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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백두대간(완주)

백두대간 15구간(이화령-하늘재) 종주산행

백두대간 제15구간(이화령 - 조령산 - 하늘재)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3년         06월         16일          (일요일)

◎ 산행위치 : 충북 괴산군 연풍면 / 충주시 상모면 / 경북 문경시, 문경읍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이화령(이우릿재) - 조령샘 - 조령산(鳥嶺山, 1,026m) - 신선암봉(937.2m)

                      깃대봉 - 조령(제3관문) - 마폐봉(馬牌峰, 927m) - 북암문 - 동암문

                      부봉삼거리 - 주흘산갈림길 - 평천재 - 탄항산(월항상봉, 857m) - 모래산 - 하늘재

 

◎ 산행거리 : 복성이재 ~ 2.7Km ~ 조령산 ~ 1.7Km ~ 신선암봉 ~ 4.2Km ~ 조령(제3관문) ~ 1.2Km 

                      마폐봉 ~ 3.4Km ~ 동암문 ~ 2.3Km ~ 평천재 ~ 1.1Km ~ 탄암산 ~ 2.7Km ~ 하늘재 

                      도보거리   =   약  18.5Km           실제도보거리   =   약 19.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4 : 30 ~ 17 : 55  (13시간 25분)      ◎ 날씨 : 아주, 맑음

 

            ◐ 한반도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의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 산행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의 병사봉(兵使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江)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 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하며,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 금수강산이 되었으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여의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이화령(梨化領, m)은 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북도 괴산군을 잇는 고개이다

영남과 영서를 잇는 중요한 요충지로 과거에는 이화령보다 북쪽에 있는

조령이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로 이요되고 있었으나

이화령보다 산세가 험준하기 때문에 이화령을 따라 국도가 놓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화령은 조평천과 연풍천이라는 하곡에 배꽃이 많이 피는 계절이 되면

하얀색으로 온산이 눈이 온듯 하였다고 해서

배 이(梨)에 꽃 화(花)자를 써서 이화령(梨花嶺)이라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화령의 본래 이름은 "이우리재"였다고 한다. 이우리재의 정확한 연원은 알 길이 없지만

고개를 넘을 때 산짐승이 무서워 여럿이 함께 "어울려 넘는 고개"라는 의미가 아닐까 하며~

조선시대 고지도에 기재된 이화현(伊火峴)은 일제시대 때 신작로로 닦은 뒤에 현재의 이화령으로 바뀌였다

 

 

 

 

고개 아래로 터널이 생기면서 이제는 옛길이 되어 예전에 명성은 사라졌다

옛적에 일제의 잔재를 없애고 가장 먼저 시작했던

이화령 백두대간 복원사업은 깜끔하게 완공되어 이젠 산책로 같은 분위기로 변모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이화령~하늘재구간의 장도에 오른다

하지만 어제의 좋은 날씨는 어딜가고

세찬 바람과 이화령을 감싸안은 짙은 안개가 오늘 산행을 무겁게 한다

 

 

 

 

이화령에서 봉우리 하나를 생략하고 편안하게 우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파르게 올라서 두번째 헬기장에 도착 하였지만~

짙은 안개로 한치앞도 볼 수 없어 시작부터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혹자는 맨 처음 산악회를 따라 백두대간을 시작한 곳이 2010년 이화령~하늘재 구간을 종주를 하였으나

산악회에서 앞사람의 발자국만 따라 다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도래기재에서 포기를 하고~

울~몽실님과 백두대간을 완주를 하였지만 이화령~도래기재 구간 산행기가 없어 두번째 산행을 이어간다

 

 

 

 

이화정 정자에서 우측으로 우회하면 만나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정표에 이화령 20분으로 나와 있지만

우리는 한시간이 넘게 걸렸으며, 오늘 암릉길이 만만치 않아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는디,,,,

 

 

 

 

안개가 뒤덮힌 오솔길은 호젖하다 못해 서글프다

산새들의 날개짖 소리도 안들리고

비까지 내리다보니 오로지 스산한 바람소리만 청승맞게 들려온다

 

 

 

 

