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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백두대간(완주)

백두대간 9구간(추풍령-큰재) 종주산행

백두대간 제9구간(추풍령 - 용문산 - 큰재)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2년         10월         02일          (화요일)

◎ 산행위치 :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어도면 / 상주시 모동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추풍령(秋風嶺) - 금산(金山, 384m) - 사기점고개 - 갈기봉(남함산삼거리) - 황금골삼거리 - 작점고개

                      무좌골산(474m) - 갈현고개 - 기도터바위 - 용문산((龍門山, 710m) - 국수봉(菊水峰, 793m) - 큰재 

                      

◎ 산행거리 : 추풍령 ~ 0.8Km ~ 금산 ~ 5.4Km ~ 사기점고개 ~ 2.8Km ~ 작점고개 ~ 5.0Km 

                      용문산 ~ 1.3Km ~ 용문산기도원삼거리 ~ 1.2Km ~ 국수봉 ~ 3.1Km ~ 큰재 

                      도보거리   =   약  19.6Km           실제도보거리   =   약 20.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6 : 30 ~ 14 : 25  (07시간 55분)      ◎ 날씨 : 아주 맑음

              

            ◐ 한반도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의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 산행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의 병사봉(兵使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江)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 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하며,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 금수강산이 되었으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여의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추풍령(秋風嶺)은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과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의 경계지점으로

예로부터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을 잇는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로

조령을 통과하던 교통량이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추풍령으로 흡수되었고

이곳이 경부고속국도의 중간 지점에 해당되어 우리나라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곳이 되었다

 

 

 

 

추풍령 당마루 노래비 맞은편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백두대간길은 카리브모텔 우측으로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을 뒷쪽으로 산행안내도가 있다

 

 

 

 

추풍령은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추풍령리와 경북 김천시 봉산면 광천리를 연결한 곳으로

눌의산(743)과 난함산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추풍령고개는 평탄해 보이고

경관이 수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관로였던 만큼 관료층이 추풍령을 주로 넘었던 고개였다

 

 

 

 

카리브모텔 우측 콘크리트 길을 따르면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금산 등산 안내도 좌측으로 계단을 오르면서 본격적이 산행이 시작된다

추풍령의 중요성은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추풍령을 넘으며(踰秋風嶺)"에 잘 나타나 있다

태백산 소백산이 산세도 장하구나 / 달리던 용의 머리 여기에서 수그려 / 북쪽으로 통한 시내 황간으로 달려가고

서쪽으로 뻗은 산은 적상산을 에워쌌네 / 봉마다 우뚝우뚝 성벽은 쌓았다만

이 재가 요새란 걸 어느 누가 안단 말고 / 청주고을 큰 들판 천리에 트였으니 / 추풍령 빼앗기면 멱살을 잡히리라

 

 

 

 

이정목에 등산로 폐쇄라고 씌여져 있지만 희미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금산은 흉물스럼 모습으로 밧줄이 쳐져 있었는데

산의 북사면쪽은 일제강정기 때부터 돌을 캐었다고하니 가히 상상히 가는 곳이었다

 

 

 

 

추풍령역은 기차들도 쉬어가는 곳이다, 증기기관차 급수탑이 있어서 물이 모자라는 기차는 이곳에서 물을 채우고

"삐익~삑" 출발하면서 울리는 기적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던 그 시절의 추억이 어린 이야기이다

남상규의 추풍령고개라는 노래가 추풍령의 이미지를 심어주면서 추풍령역과 추풍령은 전국적명소가 되었고

영동군민의 주제가라 할 만큼 사랑을 받은 노래였다, 추풍령의 애잔한 이야기들을 접어두고 아쉬움으로 돌아선다

 

 

 

 

