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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산행 분류▩/♡일반 산행기

경남 하동군 불일폭포(쌍계사-불일암) 테마산행

경상남도 하동군 불일폭포(쌍계사 - 불일평전 - 불일암) 테마산행

◎ 산행일시 : 2022년         07월         21일         (목요일)

◎ 산행위치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 산행구간 : 쌍계사 - 환학대 - 원숭이바위 - 마족대 - 불일평전 - 불일암 - 불일폭포 - 국사암 - 쌍계사

 

◎ 산행거리 : 쌍계사주차장 ~ 0.7Km ~ 국사암 ~ 1.2Km ~ 환학대(喚鶴臺) ~ 0.9Km

                      불일평전 ~ 0.3Km ~ 불일암 ~ 0.2Km ~ 불일폭포 ~ 2.6Km ~ 쌍계사주차장

                      도보거리   =   약 6.1Km          실제도보거리   =   약 6.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8 : 20 ~ 12 : 50  (04시간 00분)      ◎ 날씨 : 흐림후 비

 

                ◐ 최치원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불일암과 불일폭포을 찾아가는 산행이란? 

불일폭포(佛日瀑布)는 암자에서 수도하였던 보조국사 지눌의 덕망과 불심에 감동하여 <불일보조>라는 시호를 내려졌다

그의 시호를 따서 불일폭포라 하였고, 지리산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불일폭포는 계절에 따라 수량의 차이는 있지만

연중 고갈된 적이 없고 또한 지리산 10경(景)의 하나로 인근에 쌍계사와 불일평전이 위치해 있어 등산코스로도 그만이다

 

 

불일폭포는 지리산 10경의 하나로 높이 60m에 달하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폭포이다

이 폭포 밑에 학연(鶴淵)이라는 깊은 물웅덩이에서 청학(靑鶴)이 노닐었는데~

신라 말기의 문장가로 유명한 고운 최치원 선생이 청학을 타고 다녔다는 설화가 있다

 

 

 

 

한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마치 하늘에서 쏟아지듯! 하얀 물기둥이 바위에 부딪치는 모습이 장관이다

불일폭포를 바라보는 곳에 완폭대(翫爆臺)라는 석각을 최치원 선생이 썼다는 옛기록이 있는데~

최근 이 석각을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발견하여  최치원의 설화가 역사적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 경상남도 하동군 불일폭포(佛日瀑布) 산행 안내도 *****

 

 

 

 

 

 

 

 

하동 지리산에 위치한 불일폭포는 지라산에서 자랑하는 10경 중 하나이다

쌍계사를 답사한 후 불일폭포를 등산하면 좋은 여행이 될 수 있으며~

오늘은 지리산 10경 중 하나라는 하동 쌍계사 불일폭포를 소개하고자 한다

 

 

 

 

녹차의 고향 화개동의 일원은 예로부터 선경의 별천지(別天地)라 하였다

그리하여 무릉도원이라 하여 화개동천(花開洞天)이라 불렀으며~

선덕여왕 때 차가 있었고 흥덕왕 때는 차를 마시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신라의 사신 김대렴(金大廉)이 흥덕왕 3년(서기 828)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할 때, 처음 차(茶) 종자를 가져옴에 왕이 그것을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차(茶)는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지만, 이 때에 이르러서 성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김대렴이 차를 심은 이후 진감선사가 쌍계사와 화개동의 부근에 차밭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육조 혜능선사의 남종 돈오선을 신라에 최초로 전법한 도량이자 차의 발상지이며~

또한 해동범패의 연원이라 하여 쌍계사는 선(禪), 다(茶), 음(音)의 성지로 일컬어지고 있다

 

 

 

 

<고운 최치훈 선생은 천령군(지금의 함양) 태수(군수)로 부임하였다>

최치원은 지리산을 유람하다가 가야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지리산 하동 일원에는 최치원 선생과 관련된 유적과 유물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오늘은 최치원이 즐겨 찾았던 불일폭포를 오르면서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자 한다

