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명산 산행 분류▩/♡일반 산행기

전라북도 임실군 회문산(깃대봉-돌곳봉) 웰빙산행

전라북도 임실군 회문산(깃대봉 - 회문산 - 돌곶봉) 웰빙산행

◎ 산행일시 : 2018년        12월         02일         (일요일)

◎ 산행위치 : 전라북도 임실군 회문리와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덕치치안센터 - 깃대봉(775m) - 천마봉(745m) - 삼연봉(619m) - 사방댐갈림길 -장군봉갈림길

                      회문산(큰지봉, 837m) - 천근월굴 - 시루바위( 682m) - 문바위 - 돌곶봉(680m) - 휴양림매표소

 

◎ 산행거리 : 덕치치안센터 ~ 3.1Km ~ 깃대봉 ~ 1.5Km ~ 삼연봉 ~ 2.2Km ~ 회문봉(큰지봉) ~ 0.9Km

                      헬기장 ~ 0.5Km ~ 시루봉 ~ 0.2Km ~ 문바위 ~ 0.7Km ~ 돌곶봉 ~ 1.4Km ~ 휴양림매표소 

                      도보거리   =   약 10.5Km          실제도보거리   =   약 12.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8 : 05 ~ 15 : 45  (07시간 40분)      ◎ 날씨 : 흐림, 맑음

 

                천혜의 자연 경관과 전쟁의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회문산 산행이란?

회문산(큰지봉)은 예로부터 5대 명당으로 홍성문씨가 도통하여 지은 회문산가(回文山歌)라는 노랫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상인 회문봉(큰지붕)을 중심으로 좌청룡인 천마봉과 깃대봉의 동쪽 산줄기를 천마승공형(말이 하늘로 날아가는 형상)

우백호인 돌곶봉과 시루바위의 남쪽 산줄기를 갈마수음형(말이 안정천의 물을 먹는 형상)이라 하여 많은 산객들이 찾고 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 전라북도 임실군 깃대봉-회문산 산행안내도 *****

 

 

 

 

 

 

 

덕치면은 산지속에 분지처럼 마을들이 올망졸망하게 들어서 있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시골 풍경이라서 더욱 정겹게 느껴졌으며~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덕치면파출소 앞 복지회관에서 산행 준비를 한다

 

 

 

 

회문산은 풍수가로 알려진 홍성문씨가 지은 회문산가(回文山歌)라는 노랫말에서 유래했다

그는 회문산 정상에 24혈(穴)의 오선위기(五仙圍碁)의 명당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곳에 묘를 쓰면 당대부처 발목하여 59대까지 갈 것이라 하여 많은 풍수객들이 찾는 산이다

 

 

 

 

덕치리 치안센터옆 바로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12월로 들어자 차거운 기운이 온몸을 감싸 않았으며~

세월이기는 장사가 없다라는 말이 실감나게 옷깃을 여미게 하였다

 

 

 

 

깃대봉을 향해 몇 걸음 걸어가자 한옥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우측으로 영모제(永慕齋)란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조평(趙平)선생을 기리는 사당인지는 모르겠지만 알 수가 없었다

 

 

 

 

깃대봉 동쪽 아래 덕치면 회문리는 380여 년 전 함안조씨인 조평(趙平)선생이 임진란을 피하기 위해

이곳에 정착한 후 마을이 형성하게 되었고, 이조말엽까지 지명을 고덕치(高德峙)라 하였으나

일제 때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회문산 돌곶봉에 천연적으로 생긴 돌문(回門)을 본 따 회문리라 불렀다

 

 

 

 

마을 농로길을 따라 서서히 깃대봉을 향해 고도를 높여간다

하지만 이방인의 출현에 개들이 놀라 짖어 되는데~

조용한 시골마을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면서 아침에 정막을 깨운다

 

 

 

 

88고속도로 교각 아래를 지나면 삼거리갈림길을 만난다

깃대봉은 이정목이 가리키는 좌측 방향이며~

다리를 건너서 우측으로 포장도로가 끝날때까지 진행한다

 

 

 

 