옛적에 선두를 따라가려고 앞만보고 걷다가 직진으로 쭈~욱 가는 바람에 알바를 한곳이다

이곳에서는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조령샘이 있는 곳이며

우리는 우째 어려운 구간만 가면 날씨가 이 모양인지 점봉산을 넘을 때도 그랬구~

마지막 진부령 구간에도 그랬구~ 오늘도 백두대간 중 가장 어렵다는 구간에 세찬 바람과 비가 내리고 있다

 

 

 

 

깊은 산속 옹달샘에 토끼대신 산꾼이 물을 먹으로 왔네요

산꾼들은 모두가 그리움 하나로 산을 오를까요

목을 축이는 길손이여! 사랑 한모금이란 글귀가 적혀 있는 조령샘을 지난다

 

 

 

 

조령샘은 원래 능선길에서 우측으로 벗어나 있지만 조령샘을 거치고 간다

왕버드나무 아래 좋은 생명수 덕분이겠죠!

그런 연유로 백두대간 능선길은 희미하고 우회하는 조령샘 방향이 오히려 선명하다

 

 

 

 

능선에 올라서면 이화령 조령산 20분이라 씌여진 이정표를 만난다

좌측은 절골 촛대바위쪽 방향이며

조령산 오름길은 신갈나무숲과 빼곡한 잣나무조림지를 지나서 정상에 오른다

 

 

 

 

조령산(鳥嶺山, 1,025m)은 경북과 충북의 도경계에 있는 산으로

날아가는 새들도 쉬어간다 하여 조령산이라 하였으며

산림이 울창하고 암벽지대가 많아 멋진 풍경을 자랑한 곳이지만 안개속이다

 

 

 

 

조령산 정상에는 "白頭大幹 鳥嶺山"이라 써 있는 커다란 표지석이 반긴다

3년전에 왔을 때는 조그만 정상석이였는데

그 옆에는 지난 1999년 안나푸르나 등정후 하산중에 실종당한 지현옥 산악인의 추모목비가 서 있다

 

 

 *** 1991년 중국 무즈타그 아타 원정 때의 모습 ***        **** 1997년 가셔브룸1봉 정상에 선 지현옥씨 모습 ****

 

지현옥(1962-1999 )씨는 충남 논산 출신 여성 산악인으로써

1998년 7월에 세계 최초로 파키스탄령 히말라야 가셔브룸 제2봉을 무산소 단독 등정하였고

1999년 4월 세계에서 열번째로 높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봉을 정복하고 내려오던 중 추락해 사망함

이곳에 고 지현옥님의 추모목비가 자리잡고 있는 이유는 그녀가 생애

처음으로 산악을 배우고 훈련하던 곳이 바로 이곳 조령산이어서 지인들께서 추모비를 이곳에 세웠다고 한다

 

 

 

 

조령산을 넘어서면 급경사 내리막길로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험난한 구간이 시작되는 곳으로

곳곳이 급경사를 이루고 암벽구간이 즐비해서 특히 비올 때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다

 

 

 

 

안부에서 좌측으로 신풍리 상암사터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지현옥씨"의 "안나푸르나" 꿈이란 책을 보면

고향과 연고지가 충청도라서 이곳 조령산에서 새재구간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백두대간 중 가장 위험한 구간Best 3 중에서 1위로 꼽힐만큼 위험한 구간이다

그래서인지 다이나믹한 밧줄이 끝이 안보이며

선답자가 밧줄을 세어 촬영해 놓았는데 60개가 넘는 밧줄을 통과 해야만 조령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가파른 암릉에다 마사토 길이라 보텅 미끄러운 것이 아니다

빗길에 특별히 조심해야 할 구간인데

오늘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무사히 갈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서로를 의지했다

 

 

 

 

무시무시한 밧줄이 빗길에서 두려움에 떨게 하였으며

집에 머물면 편안할것을 서로가 고생을 하면서

목적이 무엇인지도 잊어버린채 힘겨운 산행을 이어가고 있다

 

 

 

 

안부에 문경새재 주막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부터는 조령 제3관문이 있는 새재까지는

신선암 등 성벽같은 암봉들이 즐지어 험준한 요새를 이루고 있어

암릉의 묘미를 느낄 수는 있겠지만 암봉의 북쪽 사면이 가파르고 위험하오니 조심하여 진행해야 한다

 

