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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백두대간(완주)

백두대간 18구간(고치령-죽령) 종주산행

백두대간 제18구간(고치령 - 비로봉 - 연화봉)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3년         06월         01일          (토요일)

◎ 산행위치 :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순흥면, 단산면 / 충북 단양군 가곡면, 영춘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고치령(高峙嶺, 760m) - 마당치 - 연화동삼거리 - 늦은맥이재 - 상월봉(上月峰, 1,394m)

                      국망봉(國望峰, 1,420.8m) - 비로봉(毘盧峯, 1,439.5m) - 천동계곡갈림길

                      제1연화봉 - 연화봉(蓮花峯, 1394.3m) - 제2연화봉(1.358m) - 죽령(竹嶺, 696m) 

 

◎ 산행거리 : 고치령 ~ 2.8Km ~  마당치 ~ 6.2Km ~ 늦은맥이재봉 ~ 2.1Km  

                      국망봉 ~ 3.1Km ~ 비로봉 ~ 4.3Km ~ 연화봉 ~ 7.0Km ~ 죽령 

                      도보거리   =   약  25.5Km           실제도보거리   =   약 26.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3 : 10 ~ 13 : 30  (10시간 20분)      ◎ 날씨 : 아주 맑음

 

            ◐ 한반도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의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 산행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의 병사봉(兵使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江)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 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하며,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 금수강산이 되었으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여의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고치령(760m)은 고개가 높아 "고치"라고 하다가 "령"이 더 붙어서 고치령으로 변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절터고개, 곶적령으로도 부르기도 하였으며

벌목용 산판도로를 만들 때 영주의 순흥과 단양의 영춘을 잇는 고갯마루로

문경과 영주를 잇는 죽령, 영월 하동과 영주 부석을 잇는 마구령과 함께 소백산을 넘는 세 개의 고갯길 중 하나이다

 

 

 

 

숙부의 야욕에 밀려 결국 왕의 자리에서 쫏겨나고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어 꽃처럼 떨어진 단종!

이곳 순흥땅에 유배를 당해서도 조카의 안위를 살피고 훗날 제자리를 찾을

조카를 보기위해 한순간이라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했을 왕의 동생 금성대군!

이제는 태백산신이 되고 소백산신이 되어 이곳 고치령 산령각(山靈閣)에서 후손들의 마음속에 머물고 있다

 

 

 

 

태백과 소백을 지나는 경계점 소백이 끝나고 태백이 시작하는 고개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 즉 양백지간(兩白之間)으로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와 마락리를 잇는 고개로 더 내려가면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와 연결된다

 

 

 

 

저 너머 영월 땅에 유배되어 온 단종을 뵙기 위해 넘고 또 넘어 갔으리라

이제는 그런 과거도 흘러간 지 오래고 경상도와 충청도

그리고 강원도를 오가는 행상들의 걸음도 끊긴지 오래된 이곳에서 백두의 길을 걷고자 발을 올려 놓는다

 

 

 

 

고치령에서 첫번째 봉우리에 올라서니 헬기장이다, 그리고 밤하늘에 별빛이 쏟아져 내린다

금성대군이 단종을 만나기위해 저 별빛에 길 밝히며 고치령을 넘어 갔으리라

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숙부의 야욕에 목숨을 잃은 단종과 금성대군을 잠시나마 생각하면서 소백산을 오른다

 

 

 

 

산아래 고치령 산행들머리 마을의 좌석리(座石里) 지명 유래를 보면

마을 한 중간 논바닥에는 "앉은 바위"라는 큰바위가 있다, 옛날 마귀할멈이 소백산에서 반지를 잃었는데

반지를 찾으려고 산을 파 내려가다 골짜기가 생기고 땅속에서

나온 큰 바위가 굴러 내려와 지금의 자리에 멈추어 앉았다 하여

마을 이름도 좌석리라 불렀다고 한다 이 바위를 중심으로 윗마을을 상좌석, 아랫마을을 하좌석이라 부르고 있다

 

 

 

 

형제봉 갈림길에 올라서면 마루금은 좌측으로 꺾어진다

3년전 심설 산행으로 찾았던 소백산!

