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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산행 분류▩/♡일반 산행기

경상남도 함양군 삼봉산-금대산 웰빙산행

경상남도 함양군 삼봉산(오도재 - 삼봉산정상 - 금대암) 웰빙산행

◎ 산행일시 : 2021년      09월        04일       (토요일)

◎ 산행위치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마천면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오도령(지리산제1문) - 오도봉(1,035m) - 삼봉산(三峰山, 1.187m) - 촉등마을갈림길

                      창원마을갈림길 - 등구재 - 백운산(白雲山, 902.7m) - 금대산(金臺山, 847m) - 금대암

 

◎ 산행거리 : 오도령 ~ 2.4Km ~ 오도봉 ~ 1.5Km ~ 삼봉산 ~ 0.7Km ~ 촉동마을갈림길 ~ 2.5Km

                      등구재 ~ 1.3Km ~ 백운산정상 ~ 1.1Km ~ 금대암정상 ~ 0.7Km  ~ 금대암주차장

                      도보거리   =   약 10.2Km           실제도보거리   =   약 10.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4 : 55 ~ 13 : 35  (06시간 40분)   ◎ 날씨 : 맑음후 흐림

 

               ◐ 웅장한 지리방장 최고의 전망대라 불리는 함양의 삼봉산 산행이란?

삼봉산(三峰山)은 옛가락국 구형왕이 거주하면서 무기를 만들었던 빈대궐터인 마천면 촉동마을이 산자락에 있다

지리산 천왕봉(天王峯)을 비롯한 주능선의 영봉들이 웅장한 모습으로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볼 수 있으며~

삼봉산은 겨울철이면 엄청난 눈이 쌓여 지리산, 덕유산, 백운산 등을 바라보는 최적의 전망대 중의 하나로 꼽는다

 

 

지리산을 가장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는 산봉우리가 바로 함양의 삼봉산과 금대산이다

산의 고장 함양땅에서 삼봉산과 금대산은 사실 명함 내놓기가 조금 쑥스럽지만~

산꾼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은 바로 "지리산 전망대"로 이름값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왕들이 영험스런 지리산을 성역으로 숭배하여 온 것이 우리의 민족이다

그래서 지리산은 모든 산꾼들이 모산으로 여기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며~

너무 거창하지만 동경의 대상이라 하여 늘 가고 싶은 명산임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 경상남도 함양군 삼봉산(三峰山) 산행안내도 *****

 

 

 

 

 

 

 

오도령(773m)은 삼봉산과 법화산이 만나는 고개 안부로 지리산 관문의 마지막 쉼터이다

가락국 마지막 왕이 거주하면서 은거 피신할 때에 중요한 망루 지역이었으며

오도(悟道)재의 유래는  마천면 삼정리 영원사(靈源寺) 도솔암에서 수도하던

청매(靑梅) 인오조사(印悟祖師)가 이 고개를 오르내리면서 득도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리산 상징물의 하나로 평가되는 지리산제일문은 웅장한 위용을 갖추었다

이곳 제1문은  함양 출신 월정(月汀) 정주상 선생의 글을 포함하여

유명 서각가 남사 송문영 선생이 새겼다는 대형 현판이 볼거리이다

오도재를 넘어서면 칠선계곡 및 백무동에서 지리산천왕봉을 오를 수가 있다

 

 

 

 

<오도재는 함양에서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고개로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 길을 오르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전설이 있어 많은 유학자와 수행자가 넘었던 고개라고 한다

오도재는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와 함양읍 구룡리 사이를 잇는 고갯마루였으며~

옛부터 남해와 하동의 물산들이 벽소령과 장터목을 거쳐 타 지방으로 운송되던 육상 교역로였다

 

 

 

 

<함양에서 마천으로 넘어가는 굽이굽이 지안재길이 저 아래에 있다>

함양읍에서 1023번 도로로 들어오는 입구에 지안마을이 있어서 지안재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내륙지방과 남해바닷가 사람들이 생필품 물물교환을 위해 넘어야 했던 고개로

지안재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포함될 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길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지안재 풍경이다>

지안재의 꼬부랑길은 한국타이어 광고에 나오면서 함양의 명물로 자리를 잡았다

뱀처럼 휘어진 길에 빛괘적 사진포인트로 유명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국에 사진작가들 뿐만 아니라, 자전거와 스포츠카 동호회가 찾는 단골 장소이다