금산(金山, 384m)은 아슬아슬한 벼랑이 무간지옥처럼 떨어지면 뼈도 못추릴 정도로 산이 사라지고 없다

채석장 개발로 이 땅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이 무너진 것이고

우리 선조들이 하늘 길이라고 믿었던 길이 거의 끊어져가고 없는 것이다ㅏ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그래도 백두대간 산꾼들이 지속적으로 항의하여 이정도라도 보존되었다고 한다

 

 

 

 

금산은 암벽 등반코스로 개발하면 어떨까 하고 무식한 상상을 해 본다

마루금은 살짝 우측으로 틀어지면서 내려가면서

동네 야산같은 구릉지대가 이어지면서 걷는 발길에는 낙엽소리가 제법 바삭바삭 들린다

 

 

 

 

산행 지도상의 502m봉은 아무 특징이 없는 봉우리로

선답자들의 시그널만 외롭게 팔랑인다

좌측에 추풍령저수지만 살짝 보일뿐 숲에 가려 조망도 볼 수 없는 곳이다

 

 

 

 

등로 한가운데 "해주오씨지묘"를 통과한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에는

이 땅을 살다간 민초들의 이야기가 들꽃처럼 피었다 지는 자리다

 

 

 

 

곤천고개는 지도상에는 없는 옛고개지만 좌우로 길이 뚜렸하며

우측에 곤천마을이 있어 곤천고개로 부른것 같으며

지금도 우리의 민초들이 곤천리 마을과 작점리로 넘나드는 고개로 보여진다

 

 

 

 

동북쪽으로 바뀌는 꼭지봉에서 전방에 난함산(卵含山)이 성벽처럼 올려다 보인다

난함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오늘은 체력이 따라 주질 않아 갈기봉삼거리에서 쳐다만보고 돌아서야 할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사기점고개를 내려가기전 굴참나무가 멋진 숲을 이루고 있으며

우측을로 우뚝솟은 묘함산(卯含山)은 원래 난함산(卵含山)이라 불리었으나

지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한자표기 시

알 난(卵)의 점 2개를 빼먹고 표기하는 바람에 묘함산(卯含山)으로 불리웠지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사기점고개는 고개 남쪽의 김천시 봉산면 사기점리에서

옛날에 사기를 구워 팔았다고 하여

이 고개를 사기점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이곳에서 좌측의 임도를 따라 200m 진행하다가 우측 숲길로 들어선다

 

 

 

 

마루금은 임도를 가로 지르면서 갈기봉을 향하여 오름짓을 한다

난함산은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산아래 마을이 봉황의 목에 해당한다 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목항(項)자를 써서 봉항(鳳項) 마을이라 했다, 봉황 마을은 우측 넘어로

난함산(卵含山) 방면으로 400m정도 위쪽에 있는 불무골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1936년 병자년 수해 때

마을이 매몰되고 많은 주민이 희생되어 현재의 자리로 이주해 왔으며 난함산 정상에는 KT통신중계소가 있다

 

 

 

 

무명봉을 넘어서고 군사도로에 도착하면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가면 묘함산이다

붉은 화살표 방향으로 올라가야 갈기봉 방향이지만

갈기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오면 이 도로와 다시 만나게 되므로 산꾼들은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편이다

 

 

 

 

갈기봉 오르는 등로는 징흐게 깔끄막이고 힘들게 올라선 봉우리는 아무 특징이 없으며

선답자들의 시그널만 몇개가 시위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난함산 갈림길이라 하여 갈기봉이라 이름이 붙여진것으로 보여지며 마루금은 좌측으로 내려선다

 

 

 

 

갈기봉에서 다시 포장도로에 내려서면

우측으로 약 200m 진행하여

카도에서 우측 숲으로 들어서라고 시그널이 잡아 당긴다

 

 

 

 

숲은 잠시일뿐 또다시 포장도로를 따라간다

도로 삼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말사랑 호스타운"을 알리는 입구 안내판이 있으며 이곳에서 직진한다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좌측으로 올라서면 마루금은 1시 방향이며

