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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산행 분류▩/♡100대 명산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백운봉-함왕봉) 명산산행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연수리 - 백운봉 - 용문봉) 웰빙산행

◎ 산행일시 : 2016년         06월         25일         (토요일)

◎ 산행위치 :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용문면 연수리 / 옥천면 용천리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연수리(연안삼거리) - 백운암(白雲庵) - 수도골 - 형제우물 - 백운봉(白雲峰, 941m) - 구름재

                      함왕봉(889.2m) - 장군봉(1.064m) - 용문산(가섭봉, 1.157m) - 절고개 - 상원사 - 연수리

 

◎ 산행거리 : 연안삼거리 ~ 1.1Km ~ 백운암 ~ 1.9Km ~ 형제우물 ~ 1.1Km ~ 백운봉 정상 ~ 1.2Km

                      구름재 ~ 2.1Km ~ 함왕봉 ~ 1.1Km ~ 장군봉 ~ 1.5Km ~ 용문산 정상 ~ 0.9Km

                      마당바위갈림길 ~ 1.3Km ~ 절고개 ~ 1.2Km ~ 상원사 ~ 2.8Km ~ 연수리(연안삼거리)

                      도보거리   =   약 17.3Km           실제도보거리   =   약 17.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6 : 30 ~ 15 : 20  (08시간 50분)      ◎ 날씨 : 아주, 맑음

 

            ◐ 산세가 웅장한 바위산으로 용이 드나 들었던 용문산 산행이란?

용문산은 원래에 미지산이라 불렀는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면서 용문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미지는 미리의 옛 형태고, 미리는 경상, 제주지방의 용의 방언으로 용의 옛말인 미르와도 음운이 비슷하다

정상에서 장군봉, 백운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마치 한 마리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여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금 내가 산(山)을 오르는 한걸음 한걸음에는 내 인생의 삶에 희망이다

지나온 나의 발자국은 아름다운 내 인생의 흔적이 되고 있으며

남은 세월은 산과 함께 늘~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욕심으로 살아 가련다

 

 

 

*****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龍門山) 등산안내도 *****

 

 

 

 

 

 

 

용문면에서 상원사 방향으로 올라오면 "연수리 보릿고개 체험마을"을 만난다

연수리는 연안마을과 장수마을을 합해서 만들어진 지명으로

예로부터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서 "장수골"이라고 불렀을 만큼 살기좋은 마을이다

 

 

 

 

연안삼거리 뒷쪽으로 용문산이 위풍당당하게 위용을 뽐낸다

마치 한 마리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이며

높은 봉우리들이 벼랑을 이루면서 단아한 모습이 산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연안삼거리 마을 입구에 등산로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으며

조금 오르면 백운암 방향이 백운봉가는 길이며

상원사 방향은 백운봉과 용문산을 거쳐 상원사로 내려오는 날머리이다

 

 

 

 

상원사쪽을 바라보며 이곳으로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며

포장길을 따라 백운암 방향으로 올라간다

백운암쪽의 골짜기를 수도골이라 하고 상원사 계곡을 상원골이라 한다

 

 

 

 

백운암으로 가는 도로 양옆으로 별장과 펜션들이 자리잡고 있다

과수원이 귀촌한 사람들의  소득원으로 보여지며

마운틴밸리 사거리갈림길에서 출입금지의 직진길이 백운암 방향이다

 

 

 

 

출입금지 바리켓트를 지나오면 백운봉을 오르는 이정목을 만난다

이정표가 있어 등산로 찾기에는 어려움이 없으며

오늘 산행은 백운봉-함왕봉-장군봉-용문산-상원사로 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한다

 

 

 

 

백운봉 자락에는 유구한 세월을 간직한 유명한 산사들이 많이 있다

이곳에도 백운봉의 이름을 붙여 백운암이 있으며

백운암을 바라보며 두 손을 합장하고 무사 산행을 기원하며 산행을 시작한다

 

