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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백두대간(완주)

백두대간 제13구간(늘재-버리미기재) 종주산행

백두대간 제13구간(늘재 - 대야산 - 버리미기재)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2년         10월          14일          (일요일)

◎ 산행위치 : 경상북도 문경시 농암면, 가은읍 /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늘재 - 청화산(靑華山, 970m) - 갓바위재 - 조항산(鳥項山, 981m) - 고모치(680m) - 밀재

                      대야산(大爺山, 930.7m) - 촛대봉(661m) - 불란치재 - 곰넘이봉(733m) - 버리미기재

 

◎ 산행거리 : 늘재 ~ 2.4Km ~ 청화산 ~ 4.6Km ~ 조항산 ~ 4.3Km ~ 밀재 ~ 1.2Km 

                      대야산 ~ 1.3Km ~ 촛대봉 ~ 1.3Km ~ 곰넘이봉 ~ 1.1Km ~ 버리미기재 

                      도보거리   =   약  16.7Km           실제도보거리   =   약 18.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7 : 30 ~ 18 : 30  (11시간 10분)      ◎ 날씨 : 아주 맑음

 

            ◐ 한반도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의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 산행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의 병사봉(兵使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江)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 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하며,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 금수강산이 되었으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여의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열을전에는 새벽에 목책을 넘어서 속리산(문장대)을 올랐던 감동이 아직도 남아 있다

오늘도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하는 대야산구간 산행으로 거리는 짧은 구간이지만

백두대간 구간중에 가장 위험하다는 직벽 구간을 통과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구간이다

 

 

 

 

늘재는 낮은 고개지만 민초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는 지역을 나누고 삶의 젖줄이 되어주는

물줄기를 가르는 곳이기에 그 의미 만큼은 어느 높은 고개 못지 않게 크고

당당하게 그 이름을 남기는 곳이다, 늘재는 고개위에 느름나무가 있으므로

눌재라 불리기도 하고 양쪽에서 올라오는 고개가 완만하여 늘어진 고개라하여 늘티재라 부른다

 

 

 

 

청화산 들머리입구에 백두대간 표지석이 늘재의 지킴이로 우뚝하다

백두대간상의 모든 산하와 조형물은 개인의 소유일 수가 없고 백두대간 자체가 국립공원이다

자비를 들여 기증을했든 국가세금으로 만들었든 목적물에 고유명칭만 기재하면 되는데

국가 또는 지자체명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상주시장, 대학총장 등의 이름들이 왜 돌에 새겨 넣어야 하는지~

 

 

 

 

백두대간 성황당 유래비(城隍堂 由來碑)라고 적혀 있다

다시말하면 백두대간을 지키는 수호신을 모시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런지요

두손으로 합장을 하고 국태민안, 경제회복, 독도사수를 마음속으로 목례를 하면서 좌측으로 들머리에 들어선다

 

 

 

 

늘재는 속리산에 내려와 청화산으로 기운을 다시 뽑아 올리는 허리부분으로

오름길 곳곳에 낙락장송과 어우러진 암봉들이 있어서

초입부터 발걸음을 가볍게 하였으며마주보고 있는 속리산(俗離山)이

남성미를 자랑한다면 청화산(靑華山)은 부드러운 여성미를 갖춘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정국기원단(精國祈願壇) 비석엔 "白頭大幹 中元地" 등의 글씨가 새겨져 있고

돌로 다듬은 향로가 양쪽에 마련되어 있는데

"정국(靖國)"이란 용어는 조용하고 편안한 나라라는 뜻으로서

아마도 이곳에서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를 올리고

"백두대간 중원지"라고 한 것은 현재 남한에서 동서남북의 한가운데란 뜻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또한 백의 민족 성지 부실기조 삼파수(白衣民族 聖地 不失基祖 三巴水)라 적어 놓았는데

삼파수란 세갈래 물줄기가 나뉘는 근원지이며,  <부실기조란>

조상을 잃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곳이 삼파수와 같이 우리 민족의 뿌리와 같은 성지라는 의미인것 같다

 

정국기원단(靖國祈願檀)은 나라를 평안하게 해달라는 기원단과 의병장 이강년장군의 공덕비라고 한다

이강년은 조선말기 의병장으로 1880년 무과에 급제하여 용양위부사과로서 선전관이 되었으나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1885년 명성황후(明成皇后) 민씨(閔氏)가 시해되자

