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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산행 분류▩/♡100대 명산

경상북도 문경시 주흘산(여궁폭포-꽃밭서들) 명산산행

경상북도 문경시 주흘산(제1관문 - 주흘산 - 제2관문) 웰빙산행

◎ 산행일시 : 2016년         07월        24일        (일요일)

◎ 산행위치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문경새재주차장 - 제1관문(주흘관) - 여궁폭포 - 혜국사 - 대궐터(샘) - 주흘산(주봉, 1.076m)

                      주흘영봉(主屹靈峯, 1.106m) - 꽃밭서들 - 제2관문 - 드라마세트장 - 조령원터 - 새재주차장

 

◎ 산행거리 : 문경새재주차장 ~ 1.2Km ~ 제1관문(주흘관) ~ 0.8Km ~ 여궁폭포 ~ 2.2Km ~ 대궐터 ~ 1.5Km

                      주흘산(주봉) ~ 1.3Km ~ 영봉 ~ 2.2Km ~ 꽃밭서들 ~ 2.5Km ~ 제2조령관 ~ 4.2Km ~ 문경새재 

                      도보거리   =   약 15.9Km           실제도보거리   =   약 16.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7 : 30 ~ 14 : 55  (06시간 25분)      ◎ 날씨 : 흐림, 맑음

 

                ◐ 학이 날개를 펼친 형상의 우두머리 의연한 주흘산 산행이란?

주흘산은 조령산, 월악산 등과 더불어 소백산맥의 중심을 이루며 산세가 아름답고 문경새재 등의 역사적 전설이 담겨 있다

또한 예로부터 나라의 기둥이 되는 큰 산(中嶽)으로 우러러 매년 조정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를 올리던 신령스런

영산(靈山)으로 받들어 왔다. 문경의 진산(鎭山) 주흘산은 "우두머리 의연한 산"이란 한자 뜻 그대로 문경새재의 주산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 경상북도 문경시 주흘산(主屹山) 등산안내도 *****

 

 

 

 

 

 

 

마성면 너른 들판에 들어서면 주흘산의 기세에 그만 압도당하고 만다

한눈에 보아도 비범한 산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웅장한 산으로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치는 형상으로 문경시를 바라보며 기세 당당하게 버티고 있다

 

 

 

 

장마철이라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운무(雲霧)에 휩싸여 있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제법 운치가 있어 보이며

주흘산(主屹山)은 조령산과 마주보며 문경새재를 지키는 수문장이다

 

 

 

 

문경새재 넘어갈제,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문경새재 민요)

선비들은 장원급제라는 청운의 꿈을 안고,

장돌뱅이들은 언젠가 부자가 될 것이란 소망을 품고 이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선비상은 지성과 인격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끊임없이 미래를 창조하는 아름다운 한국인을 상징한다

 

 

 

 

문경새재 옛길박물관은 입구에  들어서면 괴나리봇짐이 인상적이다

조선시대 선조들이 입었던 옷들도 전시되어 있고

역사와 옛사람들의 문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마 만족스런 박물관이지 싶다

 

 

 

 

수많은 선비들이 장원급제 청운의 꿈을 꿈꾸며 넘었을 문경새재!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죽죽(竹竹) 미끄러진다"고 해서 문경새재를 넘었다고 한다

 

 

 

 

문경새재의 문경(聞慶)은 "들을 문(聞)"에 "경사 경(慶)"으로 경사스러운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의미여서 수험생 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호남지역의 사람들 조차도 과거를 보러갈 때 일부러 길을 돌아 문경새재를 넘었다고 한다

 

 

 

 

제1관문(주흘관. 主屹關), 제2관문(조곡관, 鳥谷關), 제3관문(조령관, 鳥嶺關)은

사적 제147호로 지정된 관문으로 영남지방과 한양간을 잇는 관문이며

군사적 요새지와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었던 곳이였는데 지금은 휴식의 공간과 안정감을 주는 곳이 되었다

 

 

 

 