 

 

 

 

<고려 말기의 문인 이인로(李仁老)는 무신정변이 일어난 후>

세상을 떠나 은거하기 위해서 어떤 노인에게 들은 지리산 청학동을 찾아 쌍계사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청학동을 찾지 못하고 바위에 시 한 수만 남기고 돌아갔다고 하였는데~

이인로는 쌍계사 입구에 있는 "쌍계(雙磎), 석문(石門)바위"까지 왔다가 되돌아갔던 것이다

 

 

 

 

<쌍계사로 들어가는 옛 길은 잠깐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했다>

길 양쪽의 큰 바위에는 쌍계(雙磎), 석문(石門)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신라말 대학자인 고운 최치원이 짚고 다닌 철지팡이로 써서 그런지~

글씨채 하나하나가 좀 투박하지만 글씨 전체에서는 서기(瑞氣)가 느껴졌다

 

지리산 청학동은 최치원이 청학을 타고 다녔다는 설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최치원 선생은 신라 출신 유학자로 당나라의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돌아와

정치에 뜻을 펼치고자 벼슬에 나아갔으나 신분의 벽에 막혀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화개장터에서 화개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쌍계사에 이른다>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지리산 자락의 무릉도원인 청학동(靑鶴洞을 찾아서 떠난 산행길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최치원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불일평전을 청학동이라 하였으며~

여기서 발원한 청학동이란 이름이 지리산 산간으로 확산 되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해본다

 

 

 

 

쌍계사 입구의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불일폭포와 쌍계사 입장료는 성인 2500원, 단체 2000원이며~

무료입장은 만 65세 이상의 노인, 장애인, 국가유공자 화개면민이다

 

 

 

 

참고할 주요사항은 쌍계사에는 무료 주차장이 두 군데가 있어요

매표소의 아랫쪽에도 있고, 매표소의 윗쪽에도 있는데~

쌍계사와 가까운 매표소 윗쪽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우리같이 65세 이상이면 증명서 꼭 챙겨서 무료입장하는거 다 알지용

아직까징 노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야무진 여행자가 되어야지요!

어차피 윗쪽의 주차장도 무료이고, 쌍계사와 더 가까워서 좋으니까요

 

 

 

 

벌써 7월의 지리산은 짙은 녹음으로 한여름 풍경을 아름답게 자아낸다

지리산에 한동안 빠져서 남부능선을 타고 오고 간적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그리움으로 찾아와 걸으니 신선이 된 듯하여 감개가 무량하다

 

 

 

 

하동 쌍계사 내부에 들어가면 이렇게 쭉쭉뻗은 나무들이 맞아 주었다

무더운 여름인데도 활엽수가 울창하여 정말 정말 시원하였으며~

오늘도 테마산행지라서 놀멍 쉬멍 하면서 좋은 추억 만들어 볼 것이다

 

 

 

 

삼신산 쌍계사(三神山 雙磎寺)는 삼산산의 하나로 방장산(方丈山)이라 불렀다

지리산(智異山)의 남록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며~

삼신산(봉래산, 방장산, 영주산) 쌍계사라는 현판은 해강 김규진의 예서체이다

 

 

 

 

<하동군 쌍계사 일주문은 곁에 배롱나무의 모습이 너무 정겹다>

절 입구의 일주문은 속세를 떠나서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다

항상 한마음을 가지고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의미의 상징물이기도 하며~

경남 유형문화재 제86호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현재 쌍계사 천왕문 건물은 고산 스님이 1978년에 다시 수리한 것이다

사천왕상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조각 솜씨가 아주 뛰어났으며

쌍계사 천왕문은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부처님께 의지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하는 스님과 선량한 사람을 돕는 4명의 수호신이다

 

 

 

 

<쌍계사 9층석탑은 고산스님이 인도성지 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진신사리3과와 산내의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2과와 전단나무 부처님1위를 모셨다, 이탑은 보물 제48호인

