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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백두대간(완주)

백두대간 11구간(신의터재-비조령) 종주산행

백두대간 제11구간(신의터재 - 봉황산 - 비조령)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2년           10월           01일           (토요일)

◎ 산행위치 : 경상남도 상주시, 화서면과 화남면의 경계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신의터재 - 무지개산갈림길 - 윤지미산(538m) - 화령재(25번국도) - 봉황산(740.8m) - 비조령

 

◎ 산행거리 : 신의터재 ~ 1.2Km ~ 노루골 ~ 2.0Km ~ 무지개산갈림길 ~ 4.3Km ~ 윤지미산 ~ 2.9Km 

                      회령재 ~ 2.2Km ~ 450봉 ~ 2.3Km ~ 봉황산 ~ 1.5Km ~ 660봉 ~ 2.1Km ~ 비재, 비조령

                      도보거리   =   약 19.5Km           실제도보거리   =   약 20.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7 : 10 ~ 16 : 30  (09시간 20분)      ◎ 날씨 : 흐림, 흐림

 

            ◐ 한반도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의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 산행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의 병사봉(兵使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江)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 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하며,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 금수강산이 되었으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여의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추석을 즐겁게 보내고 징검다리 연휴일인 국군의날 백두의 길을 나선다

오는 동안 고을마다 흐트러지게 핀 코스모스가  추석연휴기간에

고향가는 길을 행복하게 해주고 우리의 산행길도 즐거운 마음으로 신의터재에 도착했다

 

 

 

 

신의터재는 본래 지명은 新恩峴)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김준신(金俊臣)이 의병을 모아 의병장으로

많은 왜병을 도륙하고 임진왜란 4월 25일 장렬하게 순절한 사실이 있은 후부터

"신의터재"라 불리었으나 일제 때 민족정기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어사재"로

불리게 되었고, 문민정부 수립 후 50주년을 맞이하여 민족정기를 되찾고 후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교육의 장으로 삼고져 옛 이름을 1996년 12월 "신의터재로 고치다"라고 새겨져 있다

 

 

 

 

신의터재에는 온통 "팔음산포도:를 광고하고 있는데

팔음산(八音山, 762m)은 충북 옥천과 경북 상주 모동면의 도계를 이루 산이다

이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중화지구"는 해발 200~300m의

고원지대라 일교ㅗ차가 커서 포도, 사과, 감 등 과일들이 당도가 놏아서 유명하다

 

 

 

 

백두대간 종합안내도가 있는 우측 임도를 지나서

바로 우측으로 산길로 접어든다, 비재까지

다소 거리가 멀지만 큰 오름이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산정에 오른다

 

 

 

 

추석을 맞이하여 자연과 함께 지나온 세상을 돌아보는 시간이길 바래본다

동쪽으로 일출이 시작되면서 산하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하며~

개 짓는 소리가 이방인이 백두대간에 온 것을 알리면서 선교리 마을이 가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떠 오르는 태양은 하루를 열기 위해 분주하면서도 가장 극적인 순간이다

태양을 가슴에 담고 뜨거운 열정으로 오늘도 자연과 동화도어

지리와 문화 인식의 자연 사랑을 배우는 마음으로 열심히 걸어가 보리라

 

 

 

 

봉우리를 올라갈 듯하던 마루금은 좌측으로 틀어진다

구릉지대의 미로속을 헤메이듯! 이리 저리 헤메며~

말의 꼬리를 잡고 달리는 기분으로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노간주 나무는 측백과인데도 "두송목"이라고도 한다,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고

열배를 "두송실"이라고 해서 서양에서는 양주의 원료로도 쓰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나무껍질을 벗기면 부드럽고 탄력이 있어 소의 코뜨레 재료도 쓰기도 하고 열매를 따서 약으로 쓴다

 

 

 

 

노루골에 화사한 가을꽃이 춤을 추고 있다, "노루골"은 마을 지형이

노루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또한 길게 늘어진 골짜기 라는 뜻으로 "장곡(獐谷)"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노간주나무 군락지 표지판이 있는 봉우리를 내려서면