1896년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켜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 등 부정 관리를 효수(梟首)하고

이어 제천(堤川)의 유인석(柳麟錫)과 합류 유격장이 되어 문경새재 조령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한,일신협약으로 조선군대가 해산당하자 단양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충주(忠州)를 공격하였다

싸릿재, 유치, 죽령 등지에서 전과를 올리며, 1908년 가평에서 승리한 뒤 적의 기습으로 부상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밧줄구간도 나타나고

등로길 참나무도 누런 모습으로

가을색을 띄기 시작하면서 가을이 깊어감을 느끼게 한다

 

 

 

 

늘재에서 청화산 오름길은 된비알이지만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올라가면서 뒤돌아보면 산아래 마을이 보이고

산세가 수려한 속리산의 파노라마에 취해 신선이 되는 기분이 들면서 시간이 가는줄 모른다

 

 

 

 

청화산인(靑華山人)이 말한 것처럼 속리산의 천봉만학이 하늘금을 그리며 남쪽으로 이웃한

도장산과 청계산(두루봉, 대궐터산) 넘어로 봉황산까지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장암리는 마을 뒷산에 웅장한 바위가 많아 장암리요

용유리는 암수 한쌍의 용바위와 용이 놀았다는 바위자리가 있으며

용유동은 병화가 침범하지 못한다는 마을로 즉 전쟁이나 천재지변에서도 안심하고 살수 있는 십승지인 것이다

 

 

 

 

택리지 이중환은 청화산 일대를 복지(福地)라고 했다 청화산 아래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 마을을

오래전부터 풍수적 측면에서 실제 소의 배속(牛腹洞)처럼 안온하다는 十勝地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시루봉-청화산-늘재-문장대-천왕봉-형제봉-갈령-도장산으로 이어지는

둥근 산줄기 안의 분지에서 바깥세상으로 트인 곳은 시루봉과 도장산 사이 용유리의 병천뿐이니

이 일대가 바로 牛腹洞이라는 것이다~ 이중환은 실학자이면서도 많은 부분을 풍수사상에 의존하고 있다

 

 

 

 

이정표 우측으로 청화산정상이 있는데 무심코 가다보면 우측에 정상석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날칠 수 있다

이중환이가 "대간" 이라는 명칭을 처음 택리지에서 사용했다는 것이다,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은

약 1.000년 전 고려 건국이념에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지리 개념으로서의

대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중환이가 처음이며 조선 중기 대표적인 지리학자라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청화산(靑華山, 984m)은 경북과 충북 3개 시, 군의 경계를 이루며 충북 괴산군 중앙에 솟아 있다

산죽군락과 소나무가 많아 겨울에도 푸르게 보인다 하여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청화산(靑華山)은 앞 뒤의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보다 낫다 라고 할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다

 

 

 

 

청화산은 산아래 청운동마을과 남쪽 방향에 신화동마을 동쪽으로 화실이란 마을이 있어

자연스럽게 화산이라 불렀는데 속리산보다 경치가 아름답다 하여

조선의 지리학자 이중환이 스스로의 호를 "청화산인"이라 불리면서

청화산이 된것 같다 청화산은 지도상 대부분의 높이가 984m로 되어 있는데

정상 표지석의 높이는 970m로 되어 있고 표지석 글씨채 색깔이 청색으로 씌여 있는것이 특징이다

 

 

 

 

청화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내려서면 조항산과 시루봉 갈림길이 나타난다

직진하면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우복동천 환종주코스이며

백두의 길은 좌측으로 꺾어지고 속리산을 기준으로

서쪽산들의 구병산 종주코스는 충북알프스 군이고 동쪽산군의 종주코스는 우복동천코스이다

 

 

 

 

청화산 정상에서 동서남북의 산새는 웅장함과 부드러움이 잘 조화되어 있다

암벽과 오색 찬란한 단풍이 잘 어우러져

아름다움게 물들은 단풍들이 바위와 어우러져 환상의 적인데 이중환이가 왜 단풍애기는 안했는지~

 

 

 

 

청화산을 찾았다가 요즘말로 표현하면 청화산 경치에 뿅 가서 자신의 호를

"靑華山人"으로 起名했다는 인물이 이중환이다

그가 최고급 형용사를 총 동원하여 극찬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곳에서 바라보지 못한자는 이해를 못할 것이다

