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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백두대간(완주)

백두대간 31구간(미시령-진부령) 완주산행

백두대간 제31구간(미시령 - 신선봉 - 진부령)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3년      05월       27일       (월요일)

◎ 산행위치 :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토성면 / 속초시 설악동 / 인제군 북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미시령(彌矢嶺, 836m) - 상봉(1,241m) - 화암재(1,062m) - 신성봉(神仙峰, 1,214m)

                      대간령(大間嶺, 641m) - 암봉전망대 - 병풍바위 - 마산봉(馬山峰, 1,052m)

                      알프스니조트 - 군부대앞 - 흘리령(屹里嶺) - 백두대간 소공원 - 진부령(陳富嶺, 559m) 

 

◎ 산행거리 : 미시령(56번국도) ~ 2.3Km ~ 상봉 ~ 0.8Km ~ 화암재 ~ 1.0Km ~ 신선봉 ~ 3.2Km 

                      대간령 ~ 3.0Km ~ 마산봉 ~ 1.9Km ~ 알프스리조트 ~ 1.6Km ~ 흘리령 ~ 1.6Km ~ 진부령

                      도보거리   =   약 16.7Km           실제도보거리   =   약 18.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4 : 05 ~ 14 : 45  (10시간 40분)      ◎ 날씨 : 흐림, 비

 

            ◐ 한반도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의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 산행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의 병사봉(兵使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江)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 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하며,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 금수강산이 되었으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여의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흥분된 마음으로 미시령 고개에 도착하니 적막감이 흐르고 가로등 불빛만이 고갯길을 지키고 있었다

미시령에서 대간령까지는 입산이 통제된 구간이기에 죄을 지은 사람처럼 마음이 바빴지만~

백두대간 고개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필채로 새겨진 미시령표지석에서 출발하고 싶었기에

국공파에게 적발의 위험을 무릎쓰고 미시령표지석에서 두손을 모으고 안전 산행을 빌었다

한 때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미시령의 옛 영화는 잊혀져가고 이 곳의 향수를 느끼는 사람만이 고개를 찾을 뿐이다

 

 

 

 

미시령은 문헌상에 미시파령(彌矢坡嶺)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가파르고 넘어가기 힘든 고개라는 뜻이다

조선후기부터 "미시령(彌矢嶺)이라 부른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쓴 미시령이란 비석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6.25 때 폐쇄하였던 도로를 1989년

재개통하여 사용 하다가 미시령아래 4차선 터널이 개통 되면서 또 역사속으로 묻혀가는 고개가 되고 말았다

 

 

 

 

미시령에서 국공파를 피해서 등로를 오르는 방법의 분석도이다

우리는 2번코스를 선택했지만국공파가 심하게

지키는날은 화암사에서 상봉샘터로 연결되는 코스를 이용하는 산객들도 많다(필자가 그렸음)

 

 

 

 

울~몽실님! 그 동안 북진하면서 조령산과 점봉산을 넘을 때 유격훈련을 잘 받아서인지

남자들도 넘기 어렵다는 철책을 가볍게 넘어가면서  잘 다녀오겠다고 한다

철책을 넘어가는 모습은 마치 북한에서 탈북한 사람들이 담을 넘는 때처럼 

묘한 기분에 철책을 넘지만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철책이 사라지고

페허가 되어가는 미시령의 고갯길도 하루빨리 개방이 되어 산악인들에 희망을 주었으면 한다

 

 

 

 

2003년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되면서 미시령에서~대간령구간이 통제되었다

그래서 산악인들은 국공파를 피해서 한밤중을 이용해야 하고

내 나라 내땅도 마음대로 걸어갈 수 없으니 언제까지 이 나라에 애국심을 발휘해야 할런지~

 

 

 

 

어두움속에서 가파른 너덜길을 조심스럽게 차박차박 오른다

하지만 어제 황철봉을 넘어온 발길이 무겁기만 하고

밤하늘에 총총히 보여야 할 별빛마져 보이지 않으며

그나마 철책을 무사하게 통과한 안도감에 힘을 서서히 내어 본다

 

 

 

 

하늘을 관장하는 천지 신명이여

오늘도 어여삐 여기시어

"백두의 길" 마지막날까지 안전하게 완주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일년을 넘게 어렵사리 목숨걸고 달려운 백두의 길인데,  되돌아 가라 하지만 되돌아갈 힘이 없다