서낭당이 있는 돌무더기 안부를 지나서

서서히 고도를 높여 올라가면 무지개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무지개산은 살거리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살짝 비켜나 있다

무지개산을 갔다오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정상석도 없고 하여 큰 의미가 없는 산이라서 휘리릭 지나간다

 

 

 

 

무지개산(441m)은 높지는 않으나 아름다운 무지개 폭포가 있다

주변에는 낙화담, 철새도래지, 판곡저수지 등이 있어 상주시의 관광지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무지개산은 무지개골에서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물(水)+이+개+골(谷)=물이개골> 무디개골> 무지개골 "개"는 "게"와 같은 뜻으로 "개울"을 뜻하기도 한다

 

 

 

 

서어나무군라지, 노간주나무군락지, 잣나무군락지를 차례로 지나간다

사거리안부에는 "닥터불루베리농원"을 알리는 안내 푯말이 있고~

지금도 사람들이 넘나드는 옛 고개로 마루금은 직진방향인 통나무계단을 오르면서 이어진다

 

 

 

 

무명봉에 올라서면 마루금은 우측으로 틀어진다

행복이란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고~

가고싶은 곳에 갈 수 있을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조금은 쓸쓸함이 산길에 배인다, 좌측으로 화동면 판곡리의 '낙화담"이라는 연못이 있는데

이곳에서 김준신(金俊臣)이 수많은 왜군을 죽이자

왜병들이 이를 보복하기 위해 판곡리에 침입해 마을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는데, 당시 부녀자들은 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낙화담 연못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야사가 전해진다

 

 

 

 

이곳 상주하면 정기룡(1562~1622) 장군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임지년에 왜적이 이 땅에 덮쳤을 때,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고 공을 세운 정기룡장군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상주시에서는 시민체전 개회식에서 그의 상주성 탈환을 재연하여 그를 기리고 있으며~

곤양정씨(昆陽鄭氏)의 시조인 그는 1580년(선조 13년) 고성에서 향시에 합격하고

1586년(선조 19년) 무과에 급데 하였으며, 왕명에 따라 기룡(起龍)으로 개명 했다, 그는 거창에서

왜군을 격파하고 추풍령 금산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는 등 주로 백두대간 동쪽에서 유격전을 펼쳐

왜적의 호남 진출을 막았으며, 1593년 상주성을 탈환하여 왜적의 전략에 큰 타격을 기하였던 인물이라고 한다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나면 좌측으로 꺾어서 진행한다

곧바로 능선 438m봉의 무명봉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곳은 "숭덕지맥"이 분기되는 시작점으로 중요한 봉우리이다

 

 

 

 

숭덕지맥은 배두대간상의 438m봉에서 분기한다

경북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와 상주시 내서면 사원리의 경계지점이다

소머리산, 채룡산, 범산, 오봉산, 국사봉, 숭덕산, 서산, 오봉산

두리봉, 금지봉, 옥주봉, 남산 등을 만날 수 있고 동북쪽과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도남동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남산에서 낙동강으로 넘겨주면서 그 맥을 다한다

 

 

 

 

돌무더기 탑이 있는 무명봉은 윤지미산의 전위봉이다

앙증맞게 쌓여있는 돌무더기에

추억에 돌 하나를 올려 놓고 윤지미산을 향해 올라간다

 

 

 

 

윤지미산(允知嵋山, 538m)은 원래 이름은 "소머리산"이었다고 한다

이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윤지미산"이라~

영화배우 "김지미"을 연상하고 올라 왔건만, 정상석 표지서과 글씨가 참으로 놀랍구만이라~^

상주시에 야그해서 제대로 정상석하나 세워 놓아야 하던짐~ 그란안하므~ 차라리 "소머리산"으로 하던지~

 

 

 

 

어느 낭만적인 산꾼이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붙이지나 않았을까 의구심이가는 "윤지미산"