제1관문인 주흘관(主屹關)을 우측으로 산행 안내도가 있다

주흘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여궁휴게소 이정표 우측으로 넓다란 임도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이른 아침이고 평일이라 등로상에는 우리 뿐이다

한적한 도로를 걸어가는 즐거움이 좋으며

아침을 맞는 산새 소리가 요란한데 눈에는 보이질 않는다

 

 

 

 

이정표에 주흘산 주봉까지는 4.5km로 표시하고 있다

그렇게 먼거리는 아니라고 보여지며

자연을 벗삼아 가슴으로 느끼며 오르다보면 정상에 도착할 것이다

 

 

 

 

심산유수 시원하게 흐르는 물소리에 발걸음은 경쾌하다

조금 오르니 처음에는 폐건물인가 싶었더니

들머리에서 가리켰던 이정표의 여궁휴게소가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잇다

 

 

 

 

여궁폭포갈림길에서 좌측은 정상으로 가는 직등길이며

여궁폭포는 우측으로 돌아서 가는데

그렇다고 조금 가깝다고 여궁폭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않겠는가

 

 

 

 

여궁폭포 올라가는 길은 아주 너덜너덜한 길이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야 하며

청량한 물소리에 마음을 빼앗기면 어느새 여궁폭포에 다다른다

 

 

 

 

기암절경과 노송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이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좁게 파인 홈으로

수정같이 맑은 물이 떨어지는데 여궁폭포란 말이 실감이 난다

 

 

 

 

폭포를 올려다보면 생긴 모양이 여인의 하반신과 흡사하다 하여

여궁폭포 또는 여심폭포라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인근 마을 사람들은 파랑소라고 부른다고 하며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온 칠선녀가 목욕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여궁폭포가 기암절벽이라 좌측으로 돌아서 가야한다

길목에 고상하고 희귀한 고목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도 여자의 하반신과 닮았으니 여궁나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절벽을 좌측으로 갈지()형으로 난 등로를 따라 올라간다

여궁휴게소에 오르는 직등길을 만나게 되며

전망테크에 이르면 아름다운 계곡의 풍치가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계곡의 아름다운 풍치와 시원한 물소리에 오르는 길을 멈추고

계곡에 발을 담그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만

하산하면서 그 시간을 갖기로 하고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기자기한 계곡을 따라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아담하고 예쁜 아치형의 다리도 건너며

한적한 산길은 갈 수록 점입가경의 비경속으로 빠져든다

 

 

 

 

원주형의 목교앞 갈림길에서 주흘산은 오른쪽 방향이지만

혜국사(惠國寺)가 지척이라 들리기로 한다

혜국사까지는 승용차가 올라올 수 있는 별도의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혜국사(惠國寺)는 신라 문성왕 8년(846) 보조국사 체징(體澄)이 개창한 고찰로

그 당시의 절 이름은 법흥사(法興寺)였다고 한다

고려 말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머무른 적이 있었는데

공민왕이 내려준 재물로 가람을 중수하고 은혜를 입었다 하여 혜국사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혜국사 대웅전은 맞배지붕에 전면 3칸으로 한적한 산사였다

조선시대에는 세조대왕도 머무른적이 있었다 하고

임진왜란 때에는 이 절의 승려들이 승병을 지도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혜국사는 산을 깎아 절터를 마련하고 불사를 하였다

대웅전은 계단을 따라 높게 올라야 하며

산비탈에 매달려 있는 절집이라 신도분들이 고생이 많을것 같다

 

 

 

 

그 옛날 새재를 넘었던 사람들이 혜국사에 들려서 무엇을 기원했을까

험한 산길을 넘어야 했던 사람들에게 안심처였을 것이다

아침이라도 해결해보려고 공양간을 기웃 거렸지만 너무 조용하여 바로 내려선다

 

 

 

 

쭉쭉뻗은 아름들이 노송들의 사열을 받으며 넓은 공터에 이른다

이정표에 안적암(安寂庵)이 표기되어 있는 지점으로

혜국사의 부속암자로는 안적암, 은선암(隱仙庵), 용화암(龍華庵)이 있다

 