그리고 밧줄도 가지고 다니고,  제발!  땅을 파 헤치는 사람들이나 단속좀 잘 해 주세요

우리는 자연을 보호하고, 동물들에게 방해하지 않고, 식물들을 건드리지 않고, 조용히 잘 다녀 갈게요

 

백두대간길이 각종 개발논리에 의해 파괴 되었는데도  정부에서 태백산맥이라고 우기고 있을 때

우리의 자랑스런 선답자들은 낫들고 비를 맞아가며  어렵게 대간길을 열어 놓았는데

숟가락만 얹혀 놓고 대간길을 막는 무례를 범하면서 우리를 범법자로 몰아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어두운 밤길에서도 상봉샘의 물소리는 들려온다

가뭄이 심한 탓인지~

소량의 물이 흘러나오는데 물맛이 시원해 빈병에 가득 채운다

 

 

 

 

상봉샘터에서 우측으로 화암사로 분기되는 길이 있으며

넓은 공터가 두군데 있고 샘터가 있어서인지~

이곳에서 비박하는 산꾼들이 있었는데 참으로 대단한 담력을 가진 산꾼들이 아닌가

 

 

 

 

상봉샘에서 가파르게 올라서니 미시령과 황철봉을 바라보는 전망대가 있다

울~몽실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제는 비를 맞고 점봉산을 넘었고

어제는 설악산 구간 최장 시간인 황철봉을 넘었고, 오늘 마지막 산행을 이어가고 있다

 

 

 

 

여명은 서서히 밝아오면서 주위의 사물이 인식되고 미시령과 황철봉이 보인다

하지만 이 좋은 날 안개로 인하여 시원한 조망은 볼 수가 없었으며~

어제 넘어왔던 무시무시한 너덜길의 황철봉을 쳐다만 보아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고산지대 특유의 풍치가 있는 관목지대를 지나면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내 어찌 저 소나무 보다 굳세다고 말할까 너덜속에서 굳굿이 자란 너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소냐

너를 보아서라도 힘을 내어 진부령을 향해서 열심히 가 보련다

잘 있거라 혹시라도 통일되어 백두산에서 남진을 할 기회가 있다면 다시 보게 될 것잉께~ 환경 탓 하지 말거라

 

 

 

 

상봉 직전 전위봉에서 바라본 상봉~화암재로 이어지는 칼날능선에 모습이다

직접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능선이며

우측에 희미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남쪽 마지막 봉우리라는 "금강산신선봉"이다

 

 

 

 

아름답고 황홀한 우리의 금수강산을 가슴속 깊은 빈공간에 채우려고 오랫동안 달려왔다

마지막 발길이라도 한번 더 보듬어 보고 싶어 지나는 능선길!

기약없는 이별을 알리는 가슴엔 벌써 뜨거운 땀방울이 가슴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상봉 바로직전 헬기장에 도착한다

 

 

 

 

날이 밝아오면서 상봉으로 이어지는 고산지대 하늘길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철쭉이 만개하여 분재처럼 어우러져 있고, 유해발굴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우리의 영혼들이 철쭉꽃으로 환생하여 마지막 백두의 길을 환송하는것 같았다

 

 

 

 

상봉(上峰, 1,241m)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토성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봉우리 전체가 암릉으로 되어 있고 오늘 구간중 최고봉이다

누군가 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쌓았다는 돌탑이 무너져 있었으며 상봉임을 알리는 돌 표지석은 초라하다

우리 선조들은 미시령을 경계로 북쪽은 금강산, 남쪽은 설악산으로 나누었다

그래서 이곳 상봉은 엄연히 금강산 자락이며 상 봉과 신선봉 사이의 우측 능선아래에 있는

화암사 일주문 편액에는 "금강산 화암사(金剛山 禾巖寺)"로 표기되어 있고

진부령 아래에 있는 유서깊은 사찰 건봉사 일주문에도 "금강산 건봉사(金剛山 乾鳳寺)"로 적혀 있다고 한다

 

 

 

 

상봉에서 바라본 신선봉은 숨어 있는 절경이라 말할 수 있는 봉우리다

동쪽은 천애의 절벽으로 동해바다가 펼쳐지고

설악산의 주릉이 황철봉을 지나 미시령에서 잠시 숨을 멈추고 금강산을 향하다 마지막 절경을 빗어낸 곳이다

 

 

 

 

상봉 하산길은 안전시설이 전무한 쎄미클라이밍코스로 상당히 가파르게 내려간다

마치 협곡을 연상케 하였으며 온통 암릉길이라

조령산 만큼 많은 밧줄이 메달려 있었는데 누군인지는 모르지만 설치한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울~몽실님과 일년넘게 함께 걸어온 백두의 길이기에 더욱 즐겁고 행복한 길인지도 모른다

