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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산행 분류▩/♡국내여행(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4코스(금계마을-동강마을) 웰빙트레킹

경상남도 함양군 지리산둘레길 4코스(금계마을 - 동강마을) 트레킹

◎ 산행일시 :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 산행위치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과 함양군 휴천면 동강마을을 잇는 구간이다

 

◎ 산행구간 : 지리산 함양센터 - 의중마을 - 서암정사 - 벽송사(壁松寺) - 모전마을 - 용유담(龍遊潭)

                      세동마을 - 송대마을 - 송문교(와룡대) - 운서마을 - 구시락재 - 동강쉼터 - 동강마을

 

◎ 산행거리 : 지리산 함양센터 ~ 0.9Km ~ 의중마을 ~ 2.7Km ~ 벽송사 ~ 2.9Km ~ 용유담 ~ 2.3Km

                      세동마을 ~ 3.4Km ~ 운서마을 ~ 0.7Km ~ 구시락재 ~ 0.8Km ~ 동강마을(엄청교)

                      도보거리   =   약 13.7Km          실제도보거리   =   약 14.5Km

 

◎ 산행인원 : 울~산다화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8 : 30 ~ 14 : 15  (05시간  15분)      ◎ 날씨 : 아주 맑음

 

                  ◐ 가을의 정취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지리산 둘레길 4코스 트레킹이란? 

지리산 둘레길은 사단법인 "숲길"이 산림청의 지원을 받아 지리산 둘레 800리(약300km)를 잇는 장거리 도보길이다

지리산을 감싸고 있는 3개도(전남, 전북, 경남), 5개 시, 군(구례, 남원, 하동, 산청, 함양) 100여 개 마을의 옛길

고갯길, 강변길, 논둑길, 마을길 등이 하나의 길(TRAIL)로 연결하고 있어 마을과 산 그리고 계곡을 고루 느낄 수 있다

 

 

지리산둘레길 4코스는 두 개의 코스로 나뉘는데, 난이도를 조절하여 편하게 갈 수도 있다

편한 구간은 단풍과 어우러진 서암정사와 벽송사를 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으며~

하지만 체력이 된다면, 서암정사와 벽송사를 꼭 한번 둘러보고 가는 구간을 추천하고 싶다

 

 

 

 

유두류록(遊頭流錄)은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함양군수로 재직할 당시의 지리산 유람록이다

백무동 일대의 지리산을 유람(1472년, 성종3)하고 남긴 기행문으로 함양관아에서

엄천, 천왕봉, 백무동, 마천 등을 돌아 다시 함양관아로 귀가하기까지의 산행기를 담고 있다

 

 

 

***** 지리산둘레길 4코스(금계마을-동강마을) 구글형안내도 *****

 

 

 

 

 

 

 

 

4코스는 내 몸을 건강하게 해주고,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한 힐링의 개념을 알게 해주었다

서암정사와 벽송사가 있고, 지리산 자락 깊숙히 들어온 6개의 산중 마을이 있으며~

또한 법화산 자락을 조망하면서 엄천강을 따라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이다

 

 

 

 

금계마을 (구)의천교앞에는 지리산둘레길 함양안내센터가 4구간의 시작점이다

둘레길 함양센터에는 주차장과 사워실, 화장실 등이 갖추어져 있었으며~

지리산둘레길 4코스는 송대마을 능선을 넘어가는 만큼 난이도가 있는 구간이다

 

 

 

 

<의탄교를 건너기전 지리산둘레길 제4코스 금계마을 출발점이다>

마천면에서 추성동으로 가다보면 임천을 가로지르는 아치형의 다리가 의탄교이다

그 의탄교를 건너면 의평동과 의중동 등이 있는 의탄마을이 나오게 되는데

그곳에서 올려다 보면 경관이 빼어난 지리산 천왕봉이 아주 가깝게 보이며

500년 전 지리산 등정에 나섰던 점필재 김종직은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이라 하였다

 

 

 

 

<의탄교를 건너면서 지리산둘레길 4코스가 시작된다>

함양 탐방안내센터앞에 있는 의탄교는 나이가 36년이 넘은 오래된 교량이다

2015년 건설된 지리산 제1교에게 "칠선계곡 관문" 자리를 내어주고

이제는 지리산둘레길 순례자들이나 건너다니는 뒷방의 늙은이로 눌러앉았다

 

 

 

 

우리가 건너고 있는 이 다리가 의탄교이고, 정면에 보이는 암벽이 창원리 채석장이다

참고로 이곳 마천면은 우리나라 3대 화강석인 "마천석(馬川石)"의 주산지이며~

검정 계열의 화강석은 고급스러운 느낌이 강해 건축 마감재로 가장 선호되는 석재이다

 