 

 

 

말 잔등처럼 생긴 날카로운 암릉으로 밧줄을 잡는 순간 떨려 오는 곳이다

로프가 두가닥이라서 어느것을 잡아야할지 햇갈리고

오늘 구간중 가장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이능선을 "말바위능선"이라 부르고 있다

 

 

 

 

말잔등 양쪽으로는 천길 낭떠러지로 아찔한 절벽이 오금을 저리게 하는데

울~몽실님! 한마리 새가 되어 날아간다

날씨가 좋은날은 스릴의 묘미를 느낀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안개와 칼바람에 이해가 되겠지요?

 

 

 

 

계속되는 두번째 암릉은 수직암벽이 아니라서 스릴을 느낄 정도다

하지만 오늘은 세찬 칼바람에 힘이 들고

바위 사면이 빗길에 미끄러워 한시라도 긴장을 늦쳐서는 안될 산행을 하고 있다

 

 

 

 

신선암봉 오름길 슬랩지대 암반틈에 자라는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바라만 보고 싶은 사랑이 있듯이 차마 너를 보고

오르기가 아깝꾸나 외롭고 힘든데 우리까지 너를 힘들게 하는것 같아서 말이야

 

 

 

 

거대한 바위에서 자라는 질긴 생명력의 소나무

생명의 신비를 가르쳐 주웠으며

노송이 되어 산꾼들과 포터죤이 되어서 고맙기는 하나 왠지 안스럽구나

 

 

 

 

암릉에서 전율을 느끼며 한발한발 어렵게 괴산의 명산 신선암봉에 올랐다

조령산에서 제일 경치가 좋은 곳인데

오늘은 하늘이 허락을 하지않네요? 하지만 안개속에 어렵게 올라 왔으니 마음만은 신선이다

 

 

 

 

신선봉(神仙峰)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문경시 문경읍의 경계에 위치하는 산이다

이 산을 예전에는 고사리봉, 할미봉, 온산으로도 불렸다고 적고 있으며

신선봉이라는 지명은 옛날에 신선이 달밤에 놀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문경새재 도립공원에 속한다

 

 

 

 

조령산 종주로의 중간에 위치한 암봉으로 조망이 좋아서 일반 산행객들도 많이 찾고 있으며

수옥폭포 아랫마을인 새터마을의 용성골입구에 들어서면 별천지로 화강암 반석을 타고

흘러 내리는 유리알처럼 맑은 계곡수와 노송이 어우러져 신선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정도란다

 

 

 

 

문경새재의 꾸구리바위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문경새재길 냇가에 꾸구리바위가 있다

"꾸구리바위" 전설에 의하면 바위 밑에는 송아지를 잡아먹을 정도의

큰 꾸구리가 살고 있어 바위에 앉아 있으면

물속의 꾸구리가 움직여 바위가 움직였으며, 특히 아가씨나 젊은 새댁이 지나가면 희롱하였다고 한다

 

 

 

 

오늘같이 비가오는 날은 거리와 시간을 가늠하기 어렵다

스틱은 던져놓고 로프에 메달려야 하고

바위와 로프에 어느만큼 적응하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산행을 한다

 

 

 

 

날등에서 칼바람은 한마리 새를 보는듯 한폭의 산수화 같지 않나요?

한계령에서 점봉산을 넘을 때도 힘들었는데

울~몽실님! 점봉산구간은 맛빼기이며 백두대간길 중에서 가장 힘들다고 한다

 

 

 

 

암벽에 큰 매비 한 마리가 붙여 있는것 같지요^^ㅎㅎ   지금이니까 웃네요

여성들이 올라가기엔 상당히 벅찬 직벽구간이며, 울~몽실님!