그 겨울의 칼바람을 만날 수는 없겠지만 추억이 새록 새록 생각이 난다

 

 

 

 

마당치((馬堂峙, 910m)는 형제봉갈림길에서 능선을 넘어서면 마당치이다

마당처럼 넓은 공터가 있어 마당치라 불리우며

우측으로 충북의 단양 신골과 절골로 내려가는 길인데 계곡길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새들의 합창소리에 소백의 아침이 열리고 있으며

온통 설렘으로 두근거리는 설레임이다

분홍빛 물결의 철쭉을 보기위해 오늘 2번째 소백산을 찾았다

 

 

 

 

지도상 1,032m봉을 넘어서면 연화동삼거리에 도착한다

새벽이 열리면서 소백이 속살을 드러내 보였으며

연화동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연화동마을과 옥대저수지에 다다른다

 

 

 

 

숲에서 맞이하는 아침공기는 상큼하게 코끝을 스치고

소백산의 아침이 찬란함을 알려준다

능선에 올라서면 바로 조망이 열리면서 소백산의 광할한 능선이 펼쳐진다

 

 

 

 

우측에 나무목책은 신선봉(神仙峰, 1,389m)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이다

신선봉을 거쳐 구인사로 내려갈 수 있으나 통제구역이며

구인사는 천태종의 본산으로 1945년에 개창하여 5층의 법당을 비롯 3,000평이 넘는 큰 사찰이다

 

 

 

 

고갯마루와 산 자락은 애절한 사연! 한 두 토막씩은 다 숨어 있다 그래서 한 많은 민족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늦은맥이고개의 사연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을전)로

내려갈 수 있고, 좌측은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로 내려갈 수 있으며, 어의곡리는 세조 때

동생(금성대군)을 이곳 순흥으로 유배하였는데  금성대군이 몹시 아파 나라에서 어의를 보낸것에서 유래되었다

 

 

 

 

소백산의 아침은 싱그러움을 가득 담고 있다

솔바람 향기가 느껴지며

오늘은 싱그러움이 가득한 소백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껏 담아 가리라

 

 

 

 

철쭉터널과 야생화가 지천에 널려 있는 천상화원을 걸어간다

연분홍 철쭉꽃잎으로 수놓은 아름다운길!

북서계절풍의 칼바람을 이겨 내고 소백은 싱그러움과 연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상월봉(上月峰)은 삼년전에 다녀온바 있어 그냥 지나친다

좌측으로 올라가면 정상에서 조망은 끝내지만~

전망테크와 정상석이 없어 행정적인 배려가 아쉬운 곳이다

 

 

 

 

소백산의 철쭉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하다

키가크고 색깔이 연한것이 특징이며

수줍은 중년의 여인같은 소백산은 오늘도 말없이 옷고름을 풀며 나를 맞는다

 

 

 

 

영주시 순흥면은 조선초까지 영월, 태백, 봉화, 울진을 관할하는

도호부(都護府)가 있었고 금성대군의 귀향이지며

단종 복위운동의 실패로 몰락하였으며 죽계천은 지금도 "피끝"이라 부르고 있다

 

 

 

 

상월봉(上月峰, 1,394m) 정상옆에 버섯처럼 생긴 큰바위를 "각자바위"라 한다

구인사에 따르면 옛날 불제자가 오르지 못한 법문을 구인사 중창조사인

상월스님이 올랐으며 국망봉과 신선봉 사이의 봉우리에 올라 상월이라 새겨 놓아 상월봉이라 부른다

 

 

 

 

국망봉에서 뒤돌아본 백두의 산줄기가 일목요연하게 그려지는데

어디쯤이 태백산인지~ 알길이 없다

하늘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구름에 날개를 달아 손오공처럼 온 산하를 날며 굽어보고 싶다

 

 

 

 

국망봉(國望峰, 1,420.8m)은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와 경상북도와 도계(道界)이다

신라 마지막왕인 56대 경순왕은 나라를 왕건에게 빼앗기고 천년사직과 백성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명산과 대찰을 찾아 헤맸으며, 왕자인 마의태자도 신라를 왕건으로부터 회복하려다 실패하자

엄동설한에 베옷 한 벌만을 걸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개골산으로 들어갔다,  마의태자가 개골산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 올라 옛 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국망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이 고장 선비들이 한양의 궁궐을 향해

임금과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였다는 국망봉!