추억이라도 많이 맹글어 주어야 하는디 기억에 남은 추억이라곤 남은것이

대야산 직벽구간을 내려올 때와 조령산을 넘을 때의 암릉구간 그리고 점봉산을 넘을 때

비바람이 몰아치는 새벽에 아찔했던 순간들이 생각난다 이제 마지막 밧줄구간을 내려서는 순간이다

 

 

 

 

화암재(禾岩峙, 1,062m)는 화암사가 있는 화암계곡에서 마장터가 있는 물굽이계곡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마장터(馬場垈)는 옛날에 말장이 섰다고 하여 부르는 이름이며

화암사는 769년(헤공왕 5) 진표(眞表)가 창건하여 금강산 화암사라고 불렀는데

그에 따라 고개이름도 화암재라 했으며 화암사의 어원이 된

수바위(秀岩)의 바위 모양이 마치 곡식을 쌓아 둥근 곳집같이 보인다 하여 화암(禾岩)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선봉 오름길 역시 너덜지대를 벗어나 숲속으로 들어서면 신선봉 삼거리가 나타난다

삼거리 지점에 군작전용 군수물자 적차장이 있으며

삼거리에서 신성봉은 우측으로 약 300m 떨어져 있으므로 신선봉에 갔다가 다시 되돌아와야 한다

 

 

 

 

신선봉(神仙峰, 1,214m)은 우리나라에서 40여개의 신선봉이라는 이름이 있으나

그 중에서 이곳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속한 신선봉은 울산바위를 지척에 두고 멀리 향로봉과 금강산을 굽어 볼 수 있는 곳이다

 

 

 

 

날씨가 좋은 날 신선봉에서 바라보는 설악산은 환상적인 조망을 자랑한다(가져온사진)

울산바위를 비롯하여 설악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야말로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지는 곳이지만 오늘은 육안으로는 보이지만 사진상은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많다

 

 

 

 

신선봉은 설악산 국립공원에 속하지만 금강산 일만이천봉우리중 첫번째 봉우리다

아래 헬기장에서 비박하는 산꾼들이 많다고 하며

설악산과 동해바다를 굽어 볼 수 있어 좋고 일몰과 일출을 보려는 비박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동해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도원리저수지 윗쪽의 운해는 멋지다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산으로 가느냐 바다로 가느냐는 바다가 보이는 신선봉으로 오면 해결될 것이다

 

 

 

 

아름다운 신선봉에서 신선이 되어 즐긴 동안에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변화 무쌍한 날씨가

가야 할 마산봉 넘어로 향로봉을 하얀 물안개로 덮혀 버린다,조금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써보지만 미세한 변화까지 어찌 담을 수 있으리요 그저 가슴에 담고 북녘을 바라볼 뿐이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정상석의 글씨를 어루만지며 소원을 빌었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길 말예요

내 육신이 다 늙어가기전에 하루빨리 통일이되어 백두산까지 갈 수 있기를 간절하게 빌었다

 

 

 

 

신선봉에서 망중한(忙中閑)을 즐기고 대간령으로 향한다

앞쪽에 있는 암봉이 선선봉삼거리 지점이며

신선봉의 너덜경을 통과하고 숲으로 들어가니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한다

 

 

 

 

신선봉에서 호젖한 숲길을 내려오면 군부대 시설물에 검은 박스형 구조물이 있다

철조망으로 막아 접근금지라는 팻말이 있었는데

이곳이 신선봉 삼거리이고 군작전용 적차장을 지나자 암봉 좌측으로 내려서면 대간령이 보인다

 

 

 

 

대간령 내림길에 낙타처럼 굽은 나무를 만나는데 누군가 돌에다가 "낙타나무"라고 써 놓았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은 나무하나라도 사랑하며 이름까지 지어준다

온 산을 파헤치며 자연을 훼손하는 멧돼지는 자연보호 대상이고

불과 50cm폭의 능선길을 걸어가면서 자연을 사랑하는 산꾼들을 자연 파괴범으로 몰아가고 있으니 말이 되겠는가

 

 

 

 

신선봉에서 대간령까지 긴 내리막이 600m의 고도를 떨어 뜨려야 하며

통제구간이라 산길은 밀림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마산봉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면서 어렵지 않게 삼각점이 있는 헬기장(870m)에 도착한다

 

 

 

 