<가물어서 수량이 그리 많지 않은 임천을 보면서 다리를 건넌다>

마천석(馬川石)을 캐내고 단면에다 돋을새김 방식으로 조성하고 있는 "천왕대불"이다

지리산의 만수천, 덕천천, 의탄천을 흡수하여 커진 임천은 용유담을 지나면서~

엄천으로 불리며 흐르다가 산청군 생초면에 이르러서 경호강이 되어 남강으로 흡수된다

 

 

 

 

지리산의 무릉도원 하면 하동 불일폭포 부근 청학동과 세석평전이 있다

하지만 점필재는 이곳의 지리를 보고는 무릉도원이라 하였으며~

우리도 오늘 이 무릉도원을 구경하며 사방사방 추억을 만들어 볼 것이다

 

 

 

 

이 마을은 산중에서도 가장 넓은 평지에 터를 잡았다 해서 의평(義坪)이란 이름을 얻었다

하동포구에서 벽소령을 넘어온 보부상들이 당산나무에서 소금 등을 팔기도 했으며~

그래서 620년 된 이 거대한 느티나무 당산목은 마을에서는 보배로운 나무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인지 임천변과 의탄마을에는 아름드리 정자나무들이 많다고 한다

칠선계곡에서 흐르는 청정계류와 어우러져 명소들이 많기 때문이며~

이곳에서 들머리를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의탄교 맞은편에 산비탈을 오르는 가파른 침목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지리산 자락의 의중마을은 해발이 300m나 되는 산촌마을이다

침목계단이 꽤 된비알이고, 거기다가 길기까지 하였으며~

벽송사 구간이 빡세다 하더니 처음부터 귀를 죽이려는 심산이다

 

 

 

소나무 두 그루가 있는 고스락에서 의중마을은 우측 방향이다

 

 

 

 

 

 

 

 

의중마을은 고려시대 의탄소(義灘所)라는 지방특산물 탄(숯, 灘)을 중앙에 공납하였다

유래를 보면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의중이라는 이름의 내역을 갖고 있으며~

마을 어귀에는 의중, 의평, 추성마을을 지키고 있는 600년 묵은 당산목 느티나무가 있다

 

 

 

 

그런데 오른편으로 의평마을에서 바로 올라오는 길이 있는 것이 아닌가!

좋은 길 놔두고 힘들게 고생을 일부러 사서 가는 꼴이 되었으며~

도로를 건너 돌계단을 오르면  빨간 지리산둘레길 이정표가 안내를 한다

 

 

 

 

죽포대(竹圃臺)는  한말 의병활동을 했던 죽포 이규헌이 지팡이를 놓고 쉬던 곳이다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의 동맹록(의병에 참여한 지사들의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는 이스타항공 회장이자 현(21대) 국회의원인 이상직씨의 증조부이기도 하다

 

 

 

 

대숲을 벗어나자 고스락에 당산목 두 그루가 600년이 넘는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벽송사를 오르는 수행자는 물론이고, 범부들에게도 벗이 되었을 느티나무!

유득 의평마을과 의중마을에는 아름드리 보호수 당산목 느티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느티나무 원두막 옆에는 "스탬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었다>

용유담으로 바로 가는 길은 임천강을 왼편에 두고 산자락을 따라 걸어가는 길이다

여행자가 선정한 "둘레길 베스트 숲길 5"에 선정될 만큼 아름다운 길이지만~

우리는 서암정사와 벽송사를 거쳐 능선을 넘어가는 조금 힘든 구간을 가기로 한다

 

 

 

 

이곳에서 편안한 길과 난이도가 있는 두 갈래길로 나뉘어 갈라진다

좌측 길은 산자락으로 용유담(龍遊潭)을 바로 가는 길이고~

직진길은 서암정사와 벽송사를 거쳐 와룡산 능선을 넘어가는 길이다

 

 

 

 

의중마을 뒤 산자락으로는 서암정사와 벽송사로 가는 숲길이 있다

지금은 계곡을 따라 도로가 나 있어서 발길이 뜸하여졌지만

절로 가는 숲길이라 옛길의 정취가 듬뿍 묻어 있는 고즈넉한 길이다

 

 

 

의중마을 건너편 좌측은 금대산이 있고, 우측으로는 법화산 자락이다

 

 

 

 

 

 

 

 

저~어기는 우리나라 3대계곡 중의 하나인 지리산 칠선계곡이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을 꼽으라면 칠선계곡일 것이며~

위험한 곳이라 제한 탐방제가 실시되는 곳이라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다

 

 

 

 

