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대간 9정맥종주▩/백두대간(완주)

백두대간 16구간(벌재-하늘재) 종주산행

백두대간 제16구간(벌재 - 포암산 - 하늘재)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3년         03월          13일          (일요일)

◎ 산행위치 : 충북 제천시 덕산면 / 경북 문경시 문경읍, 동로면, 산북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벌재(59번국도) - 폐맥이재 - 황장재 - 감투봉 - 황장산(黃腸山, 1,077.3m) - 찻갓재 - 새목재

                      대미산(大美山, 1,115m) - 부리기재 - 마골치 - 관음재 - 포암산(布巖山, 961.5m) -하늘재(525m)  

 

◎ 산행거리 : 벌재 ~ 3.9Km ~  폠맥이재 ~ 2.6Km ~ 황장산 ~ 2.7Km ~ 차갓재 ~ 6.3Km 

                      대미산 ~ 6.9Km ~ 마골치(만수봉갈림길) ~ 3.3Km ~ 포암산 ~ 1.4Km ~ 하늘재 

                      도보거리   =   약  27.1Km           실제도보거리   =   약 28.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3 : 10 ~ 15 : 55  (12시간 45분)      ◎ 날씨 : 아주 맑음

 

            ◐ 한반도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의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 산행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의 병사봉(兵使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江)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 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하며,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 금수강산이 되었으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여의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벌재(伐峙, 625m)는 단양군 대강면과 문경군 동로면을 연결하는 고갯길로 59번국도가 지나간다

단양읍 벌천리의 속칭이 벌내이고 벌내는 벌천리 앞으로 흐르는 하천의 이름이기도 하며

그래서 고개의 이름도 벌령, 벌치, 벌재라 하였고 고개 양쪽의 마을의 지명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벌재에서 마골치까지가 야생동식물 보호를 위해 출입금지 구간이다

그래서 들머리에 이렇게 초소가 세워져 있으며

높게 설치된 철조망을 넘어서 절개지를 오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혹자는 동물이동통로 반대쪽으로 넘어가서 출입금비 플랭카드가 있는 곳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동물이동통로에서 동로면쪽으로 내려오면 이곳이 들머이다

목책을 넘어서 산행을 시작했으며

절개지 배수로를 따라 올라가면 어렵지 않게 마루금에 접속할 수 있다

 

 

 

 

상당히 가파르게 힘을쓰고 올라서면 첫번째 봉우리가 헬기장이다

고요하고 적막한 밤하늘에 별빛만 초롱초롱하고

두번째 찾아오는 산객에게 자연은 온통 초록빛으로 뽐내면서 정겹게 반겨준다

 

 

 

 

벌재를 출발하면서 부터는 비법정탐방로여서 그런지

928봉까지는 시그널을 찾아볼 수가 없으며

유명한 황장나무 군락지는 쇠락해 버리고 온통 떡갈나무가 점령해 버렸다

 

 

 

 

패맥이재는 과거 문경과 단양을 잇는 고개 역활을 하였으나 지금은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으며

또한 폐맥이재에 유래를 찾기 어려우나 다만 허가받지 않은

사람들의 벌목을 금지하는 "펫말이 박혀 있는 고개" 즉 패박이재가 이 지방 말투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소나무가 작태를 뽐내는 암릉에서 밧줄 구간도 나온다

하지만 어렵지 않게 내려설 수 있었으며

설악산의 공룡능선에 버금갈정도는 아니지만 바위가 많은 골산이다

 

 

 

 

여름인데도 고도가 높아서인지 제법 쌀쌀하다

저 멀리 마을의 불빛이 보이고

조망이 좋은 곳인데 별빛이 영롱한 새벽이라서 아쉽기만하다

 

 

 

 

이곳의 암릉이 치마바위가 아닐까 싶어지는 지점으로 보여진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면서 사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백두대간의 중간지점을 걷고 있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제법 난이도가 있는 암릉구간도 나타난다

잡아주고 밀어주고 올라서면

공룡능선을 타는듯한 스릴도 느끼면서 천사(1.004)봉에 올라선다

 

 

 

 

황장산 가는길이 이리 멀고 험한줄은 옛적에 알았지만

세상엔 날로 먹는것이 있겠는가

암릉의 천사봉을 넘어서면 폐헬기장을 지나고 황장재에 도착한다

 

 

 

 