 

 

 

포근하고 아름다운 호젖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오른다

소나무는 원래 "솔나무"라 불렀으며

솔(率)자는 으뜸이란 뜻으로, 나무중의 으뜸이 "솔나무"라 한다

 

 

 

 

주흘산 중턱에는 등산객이 목을 축일 수 있는 대궐샘이 있다

한켠에 작은 공터가 대궐터로 보여 졌으며

한 여름에 주흘산을 오르는 등산객에게는 시원한 오아시스가 아닌가 싶다

 

 

 

 

대궐샘을 지나면서 능선까지는 가파른 길이 계속 이어진다

문경시에서 등산객들의 안전과 편의를 도모하고

등산로 훼손을 막기위해 오래전 이곳에 목재 계단을 설치하여 놓았다

 

 

 

 

주흘산 정상까지는 1230계단을 올라야 한다고 한다

끔직한 계단길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름길에는 온갖 야생화가 지천에 널려 있어 행복한 오름길이다

 

 

 

 

능선에 올라서면 등로는 우측으로 휘어지면서 올라간다

신갈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울창한 숲이 훌륭하며

야생화가 천국이고 숲의 향기가 자연이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가파른 계단길은 천상으로 오르는 하늘길처럼 느껴진다

5분이면 정상에 올라설 수 있는 고행의 지점으로

하늘을 뒤덮고 있는 실록의 푸른숲은 무더운 여름도 날려 버린다

 

 

 

 

문경(聞慶)의 지명은 몇차례 바뀌었는데, 맨 처음 이름은 고사갈이(古思葛伊)였다고 한다

"고사갈이"가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지만 "곳갈이"의 이두식 표현으로

곳갈이가 관산(冠山), 관문(冠文), 문희(聞喜)를 거쳐 오늘날 문경으로 바뀌었는데

주흘산의 모습이 평지에서 바라보면 고깔같이 생겼다 하여 남봉의 지명이 꼬깔봉이라 부르고 있다

 

 

 

 

주흘산(主屹山, 1, 076m)은 예로부터 문경의 진산으로 받들어온 영산이다

문경읍에서 바라보면 남사면이 철옹성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며

이런 이유로 조선조 때는 조정에서 매년 주흘산을 받드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주흘산은 문경읍 일원을 도읍 삼으려 솟구쳐 올랐는데

북동쪽으로 서울 삼각산(북한산)이 우뚝 솟아 있어

실망한 나머지 주흘산이 남동쪽 문경을 내려다보고 되돌아 앉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주흘산은 백두대간을 베개 삼아 누워 있는 산세라고 한다

옛 기록에는 주흘산은 돌산이 치솟아 기세가 웅장하고 뛰어나며

영남의 산천은 성질이 중후하여 명현(名賢)을 배출한 동방인재의 부고(府庫)라고 말했다

 

 

 

 

주흘산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문경땅을 바라보며 묵묵하게 지켜보고 있다

천지가 진동하는 재해가 없는 한 영원히 문경땅을 지킬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주흘산에 울라 굽이친 문경땅을 바라보며 좋은 추억을 만들어 갈 것이다

 

 

 

 

주흘산은 전체적으로 학이 날개를 펼치는 형상이라고 한다

주봉에 세워진 정상석 자리가 머리에 해당되며

백두대간을 북쪽에 두고 하늘을 찌들 듯한 기세로 우뚝 솟아 있다

 

 

 

 

주봉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영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주흘산은 산아래서 바라보면 코날을 높게 세웠지만

유순한 능선길은 산고수장(山高水長)의 자연환경이 잘 보전된 지역이다

 

 

 

 

등로상의 수목이 오래된 굴참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천년의 신비스러움을 간직한 숲처럼 느껴졌으며

실록의 푸르름이 가득한 숲속은 마음까지 푸르름으로 물들게 한다

 

 

 

 