오대산월정사 9층탑과 유사한 형태의 탑으로 1987년 착공하여 1990년 3월 건립되었다

 

 

 

 

쌍계사(雙磎寺)는 723년(성덕왕 23)에 의상(義湘)의 제자 삼법스님(三法)이 창건하였다

삼법은 당나라에서 귀국하기 전에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모셔다가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 눈 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곳을 찾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진감선사대공탑비는 국보 제47호로 고운 최치원의 사산비의 하나로 유명하다

신라 정강왕이  진감선사의 높은 도덕과 법력을 앙모하여 대사가 도를

닦은 옥천사를 쌍계사로 고친 뒤 정강왕 2년(887년)에 건립한 것으로

귀두는 짧고 추상적인 동물의 머리로 표현되어 신라 후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쌍계사 마애불 불상은 경남 문화재자료 제48호이다

 

 

 

 

 

 

 

 

쌍계사 대웅전을 둘러본 후 불일폭포 안내판 방향 좌측으로 오른다

우리의 목표지점 쌍계사-불일폭포까지는 2.4km 오름길이며~

한여름의 무더운 날씨지만 울창한 수림에 정겹고 시원한 발걸음이다

 

 

 

 

<불일폭포를 가기 위해서는 옥천교를 건너야 한다>

이 쌍계사의 원래 이름이 옥천사(玉泉寺)였다는 증거일 것이다

금당 계단을 올라서면 돈오문앞 우측으로 등로가 있는데~

국사암-불일폭포-삼신봉-세석평전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인다

 

 

 

 

<불일폭포는 쌍계사 금당 입구 돈오문(頓五門)에서 우측이다>

돈오문(頓悟問)이란 뜻은 자기 자신이 부처라는 깨달음을 찾는 것이라는 뜻이라 한다

돈오돈수(頓悟頓修)는 깨달으면 따로 수행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일 것이고~

돈오점수(頓悟점修)란 일단 먼저 깨닫고 그 다음에 점차로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쌍계사에 400쯤 올라오면 국사암 갈림길을 만난다>

삼거리갈림길에서 좌측으로 300m쯤 올라가면 국사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삼법화상이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건립하여 수도하였던 곳으로~

삼법화상이 입적한 후 110년 만에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중건했다고 한다

 

 

 

 

청파 이륙은<지리산 유산기>에서 쌍계사에서 동쪽으로 재 하나를 넘으면 불일암이 있다고 하였다

이름난 사찰은 다 기록할 수 없지만, 지금은 쌍계사와 칠불암을 비롯해 몇몇만 남았을 뿐이고

화개장터에서 화개천의 물길을 따라서 쌍계사에 이르는 10리 벚꽃길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한다

 

 

 

 

한 여름이라도 시원한 것은 골짜기 계곡를 따라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더운 여름에도 걱정말고 찾아와도 좋은 여행지이며~

쌍계사를 답사한 후 불일폭포를 등산하면 더 좋은 산행이 될 것이다

 

 

 

 

불일폭포에 이르기까지 계곡을 연결하는 네 개의 다리를 건너기도 한다

골짜기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서 전설이 깃든 문화재도 많았으며~

울통불통한 나무를 그대로 살려서 벤취로 만들어 놓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돌길도 이렇게 가파르지 않아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또한 옛 선인들이 돌길도 이쁘게도 꾸며 놓았구요~

계곡의 물소리와 새소리에 눈이 즐거워서 지루할 틈이 없다

 

 

 

 

출발한지 50분정도 지나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전설이 전해진 바위에 도착한다

환학대(喚鶴臺)는 최치원이 이상향의 세계처럼 여긴 청학동으로 건너갈 때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학을 불러 타고 놀았다는 전설이 깃든 큰 바위 환학대를 만난다

 

 

 

 

<오른쪽에 최치원선생이 썼다는 환학대란 각자가 새겨져 있다>

이곳 환학대(喚鶴臺)는 쌍계사에서 불일폭포를 오르는 중간쯤에 좌측으로 있다

최치원 선생은 경주 최씨의 시조이며, 신라말기의 대학자요 문장가이며~

유불도 삼교에 정통한 선생은 지리산 은거시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바위이다

 

 

 

 

<힘들었던 몸을 환학대에서 잠시 쉬면서 포즈도 취해본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학(鶴)을 불러 타고 다녔던 신비스러운 바위인 것이다

이른바 지금의 세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자가용 헬기가 아니겠는가!