 

 

 

백운봉까지 계곡을 여러번 넘어야 한다

장마철이 아니라서 그런지~

가슴을 쓸어내리는 풍부한 물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잡목으로 뒤덮힌 우거진 등로를 지나기도 한다

너널길에 잡목이 붙잡기는 하여도

등로가 뚜렷하여 걸어가는데 그렇게 불편하지 않는다

 

 

 

 

명산답게 이정표가 있어 길 찾는데는 그렇게 어려움이 없다

고도를  높여갈 수록 수도골의 물소리가 커지며

연록의 푸르름과 새소리가 밤을 새워 먼길을 찾아온 산객을 반긴다

 

 

 

 

이름난 유명한 계곡은 아니지만 소담해서 좋다

흐르는 계곡류에서 세면을 하고

청정옥수의 물맛은 보약이 따로 없어 가슴속에 가득 채웠다

 

 

 

 

합수점에 이르러 등로가 보이지 않아서 어렵게 찾아 올라간다

우리나라에 백운산이란 지명이 전국에 50여곳이 있는데

봉우리에 흰 구름을 이고 있는 백운(白雲)이란 이름이 멋지기 때문이리라

 

 

 

 

합수점을 지나면서 제법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골짜기에 바람은 없고 습도는 많아서

극성스런 날파리떼가 얼굴을 공격하는 바람에 힘이 들었다

 

 

 

 

백운봉 중턱에는 숯을 구워 팔았던 숫가마터가 원형을 보전하고 있다

지도상에 표기된 숫가마터가 있는 지점이며

우리의 민초들이 전쟁의 국난속에서 힘들게 살아야 했던 가슴아픈 터전이었다

 

 

 

 

백운봉 오름길 위험한 곳에는 로프와 계단을 설치하여 놓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하얀 Rope가 말해  주듯이

백운봉을 오르는 중간지점의 벤취을 지나면서 더욱 가파르게 오른다

 

 

 

 

형제약수터에는 무속인들이 생활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렇게 축대가 쌓아 있는 지점이 형제약수터이며

지금도 가끔씩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혼자 도를 닦고 있다고 한다

 

 

 

 

백운봉이 근처에 있어서 형제우물은 비박하기 좋은 장소다

정상 9부 능선 언저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사철 마르지 않고 신기하리만큼 바위틈에서 신선한 물이 흘러나온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형제우물은 물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냉장고에서 막꺼낸 물처럼 시원함을 선사 하였으며

석간수가 고이는 샘이 형제처럼 두 개가 있어 형제우물이라 부른다

 

 

 

 

형제우물을 조금 오르면 오른쪽으로 백운봉 등로가 정규등로이고

왼쪽 위험표지판의 직등길은 아주위험한 등로이므로

반드시 백운봉 등산로가 표시된 우회로인 정규 등산로를 이용해야 한다

 

 

 

 

능선에 올라서면 백운봉 갈림길에 도착한다

백운봉은 좌측으로 떨어져 있으므로

백운봉을 갔다가 되돌아와 우측 용문산으로 가야한다

 

 

 

 

뾰쪽한 암봉을 오를 때는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강풍으로 인하여 오름길이 힘들었지만

계단과 로프가 합동작전으로 우리를 편안하게 정상으로 인도한다

 

 

 

 

백운봉은 울창한 활엽수와 어우러져 빼어난 암골미를 자랑한다

함왕봉과 장군봉을 거쳐 주봉인  가섭봉을 연결하고 있으며

백운봉은 용문산의 남쪽 능선으로 연결된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백운봉은 운해가 춤을 추어야 하는데 오늘은 안개로 가득찼다

맑은 날 이곳에 서면 조망이 사방으로 환상적이고

양평 일대를 내려다보면 산으로 둘려싸여 있어 마치 분지처럼 보이는 곳이다

 

 

 

 