포장도로를 따라 한동안 올라오면 깃대봉 산길로 들어선다

무채색의 겨울이 산행길의 황량함을 말해주고 있으며~

삭막한 길이지만 무상 무념으로 오르면서 최대한 즐겨 보리라

 

 

 

 

회문산(回文山)은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전북도당 유격대 사령부가 있었다

이태(본명 : 이우태)의 실화소설 <남부군>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며~

광복 이 후 분단의 아픔과 이념의 대립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산이다

 

 

 

 

회문산(回文山, 837m)은 순창군 북부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순창군에서는 강천산이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만~

최근 들어서 우리의 역사를 알기 위하여 많은 산객들이 찾고 있다

 

 

 

 

예전에 울창한 송림숲은 간 곳이 없어지고 벌거숭이 산이 되어 버렸다

다행인 것은 곳곳에 이정목이 있어 산행에 어려움은 없었으며~

황량한 산길과 토사로 오염된 산자락은 산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회문산은 우리나라 근대사와 현대사의 뼈 아픈 역사의 자취를 간직한 회한의 산이다

구한말 동학혁명과 일제의 침략에 항거한 의병투쟁이 벌어졌던 곳이고~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이 이곳을 거점으로 국군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회문산은 우리의 국군과 민초들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산이다

우리의 민초들은 자신들이 왜 공산주의 옷을 입어야 했는지도 모른채

산 속에서 굶주린 배를 옮켜잡고 밖에 두고온 가족을 생각하면서 희생을 당했던 곳이다

 

 

 

 

산죽숲이 나타나고 처음으로 조망이 터지는 작은 암릉에 올라선다

아스름히 보이는 백련산은 회문산의 비극을 알고 있을런지~

회문산은 우리에게 아픔의 장소로 때로는 희망과 기대를 안기는 산이다

 

 

 

 

만산천봉의 온 산하가 희뿌연 미세먼지로 조망은 꽝이다

그래서 산 아래 풍경은 볼 수가 없었으며~

오늘은 회문산이 자기만 바라보고 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조망은 꽝이라서 바위암에서 추억한장 남기고 올라간다

 

 

 

 

 

 

 

이곳은 풍수지리가로 유명한 홍성문대사가 살았던 옛 집터라고 한다

거창하게 표지판은 세워 놓았지만 관리가 되어있지 않았으며`

또한 약수터는 누가 보면 웅덩이지 약수터란 이름은 어울리지 않았다

 

 

 

 

산세가 험한 덕치면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빨치산 전북도당 사령부가 있었던 곳이다

이곳은 인민군들의 교통호로 쓰이기도 하고 또한 거주지로 이용 되었는데

낮에는 국군토벌대가 진입하여  빨치산에 협조한 주민들을 처형을 하였고

밤에는 빨치산이 내려가 국군과 협조한 주민들을 처형하여 무고한 민초들만 희생을 당했다

 

 

 

 

제법 체력 소모가 많은 후에야 깃대봉 정상에 올라선다

넓은 헬기장과 평지가 있어 휴식하기에는 좋은데~

사방팔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이 미세먼지로 볼 수 없음이 아쉽다

 

 

 

 

깃대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시야가 이정도 뿐이다

아스름하게 산 너울은 춤을 추고 있지만~

구분이 어려워 이름을 불러볼 수 있는 산은 안 보인다

 

 

 

 

깃대봉(775m)은 전북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에 있는 산이다

일제강정기에 일본인들이 깃대를 꼽고 측량하던 곳을 깃대봉으로 불리지만

이곳의 깃대봉은 나라에 공을 세운 조평선생 사패지에 깃대가 세워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정상석 좌측 한켠에 조평선생 사패지(趙平先生賜牌地)라는 검은 비석이 세워져 있다

학문과 창의에 빛난 조평선생이 죽자, 생전에 이룩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천만평의 사패지를 하사하고, 사패지에 깃대를 꽂아놓고 이름을 깃대보으로 하였다

 

 

 

 

<이곳에서 조평선생에게 소주한잔 올리고 쉬어간다>

깃대봉 동쪽 아래 덕치면 회문리(回文里)는 조평선생이 살았던 곳이다

380여년 전 함안조씨인 조평(趙平)선생이 임진란을 피하기 위해

그곳에 정착하게 되면서 마을이 형성하게 되었고, 오늘날 회문리로 불리고 있다

 