우측에 건물은 신애정신병원건물이다

묘함산 갈림길 군사도로에서 이곳까지 그냥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된다

 

 

 

 

노란선 화살표는 앞사진에서 우회하여 오는 길이며

빨강화살표는 밭을 넘어 오는 마루금으로

추풍령~큰재구간은 이 지점만 숙지하면 그렇게 알바할 구간이 없다

 

 

 

 

묘지를 지나고 봉우리를 넘어서면 작점고개이다

추풍령 ~큰재구간은 충북 영동군과 경북 김천시의 경계를 따라 마루금이 이어진다

김천(金泉)이라는 지명은 옛날에 황금이 난다는 금지천(金之泉)이라는 샘물이 있었다하여 유래한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곳을 지나다가

이 물 맛을 보고 자기 나라 금릉의 과하천(過夏泉) 물맛과 같이 좋다고 칭찬하여 과하천이라고도 불렀다고도 한다

 

 

 

 

절개지 따라 내려서면 작점고개에 도착을 한다

4번국도가 지나가는 작점고개는

충북 영동군 작점리와 경북 김천시 어모면을 연결해주는 고개이다

 

 

 

 

작점고개는 충북 사람들이 고개를 넘어 여덟 마지기 농사를 지었다 해서 여덞마지기 고개

새들이 많고 유기점들이 많아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며, 또한 고갯마루 근처에

성황당이 있다하여 성황데이 고개, 고갯마루 아래 능치마을에서 빌려온 능치재라 부르기도 한다

 

 

 

 

작점고개에는 소공원이 조성된곳에 "능치쉼터" 현판이 붙어 있는 팔각정이 있고

백두대간안내도와 작점고개 표지석이 등이 있으며

소공원에는 돌로 만들어 놓은 원탁이 있어 식사를 하고 출발하기에 아주 좋은 쉼터로 보여진다

 

 

 

 

산이 있어 우리는 산에 오르고 또한 산은 우리를 반긴다

혼잡한 삶의 세계의 모든것을 놓아 버리고

산천을 떠도는 신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용문산을 향해 오른다

 

 

 

 

무좌골산(474m)은 무자게 깔끄막해서 무좌골산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름한번 징흐게 험하게 지어났구먼~

삼각점만 있을뿐! 유래를 찾아 보아도 어느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구만이라~

 

 

 

 

갈현고개는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죽전리에서 경북 김천시 어모면 도치량으로 넘어 다니던 고개로

좌우로 뚜렷한 길이 있으며 우측에 성황당터 흔적도 있으며

도치량(道治良)은 최근까지도 옻이 많이 생산되어 옻칠하는 행랑

즉 도칠량(塗漆郞)이라 하던것이 변음되어 도치랭이가 되었고 그 후에 도치량(道治良)으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지도상에 기도터바위라고 표기된 지점으로

숲속의 시커먼 색깔의 움막은

용문산 기도원에서 올라와 이곳에서 기도를 한다고 한다

 

 

 

 

이정표가 없는 용무산 오름길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하고

산행 지형도의 바위지대로 표기된 곳으로

사방이 온통 숲으로 가려져 오로지 헉헉 하면서 올라 가야하는 갑갑한 산행이 이어진다

 

 

 

 

지도상 687m봉은 봉우리를 좌측에 두고 좋은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우회하는 등로를 따라야 하며

좌측으로 진행하지 못하도록 친절하게 노란색 노끈으로 줄을 쳐 놓았다

 

 

 

 

점점 가파른 오르막에 숨이 막힐 즈음에 용문산정상인 헬기장에 도착한다

용문산(710m) 아래 김천 쪽의 용문산기도원은

최근 작고한 나운몽(羅雲夢) 목사가 1950년 설립한 한국 최초의 기도원이라고 한다

 

 

 

 

용문산(龍門山, 710m)은 오늘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경기도 양평 용문산(1157m)보다 낮다