백운봉(白雲峰, 940m)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과 옥천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남한강변에서 바라볼 때 매우 뾰족한 자태로 보여

유럽알프스의 미봉(美峰)인 "마터호른"같다 하여 "경기도 마터호른"이라 불리우고 있다

 

 

 

 

백운봉은 정상에 항상 흰구름이 걸려 감돈다 하여 백운봉이라 부른다

정상 일대에는 거대한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북으로 뻗은 주능선과 지능선마다 노송과 암봉들이 어우러져 수려한 산세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백운산(白雲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옛 선조들이 유별나게 풍류를 즐기고 신선(神仙) 사상에 심취하여

높은 산봉우리에 하얀 구름이 휘감겨 있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아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백운산(白雲山)은 산 봉우리에 항상 흰 구름을 이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풍류를 아는 선조들이 산봉우리에 걸린 흰구름을 보며

시(詩)를 읊고 노래하며 풍경을 화폭에 담으며 자연스레 붙여진 지명이 아니였을까?

 

 

 

 

백운봉에는 양평군 산악회에서 통일암(統一岩)이라고 새겨진 돌이 눈길을 끈다

위의 암(岩)은 "육천만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백두산 천지에서 옮겨와 이곳 백운봉에 세우다" 라는 글귀가 새겨져 매우 인상적이다

 

 

 

 

백운봉은 일출사진을 찍으려는 진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달맛이 산행의 비박지로 아주 인기가 좋고

여명이 밝아올 때의 전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환상적이라고 한다

 

 

 

 

정약용 선생은 오랜 유배생활을 끝내고 고향인 두물머리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면서

등산을 좋아한 다산(茶山)은 "용문산백운봉을 오르다" 라는 산행기을 남겼다

岧嶢白雲峯(초요백운산) : 바로 이 높다란 백운봉이

玆唯龍門主(자유용문주) : 오직 이 용문산의 주봉으로

孤鋒揷靑天(고봉삽청천) : 높은 끝은 푸른 하늘은 꿰뚫고

兩翼流爲輔(양익류위보) : 마치 들판에 장막을 칠 때에

當中撐一柱(당중탱일주) : 한가운데 버티는 기둥 같구려         ****<이하 생략> ****

 

 

 

 

백운봉은 항상 운해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곳

그래서 용문산 정상도 좋지만

사람들은 이곳 백운봉을 더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개가 백운봉의 거대한 암봉을 송두리째 삼켜버렸다

이런 풍경 앞에 어찌 내가 천지를 구분하겠는가

가야할 용문산의 가섭봉도 안개의 치마폭속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다

 

 

 

 

백운봉을 내려서는 하산길은 확 트인 맛이 없고

마사토길이 미끄러워 발걸음이 더디고

또한 경사가 가팔라 위험하오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가파른 산길을 꾸역꾸역 내려가면 사나사 갈림길인 구름재에 도착한다

사나사는 신라 경명왕 7년(923) 대경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고려 공민왕 16년(1367년)에 태고왕사 보우(普愚)가 140칸 규모로 중건하였다

 

 

 

 

백운산은 편마암 등으로 이루어진 골산이면서 육산이다

흔히 마사토라 불리는 산행길이 이어지고

바위의 암릉길은 이러한 마사토길이라 안전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

 

 

 

 

용문산으로 가는 길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린다

육산으로 수림이 울창하지만 편마암의 바위가 있고

깎아 세운듯한 낭떠러지가 있어 아찔하면서도 산행의 묘미를 더해준다

 

 

 

 

여우봉은 바위의 봉우리로 동면쪽은 수직암벽이다

암벽은 여우처럼 네발로 기어 올라야 하며

기개서린 암봉은 쉽게 번접할 수 없는 풍치가 느껴진다

 

 

 

 

