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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백두대간(완주)

백두대간 제17구간(벌재-죽령) 종주산행

백두대간 제17구간(벌재 - 도솔봉 - 죽령)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3년         06월          11일          (화요일)

◎ 산행위치 : 경북 문경시 문경읍 / 예천군 용문면, 상리면, 봉화면 / 충북 단영군 단성면, 대강명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벌재(59번국도) - 들목재 - 문복대(門福臺, 1,074m) - 저수령(低首嶺, 850m) - 촛대봉(1.080m)

                      시루봉(1.110m) - 배재 - 싸리재 - 흙목정상(1.034m) - 솔봉(1.013m) - 모시골정상

                      묘적령(妙積峰, 1,148m) - 도솔봉(兜率峰, 1,314m) - 삼형제봉 - 흰봉산삼거리 - 죽령(竹嶺)

 

◎ 산행거리 : 벌재 ~ 3.7Km ~  문복대 ~ 3.2Km ~ 촛대봉 ~ 5.0Km ~ 흙목정상 ~ 3.1Km 

                      솔봉 ~ 2.4Km ~ 묘적령 ~ 2.8Km ~ 도솔봉 ~ 2.7Km ~ 흰봉산삼거리 ~ 1.4Km ~ 죽령 

                      도보거리   =   약  24.3Km           실제도보거리   =   약 25.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2 : 30 ~ 15 : 15  (12시간 45분)      ◎ 날씨 : 맑음 후 흐림

 

            ◐ 한반도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의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 산행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의 병사봉(兵使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江)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 만으로

지리산의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하며,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 금수강산이 되었으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여의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백두대간 복원사업으로 깔끔하게 완공되어 옛적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복원사업은 아주 바람직한 사업이란 걸 이렇게 보여 주는 것 같았으며~

이곳을 지나는 도로를 33번 지방도로 였으나 지금은 59번국도로 승격되어 있다

 

 

 

 

벌재(伐峙,625m)는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과 문경군 동로면을 연결하는 고갯길이다

벌재라는 지명은 나무가 울창해서 모두 벌목을 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또한  옛날 정부에서 "황장목"을 벌목하여 나르던 고개라 하여 벌재라는 이야기도 있다

 

 

 

 

고갯마루 아래의 작은 공터에 주차을 지키고 <벌재~죽령>구간의 장도에 오른다

고갯마루에는 생태계 복원사업으로 공사중인 자재가 널부러져 있었고~

숙소인 컨테이너박스 뒤쪽으로 있는 월악농원 표지석을 뒤로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잘려진 대간길을 목교를 건너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벌재에서 1km 지점에 위치한 첫번째 봉우리 823m봉을 넘는다

 

 

 

 

 

 

 

823m봉을 내려서면 안부에는 한아름의 금강소나무들이 운치를 더한다

이곳의 안부를 돌이 많아서 돌목재(石項)라 부르고 있지만~

세월이 흘러서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지금은 돌들을 볼 수가 없었다

 

산 아래에 배나무골, 호박골, 세작골, 성골 등의 골짜기로 둘러싸인 마을이 있다

그 마을의 이름이 석항리(石項里)인데, "돌목"이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돌목"을 한자화 하면 "석항(石項)이 된다, 지금은 음이 변하여 "들목재"라는 지명이 붙여진 것이다

 

 

 

 

<문복대(門福臺, 1,074m)의 본래 이름은 운봉산이었다고 한다>

백두대간 죽령, 도솔봉, 저수령을 지나 문경시 관내로 들어오면서 솟구친 산이다

<산들산악회>에서 2001년 복(福)을 불러오는 문(門)과 같은 산이라 하여

표지석을 세우면서 자연스럽게 문복대(門福臺)라는 이름이 붙여진 산이라고 한다

 

 

 

 

<문복대를 내려서면 거센 바람과 함께 폭우가 쏟아진다>

본래의 문복대는 북으로 수리봉, 황정산으로 이어지는 도락단맥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 산줄기는 선미봉, 수리봉, 신선봉, 도락산 등의 산맥을 이루고 있으며~