어떻하믄 최치운 선생처럼 학을 불러타고 자유자대로 노닐 수가 있을까요?

 

 

 

 

옛날 선비들은 집에서 학을 기르는 고상한 취미를 갖고 있기도 했단다

청학(靑鶴)은 붉은 머리와 검은 날개, 자줏빛 다리를 갖추었고~

햇빛 아래에서 보면 깃이 모두 푸르다고 전해지는 상상속의 새(鳥)이다

 

 

 

 

환학대를 지나면 우측으로 사람 얼굴 모양의 바위를 볼 수가 있다

표시판이 없어 무심고 지나치면 그냥 지나칠 수가 있으며~

혹여 저 이가 고운 최치운 선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원숭이바위(㹳巖)라는 표지판이 있지만 어느쪽에서 보아야 원숭이처럼 보이는지

조선시대에는 이 골짜기에 오암(猿巖, 원숭이바위)이 있었으나 확인되 않고

지금은 이 바위가 원숭이 두개골을 닮았다고 하여서 원숭이바위(㹳巖)라고 부른다

 

 

 

 

<이 바위에는 "이언경, 홍연(李彦憬 洪淵)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실질을 무시한 채 헛된 후세에 전하려는 속인들에게 아래와 같이 준엄한 일침을 내렸다

남명 조식선생의 이 한 마디는 지리산을 찾는 후인에게 유람의 지침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구차하게 원숭이가 사는 숲속의 바위에 이름을 새겨 영원히 썩지 않기를 바랬다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이요, 도가신선의 발원지인 것이다>

고운 최치원은 당나라와 신라에서 관료를 지내며 학자와 문장가로 명성이 높았던 인물이다

당시 신라는 어수선한 격변기로서 최치원 자신의 포부를 펼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이에 그는 함양군수를 비롯한 지방관료를 지내다 40세쯤에 벼슬을 버리고 떠돌면서 지냈다

 

 

 

 

원숭이바위에서 조금 오르면 말이 지나간 발자욱이 있는 마족대(馬足臺)를 만난다

이곳 마족대는 마적대(馬跡臺) 또는 마적암(馬跡巖)이라고도 불리고 있으며~

청학동에 살았던 고운 최치원(崔致遠)이 말을 타고 가다 머물렀던 자취라고도 한다

 

 

 

 

1744년에 청학동을 찾은 이계 황도익(1678~1753)은 냉연대(冷然臺)라고도 불렀다

이후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돕기 위해 출병했던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말을 타고

지리산을 오를 때 생긴 말발굽 자국이 바위에 새겨졌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기도 하다

 

 

 

시원한 계곡의 물줄기가 한 여름의 무더위를 확 날려준다

 

 

 

 

 

 

 

계곡을 건너서 조금 오르면 조릿대숲과 활엽수가 울창한 숲길이다

갑자기 시야가 터지면서 불일평전이 모습을 드러 내었는데~

작고하신 변규하선생이 봉명산방에서 톨탑을 쌓으며 살았다고 한다

 

 

 

 

열걸음에 한번 쉬고 열걸음에 아홉번 돌아보면서 비로소 불일평전에 도착하였다

이곳이 옛 사람들이 이상향으로 꿈꾸었던 청학동이라 불렀던 불일평전이며~

숲속을 오르면 널따란 평전에 불일휴게소로 불리는 아담한 집과 정원이 나타난다

 

 

 

 