백운봉만큼 사납게 생겼던 봉우리가 여우봉(865m)이라고 한다

양평의 산들과 홍천의 산들이 그림처럼 보일텐데

온 산을 안개가 뒤덮고 있어 오늘 만큼은 어디인지 궁금하지 않으련다

 

 

 

 

옛날 이곳에 양근 함씨들이 살고 있었는데 씨족을 이끌만한 지도자를 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바위 구명에서 튼튼하고 총명한 아이가 나왔는데

함씨들은 이 아이를 함왕(咸王)으로 추대한 뒤 성을 축조하면서 세력을 키워 나갔다고 한다

함왕성은 용문산의 험한 지세을 이용하여 쌓은 산성으로 양근성(楊根城), 함씨대왕성(咸氏大王城) 등으로 불린다

 

 

 

 

옛부터 이 지역이 함씨(咸氏)들의 근거지로 통일신라 말기 양근 지역 호족 세력으로 함규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학계에서는 그가 태조를 도와 고려를 건국하고 왕씨 성을 하사받는 것으로 해석하여 왕규와 동일 인물이며

또한 태조 왕건이 지방 호족세력을 회유하는 과정에서 결혼 정책을 실시하여 모두 29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그 중에 함규(왕규)의 두 딸이 태조의 15번째, 16번째 부인이라는 점만 보더라도 함씨들의 막강함을 짐작한다

 

 

 

 

지명하고는 무관하게 잡풀이 무성한 헬기장에 도착한다

지도상에 표기된 첫번째 헬기장으로 보여지며

헬기장의 보도불럭이 도장을 찍은 듯이 선명하지만 조망은 꽝이다

 

 

 

 

사나사 갈림길에서 특이하고 예쁜 이름의 사나사(舍那寺)의 절 이름의 유래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노사나불상(盧舍那佛像)을 조성, 봉안하여 절 이름을 사나사(舍那寺)라고 지었다

 

노사나불이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수행하신 공덕으로 나타나신 부처님을 말한다

즉 오랜 동안 고행과 수행에 의하여 부처님이 되신 것을 이르는 말인데, 삼신불의 하나인 보신불(報身佛)이다

삼신불이란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 보신불(報身佛)인 노사나불, 화신불(化身佛)인 석가모니불을 말한다

 

 

 

 

겉으로는 푸른 숲이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암괴봉들이 높은 벼랑을 이루면서

연초록의 신록과 노송이 어우러져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함왕봉 전위봉에 도착하면 외로운 소나무가 반긴다

누군가 이정표에 함왕봉이라 써 놓았는데

이곳에서 한 정거장을 더가면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함왕봉이다

 

 

 

 

야생화들이 지천에 널려 있어 발걸음에 미소를 전하며

굴곡진 암릉길에서 지친 여독을 풀어준다

숲속은 향기가 가득하고 하늘을 가리는 울창한 수림이 아름답다

 

 

 

 

함왕봉(咸王峰, 966m)은 이정목에 글씨가 새겨져 있고 중앙에 삼각점이 있다

옛날에 이곳에 함씨 성을 가진 사람이 성을 쌓고 왕이라 하여

함왕성이라  하였으며, 봉우리 이름도 함왕성지의 이름에서 유래하여 함왕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싱그러운 숲속은 청량한 느낌이 가슴속까지 전해진다

여름의 야생화들이 여기저기에 피어나고

청아한 새소리에 몸과 마음을 적시니 어느새 장군봉에 올라선다

 

 

 

 

작은 봉우리를 한두차례 반복하여 밀어 올리면 장군봉에 이른다

용문산에 장군이 머물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잡목이 우거져 있고 조망은 볼 수 없지만 정상석이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장군봉(將軍峰, 1.064m)은 잡목에 가려져 특징없는 봉우리처럼 보이지만

상원사에서 바라보면 삼각형의 바위가 장군처럼 보이며

치마바위 구간을 통과하면서 바라보는 위용은 장군봉이란 이름이 실감나게 한다

 

 

 

 