영봉을 오르면서 바라본 주봉과 뒷쪽으로 조령산이 얼굴을 내민다

"나는 새도 쉬어간다"는 문경새재를 가운데 두고

주흘산과 조령산은 서로 마주보며 문경새재(조령)를 지키는 수문장이다

 

 

 

 

주흘영봉(主屹靈峰, 1.106m)은 예로부터 나라의 기둥이 되는 큰 산(중악)으로

"우두머리 의연한 산"이란 한자의 뜻대로 문경새재의 주산이며

매년 조정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를 올리던 신령스런 영산(靈山)으로 받들어온 산이다

 

 

 

 

주흘산(主屹山)은 수천년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문경을 지켜주고 있다   

많은 세월를 거치면서 다양한 역사를 만들어 냈으며

특히 무엇보다 문경인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과 같은 산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주흘산 영봉은 주봉에 비하여 높지만 조망은 시원하지 못하다

또한 영산으로써 표지석이 좀 거시기하고

문경 사람들의 영원한 쉼터인데 전망테크와 정자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람들이 산 아래에서 산 정상을 올려다보면

위로 보이는 모든것이 걸림돌이지만

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모든것이 디딤돌이다

 

 

 

 

시간만 있다면 부봉을 거쳐 제3관문으로 내려가고 싶은데

조곡골로 해서 꽃밭서들 방향으로 내려선다

주흘산을 찾은 산객들은 일반적으로 이 코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여름의 햇살에 숲속은 푸르름으로 살아 있다

자연은 사람에게 에너지 공급원이고

몽환적인 원시림의 숲속은 푸르름으로 가득 채워준다

 

 

 

 

울창한 참나무숲이 그늘을 만들어 주었지만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씨다

마사토의 가파른 내림길은 미끄럽고 조망도 없는 지루한 길이다

 

 

 

 

오늘같이 무더운날 조곡골 계곡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바위 한켠에서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간식과 맥주 한잔으로 힐링의 시간을 가지면서 갈증과 배고품을 달래었다

 

 

 

 

꽃밭서덜은 등산로 주변에 오가는 사람들이 넓적한 돌위에 돌을 세워놓고

소원성취를 기원한 수백 개의 돌탑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는데

누가 이곳에 돌탑을 쌓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돌탑을 쌓아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혹자는 꽃밭서들이 어떤 들판에 꽃밭을 말한줄 알았는데

꽃밭서들의 "서덜"은 너덜의 사투리라고 한다

봄이면 너덜(서덜) 주변에 진달래가 만개하여 "꽃밭서덜"이라고 부르고 있다

 

 

 

 

꽃밭서들을 지나면서는 조곡골을 따라 평탄하고 넓은 길이다

계곡의 청량한 물소리는 가슴속을 시원하게 하였으며

계곡은 쾌적하고 청정함이 일품이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조곡골은 아기자기한 계곡을 따라 건너기를 반복한다

지금은 녹음으로 액자를 만들어 놓았지만

가을이면 단풍으로 병풍을 만들어 호객행위를 하겠지요

 

 

 

 

문경새재 조곡관이  가까워지면서 산길이 넓어지더니 산책로가 나온다

양 옆으로 활엽수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고

쭉쭉뻗은 울창한 숲길은 산행하면서 소진되었던 에너지를 힐링하는 시간이다

 

 

 

 

조곡골의 낭만적인 길을 따라 문경새재 조곡관(제2관문)에 도착한다

주흘산 산행은 조곡관에 도착하면 끝이나며

이곳에서 부터는 한국인이 가장 걷고 싶은 길(1위) "문경새재 옛 길"을 따라 내려간다

 

 

 

 

문경새재에는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만들어진 세 개의 관문이 있는데

제일 먼저 1594년(선조 27년)에 세운 관문이 조곡관이며

양쪽으로 높고 험준한 주흘산과 조령산이 조곡관을 에워싸고 있어 천혜의 요새이자 관문이다

 

 

 

 