 

 

 

 

궁기리가 속해 있는 문경 가은읍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태어난 고향답게 견훤과 얽힌 전설이 많은 곳이다

궁기리는 견훤이 군사를 모아 놓고 훈련하던 곳이라 했고 궁기리 아랫 마을 말바위는 견훤이 야생마를

길들여 천하 명마를 만들어 타던 중 말과 화살이 누가 빠른가 내기를 하였는데,  활을 쏘고

말을 달려 말이 졌다는 성급한 생각으로 말의 목을 치니 그 때서야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산은 본디 하나의 뿌리로부터 수 없이 갈라져 나가고 물은 본디 다른 근원으로부터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라 했다

문경의 산천은 천하제일의 형세를 갖추었다 백두대간으로부터 시작된 대간의 줄기를 따라

수없이 갈라져 나온 반도의 산들 그 중에서 문경의 산들은 백두대간 전 구간 중  거리가

가장 긴 구간(110Km)을 간직하고 있으며 1,000m 이상의 산만도 9개나 있는 백두대간의 척추(脊椎)라 할 수 있다

 

 

 

 

사방이 온통 흰구름으로 둘러싸인 산! 내가 산 안에 있는 것인지~ 산이 내 안에 있는 것인지~

내 마음이 님 안에 있는 것인지~ 님의 마음이 내 안에 있는 것인지~

구곡산에 들어가 노자의 도교 사상을 집대성했던 자연주의자 양나라 도홍경의 마음은 어찌 하였을꼬~

 

山中何所有 (산중하소유) 嶺上多白雲 (영상다백운) 산 중에 무엇이 있는가 산봉우리에는 흰구름 뿐일세~

只可自怡悅 (지가자이열) 不堪持贈君 (부감지증군) 다만 혼자 즐길 뿐! 임에게 보내드릴 수가 없구나

 

도홍경 그대는 구곡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는가 오늘 나는 조항산에서 사방을 무채색으로

만들어 놓은 구름속에서 이 순간 만큼은 세속의 모든 것을 비워내고 잊어 버리는 신선이 되어 보려네

 

 

 

 

갓바위재로 향하는 능선길은 암릉의 연속으로 도상거리가 말해주듯이

암릉으로 이루워진 산들이라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의외로 상당히 힘드는 구간이지만 이중환이가 말했듯이 골골히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에 시간 가는줄 모른다

 

 

 

 

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오양동으로 가는길에 의상저수지가 있다

수령 600여년이 넘은 노송이 서 있는데

뒤틀린 모양 때문에 용송(龍松)이라고 불우리고 천연기념물 제 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계곡에서 흘러든 물이 만나 호수를 이룬 의상저수지는 여름철에도 발을 담그지 못할 정도로 차고

신록의 푸르름과 더해진 의상저수지는 물이끼가 적어 깨끗함을 자랑하며

마을 사람들이 상수원으로 사용할 정도로 깨끗해 겨울철에는 의상저수지에서 강태공들의 빙어잡이도 구경할 수 있다

 

 

 

 

갓바위재는 청화산과 조항산 사이에 위치하며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와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를 잇는 고갯길로

고모치는 삼송리가 충북지역으로 편입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삼송리에서 이 고개들을 넘어

농암면의 궁기리를 거쳐 소재지로 가는 통로였었다고 한다 당시는

갓바위재보다는 옆에 있는 고모치를 주로 많이 이용했으나 지금은 고모치로 넘던 길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지 않아

풀밭으로 변했고 갓바위재길은 의상저수지에서 오르는 등산객이 자주 이용하여 그나마 옛길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다

 

 

 

 

갓바위재를 지나 조항산 오름길의 헬기장! 따스한 햇살은 산야의 골짜기를 더듬고

억새는 솜털같은 미소로 낯선 나그네의 발길을 맞는다

암릉에서 힘든 여정은 가을바람에 사라지고 헬기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만 조항산을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갓바위재에서 조항산을 오르는 길에는 수많은 기암들이 나타나고

그리하여 바쁜 걸음이지만 많은 시간이 걸린다

암릉길에서 주위의 산군들을 바라보면 이중환이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암봉 아래의 마을은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마을 풍경이다