벌재와 저수령 사이에 있는 문봉대는 예전에 운봉산 혹은 운달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장구재(860m)는 석항리 웃성골과 올산리를 연결하는 고갯마루이다

장구 모양으로 잘록하게 생긴 고개라 해서 불리우는 이름이며~

지명에서 장구는 잘록한 나무통의 양쪽에 가죽을 메워 만든 악기이다

 

 

 

충북 예천군 상리면에서 2000년부터 시작한 해맞이 행사제단석이 있다

 

 

 

 

 

 

 

<저수령(低首嶺)은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를 잇는 고개이다>

저수령 정상은 경북과 충북의 경계이기도 하여 각종 표지석이나 표지판이 즐비하고 927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조선후기 지도에는 회령이라고 했으며, 휴게소와 주유소까지 있어 제법 운치가 있는 고갯마루였는데~

최근 들어 지나가는 차량이 적어 휴게소와 주유소가 폐쇄되고 한적한 고갯마루엔 주차장만 스산하게 남아 있다

 

 

 

 

<이 고개 이름이 저수령(850m)이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첫번째는 예전에 길이 험하고 숲이 우거져 지나는 이들이 절로 머리를 숙여야 했었단다

다른 하나는 저수령에서 은풍곡(殷豊谷)까지 피난길로 많이 이용되어 왔었는데~

이 고개를 넘는 외적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전해진다

 

 

 

 

산속으로 들어서니 조용하였던 적막을 깨운 것은 이름모를 새들이다

거친 숨소리 때문에 잠못 이루게 하여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저수령에서 촛대봉 오름길은 제법 논스톱으로 가파르게 오름짓을 한다

 

 

 

 

촛대봉(1,080m)은 촛대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촛대봉이라 한다는데

야밤이라서 어디가 촛대바위가 있는지~ 알길이 없었으며

산림청 헬기의 지원을 받아 어렵사리 설치한 정상석이 반으로 쪼개져 흉물로 변해가고 있다

 

 

 

 

촛대봉을 넘어가면서 경북 문경은 작별을 하고 예천군이다

주변에는 들꽃들이 널부러져 산객을 반기였으며

일월비비추, 하늘말나리, 동자꽃, 산수국 등 마치 천상화원에 걸어가는 느낌이다

 

 

 

 

투구봉(1,081m)은 투구처럼 생긴 암릉이 있다하여 투구봉이라 한것 같으며

충북 단양군 "소백산 투구봉"이라고 쓰여진 입갑판이 세워져 있고

입갑판 양쪽으로 두개의 암봉이 있는데, 아직도 어둠이 가시지 않은터라 조망이 좋을 듯 하였다

 

 

 

 

촛대봉과 투구봉, 시루봉은 맞닿아 있어서 삼형제봉이라 불러도 좋을 듯 하였으며

왜 시루봉이라 불렀을까 하는 생각이 궁금하다

아마도 멀리서 바라볼 때에 떡 시루와 같이 보이는 듯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등산로는 육산이라서 부드러우면서도 오름과 내림이 반복되는 구간이다

그래서 1,084m봉 오름길은 체력소모가 많았으며

둘산악회에서 "1,084m봉 힘내세요"라고 코팅지를 걸어 놓았다, 정성에 감사드리며 힘을 내어본다

 

 

 

 

"배재는 이곳이 바닷가가 아니므로 배(船)가 다녔을리 없고 그렇다고 배(梨) 밭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배재"하면 배나무와 관련지어 이름풀이를 한 사람들이 많은데, 배골, 배나무골은

골짜기 마을이란 뜻이고 배재는 산을 넘는 고개의 뜻일 뿐이다, 우측으로

야목마을은 흙목마을을 가리키며 고갯길은 희미한 오솔길만 남아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이다

 

 

 

 