북쪽의 김씨 왕가도 하루빨리 망해서 백두산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꼴을 보고 싶다

 

 

 

 

6월의 소백산은 푸르다 못해 검다~ 초록으로 물든 능선길!

시원한 바람과 철쭉이 가슴을 설레게 하고

한없이 이어지는 산그리을 바라보고 있으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아름다움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드디어 소백산 비로봉이 모습을 드러내 보이며

죽령에서 고치령까지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평원의 장쾌함은 어디서나 돋보인다

 

 

 

 

풍기 금계동은 정감록의 10승지 중에서도 으뜸으로 친 곳이지만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풍기는 금산, 강화와 함께 3대 인삼 재배지이며, 비결파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국망봉을 지나 초암삼거리에 이른다, 퇴계 이황은 국망봉 아래골을 죽계구곡이라 명명하였다 한다

삼국시대에는 신라, 백제, 고구려 3국의 경계에 있어서 문화유산이 많으며, 죽계천 쪽으로는

석륜광산(石崙鑛山), 초암사(草庵寺)가 있고 북동쪽으로는 석천폭포(石川瀑布), 성혈사(聖穴寺)가 있다

 

 

 

 

위험하지도 않은데 암릉에서 밧줄을 잡고 지나가는 곳도 있다

산을 잘 모르던 시절에 소백이 좋다는 말만 듣고

겨울 소백산에 올랐다가 추워서 죽도록 고생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매년 5월말에 개최되는 소백산철쭉제는 넓게 산재된 철쭉군락을 소재로

개최되는 축제로 연분홍빛 철쭉향기에 흠뻑 취해 봄으로써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새로운 활력과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축제이다

 

 

 

 

틈틈이 쉬어갈 때에도 웃음으로 답해주는 울~몽실님!

항상 여유만만해서 좋아유~

힘들어도 쉬지않고 열심히 가려는 마음은 항상 고맙고 대단하다

 

 

 

 

비로봉을 중심으로 그려진 소백의 드넓은 풍미에 감정을 억제하려 하지만

감탄사가 절로 쏟아지며, 갈길이 먼 발걸음도 잊은채

주체할 수 없는 환희에 산행의 즐거움은 배가 되고 걸음의 고통은 반감이 된다

 

 

 

 

<김삿갓(金炳淵)도 부석사 안양루에 앉아서 소백산이 펼쳐진 이 풍경을 보고 시를 지었겠죠>

平生未暇踏名區(평생미가답명구)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白首今登安養樓(백수금등안양루) 흰머리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江山似畵東南列(강산사화동남열) 그림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天地如萍日夜浮(천지여평일야부) 천지는 부평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風塵萬事忽忽馬(풍지만사홀홀마) 지나간 모든일이 말타고 달려온 듯

宇宙一身泛泛鳧(우주일신범범부)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혜염치네

百年畿得看勝景(백년기득간승경) 백년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歲月無情老丈夫(세월무정노장부)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김삿갓(金炳淵 1807~1863)"

 

 

 

<어의곡리갈림길에서 바라본 신 단양시가지>

가운데에 연기가 피어 오른곳이 매포 한일 시멘트 공장이다

단양에 시멘트 공장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는데

우리나라 시멘트의 절반을 만들어 낼 정도로 거대한 공장이라고 한다

 

 

 

 

신록의 푸르름이 마치 외국의 어느곳에 온 느낌이 든다

비로봉에서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초록능선!