후삼국시대를 풍미했던 견훤이 활을 쏘며 야망을 키웠던 마을이라고 한다

아랫동네 궁기리의 옛 지명은 고모리(古毛里)였고, 이를 넘나들던 고개여서 고모치(古毛峙)라 한다

"고모"라는 지명이 많은데 이는 새가 높은 곳에서 춤을 춘다는 의미인 고무(高舞)의 발음이 변화된 것으로

고모(古毛), 고무(高舞), 조항(鳥項) 등은 괴산 방향의 삼송(三松)리라는 지명과 함께 모두 새와 관련된 지명이다

궁기는 우리말로 "궁터"라는 뜻으로 후백제의 견훤이 이곳에 궁을 짓고 군사를 훈련시킨데서 유래하였다 하여

이터골, 옛터골, 궁터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당초 문경현에는 궁기리라는 동명이 없고 고모리가 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모리와 마암리(馬岩里) 일부를 병합해 궁기리로 개편하고 농암면에 편입되었다

 

 

 

 

조항산 정상을 앞두고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암릉과 그 뒤로 청화산을 지나 멀리 속리산 천황봉과 문장대로

이어지는 속리산 주능선이 조망이 된다~ 청화산이란 이름이 지어진 유래는 수십리 밖 어디에서

바라보아도 항상 화려하고 푸르게 빛나고 있어 청화산이라 불렀다는 실학자 이중환이의 이야기다

청화산 아래에 있는 마을 이름도 청산리, 청화동으로 불리고, 정자 이름까지 청화정, 청화연이라 부를 정도이다

 

 

 

 

잠시 땀을 식히며 바람에 몸을 맡기고 우리의 인생을 생각해 보면 산과 같지 않을까?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좌절과 실패도 언젠가 뒤를 돌아 보았을 때

정상에서 바라보는 산처럼 넉넉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앞에 보이는 산이 조항산이다

 

 

 

 

조항산을 눈 앞에 두고 암릉 직벽구간을 내려가는 길이다~ 산림청이 선정한 한국 100대 명산 중에도 문경은

주흘산(1,106m), 황장산(1,077m), 희양산(999m), 대야산(930m) 등 4곳이 포함되어 있다

문경의 산들은 호랑이의 등뼈같이 튼실한 바탕 위에 수많은 골짜기와 계곡에서 물이 솟구치는 바로 영강이다

영강(穎江)은 명산인 상주 속리산을 포함해 여러 개의 문경 명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받아 생긴 명품 강(江)이다

 

 

 

 

조항산(鳥項山, 951m)은 천재지변으로 일어난 홍수 때 물에 떠 있는

봉우리가 새 머리를 닮았다하여 "조항산이라 한다

마귀할멈통시바위에서 조항산을 바라보면

갓바위봉이 새의 부리로 보이며 조항산 정상부는 새의 머리로 보인다고 한다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 주민들은 예전부터 조항산을 "갓바위봉"이라 부른다

옛날 천지개벽으로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정상바위 꼭대기만 "갓(冠帽)" 만큼 물 위로 나와 있었다는 전설에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궁기리에서 이 산을 바라볼 때 정상부가 M자형으로 봉우리가 두 개로 보인다

두 봉우리 중 실제 정상인 왼쪽 봉이 갓 바위봉보다 낮게 보인다, 오른쪽으로 정상보다

높게 보이는 바위봉을 두고 주민들은 갓바위산이라 부르는 것이다 갓바위산에 따온 명칭이 갓바위재다

 

 

 

 

북쪽으로 대야산과 악휘봉, 장성봉등과 함께 시원하게 바라보인다

마귀할미통시바위 암릉 우측으로 둔덕산이 그 뒤로는

암골미가 빼어난 희양산을 비롯해서 백화산, 운달산 등 거대한 산군들이 태풍이 밀려오듯 다가온다

 

 

 

 

고모치(古毛峙)는 대야산과 조항산 사이에 있는 고개다

이 고개 역시 백두대간의 높은 산줄기를 사이에 두고 삼송리 주민들이 농암을 오갈 때

이용하던 고개로 지금은 이 고개를 넘는 사람들은 없다

다만 봄철 산나물을 뜯는 주민들만이 간간이 오갈 뿐이며~ 고모샘은 우측으로 10m 아래에 있다

 

 

 

 