무시무시한 너덜길의 설악산 황철봉을 넘으면서 백두시험에 합격하고 여전사의 뺏지를 달았습니다

 

 

 

 

암봉을 힘들게 올라서면 928m봉의 나무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표지판이 없었다면 무언가 서운할 봉우리였으며

혹자는 선답자의 산행정보와 시그널이 없었더라면 백두대간을 완주할 수 없었기에 항상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

 

 

 

 

바위틈에 한폭의 그림처럼 자리잡은 멋진 소나무

바위가 마치 화분처럼 보이는 듯하고

이렇게 멋진 구간을 지나면서 조망을 볼 수 없음이 아쉽기만 하다

 

 

 

 

능선길 곳곳에 자연이 만든 분재가 눈을 즐겁게 한다

저들의 사랑이 끝나지 않았듯이

소나무처럼 우리도 자연를 사랑하고 자연과 함께 살아 가리라 다짐해 본다

 

 

 

 

밧줄을 잡고 천신만고 끝에 올라서면 여지없이 내려가야 하며

가파른 바윗길 비렁의 연속이며

밧줄을 잡고 온 탓인지 팔이 뻑적지근하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기만 하다

 

 

 

 

산이름도 없는 숫자로된 봉우리를 수도없이 넘어 다니면서

비 바람에 체력소모가 많아 힘든 산행이 이어진다

이정표가 좌측은 위험하니 밧줄로 못가게 안내를 하며, 우측으로 돌아 가란다

 

 

 

 

아직도 암벽은 끝나지 않았고, 우측에 개구멍은 한참 돌아가야 한다

좌측에 밧줄을 타고 올라가야 하며

암릉길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빨리가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날아가는 새도 쉬어 간다 하지 않았는가

 

 

 

 

백두대간길 중에서 밧줄이 가장 많고 가장 위험한곳이다

모든것이 Best답게 경치도 아름다운 곳인데

운무(雲舞)로 인하여 아름다운 경치는 가져 갈 수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문경새재 갈림길에서 제2관문으로 갈려면 능선길을 따라야 하고

백두대간 마루금은 좌측으로 내려서야 하며

어려운 암릉길은 지났지만 밧줄을 잡고 가야할 곳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세찬 비바람에 능선을 넘어오면서 배속을 채울 시간이 없었는데

이곳의 너럭바위에서 산상만찬을 즐겼으며

산상에서의 곡주 한잔 또한 옛 선인들의 풍류를 조금이나마 알것 같은 느낌이었다

 

 

 

 

갈림길에서 깃재봉은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다

왕복 20분 거리에 떨어져 있지만

날씨가 안개속이라 조망을 볼 수 없으니 그냥 지나친다

 

 

 

 

깃대봉을 지나면서 조령산성이 좌측으로 나타난다

성터위에 작은 돌탑들이 보이는데

과연 무엇을 빌면서 작은 톨탑을 쌓아 놓았는지가 궁금하다

 

 

 

 

조령산성은 임진왜란 중 영의정 유성룡의 제안에 의해 선조27년(1596년)~30년(1599년)에 축조되었으나

임진왜란 후 많이 붕괴되었며 숙종10년(1684년)에 이르러 조령의 설관 문제가 논의되어

숙종35년(1709년)에 비로서 조령산성이 축조 되면서 제1관문(주흘관), 제2관문(조동문 혹은 조곡관)

제3관문(조령관)등 3중의 관문을 설치하였. 제 1관문 양쪽에 뻗은 성을 초곡성이고,  2관문의 성은

중성, 조령의 고개마루에 쌓은 우리가 지나면서 보아야할 제3관문의 성이 조령산성으로 불리우고 있다

 

 

 

 

목제게단을 내려서면 조령 제3관문에 도착한다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중요한 고개였다

사회 전반과 군사적 전략의 요충지였다, 중앙집권을 실시한 조선왕조는 한양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X자형으로 9개 대로를 국도로 설치했으며

그 중 제 4로가 새재를 지났다고 하는데, 조선왕조 500년 동안

한양에 이르는 이른바 영남대로가 지나던 조령(鳥嶺 )이 자연 경관이 빼어난 으끔고개였다고 한다

 

 

 

 

조령(鳥嶺)이라 부르는 문경새재는 옛 문헌에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로서

새들도 쉬었다 넘어가는 산마루에는 조선 숙종 34년(1708)에 세운 제 3관문이 조령관이 묵묵히 지키고 있다

 

경상도 문경에서 새재로 오르는 길은 나그네의 숙소인 "원터"와 산불을 막기 위한 "산불됴심" 비가 세워져 있다

옛날 영남의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으로 과거보러 다니던 유서깊은 고개로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미끄러진다는 금기가 있지만 새재를 넘으면 장원급제한다는 말이 있다