오늘은 목가적이면서도 서정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소백의 아름다움을 가슴속에 듬뿍 담는다

 

 

 

 

소백산(小白山, 1,439m)은 백두산의 기상을 품고 있는 산이라 하여 "작은 백두산"이라 한다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다고 하여 소백산(小白山)이라 불리며

북풍한설이 몰아칠 때 소백산 비로봉은 년중 6개월 정도 백설로 뒤덮혀 있어 "학국의 알프스"라 불리운다

 

 

 

 

비로봉(毘盧峰)은 소백산의 주봉으로 비로(毘盧)란 범어의 "바이로차나" 음역이며 비로자나불의 준말이다

본래의 뜻은 몸의 빛, 지혜의 빛이 법계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것으로 

"부처의 진신"을 의미하는 말이며, 소백산은 비로봉, 연화봉, 도솔봉 등의 이름이 말하듯 한국불교의 성지이다

 

 

 

 

조선 최고 풍수학자 남사고(南師古)는 소백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고 했다

그래서 죽령을 지나가다 이산을 바라보며 넙죽 절을 하였다 한다

소백산은 소백이라는 이름에 작은 산이라 생각되지만 실제로 소백산은 큰 명산이기 때문이다

 

 

 

 

<비로봉 정상석 뒤쪽에는 조선 초 대학자인 서거정(徐居正)의 시가 적혀 있다>

小白山連太白山 (소백산연태백산)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

逶迤百里揷雲間 (위이백리삽운간) 백리에 구불구불 구름 사이 솟았네

分明劃盡東南界 (분명획진동남계) 뚜렷이 동남의 경계

地設天成鬼破慳 (지설천성귀파간) 하늘 땅이 만든 억척 형국일세를 그어 <소백산, 小白山>

 

 

 

 

비로봉에서 전해주는 풍성한 선물을 양 손에 쥐고

제 1연화봉을 향해 내려선다

오늘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유유자적 소백의 가슴에 푹 안겼다 가리라

 

 

 

 

비로봉은 야생화 희귀식물인 외솜다리(에델바이스)가 자생하고

봄이면 연분홍 철쭉이 만개하여 천연기념물인

주목과 함께 잘 어우러져 있어 주말이면 소백산을 찾은 산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주목감시초소마저도 멋진 풍경이 되어 주는 소백산!

10년전에는 벌거숭이 였는데

이렇게 이국적인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뀌어 산객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소백산은 "바람의 산"으로도 유명하죠!

그 바람이 칼 바람이다

그래서 이렇게 정상에는 칼바람이 불어서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오랜 옛날부터 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주목나무는 소백의 보물이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의 주목과 함께

봄이 되면 소백은 꽃이 피지 않은 날이 거의 없어 "천상의 화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답다

 

 

 

 

소백은 4계(四季)가 아름답단다, 봄에는 철쭉(5~6월 만개)

여름에는 푸른초원이 가을단풍,

겨울에는 눈꽃터널이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전개되는 겨울산의 대명사다

 

 

 

 

천동(泉洞)계곡 갈림길에 도착한다, 옛 지명이 샘골이었는데

한자로 옮긴 것이 천동(泉洞)이란다

여름철에도 손을 물속에 넣을 수 없을 정도이며, 계곡 입구에는 허영호 기념비가 있다

 

 

 

 

동남쪽 기슭에는 643년(선덕여왕 12)에 창건한 희방사(喜方寺)가 있고

내륙지방에서 가장 큰 폭포인 높이 28m의 희방폭포가 있다

충북과 경북의 경계를 거대한 산맥으로 이루고 있는 소백산은 우리나라 12대 명산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 초기의 학자 서거정은 소백산을 산자수려(山紫秀麗)한 아홉 개의 봉우리와 다섯 개의 청아한

물소리가 어우러지면서 토해낸 아름다운 산이라 하였고, 그 중에서도희방사계곡을

천혜몽유처(天惠夢遊處)라고 하여, 소백산을 한번이라도 찾은 사람은 영원히 잊지 못한다고 했다

 

 

 

 

저 멀리 월악산과 가운데 금수산이 반갑게 춤을 춘다

말목산도 제비봉과 마주하고 있으며

하얀 양떼들이 뛰쳐 나올것만 같은 넓은 초원위에는 연분홍빛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소백산은 부드러움과 장엄함이 귀부인의 풍모를 갖춘 산이며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산이기도 하며