황장재는 사거리 갈림길로 우측은 문안골 가는 길이고 좌측은 생달리 가는 고갯길이다

문안골에는 고구려시대의 작성산성(鵲城山城)의 터가 남아 있는데

고려말에 홍건적이 쳐들어 왔을 때 공민왕이 피난지 였기에 황장산을 작성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황장재에서는 절벽에 가까운 비탈길을 올라가야 한다

밧줄이 매여 있어서 위험하지는 않았으나

사면길이 미끄러워 힘겹게 감투봉에 올라야하고 이렇게 칼등바위를 넘는다

 

 

 

 

저 멀리 문경쪽의 동로면에 공덕산 넘어로 천주봉이 보인다

어두움속에서 붉은 기운이 감돌면서

온 세상이 열리고 하늘과 땅이 구분되면서 오늘을 시작하려는 산하는 선경이 펼쳐진다

 

 

 

 

암릉길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이 황홀한 순간이 좋다

산다는게 뭐 별거 있을까요?

떠 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작은 것에 감사하고 사는것이 인생이 아닐까요?

 

 

 

 

황장산(黃腸山, 1,077.3m)은 옛부터 이곳에 사찰이나 궁궐에 쓰는 금강송(金剛松) 소나무의 군락지로서

누를 黃, 창자 腸으로 소나무 껍질을 벗기면 창자와 같다고 하여 황장산이라 하였다, 일제시대에

일본이 많은 나무를 베어 일본으로 가져갔고 지금은 기후변화로 인해 소나무 보단 떡갈나무군락지로 변했다

 

 

 

 

조선시대 대미산을 주령으로 해서 이 일대가 모두 봉산으로 지정 되었다

대원군때 황장목을 베어다 경복궁을 지었다 해서

황장산 "봉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지금은 황장목을 볼 수가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황장산(黃腸山)은 바위가 많은 골산으로 베바위, 멧등바위, 투구봉, 감투봉, 치마바위 등이 있다

길게 뻗은 홀산인데도 문안골, 우망골, 토시골 등의 계곡이 있으며, 특히 문안골은 수량이

많을 뿐 아니라 50평쯤의 반석도 있고 북쪽 단양천 유역과 함께 월악산국립공원의 동쪽 끄트머리다

 

 

 

 

이 바위 능선이 차갓재에서 올려다보면 둥그런 무덤처럼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이바위를 묏등바위라 이름이 붙여졌으며

저 멀리 가야할 산줄기가 파도처럼 일렁이며 오늘 산행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여성분들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운 마지막 암릉직벽구간이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암벽으로

육학년이 되어가는 우리들은 약간 공포감을 느낄 수 있는 직벽구간이다

 

 

 

 

암릉에서 내려서면 직진으로 이어질듯한 마루금이 좌측으로 꺾어진다

직진길이 뚜렷해서 무심코 지나가면 굿바이다

좌측으로 시그널이 주렁주렁 걸려 있는데도 알바하는 산꾼들이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좌측으로 생달리(生達里)마을은 "산달' 또는 산다리로 불리웠는데

생달은 산(山)과 달(月)만 볼 수 있는 두메산골이라는 뜻으로

산다리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고 그 후 생달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차갓재 내려서전 헬기장에는 야생화가 눈을 즐겁게 해준다

 

 

 

 

 

 

 

차갓재는 동로면 생달리에서 명전리를 잇는 고개로  북쪽 계곡의 명전리 "차가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차갓"은 "차가"가 본딪말로 "막힌집" 즉 산길의 마지막집이라는 뜻이며, 또한 차돌백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의 주변을 지나는 고개라 하여 차갓재라 불렀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백두대간 중간표지석이라고 하나 남한 땅에 중간이니 큰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포항의 셀파산악회에서 일일이 50m간격으로 재어서 나온것이라 한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어요

소통이면 어떻고, 개똥이면 어떻습니까? 님들의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이 두개의 중간 표지석이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백두산까지 걸어갈 수 있는 날을 염원하는 뜻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백두대간 중간표지석이라고 하나 남한 땅에 중간이니 큰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포항의 셀파산악회에서 일일이 50m간격으로 재어서 나온것이라 한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어요

소통이면 어떻고, 개똥이면 어떻습니까?  님들의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이 두개의 중간 표지석이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백두산까지 걸어갈 수 있는 날을 염원하는 뜻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새목재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고개의 북쪽인 문경시 동로면 명전리에서