 

 

 

오늘 진행해야할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측으로 회문봉이 우뚝하게 솟아있고~

좌측으로 시루봉과 돌곶봉도 가까이 눈 인사를 나눈다

 

 

 

 

깃대봉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회문산으로 향한다

조평선생이 학문과 농경, 치수 등으로 주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자

나라에서 이곳 땅을 하사하여 이곳은 함안 조씨 종증 땅으로 알려져 있는 산이다

 

 

 

 

깃대봉의 내림길은 산죽(조릿대)이 등로을 빽빽하게 채웠다

끝이 없을만큼 내림길에 드넓게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키를 훌쩍넘는 조릿대숲길을 헤쳐가는 내림길은 보통 고역이 아니다

 

 

 

 

깃대봉에서 천마봉은 한걸음에 갈 수 있는 거리이다

하지만 V자형의 협곡을 이루고 있으며~

오르내림이 만만치 않아 즐겁지 않다면 힘든 산행길이다

 

 

 

 

천마봉天馬峰, 715m)은 <새마포산악회>가 팻말을 달아 놓았다

이 팻말이 없다면 천마봉인지도 알 수가 없을 정도이며~

또한 깃대봉과 삼연봉 사이는 등산로 정비가 잘 되어 있지도 않았다

 

 

 

 

회문봉(큰지붕)을 중심으로 좌청룡인 천마봉은 천마승공형이라 한다

말이 하늘로 날아가는 형상이라 하여 천마봉이라 하였으며~

건너편 마부보곻 있는 우백호인 돌곶봉의 남쪽 산줄기를 갈마음수형이라 한다

 

 

 

 

천마봉에서 삼연봉으로 가는 길에도 산죽숲은 드넓게 무성하다

조릿대(산죽)가 적당이 있는 산길은 아름답게 보였으며~

또한 푸르른 산죽길은 겨울철 산행의 황량함을 잠시 잊게 해준다

 

 

 

 

회문산 자연휴양림에서 올라오면 만나는 삼연봉(619m)에 도착한다

세 개의 봉우리가 연속으로 있어 삼연보인지는 모르겠으나~

삼연봉에 대한 유래는 알 수가 없어 눈도장만 찍고 회문산으로 향한다

 

 

 

 

회문산(回文山)은 본디 한자 표기가 돌아오는 문, 회문(回門)이었다고 한다

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래의 노령문은 출렁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노령문은 이 산의 회문(回門) 노릇을 하고 있고 안쪽의 골짜기를 총사골로 불린다

 

 

 

 

능선길을 살랑살랑 걸어서 사방땜 갈림길에 도착한다

좌측으로 회문산 역사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시간이 있다면 역사관에 들려보고 싶은데 내일을 기약해본다

 

 

 

 

회문산(큰지붕)은 동학혁명, 빨치산, 천주교성지 등 역사적으로 아픔이 많은 산이다

구한말 동학혁명과 일제의 침략에 항거한 의병투재이 벌어졌던 곳이고~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국군과 치열하게 격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회문산 오름길은 진달래나무가 등로 양쪽으로 가득하다

지금은 무채색으로 등로가 황량한 산길이지만~

오월이면 선홍빛 진달래가 피를 토하듯이 만발하는 곳이다

 

 

 

언젠가 진달래가 피는 날 다시한번 찾아 오리라

 

 

 

 

 

 

 

회문산 정상 오름길 능선에서 만나는 이정목은 서어나무갈림길이다

좌측으로 비목공원을 거쳐서 휴양림매표소로 가는 길이며~

이곳은 여름철이면 서어나무 등 활엽수가 울창하여 힐링의 숲길이다

 

 

 

 

회문산 정상에서 신선과 바둑한판 두려고 열심히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렇지만 오래만에 산에 오르니 오름길이 만만치 않았으며~

산이 주는 넉넉함에 쉬엄쉬엄 오르면서 소나무에서 기(氣)를 충전해본다

 

 

 

 

