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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산행 분류▩/♡100대 명산

충청북도 괴산군 희양산(구왕봉-은티마을) 명산산행

충청북도 괴산군 희양산(은티마을 - 희양산 - 은티마을) 웰빙산행

◎ 산행일시 : 2016년         06월         12일         (일요일)

◎ 산행위치 :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은티마을주차장 - 백두대간표지석 - 호리골재 - 마당바위 - 구왕봉(九王峰, 879m) - 지름티재

                      미로바위 - 주능선삼거리 - 희양산(曦陽山, 999m) - 성터갈림길 - 해골바위갈림길 - 은티마을

 

◎ 산행거리 : 은티마을주차장 ~ 3.8Km ~ 호리골재 ~ 2.4Km ~ 구왕봉 ~ 0.5Km

                      지름티재 ~ 1.4Km ~ 희양산정상 ~ 0.6Km ~ 성터 ~ 3.2Km ~ 은티마을 

                      도보거리   =   약 11.9Km           실제도보거리   =   약 12.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7 : 30 ~ 13 : 35  (06시간 05분)      ◎ 날씨 : 흐림후, 비

 

                ◐ 하얀 갑옷을 입고 무사가 말을 타고 달리는 형상의 희양산 산행이란?

옛날 사람들은 희양산을 보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오는 형상이라고 했다, 지증대사가 희양산 한복판

계곡으로 들어가 지세를 살펴보니, "산은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 하고 계곡물은 백겹으로 띠처럼 되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 하였다"고 감탄한 산이라 전한다

 

 

지금 내가 산(산)을 오르는 한걸음 한걸음에는 내 인생의 삶에 희망이다

지나온 나의 발자국은 아름다운 내 인생의 추억이 되고 있으며~

남은 세월도 늘~ 산과 함께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욕심으로 살아 가련다

 

 

 

***** 충청북도 괴산군 희양산(曦陽山) 등산안내도 *****

 

 

 

 

 

 

 

나의 붕붕이를 몰고 "은티마을"을 네비게이션으로 검색하여 찾아왔다

휴게소 우측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시원하며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뚫린뒤로 등산객이 늘어나면서 마을입구에 주차장을 마련해 놓았다

 

 

 

 

은티마을이 여근곡이라 찾아 들어오는 소로길은 마치 미로게임이나 다름없었다

주차장에는 산행객을 위한 산행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주차비는 소형차 3,000원(대형차 5,000원)을 지불하고 도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은티마을 초입에는 마을유래비와 기풍있는 노송들이 사열하듯이 즐비하게 서 있다

은티마을은 여느 산골 마을처럼 계곡을 중심으로 발달 하였는데

그 형세가 마치 여성의 음부와 같은 여근곡(女根谷)으로 이를 여궁혈(女宮穴)이라고 한다

 

 

 

 

쌘 음기를 막기위한 풍수의 하나로 남근석과 전나무를 심어 놓았다고 한다

마을 유래비가 이 마을의 역사를 잘 말해 주었으며

여궁혈 끝자락에는 남정네들이 부녀자들의 바람기를 꺾기위해 남근석을 세웠다고 한다

 

 

 

 

여궁혈 끝에 잘 생긴 남근석을 세워 매년 제(祭)를 지내고 있다

마을이 번성하고 풍요와 평화를 기원하기 위함이며

그래서 지금까지 남근의 효험으로 가정과 마을의 평온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마을 도로변에 주차를 하면서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마을 도로는 주민들의 농로를 위한 도로인 만큼

좋은 경치을 구경하고자 산을 찾아왔다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게 좋을 것 같다

 

 

 

 

은티마을은 희양산과 악휘봉 등반을 위해선 필히 거쳐야 하는 마을이다

희양산은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고

이화령에서 속리산 쪽으로 흐르는 백두대간의 줄기에 우뚝 솟은 신령스러운 암봉이다

 

 

 

 