1800년경 박송(朴松)이라는 유생(儒生)이 산세를 보고 용문산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곳 백두대간 상의 용문산 설명은 영동군청과 김천시청에 들어가 아무리 찾아 보아도 확힌 할 수 가 없었다

 

 

 

 

용문산(龍文山)은 넓은 헬기장에 아담한 정상석과 이등삼각점이 있다

평평하다고 하여 맷돌봉이라고도 부르기도 했으며

선답자의 산행기에서 보았던 스탬푸 보관함은 보이지 않고 주변은 숲으로 막혀 있어 조망도 없다

 

 

 

 

용문산을 내려서면 웅북리(熊北里) 갈림길을 지난다

웅북리는 경북 상주목(尙州牧) 지역으로 1896년 경북 상주군 공성면(功城面)에 속하였고

곰산(웅이산) 뒤쪽이 됨으로 곰뒤, 웅북이라 하였다고 하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웅리, 중웅리, 하웅리를 병합하여 웅북리라 해서 영동군 황금면에 편입 되었으며

행정리 지명은 웅북리(熊北里)이고 자연부락으로 상웅, 중웅(中坪, 각골), 하웅이 자리잡고 있다

 

 

 

 

용문산 정상에서 국수봉까지는 파도타기를 하듯 오르내림을 거듭한다

국수봉을 오르는 등산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으며

그저 세속의 잡다한 근심을 모두 잊고 우리도 무념무상으로 정상만 바라보고 걷고 있다

 

 

 

 

용문산 기도원은 김천시 어모면에 위치해 있으며 1950년 나운몽목사가 건립한 한국최초의 기도원으로

한국기독교 부흥의 원조나 다름없는 곳이라고 한다 그저 평범한 농촌 골짜기에

신도가 1000명이 넘게 상주하고 있다고 하며  전국의 신도 30.000여 명이 연중 행사로 집회를 연다고 한다

 

 

 

 

용문산기도원 갈림길에는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으며

용문산 기도원은 1940년경 "나운몽목사"가 입산하여 "애향숙(愛鄕塾)기도원"이라는 기도원을 세웠는데

그 이후 "용문산 기도원"이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애향숙은 하나님께서

기도로 그를 찾는 자는 누구나 다 용서하고 만나 福을 준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수 많은 사람들이

그 토록 애절하게 수천년을 기도했는데도 왜 神은 아직까지도 인간 곁으로 오지 않은지 정말 있는 걸까요?

 

 

 

 

기도원갈림길에서 많은 힘을 쏟아붙고 올라서면 용문사(龍門寺) 갈림길에 도착한다

초점산에서 시작한 경북 "김천시계"를 따라 이곳까지 왔다면

이 봉우리에서 부터는 상주시와 만나면서 약 60Km의 김천市界의 백두대간길과는 작별되는 봉우리다

 

 

 

 

전망바위에서 뒤돌아보니 지나온 산줄기가 시원하게 조망이 된다

또한 이곳에서 영동군 추풍령면도 이별을 해야 하며

추풍령고개야 잘 있거라 나는간다~ 언제일지 모르겠다면 다시 볼 수 있는 날을 기약해 보련다

 

 

 

 

우측으로 뻗어가는 능선길인 국수봉의 전위봉에서 백두대간이 상주 내륙을 가로질러가는 "중화지구"가 사작된다

"중화지구"는 이곳에서 시작하여 속리산 앞에 있는 형제봉까지 상주의 화동, 화서, 화남, 화북면 지역과

상주의 모동, 모서면 지역등 모두 6개 고을이 백두대간 서쪽 충북 땅으로 깊숙히 침범한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화동, 화서, 화남, 화북의 4개면은 본래의 "화령현"이었고 모동면과 모서면은 옛날의 "증모현"이니 "중화"란