 

 

 

 

오도재는 임진왜란 당시는 서산, 사명, 청매 등등 승군이 머물렀던 곳이다

영남학파 종조인 김종직 선생을 비롯하여 정여창, 유호인, 김일손 등

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곳에서 걸음을 멈추어 지리산을 노래하였던 곳이다

 

 

 

 

오도재(悟道峙)는 옛부터 이 고개를 넘어가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휴게소에는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들이 남긴 시구 입석들이 여기저기에 있었는데~

두류산(지리산의 옛 지명)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 고개에서 저마다 족적을 남긴 흔적이다

 

 

 

 

<오도령 소공원 중앙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서 산행이 시작한다>

고운 최치원의 <청산경불환(靑山更不還)>이란 시(詩)가 무척 가슴에 와 닿는다

승려야 너 산이 좋단 말 빈말이 아니더냐

정말 산이 좋다면 왜 다시 나오는가

두고 보아라 내 언제인가 산에 들어간다면

푸른 산속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최치원은 신라말기 조정의 권세 다툼에 실망하여 산수가 좋은 곳을 두루 찾아다녔다고 한다

유유자적하다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에서  갓과 신발만 남겨둔 채 홀연히 사라진 후

그가 노래한 청산경불환 시(詩)의 다짐대로 다시는 속쇠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노래한 <청산경불환(靑山更不還)>의 내용처럼 그는 말년의 삶을 이미 예견을 했었을까?

 

 

 

 

오도재에는 청매 인오조사(印悟祖師)가 깨달음을 얻고 노래했다는 시(詩)가 있었다

<12각시(十二覺時)>의 의미를 알 듯 모를 듯! 묘하였는데

覺非覺非覺(각비각비각) : 깨달음은 깨닫는 것도 깨닫지 않는 것도 아니니

覺無覺覺覺(각무각각각) : 깨달은 자체가 깨달음 없어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네

覺覺非覺覺(각각비각각) : 깨달음을 깨닫는다는 것은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니

豈獨名眞覺(기독명진각) : 어찌 홀로 참 깨달음이라 이름하리요

일설에 의하면 "오도재"라는 이름도 청매선사가 도를 깨쳤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옛 선인들처럼 걸어서 가는 길도 아니고

자동차를 몰고 잠시 휘리릭 고개를 넘어가는 요즘 세상에 무엇을 깨달을 수 있단 말인가?

 

 

 

 

<오도령수호신위(悟道嶺守護神位) 산신비(山神碑)는 구형왕후인

계화부인(桂花夫人)이 올라와 제단(祭壇)을 쌓고 망국의 한과 선왕(先王)들의 명복을 빌었다>

가락국 제10대 구형왕(仇衡)은 서기 532년 신라가 침공하자 선량한 백성을 전쟁의 제물로 삼을 수 없다하여

나라를 신라에 양국(讓國)하고 9만대군을 거느리고 함양의 제한역(蹄閑驛) 아래에 와서 머물렀다

그리고 오도재 너머 촉동마을에 대궐터를 잡아 역사(役事)를 시작했으나 적을 방어하기 어려워서

칠선계곡으로 들어가 추성을 쌓고 피란하였다.  그 때에 9만 대군이 머물렀던 곳을 대군지라 하며

구만동(九萬洞)이란 마을이 형성되었고, 활개미란 곳은 활을 쏘며 무술을 연마하였던 곳이었으며

촉동(燭洞)에는 빈대궐터가 있고, 추성에는 석성과 대궐터, 파수대, 뒤주터 등 옛날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를 누비는 걸음걸음 안전하게 보살펴주신 신령님께 감사드립니다

바라옵건데 올 한 해도 모든 산들을 접할 때마다 무거운 배낭 가벼이 하시고

무거운 발걸음도 지치지 않게 힘을 주시고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없도록 보살펴 주옵소서~

 

 

 

 

지금까지 사진들은 전날 이곳에서 비박하면서 찍었던 오도령 풍경이다

바쁜 일정 때문에 새벽 일찍 레턴 불빛으로 산정에 들어 섰으며~

함양땅은 옛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던 아름다운 명소가 곳곳에 많이 있다

 

 

 

 

<지리산제일문> 우측으로  삼봉산을 오르는 산행안내도와 들머리가 있다

옛날에 삼봉산과 법화산을 잇는 오도재에 성황당이 있었던 곳으로~ 

이 고개를 넘나드는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소원을 빌었던 곳이라고 한다

 

