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진안군 천반산 (자연휴양림 - 깃대봉 - 죽도) 테마산행▣
◎ 산행일시 : 2022년 06월 06일 (월요일)
◎ 산행위치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과 장수군 천천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천반산자연휴양림 - 섬계마을갈림길 - 천반산(깃대봉, 646.9m봉) - 전망대 - 뜀바위
천반산(성터) - 할미굴 - 송판서굴 - 뜀바위전망대 - 죽도 - 장전마을 - 천반산자연휴양림
◎ 산행거리 : 천반산자연휴양림 ~ 1.4Km ~ 천반산(깃대봉) ~ 1.2Km ~ 천반산(성터) ~ 0.8Km
송판서굴 ~ 0.5Km ~ 뜀바위 ~ 1.8Km ~ 죽도(병풍바위) ~ 2.7Km ~ 천반산자연휴양림
도보거리 = 약 8.4Km 실제도보거리 = 약 8.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8 : 20 ~ 13 : 10 (04시간 50분) ◎ 날씨 : 흐림, 맑음
◐ 진안의 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 십승지라 불리는 천반산 산행이란? ◑
천반산(天盤山, 646.7m)은 전북 진안군 동향면과 장수군 천천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능선 양쪽으로 깎아지른 험준한
단애의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덕유산에서 흘러 내려 온 구량천(九良川)과 남쪽의 장수쪽에서 흘러 내려 온
금강(錦江) 지류가 굽이쳐 흘러 합쳐지면서 산정에서 바라보는 자연 경관이 산행 내내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산이다
<선조 22(1589)년 기축옥사는 조선왕조 500년의 제일 사건이다>
선비 1,000여 명이 형장의 이슬로 풍운의 꿈을 접어야 했던 처참한 역모 사건이었다
그 중심에는 혁명적 사상가 대동계(大同契)을 조직하였던 정여립이 있었으며~
이 혁명적 사상가 정여립의 사상(思相)이 천반산과 죽도의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진안군 동향면에 있는 천반산은 "대동세상"을 꿈꾸었던 인물 정여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정여립은 동래 정씨의 후손으로 전주에서 태어나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웠으며~
통솔력과 두뇌가 명석한 정여립의 발자취를 따라 천반산에서 멋진 추억을 만들어 볼 것이다
***** 전라북도 진안군 천반산(天盤山) 산행 안내도 *****
"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랴! 어찌 임금 한사람이 주인이 될수있는가
누구든지 섬기면 임금 아니겠는가! 인민에게 해가되는 임금은 죽여도 괜찮고
올바름을 실행하기에 부족한 지아비는 떠나도 괜찮다, 같이 더불어 사는세상
모든 백성이 잘사는 나라 <대동(大同)이 420여년전 정여립이 이곳 천반산에서 품었던 사상이다>
천반산은 전북의 동북쪽 산간 지방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은 전라북도의 지붕이다
그 지붕은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처럼 위풍당당하거나 광할하지는 못하지만~
전라북도의 지붕인 만큼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여 조선시대 때에는 천하의 은식처였다
<구량천을 건너기전 간판이 있는 이곳에 주차할 공간이 있다>
천반산을 명산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은 산 아래에 휘돌아 흐르는 구량천(九良川)이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태극 모양으로 흐르고 있으며~
천혜의 요새를 이루는 깎아지른 절벽과 가까이에 있는 마이산도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천반산은 사방이 깎아지른 험준한 절벽으로 에워싸고 있다>
거기에다 북으로는 덕유산에서 발원한 구량천이 산자락을 휘감고 흐르고 있다
또한 서쪽과 남으로는 금강 상류를 이루는 연평천이 휘돌아 흐르고 있고~
깎아지른 천혜의 절벽이 천연요새를 방불케하는 산세가 산객들을 감동케 한다
구량천 다리를 건너면 흰 배경에 붉은 글씨로 휴양림의 간판이 보인다
휴양림을 들어서면 우측 화장실이 있는 쪽에 들머리가 있으며~
혁명적 사상가 정여립의 발자취를 따라 멋진 추억을 만들어 볼 것이다
이곳은 개인 소유이무로 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주차를 해야한다
화장실 좌측으로 주차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알려 주었으며~
그렇다고 유료 주차장은 아니고, 전화 하시면 친절하게 알려준다
<화장실 좌측으로 산행 안내도가 세밀하게 알려준다>
천반산(天盤山)은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과 장수군 천천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땅에는 천반(天盤), 지반(地盤), 인반(人盤)이라는 명당자리가 있는데
이 산이 천반에 해당되는 명당이 있다고 해서 지어졌다는 설도 있으며
주능선 일원이 소반과 같이 납작하다 하여서 천반산이란 이름이 생겼다는 설도 있다
<휴양림에서 산행안내도를 숙지하고 산속으로 들어선다>
천반산은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하였던 명산의 면모를 자랑하는 산이다
또한 지반(地盤)·인반(人盤)과 함께 3대 명당으로 알려져 있듯!