아담한 정원처럼 꾸며져 있는 드넓은 평전은 불일휴게소로 불리고 있다

소망탑과 반도지는 예전 거주한 변규하선생이 꾸며 놓은 것이며~

반도지(半島池)는 연못의 모습이 한반도를 닮았다 하여 붙여논 이름이다

 

 

 

 

<불일평전에 있는 지리산 불일탐방지원센터이다>

청학동(靑鶴洞)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가장 살기좋은 곳이다

이곳의 불일평전 일대를 우리나라에서는 청학동이라 불렀으며~

사람이 겨우 통행할 만하여 몇 리를 가면 넓은 곳이 나타난다 하였다

 

 

 

 

이 숲속의 아담한 평전은 내가 지금 살고싶은 이상향의 청학동이다

하지만 어디 나같은 사람이 신선(神仙)의 자격이 있겠는가!

불일산방은  신선 변규화 선생이 돌아가신 후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

 

 

 

 

불일산방 앞에는 작으만 반도지(半島池)라는 연못이 있다

이곳에 살았던 변규하 선생이 통일을 바라는 마음과

만주땅이 우리 땅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불일산방 옆쪽으로는 "소망탑(素望搭)"들이 쌓여져 있었다

<비와 불로주>

푸른 하늘은 구름을 벗삼아

숲속 나무는 바람을 벗삼아

비는 당신의 마음을 벗삼아

 

쌍계사 골짜기 산아래

토담집 앞마당 통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감자전 한접시에 불로주 한잔을 가득 채운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감자전 한 접시에 불로주 한잔이 생각난 곳이다

 

 

 

 

주인없는 봉명산방(鳳鳴山房)은 이제 뱀들의 세상이 되었다

이제 우리의 기억속에 존재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으며~

지리산 세석평전을 지날때면 문득 사무치게 그리워질 것이다

 

 

 

 

신선(神仙)이 되었다는 최치원 선생이 청학을 불러 놀았다는 설화가 있어 청학동이라 하였다

전쟁과 가난, 질병을 피할 이상향을 갈구하던 조선시대 선비들이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최치원 선생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이곳의 불일폭포와 불일평전을 청학동이라 믿었던 것이다

 

 

 

 

<불일평전을 둘러보고 불일암과 불일폭포로 향한다>

청학(靑鶴)은 예로부터 태평한 세월을 상징하는 길조(吉鳥)로 여겼다

사방이 모두 옥토라서 곡식을 뿌려 농사짓기에 아주 좋았으며~

청학이 이곳에서 서식하는 까닭에 청학동이라 불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불일평전에서 조금 올라오면 삼신봉과 불일폭포 갈림길을 만난다

좌측은 삼불재를 거쳐 삼신봉 7km 세석대피소 14km이며~

이곳에서 우측으로 불일암과 불일폭포는 0.3km정도를 더 가야한다

 

 

 

 

예전에는 불일폭포 가는 길은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잔도(棧道)로 유명한 곳이다

유람 온 관광객들 중 태반이 길이 무서워 구경을 못하고 되돌아가야 했으며~

깊은 산중에 마치 절해고도처럼 자리잡고 있는 불일폭포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불일암에 도착하면 천지를 울리는 굉음소리가 불일폭포 가까이 왔음을 알려준다

계속해서 낙석주의 안내판이 있는 우측을 바라보면 절벽이 아찔하였으며~

청학동의 정취를 느끼려면  지리산 유람록의 코스를 따라서 걸어 보기를 추천한다

 

 

 

 

<좌측에 불일암이 있지만 불일폭포를 보고 돌아올 예정이다>

마을 사람들은 불일암을 중건할 때에 건축 자재를 지게로 날랐다고 말한다

이 암자를 지나 잔도를 따라 내려가면 불일폭포가 모습을 드러내며~

고려와 조선 선비들은  힘들게 이곳을 찾아 많은 한시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수직 절벽을 200m쯤 철책과 데크계단에 의지하며 한참을 내려간다