고모치와 관련된 옛 전설에 의하면

옛날 궁기리에 살던 고모가 삼송리에 사는 조카에게 갔다가 저녁 늦게서야 집으로 되돌아 갔다

겨울철이라 마침 폭설이 내리고 엄청난 추운 날씨였다 고모가 떠나고 폭설이 내리자 조카는 아무리 생각해도

늦은 밤길과 추운 겨울날씨속에 재를 넘어간 고모가 걱정이 되어 고갯길을 뒤따라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고모는 고모치 고갯마루의 서낭당 근처에서 탈진한 상태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고모의 조카는 고모를 부축하여 함께 고개를 내려가려고 시도를 했으나

심한 폭설과 추위에 견디다 못해 둘 다 얼어 죽었다는 안타까운 애기가 전해져 오면서 이곳을 고모치라고 부른다

 

 

 

 

지도상 854m봉인 통시바위갈림길에 도착한다

오른쪽은 둔덕산으로 가는 길이고

마루금은 좌측으로 휘어지면서 능선을 따라 진행한다

 

 

 

 

낭만이 이리 저리 뒹굴고 산야는 온통 가을색으로 갈아 입고 무엇이 급한지

가을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서둘러 길을 떠나려 한다

가을아! 떠나지 않으면 안되겠니~ 이몸이 진부령에 도착할 때 떠나면 안되겠지~ 눈오면 나는 못간다

 

 

 

 

지나온 백두의 길이 한눈에 조망되면서 조항산과 청화산은 점점 멀어지고

가을을 붉게 물든 산야가 조화를 이루면서

지치고 힘든 산꾼에 마음을 달래주지만 아직도 대야산을 넘어야 하고 가야할 길은 멀기만 하구나

 

 

 

 

지도상 849m봉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우회하는 길도 있었지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849m봉을 꾸역꾸역 오른다

힘들게 정상에 올라서면 넓다란 암반이 있을 뿐 아무 특징도 없는 봉우리다

 

 

 

 

849m봉에서 바라보는 대야산! 산세가 수려한 자연경관과 아름다움으로 알려진

대야산은 사계절 모두 특색을 지니고 있으며

연중 탐방객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은 100대 명산으로 원래 이름은 선유산(仙遊山)이었다고 한다

 

 

 

 

밀재는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용추계곡을 끼고 대야산 등산로와 충북 괴산군 청천면 상송리의

농바위, 희양골을 따라 오르는 등산로와 만나는 지점의 고개로 밀림지역이었는데

이 고개를 넘으려면 밀림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고 하여 원래 어원은 밀목령(密木嶺)이었다고 한다

 

 

 

 

밀재는 출입금지구역이다 하지만 지자체에서는 어느 등산로보다 정비가 잘 되어 있다

국립관리공단에는 생태계 보호란 대명제와 백두대간 종주자와

지자체가 한사람이라도 더 관광객을 유치하려면서 충돌해야 하는 우리의 산야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야산 오름길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강렬한 피톤치들 내품는다

대야산 하면 용추계곡을 빼놓을 수 가 없으며

견훤 유적지, 봉암사 등이 인근에 자리잡고 있어 가족동반 휴양지로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무를 바쳐놓지 않으면 대문이 닫혀버린다고 하네요

주변에는 거북바위, 대문바위, 코끼리바위, 호랑이바위 등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마치 바위들의 전시장을 방블케할 정도로 산을 가득 메우고 있다

 

 

 

 

중대봉 갈림길에서 대야산은 우측으로 오른다

암릉구간이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으며

이곳에서 부터는 줄타기를 열심히 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고락불이(苦樂不二)라는 말이 있다

작은 고통을 이겨내면 작은 즐거움이 오고, 큰 고통을 이겨내면 큰 즐거움이 온다라는 말인데

무한한 고통을 이겨낸 자리 그 자리가 바로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일 것이다

고락(苦樂)은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몸이고 고통과 즐거움은 반복되는 것일게다

백두대간의 많은 봉우리를 반복해서 오르내리면서 기대하는 것은 없지만 고생끝에 즐거움이 있다는 애기다

 

 

 

 

백두의 주인인 나무와 바위들과 친구가 되면서 한발한발 걸어서 대야산까지 왔다

스치는 바람과 모든 동식물을 만나면서 밤하늘에 별빛도 벗삼고

구도자의 마음으로 백두대간에서 가장 힘들다고 하는 대야산에서 천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대야산은 충청북도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시에 걸쳐 있는 산이다