 

 

 

산행안내도를 숙지하고 우측 계단을 오르면서 산속으로 들어선다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산신각이 있어 조금은 섬득 하였지만~

그래도 베낭을 둘러메고 산정에 들어서면 항상 발걸음은 신이난다

 

 

 

 

<산행시작 25여분 만에 관음봉(919m)을 넘는다>

요즈음 삼봉산과 금대산은 사계절 전국의 산꾼들에게 인기가 높은 산이다

산꾼들에게 끊임없이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까닭은 조망의 산(山)~

다시 말해서 최고의 지리산전망대로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 공기가 상큼하고 비온후 촉촉한 등산로는 최상의 길이다

우측으로 경상남도 함양읍의 불빛이 시야에 들어오고~

캄캄하지만 시계가 이렇게 좋으니 좋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서서히 고도를 높여서 처음 헬기장의 이정목을 만난다

오도령에서 헬기장까지 1.5km을 올라 왔으며~

서서히 날이 밝아지면서 세상 사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삼봉산 자락에는 산나물과 산약초 등의 보약단지가 많이 있는가봐요

방범용 CCTV를 설치해 놓았다는 표지판이 우측에 있었으며~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길도 아닌데 태극기는 왜 달아 놓았는지~

 

 

 

 

삼봉산 건너편에 있는 구만마을이라는 지명에 관해 공부를 하여 볼까요

<유래를 보면>옛날 가야국의 마지막 구형왕(양왕이라고도 함)이

신라에 대항하기 위해 구만병사를 양성하던 곳이라 하여 구만마을이라 불리운다

 

 

 

바위지대 된비알을 오르면 오도봉 정수리에서 전망대를 만난다

 

 

 

 

 

 

 

지리산 천왕봉이 마치 하얀 솜털구름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다

하봉, 중봉, 천황봉이 산(山)자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우측으로 제석봉, 장터목산장, 촛대봉, 영신봉 등이 나열해 있다

 

 

 

오도재를 출발하여 1시간여 만에 오도봉(1,035m)에 도착했다

 

 

 

 

 

 

 

오도봉(悟道峯)은 아래 오도령에서 따온 이름으로 보인다

1000m가 넘는 고봉이지만 특별하게 볼것은 없고~

삼봉산을 오르면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쉬어가는 봉우리이다

 

 

 

 

백두대간 봉화산 능선에서 가지를 친 연비지맥은 이곳 오도봉에서 우측으로 지난다

옥잠봉, 비조재, 연비산, 팔량재, 투구봉, 삼봉산, 오도봉, 화장산을 지나서

임천과 남강이 만나는 유림면 장항리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8.2km의 지맥이다

 

 

 

 

<오도봉을 내려서면 안부에서 촉동마을갈림길이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하산하면 촉동과 등구를 거쳐 칠선계곡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촉동마을은 옛날 가락국의 구형왕이 무기를 만들었던 빈대궐터가 있으며

등구마을은 변강쇠와 옹녀가 전국을 떠돌다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며

북쪽 산자락에는 죽염 발명가로 유명한 인산 김일훈 선생을 기린 민속의학연구소가 있다

 

 

 

 

삼봉산은 오르고 또 끊임없이 오르는 된비알 오름길이 무척 힘이든다

오랜만에 산행이라 오름길이 팍팍하지만 즐거운 산행 길이기에~

숲속에서 품어져 나온 아침 공기의 상쾌함에 즐거운 마음으로 올라간다

 

 

 

 

오름길을 밀어올려 9부능선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안개속에 둘러쌓여서 삼봉산정상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스잔한 안개속의 풍경은 한폭의 수채화처럼 느껴진다

 

 

 

 

구름옷을 걸치고 신기루처럼 둥실 떠있는 장엄한 지리산은 한폭의 그림이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지리산을 바라보는 풍경이라 감회도 새로웠지만~

마치 개선장군이 된 것 같은 착각에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면서 감동이 벅찬다

 

 

 

 

어느새 산정의 초목도 가을빛으로 변하면서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은 한자로 스스로 자(自), 그러할 연(然)자를 쓰고 있는데

자연은 푸르면 푸르게, 붉으면 붉게,  스스로 그렇게 변해간다

스스로 그렇게 변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색다른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지금 <눈앞에 피는 꽃>이고