구량천과 천혜의 절벽이 어우러져 경치가 빼어나서 사계절 인기가 있다
천반산 자연휴양림은 개인이 운영하는 펜션이라고 보는게 좋을 것이다
휴양림에서 시작한 천반산은 초입부터 깃대봉 정상까지 오름길이다
다리쉼을 할 수 있는 멋진 소나무에서 추억도 남기고~
산 아래 신기 마을은 정감록이 예언한 10승지의 한 곳이다
조선시대 유학자인 유겸암(柳謙庵)이 겸암록을 통해~
이곳의 지리가 호남 제일의 땅이라고 칭송하였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만에 산행을 하고 싶어 짧은 거리의 천반산을 찾아왔다
하지만 초입부터 햣한 오르막길이 산객을 긴장케 하였으며~
오랜만에 산행이라서 종아리가 뭉쳐오면서 금방이라도 터질듯하다
그래도 산정에서 바라본 풍경 만큼은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다
가운데 고산을 기준으로 좌측에 대덕산이고, 우측에 국사봉이다
죽도고개에서 고산과 대덕산 연계 산행을 할 수 있으며~
고산에서 바라본 물줄기 조망도 천반산 못지않게 아름다운 곳이다
천반산은 얼핏 보면 육산처럼 보이지만, 돌이 많은 기암절벽이다
아직은 그런 천혜의 요새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정상 깃대봉을 넘어서면 절벽이 함께 한다는 것을 실감할 것이다
9부능선에 올라서면 지도상의 섬계마을 갈림길을 만난다
좀더 여유있는 분들은 섬계마을을 들머리로 하지만~
홀산하시는 분들은 차량회수 때문에 휴양림에서 시작한다
천반산은 사방 첩첩산으로 둘러싸여 여간해서 인적을 만날 수 없는 호젓한 산이다
열 걸음 걷고 한번 숨을 고르는 "십보일식"을 되풀이 하면서 올라 왔으며~
주능선에 올라서면 장수군 일대의 명산들과 푸른 금강 지류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천반산(天盤山, 647m)은 전북 진안군 동향면과 장수군 천천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땅에는 천반(天盤), 지반(地盤), 인반(人盤)이라는 명당자리가 있는데
이 산이 천반에 해당되는 명당이 있다고 해서 지어졌다는 설도 있으며
또한 주능선 일원이 소반과 같이 납작하다 하여 천반산이란 이름이 생겼다는 설이다
천반산 정상 깃대봉은 혁명적 사상가 정여립과 아주 깊은 관계가 있는 산이다
혁명적 사상가 정여립이 대동계(大同契)을 조직하여 훈련을 할 때마다~
이곳의 제일 높은 곳에 대동(大同)이라는 깃발을 꽂았다 하여 깃대봉이라 한다
천반산의 또 다른 유래는 산 아래 남쪽 마을 앞 강가에는 장독바위가 있다고 한다
이 바위가 하늘의 소반에서 떨어진 복숭아(천반락도 : 天盤落桃)라 하여
마을 북쪽에 있는 산을 천반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는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천반산에는 정여립(鄭汝立)의 흔적이 이곳 저곳 남아 있다>
훈련할 때 제일 높은 곳에 대동이라는 깃발을 꽂았다는 이곳 정상의 깃대봉이 있다
그리고 망을 봤다는 망바위, 정여립이 말을 타고 뛰었다는 30m거리의 뜀바위
정여립이 바둑을 두었다던 말바위 등 풍운아 정여립은 과연 역모의 주인공이었을까?