배재에서 긴 오르막을 힘들게 올라서면 지도상 1,053m봉(유두봉)에 올라선다

북쪽이 절벽인 암봉이어서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 일대가 정겹고

그 옆으로 도솔봉으로 이어진 백두의 능선길이 일목요연하게 들어온다

1,053m봉은 멀리서 보면 마치 젖꼭지처럼 불룩 튀어 올라 있어 산꾼들이 유두봉이라 이름을 지어 놓은 것이다

 

 

 

 

질레꽃을 보니 장사익에 "찔레꽃"노래가 생각이 난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삼새워 울었지~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꽃 찔레꽃을~  흥얼거리며 지루한 산행을 달래며 열심히 걸어가고 있다

 

 

 

 

헬기장의 이정목은 뱀재를 말한 것으로 보여진다

 

<산같이 물같이 살자 중에서 / 법정스님>

텅 빈 마음엔 한계가 없다

참 성품은 텅 빈곳에서 스스로 발현된다

산은 날보고 산같이 살라하고 물은 날보고 물같이 살라한다

 

빈 몸으로 왔으니 빈 마음으로 살라고 한다

집착, 욕심, 아집, 증오 따위를 버리고

빈 그릇이 되어 살라고 한다 그러면 비었기에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고 한다

 

 

 

 

헬기장이 있는 뱀재는 남조리와 초항리를 잇는 고개다

예천의 예(醴)자는 술, 술담는 그릇 유(酉)변에 풍성할 풍(豊)자를 쓰는데 단술 예자다

술이 달다는 뜻으로서 술의 질이 좋다는 말과 다름없다

예천의 술은 안동소주와 함께 경북에서는 명주이므로 한잔씩 하고들 가시지요?

또한 예천군 용문면에는 유서깊은 용문사가 있는데, 양평 용문산의 용문사보다 유서깊은 고찰이란다

 

 

 

 

솔봉(1,103m)은 삼각점 주변으로 사방이 잡목으로 덮혀 있다

이 부근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보여지는데

표지판에 1,021m라고 적혀 있는데 높이가 잘못 표기된 것으로 보여진다

 

 

 

 

모시골정상(1,010m)은 남쪽 아래의 모시골 마을의 이름을 따라서

모시골정상이라 편의상 부르는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지형도엔 나타나 있지 않으며 봉우리로 보기에는 조금 민망할 정도다

 

 

 

 

지도상 1,027m봉에는 벤취가 조성되어 있어 산상만찬을 즐기다 간다

울~몽실님의 정성이 담긴 도시락으로 행복을 먹고

냉커피도 한잔 마시니 신선이 부럽지 않은 마음으로 힘을 내어 도솔봉을 오른다

 

 

 

 

이정목의 삼거리에서 햇갈리게 한다, 묘적봉이라 생각하면 맞을 듯하다

1번은 날등에서 묘적령으로 바로 넘어가는 길이고

2번은 우측으로 10m지점에 묘적령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돌아간다

 

 

 

 

묘적령(妙積嶺, 1,020m)의 표지석은 아담하고 예쁘다

예천군의 표지석이라~ 왠지 정겨웠으며

백두대간상에서 예천군의 표지석을 처음 보아서 무척이나 반갑다

 

 

 

 

우측으로 고향치와 모래재로 내려가는 길이 뚜렸하므로 조심해야 하며

또한 옥녀봉 자연 휴양림도 있는 곳으로

시그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왕왕 길을 잘못 든다, 진짜 묘적령은 좌측으로 내려가야 한다

 

 

 

 

소백산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진짜 묘적령(妙積嶺)에 내려선다

좌측은 사동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죽령까지 8.8Km 거리인데 5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난코스가 예상되는 구간이다

 

 

 

 

묘적봉(妙積峰, 1,148)은 옹색한 봉우리고 바위엔 정상을 표시하는 동판이 붙어 있다

과거 묘적봉은 시야가 열려 있는 편이었으나

지금은 수목으로 둘러싸여 조망은 기대할 수 없으며 정상아래 전망대에서 풍기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묘적봉은 사동리 마을 쪽으로 골짜기가 깊고 아름답다고 한다