바로 상주목의 "중모현"과 "화령현"을 합친 이름으로 백두대간에서 가장 낮은 지역으로 걷기 쉬운 길이기도 하다

 

 

 

 

그저 산길에 나을 맡기고 국수봉(菊水峰, 763m)에 올라섰다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 되는 산으로

물을 움켜쥐었다는 뜻을 담아 '움켜질 국(掬)'자에 '물 수(水)'를 써 국수봉이라는

이름이 붙은 산은 웅산(熊山), 용문산(龍文山), 웅이산(熊耳山) 등의 다른 이름으로도 불려지고 있다

 

 

 

 

옛날 중국의 이태백이 배 위에서 한잔하며 읊조렸던 시!

달이 물 속에 하늘이 잔 속에 있다고 했다던가

물길의 분수령이라는 뜻인지~ 국수봉이란 산이름의 뜻이 얼른 와 닿지는 않는다

 

 

 

 

국수봉은 얼마전에 "웅이산(熊耳山)"으로 산명이 바뀌었다고 하니 이제 정상석 이름도 바뀔 때가 머지 않은것 같다

상주시에서는 공성면 영오리 국수봉의 산이름을 변경하고자 꾸준히 노력해 온 결과

국토지리정보원은 국가지명위원회에서 "웅이산(熊耳山)"으로 최종 확정하고 5월 18일 고시했다고 한다

상주시 공성면 영오리와 김천시 어모면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웅북리 사이에 소재하는 산으로

국수봉이라는 봉우리 지명은 있으나 산에 대해 고시된 지명이 없는 가운데 김천시에서는 "용문산"이라고 부르고

상주에서는 "곰실"이라 불리는 마을 산으로 정상에는 웅신당(熊神堂)이라는 대(臺)가 있어서

가뭄 때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여 지역 주민들도 웅이산(熊耳山)으로 부르고 있는 등으로 산의 명칭을

정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상주시에서 국토지리정보원에 신청한 결과 이번에 최종 확정 고시되었다고 한다

 

 

 

 

저 멀리 눌의산, 가성산 넘어로 황악산이 선명하게 조망이 되고

우리의 금수강산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지리산에서 우리는

쉼 없이 걷고 또 걸으면서 이곳까지 왔다~ 계속해서 진부령까지 고고~

 

 

 

 

산행지도상의 683.5m봉은 등로 한켠에 삼각점이 있고

이 봉우리를 민용봉이라 부르고 있으며

진행방향 우측 나뭇가지에 낙동산악회의 아크릴판이 걸려 있다

 

 

 

 

상주시에 들어서면 이정표 설치가 잘 되어 있어서 대간꾼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수봉(763m)까지의 능선길은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 경계선이었고

국수봉 이후 구간은 온전히 경북 상주시 땅으로 신라 천년의 경주와 더불어 경상도를 대표하는 큰 고을이다

 

 

 

 

상주는 쌀, 누에 곶감이 유명해서 삼백(三白)의 고을로 불리운다

발아래 손에 잡힐듯이 큰재가 보이고

백두의 길이 우리를 거부하지 않은한 우리는 뜨거운 열정으로 진부령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큰재는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자 백두대간 덕유산권 끝지점으로

옥산초등학교(인성분교)가 있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폐교가 되었지만 그 자리에 백두대간 생태교육센터로 바뀌어 놓았다

 

 

 

 

큰재는 재가 크다하여 붙여진 지명답게 고개라기 보다 넓은 평지의 고원같아 보인다

신곡리는 임란이전부터 申씨 성의 사람들이 이주하여 살았다 하여

신곡리(申谷里)라고 부르고 있으며 좌측으로 주차장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오늘은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와 더불어 경상도를 대표하는 큰 고을 상주땅에 접어 들어 산행을 마무리 한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6 : 30 ~ 14 : 25  (07시간 55분)      ◎ 날씨 : 아주 맑음

 

 

사랑이 스쳐간 상처 - 남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