이름만큼이나 예뻐야 할 산이지만, 백두길에 속해 있지 않으면 산악인들이 찾을 만한 이유가 없는 산이다

윤지미산의 유래는 "윤"은 지명 "마륜"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며, "지"는 백제어로 "고개(峴)"를 뜻한다

윤+지(支)-미(山)=윤지미산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마륜"은 지형이 몹시 가팔라서

말이 굴러 떨어졌다는 뜻으로  말(大)+구리(谷)+재(峴) = 말구리재라면~ 말머리산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윤지미산에서 내려서는 밧줄구간은 급경사 하산길이다

지형이 몹시 가팔라서 말이 굴러 떨어졌다는

어원이 그럴 듯하게 느낄 정도로 상당히 위험한 급경사 구간이었다

 

 

 

 

<큰 인삼밭이 보이는 임도를 잠시 만났다가 다시 우측 숲으로 들어간다>

김영길 저서의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와사보생(臥死步生)이라 했다

신토불이 건강 철학으로 불치병을 치료한 책자이다

산따라 길따라 느끼고 감동받고 깨닫고 즐기면서 걸어가 어떨런지~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건강도 지키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인생을 즐기는 방법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간다

 

 

 

 

잘 정돈된 묘역에서 뒤돌아본 <윤지미산> 산 이름이 참으로 독특하다~^^

김지미 산도 아니고~^^  왜 윤지미산이라 했을까요?

어떤 산꾼이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붙이지나 않았을까요?

의구심이 가는 윤지미산, 예쁜 이름으로 산꾼들의 기억속에 잊혀지 않을 것 같다

 

 

 

 

신봉임도인 시멘트 도로 절개 상단에 내려선다

아마도 화령재에서 판곡저수지로 넘어가는 도로로 보이며~

좌측 산봉우리로 마루금이 어어져야 하는데~

임도를 따라서 우측으로 약 200m정도 진행하다가 우측 숲으로 들어간다

 

 

 

 

임도를 따라 200m 진행하여 오면 이정표가 있는 우측 산으로 마루금이 이어진다

하늘길인 백두의 길이 마을로 내려와 있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지만~

다시한번 생각해보년 이처럼 마을로 내려온 대간길이야 말로 진정한 하늘길 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루금은 창원-상주간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화령터널 위를 통과한다

10년전만 해도 이곳은 걸음하기가 쉽지 않은 오지였으나~

중부내륙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서울에서 반나절이면 쉽게 닿을 수 있는 땅으로 바뀌였다

 

 

 

 

화령재는 상주시 내서면과 화서면을 잇는 고갯마루에는 주차장과 "화령정"이라는 팔각정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치열한 전투를 거쳐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천혜의 요새였는데~

평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백두대간 표지석이 거창하게 세워져 있고, 25번국도가 지나가는 고갯마루이다

 

 

 

 

화령재는 조선시대 때 상주시 화서면 소재지가 화령현이었는데, 화령현을 넘나들던 고개라 하여 화령재라 하였다

화령의 옛 이름은 "답달"(닿은산, 달은산(山)의 옛말이라고 하며~

하늘에는 구름 조각이 티없이 화창하고 평화롭게 보이는 것처럼 화령재도  이제는 산꾼들의 평화로운 쉼터로 변했다

 

 

 

 

화서면 방향에서 마루금은 우측 숲속으로 진행하여야 하나

100m도 못가서 도로에 내려서야 하기에

화령재에서 수청삼거리까지는 도로 따라 진행하는 것이 무방하다

 

 

 

 

도로 따라 수청삼거리 까지는 약 200m정도 거리이다, 화령(化零)이란 화서면 일대를 말한다

예전에는 화서면, 화북면, 화남면을 합쳐서 화령현(化零縣)이라 했으며~

모동면과 모서면을 합쳐 증모현이라 했다, 화령현 지역과 증모현 지역을 합쳐서 지금은 중화지구라고 부른다

 

 

 

 

