 동서로 길게 뻗은 능선을 바라보면 누구나 한번 오르고 싶은 충도을 느끼게 된다

 

 

 

 

거대한 암봉위에 솟아 있는 속리산 천왕봉이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발 아래 산들은 마치 천왕봉을 향해 경배를 올리는 듯 장엄하며~

천왕봉에서 내려와 바라보고 있는 나자신 또한 위대함을 느끼면서 마루금을 이어간다

 

 

 

 

<지도상 667m봉에 올라서면 대간길은 우측으로 90도 꺾어 진행한다>

좌측으로 장각폭포와 금란정이 있는데, 널찍한 소와 절벽위의 정자와 소나무가 잘 어우러진다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태양인 이제마>

<낭만산객>, <이순신> 등 촬영 장소로 유명하며 장각마을의 상오리 7층석탑은 보물 제 683호이다

 

 

 

 

속리산(俗離山)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산에 드는 순간 그 누그든 속세를 떠난다는 애기가 아닐런지요!

말하자면 이 풍진세상의 일은 잠시나마 잊어 버리고 절경과 선경에 취한다는 그런 산이라 일컬으지만~

천왕봉을 내려서는 순간 산길은 육산으로 바뀌고 이름도 없는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면서 수행자가 되어 버린다

 

 

 

 

<피앗재 고갯마루는 흔적만 희미하게 보인다>

하지만 옛날에는 충청도의 만수동 주민들이 경상북도 화북장을 보러 다녔던

중요한 고개였다고 한다,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만수동은 계곡 풍광이

빼어나 여름철이면 전국에서 피서객들이 찾아 들어 발디딜 뜸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피앗재는 원래 이곳이 옛날에 첩첩산중이라 피난지로 적합한 곳이어서 피화재(避禍峙)로 불렀다 한다

세월이 많이 흐르면서 음운변화를 일으켜 지금은 "피앗재"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며~

전쟁 때 전구 팔도에서 파난민들이 모여들어 생활하면서 지금도 고을 주민들은 팔도 사람들이 산다고 한다

 

 

 

 

천왕봉에서 대간길이 태풍을 몰고오 듯 파도처럼 일렁이는 산줄기가 장관이다

피앗재에서 형제봉 오름길은 상당히 까프막으로 체력이 고갈되어

엄청나게 힘이 들었던 구간이기도 하였지만,  형제봉에 올라서면

구병산으로 이어지는 충북알프스 영봉들이 펼쳐지면서 힘들었던 순간들이 보상을 받는다

 

 

 

 

형제봉(兄第峰, 832m)은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과 화남면

그리고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큰 암봉 두 개가 낙타 등처럼 솟았다 해서 형제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형제봉은 작얒지맥의 분기봉이기도 하다>

작약지맥(勺藥枝脈)은 형제봉과 갈령을 가로질러 대궐터산(877m), 국사봉(704m)

칠봉산(595.5m), 성재산(356m), 작약산(763m), 수정봉(486m)

태봉산(100m) 등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 드는 도상거리 약 50Km의 산줄기를 말한다

 

 

 

 

<형제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너무나 아름답다>

마치 신선이 되어 구름위에 떠 있는 것처럼 좌우로 펼쳐지는 산그리메를 바라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앞쪽으로 속리산이 좌로는 구병산이

우측으로는 청계산(두루봉, 대궐터산) 뒤로는 봉화산이 형제봉을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형제봉에서 급하게 내려서면 갈령삼거리에서 비재 방향은 우측이다

 

 

 

 

 

 

 

갈령(葛嶺, 680m)은 분기점에서 좌약지맥 방향의 좌측이다

칡(葛)이 많아 갈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한국전쟁 때 한국군 제 7연대가 인민군을 맞아 첫 승리한 화령장 전투중 격전지로 유명한 곳이다

 

 

 

못재 못 미쳐서 조망도 좋고 야영하기 좋은 헬기장이 있다

 

 

 

 

 

 

 