정상인 천반산(깃대봉)은 잡목으로 가려져 조망을 볼 수가 없다
천반산의 진면목은 깃대봉을 지나면서 볼 수가 있으며~
겸암록에선 이곳의 지리가 호남 제일의 땅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천반산은 정여립이 훈련할 때처럼 밧줄 구간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위험하다는 것은 볼 수가 없었지만 ~
능선 양쪽의 기암 절벽은 가슴이 떨릴만큼 아찔함을 느낀다
천반산은 사방팔방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여 조선시대에는 천하의 은신처였다
산 아래 신기마을은 정감록이 예언한 것처럼 10승지 중의 한 곳이며~
한 발자욱마다 조선 최대의 사건 기축옥사 주인공 정여립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조선의 대표적인 사대 사화를 합친것(500여명) 보다도 더 큰 피바람이 있었던 제일의 사건이다
조선 선비 1.000여 명이 역모로 몰려 때 죽음을 당했던 바로 기축옥사(己丑獄事)이며~
그 기축옥사 핵심이 정여립이었고, 그가 피신와서 관군과 쫒기다 자결한 현장이 천반산 죽도였다
자결이 아닌 죽임을 당했다는 설과 정여립이 자결한 곳은 진안군 부귀면 오룡리라는 견해도 전해진다
내림길 8부능선 마당바위에서 세 갈래 소나무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가막리 뒷산 독재봉을 넘어 누구라도 알아 볼 수 있는 마이산이다
좌측에 봉우리가 숫마이봉이고 우측 봉우리가 암마이봉이며~
좌측으로 호남정맥상의 성수봉의 산줄기도 마이산을 향해 달려간다
천반산이 명산인 이유는 이렇게 곳곳에 전망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멋진 조망이 열리면서 한동안 쉬면서 주변을 둘러 보았으며~
우측 산성터로 가는 능선도 흘러내리는 골짜기가 신비함을 더한다
근육질이 튼튼한 명품소나무는 동양화를 보는 듯한 예술품이다
부잣집의 정원에 있었으면 수천만원을 홋가했을 소나무!
아름드리 소나무는 우리에게 솔향기로 마음속을 가득 채워주었다
이곳 말바위는 정여립이 친지분들과 바둑을 두었다는 곳이다
마치 바위는 레미콘으로 공구리 한 것처럼 보였으며~
또한 말안장바위라는 이름이 잘 어울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바위에서 테크계단을 오르면 칼날같은 능선에 올라선다
천반산 성터길 칼날 능선에서 바라본 구량천과 장전마을 풍경이다
사진으로는 감흥이 없지만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찔 하였으며~
구량천의 물줄기가 수량이 많을때라면 더욱더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우측 천반산(깃대봉) 아래 중간쯤 자연휴양림이 아스라히 보인다
구량천 좌측으로는 고산과 대덕산도 옹골차게 솟아 있고~
가운데 저 멀리 적상산을 넘어서 덕유능선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좌측 하얀바탕 앞 죽도폭포를 넘어 금강 지류가 살짝 보인다
그 뒤쪽으로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용담호가 있으며~
작년에 가을을 만끽하였던 구봉산도 살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천반산 성(城)은 포곡식 석축산성의 형태로 보아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정여립이 이곳으로 피신하여 군사를 조련한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북동쪽은 깎아지른 절벽이어서 따로 성벽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진다
천반산(성터, 575m) 정상 역시 벤치와 작은 정상석이 세워져 있었다
또한 깃대봉처럼 잡목으로 가려져 조망은 전혀 되지 않았으며~
산 정상이 소반처럼 납작하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진 천반산 성터이다
<천반산은 선조 22년(1589) 전라도를 반역향(反逆鄕)이라 하였다>
호남 차별의 분수령을 이루었던 기축옥사(己丑獄死)의 주인공 정여립(鄭汝立)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정여립은 전주에서 태어나 선조 3년 25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修撰)이라는 벼슬에 올랐으나
선조와 서인의 미움을 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낙향하여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고 모악산 앞
제비산(김제시 금구면)에 머물면서 이곳 죽도에 시설을 지어놓고 천반산에서 군사를 훈련시켰다고 한다
성터에서 직진 방향으로 할미굴 가는 길이 제법 멀게 보였다
죽도와 송판서굴은 우측으로 소반같은 넓은 길이지만~
할미굴을 갔다가 되돌아와 성터에서 송판서굴로 가려고 한다
할미굴은 이곳 출신 송보산(宋寶山)이 세조의 왕위 찬탈 후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곳이다
송판서굴에서 은거하며 내외 동침을 금하기 위해서 부인을 이곳에 있게 하였는데~
그 뒤로 송판서(宋判書) 부인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할미굴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할미굴에 갔다가 되돌아와 성터에서 죽도와 송판서굴 방향으로 진행한다