 

 

 

 

조령약수(鳥嶺藥水)는 조선 숙종 34년(1708) 조령성 구축시 새재정상(650)에서

발견된 이 샘은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 길을 남나들 때 갈증을 해소 시켜주는

역사속의 명약수(名藥水)로서 사철 솟아올라 옛날부터 이 물을 즐겨 마시면

장수(長壽)하는 백수령천(白壽靈泉)이라고 한다, 지금은 산꾼들의 생명수 역활을 하고 있다

 

 

 

 

새재는 과거를 보기 위해  선비들이 즐겨 넘던 길로 옛 모습이 잘 남아 있다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넘나들던 길이며~

새재는 경상북도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경계에 위치한 고개이다

 

 

 

 

천혜의 요새인 문경새재가 임진왜란 당시 상주를 거쳐 문경새재로 쳐들어온 왜장 고니시 유키나까는

이곳에서 아무런 저항도 없이 무사히 넘어 갔으며, 충주의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친

신립(申砬, 1546~1592)장군이 이끄는 농민군은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같은 연유로 협곡 중간에 1594년 제2관문인 조곡관을 세우고 훗날 제1관문인 주흘관과 제3관문을 세우게 되었다

 

 

 

 

새재 조령관 우측으로 군막터를 뒤로하고 가파른 마역봉을 오른다

옛적에 여기서 뺑뺑이도 돌고, 고문관도 많이 있었을 테지~

그래도 혹자는 부산 군사령부에서 생활을 하였던 육군단기하사 출신이다

 

 

 

 

<잘 정비된 성벽을 따라 마역봉(마패봉)을 오른다>

마폐봉은 영남지방의 사람들이 한양을 오가면서 온갖 애환과 금의환양의 역사가 담겨져 있다

임진왜란 때에 신립장군(申砬將軍)의 한이 서린 조령(鳥嶺) 삼관문을 안고 있는 산이며~

마폐봉이란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산을 넘으면서 마패를 걸어놓고 쉬어갔다 하여 유래되었다

 

 

 

 

<우뚝 솟은 촛대바위가 산객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울~몽실님! 신선암봉에서 로프를 잡아보더니 겁도 없이 막 올라간다

우회하는 길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 곳이나 오르려고 하는데~

그래도 조금 위험스러운 로프 구간이기에 항상 조심스럽게 올라갑시다

 

 

 

 

문경새재는 왠 고갠가~ 구비야 구비구비야~ 눈물이 난다(진도아리랑의 한구절이죠)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우리의 민초들이 전쟁을 하다보니 눈물이 났을 것이고~

우리들은 밧줄잡고 오르기가 너무 힘들어 눈물되신 땀방울을 흘리며 마패봉을 올라야 했다

 

 

 

 

마폐봉(馬牌峰, 927m)은 월악산국립공원의 남쪽 변두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산을 넘을 때에 조령 제3관문에서 쉬게 되었는데~

마패를 관문위의 봉우리에 걸어 놓았다 하여 이 지방에서는 마폐봉이라 부른다

 

 

 

 

마패봉은 마역봉(馬驛峰)혹은 마폐봉(馬閉峰)이라고도 불리운다

지도상의 명칭은 마역봉(馬驛峰)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문경쪽에서는 마패봉, 충북 괴산쪽에서는 마역봉이라 부르고 있다

 

 

 

 

마역봉(940m)은 조령 제3관문을 사이에 두고 깃대봉과 마주하고 있다

또한 충북 쪽으로는 신선봉(神仙峰)과 1.3km의 지점에 있으며~

주변 암봉들의 조망이 빼어나기는 하나 신선봉에 비해서 서자의 격이다

 

 

 

마패봉을 내려서면 목계단 있는 곳이 사문리 탐방지원센터 분기점이다

 

 

 

 

 

 

 

암문은 일종의 비밀통로로써 평상시에는 성벽과 같이 막아 두었다가 필요시에 사용하는 것이다

북문이라고 하여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을 하였으나 일종의 개구멍 형태다, 고구려 산성의