이곳 추성마을은 성안(城內)과 연결이 되고 신라의 역사이기도 하다

즉 이 추성동은 가락국 최후의 임금인 구형왕의 피난처였으며~

그래서 추성동(楸城洞) 이 일대가 국골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의 추성마을은 등산객이나 피서객의 민박촌 역활을 하고 있다

마을 뒤쪽으로 국골 너머에 있는 두류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영랑대 ~ 하봉 ~ 중봉 ~ 천왕봉으로 연결되는 루트가 있는 곳이다

 

 

 

 

산허리를 돌아가는 이 산길은 화전민들의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돌계단까지 오래된 정취가 더욱 정겹계 느껴지는 옛길이며~

절로 가는 옛길의 정취와 그리움이 묻어있는 고즈넉한 숲길이다

 

 

 

 

<이순신 장군이 보았더라면 좋아했을 신의대숲을 지나기도 한다>

옛날 이 길은 세사를 시름하는 이들이 지리산을 찾아서 들어가는 중요한 길이었다

그들은 이 길에서 기도와 순례. 때로는 세상을 호령할 호연지기를 길렀으며~

그리고  이곳에 깃든 민초들은 일상의 평화로움을 지리산과 함께 호흡했을 것이다

 

 

 

 

서암정사와 벽송사로 가는 숲길은 온통 돌이 많은 구간이다

이제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면서 완연한 분위기이지만~

올해는 가뭄이 들어서인지 그렇게 예쁜 단풍은 볼 수 없었다

 

 

 

 

지리산 둘레길은 산자락을 돌아가면서 자연속에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다

자연과 마을, 역사와 문화의 의미를 다시 찾아내 잇고 보듬는 길이며~

또한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모든 생명들의 속삭임을 귀 기울이면서 걷는다

 

 

 

 

바위절벽에 의봉당영골탑(義峯堂 靈骨塔)이라 새겨져 있는 곳을 지난다

의봉당(수도자가 아닐까 싶다)의 유골을 모셔놓았다는 얘기인데~

바위벽에 구멍을 뚫고 의봉당 스님의 사리탑을 안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판은 이 길을 "절로 가는 길"이라 적고 있었다>

절(寺)에 기대어 살던 사하촌(寺下村) 사람들이 절을 찾아가던 옛길이란다

추성마을로 가는 신작로가 뚫리면서 이젠 옛 흔적만 남아있지만

옛 사람들이 불공을 드리러, 산나물이랑 약초를 캐러, 땔감 하러

산을 오르기 위해서 석축을 쌓고 바위를 쪼아가며 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금계마을을 출발한지 약 한시간 만에 "서암정사(瑞庵精舍)"에 도착을 한다

산길을 올라서면 좌측에 서암정사가 있고, 우측에 벽송사가 있으며~

이야깃거리로 가득한 이곳 서암정사를 그냥 지나칠 수야 없는 노릇이 아닌가!

 

 

 

 

들어가는 입구에서 처음 만남은 천왕문 역할을 하고 있는 긴 사각 대리석 기둥이다

기둥에 마하대법왕(摩河大法王), 조어삼천계(調御三千界)라 새겨져 있었는데~

거룩하고 위대하신 부처님께서 온 세상을 조화롭게 이끄신다는 말씀으로 생각된다

 

 

 

 

절사(寺)로 들어가는 입구의 바위절벽 자연석에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증장천왕, 광목천왕, 지국천왕, 다문천왕이 순서대로 조각되어 있었는데~

여느 사찰과는 달리 자연석에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버티고 있는게 특이하였다

 

 

 

 

사천왕상을 지나자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대방광문(大方廣門)이 나온다

대웅전으로 연결시키는 문이니 불이문(不二門)이라 할 수 있겠으며~

"불이"는 진리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말로, 진리가 본래 둘이 아님을 뜻한다

 

 

 

대방광문(大方廣門)의 석굴을 통과해야만이 대웅전을 볼 수 있다

 

 

 

 

 

 

 

 

대방광문을 통과해 들어서면 붉은 기운을 띤 황금빛 대웅전이 얼굴을 내민다

서암정사는 벽송사의 원응스님이 창건하여 한 뿌리라고 할 수 있지만

서암정사는 1989년부터 불사를 시작하였으니 역사로만 보면 최신식 사찰이다

 

 

 

 

벽송사(碧松寺)는 한국전쟁 당시에 빨치산이 야전병원으로 사용했었다고 한다

그 빨치산 토벌로 인해서 우리 국군에 의해 전소되는 아픔을 겪어었는데

그 과정에서 희생된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지은 사찰이 서암정사이기 때문이다

 

 

 

 