가장 아름다운 일이란 <지금 살아 있는 일>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것은 건강한 삶을 살지 않으면  아무리 예쁜꽃도 보지 못하고

아무리 좋은 일도 보고 느끼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그러기에 이렇게 산길을 걸으면서 꽃을 보고 느끼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청량한 숲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진행하니 헬기장을 만난다

잡풀이 무성하여 프로펠러 보도불럭도 보이지 않았는데~

산불이 나면 어쩌려고 공공시설물을 이렇게 방치해도 되는 것인지~

 

 

 

정수리에 있는 암봉을 우회하여 올라가면 삼봉산 정상이다

 

 

 

 

 

 

 

삼봉산(三峰山)은 하늘을 찌를 듯이 삼각추처럼 뾰족하게 솟구쳐 있다

그래서 지척에 있는 지리방장 최고의 전망대로 불리는 곳인데~

오늘은 지리산 천왕이가 구름모자를 쓰고 있어 볼 수 없음이 아쉬움이다

 

 

 

 

삼봉산(山峰山, 1187m)은 3개의 산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경남 함양군 함양읍, 마천면과 전북 남원시 산내면이 도계를 이루고 있으며~

이 산에 산삼과 산약초의 보약단지가 많아 전국의 심마니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삼봉산 주변에는 <흥부전>의 주무대인 성산 흥부마을을 비롯하여

촉동마을은 가락국의 마지막 구형왕(仇衡王)의 궁궐이 있었다는 빈대궐터가 있다

함양군 마천면 등구마을은 <가루지기전> 전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며~

변강소와 옹녀가 전국을 떠돌다가 마지막 정착하였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마을이다

 

 

 

 

삼봉산은 투구봉, 촛대봉의 세 봉우리가 있다 하여 삼봉산이라 하였다

하지만 촛대봉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궁금할 뿐이고~

이곳은 함양읍, 마천면, 산내면의 경계라서 삼면봉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동서로 길게 누운 삼봉산은 급경사가 많아서 대체로 산세가 험한 편이다

반면 남원시 산내면 쪽으로는 신라 고찰 실상사와 백장사가 있고~

그리고 함양군 마천쪽으로는 금대암 등 좋은 절집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건너편으로 지리산 천왕봉과 마주할 것인데, 박무가 시야를 제안하고 있다

삼봉산을 넘어서면서 함께 하였던 함양군 함양읍과는 이별을 하고~

전북 남원시 산내면과 경남 함양군 마천면 도계(面界)를 따라 걸어가게 된다

 

 

 

 

지리산을 제대로 조망하려면 삼봉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따라야 한다

백운산과 금대산을 거쳐 금대암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권장하고 싶으며~

금대산은 가장 가까이에서 지리산 주능선 최고의 바라기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삼봉산을 불랙홀처럼 내려가면 촉동마을 갈림길을 만난다>

촉동마을은 일두 정여창선생과 탁영 김일손 선생이 지리산 유람길에 유숙한 등구사지가 있다

마천면 등구마을 큰애기는 곶감 깍으려 나갔다는 우리 민요와 같이 곶감의 주산지이며

가루지기타령에 등장하는 변강쇠와 옹녀가 마지막으로 정착해 살던 곳도 바로 마천 등구이다

 

 

 

좌측으로 내려가는 창원생태마을 갈림길을 만난다

 

 

 

 

 

 

지도상에 932.2m봉은 아무런 표시기가 없어 그냥 지나칠 수 있다

 

 

 

 

 

 

 

산행을 하면서 항상 자연과 소통하려고 노력을 한다

고희를 바라보는 인생에도 아직 희망이 있고~

그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산이 있기에 행복한 시간이다

 

 

 

 

<여기는 또 어디쯤 무슨 봉우리란 말인가!>

등구재를 향하는 능선길은 수많은 봉우리를 오르기를 반복한다

아직도 산정에는 풋풋한 싱그러움이 살아 있었으며~

자연은 순수한 모습으로 세속에서 찌든 영혼을 깨끗히 닦아준다

 

 

 

 

<지도상의 큰 깍은봉(926.5m)에 올라선다>

청량한 숲속의 맑은 공기가 마음속의 떼를 깨끗히 씻어낸다

그윽한 숲속의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면서~

예쁜 들꽃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느림의 미학으로 사방사방 걸어간다

 

 

 

 

자연은 스스로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채 우리를 반겨준다

산에 오면 아름다운 꽃만 보여준 것만은 아니었으며~

산이 좋아 찾아온 사람에게 풀꽃향기로 만찬을 베풀어 준다

 

 

 

 

<등구재를 향한 마지막 790.2m봉을 넘는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치고 병원에 자주 가는 사람 보았습니까?