백운봉에서 용문산을 잇는 능선길은 기암의 바위 구간으로

손과 발을 사용해야 오를 수 있는 곳이 많다

하지만 안전시설이 미비하여 초보산행자는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가협치는 50여년동안 등산로가 폐쇄 되면서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

지도에서 사라진 지명이었는데, 요즘에 회자되고 있다

좌측은 한강기맥 마루금이고, 정상은 군부대가 막고 있어 우측으로 우회한다

 

 

 

 

용문산을 우회하면서 용에 똥덩어리인지는 몰라도 너덜을 만난다

상당히 넓게 분포한 너덜지대가 비탈을 이루고 있었는데

사면길이 굴곡이 심하고 험한 암릉의 구간이라 산행의 피로감이 더한다

 

 

 

 

용문산전투는 1951년 5월 한국군 제6사단이 중공군 제2차 공세를 저지해 승리한 전투다

이후 군부대가 주둔하는 산으로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웠으나

정상부근에 계단과 전망대를 설치하여 2007년 정상이 개방되면서 많은 등산객들이 찾고 있다

 

 

 

 

사면길이 급경사이고 바위길이라 어렵게 정상 입구에 도착한다

이곳은 용문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으로

단체 산행객들이 올라오면서 시끌벅쩍 하여 산행의 재미를 북돋운다

 

 

 

 

용문산(龍門山, 1.157m)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과 옥천면의 경계에 우뚝 솟아 있다

경기도에서 화악산, 명지산, 국망봉에 이어 네번째로 높은 산이며

산세가 웅장하고 계곡이 깊어 고산다운 풍모를 지녔으며 산 아래 천년고찰 용문사를 품고 있다

 

 

 

 

용문산의 원래 이름은 미지산(彌智山)으로 "미지(彌智)"는 미리(彌里)의 옛 형태고

"미리"는 경상도와 제주도의 용(龍)의 방언으로 용과 연관이 있다

그리하여 미르산으로 불리다가 한자로 미지산으로 적었다가 용문산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용문산은 고산다운 풍모와 산세가 험준한 바위산으로 관련된 전설들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용문산 안개 두르듯"은 옷을 치렁치렁 걸친 모양을 비유한 말이며

"용문산 안개 모이듯"은 여기 저기서 한 곳으로 집결하는 모양을 이르는 말이다

자욱한 안개속에서 용이 승천하는 뜻으로 "용이 드나 드는 산" "용이 머무는 산"으로 연상되는 것이다

 

 

 

 

가섭봉(迦葉峰)은 석가의 십대제자 중에 한 명인 마하가섭의 이름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이 산 아래서 태어나고 수행하다 적멸한 태고선사 보우와의 각별한 인연 때문이며

두타제일(頭陀第一)의 제자로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받았으며

석가가 죽은 뒤 제자들의 집단을 이끌어 가는 영도자 역활을 해냄으로써 "두타제일"이라 불린다

 

 

 

 

용문산(龍門山)은 "용이 드나드나 산"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산은 어디에도 없다

중국에 있는 쓰촨성(四川省)의 릉먼산(龍門山)이 유명하며

용문산의 이름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따로 기록이 없으나

태조 이성계가 "용이 날개를 달고 드나드는 산"이라 하여 용문산이라고 불렀다는 설화가 있을 뿐이다

 

 

 

 

정상석 한켠에 은행나무잎 모양의 조형물이 예쁘게 설치되어 있다

용문사의 명물인 은행나무를 상징하여 조형한 것으로

양평군수와 많은 산악회가 용문산 가섭봉을 되찾기 위해 세운 조형물이라고 한다

 

 

 

 

용문산(龍門山) 정상에 올라서니 마치 용의 등에 올라선 느낌이였다

시원한 조망을 볼 수 없었지만 용의 기운을 뜸북 받았으며

시설물 울타리에는 많은 산악인들이 남기고 간 꼬리표 들의 전시장이 이채롭다

 