소나무가 무성한 오솔길을 휘돌아 내려가면 대간령이다

 

"산" (법정스님)의 글

산은 건성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그저 산일 뿐이다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열고 산정을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모두 산이 된다

내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 때에는

마치 산이 나를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윽하고 한가할 때는 내가 산을 바라본다

 

 

 

 

미시령에서 대간령까지의 국립공원 출입금지구역으로 산양과 삵이 살고 있는 곳이란다

백두의 길을 걸으면서 가장 어려웠던것이 출입금지구역을 지나는 것이다

마지막 출입금지구역을 벗어나지만 하루빨리 내 나라 내 땅을 마음대로 걸어갈 수 있는 좋은날이 왔으면 좋겠다

 

길이란 걷는 자들만의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길이라 할 지라도 사람이 걷지 않으면 풀이 우거져 길은 사라진다

사람이 지나는 곳이 길이며,  우리가 대간길을 걸을 때에만 길이된다,  이런 금지구역을 만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내가 걷는다는 것은 내 감각으로 새소리, 풀잎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하늘과 땅의 감촉이 모든 것들을

듣고, 보고, 느끼고, 자연과 만나는 것이다, 서로가 공존할 수 있는 날이 백두대간을 마치면서 희망의 메시지이다

 

 

 

 

대간령(大間嶺, 641m)은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에 있는 고개란 뜻에서 "사이령"이 되었고

사이령이 변음되어 새이령→샛령으로 불렸으나 이두문화 하면서

사이(間)자를 사용하여 "間嶺"이 되고 창암의 간령과 구분하기 위해 大, 小자를 붙여 "大間嶺"이 되었단다

 

옛날엔 진부령, 미시령과 함께 영동, 영서를 잇는 중요한 고개로 주막이 있었던 터가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대동여지도에는 흘리령(屹里嶺)이라 적혀있는 옛 고개다, 해방 전까지만도 인제군수와 양양군수가

이곳에서 서낭제를(당시 서낭당이 있었다 한다) 올렸는데, 황소를 잡아 제를 올릴만큼 큰 행사였다고 한다

 

 

 

 

대간령(大間嶺)은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진부령과 미시령보다도 사람의 왕래가 빈번했던 고개였으며

지금의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挑源里)까지 가는 가장 짧은 길이였던 탓이다

소간령쪽 마장터로 내려가다보면 평원인 듯한 분지가 형성되어 있고, 옛 집터 자리들이 있다고 하며

도원리는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에 있는 마을 이름과 같은 무릉도원과 같은 곳으로 아는 사람만 찾는다는 곳이란다

 

 

 

 

험준한 산세에도 불구하고 이 고개를 넘어야 했을 민초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까요?

지금 편안한 산행을 즐기는 산객의 마음도 답답하게 느껴지는데, 주변 형세를 살펴보니 돌을 쌓은

주거 등의 흔적으로 보아 하룻밤 묵어갈 수 있음직한 상상이 어려움없이 들어차고 여물을 먹고 있는

마소들도 보이는 듯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생각도 나고 주안상을 들고 나오는 주모의 모습도 떠 오른다

 

 

 

 

대간령에서 울~몽실님의 정성이 가득한 산상만찬에 행복을 먹고

마산봉을 향해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마산봉은 꾸준한 오르막이기에 힘과 속도를 조절하면서 쉬어가기를 반복한다

 

 

 

 

암봉(890m) 오름길에서 뒤돌아본 신선봉과 상봉이다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

겹겹이 펼쳐진 웅장하고 장대한 산줄기가 가슴을 쿵쾅쿵쾅 뛰게 하면서 호방한 기운이 가득하다

 

 

 

 

암봉(890m)오름길에 마지막 너덜지대를 지난다

여성분들은 오르기가 벅차지요

황철봉의 너덜 만큼은 아니지만 흔들리는 바위가 많아 상당히 집중력이 필요한 구간이다

 

 

 

 

지도상의 890m봉우리 암릉으로 이루워져 있어서 암봉이라 부른것 같다

정상에는 군 매복호가 정상을 대신하고 있었으며

아무런 특징도 없는 봉우리이고 주변이 점차 어두워지면서 빗방울이 세차게 내린지라 서둘러 길을 떠난다

 

 

 

 

병풍바위 오름길은 숲이 울창하고 육산이어서 상쾌함이 생명력을 전해주었고

각종 야생화와 고산식물이 자라고 있었으며

맑은 새소리와 함께 마지막 봉우리라는 생각으로 힘을 내어 보았지만 끝없는 오르막길은 힘들었다

 