보건복지부에서 등산로 개발에 많은 지원을 한다면~

국민의료비로 지출되는 예산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거북등을 타고 넘어가는 등구재(登龜岾)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삼봉산과 백운산 사이의 등구재는 산내와 마천, 즉 전남과 경남을 잇는 고갯마루이다

등구라는 지명은 <거북이 기어 올라가는 모습>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가루지기 타령에 등장하는 변강쇠와 옹녀가 마지막으로 정착했던 곳이 바로 등구이다

 

 

 

 

등구재는 경남 창원마을과 전북 상황마을의 도계가 되고, 인월장을 보러 넘던 길이다

서쪽 지리산 만복대에 노을이 깔리고, 동쪽 법화산 마루에 달이 떠 오르면~

노을과 달빛이 어우러지는 고갯길이고 또한 새색시가 꽃가마를 타고 넘었던 고개이다

 

경상남도 함양땅은 옛 선인들의 발자취와 한국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길이다

하여, 지리산둘레길은 어느 한 곳 소홀히 할 수 없는 특별한 도보여행 길이며~

요즘 둘레길을 찾는 이가 드물지만 고갯길이 마을과 마을 그리고 사람을 이어줄 것이다

 

 

 

 

예전에 지리산둘레길 3코스를 걸었을 때 우측 등구령쉼터의 청국장 생각이 난다

산나물 반찬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고, 서비스로 준 한방차까지 한잔하고~

너무 많이 먹어서 고개를 넘는 길이 너무 힘들어 헥헥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조금은 이르지만 푸른 억새의 모습도 어찌 어찌나 예쁘던지~

발걸음을 멈추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보았으며~

볼거리 찍을거리가 하도 많아서 눈이 호사를 누리는 산행이다

 

 

 

 

짙푸른 억새 지역을 통과하면 꾸준한 된비알 오르막이 얼반 죽인다

야생화와 낙엽송과 잣나무가 산자락을 꽉 메운 숲길이라~

위안을 삼으면서 꾸역꾸역 올라도 헉헉 소리가 나올만큼 힘이 들었다

 

 

 

 

등구재에서 오르는 백운산 오름길은 만만치 않은 오름길이다

무덤 때문에 백운산 정상 표지석이 한쪽에 있었는데~

수풀이 무성할 때에는 잘 보이지 않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특징이 없는 봉우리라서 인증샷을 담고 금대산으로 향한다

 

 

 

 

 

 

 

산행을 하면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그윽한 솔향기의 숲길이다

솔숲길을 걸어가다 보면 우리의 마음속이 정화가 되고~

그리고 맑고 깨끗한 에너지를 마음속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잔뜩 흐리는 날씨가 비를 한방울씩 뿌리기 시작한다

무덥고 찌는 날씨라 비가 반갑기도 하였으며~

금대산이 얼마남지 않았기에 힘들어도 힘을 내어본다

 

 

 

 

기이하고 거대한 형상의 바위에서 잠시 발걸음을 쉬어본다

기암괴석 뒷쪽으로 조망처가 좋은 전망대가 있지만~

오늘은 날씨가 흐릿하여 금대산 조망을 기약하며 그냥 지나친다

 

 

 

 

우측으로 돌아와서 쳐다보면 마치 코주부의 얼굴처럼 보인다

거대한 기암괴석의 암석은 신비로움을 선사 하였으며~

이래 저래 산꾼들이 붙여논 이름은 많지만 정작 이름은 없었다

 

 

 

 

금대산 정상은 마사토 지대에 크고 작은 바위군이 형성되어 있었다

산불감시초소장은 비가와서 그런지~  마실을 가고 없었으며~

지리산 바라기산에 산불초소 보다는 전망대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금대산(金臺山, 847m)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에 위치한 산이다

산봉산을 찍고 백운산과 금대산을 연계 산행하는 것이 보통이며~

산자락에 마천면소재지가 있고, 그 앞에 임천이 휘돌아 동북쪽으로 흘러간다

 

 

 

 