이번에는 회문산 오름길 정수리에서 장군봉 갈림길을 만난다

서쪽에 있는 장굼봉은 왕복 1시간 소요되는 거리이며~

호남정맥 용치봉에서 세자봉을 거쳐 장굼보으로 단맥이 지나간다

 

 

 

 

회문산(回文山, 837m)은 바위로 된 천연의 문이 있어 회문(回門)으로 쓰기도 한다

높고 우뚝솟은 봉우리는 항상 구름에 잠겨 있다고 옛 문장은 전하고 있으며~

또한 예로부터 다섯 선인(仙人)이 바둑을 두는 모양의 오선위기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진다

 

 

 

 

회문산(큰지붕)은 최금에 정상석을 세우고 새롭게 단장을 하였다

정상석옆에 바둑판같은 전망대테크가 만들어져 있있는데~

이곳에서 비박하면서 밤하늘을 바라보면 별이 얼굴로 쏟아지겠지요?

 

 

 

 

<첫번째 회문산의 지명 유래의 조평설은>

회문산은 조선조 인조 때 자리잡은 조평(趙平)선생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전한다

임실군 덕치면에 임진란을 피해 들어와 지금의 회문리에서 후학을 가르쳤는데

인조 3년(1625)에 학문과 농경, 치수 등으로 주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자

왕의 일등 공신으로 회문산 천만평의 정보가 사폐지(賜牌地)로 하사 되었으며

조평이 살고 있는 마을 이름을 회문리라 하였고, 이곳의 산 이름을 회문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두번째 회문산의 지명 유래의 성문설은>

홍성문이 도통하자 지은 회문산가(回門山歌)라는 노랫말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천문지리를 통탈하여 당대에 으뜸가는 풍수지리 지관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는데

이런 연유로 하여금 스님의 이름을 홍성문으로 불렀고, 이 석문(石門)에 들어갔다

돌아올 수 있기에 회문(回門)이 되었다, 그 뒤 이 석문이 회문으로 음전되어 회문산으로 되었다는 설이다

 

 

 

 

회문산(回文山, 큰지붕)은 예로부터 영산(靈山)으로 우리나라 5대 명당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회문봉을 중심으로 좌청룡으로 천마봉과 깃대봉의 산줄기를 천마승공형이라 한다

천마승공형(天馬昇空形)은 (장군이 말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는 형상이라 함)

우백호는 돌곶봉과 시루바위의 줄기를 갈마음수형(말이 안정천의 물을 먹는 형상)

그 안에 오선위기혈(五仙圍基穴)이 있다 하여 전국 풍수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산이다

 

 

 

 

<회문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사방팔방으로 보이는 첩첩산하 만산천봉의 산들이 장대하게 펼쳐져 있었다

상제님 천지공사의 숨결이 깃든 모든 산들을 감상할 수 있었으며~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직접 올라보시면 절경 중에 절경이요, 명승지 중에 명승지이다

 

 

 

 

회문산(回文山, 큰지붕)은 명실공히 천지의 아버지산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날씨가 조금 흐리지만 만방에 펼쳐진 모든 산들을 볼 수가 있었고~

이곳에서 만산첩봉을 허락하심에 읍배를 올리고, 만찬을 즐기면서 한참을 쉬어간다

 

 

 

 

회문산(回文山)은 수많은 연봉과 골짜기가 첩첩이 둘러싸여 있는 산이다

구림천과 옥정호에서 흘러내린 섬진강이 회문산을 감싸고 있고~

지형적으로 피난처를 삼거나 방어하기에 천혜의 장소로 모든 것을 갖추었다

 

 

 

 

풍수설에 명산(名山)에 명당 없고, 고산(高山)에 명당 없으며, 악산(岳山)에 명당 없다라고 하였다

5대 명당이라 하지만 지금 제대로 관리되는 묘는 없고, 대부부 무연고 묘들이라고 하는데

명당에 조상을 모셔놓고 정성을 다해 발복을 비는 후손들의 정성을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그 놈의 복이란게 100년을 넘기기 힘드니 그저 인간들의 이기적인 욕심일 뿐이란걸 심감하게 한다

 

 

 

 

회문산을 내려서면 음문(陰門) 옆 암벽에는 "천근월근(天根月窟)"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천근(天根 : 양) 월굴(月窟 : 음)은 음양의 조화로 육체를 완성했다는 뜻인데~