주변의 산세가학이 날아오르는 것 같아 보인다하여

건학(乾鶴)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는데 건학의 목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해서 새목재라 부른다

 

 

 

 

헬기장을 지나면 문수봉갈림길에 도착한다

직진길은 문수봉 가는 길이고

백두의 길은 좌측으로 90도 꺾어지면서 대미산을 향한 오름길이 이어진다

 

 

 

 

눈물샘으로 가는 갈림길인데 예전에 있었던  눈물샘 표지판이 없어졌다

산꾼의 갈증해소에 큰 도움이 되는 생명수이며

대미산은 멀리서 보면 눈썹같이 생겼는데, 그 눈썹아래 샘이 있다하여 눈물샘이라 부른다

 

 

 

 

눈물샘은 등로상에서 70m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정말로 병아리 눈물만큼 나왔으며

올라오는 것은 웬만한 봉우리 하나를 넘는것 보다 힘이든다

 

 

 

 

대미산(大美山, 1,115m)은 원래 이름이 대미산(黛眉山)으로 검은 눈썹 산이란 뜻으로

멀리서 보면 검은 눈썹처럼 솟아 올랐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하지만

조선조 이황 선생께서 여인의 모습처럼 부드러운 산세라 하여 아름다울 美자를 넣어 지금은 대미산이라 부른다

 

 

 

 

대미산은 산중에서도 높다란 뜻으로 울창한 참나무숲과 돼지골, 심마골을 품고 있으며

제천시 덕산면쪽으로는 용화구곡이 펼쳐져 있고

다양한 식물 자원의 보고(寶庫)로 정상에 오르면 문경에 산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월악산 영봉도 보이는것 같고 주흘산 조령산도 보이는것 같으고~

그래서 대미산을 문경 산들의 조상이라 했으며

문경 산들의 조상답게 끝없이 펼쳐진 산들 아래로 손자뻘 되는 후손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살아가고 있다

 

 

 

 

부리기재는 경북 문경 중평리에서 충북 제천시 덕산면의 용하구곡을 연결하는 고개로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 짊어진 짐을 내린 후에야 넘을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부리의 옛말인 부리기에서 새의 부리처럼 생긴 고개라하여 부리기재라 하였다고 한다

 

 

 

 

오늘 구간도 중간을 지나서 지도상 1,032m봉에 도착한다

우측으로는 꾀꼬리봉으로 가는길이고

나머지 절반을 시작하다 보면 포함산을 넘어서 하늘재에 도착하겠지요

 

 

 

 

암릉구간은 결코 호락호락한 길이 아니였으며

힘든길이 추억에 남는다고 한다지만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구간으로 많은 체력이 요구된다

 

 

 

 

꼭두바위봉(878m)의 전망바위에서 포암산이 조망된다

조망은 이렇게 시원하고 좋은데

앞으로도 가야할 길이 까마득하여 베낭을 내리고 한참을 쉬어간다

 

 

 

 

무언가 사연이 있을 법한 돌무더기에는 좌측으로 관음리 라고 적혀있다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우리가 겪는 것은 모두가 한때일 뿐이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세월도 그렇고 인심도 그렇고 세상만사가 다 흘러가면 변한다

오늘 우리가 겪는 온갖 고통과 그 고통을 이겨 내기 위한

의지적인 노력은다른 한편 이 다음에 새로운 열매가 될 것이다

이 어려움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는가에 따라 미래와 우리 모습은 결정된다  <법정스님의 오두막 편지중에서>

 

 

 

 

월악영봉으로 이어지는 만수봉갈림길인 마골치 삼거리에 도착한다

벌재에서 시작되었던 출입금지구간은 끝나고

언제일런지는 모르겠지만 만수봉 공룡능선을 따라 월악산 영봉에도 꼭 가보고 싶다

 

 

 

 

만수봉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이정표를 잘보고 가야한다

마골치는 마골산으로 가는 고개라는 뜻으로

이곳 마골치에서 마골산(麻骨山) 즉 포함산으로 가는 고갯마루이다

 

 

 

 