은티산장의 샘터에서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올라간다

길가에 꽃의 지식이 없어 이름은 모르지만

울몽실님이 반할만한 예쁜꽃들이 활짝피어 환하게 우리를 반긴다

 

 

 

 

마을이장은 희양산과 백두대간을 종주하려는 등산객들이 늘면서

평화롭던 마을에 쓰레기기가 쌓여가고 있고

조용한 산골에 인적이 잦아지면서 인심도 각박해진다"며 안타까워 한다

 

 

 

 

포장도로 양쪽으로 사과나무가 빼곡하게 가을을 기다린다

울타리도 없으니 인심좋은 동네로 보여지며

가을에 오면 탐스러운 붉은 사과을 현지에서 아주 싸게 살 수 있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표지석이 있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좌측으로 지름티재와 성터로 갈 수 있는 길이고

가운데는 직등으로 구왕봉을 오르며, 오른쪽은 호리골재로 가는 길이다

 

 

 

 

구왕봉을 오르기로 하고 호리골재로 방향을 잡는다

산책하는 길이라 하여도 좋으리 만큼

마차도 다닐 수 있는 넓은 임도를 따라 한동안 올라간다

 

 

 

 

6월의 신록속으로 호기로운 발걸음이 이어진다

이 보다 더 좋은 산소가 있으랴^^

산정에 들어서니 솔향기가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은티마을의 형세가 여근곡이라 초입은 마을 이름이 암시하듯 음산한 느낌이 든다

여근곡(女根谷)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도 나타나는데

남근입어여근 칙필사의(男根入於女根則必死矣)-여성에 들어온 남근은 반드시 죽는다

 

신라 선덕여왕이 영묘사 옥문지(玉門池)에 개구리가 울었다는 기이한 이야기를 듣고

개구리가 우는 것은 남자가 성냄을 뜻하는 것이요, 옥문은 여성을 의미한다

여근곡에 백제의 병사가 숨어 있음을 알아내고 전멸 시킨 후 표현한 말이며

은티마을은 여근곡에 해당하기에 마을의 번창과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방어적으로 남근석을 세웠으리라

 

 

 

 

요즘은 묵직한 배낭을 메고 산에 올 때가 기분이 제일 좋다

푸르름이 가득한 아름다운 숲길을 걸어서 좋고

이렇게 짙푸른 연록의 숲길을 보면은 살고싶은 생각이 가득채워지기 때문이다

 

 

 

 

호리골재는 주치봉과 구왕봉 사이에 있는 고개로 유래를 찾아 볼 수는 없으나

호리(여우호 狐, 삵리 狸)는 옛말로 여우와 살괭이를 아우르는 말로

옛날 이곳에 여우와 삵이 자주 나타나서  붙여진 고개 이름이 아닐까 유추해 본다

 

 

 

 

마치 책을 쌓아 놓은 듯한 거대한 바위군을 우회한다

지금까지는 육산의 성격을 띄었지만

큼직큼직한 바위가 나타나고 악산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간간히 조망도 트여 산행의 즐거움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희양산으로 가는 등로는 육산과 바위가 어우러져

시야가 트이는 곳에는 곳곳이 전망대이지만 운무로 인해 조망은 꽝이다

 

 

 

 

난고 김삿갓(김병연)이 우리들 머리속에 지워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방랑자가 되어 시(詩) 한수 읊은것 뿐이지 않은가

인생이 뭐 특별한게 있겠는가 하늘한번 쳐다보고 구름 흘러가듯이 살면 되는 것이지~

 

 

 

 

한참을 헉헉거리고 구왕봉을 오르면 땀을 식혀주는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은 대간꾼들이 잠시 숨을 고르며 포토죤으로 유명하며

건너편으로 하얀 절벽의 병풍바위가 희양산과 마주보며 은티마을를 감싸고 있다

 

 

 

 