소의 등처럼 유연한 곡선으로 넘어가는 산줄기가 낭만적이면서도 목가적이다

 

 

 

 

산에 살고 있어 세상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을 "산객(山客)이라 부른다

등산하는 사람도 산객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산에 사는 철쭉꽃에 취해버린 나그네란 뜻이 있는 철쭉의 다른 이름이 산객이란다

 

 

 

 

나무계단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제1연화봉에 올라선다

오늘날 경영학계에서는 작고 강한 회사를 지향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그래서 소(小)는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라는 뜻이 된다

백(白)은 "희다", "밝다", "높다", 그리고 "거룩하다"라는 뜻을 포함하는 옛글에서 유래하였다

 

 

 

 

제 1연화봉을 내려서면 "연화봉"아래로 소백산 천문대가 자리하고 있고

건너편 제2연화봉에는 강우레이더 관측소가 있으며

동서남북으로 가릴것 없이 펼쳐지는 소백산의 그림같은 풍경은 산객의 외로움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소백산은 영주, 예천, 단양, 영월 네 고을의 배경이 되어 고장의 평화와 행복을 수호하며

기품있는 선비의 풍모처럼 맑고 수려한 기상의 영기(靈氣)어린 성산(聖山)이며

또한 백두대간이 지리산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한반도의 척추 부분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철쭉은 봄의 절정을 예고하고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꽃이다, 철쭉이 지면 분홍빛 봄날도 간다

진달래보다 철쭉은 순박하나 야성미를 지닌 정열의 무희이며, 철쭉은 한자로

"척촉(躑躅)" 이라고 하는데, 꽃이 아름다워 지나가던 나그네가 자꾸 걸음을 멈추게 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희방사갈림길에서 좌측은 연화봉에서 희방사로 내려가고 우측은

죽령으로 바로 가는 우회길이며, 연화봉 오름길에는 야생화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그 중에서도 "홀아비바람꽃"이 눈에 띈다

 

 

 

 

알록달록 수 놓은 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소백산을 배경으로 소백산 철쭉제가

5월 29일부터 6월 2일(일요일)까지 화려하게 펼쳐진다

 

 

 

 

희방사(喜方寺)는 선덕여왕 643년 두운(枓雲)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다음과 같은 창건 설화가 전하고 있다

두운은 태백산 심원암에서 이곳의 천연동굴로 옮겨 수도하던 중 겨울밤에 호랑이가 찾아 들어 앞발을 들고

고개를 저으며 무엇인가를 호소하였다, 살펴보니 목에 여인의 비녀가 꽃혀 있었으므로 뽑아 주었다

그 뒤 어느날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니 어여쁜 처녀가 호랑이 옆에 정신을 읽고 있었는데

정성껏 간호하고 원기를 회복시킨 다음 사연을 물으니 그녀는 계림의 호장 유석의 무남독녀로서 그날 혼인을 치르고

신방에 들려고 하는데 별안간 불이 번쩍 하더니 몸이 공중에 떴고 그 뒤 정신을 잃었다고 하였다

두운은 굴속에 싸리나무 울타리를 만들어 따로 거쳐하며 겨울을 넘긴 뒤 쳐녀을 집으로 데리고 갔다

유호장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동굴 앞에 절을 짓고 농토를 마련해 주었으며

무쇠로 수철교(水鐵橋)를 놓아 도를 닦는데 어려움이 없게 하였다 그리하여 절의 이름이

기쁠 희(喜)자와 방 방(方)자를 써서 희방사라 지었으며 또한 희방계곡이 있는 마을 지명이 수철리라 부르게 되었다

 

 

 

 

연화봉(蓮花峰, 1,394m)은 사바세계에 내려오신 부처님을 상징한다

세속에 드러난 진리를 상징하는 연꽃, 그래서 연화봉이며

연화봉에서 진리의 삶을 이루게 되면 바로 부처님을 만나게 되는데 부처님의 진신(眞身)인 비로(毘盧)이다

 

 

 

 

"비로"는 비로자나불의 비로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비로자나불은 석가의 진신을 높여 부르는 말로 불교의 부처라 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제일 높은 불상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유래하여 제일 높은 봉우리를 비로봉이라 부른다