소백산 국립공원의 최남난에 위치한 산으로

사동리(寺洞里)는 구한말 때 관군에 쫓긴 동학군이 들어와 살았다는 애기도 전해진다

 

 

 

 

도솔봉 오름길은 무척이나 힘이든다

하지만 도솔봉에 도착하면 미륵보살님이

환한 웃음을 머금고 우리를 반겨 줄것이기에 힘을 낸다

 

 

 

 

도솔봉은 뒷쪽으로 소백산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어 황홀하고

우측으로는 삼형제봉이 앞으로는 묘적봉을 중심으로

활같이 구부러지면서 황장산으로 뻗어내린 백두의 산줄기가 아련하게 보인다

 

 

 

 

도솔봉 암릉에 설치된 계단(108계단)은 마의 계단길이라고 한다

하지만 도솔봉은 올라갈 수록 좋은 산이란걸 느껴지며

우리의 영산 소백산이 곁에 있어서 그 진가가 다만 묻혀버린 것이 아쉬울 뿐이다

 

 

 

 

도솔봉(兜率峰, 1,314m)은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과 도계를 이루는 산으로

국망봉과 연화봉과 함꼐 소백산 국립공원에 속한다

죽령을 사이에 두고 북쪽의 소백산이 밋밋한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도솔봉은 오르 내림이 심한 암릉구간을 지니고 있기에 산행은 힘들지만 탁 트인 조망을 주는 산이다

 

 

 

 

도솔봉은 산신령을 수호하는 큰 호랑이가 지키고 있어 접근을 못해 산삼과 귀이한 약초가 많으며

석가모니 못지않은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연험하고 신성한 산이라 전해져온다

그래서 때묻지 않은 깨끗한 도솔천과 같다고 하여 도솔봉이란 이름이 붙여졌으며

진짜 정상은 우측에 100m지점에 있으며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것 같아서 서둘러 도솔봉을 내려선다

 

 

 

 

도솔봉(천)은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육천(慾界六天)중에 제4천(第四天)을 말하며

어원을 해석하면 "만족시키다"란 뜻으로

지족(知足), 묘족(妙足), 희족(喜足), 희약(喜藥)을 뜻한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법을 깨우쳐 주고 무거운 짐을 지은것을 가볍게 해주고 비움이란 것을 알려주는 곳이다

 

 

 

 

진짜 도솔봉 정상엔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고 새겨진 정상석이 있다

장하다! 부산 산사나이들! 그리고 멋져요?

당신들이 있기에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 또한 시원시원하다

 

 

 

 

도솔천은 불교에서 이상적인 불국토의 세계를 의미한다, 마치 기독교에서 천당이나 천국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도솔천은 부처가 되기 전의 보살들이 사는 곳이어서 석가모니도 보살일 당시 도솔천(兜率天)에 머물렀고

그리고 현재는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도솔천에서 설법을 하면서 지상에 내려갈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죽어서도 미륵불이 계신 도솔천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원했기에 아름다운 이 산을 도솔봉이라 했을 것이다

 

 

 

 

삼형제봉 오름길 역시 만만치 오름길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오르는데

한발짝 한발짝이 발목에 무쇠를 달아 놓은듯 힘이든다

 

 

 

 

삼형제봉 중에서 가운데 있는 제2봉이 주봉(1,286m)인 셈이다

목제계단을 체력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힘겹게 올라 보았지만 정상석도 없는 무명봉이라 실망스러웠다

 

 

 

 

도솔봉에서 삼형제봉을 넘어온 백두의 길은 정말 힘든 산행이었기에

흰봉산갈림길 이정목이 어찌나 반가운지~

죽령까지 3.4Km가 남았기에 내림길이라 위안을 삼으며 힘을 내어본다

 

 

 

 

죽령샘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물맛이 참 좋은 곳이며

그런데 이런 샘이 산꼭기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애고오 도솔천하 / 정태춘>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선말 고개 넘어 간다 자갈길에 비틀대며 간다