저 멀리 악희봉-장성봉-대야산으로 이어지는 백두의 길이 뚜렸하게 보인다

가슴벅찬 감동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으며

백두의 길을 걸었던 산들의 파노라마을 마음껏 볼 수 있어서 행복한 산행 길이다

 

 

 

 

이곳의 고사목도 구왕봉의 상징물이면서 자랑거리이다

어찌하여 생로병사를 피해갈 수 없었는지~

고사목은 죽어서도 품위를 유지한채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은티마을은 여자의 음부형태처럼 생긴 마을을 산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데

이를 여근곡(女根谷) 또는 여궁혈(女宮穴)이라 부른다

은티마을에서 올라 왔지만 가는길에 음기에 눌려서 빠져 나갈 수 있을런지 걱정이다

 

 

 

 

마당바위의 적송들은 말그대로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옛날 이곳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고 하는데

특이하게 기우제를 지내는 제물중 살아 있는 돼지를 놓고 제를 지냈다고 전한다

 

 

 

 

신선이 놀았음직한 널찍한 마당바위에서 아침상을 펼친다

우리도 안전 산행을 위해 소주한잔 올리고

빵과 과일로 아침을 해결하고, 커피도 마시고 구왕봉을 오른다

 

 

 

 

구왕봉은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가은읍에 걸쳐 있으며 원래는 구룡봉(九龍峰)이라 불렀으며

동쪽의 희양산(曦陽山)의 유명세에 가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산이였지만

희양산과 함께 동서로 나란히 위치하는 구왕봉은 이제 정상석를 달고 백두대간 능선상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구왕봉(九王峰, 879m)은 신라 헌강왕 5년(879년), 지증대사가 봉암사터를 잡았는데

절 터의 큰 연못이 있었는데 거기에 아홉마리 용(龍)이 살았다고 한다

사찰을 짓기위해 지중대사가 신통력을 발휘하여 용을 내쫓았는데

용들은 가까운 봉우리에 자리를 잡고 연못에 살게 해 달라고 울부짓었다고 한다

당시 아홉마리 용들이 머물던 봉우리라 하여 구룡봉이라 하였는데 구왕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희양산 산 자락에는 역사가 유구한 봉암사와 백운대계곡이 자리잡고 있다

희양산 암봉의 열 두판의 꽃잎처럼 아릅답게 펼쳐진 산세를 보면

절집을 지을 수 밖에 없었던 지증대사의 심정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 앞에서 누군들 입을 다물 수 있겠는가

산봉우리는 말그대로 꽃봉우리처럼 보이며

빼어난 기암절벽이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훌륭한 경관을 자랑한다

 

 

 

 

봉암사(鳳巖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신라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희양산파의 종찰(宗刹)로서

879년(헌강왕 5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지중대사가 창건하여 현재까지 선도량이 되었다

 

봉암사(鳳巖寺) 주변 계곡은 예로부터 "봉암용곡(鳳巖龍谷)"이라 불려왔다

봉황과 같은 바위산에 용과 같은 계곡이 흐른다고 해서이며

20여리 계곡에는 맑은 물줄기가 분재 같은 노송을 벗하며 넓은 암반 위를 힘차게 흘러내린다

 

 

 

 

구왕봉에서 지름티재로 내려가는 급 경사는 공포의 직벽구간이다

이러한 암릉구간이 기름(지름)을 발라 놓은 것처럼

미끄럽다하여 지름티재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정도로 마사토길이 미끄럽다

 

 

 

지름티재로 내려가는 두 번째 난코스 암벽구간

 

 

 

 

 

 

 

급경사의 내림길이 대야산의 직벽구간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땅바닥으로 추락할 듯이 위험한 구간으로

지자체에서 밧줄을 설치하여 놓았지만 안전을 소홀히 하면 안되는 구간이다

 

 

 

지름티재로 내려가는 네 번째 난코스 암벽구간

 

 

 

 

 

 

 