속리산, 청화산을 지나 희양산으로 이어지기 전에

우뚝솟은 봉우리로 선경이 뛰어나고 계곡이 아름다운 산으로

경상북도 쪽에는 선유동계곡과 용추계곡, 충청북도 쪽으로는 화양구곡이 자리잡고 있다

 

 

 

 

대야산 정상은 암반으로 이루워져 있는데

좌측이 천길 낭떨어지인데

암벽사면을 가느다란 Rope에 의지해 오르는데 간담이 서늘할 정도다

 

 

 

 

산행은 인생이다 라고 했다 산행을 하면서 배낭을 메듯이 누구나 업보를 등에 달고 생을 시작한다

처음 출발하면서 숨이차고 다리가 후들거려 그만 산행의 끈을 놓고 싶을때가 있었지만

그 순간들을 이겨내고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면 나의 발자취가 아름다운 강산에 남아 있을 때 보람을 느낀다

 

 

 

 

인생을 살면서 앞만보고 목표만을 위해 산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강산을 보지 못할것이고

자아를 알지 못하고 항상 불평과 불만에 사로 잡히기 마련이리라~

한번쯤 자신의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고 자숙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다면

산야에 피어있는 들꽃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백두대간을 걸어 보아라 그러면 비어있는 마음이 채워질것이다

 

 

 

 

대야산(大耶山, 930.7m)은 동서에 신선이 내려와 노닌다는 내외 선유동(구곡)의 승경을 거느린 명산이며

원래 이름은 선유산(仙遊山)이었다고 한다 여지도서와 대동지지 문경조등에 대야산으로

대동여지도 문경조에는 대치산(大治山)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뜻의 의미는 드러나지 않으며

전설적인 속설로는 옛날 홍수 때 정상의 봉우리가 대야만큼만 남아 있었다 하여 대야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동쪽골은 그 유명한 선유계곡으로 옛 시인의 묵객들이 앞을 다투어 해맑은 시상을 읊조렸다 하며

괴산의 선유골과 양대 맥을 이루면서 절경 중에 절경이라 하였겠는가  웅장한 기상으로

선유를 품고 송곳처럼 날카로운 천길 절벽은 간담을 서늘케 할 정도로 만성적인 포효함이 있는 산이다

 

 

 

 

大耶山에 올라 온 天下를 굽어보니 山은 수도 없이 많은데

똑 같이 생긴 산(山)은 단 한 곳도 없구나

백두대간 중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산 가운데 하나로 정상에서의 조망은 환상적이다

 

 

 

 

대야산의 악명 높은 암릉 직벽구간으로 백두대간 유격훈련장이기도 하며

백두댁간상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곳이다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의 결연한 의지처럼 마음을 잡고 직벽구간에 도착했지만 그야말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공포의 대야산 직벽구간은 100m가 넘는데 3단으로 되어 있다

사진상으로는 그렇게 위험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Silver세대들은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기 조차 힘들 정도로 아찔한 직벽구간이다

 

 

 

 

이렇게 위험한 백두대간길은 누가 맹근겨 울~몽실 할매는 무서워서리 말문이 떨리고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백두대간종주를 접고 싶지 않했는가 봅니다

긴장과 공포를 만끽하고 내려서니 힘겨움속에서도 성취감에 도취되어 백두대간을 완주하는 기분이었다

 

 

 

 

백두대간 중 가장힘들다고하는 속리산 암릉구간과 대야산 직벽구간은 악명높은 구간이며

다음구간인 희양산 오름길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울~몽실 할매하고 내려오면서 더더욱 긴장감이 감돌았는데요 팔 힘이 부족한 여성분들은 주의할 곳이다

 

 

 

 

촛대재에서 오른쪽으로 월령대로 하산길이 열려 있는데 울~ 몽실님 직벽구간에서 혼줄이 났는지

다리가 떨려서 못가겠다고 탈출할곳을 애처롭게 쳐다보고 있다

버리미기재까지는 아직도 멀었고 해는 져물어가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음 촛대봉을 향해 마루금을 이어간다

 

 

 

 