연화는 연꽃에서 유래한 것으로 부처님의 주변에 항상 있는 꽃이 연꽃이다, 그래서 비로봉

주변의 봉우리를 "연화"라는 이름을 넣어서 불렀으며, 도솔봉에서 바라보면 이슬을 머금고

막 피어나는 연꽃을 연상시킨다 하여 연화봉으로 불리운다고 하였고, 또한 소백산의 5월은

연분홍빛 철쭉이 아름답게 필때에 봉우리가 연꽃을 닮았다 하여 "연화봉"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연화봉에서 한 운큼 손에 쥐어 주는 소백의 후한 인심에 한없이 머물렀으며

뒤돌아본 비로봉은 한장의 달력으로 넘어가고 연화봉을

내려서니 국내에서 가장 큰 우주관측소인 국립천문대는 숲속의 궁전처럼 보였다

 

 

 

 

첨성대 모양의 건축물은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로

그야말로 숲속의 궁전 같았으며

왕자와 공주처럼 잘 생기고 예쁜 사람들만이 모여 사는 궁전 같았다

 

 

 

 

백두대간의 표지석을 보고 어떤 산객이 백두대간이 머꼬~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머리가 띠잉 하지요

혹자 처음에는 백두의 길을 몰랐을 때는 그러했다, 죽령까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제2연화봉(1,297m)은 군부대가 있어 출입금지 구역이였는데

지금은 개방이 되었다고 한다, 8층전망대까지는

엘리베이터로 올라갈 수 있으며, 건축물 명칭은 강우레이더관측소이다

 

 

 

 

연화봉에서 죽령까지 포장도로를 따라 가는 길은 지루하다

대간꾼들은 산길을 걸어야 하는데

소백의 아름다움은 어딜가고 폭염속에 시멘트포장길이 사람을 죽인다

 

 

 

 

천황성 바람고개 전망대에서 풍기읍을 내려본다

풍기는 사과 인삼이 유명한 곳이며

백두대간 산줄기가 서남쪽으로 풍기읍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산을 오르는것은 자연을 보기위해 오르는 것만은 아니다

언젠가 자연으로 되돌아갈 운명이기에

자연을 통해 지나왔던 날들을 뒤돌아보고 가야할 길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아흔아홉굽이의 죽령에 도착한다, 단양에는 단양팔경이 있는데

구담봉, 옥순봉,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사인암, 도담삼봉, 등이 있어

조선조에 단양군수로 부임한 이 퇴계는 중국의 소상팔경보다 나은 곳이라고 극찬 하였다고 한다

 

 

 

 

소백산의 허리인 이 고개는 신라 아달라왕 5년(158)에 신라사람 죽죽(竹竹)이

길을 개설 하였다 하여 죽령(竹嶺)이라 불리어 왔으며

조선시대에 영남의 3대 관문이어서 고갯마루엔 객점과 마방이 있을 만큼 사람의 왕래가 빈번하였다

 

 

 

 

역사적으로는 삼국시대에 죽령이 고구려와 신라의 중요한 국경의 요충지여서 충돌이 잦았던 지역으로

장수왕 때에는 고구려가 먼저 차지했으나 진흥왕 때는 신라가 차지했다

이에 유명한 고구려의 온달(溫達)장군이 죽령을 회복하기 위해 출정하여 쌓았다는

온달산성(사적 제264호)과 적성산성(사적 제266호) 등의 성터가 단양 지방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옛날에 목마름에 육신 덩어리를 이끌고 주막에 들어설 때에 선조들의 발걸음을 되새겨 본다

심술 궂은 주모가 따라주는 걸죽한 막걸리 한 사발이 얼마나 맛이 있었을 꼬!

막걸리 한 사발에 시름을 날려 보냈을 이 고개에서 나 역시 막걸리 한사발에 산행을 마무리한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3 : 10 ~ 13 : 30  (10시간 20분)      ◎ 날씨 : 아주 맑음

 

 

When A Child Is Born Lyrics - Sarah Bright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