특징 중 하나가 이러한 암문이고 성을 에워싸 적에게 기습공격을 가할 때에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수령을 가능하기 어려울 만큼 세월이 느껴지는 멋진 괴목은 산객들의 포터죤이다

북암분을 지나면 발가벗고 누워있는 형상의 여근목(女根木)처럼 보였으며~

내 눈에는 여인네가 하늘을 향해 가랑이를 벌리고 있는 모습이 애로틱하게 보였다

 

 

 

 

허물어진 동암문(東暗門)은 약 1500여년 전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성터이다

신라와 고구려가 치열하게 싸웠던 국경지대였는데 복원사업을 하지 않은 것일까요?

고구려 평원왕 사위인 온달장군이 한강 유역을 두고 신라와 접전을 벌인 장소로 추정한다

 

 

 

 

동암문을 지나면 부봉삼거리(850m)에서 마루금은 좌측으로 꺾어진다

이곳에서 부봉을 오른 다음에 되돌아와 마루금을 이어가야 하며~

부봉은 우측으로 왕복 20분 거리에 있어 그냥 지나치기에 아쉬운 곳이다

 

 

 

부봉은 오름길이 상당히 가파르고 암릉을 휘돌아갈 때에는 위험스럽기도 하다

 

 

 

 

 

 

 

부봉(釜峰 917.2m)은 경북 문경시 문경읍에 있는 산으로 제2봉이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제1봉이 917,2m, 제2봉이 933.5m, 제3봉이 911,3m, 제4봉이 923.9m이고~

사자바위가 있는 곳이 제5봉(916m)이고, 새재에서 보이는 봉우리가 제6봉(916.2m)이다

 

 

 

 

부봉은 정상의 봉우리가 솥뚜껑처럼  볼록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월악산 포함산이 시원하게 가까이 조망되고~

부봉은 암릉미와 균형미가 극치를 이루는 한폭의 그림처럼 걸작품이다

 

 

 

 

부봉은 여섯 봉우리가 어우러진 풍광속에는 수려한 선경(仙景)이 알알이 박혀 있다

여섯 봉우리 중에서 어느 곳을 부봉으로 보느냐에 대한 이야기도 분분하나~

저마다 독특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전체를 하나의 부봉으로 보는 것이 무난 하리라

 

 

 

집채만한 바위는 계단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다

 

 

 

 

 

 

 

자세히 바라보면 미륵은 아닐지라도 분명한 건 사람의 모습이다

왜 바위의 이름이 없는 것인지 보살바위라 하면 어떻할런지~

조령에서 하늘재까지 산행길에 보살바위가 최고의 뷰포인트이다

 

 

 

 

주흘산 삼거리(959m)봉에서 대간길은 좌측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곳에서 하늘재까지는 아직 3.6km의 거리가 남았으며~

다리 힘이 좋은 분들은 주흘산 영봉을 다녀오는 분들도 많이 있다

 

 

 

 

평천재(월항재)는 부봉과 탄항산 사이의 고갯길로 월항재라고도 부른다

지금도 이곳은 봄철에 나물을 뜯는 길로 이용되고 있는 곳이며~

이 고개는 문경시 문경읍 평천2리와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를 연결한다

 

 

 

 

탄항산(炭項山, 857m)은 충북 문경읍 평천리 월항마을의 뒷산이다

주변에 봉우리가 셋 이어서 월항삼봉(月項三峰)으로 부르며~

정상 주변에는 붉은 노송과 기암들이 어우러져 멋스러움을 자랑한다

 

 

 

 

또한 옛 고개를 지킨다는 의미의 "수(守) 고개"가 발음상으로 "숫고개, 숯고개"로 불렀다

한자로 표시할 때에 "숯 탄(炭)"으로 되고, 항(項) 또한 목의 한자 표현이며

조선시대 때 봉수대가 있어서 나라의 위급함을 봉홧불로 한양으로 전했으며

"목을 지키는 곳에 있는 봉수"라는 뜻에서 <탄항봉수>라 하여 탄항산이라 불린다고 한다

 

 

 

 

우람하고 멋진 선바위에 미륵불상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요즈음 대간길은 빨리 확 끝내버려야 하는 숙제가 아니다~