이곳 성터는 만 여평의 평지가 소반처럼 자리한 천혜의 요새를 자랑하는 곳이다
군사를 조련할 때 사용했다는 거대한 돌솥이 묻혀 있는 흔적도 있었으며~
훈련터와 성벽 같은 흔적들이 남아 있어 정여립과 병사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뜀바위전망대 삼거리에서 죽도와 송판서굴이 갈리는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송판서굴은 좌측으로 300m지점에 떨어져 있어~
송판서굴에서 인증을 하고 다시 뜀바위전망대로 되돌아와야 한다
생각할 것도 없이 송판서굴을 구경하기 위해 직벽에 가까운 계단을 내려선다
지금이야 계단이 만들어져 있어 어렵지 않게 송판서굴로 갈 수 있지만~
옛날 사람들은 이곳을 다녀가기가 그렇게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직암벽에 있는 송판서굴은 십여 명의 장정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이다
이곳은 단종 때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송보산(宋寶山)이 은거하며 수도하였다고 하여 송판서굴이라 한다
<연안 송씨인 송보산 선생은 세종 때 예조판서를 지냈다>
송판서는 세상의 죄악을 씻으려고 이곳에서 은거하면서 수도를 한 곳이다
부인과 같이 입산하여 조금 떨어진 할미굴에 기거토록 하였으며~
그는 도학과 제자백가를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치다 1484년에 세상을 떠났다
굴안의 바위틈에서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은 샘이 있다
이 물은 약수로 위장병에 좋다는 설명판에 적혀는 있었지만~
내려오는 전설일 뿐이지 지금은 식수로 보기에는 부적합하게 보였다
앞쪽으로 잡목만 없으면 정말 시원한 조망이 좋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 송판서굴은 죽도에 시설을 지어놓고 죽도선생으로 불렀던
정여립이 대동계을 조직하여 병마를 훈련했던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송판서굴을 구경하고 올라가는 계단길은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길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오름길이 계단인지! 암벽인지 사족(보행)으로 올라가야 했으며~
어찌나 경사가 심한지 그냥 죽을 맛이라 눈내리는 날은 권장하고 싶지 않은 곳이다
삼거리갈림길 뜀바위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왔다
뜀바위전망대는 산악회 무리가 식사하기에 아주 좋아 보였다
오늘은 현충일 공휴일이라 누구라도 올라왔을 법한데~
오지의 땅이라 그런지 덕분에 우리만이 즐기는 산행이 더 좋았다
전북 진안군 하면 마이산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산의 형세를 잘 모르는 사람도 알아 볼 수가 있는 마이산!
어디서 보아도 말의 귀처럼 진안의 성스러운 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쭉쭉뻗은 잘 생긴 소나무을 살려 만들어서 전망대가 더 운치가 있었다
우측으로 정여립이 말을 타고 뛰었다는 뜀바위가 지척에 있고~
뜀바위를 지나서 약 40분가량 하산하면 죽도의 병풍바위에 이르게 된다
정여립이 말을 타고 뛰었다는 이 뜀바위는 데크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은 누구나 계단 때문에 편안히 오를 수가 있으며~
이 뜀바위 구간은 천반산 산행 최고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라 할 수 있다
이곳 뜀바위는 옛날 정여립이 말을 타고 뛰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량천 물줄기가 휘감고 돌아가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강과 산이 오랜세월 빚어 놓은 위대한 걸작품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우측 천반산 깃대봉의 산자락은 마치 황진이의 치맛자락처럼 펼쳐져 있다
태극 모양으로 굽이쳐 흐르는 구량천의 강줄기가 한 폭의 그림이고~
저 멀리 덕유산도 아스름히 보이면서 첩첩산하 만산천봉의 산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죽도에서 천변을 따라 장전마을로 걸어가는 길도 선명하게 보인다
우측 파란 지붕이 지도상에 표기한 스톤스토리 펜션이며~
건너편에 있는 고산(875m)은 해발이 높아 또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뜀바위 좌,우측은 천길 낭떠러지 절벽이라 다리가 후덜거릴 정도였다
이곳에서 말을 타고 뛰었다고 하는 전설적인 이야기라 하지만~
산정에 올라보면 지나가는 강아지도 <에이 뻥 치지마라>고 할 것이다
뜀바위를 내려서는 데크계단은 비좁아서 다락방을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산악회 무리가 이용할 경우 한 명씩 내려가기를 권장하고 싶으며~
천반산은 시작부터 끝까지 구량천이 휘돌아 흐르면서 멋진 뷰를 선사한다
천반산은 죽도를 향해서 용머리를 내밀고 바짝 엎드려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이곳을 말을 타고 폴짝폴짝 뛰어 다녔다고 하면 믿을 수가 있을까요?