 

 

 

빗길에 미끄러워서 힘들게 병풍바위 삼거리에 도착한다

좌측으로 10m지점에 병풍바위 전망대가 있으며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병풍바위에 올랐다가 다시 되돌아와 우측 마산봉을 향해 마루금을 이어가야 한다

 

 

 

 

병풍바위에서는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지는 곳인데 운무로 인해 볼 수 없음이 아쉽다

지도상에는 1,058m로 표시되어 있어 마산봉보다 높으며

이곳에서 직진하는 길이 뚜렸하므로 무심코 넘어가면 엄청난 알바를 저지르는 곳으로 주의 구간이다

 

 

 

 

병풍바위봉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토성면,간성읍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백마산악회에서 돌표지석으로 병풍바위봉이라고 새겨 놓았으며

토성면쪽에서 보면 육산이지만 간성읍쪽에서 보면 병풍을 둘러친 것처럼 보여서 병풍바위봉으로 불린 듯하다

 

하늘이 요란하게 발광하며 심술을 부리면서 온천지가 어둑해지며 안개가 피어 오른다 

멀리 북녘땅을 바라보며 백두산의 산줄기라도 보면 좋으련만, 정상에 만개한 진달래가 아픈 마음을 달래준다

 

 

 

 

병풍바위봉을 내려서면 부드러운 등로에 멋진 노거수가 많은 곳에

연령초와 홀아비바람꽃 등 야생화 천국이였다

짙은 안개와 비와 사투끝에 어렵게 마산봉 삼거리에 도착하니 "물굽이" 푯말을 만나게 된다

 

물굽이 계곡은 강물이 굽이지여 흐르는 계곡이라는 뜻이다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흘리(屹里)에 위치하며, 인제 용대리 매바위 인공폭포를 지나쳐서

참암골에서 시작하여 소간령을 넘어 마장터를 보고 내려가는 계곡을 물굽이 계곡이라 한다

 

 

 

 

마산봉은 마루금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약 50m정도 벗어나 있다

마산봉에 오른 후 다시 되돌아와야 하며

정상에서 헬기장 방향으로 뚜렸한 길이 있으므로 알바하기 쉬운 곳이므로 독도에 주의해야 한다

 

 

 

 

마산봉(馬山峰, 1,052m)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과 토성면과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로

산세가 말 잔등과 같이 생겼다하여 마산봉이라 불리운다

동해안의 절경과 함께 겨울철 설경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곳으로 고성 8경중 마지막인 8경에 속한다

 

 

 

 

마산봉정상에서는 진부령에서 향로봉(1,296m)과 금강산이 희미하게 보인다고 한다

오늘은 이러한 조망이 운무속에 잠겨 있으며

하지만 정상의 바위를 보라!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봉우리 같지 않은가? 백두대간의 마지막 봉우리다

 

 

 

 

백두대간의 마지막봉인 마산봉은 너무나 초라한 모습에 안타깝다, 정상석과 전망테크가 있었으면 좋겠다

북녁 땅을 밝지를 못할망정 눈으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객들은 자신들의 목적지가 목전에 도착하여 환희를 느끼면서도 내 나라 내 땅이

두 동강이 나버린 우리의 산하(山河)를 바라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내 생애 걸어서 백두산을 갈 수 있을런지~

 

 

 

 

안전시설이 없는 급경사 내리막길 철망끝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가득 메달려 있다

리본의 주인장들은 지금쯤 무얼하고 있을까요?

지금도 고산 준령을 넘으면서 몸을 만들고 백두산을 걸어 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알프스리조트 건물이 보이면서 이국적인 정취가 풍기는 곳인데

안개로 인하여 보이지가 않았으며

억새밭으로 유명한 잡풀지대를 지나 낙엽송 지대로 들어가면서 마루금은 이어진다

 

 

 

 

선답자들의 진한 땀방울과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시그널들을 바라보니 히말라야에 온 느낌이다

선답자님들의 산행 정보와 시그널이 없었더라면 홀로 종주는 불가능했을 것이며

당신들이 메달아 놓은 표시기가 대간길 내내 함께 하였기에 행복한 백두의 길이었다, 정말로 님들에게 감사한다

 

 

 

 

하늘 아래 첫 동네 흘리(屹里)마을 알프스리조트에 내려서지만

이곳에서 진부령까지 4km은 마루금이 없다

도로개설로 대간이 동강이 나고, 곳곳에 군사보호 구역으로 묶여 있어 마루금을 찾아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진부령까지 동네구간은 알바하기 쉬운 구간인데 