두고 두고 음미하면서 먹는 귀한 차(茶)처럼 느릿느릿 걸어야 한다

 

 

 

 

이화령-하늘재 구간은 마치 소풍 온 것처럼 좋은 산행길이다

멋스러운 소나무와 기암들이 눈을 즐겁게 하였으며~

보고 또 보아도 감동적인 풍경들이기에 가슴에 담고 또 담는다

 

 

 

 

<두 개의 도근점이 덩그러니 있는 766m봉을 지나간다>

요즘 백두대간 길에서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걸을 수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오늘은 신선암봉에서 안개 때문에 흐믓한 시간을 즐기지는 못 하였지만~

조령-하늘재 구간은 내가 좋아하는 한적한 오솔길을 걸을 수 있어 행복한 길이다

 

 

 

 

모래산의 모래는 이름과는 달리 북측 사면쪽 일부에 한정되어 있다

신기하게도 산중턱에 "모래언덕"이 있어 모래산이라 했을까^

지도상에 표기되지 않은 곳에 모래산이라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었다

 

 

 

 

하늘재 표지석 뒷쪽에서 바라본 포함산의 암릉 풍경이다

하얀 바위가 겁나게 멋있고 역동적으로 보였으며~

기암절벽은 인간의 발걸음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하늘재 고개위의 표지석 옆면에 이렇게 적혀 있다>

한강유역 진출을 위해서 신라가 서기 156년에 개척한 후 고려 때까지

사용된 길로 한자음으로는 계립령(鷄立嶺)이라 표기되어 있으며~

지금은 하늘재로 불린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해발 520m>

 

 

 

 

<드디어 오늘의 날머리인 하늘재가 보인다>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를 걷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산행은 여유로움을 즐기면서 했기에 더욱 좋았으며~

대간길은 생각해도 가슴이 설레이고 항상 다음 구간이 기대가 된다

 

 

 

 

<하늘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길로서 최초로 뚫린 고갯길이다>

신라 제8대 아달라(阿達羅)왕이 재위 3년(156) 북진을 위해 길을 열었다고 진해지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계립령으로 고려사에는 대원령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는 마골점, 마골산이라는 이름과 한원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고구려와 백제의 영토 분쟁 지역으로 오랜 역사의 옛길이다>

고구려 온달과 연개소문은 하늘재를 되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전쟁을 시도했었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이 몽진할 때에도 이 하늘재를 이용을 하였으며~

신라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가 금강산을 향할 때  피눈물을 머금고 이 고개를 넘었다

 

 

 

 

하늘재 고갯마루에 있는 예쁜 벽화에 메뉴를 써 놓은 하늘재산장이 있다

산객들을 상대로 주말에만 영업을 하고 있으며,  2010년도에는

파전에 막걸리 맛이 좋았는데, 주인장이 안계시니 회포를 풀 수가 없었다

 

 

 

 

지금의 하늘재는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추시 상모면 미륵리를 연결하고 있다

조선 태종 14년(1414)에 문경새재인 조령로가 새롭게 개통 되었으며~

지금은 모든 군사적 요충지와 사통팔달의 아성을 한꺼번에 조령에게 넘겨 주었다

 

하늘재에서 왼쪽으로 가면 충주에 속한 미륵리가 있고 우측으로 넘어가면 문경의 관음리가 있다

하늘재는 민초들에게 고단한 현실 넘어에 관음 세계와 미륵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이며

충주에 속한 미륵리는 "내세"를  문경에 속한 관음리는 "현세"를 소망하는 뜻이 있으며

하늘재라는 명칭은 마치 하늘이 나지막한 곳으로 살짝 내려앉은 듯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요즈음 백두대간 길이 산행을 하면서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걸을 수 있어서 항상 행복한 산행길이다

백두대간 구간중 가장 어렵다고 한 이화령~하늘재 구간은 안개와 비바람에 넘어야 했었지만~

위험한 암릉에서 로프를 붙잡고 오르내림이 힘들었지만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어 감사한 하루였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4 : 30 ~ 17 : 55  (13시간 25분)      ◎ 날씨 : 아주, 맑음

 

 

Serenade To Summertime(여름날의 세레나대) / Paul Mauri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