수청섬거리는 한창 도로포장공사가 끝나는 중이었다

삼거리 건너편에 상곡1리 마을 표지석이 있고, 우측으로 백두대간안내도 뒷쪽으로 마루금이 이어진다

수청거리는 화령장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화령현 당시에 많은 관기가가 있었고 여기에서

많은 가구들이 각 지방으로 팔려나가기도 했다, 기가(妓家)가 있는 곳이라 하여 수청거리라 부르게 되었다

 

 

 

 

좌측으로 재왕골 솔의(率儀) 마을이 있는데, 옛날 화령현 때

대장군이 이 마음에서 작전을 함에 있어

군사를 솔선 수범 하였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솔의라 부르고 있단다

 

 

 

 

좌측 화서면에 화령장이 있는 곳으로 화령장은 한국전 당시에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지금도 전적비가 있으며, 고려시대부터 내려왔다는 화령 장터가

조그마한 시골마을이지만 아직도 소문나 닷세장으로 유명하다고 하낟

우리 노씨(盧氏) 집안에서 문신이자 학자이고, 영의정을 지낸 노수진씨의 고향마을이기도 하다

 

 

 

 

화서면사무소가 있는 화령마을 전경이다, 신라시대 경덕왕때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화령으로 부르다가 1895년(고종32) 상주군으로 개편될 때

중화의 서쪽에 위치하였다 하여 화서면이라 칭하게 되었지만

화서보다는 화령(신봉리)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호령이라고 부르고 있다

 

 

 

 

다시 호젖하고 여유로운 소나무 숲길이 10여분 이어진다

추풍령 이후의 중화지구대를 걸어오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의 발걸음은 끝이나고

이젠 봉황산을 시작으로 큰 오름을 다시 시작해서 그 험난하고

힘들다는 속리산권(속리산, 조양산, 대야산, 희양산)으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봉황산의 오름길은 지그재그로 빡세계 오름짓을 한다

하지만 그동안 실버산행으로 편안하게

걸었던 만큼 힘을 쏟아 부으면서 산불감시초소봉을 오른다

 

 

 

 

지도상 580m봉인 산불초소봉은 봉황산의 전위봉으로 막사만 산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입산하는 중생들의 마음을 받아주는 지킴이는 없었으며, 전망대에 올라가

화서면의 황금들녘을 바라보면서 산상만찬을 즐기면서 봉황산의 지킴이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산불초소봉에서 바라보면 윤지미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우측으로 화서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이번 대간길에서 화령이란 단어를 엄청 많이 들어 보았으며, 자그마한 마을이지만~

우리의 문화와 역사 현장이 살아 숨쉬고 산객의 가슴속에 자연의 위대함을 알려준 곳이기도 하다

 

 

 

 

대궐터산 뒷쪽으로 두리봉 암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옛 후백제의 견훤이 상주에 나라를 세우고 대궐과 성을 쌓았다는 산이 대궐터산이다

대권터산은 견훤산성이 있는 앞쪽 봉우리를 일컫고, 그 뒤의 암봉을 두리봉이라 한다

두리봉과 대궐터산 전체를 청계산이라 하며, 갈령 좌측으로 형제봉과 속리산의

천황봉이 우뚝하고 연봉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도록 멋진 조망이 펼쳐진다

 

 

 

 

암릉 봉우리를 좌측 사면으로 돌아서 우회하여 올라선다

T능선기에서 좌측으로 진행해야 하며, 우측 방향은

진행하지 말라고 친절한 산꾼들이 통나무로 가로막아 놓았다

 

 

 

 

봉황산 100m전방에 갈림길이 있다, 반송(盤松) 또는 백운사로 내려가는 남릉길이다

상주시 화서면 상현리에 있는 반송은 천연기념물 제 293호이며~

옛날에 이 나무에 이무기가 살고 있다는 전설이 있어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였다

지금도 흐린 날씨 때문에 나무 주변에 구름이 끼고 이무기의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반송을 신성하게 여겨 나무를 다치게 한 것은 물론 낙엽만 긁어 가도