정여립의 말이 비행기처럼 날아다니는 명마가 아니고서는 믿기 어려울 것이다
구량천은 죽도를 지나자마자 금강의 상류와 몸을 섞는다
어디서 보아도 마이산은 신의 작품처럼 보였으며~
오늘 천반산 산행을 하면서 자주 볼 수 있어 참 좋은 것 같다
구량천은 우리나라 강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동강의 모습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덕유산에서 시작된 물이 굽이굽이 흘러 죽도를 휘감아 용담호에 이르는데~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오지같은 곳이어서 자연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산이다
뜀바위를 건너와서 바라보면 산자락 우측에 송판서굴이 있는 곳이다
굽이치는 구량천의 물줄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낙락장송이다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찔하면서도 너무 아름다웠으며~
아홉구비를 휘돌아 흐르는 구량천은 금강으로 합류하게 된다
우리의 산하는 보고 또 보아도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조망처에서 바라보면 이 세상에 부러울것이 없었으며~
우리가 알지 못해 그렇지 이 땅 곳곳에 아름다운 명산들이 참 많다
대덕산 산자락은 마치 한반도 지형처럼 멋지게 보인다
강줄기 우측으로 죽도의 외딴집 모습도 보이고~
소나무 벼랑 아래로는 금강 지류가 유유히 흐르고 있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는 것이 천반산 산행의 즐거움이다
돌아 돌아 제 갈길을 찾아가는 물줄기가 참으로 신비로웠으며~
건너편 좌측 독재봉과 우측 대덕산을 연계 산행도 한번 도전해 볼 것이다
우리도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서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정여립을 역모죄로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 서얼 출신의 유학자 송익필로 알려져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송익필과 연관된 산이 저 건너편의 운장산과 구봉산인데
송익필의 자를 따 지은 이름이 운장산이고, 구봉산은 호를 따 지은 이름이다
악연이었던 두 사람은 죽어서도 같은 진안 땅에서 마주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정여립이 관군에게 쫓기다 자결했다고 하는 송편 모양의 죽도의 모습이다>
정여립은 왕위 세습을 거부하거나 충군의 이념을 부인하는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정여립의 역모를 고발하는 황해도 관찰사의 비밀장계가 조정에 올라갔고~
바로 토벌과 함께 그와 교류한 선비들은 모조리 죽음을 당했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시작되었다
<육지속의 섬>인 가막리의 죽도는 금강과 구량천의 강물이 사방을 에워싸고 흘러간다
죽도(竹島)는 산 위에서 바라보면 예쁘게 빚어놓은 송편의 모양처럼 생겼으며
천반산은 소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고, 용이 머리를 내민 모양이라고도 하는데
하늘에서 떨어지는 복숭아를 받는 소반같다하여 천반낙도(天盤落桃)의 땅이라 불리운다
죽도로 내려서는 길은 제법 난이도가 있는 까칠한 길이다
눈이 내리는 겨울철에는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며~
이 난코스를 내려서면 평이한 등로를 타고 죽도에 도착한다
<천반산 산행은 "내륙의 섬"으로 불리는 죽도 앞에서 끝이난다>
죽도를 가려면 산행을 하지 않고도 장전마을에서 강변을 걸어 당도할 수도 있다
죽도는 바위산 절벽을 맑디 맑은 물이 한 바퀴 휘돌아 흐르고 있기 때문에
섬이 아니었는데 진짜 섬이 되어 버렸으며, 산죽이 많아 죽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정여립이 생을 마감하였다는 바위절벽이 수려한 죽도로 내려섰다
죽도는 구량천이 휘감아 곡류하면서 만들어진 절경지이며~
구량천과 금강이 휘돌아 도는 곳이 잘록하여 섬처럼 보였던 곳이다
죽도는 1970년 구량천의 물길을 돌려 농사 짓겠다고 산 중간부를 폭파하여 섬이 되였다
산 가운데가 잘려지면서 섬 아닌 진짜 섬이 되어 버렸고, 폭포가 만들어 졌는데
그로 인해 죽도유원지라는 이름까지 붙여져 오히려 더 유명한 명소가 되었으며
죽도라는 이름은 백패킹 장소로도 알려져 있어 모든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유원지이다
<원래 죽도는 오메가 Ω 형태의 섬같은 산이었다>
수려한 바위산 절벽을 맑은 물이 휘돌아 흘러 마치 섬과 같았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물길이 바뀌어 죽도를 휘돌아 흐르지 않고 있으며~