삼봉산도 좋은 전망처지만 상대적으로 금대산이 가깝게 있으니 더 리얼하게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금대지리>라고 부르면서 함양 8경 중 2경에 넣었으며~

600년 전 유호인이 찾았던 금대암, 금대산(金臺山)을 뒤따라 우리가 올라온 것이다

 

 

 

 

<뇌계 유호인이 금대암을 찾은 이유가 무엇이고 그는 누구인가>

아마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지리산(智異山)을 한번 더 보고자 하였을 것이다

유호인은 조선 전기 최고의 문장가인 그는 1474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고~

1478년 사가독서(賜暇讀書)한 뒤 1480년에 거창현감, 1494년 합천군수로 재직했다

 

28세 때 스승 김종직을 따라 함양 임천을 건너 중봉을 거쳐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적이 있다

김종직이 남긴 유두류록에 유호인이 등장하는 걸 보면  그 위상을 가늠할 수 있으며

함양인으로 그는 일찍이 산을 깨닫고 김종직를 지리산으로 이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그 어느 한가한 날에  과거 스승과 산행했던 지리산을 추억하며

북쪽에서 지리산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의 금대암, 금대산을 찾아 시(詩)를 썻을 것이다

 

 

 

 

문장력이 뛰어난 뇌계 유호인이 어느 시절 금대암을 찾아 남긴 시다

 잘 있느냐, 금대암아 / 송하문이 옛날 같구나

송풍에 맑은 꿈 깨어 / 문득 잠꼬대를 하는 구나

솔바람, 솔향기에 잠을 깼다고 하니 산사 주변에 소나무가 많았던 모양이다

 

 

 

 

해발 1300m가 넘는 거봉 20여개의 올망졸망한 봉우리가 늘어선 지리산이다

그러나 변덕스러운 여름 날씨 탓에 지리산 주능선이 보이지 않았으며~

하얀 구름이 금대지리를 무색케 해, 일망무제는커녕 비에 쫓겨 내려가야 할 처지다

 

 

 

 

칠선계곡에서 피어오른 운무가 구름과 맞닿아 한 폭의 수묵화를 그린다

솜이불처럼 두터운 운무가 지리산 주능선을 포근히 감싸고 있으며~

운무(雲舞)가 끼었어도 지리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풍광이다

 

 

 

 

지리산(智異山) 선녀가 타고 내려왔다던 전설속의 무지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선녀가 나무꾼을 찾아 삼정계곡으로 하강이라도 하는 것인지~

하얀 새털옷을 걸치고 함양의 산하를 보듬은 지리산이 더욱 신비로워 보인다

 

 

 

 

금대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의 풍경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한폭의 풍경화이다

날씨가 좋으면 봉우리를 세고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찰 정도인데~

오늘 지리산은 비경을 함부로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 구름속에서 꿈적을 하지 않는다

 

 

 

 

나이 들어도 아름다운 산하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가!

이렇게 산에 오르면 마음이 황홀하지 않은가!

아름다운 풍경에 인생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금대산(金臺山) 정상에서 바라보면 지리산이 한폭의 병풍처럼 보이는 곳이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 산청의 왕산은 물론, 함양의 크고 작은 산들이

중중첩첩 포개져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는 그 중심에 금대산이 우뚝 솟아 있다

 

 

 

 

오늘 새벽 출발했던 들머리 오도령을 눈에 걸치고 금대암으로 내려간다

삼봉산과 법화산 사이에 오도령(悟道嶺)이 자리하고 있으며~

건너편 등구마을은 가루지기 타령의 변강쇠와 옹녀가 마지막 살던 곳이다

 

 

 

 

산행이란 항상 우연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기에 행복한 것이다

오랜만에 실록의 푸르름이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졌으며~

찾아올 수 있는 우리의 산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금대암 내림길은 여름철 산행이 즐겁지 않다면 힘든 구간이다

마치 불랙홀로 빨려들어간 것처럼 엄청난 급경사이며~

암벽을 휘돌아 내려가는 등산로는 좋지만 경사가 무척 가파르다

 

 

 

 

금대산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통천문을 거쳐 내려가야 했었다

우측 방향의 안국사와 금대암 사잇길로 내려섰으며~

이곳에서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금대암쪽으로 400m를 가야한다

 

 

 

 