"진혁진님의 세밀도"가 자세히 알려 줍니다

***** 스키장 절개지에서 진부령까지 세밀도*****

 

 

 

 

알프스리조트는 1976년 용평리조트스키장에 이어 두 번째로 개관을 했을 때에는 이곳 흘리마을은

관광명소로 희망과 꿈이 큰 마을이었다, 하지만 2006년 경영 악화로 일확천금의 허망한 꿈이

남기고간 흔적을 바라보니 민초들의 아픔이 얼마나 컷을까요? 을씨년스런 콘도 건물을 벗어나면

산길도 걸어가고, 아스팔트도로, 피망재배단지, 임도 등을 보고 걷는 길이 지루하게 마루금이 이어진다

 

 

 

 

알프스리조트 건물 끝에서 도로에 올라서면 진부령까지 이정표가 백두의 길을 안내한다

흘(屹)은 삼국시대부터 나타나는데~ 사람이 거주하는 "성읍이나 촌락 또는 촌(취락)의 뜻으로 표현된다

고구려에서는 홀(忽)과 같은 뜻이고 신라에서는 벌(伐), 백제에서는 부리(夫里)로 나타 내었단다

따라서 忽, 伐, 夫里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성읍을 나타낸 것이고 흘은 고산지대의 마을을 뜻하는 것이란다

 

 

 

 

고성군에서 설치한 이정표 때문에 대간꾼들이 진부령까지 편하게 완주 한다

고성군은 두 동강이 난 국토의 끝자락이며,금강산을 본디

제 땅에 두고 있었는데 이제는 먼 발치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비운의 땅이 되었다

 

 

 

 

건너편 군부대는 폐쇄되었지만 아직도 어떤 상황인지 모른다

하지만 군부대 우측이 능선이 마루금이므로 좌측으로

휘돌아가는 먼길을 이제 버리고 군부대가 페쇄되었으니 백두의 길을 원상복귀 해야 되지 않겠는가

 

 

 

 

군부대 정문에서 도로를 따라 흘리마을쪽으로 내려와서

학교앞 초소에서 우측 산으로 오른다

철조망을 따라 야산 능선에서 좌측으로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눈물고개다

 

 

 

 

눈물고개에서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20여분 진행한다

좌, 우로 피망재배단지가 있으며

대간꾼들은 산길을 걸어야 하는데 포장길이 마지막 백두길에서 사람을 죽인다

 

 

 

 

우측에서 좌측으로 꺾어지는 지점이 흘리령(屹里嶺)이라고 한다

우뚝 솟아있는 산 아래 마을에서 온지명으로

용대리와 진부리를 이어주던 중로(中路)로 진부령이 개통되기 전까지 중요한 구실을 하였단다

 

중로(中路)는 조선시대에는 大, 中, 小로 도로를 구분하였는데

우마차가 통행이 가능한 도로를 大路, 말울 타고 갈 수 있는 도로를 中路,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협소한 도로를 小路로 구분하였다, 이 길은 용대리 물굽이계곡과

흘리계곡을 연계하여 산꾼들이 부르는 외딴집 근처에 있는 고성산(642m)을 넘어 소똥령으로 이어진다

 

 

 

 

자욱한 안개속에 비는 한없이 내리고 시멘트도로를 걸어오면서 무거운 발길이다

삼일동안의 여정에 지쳐있는 울~몽실님! 오매불망 달려온

그 설레임이 가늑한 날이 오늘이다 오늘도 긴 시간동안 마을길을 힘들게 걸어온다

 

 

 

 

흘리령(屹里嶺)에서 좌측으로 꺾어지면 진혁진의 세밀도에 흰집으로 표기된 지점이다

흘리마을은 산림이 울창하고 산이 높다하여 흘리(屹里)라 불렀고 속칭 밖(外)

흘리라고도 하였는데 마을의 면적이 광활하여 지역별로 구분할 때 칭하던 이름으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흘리의 행정구역은 고성군 간성읍에 속해 있으나 읍 소재지에서 워낙 먼 거리에 있고 백두대간 준령 최북단에 있는

오지중에 오지로서 예전엔 감자와 옥수수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화전민에 가까운 생활을 했으나 이곳에

알프스리조트가 생기면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피망과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면서 부농의 꿈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임도를 따라가보면 허술한 창고옆을 지나는데 개들이 얼마나 짓어 되는지~