 

 

 

거대한 산봉우리를 안개가 삼켜버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이 열리기를 기다려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으며

날씨 좋은날 다시 찾아오라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한강기맥을 기약해 본다

 

 

 

 

용문산은 한강기맥 북쪽 북한강과 남쪽의 남한강은 물론, 인천 앞바다가 보일 정도라고 한다

사방으로 막힘없이 조망되는 천혜의 요새여서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격전지였으며

삼국시대는 물론, 고려 때 몽고군 침입 당시 이곳 주민들이 숨어 살았고

6.25 때에도 피아간에 군단 병력이 목숨을 걸고 밀고 밀리는 격전을 치루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현재 철원군에 있는 6사단 2연대는 용문산 부대라고 부를 정도라고 한다

용문산 전투는 1951년 5월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를 맞아 용문산 연대 전 장병이 철모에 "결사(決死)"라는

글을 새기고 용감히 싸워 중공군 63군단의 선제공격을 막아낸 후, 6사단 장병들의 총반격으로

3개 사단(2만여 명)에 달하는 병력과 주요 장비를 격멸하고, 달아나는 중공군을 북한강에 수장시킨 전투이다

 

 

 

 

용문산 정상에서 행복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하산길로 접어든다

용문산은 고도가 높아 올라올 때도 그렇지만

내려갈 때도 만만히 보아선 안될 산행지로 항상 안전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

 

 

 

 

용문산은 활엽수와 어우러진 암릉 사이로 협곡이 발달되어 있다

산 전체가 울창한 천연수림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명산이 갖추어야 할 사계절 화려한 옷을 갈아입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용문산을 내려오면 이곳의 상징인 고사목이 있는 전망대다

앞쪽으로 추읍산이 있는 산그리메로 보이는데

보일듯 말듯한 날씨가 산객의 애간장을 태우며 아쉬움으로 남는 시간이다

 

 

 

 

용문산은 옛부터 경기의 금강산이라 불릴만큼 기암괴석의 고산준령으로

용이 꿈틀거리는 웅장한 산세로 인하여 경관이 뛰어나고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한 용문사가 있어 문화적 가치가 높아 100대 명산에 선정하였다

 

 

 

 

암릉과 암벽 사이로 만들어진 등로가 운치를 더한다

마당바위로 가는 길이 매우 가팔랐으며

철계단과 너덜길이 마사토라 상당한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다

 

 

 

 

마당바위 갈림길에서 우리는 상원사 방향으로 진행한다

용문사와 은행나무를 보지못함이 아쉬웁지만

차량회수 때문에 우리는 절고개에서 상원사을 거쳐 연수리로 가야한다

 

 

 

 

산을 올라보고 어떤 판단을 하는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의 몫이다

"산은 정직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모두 드러내어 보여주기 때문이며

"산은 엄합니다" 산을 얕잡아 보는 사람은 엄하게 응징하며

또한 "산은 공평합니다" 땀 흘리고 올라온 사람에게는 뿌듯한 성취감을 보상 해준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터도 만들어 놓았으며

등산안내도와 편의시설인 침상도 있고

산행을 포기한 산행객이 천상의 별장에서 취침을 하고 있다

 

 

 

 

용문사(龍門寺)는 1300년의 역사를 지닌 고찰임에도 불구하고 그 옛날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2년(913) 대경화상이 창건하여 조선후기까지 사세가 용성하였다

 

용문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는 수령이 1.100년에 이르는 동양 최대의 은행나무이다

조선 세종때에는 정3품의 벼슬인 당상직첩을 하사 받기도 한 명목이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이 그의 스승인 대경대사를 찾아와서 심은 것이라 하며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짚고 다니었던 지팡이를 꽂앗는데 뿌리를 내려 성장한 것이라고도 한다

 

 

 

 