관음재(觀音峙)는 경북 문경 관음리에서 충북 충주 미륵리로 가는 옛 고개로

불교의 불성(佛性)이 관음(觀音) 세계에서 미륵(彌勒) 세계로

현세(現世)에서 내세(來世)로 가는 희망의 상징 고개였다고 한다

지명처럼 이곳 주변은 마에불 미륵불상과 문화재급이 많이 있으며 불가(佛家)의 요람으로 되어 있다

 

 

 

 

포함산(布巖山, 961.8m)은 뾰족하게 우뚝 서 있는 봉우리가 베(삼베)를 짜서

펼쳐 놓은것 같이 보인다 하여 "베바우산"이라 한다

또한 마골산(麻骨山), 계립산(鷄立山 등으로도 기록에 전하나 지금은 포함산으로 불리고 있다

 

 

 

 

포암산(布巖山)은 저 멀리 마폐봉이나 부봉에서 바라보면 쌍봉으로

마치 부처가 손을 벌리고 중생을 맞이하는 형상이며

월악산, 주흘산, 조령산, 신선봉과 함께 조령의 5악산으로 백두대간의 주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포암산을 내려서면 하늘재를 경계로 주흘산과 마주한다

백두의 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으며

월악산과 함께 100대 명산으로 산아래 문경새재가 있어 많은 산객들이 찾고 있다

 

 

 

 

가파른 내림길은 암벽구간으로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

포함산으로 내려서는 길이 위험한 구간이며

안전시설물이래야 딸랑 목제계단 하나 설치해논 것 뿐이다

 

 

 

 

산양의 뿔을 닮았다는 월악산 영봉과 하봉이 그리고 충주호가 보인다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떠나기전 월악산에 올라 월악영봉이 강물위에 비치는 날 돌아 온다고 했다

금강산이 좋아서 그곳에서 신선이 되었는지 돌아오지 않았으며, 오매불망 동생

오기만 기다린 덕주공주는 덕주사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며 연신 염불만 읊다가 마애불이 되었다고 한다

 

 

 

 

포암산에서 하늘재로 내려가는 길이 엄청난 까플막이라 위험하여

산꾼들이 하는 말은 포암산이 아니라 포악산이라 한다

까플막에다 토사길이 엄청 미끄러워 밧줄이 있어도 제동이 안될 정도로 급경사이다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허물어진 산성길을 내려서면 방공호가 나온다

자연은 나 자신에게  큰 스승이며

새벽 3시부터 힘겨운 사투를 벌이면서 장장 13시간 만에 하늘재에 도착한다

 

 

 

 

하늘재(525)는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를 잇는 도 경계로써

계립령, 대원령으로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뚫린 고갯길이었으며, 하지만

조선태종 14년(1414) 때 지금의 문경새재인 조령로가 개통되면서 사통팔달의 아성을 조령에게 넘겨 주었다

 

 

 

 

하늘재는 고려에 멸망한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이 고개를 넘어 고난의 길을 떠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늘재를 넘는 마의 태자와 덕주공주 일행은 부활을 꿈꾸지만 고려의 호족들에 의해

마의태자는 미륵리에 있는 미륵사에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있는 덕주사로 헤어져 머무르게 되었는데

나라가 망해 떠돌이가 된 오누이는 사무치는 그리움이 끝내 미륵리에 미륵불을 세우고 덕주사지에

마애불을 세워 마주보게 했다고 한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오누이불상은 서로 마주 본 채 그렇게 서 있다

 

 

 

 

신라는 일찍이 하늘재를 교두보로 한강으로 진출하였고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했으며

고구려 온달과 연개소문은 하늘재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시도 했던 곳이다

 

 

 

 

하늘재 산장에서 옛추억을 생각하며 탁주 한사발 할려고 했는데

요즘에는 주말에만 장사를 한다고 한다

평일이라  파전과 막걸리를 먹을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름다운 산을 함께하면서 나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어 좋다

산은 항상 보아도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산에서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를 알았으며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덤으로 얻은 것이다

 

 

 

 

하늘재에서 바라본 포암산은 한겨울에 눈발이 날려 바위에 붙은 모습이 마치 베옷을

입은것 같다하여 "베바위산"이라고 했는데, 한자와 하면서 베(布) 바위(巖)으로

지금은 포암산(布巖山)이라 부르고 있다, 포암산을 바라보며 또 한구간을 마무리한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3 : 10 ~ 15 : 55  (12시간 45분)      ◎ 날씨 : 아주 맑음

 

 

Sunshine on my Shoulders - 노래 : John Den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