<금대암을 지리산의 마천루(摩天樓)라 이름을 붙인 이유가 있다>

지리 천왕봉을 비롯하여 주능선의 장엄한 영봉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큰 소리를 지르면 금방이라도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올 것 같았으며~

암자로 들어서니 잔잔한 바람끝이 한여름 폭포에서 날리는 물방울처럼 시원하였다

 

 

 

 

불교의 정토경은 대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3종의 대승경전을 총칭하는 말이다

<금대(金臺)는 이 정토경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공덕이 있는 사람이 임종할 때 서쪽으로 수많은 성중과 아미타불이 나타나는데

가장 공덕이 높은 사람은 금대(金臺)에  그 다음은 은대(銀臺)에 앉힌다고 한다

또한 부처님의 몸이 금빛이라 부처가 있는 자리를 <금대>라고 한 것도 일리 있는 말이다

 

 

 

 

<금대암을 소개할 때에 빠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옛 출입로 입구쪽에 하늘을 찌를 듯한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나무가 현재 경상남도 기념물 제212호로 지정된 전나무이며

우리나라 전나무 중에서 가장 오래 되었고 또 가장 크다고 한다

본래 두 그루가 있었으나 1998년 낙뢰로 부러져 없어지고 지금은 한 그루만 남아있다

 

 

 

 

<지리산과 마주본 금대암(金臺庵)은 아담한 암자이다>

맞배지붕의 큰 건물 대웅전은 최근에 편액을 무량수전으로 바꾸어 달았다

신라 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나  훗날 역사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금대암은 신라 때 도선국사가 일찍이 유려한 참배지로 선정하였고

고려시대에는 보조국사 지눌, 조선시대에는 서산대사가 정진했다고 전해진다

 

 

 

 

무량수전 우측의 계단을 올라 금계마을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연결된다

금대산에서 내려오는 길과 연결되어 1시간 정도 소요 되는데~

어차피 택시를 타고 오도령을 가야되기 때문에 이곳에서 스틱을 접었다

 

 

 

 

<무량수전 뒷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나한전(羅漢殿)이 있다>

나한전 기둥의 주련(柱聯)에는 일사(一思) 석용진(石龍鎭)의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백운청풍자거래(白雲靑風自去來) : 흰 구름 맑은 바람 스스로 오가는데

일락서산월출동(日落西山月出東) : 서산에 해지자 동녘에 달뜨도다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 : 천개의 강물에는 천개의 달이뜨고

만리무운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 : 만리에 구름없어 만리가 푸르른 하늘이네

나한전을 들여다 보면은 보물 탱화가 빛도 바래지지 않은 채로 소장이 잘되어 있었다

 

 

 

 

<나한전 뒷쪽에 비럭바위 아래에 3층석탑이 있다 >

이 비럭바위 아래의 3층 석탑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이다

기단부없이 암반위에 1층 탑신을 세운 특이한 형식이며~

기법상 고려말, 조선시대 초 작품으로 추정되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금대암은 지리산의 주능선을 조망하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함양의 마천면에는 기세 좋게 지리산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서 있는 금대산이 있다

산자락에서 <갈 지(之)>자의 가파른 길을 한참 올라오면 금대암이 있으며~

금대암이야말로 지리산의 거대한 능선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는 최고의 조망처다

 

 

 

 

날이 좋은 날이면 이 전나무 너머로 지리산의 장엄한 파노라마가 펼쳐질 것이다

지금의 내 눈앞에 드러난 것은 창암산의 둥그스럼한 자태 뿐이었으며~

제일방장의 명성답게 천왕봉을 중심으로 영봉들을 굽어보며 가람이 배치되어 있다

 

 

 

 

암자를 떠날 때까지 하얀 장막을 걸치고서 지리산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았다

날씨가 조금 흐려서 지리산 제일방장의 주능선은 조망할 수 없었지만~

삼봉산과 백운산을 거쳐 금대산 종주 산행은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안겨 주었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4 : 55 ~ 13 : 35  (06시간 40분)   ◎ 날씨 : 맑음후 흐림

 

 

 

 

함양땅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고, 높은 산들이 많고 인정이 넘치는 산의 고장이다

또한 옛 선비들의 시선과 풍류를 따라가 볼 수 있는 명승지가 곳곳에 있으며~

지리산 태극종주의 미완 구간과 황금능선도 갈 수 있는 열정의 시간이 있기를 바래본다

 

 

Sunshine on my Shoulders - 노래 : John Den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