마지막까지 경사도가 만만치 않아서 어렵게 절고개에 내려선다

용문사 입구에는 1971년에 지정된 용문산국민관광지가 조성되어 있다

주변에 역사적 문화유적등의 볼거리가 산재해 있으며

용문산과 중원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등의 자연휴식지도 많아 사철 관광 인파로 붐빈다

 

 

 

 

용문사에서 절고개를 넘어 상원사로 가는 길은 단풍을 감상하기에 좋다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아 항시 호젓한 숲길을 맛볼 수 있으며

산세가 울창한 천연수림으로 노송군락이 암릉과 조화를 이루면서 활력이 넘친다

 

 

 

 

상원사가 가까워지자 산 기슭에는 심은지 얼마 되지않은 자작나무 숲이 나타난다

태우면 "자작 자작" 소리를 낸다고 하여 자작나무라는 풍문이 있으며

자작나무는 수액을 장복하면 회춘을 한다는 소문도 있는데

내가 지금 산길을 갈 게 아니라 자작나무에 찰싹 붙어 그 수액을 빨아 먹어야 되는 것은 아닐런지~

 

 

 

 

옛길을 따라 크고 작은 지능선을 넘어 상원사에 도착한다

상원사 하면 오대산의 상원사가 생각나는데

이곳의 상원사도 울창한 숲과 계곡의 조화로 뛰어난 경치를 지니고 있다

 

 

 

 

상원사(上院寺)는 확실한 창건 연대는 잘모르지만 고려시대에 창건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 말인 1330년 무렵엔 유명한 선승 태고 보우(普愚)국사가 머물기도 하였으며

조선 초에는 무학(無學)대사가 잠시 머물기도  했고, 효령대군의 원찰로 삼기도 하였다고 한다

 

 

 

 

상원골은 옥계청류라 불릴만큼 물이 맑고 깨끗해 산행의 운치를 더해준다

상원사에서 연수리까지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야 하며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산사면은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져 계곡미가 뛰어나다

 

 

 

 

햇빛이 가려진 숲길은 물소리가 들리면서 사랑스러운 길이다

무릉도원이 여기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곳!

서울에서 한시간 반이면 양평 곳곳을 둘러 볼 수 있어 나들이 코스로 참 좋은 산이다

 

 

 

 

1461년에 세조가 경기도지역을 순시하다가 상원사에 유숙하였는데

그날 관세음보살이 나타났고 상서로운 빛과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다가 한참 만에 흩어졌다

이에 세조는 크게 기뻐하여 그 절에 우상(優賞)을 내리고 죄인들을 사면 하였으며

정부의 관원들은 축배를 올려 칭하하였다. 그리고 훈부에서는 관음보살상을 만들고, 상원사를 중창하였다

 

 

 

 

상원사 입구에는 주차장과 산행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백운봉을 돌아오는 코스가 힘들어 한다면

가볍게 장군봉을 거쳐 용문산을 돌아오는 코스를  추천하고 싶다

 

 

 

 

어느새 꿈같은 백운봉을 거쳐 용문산과의 사랑이 끝나고 헤여져야 할 시간이다

오늘 만난 그녀는 아름다운 추억의 시간으로 남을 것이며

연안마을 담장에 피어난 장미꽃이 화사한 모습으로 용문산 산행의 피날래를 장식한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6 : 30 ~ 15 : 20  (08시간 50분)      ◎ 날씨 : 아주, 맑음

 

 

 

You can't Say ----- Chyi Yu(齊豫,제예)

1956년 10월 17일 대만 타이중에서 태어난 그녀는

대만의 존 바에즈로 불리울 만큼 풍부한 가창력을 바탕으로

반월군과 함께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국내 음악 사이트에는 별로 알려진 정보는 없지만

1978년 데뷔이후 TV드라마 '신조협려' 주제곡을 불렀으며

중문권 음악사이트의 네티즌들에게 흔하지 않는 가성을 지닌

여가수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아티스트로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