개짓는 소리에 똥구멍이 오그라들 정도였는데

견공들이 짖어대는 소리도 우리에게는 축하 빵파레로 들렸기에  힘을 내어 발걸음을 재촉한다

 

 

 

 

옛날 흘리령 부근에는 삼청교육대의 훈련장으로 주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모두 철수하여 흔적만 남아 있으며

흘리마을은 민족의 비극이었던 6.25전쟁의 수복지다

전쟁 이후 한동안 통제구역으로 묶어 지역 주민들조차 통행이 제한되기도 한곳이다

 

 

 

 

산꾼이면 누구나 꿈꾸는 백두대간를 완주하고 싶어질것이다

이제 서서히 막을 내려가고 있다

오늘도 끝도없이 산마루를 향해 달려왔으며 마지막 오솔길을 넘어가면 진부령이다

 

 

 

 

진부령 도착직전 백두대간 종주등반기념 소공원을 만난다

1944년에 한전에서 조성한 공원으로

종주팀들의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었는데 우리도 만들어 올것을 쯔쯔~

 

 

 

 

자뚜리 땅에 마련한 소공원은 선답자들의 열정과 땀의 댓가이리라

기념비를 대신하여 당당하게 완주한 기념사진을 남긴다

저들은 백두대간을 누비고 아쉬운 마음에 또는 가슴 뿌듯함에 그 발자취를 남긴것 같다

 

 

 

 

진부령을 내려서는 길이 마치 졸업식장에 들어서는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벅차고, 기쁘고, 고맙기도 하고

2012년 5월 20일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한지 일년만에 진부령에 내려선다

 

 

 

 

아~ 아~ 진부령 얼마나 불러보고 싶었던 고개였던가?

고갯마루에는 안개만이 자욱하고 곰상과 함께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기나긴 대간의 여정이 끝나는 시간~

그 동안 힘겨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복받쳐 눈물이 앞을 가렸다 큰 함성으로 만세를 외쳐 보았다

 

 

 

 

숱한 선답자들과 동고동락하며 완주의 기쁨을 함께한 "백두대간 진부령 기념석"

그 동안 수없이 보아왔던 표지석중 가장 거대한 것으로 우리도 백두대간 표지석에서 완주의 기쁨을 누렸다

여기까지 오면서 느낀것은 선답자님들의 산행 정보와 시그널이 없었더라면 종주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로지 산행정보와 지도 한장이 유일한 길잡이였는데

선답자님들이 남긴 시그널이 백두대간길 내내 함께 하였기에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님들의 족적에 감사드립니다

 

 

 

 

진부령에 도착하여 목청이 터져라 외쳐보는 만세! 만세! 만만세! 힘들었던 날들을 만세 소리로 날려 보낸다

환희가 있기에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들을 참고 또 참아서 여기까지 온것이 아닌가

울~몽실님! 어려운 고비마다 하나되어 밀어주고 함께 달려온 백두대간 종주!  정말로 고생많이 했습니다

당신과 함께한 백두대간종주는 일생에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될것이요 완주를 축하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흔히 대간꾼은 두번 운다고 한다 첫번째는 석회석 광산으로 잘려나간 자병산을 보고 울고

두번째는 진부령에서 더 이상 갈 수 없음에 또 한번 운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대간꾼들은 진부령에서 미완성의 종주를 마치면서 언젠가 또 다른 시작의 빵빠레가 울려퍼지기를 소망한다

 

진부령이후 삼재령(三峙嶺)까지 26km구간은 군사통제지역이고 휴전선 이북은 북한 구역이기 때문이다

향로봉 구간은 진부령-칠절봉-향로봉-삼재령까지가 남한 구역이나

백두대간이 동강난 삼재령은 군사분계선으로 진부령이후 구간은 군사지역이어서 출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구간은 마루금을 따라 산행은 불가능하고 진부령~향로봉까지는 군부대에 신청해서 군인의 인솔하에 다녀올 수 있단다

 

 

 

 

2012년 5월 20일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하여 32구간에 걸쳐 걸어 왔으며

덕유산 삿갓대피소에서 1박을 하였기에 32구간이라 할 수 있다

2013년 5월 27일 진부령에 일년 칠일만에 도착하여 비로소 오늘 마침표를 찍는 날이다

 

덕유산에서 1박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박산행으로 큰 사고없이 무탈하게 함께 달려 왔으며

돌이켜 보면 참으로 많은 추억이 되살아 난다

속리산~문장대구간의 새벽 밤길에서 험난한 바윗길을 지나왔고 대야산을 내려올 때 수십미터의 직벽에서 아찔함과

천둥번개와 폭우속에 조령산 암릉구간에서 물러설 수 없었기에 사력을 다했던 순간들!