글씨가 음양오행을 나타내는듯 글자가 뜻하는 모양을 흉내 내어 엄청 섹시하게 씌여져 있었다

 

 

 

 

글씨의 모양속에는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가 교묘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중국 송나라 시인 소강절 선생의 유가 시(詩)에 나오는 글이라 하느데~

인체의 24마디와 12경락 그리고 남녀의 생식기와 삼라만상을 표현한 글씨라고 한다

 

 

 

 

이 고장 순창 출신 강대성(姜大成)은 회문산 금강암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민족종교 갱정유도(更定儒道)를 창시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회문산이 새로운 나라를 준비한다고 하여 증산교인들이 성지처럼 찾는 산이다

 

증산교 죠주 강중산이 말하기를 모악산을 어머니 산, 회문산은 아버지 산이라고 했다

회문산은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오선위기 형상으로 이 산의 주인이며~

장군봉과 남쪽의 무직산은 바둑을 두고, 성미산과 여분산은 훈수를 하는 형상이라 한다

 

 

 

 

회문산(큰지붕)을 내려와 작은지붕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왜 산도 아니고 큰지붕, 작은지붕이라 했을까요?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으니 큰 바위산으로 추측해볼 뿐이다

 

 

 

 

작은지붕을 내려서면 나체로 누워있는 형상의 여근목이 발길을 붙잡는다

회문산에 음기의 정수를 표출하는 여근목(女根木)이라고 하는데~

여인네가 발가벗고 하늘을 향해 가랑이를 벌리고 있는 모습이 애로틱하다

 

 

 

 

이곳은 활엽수가 많고 소나무를 보기가 힘든데 아주 특이한 반송 두 그루가 서 있다

6.25전란 후 이곳을 근거리조 활동한 빨치산 소탕을 위해 방화전을 벌었는데~

온산이 불바다가 되었어도 이곳의 여근목(女根木)만 살아남은 여험한 나무라고 한다

 

 

 

 

회문산은 신선(神仙)이 들러앉아 바둑을 둔다는 오선위기의 명당산이다

그러나 신선들이 장고하여 묘수를 두기는 하였으나

장고끝에 악수를 둔다는 말이 실감나게 하는 곳이다

묘지들은 대부분 주인없는 묘들로 관리가 되지않아 흉물스러울 정도이다

 

 

 

 

능선길 곳곳에 공터가 없을 정도로 묘들이 꽉 드러차 있다

명산을 찾은 산객에 마음은 그렇게 좋지 않았으며~

이곳에 묘들은 24혈자리에 쓴 묘는 한 군데도 없다고 전해진다

 

 

 

 

<비목공원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나면 돌곶봉은 맞은편 헬기장으로 오른다>

회문산은 광복이후 분단의 아픔과 이념의 대립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곳이다

예전에 이곳은 돌아서면 무덤이고, 발에 차이는 것이 유골이었다고 전해지며~

그래서 훗날 비목이라도 세워 무덕임을 알려 주었는데 그곳에 비목공원이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좌측 산 아래에는 빨치산 사령부를 재현재 놓은 비목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바로 그곳이 이태(본명 : 이우태)의 소설 <남부군>의 무대이며~

이현사이 사령관으로 있었고 이들을 통칭하여 "남부군"이라 했는데 빨치산이다

 

 

 

 

능선상에 큰돌 세 개가 포개져 있는 바위가 있다

이곳을 시루봉(시루바위)이라고 하는데~

전라도 말로 시루봉이라 하기에는 조금 거시기하다

 

 

 

 

시루봉에서 한걸음 걸어가면 문바위(石門)에 도착한다

어떻게 하여 이곳이 문바위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호랑이가 엎드려서 회문산을 지키는 형상처럼 보였다

 

 

 

 

문바위는 뒷쪽이 낭떠러지라서 돌문(回門) 역활을 하는 것 같았다

바위에 오르면 세상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회문산에 올라와 동족상잔의 비극을 알면 세상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다

 

 

 

 