문경새재 길에는 드문드문 휴게소와 음식점이 있지만

새재주막은 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으며

노라존스의 무디한 째즈 음악이 산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바로 길 옆에 있는 폭포치고는 ​물이 시원하게 쏟아져 내린다

조곡관 옆에 있다 하여 "조곡폭포"라 부르며

주흘산 조곡골의 청아한 물길을 돌려서 만든 반 인공폭포라고 한다

 

 

 

 

고어(古語)로 쓴 한글 비석은 모두 넉 점이 남아 있지만 유일한 한글 비석이다

"산불됴심"의 자연석은 경북 문화재(제22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많은 사람이 오가는 새재에도 산불 예방과 자연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유적지이다

 

 

 

 

소원성취 돌탑은 옛날 문경새재를 지나는 길손들이 이 길을 지나면서

한 개의 돌이라도 쌓고 간 선비는 장원급제 하였고

몸이 마른 사람은 쾌차하고, 상인은 장사가 잘되었으며

아들을 못낳는 여인은 소원을 빌면 옥동자를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우측에 꾸꾸리바위는 전설에 의하면

바위 밑에는 송아지를 잡아먹을 정도의 큰 꾸구리가 살고 있었는데

바위에 앉아 있으면 물속의 꾸구리가 움직이면

바위가 움직였다고 한다, 특히 아가씨나 젊은 새댁이 지나가면 희롱하였다고 한다

 

 

 

 

우리 국민들이 제일 가보고 싶은 곳으로 문경새재를 꼽는다

주흘산은 문경 사람들의 영원한 쉼터이고

지역의 영산으로 새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 추억을 만들어 가는 곳이다

 

 

 

 

궁예(870~918)는 신라 왕족으로 901년 후고구려를 건국하여 왕이 되었으며

911년에 국호를 태봉으로 개칭하면서 연호를 수덕만세라 하였다

스스로를 미륵불(彌勒佛)이라 칭하는 등 폭군으로 전락하여

결국 부하 장수들이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자 쫓겨나서 평강(平康)에서 피살 되었다

 

교귀정 아래 계곡의 암반에서 <드라마 태조왕건> 궁예 최후의 장면을 찍은 장소이다

궁예가 마지막 장면에서 하는 말!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어

인생이 찰나와 같은 줄 알면서도 왜 그리 욕심을 부렸을 꼬! 허허허, 이렇게 덧없이 가는 것을.....

 

 

 

 

신임 경상감사와 이임 경상감사가 관인을 인수 인계한 교귀정이다

요즘으로 보면 이취임식을 주관했던 곳으로

1484년 조선 성종 때 세웠는데 구한말 의병전쟁 때 불타 없어지고 1999년에 복원을 하였다

 

 

 

 

비록 새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유일하게 남은 교인처(交印處)이다

매년 문경문화제 때 경상감사 교인식을 재현하고 있으며

단청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20년도 안되었는데 제법 오래된 느낌으로 보여진다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였던 김종직(金宗直)도 어느날 교귀정(交龜亭)을 찾았던 것 같다

<그가 남긴 시 한 수가 전한다>

교귀정상오건곤(交龜亭上傲乾坤) : 교귀정에 올라앉아 하늘땅을 즐기는데

두각상화점빈근(斗覺霜華點鬂根) : 문득 깨달으니 귀밑머리 흰빛이로다

일수궁상풍자격(一水宮商風自激) : 한가닥 흐르는 물은 바람과 더불어 노래 부르고

천암도화일장혼(千巖圖畵日將昏) : 일천 바위는 그림 같건만 날은 점점 저물어만 가누나

시회사경궁비조(詩回寫景窮飛鳥) : 내가 시로써 경치를 읊으매 날 새는 보금자리 찾아 헤매고

누워상회양단원(淚爲傷懷讓斷猿) : 나의 눈물로 회포를 되씹으매 잔나비마저 그 울음을 멈추도다

남로기소쌍척후(南路己銷雙斥堠) : 남쪽길 두 이정표는 이미 어두워 그 모양 사라져만 가는데

월명금야숙하촌(月明今夜宿何村) : 아, 달도 밝은 오늘밤사 어디에서 머무를 것인고지

 