인간의 욕심이 죽도의 아름다움을 훼손한채 흉물스런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곳은 바위 건너가 금강이고 바로 앞 구량천이 숨은 차박지이다
어째든 아름다운 병풍바위와 고고한 소나무도 절경이며~
멋진 경치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산행을 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런지요
<구량천에서 죽도 한 가운데를 폭파하여 뚫린 부분이다>
이제는 마치 원래의 모습인양 아무렇지도 않은채로 절경을 뽐내고 있다
벼랑에는 멋진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 동양화를 연상케 하였으며~
절개지로 물이 흐르면서 폭포가 생겼으며, 죽도는 실제로 섬이 된 것이다
<죽도(竹島) 일대를 "가막리들"이라 부르기도 한다>
가막리는 더할 가(加)자와 장막 막(幕)자로 장막이 겹겹으로 막은 듯한 첩첩산중을 뜻한다
선인들의 지혜가 돋보였는데, 여러 산이 겹치고 겹쳐서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여러 겹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리적인 조건을 보고 가막(加幕)이란 지명을 붙여 놓은 것이다
천반산 자연휴양림까지 구량천 강변을 따라 둘레길 걷 듯이 걸어간다
구량천과 함께하는 이 천변길도 오늘 산행의 힐링 구간이며~
논을 만들려고 했던 곳이 지금은 차박지와 물놀이 장소로 유명해졌다
수중보 너머로 보이는 건물이 지도상의 스톤스토리라는 펜션 건물이다
죽도(병풍바위)에서 자연휴양림까지 30분정도 소요 되었는데~
천변을 따라 걸어가는 길 자체가 절경이어서 걷는 길이 지겹지가 않았다
이곳 펜션은 운영을 하는 것인지 어쩐 것인지 멍멍이 소리만 요란하였다
죽도길은 펜션앞에서 차단막을 설치해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장막으로 둘러싸인 구량천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힐링이었다
<천변을 따라 장전마을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였다>
죽도의 끊어진 절벽 때문에 장전마을 사람들은 "혈맥이 끊겼다"고 말한다
사람 욕심 때문에 훼손되는 자연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긴 말인데~
한번 훼손된 자연은 복구 할 수 없으니 그 점이 안타깝기만 하다는 것이다
<장전마을에서 도로를 따라 자연휴양림으로 원점회귀 하였다>
오늘 천반산 산행은 정여립과 송소산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멋진 산행을 할 수 있었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구량천과 금강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을 시원하게 하였으며~
구량천에서 백패킹 또는 차박을 즐기시고 천반산 산행을 하신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아무도 없는 무주공산에서 우리만이 혁명적 사상가 정여립의 발자취와 함께 하였다
수태극을 그리며 아홉구비 돌고돌아 흐른 구량천의 아름다운 비경뿐만 아니라
420년 전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정여립의 대동을 느낄 수 있었던 아름다운 길이었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8 : 20 ~ 13 : 10 (04시간 50분) ◎ 날씨 : 흐림, 맑음
천반산은 혁명적 사상가 정여립을 비롯한 많은 위인의 삶이 녹아든 인문의 산이기도 하였다
짧지 않은 산행 내내 짜릿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고 또한 경치도 아름다웠으며~
다섯 시간이란 산행 시간이 후딱 지나갈 만큼 우리들 기억속에 오랫동안 남으리라 생각된다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풍운아 정여립은 기축옥사의 진실이 밝혀 질 수 있을까>
조선 500년 역사에서 제1의 사건이라고 일컷는 정여립 역모사건은 그 때 죽은 조선 선비가 일천 명이다
그 뒤에 일어난 임진란에서 인재의 부족으로 결국 조선왕조 몰락의 단초가 되었다고도 하는데~
풍운아 정여립이 낙향하여 마음껏 기량을 펼쳤던 이곳 천반산은 그 역사의 내용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명산 산행 분류▩ > ♡일반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북 영동군 월류봉(한천팔경-월류5봉) 웰빙산행 (0) | 2022.07.11 |
---|---|
충북 옥천군 어깨산(하늘전망대-망덕산) 웰빙산행 (0) | 2022.06.10 |
경남 산청군 왕산-필봉산 웰빙산행 (0) | 2022.04.10 |
경상남도 창원시 팔용산(돌탑공원-상사바위) 웰빙산행 (1) | 2022.02.28 |
전북 부안군 쇠뿔바위봉(어수대-청림마을) 웰빙산행 (0) | 2021.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