건너편의 하늘 꼭대기에서 갑자기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데~

여기가 바로 선계(仙界)이자 한국인의 이상향인 청학동인가 싶어졌다

 

 

 

 

불일폭포는 지리산 내의 청학봉과 백학봉 사이의 쌍계사 계곡에 위치한다

한 여름에도 냉기를 느낄 만큼 시원하여 많은 피서객이 찾고 있으며~

불일폭포는 높이 60m로 우리나라에서 몇 번째 안가는 거폭으로 유명하다

 

 

 

 

꼭꼭 숨어 있었던 불일폭포가 계곡 귀퉁이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불일폭포의 물줄기가 얼마나 우람하고 장대한지~

보는 순간! 올라오면서 힘들었던 순간이 환희로 가득 채워진다

 

 

 

 

전망대에서 한동안 연거푸 감탄을 하면서 기쁨에 어찌할줄을 몰랐다

바로 이런 모습에 감동의 도가니!!!!에 한동안 빠져 버렸으며~

이래서 이상향의 청학동이라 하여 지리산 10경(景)으로 불렸을 것이다

 

 

 

 

불일폭포는 마치 만길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물줄기가 중간의 학연(鶴淵)에서 한번 거쳐서 쏟아져 내렸는데~

높이 60m 상하 2단으로 지리산 유일의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폭포이다

 

 

 

 

전망대에서 날리는 폭포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뼛속까지 시원함이 느껴진다

비경은 인간 세상이 아니라 선계(仙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비가 온 뒤에 찾아오니 웅장함과 자연의 신비로움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실제로 올라와 바라보면 더 멋지고 아름다운 폭포를 만나 볼 수가 있다

우레 같은 폭포소리가 천지가 개벽하는 것처럼 쏟아져 내렸으며~

높이 60m에 달하는 낙하가 몇 천 년을 이어온 끝에 우리를 맞아 주었다

 

 

 

 

옛 선인들이 말하는 명승(名勝)을 와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말라

백천단애의 비폭과 오색무지개가 장관을 연출하는 곳이며~

한 여름에도 냉기를 느끼게 하는 장쾌한 물줄기가 감탄을 자아낸다

 

 

 

 

불일폭포는 아래 용소에서 놀았던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를 살짝 쳤다고 한다

용(龍)이 승천한 이후 청학봉(靑鶴峰)과 백학봉(白鶴峰)이 만들어졌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 내리면서  장엄하고 아름다운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비가 온 뒤라서 폭포의 경관은 더욱 우렁차게 쏟아져 내린다>

옛전에는 폭포 아래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고 놀았던 추억이 있는 곳이다

물가에 수박도 담가놓고, 물놀이 하면서 즐거워했던 추억이 아련하지만~

지금은 폭포 아래에 가지 못하고, 이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었다

 

 

 

 

<불일폭포 아래에 있는 학연은 최근에 복원행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최치원 선생이 불일암 앞의 완폭대에서 불일폭포의 학연을 바라보며 시를 읊었다고 한다

또한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학연(鶴淵)에서는 청학이 용추(龍湫)에서는 용이 나와

춤을 추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며,  최근 1200년 전에 최치원 선생이 썼다는

완폭대 석각이 발견됨으로써 최치원이 불일폭포에서 노닐었음이 사실로 증명 된 것이었다

 

 

 

 

60m 거대한 물기둥은 오늘 따라 헌걸찬 모습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벅찬 감동이라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데~

보고 또 보아도 정말로 장엄하여 영원히 잊지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이 물길은 내원골을 이루면서 쌍계사(雙溪寺) 앞으로 흘러간다

쌍계사 앞쪽에서 두 물길이 한 곳으로 합쳐 쌍계가 되는데~

바로 쌍계라는 두 물줄기 때문에 절 이름이 쌍계사가 된 것이다

 

 

 

 