밧줄구간이 없다고 간신히 꼬셔가지고 왔는데 촛대봉을 오름길도 암릉구간이다

그래도 해냈다는 자신감과 뿌듯함을 간직하고 암릉을 오르는데

조금전에 지나왔던 대야산의 수직절벽이 눈앞에 보이면서 바라만 보아도 힘이 쪽 빠진다

 

 

 

 

촛대봉(661m)은 경상북도 문경시 농암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대야산과 불란치재 사이에 아담하게 솟은 봉우리였으며~

아무 특징이 없는 능선길에 정상석만이 지나가는 산객을 반긴다

 

 

 

 

불란치재는 촛대봉과 곰넘이봉 사이에 있는 고개로 행정적으로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 관평리와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를 동서 방향으로 연결하고 있다

옛 문헌에는 불한령(弗寒嶺), 불원치(佛院峙), 불한현(弗寒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뜻을 풀어보면 춥지 않은 고개라는 의미로 이 곳의 지형을 보면

촛대봉과 곰넘이봉 사이의 깊은 계곡길로 두 봉우리 양쪽으로는 다시 대야산과

장성봉이 가로막고 있어 한겨울 찬 바람에도 포근하다고 하여

불한령(弗寒嶺)으로 불린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불란치재는 "불이났던고개"라는 뜻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곰넘이봉 오름길은 헬기장을 지나자 마자 곧 바로 암릉 구간이 나타난다

해가 넘어 가기전에 한 발자욱이라도 더 가고 싶어 재촉하지만~

장시간 산행으로 힘이 소진된데다 곰넘이봉은 가도가도 끝이없는 길이다

 

 

 

 

미륵바위(일명 : 촛대봉, 668m)는 큰 집채만한 암반위에 절묘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여인의 몸매마냥 미끈한 조각 작품과 같아서 산꾼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한번 올라가고 싶었지만 어둠이 내리고 갈길이 바빠 눈만 마주치고 곰넘이봉을 향한다

 

 

 

 

대야산 직벽구간만 통과하면은 오늘 산행길은 쉽게 끝날 줄 같았다

하지만 곰넘이봉의 암릉길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으며~

곰넘이봉(733m)은 옛날에 곰이 넘어 다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곰넘이봉에서 바라보면 지나온 대야산과 촛대봉이 한눈에 조망된다

 

 

 

 

 

 

 

<곰넘이봉을 내려서면 세 개의 암릉을 넘으면서 밧줄은 계속된다>

또한 비탐방구역이라서 길이 희미한 바람에 왔다리 갔다리 알바를 하기도 하였다

직벽에 가까운 암벽을 오르내리는 길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으며~

곰넘이봉을 넘는 길은 집중력이 떨어지면 크고 작은 사고와 알바를 단골로 하는 구간이다

 

 

 

 

곰넘이봉에서 버리미기재까지는 세 개의 암릉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야 이런 암릉은 우습게 생각할런지 모르겠지만~

실버세대 또는 여성분들이 오르내리기에는 조금은 위험스런 구간이다

 

 

 

내림길에 멋진 소나무에서 인증샷을 찍는 뷰~포터존이다

 

 

 

 

 

 

 

장시간 산행끝에 마지막 봉우리(555m) 헬기장에 안착한다

비탐방구역에서 무사히 도착하니 너무 행복 하였으며~

이곳의 헬기장에서 버리미기재까지는 15분이면 갈 수 있다

 

 

 

 

<장시간 산행과 우여 곡절속에 어렵게 버리미기재 펜스를 통과한다>

지킴이 초소가 있는 버리미기재는 한참 도로 공사중이어서 자재가 온통 도로가에 널부려져 있었다

경북 문경의 가은땅과 충북 괴산 선유동을 오가는 고개의 버리미기재는 "보리나 지어먹던"

궁핍한 곳이라는 설도 있고,  다른 말로는 "벌어먹다"의 경상도 사투리에서 비롯한 지명이라고 한다

 

 

 

 

선답자들이 종주를 마치면서 이구동성으로 백두대간에서 가장힘들다는 구간이 대야산 직벽구간이다

청화산에서 조항산으로 이어지는 산세는 짜릿하면서도 사방팔방 시원한 조망이 아름다웠으며~

대야산 공포의 직벽구간을 내려오면서 오금저렸던 순간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7 : 30 ~ 18 : 30  (11시간 10분)      ◎ 날씨 : 아주 맑음

 

 

ieu Jolie Candy / Frank Pourc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