 

 

 

새재주막은 청운의 꿈을 품고 조선시대에 영남에서 한양을 오가던 가장 큰 길이었다

한양을 오르던 선비들, 거부의 꿈을 안고 전국을 누비던 상인들 등

험준한 새재길을 넘어가면서 피로에 지친몸을 한 잔의 술로써 여독을 풀면서 쉬어 가던 곳이다

 

 

 

 

새재길이 흙길로 만들어진 것은 고(故) 박정희 대통령 덕분이라고 한다

1970년대 중반 문경을 순시하던 박 대통령이 무너진 성벽위로

차량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차량 통행을 금지시키고 흙길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말에 태평양전쟁 때 혈안이 돼 있던 일본군이 연료로 쓰려고

조선 백성을 동원해 송진을 채취했던 수탈의 흔적이다

70년이 넘도록 옛 상처를 간직한 채 망국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조령원터는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공익시설이다

한양과 영남을 잇는 길목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중요한 통로였으며

문경새재는 일찍이 새재내에만 동화원, 신혜원, 조령원터 등 3곳의 원터가 있었다고 한다

 

 

 

 

조령원터에는 원형 그대로 원두막 초가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지금이야! 초라한 건물이지만 예전에는 호텔급이였겠지요

원두막 한쪽에 여물을 먹고 있는 마소들도 보이는 듯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과 주안상을 들고 나오는 주모의 모습도 떠 오른다

 

 

 

 

왼쪽에 이상하게 생긴 바위가 오고가는 길손의 눈을 사로 잡았는데

혹자의 눈에는 마치 악어가 튀어나오는 모습처럼 보였다

기름을 짜던 틀처럼 생겼다고 해서 경상도 말로 "지름털바우(기름틀바위)"라고 한다

 

 

 

 

2000년쯤인가 "태조왕건" 드라마 오픈 세트장으로 지어 졌는데

이곳의 다리를 왕건교(王建橋)라 부르고 있으며

평상시에는 오픈 세트장에 시민의 역사 휴식공간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드라마 세트장은 광화문과 궁궐, 저잣거리, 양반촌 등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세트장이라는 느낌보다 조선시대 거리를 걸어가는 느낌이었으며

태조왕건, 대조영, 연개소문, 대왕의꿈, 징비록  등 인기 사극이 모두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드디어 등산로 초입의 문경새재  제1관문인 주흘관에 도착한다

뒤면에는 "영남제일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으며

조곡성으로도 불리는 주흘관의 이름은 동쪽에 우뚝솟은 주흘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제1관문인 주흘관은 비교적 온전하게 양쪽으로 성축이 잘 보전 되어 있는데

세 개의 관문중에서 제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으며

1708년 숙종 때 세웠다가 1907년 의병전쟁 때 무너진 것을 1975년 복원했다고 한다

 

 

 

 

풍찬노숙(風餐露宿)으로 노곤한 여행길이지만 아름다운 길에서 시조가 입안에 맴돌았을 것이다

계곡의 넓은 암반에서  잠시 쉬면서 풍류를 즐기고 싶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주모의 구성진 육자배기가 흘러 나올듯한 초가집의 주막도 운치가 있었으며

옛 사람들이 고개를 넘다가 해가 지면 하룻밤 잠을 청했던 객사(客舍·조령원터)도 잘 보존되어 있었다

 

 

 

 

요즘 세상에도 문경새재의 빼어난 비경을 보면 저절로 발길이 움직이는데

조선시대 선비들은 이 길을 걸어가면서 얼마나 감탄했을까?

우리도 100대 명산 주흘산에 발자욱을 남기면서 새재를 짧게 한바퀴 돌아 보았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7 : 30 ~ 14 : 55  (06시간 25분)      ◎ 날씨 : 흐림, 맑음

 

 

 ♬ I Just Fall In Love Again / Susan W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