예전에 봉암사는 참선승방으로 희양산을 오르지 못하도록 통제한 초소였다

희양산은 전체적으로 봉암사의 사유지로 되어 있으며

스님의 수련에 방해가 된다 하여 통제를 하였지만 지금은 개방을 하였다고 한다

 

 

 

 

지름티재는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을 연결하는 고개로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라 해서 지름티재라 불리우고 있다

또한 희양산과 구왕봉을 오르는 길이 지름을 칠해 놓은 것처럼 미끄럽다 하여 지름티재로도 불린다

 

희양산 산행을 하려면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 은티마을에서 시작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희양산 남쪽에 자리한 봉암사를 기점으로 생각하지만

문경쪽의 봉암사에서는 특별수도원이고 산림유전자원보호림이어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봉암사는 1947년에 청담, 성철, 자운 등이 "부처님 뜻대로 살자"며 결사를 일으킨 뒤

일년에 딱 하루 부처님 오신날만 산문을 여는 "비밀 수도원"으로

스님들이 수행하는 청정도량이므로 봉암사에서 민간인의 출입을 삼가해 달라고 길손들을 타이른다

 

 

 

 

괴산의 명산들은 워낙 바위가 많아 왠만한 바위들에는 시선이 가질 않는데

이 바위는 산행객들의 센스에 절로 웃음이 나오게 한다

인생의 목표와 희망이 무너지면 견고한 의지가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라는 뜻이 아닐런지~

 

 

 

 

집채만한 바위가 산길을 가로막고 미로처럼 생긴 바위문이 있는데

아마도 이곳이 "미로바위"가 아닌가 싶어진다

바위 사이를 통과하게 되는데 뚱뚱한 사람은 입장 불가하오니 돌아서 오시길~

 

 

 

 

그렇게유쾌하지 않은 목책을 따라서 등산로가 이어진다

비 오는날의 산행도 묘한 매력이 있지만

세차게 바람이 불면서 최고의 난코스인 직벽구간을 오를일이 걱정이다

 

 

 

 

희양산은 가을 정취가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곳이다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사진의 풍경이며

희양산 가을 잔치에 참여하여 이곳을 지나갔던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자비는 여기까지"라는 듯이 서서히 악산의 면모를 보여준다

경사가 급해지고 큼직큼직한 너덜길이 나타나고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뿌리를 내리는 나무의 생명력이 대단하게 보인다

 

 

 

 

희양산 최고의 난코스에서 비가 내리면서 힘든 오름길이다

암벽이 직벽에 가까울 정도로 위험하지만

울몽실님! 백두대간을 졸업한 산맨답게 여유롭게 포즈를 취하며 올라간다

 

 

 

 

마지막 수직의 암벽줄이 물에 젖어 모래와 범벅이 되어 미끄러웠다

팔힘이 떨어지면서 울몽실님! 야이 십%%% 정말 사람 잡네

밧줄 놓으면 황천길이라 죽지 않으려고 사투를 벌이며 힘들게 올라야 했다

 

 

 

 

빗길에 바위가 미끄러워 어렵게 삼거리갈림길에 도착한다

능선갈림길에서 희양산은 우측 방향이며

좌측은 성터갈림길을 지나 백화산을 거쳐 이화령으로 이어지는 백두의 길이다

 

 

 

 

희양산은 조선 후기의 화가 단원 김홍도가 현감을 지냈다는 충북 괴산군의 산으로

햇빛 희(曦)에 밝을 양(陽)을 써 밝게 빛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저의 기도가 모자랐는지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이 한치앞도 안보이는 안개속이다

 

 

 

 

희양산(曦陽山, 999m)은 충청북도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시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 중턱에서 정상쪽으로 암벽을 두르고 솟은 모습이 특이하며

옛날 사람들은 장엄한 암벽을 보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오는 형상"이라 했다

 

희양산의 표지석이 명성에 어울리지 않았는데 큰 표지석으로 교체하여 장엄하게 보인다

뒷면에 백두대간 희양산(白頭大幹 曦暘山)이라 새겨 놓았으며

앞면에 새겨진 글씨채는 봉암사 원근스님에 글씨라고 전해진다

직벽 구간에 테크계단을 설치하여 산행객들이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도록 힘써 주었으면 좋겠다