도두리 벌 뿌리치고 먼데 찾아 나는 간다 정든 고향 다시 또 보랴

기차나 탈거나, 걸어나 갈거나 누가 이깟 행차에 흥 난다고

짐 든든히 쌌겄는가 시름 짐만 한 보따리

간다 간다 나는 간다 길을 막는 새벽 안개 동구 아래 두고 떠나간다

말산의 소나무들 나팔소리에 깨기 전에 아리랑 고개만 넘어가자 <생략>

 

 

 

 

쭈~욱 쭉쭉 뻗은 낙엽송 군락지를 내려서면 죽령에 도착한다

오늘 산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지은 이름이 많다

촛대봉~ 불을 밝히고

묘적봉~ 참선이 삼매경의 경지에 오르고

도솔봉~ 마치 인도의 경전을 얻으러 가는 수행길 같아 보인다,

 

 

 

 

죽령고개에 내려서니 옛길이란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커다란 안내판에 설명도 해 놓았는데

언제다시 죽령 옛길을 찾아 오늘같은 여유를 만끽할 수 있을런지~ 

 

 

 

 

죽령에서 2013년 Tour de Korea (투루 드 코리아) 싸이클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주체로 열리는 세계적인 대회이며

도전과 감동의 은빛 레이스를 펼쳐지고 있었는데, 원활한 소통을 위해 차량을 통제하고 있어 복잡하다

 

 

 

 

죽령(竹嶺)은 일명 "대재"라고도 하며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을 잇는 국도 5호선이 지나는 고갯마루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진덕여왕 때 술종(述宗) 고이 삭주(지금의 춘천) 도독으로 임명되어 임지로 가다가

이곳에 이르렀을 때 한 스님이 고갯길을 닦고 있어서 인사를 하고 헤여졌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술종 공의 꿈에

스님이 나타나고 부인의 꿈에도 나타났는데,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알아 보았더니 그날 그 스님이 입적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일이 있은 후 이어서 부인에게 태기가 있어서 훗날 아들이 태아나니 그 아이 이름을 죽지(竹旨)라 지었고 그 아이가

그 스님의 환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아이 이름을 따라 그 고개를 죽지령이라 했던 것이 죽령이 됐다고 한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신라 아달라왕 5년(158)에 죽죽이란 사람에 의해 고갯길이 열렸다고 하여 죽령이라 하였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또 한 설은 "큰 고개"란 뜻의 대(大)재라 했던 것이 차음을 해서 대재(竹嶺)라 하던것이 죽령이 됐다고도 한다

어떤 설이 옳은지는 알 수가 없으나 역사적 사실 이외에는 동해안의 죽변과 죽령은 이래저래 대나무와 관련이 깊은 모양이다

 

 

 

 

역사적으로는 삼국시대에 죽령이 고구려와 신라의 중요한 국경 요충지여서 서로 차지하려고 충돌이 잦았으며

장수왕 때에는 고구려가 먼저 차지했으나 진흥왕 때는 신라가 차지했다

이에 유명한 고구려의 온달(溫達) 장군이 죽령을 회복하기 위해 출정하여 쌓았다는

온달산성(溫達山城)과 적성산성 등의 성터가 단양 지방에 지금까지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에 와서는

추풍령, 문경새재와 영남의 3대 관문이어서 고갯마루엔 객점과 마방이 있을 정도로 사람의 왕래가 빈번하였다

 

 

 

 

별이 있어 하늘이 아름답고, 땅에는 꽃이 있어 아름답고, ♡사랑이 있어 세상이 아름답다고♡

괴테는 산이 있어 인생이 아름답다는 말은 왜 못했을까요? 척박한 땅에서

피는 꽃이 아름답듯이 도솔봉을 넘을 때 힘들었던 여정은 우리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질 것이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2 : 30 ~ 15 : 15  (12시간 45분)      ◎ 날씨 : 맑음 후 흐림

 

 

애고, 도솔천아 - 정태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