불일암(佛日庵)의 암자로 들어가는 입구의 돌담장이 참으로 정겨웠다

돌담을 받치고 얕은 담을 쌓아 기와를 얹져 놓은 불일암 담장~

절(庵) 마당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평상이 세월을 이야기 해주고 있었다

 

 

 

 

이곳의 하동 쌍계사 소속 암자의 불일암과 순천 송광사 불일암과는 동명이찰이다

이 불일암(佛日庵)은 신라의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도를 닦은 곳이며~

우리도 두손을 모아 참배하고, 어머니 품속같은 드넓은 지리산의 산세에 취해본다

 

고려시대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창하고 수도도량으로 삼은 뒤에 불일암이라 하였다

그 뒤 폐허된 것을 1911년 쌍계사 승려 양용은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당우로는 대웅전(大雄殿)이 있고, 중요한 문화재는 없으나 주위의 경치가 아주 절경이다

 

 

 

 

저 노송위로 청학(靑鶴)이 날아들었다는 전설이 있는 소나무이다

멀리 아스란히 보이는 백운산이 조산 역활을 하고 있으며~

불일폭포의 경천동지 할 소리와 어울려서 황홀함을 느끼는 곳이다

 

 

 

 

불일암 뒷쪽으로 올라가면 주변에 어렵지 않게 사람들이 살던 흔적을 찾울 수 있다

불일암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집 터나 산을 개간한 흔적을 볼 수 있었는데~

이곳을 청학동이라 생각하고 사람들이 청학과 더불어 신선처럼 살고자 했을 것이다

 

 

 

 

불일암의 뒤쪽에 있는 아담한 대웅전(大雄殿) 기둥에 새겨진 주련(柱聯) 글씨이다

불신충만어법계(彿身充滿於法界) : 부처님 몸 법계에 충만하사

보현일체중생전(普顯一切衆生前) : 모든 중생 앞에 나타나시니

수연부감미부동(隨緣赴感靡不同) : 인연 따라 감응함이 두루하시어

이항처차보리좌(而恒處此菩提座) : 이 보리좌에 항상 계시네

불일암은 보조국사 지눌이 입적하자 고려의 희종이 <불일보조>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 시호를 따서 절을 불일암이라 하고, 폭포를 불일폭포라 이름을 붙였으며~

이 스님이 고려시대 불교의 교종과 선종을 통합한 조계종의 창시자인 지눌스님이시다

 

 

 

 

불일암은 참으로 따사롭고 아늑하였다. 암자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정말 절경이었다

펼쳐진 비경은 인간 세상이 아니라 선계(仙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이백이 쓴 시에 나오는 "별유천지비인간"이란 표현이 여기를 두고 한 말인 것 같았다

 

 

 

 

<청학(靑鶴)은 신선이 타고 다닌다는 전설의 새(鳥)이다>

그래서 청학이 사는 곳을 청학동(靑鶴洞)이라 하고, 이 곳을 신선의 고장이라 하였다

신선이 청학을 타고 다니는 지상의 낙원으로 세속의 어떤 혼란과도 무관하며~

무병장수하고 죽어서는 신선(神仙)이 된다는 전설(傳說)의 마을을 청학동이라 부른다

 

 

 

불일평전을 뒤로하고 돌아가면 사무치게 그리움으로 남을 듯하다

 

 

 

 

 

 

 

<옛말에 "백 명의 친구가 있는 것보다 한 명의 적이 무섭다"고 했다>

백 명의 친구가 나를 위해주어도 한 명의 적이 나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산을 오르면서 생각하라는 것은 세상을 한번쯤 뒤돌아보라는 것이며~

내가 강하다고 남을 무시한다면 언젠가 내 앞에 강한 사람이 있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환희대로 되돌아오니 경상도 방언을 쓴 사람들이 북쩍북쩍 하였다

옷이 바삭바삭하고 찌는 듯한 한 여름의 무더운 날씨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불일폭포를 찾아온 모습에서 유대와 연대를 느낀다

 

 

 

 