회문산은 신신(神仙)이 바둑을 두는 오선위기의 산이요, 임금이 태어날 군왕지라 했다

장군봉(투구봉, 신선봉)은 임금을 호위하는 호위대장 역활을 하는 산이고~

뒷쪽의 세자봉은 임금앞에서 스승격인 국사봉(깃대봉)의 가르침을 받는 형국이라 한다

 

 

 

 

문바위에서 바라보면 좌청룡(깃대봉) 우백호(돌곶산)가 마주보고 있다

좌청룡의 산줄기는 장군이 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이고~

우백호는 목마른 말이 섬진강에 목을 드리우고 물을 마시는 형세라 하였다

 

 

 

 

명당이라지만 어떻게 이렇게 많은 묘들이 들어설 수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이곳에 돌들은 오선위기(五仙圍基)의 바둑돌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묘지를 쓴 후손들은 얼마나 많은 발복을 받아을까요?

발복을 비는 후손들이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많은 복(福)을 주시기를 빌어본다

 

 

 

 

회문산 자연휴양림은 이러한 명당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다양한 활엽수가 울창한 원시림을 이루고 있으며~

그래서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면서 최고의 자연휴양림으로 꼽힌다

 

 

 

 

돌곶봉(680m)의 돌은 바위(石)를 의미하는 것이고, 곶은 뾰족함을 의미한다

돌을 돌아올 회(回)로 곶을 뾰족한 문필봉의 문(門)으로 변형하여

돌곶봉이라는 이름은 큰 지붕을 일컫는 이름으로 지금의 회문산으로 생각된다

 

 

 

 

돌곶봉에서 하산길은 자연휴양림 매표소 방향으로 내려선다

거리는 가깝지만 엄청나게 내리꽂는 급경사길이며~

또한 낙엽이 쌓여있고 흔들리는 돌길이라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다

 

 

 

 

<매표소에서 비목공원으로 올라가는 도로에 내려선다>

회문산 자연휴양림에는 동학혁명과 구한말 의병활동의 흔적을 볼 수 있다

6.25전쟁 당시 학상당한 양민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탑과

빨치산 사령부 역사관이 있는 비목고우언 등 우리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석축(回門)으로 성벽처럼 쌓아올린 천헤의 요새지 노령문이다

노령문은 출렁다리와 연결되면서 만들어진 문(門)이며~

회문산이 노령산맥의 산줄기에 있다고 하여 노령문이라 하였다고 한다

 

 

 

 

회문산은 우리 민초들은 눈물과 뼈아픈 역사를 안고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역사관도 들려보고 싶었는데~

꽃이 필무렵에 다시한번 찾아올 것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린다

 

 

 

 

<회문산 돌비석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삼연봉을 오른다>

구한말 면암 최익현 선생과 임병찬, 양윤숙 의병대장이 왜군과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한국전쟁 당시 남부군 사령부가 있어 빨치산이 주둔했던 비그그이 현장이었는데~

지금은 양민학살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과 그리고 비목공원 등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회문산에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둘러보고 매표소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 한다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회문산 중턱에 만일사(萬日寺)라는 절이 있는데~

무학대사가 이성계의 왕위 등극을 위해 만일동안 기도했다고 하여 만일사라 하였다

 

 

 

 

빨치산 깃발 아래 훈련하고 밥을 짓던 골짜기는 이제 자연휴양림이 되었다

회문산은 우리 민초들의 아픔이 살아 숨쉬는 역사의 현장이었으며~

천혜의 자연경관과 전쟁의 아픈 역사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그런 산행이었다

 

 

 

 

회문산은 광복이후 분단의 아픔과 이념의 대립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곳이다

산속에서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산 밖에 두고온 가족들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요?

공산주의가 뭣인지도 모르고 희생한 우리의 영혼들이 극락왕생하기를 두손모아 기원해본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8 : 05 ~ 15 : 45  (07시간 40분)      ◎ 날씨 : 맑음, 흐림

 

 

 

 

지금 내가 산(山)을 오르는 것은 산이 아니라, 자신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가파른 오름길에서 치열하게 싸워 내 자신을 넘고 싶을 뿐이며~^^

정작 이기고 싶은 것은 세상이 아니고, 산도 아닌 자신과의 싸움일 뿐이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양현경(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