 

 

 

 

희양산은 3면이 암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돌산으로 정상은 백운대라고 부른다

암봉들이 열두판 꽃잎처럼 펼쳐져 있는 그 아래 봉암사가 있으며

멀리서 보아도 단아한 기운이 하늘을 떠 받치고 있는 듯한 기세로 주위의 산군들을 호령하고 있다

 

 

 

 

봉암사를 창건한 지증대사가 희양산을 둘러보고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하고

계곡물은 백겹으로 띠처럼 되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하다고 감탄 했으며

이 땅을 얻게 된 것이 어찌 하늘이 준 것이 아니겠는가 하며

스님들의 거쳐가 되지 못하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라며 대중을 이끌고 절을 지었다고 한다

 

 

 

 

봉암사 일원에는 백운계곡의 절경이 굽이치면서 산사의 정취를 한결 북돋운다

봉황과 같은 바위산(鳳岩)에 용 같은 계곡(龍谷)이 흐른다 해서 "봉암용곡"이라고 일컫는다

이 깊은 골짜기에는 물속의 바위가 희고 맑아 밤에도 놀 수 있다는 야유암! 불상이 조각된

암반에서 목탁 소리가 난다는 옥석대, 최치원이 낚시를 즐기고 친필을 새겼다는 취적대 등의 비경이 있다

 

 

 

 

새로 만들어진 정상석은 손님맞이에 엄청 바쁘고 빛나는 산이다

깨져버린 정상석은 옛 추억을 생각하게 하였으며

희양(曦陽)의 옛지명은 광양(光陽)으로 산꾼들에게 영원히 빛나는 산이길 바래본다

 

 

 

 

멀리서 보았던 암벽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수천길 낭떠러지다

쳐다보면 오줌을 쌀정도로 오싹오싹 하였으며

이런곳에서 사고가 나면 구원의 손길도 없이 황천길로 가는 위험한 곳이다

 

 

 

 

밀려온 안개가 거대한 희양산의 바위덩어리를 삼켜 버린다

힘들게 올라왔는데 조망이라도 좋았으면 했는데

사방으로 막혀 버린 안개속에서도 암릉의 절벽은 오금을 저리게 한다

 

 

 

 

희양산은 경북 방향에서 보아야 아름다운 산이지만 봉암사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충북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에서 산행을 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멋진 풍경를 자아낸다

 

 

 

 

날씨가 좋으면 남쪽 봉암사가 자리한 봉암용곡 너머로 속리산이 우뚝 솟아 있고

동북쪽으로는 백화산, 운달산, 주흘산이 장쾌하게 막힘이 없으며

서쪽으로는 백두의 산줄기인 장성봉과 악희봉, 대야산 등의 명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봉암사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는  회해선사의 실천 격언이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동안 먹지도 않는다는 것이 기본 수칙이었는데

수행자들이 밭을 일구고 지쳐 선방에서 졸기라도 할라치면

"밥값 내놔라, 이놈들아"하는 성철스님의 호통이 희양산을 쩌렁쩌렁 울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능선 삼거리로 되돌아와 시루봉 방향으로 내려서면 희양산성을 만난다

이곳이 후삼국시대 신라와 후백제의 경계지역으로

삼국말기에 신라 경순왕이 희양산성에서 견훤과 싸웠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희양산성의 안부에서 은티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산악회의 리본들이 굿당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으며

비가 오지 않았으면 배너미평전에서 하산하려고 하였는데 조금은 아쉽다

 

 

 

 

이 높은 성벽에서 파수를 하던 병사는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혼자말로 시부렁거리며, 후삼국시대 신라, 고려와 겨루웠던 견훤이 희양산 남쪽 가은읍의 고을 태생이다