<조선 선비들이 청학동(靑鶴洞)이란 곳은 어디를 말하는가!>

정감록에는 "진주 서쪽 100리 지리산 남쪽"이라 했고, 김종직은 피아골이라 하였다

김일손은 불일폭포를, 유운용은 세석고원을 청학동으로 보고 전해 내려오지만~

메스콤의 영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청학동을 찾지만, 십중팔구는 실망하고 돌아간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걸었던 길은 청학이 살았던 곳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시대가 어려우면 이상향을 꿈꾸면서 찾아 다녔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졌던 청학동은 지리산 청학동이었으며~

우리 민족의 살기좋은 이상향은 청학동,우복동,이어도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이제 쌍계사를 300m 앞두고 우측 고개넘어에 국사암을 다녀오기로 한다

국사암(國師庵)으로 가는 길은 솔향기 그윽하고 걷기 좋은 길이며~

암자 문 입구에 천년이 넘은 네 가지로 뻗은 느티나무 사천왕수가 유명하다

 

 

 

 

쌍계사 부속 암자인 국사암 일주문 앞에 사천왕수는 천년이 넘은 거목이다

진감선사가 짚고 다니는 지팡을 꽃아 두었더니 싹이 났다는 나무는

가지가 사방 네 갈래로 뻗은 거목으로 일명 사천왕수(四天王樹)로 불리운다

 

 

 

 

국사암은 삼법(三法)화상이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창건하여 수도하였던 곳이다

삼법은 의상의 제자로, 당나라에서 육조 혜능(慧能)의 머리를 가져온 고승이며~

삽법화상이 입적하신 후 진감국사가 중건하였다고 하여 절 이름을 국사암이라 지었다

 

 

 

 

문수전을 오르면서 뒤돌아 보았더니 국사암 경내가 아름답고 편안함이 느껴졌다

암자를 찾는 사람들이 적어서 고요함을 벗 삼아 나를 돌아볼 수 있었으며~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게 작은 암자이지만 국사암을 찾은 보람이기도 하였다

 

 

 

 

 

아치형의 다리위에 해우소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는 산 좋고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에는 사찰이 있어

종교적인 의미가 없어도 사찰 여행은 좋은 테마가 아닐까 생각한다

 

 

 

불일평전-불일폭포-불일암-국사암을 둘러보고 쌍계사로 되돌아왔다

 

 

 

 

 

 

 

쌍계사의 9층석탑 앞에서 목을 축이고 오늘 산행을 마무리한다

오늘 우리는 옛 신선(神仙)들이 오고갔던 길을 걸었으며~

많은 역사와 문화유적을 둘러보면서 참으로 행복했던 하루였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굳이 무엇을 찾으려고 뭘 어드려고 하지않고 무작정 떠난다

떠나는 걸음걸음마다 미움, 질투, 원망, 비난 등 삶에서 오는 짐들을 내려놓고~

돌아오는 길에는 사랑, 용서, 여유, 풍요로움과 따뜻함을 가슴 가득히 담아 올 것이다

 

 

 

 

세속에서 욕심없이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청학동이라 여기면서 살았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이상향이 바로 청학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한 여름날에 불일폭포의 아름다운 극치를 볼 수 있어서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8 : 20 ~ 12 : 50  (04시간 00분)      ◎ 날씨 : 흐림후 비

 

 

 

 

지식이 있는 사람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 산천을 떠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신라말 문장가인 최치운선생이라 할 수 있으며~

최치원을 위로해 주었던 산이 바로 지리산이고 그래서 그는 지리산 신선이 되었다

 

 

 

 

지리산(智異山)은 우리의 역사속에서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한국적인 산이다

어느 도인의 말처럼 알아도 알았다 할 수 없을 것이고, 몰라도 아무렇지 않은

그 넓은 깊은 산 중에 숨은 보석이 쌍계사에서 불일폭포 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 One Way Wind(한쪽으로 부는 바람) - Dana Winner ♬(부지불각중(어느새) - 김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