<헬기장을 지나고 못제에 이르기전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청계산 풍경이다>

청계산(淸溪山, 873m)은 산 모양새가 두리몽실하다 하여 두루봉이라고 인근 사람들이 부른다고 한다

우측에 대궐터산은  후백제을 건국한 견훤장군이 이산에 성을 쌓고 대궐을 지었다고 하여

청계마을 사람의 누군가에 의해 터궐터산이라고 부르게 되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상주의 역사지인 상산지에 전체를 청계산으로 표기 되어 있으므로 청계산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화북면 면지(面誌)인 <화동승람(化東勝覽)>에는 백두산 천지에 비할 가 못되지만

형체는 다 갖추었고 물이 마을 때도 있지만, 못(池)임은 분명하다

천봉(天峯)이 연립된 곳에 있는 못이니 정녕 이는 천작(天作)이요

천수(天水)로 된 천지다 꼭 커야만 되겠는가! 조화의 공이로다 라고 했다  <못(池)+제(堤)-=못재>

 

 

 

 

<못(池)+제(堤)에 대한 전설을 알아보면>옛날 견훤이 보은에 있는 삼년산성의 신라 황충장군과 싸울 때

배번 승리를 거두자 황충장군이 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염탐군을 보내어 알아보니

견훤은 기진맥진한 상태에서도 이곳 못제에서 목욕만 하면 힘이 솟구친다는 것을 확인 하였다

황충장군은 견훤이 지렁이 자손임을 알고 지렁이는 소금물에 약하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소금 삼백석을 풀게 하였다, 소금을 푼 물에 견훤이 목욕을 하고 난 뒤 힘이 빠진 견훤을 쳐서 이겼다고 한다

 

 

 

 

<비재를 내려오면서 억시기 갈림길을 만난다>

억시기마을은 경북 상주군 화남면 동관 1리 자연마을로 농사를 지어 억석을 할 부자가

날 곳이라고 한다, 화전(火田)으로 개척 되었지만, 6.25 한국전쟁 후

난민정착촌이 되어 지금은 큰 마을이 되었다, <억시기는 매우 억척스럽다는 뜻이라 한다>

 

 

 

 

지도상의 500m봉에 도착하면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이곳에서 비조령까지는 급경사 내리막길로 까플막하며~

오늘도 밤치재에서 문장대까지 비탐방구역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다

 

 

 

 

대간길 곳곳이 그렇듯 이곳 상주, 보은도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이고, 옛부터 양국간의 싸움이 잦았던 곳이다

백제가 멸망하고 훗날 후백제를 세운 견훤에 대한 설화가 이곳 비재에서 전한다

견훤은 문경시 가은읍에서 태어났으며, 삼국사기에는 견훤을 가은 출신 아자개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어느 날 부모가 농사일을 하면서 강보에 싼 아기를 숲속에 두었는데,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여 이상하게 여겼다

또 다른 이야기는 광주의 한 처녀가 밤바다 찾아오는 건장한 청년과 정을 통했는데, 정체가 궁금하여

옷고름에 실을 꿰어 놓았다가 아침에 따라 보았더니 커다란 지렁이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해서 낳은 아들이 견훤이라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견훤의 아버지가

지렁이 일 수는 없겠지요? 당시 세 영훙(견훤, 궁예, 왕건) 중 최후 승리자였던 왕건이 남기 이야기가 아닐런지~

 

 

 

 

<비재는 동쪽의 동과과 서쪽의 장자동 사이에 있는 고갯마루이다>

새가 나는 형국이라 해서 비조재 또는 비조령이라고 불렀다는 내용도 있으나 현재는 비재로 통일해서 부른다

비조 마을은 비조투림(飛鳥投林)의 좋은 터가 있다는 비조령 아래에 있어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하며~

북동쪽 청계산에 후백제 왕 견훤이 쌓았다는 성산산성이 있고, 대궐터, 차력굴, 주춧돌, 우물터 등이 곳곳이 있다

 

 

 

 

속리산의 비경을 속속들이 보지는 못했지만, 오늘 산행은 진한 감동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위험한 암릉 구간을 통과하면서 힘들었지만 선경의 아름다움에 힘든 것도 잊어 버렸으며

엉금엉금 기어 올랐던 직벽의 오금저렸던 순간들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은 즐거운 산행이었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4 : 30 ~ 17 : 20  (12시간 50분)       ◎ 날씨 : 흐림 맑음

 

 

Winter Light / Sarah Bright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