대관령~진고개 구간에서 국공파에 걸려 되돌와 두번이나 다시 가야했던 참담함도 있었으며

오대산 두로봉을 넘을 때 봄철인데도 눈속에 파묻혀 실종 될뻔 할 아찔한 순간에서 살아 온적도 있었지요

점봉산 오름길에서 폭우와 칼바람에 로프가 없어 밤을 새워 떨어야 했고 알바와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

황철봉을 넘으면서 무시무시한 너덜길의 크레파스에 곤욕을 치러야 했던 일, 미시령에서 철조망을 넘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때로는 바람과 이야기하며 걸었고 암벽에 부딪칠 땐 눈으로 이야기하며 걸었던 아름다운 추억도 많았다

백두의 능선길에서 꿈을 꾸는 듯 펼쳐지는 운해에 넋을 잃고 감탄한적이 몇번이었던가

반짝이는 별과 달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며 걸었던 순간 순간들!

산상에 펼쳐지는 야생화의 향연 그리고 영롱히 빛나는 상고대의 찬란함과

또한 세상을 밝히는 아침 일출을 보면서 환희에 즐거워 했고 어머니와 같은 아침햇살처럼 포근한 구간도 있었다

 

 

 

 

진부령은 어느 백두대간 고개와는 달리 군부대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식당, 팬션, 모텔, 게다가 미술관까지....

고갯마루의 "풍미식당" 청국장 맛을 모르면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것이 아니라고 한다

 

진부령(陳富嶺, 520m)은 그 옛날 동서를 잇는 오솔길이었으며 지금은 46번 국도가 지나간다

진부은 신라 경순왕 김부가 넘었던 곳이라 하여 "김부"가 "진부"가 되었다고 구전된다

인제군 북면 용대리와 간성읍 진부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진부리에서 온 지명이라하여 陳富嶺이라 부른단다

 

1632년 간성 현감이었던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이 인근의 승려들을 동원해 좁은 길을

넓혔다는 기록과 1930년 일제가 신작로를 내면서 차가 다니기 시작했고

1987년 2차선 도로로 포장되어 46번국도로 승격되면서 인제와 간성을 이어주는 도로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진부령은 또다른 이름으로 "조쟁이"라 부른다 영서의 곡식과 영동의 해산물이 고개(진부령)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새벽장(朝場)이 서게 되고새벽場이 서던 곳이라 하여 "조쟁이"라 하였고 이를 이두문화 하여 "조장(朝腸이 되었단다

 

 

 

 

西行正値北風詩 (서행정치북풍시) 한양으로 승차 되어 가는 길 북풍이 불고

雪嶺參靝鳥道危 (설령참천조도위) 눈 덮이어 음산한 영마루 새도 넘기 험한 길

自是人精傷惜別 (자시인정상석별) 이재 인정에 마음 아픈 이별을 하네

君來饑我我留詩 (군래기아아유시) 그대들 배 주리며 나를 따왔는데 나는 이별시를 남기네

 

"진부령 유별 시비(陳富嶺留別詩碑)"는 1633년 1월 간성 현감이었던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이 한양으로 승차 되어 가는 길에 선생을 배웅하기 위해

눈 덮인 진부령 고갯마루까지 배를 주리며 따라온 군민들의 인정에 대하여 이별의 아쉬움을 표현하며 남긴 시라고 한다

 

 

 

 

지리산 다람쥐는 백두산까지 갈 수 있지만 우리는 진부령에서 멈추었구나

사계절을 만나면서 조국을 사랑하게 되었고 우리의 금수강산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남북으로 갈라진 땅덩어리는 두 동강이 났지만 백두의 길은 하나였고 지금도 하나이고 앞으로도 하나일것이다

금강산을 거쳐 민족의 영산 백두산까지 이어가라는 또 하나의 작은 꿈을 안겨주니

그 꿈을 가슴 깊은 곳에 고이 간직하고 내 생애 통일이 되는날 끊긴 이 길을 다시 이어 가리라

우리의 영산 백두대간 당신을 정말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진부령아 잘 있거라~

철조망이 가로막혀 북녘의 백두산에 갈 수 있는 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그 날을 기다리리라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4 : 05 ~ 14 : 45  (10시간 40분)      ◎ 날씨 : 흐림,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