천벌을 받는다고 민는다,  나무의 형태가 탑같이 생겼다고 탑송(塔松)이라고도 하며

정월 보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동제(洞祭)를 드리며, 새해의 풍작과 행운을 기원 한다고 한다

 

 

 

 

봉황산 정상은 이름 만큼이나 화려하지는 않고 조망도 막혀있다

하지만 정상에는 백두대간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고~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있어 산꾼들에게는 최고의 명당이 아닐 수 없다

 

 

 

 

봉황산(鳳凰山, 740.8m)은 1300년 전 이산에 봉황새가 날아와

30여 년을 살았다는 전설이 있어 봉황산이라 하고~

정상을 향해 머리를 곧추 세우고 양쪽으로 뻗은 능선들이 날개를 펼친 봉황을 닮았다고 한다

 

 

 

 

<봉황산은 화령의 역사를 간직한 산이다> 중종의 태를 묻었다는 전설에 힘입어

화령인들이 태봉산(胎封山)이라 부르며, 봉환산은 봉황이

알을 품고 잇는 형국이라는 포란지세의 명사능로 송천을 발원시키느 화령의 진산이기도 하다

 

 

 

 

봉황산에서 한동안 시간을 즐긴후 암릉을 타고 내려선다

충북알프스의 주능선이 시원하게 보이고~

우측으로 하얀 암봉을 드러낸 속리산이 산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지도상 660>m봉으로 그냥 지나치면 봉우리의 의미를 모를 것이다

좌측으로 팔음지맥이 분기하는 분기봉이기도 하며~

이 봉우리의 좌측은 상주시 화서면이고 우측은 상주시 화남면 경계이다

 

 

 

 

묘이장 흔적이 있는 공터봉을 지나면 우측에 멋진 소나무가 있었다

소나무가지에 선답자 시그널이 주렁주렁 메달려 있었는데~

얼마나 많이 걸려 있었던지 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 용이하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고 수많은 백두대간 종주대들과 함께 했을 분재같은 소나무 숲길!

저 늠늠한 소나무의 모습에서 인생의 한자락을 배우고 걸었을 것이고~

산꾼들의 발길에서 엔돌핀이 팍팍 솟구치면서 진부령까지 모두가 무사히 완주 하였을 것이다

 

 

 

 

고사목 한 그루가 구병산 자락을 가리키며 잠시 쉬어가라고 한다

한폭의 풍경화가 산객의 마음을 달래 주었는데~

이러한 자그마한 행복감에 산을 오르면서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좌측 500봉우리를 올라 갈듯한 마루금은 우측으로 꺾어진다

마루금 이정목에 흐릿하게 비재라고 써 놓았는데~

비재가 가까이 있음을 알았을 때, 친절한 산꾼이 오늘따라 왜 이리 고마운지~^

 

 

 

 

비재로 향하는 하산길은 잣나무의 곳곳한 숲길이다

힘들었던 여정을 조금은 위로해 주었으며~

잣나무에서 품어져 나오는 솔향기를 마시면서 비재에 내려선다

 

 

 

 

비재는 경북 상주시 외서면과 충북 보은군 화남면을 잇는 고개이다

이 고갯마루를 49번지방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비재는 고개의 생김새가 날아가는 새의 형국이라 하여 비조령(飛鳥嶺)이라고도 부른다

 

 

 

 

이 슬리퍼구간을 "실버산행"이라고 말하는 중화지구는  봉황산을 오르면서 끝이난다

이젠 그 험난하고 힘들다는 속리산권으로 접어들게 되었지만~

항상 힘들다는 곳에는 아름다운 비경이 숨어있는 곳이 아닌가!

추풍령이후 중화지구를 걸어오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은 남은 종주길에 많은 힘이 될 것이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4 : 10 ~ 17 : 35  (13시간 25분)      ◎ 날씨 : 흐림 맑음

 

 

사랑과 평화 - 노래 : 김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