황간 견씨의 시조인 본래 성은 이(李)씨로 아자개의 아들이며, 892년(진성여왕 6년) 반기를 들고

독자적인 기반을 닦았고 900년 완산주에 입성하여 후백제를 세우고 왕이 되어 세력을 넓혀 나갔지만

935년 왕의 계승 문제로 맏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되었다 탈출하여 고려 왕건에게

투항하였다가 이듬해 왕건에게 신검의 토벌을 요청하여 자신이 세운 후백제를 멸망시킨 비운의 인물이 되었다

 

 

 

 

거대한 바위을 받치고 있는 작대기는 중국에서 배워온 풍습이라고 한다

중국 여행자들이 산에서 바위에 나무를 받쳐논 것을 보고

국내에서도 바위에 나무를 받쳐 놓은 이유는 다리가 튼튼해진다는 전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시루봉이 옆에 있어서인지 시루떡처럼 포개진 바위들이 즐비하다

이런 바위들의 모습을 토어(tor)라고 하던데

무어라 이름을 지어야할지 이제는 지질학까지 공부을 해야 할 모양이다

 

 

 

 

보편적으로 이곳을 희양폭포라고 하는데 이 너럭바위 위쪽에 있으며

물줄기가 이곳으로 내려오면서 희양폭포의 형세를 한다

하지만 물줄기가 메말랐는지 물이 흐르지 않아 폭포의 느낌은 없을걸로 보인다

 

 

 

 

희양산은 온갖 희귀 동식물이 모여 사는 생태계의 보고라고 한다

백두대간 일대에 서식하는 산짐승들이 총소리가 나면

희양산으로 몰려 온다는 이야기가 있을만큼 험악한 산세는 동식물의 낙원이다

 

 

 

 

계곡이 가까워지면서 연초록의 푸르름이 빛난다

소나무의 향기는 코를 벌름거리게 하고

소나무와 실록이 어우러진  진풍경은 마음속까지 시원해진다

 

 

 

 

지름티재와 성터에서 내려오면 만나는 갈림길에 사각정자가 있다

지도상에 해골바위가 있다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정자를 둘러싼 싱그러운 숲을 바라보며 만찬을 즐기며 한참을 쉬어간다

 

 

 

 

오를 때 힘든만큼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준 산이 희양산이다

비가오면서 많은 걱정과 고민이 교차하였지만

호리골재로 출발했던 들머리로 돌아오면서 산행은 무사히 끝이난다

 

 

 

 

은티마을은 고봉들이 병풍을 두른듯 둘러쳐져 있는 분지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 마을이 들어선 것은 조선 초기로 알려져 있지만

아마 병자호란 때 김해 김씨들이 피난을 오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특산물로 송이버섯과 석이버섯, 잣, 꿀 등이라는 점에서

농사가 별로 없는 산골 오지마을임이 분명 하였다

현재에도 주로 콩과 고추 등의 밭작물과 사과같은 과일이 주 작물이다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산속 무릉도원에 마을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주진리는 조선시대에 연풍군 현내면에 속했던 마을이며

그 중에서 은티리는 희양산 자락에 위치한 가장 오지마을로 8.15해방이 되면서 은티라 하였다

 

 

 

 

토지지신이여! 마을을 묵묵히 도와주시고, 모든 사람들을 화목하게 하옵소서

집집이 가세가 일어나게 하시고, 인구도 번창하게 하시여

오곡이 풍성하고 마을이 번성하여 평화로운 마을이 되기를 기원하며 주차장에 도착한다

 

 

 

 

이렇게 비가 오는날은 고소한 지짐에 막걸리를 한잔 먹어야 딱이라 하겠지요

시원한 빗줄기도 좋았고 때묻지 않은 희양산도 아주 좋았으며

빗길에 힘들었지만 어느 산행보다 뿌듯한 희양산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 행복하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7 : 30 ~ 13 : 35  (06시간 05분)      ◎ 날씨 : 흐림후,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