<대웅전 마당을 가로지르면 석굴법당(石窟法堂)이다>

바위 굴 내부 자연석에 불상을 조각하여 법당으로 활용한 특이한 구조이다

법당 안에는 아미타불을 위시하여 8보살과 10대 제자, 신장단 등을

다양한 모습으로 조각해 놓았는데, 토암산 석굴암의 현대판 버전 사찰이다

 

 

 

 

안양문(安養門)이라고 새겨진 석굴법당은 함양 8경(景) 중 하나이다

석공이 10년 여를 이 굴속에서 새겼다는 조각들이 있었지만~

내부는 아쉽게도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눈으로 담아야만 했었다

 

 

 

범종루 옆에는 인위적으로 만든 소담한 연못도 있다

 

 

 

 

 

 

 

 

석굴법당 뒤편 바위벼랑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 함양팔경 중 하나로 꼽히는게 어디 쉬운일인가!

암자를 연상시키는 이름과는 달리 아기자기하게 볼거리가 많다

 

 

 

대웅전 오른쪽에 자리한 범종루는 그늘아래 아담한 정자같은 느낌이다

 

 

 

 

 

 

 

 

<서암정사 앞 마당에서 조망도 뛰어난 편이다>

대웅전 앞에 서면 낮은 담장 너머로 지리산의 웅장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코앞으로 다가와 있는 산은 아마도 창암산(923m)일 것이며~

그렇다면 가운데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는 봉우리는 형제봉이 아닐런지~

 

 

 

가을을 알리는 커다란 나무잎이 허허로운 황목련(黃木蓮)이다

 

 

 

 

 

 

 

 

<배송대(拜送臺)에서 두손을 합장하고 투어을 마감한다>

서암정사(瑞庵精舍)는 잠깐 둘러보아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찰이다

정숙하면서도 정원처럼 아름답게 아주 잘 꾸며놓은 절이었으며~

둘레길 4코스를 걷는다면 꼭 서암정사 코스를 둘러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풍경이 절집과 잘 어울린다>

청출어람 청어람이라 벽송사의 부속암자였으나 지금은 벽송사보다 더 유명하다

한 비구니 스님의 긴 세월 석굴불사 노력을 통해 유명한 사찰로 거듭났으며~

가을의 길목에서 짧은 창건 역사에도 많은 사람이 찾아온 서암정사를 돌아보았다

 

 

 

서암정사를 빠져 나오면 도로를 따라 벽송사로 향한다

 

 

 

 

 

 

 

 

서암정사를 나오면 일주문 역할을 하는 돌기둥 두 석주 앞 뒤에 새겨진 범어이다

백천강하 만계류(百千江河 萬溪流) : 백천 강물 만 갈래 시내가 흘러도

동귀대해 일미수(同歸大海 一味水) : 한바다로 돌아가니 한 물 맛이고

삼라만상 각별색(森羅萬象 各別色) : 삼라만상 온갖 것 모양이 달라도

환원원래 동근생(還元元來 同根生) : 근원으로 돌아가니 원래 한 몸이로다

서암정사(瑞庵精舍)는 원래는 벽송사(碧松寺)의 부속암자였다고 한다

석굴불사 시작으로 규모가 커지면서 현재는 해인사 말사로 독립된 사찰이라 한다

 

 

 

 

벽송사(壁松寺)로 가는 길은 서암정사를 내려와서 새롭게 시작된다

사각 일주문을 내려오면 나타나는 삼거리에서 둘레길은 직진!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추성마을을 거쳐 칠선계곡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곳 삼거리갈림길에서 벽송사까지는 500m정도 발품을 팔아야 한다

 

 

 

 

 

 

 

벽송사 올라가는 차도가 너무 비탈길이라 상당히 힘든 오르막이다

 

 

 

 

 

 

 

 

한국불교 최고의 종가 절집이 어디 그렇게 쉽게 길을 내어 주겠는가!

거친 숨을 헐떡이면서 올라가야 하는 아주 된비알 오름길이며~

스님들의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경건한 마음으로 이용해야 한다

 

 

 

 

벽송사는 조선 중종 시대인 1520년 벽송당(碧松堂) 지엄(智嚴)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청허(서산대사)와 부휴(사명대사)가 수행하며 도를 깨달은 유서 깊은 절이었으며~

벽송당 지엄이 옛 절터에 절집을 중건하고 자신의 당호로 절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한다

 

 

 

 

<너른 마당과 3단으로 나뉘어진 사찰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벽송당(碧松堂) 지엄(智嚴)이 절집을 중건하였지만 이전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저 경내에 있는 석탑에서 창건 시기를 통일신라시대로 추정할 뿐이였으며~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되었다가 소실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단다

 

 

 

한국 불교의 종가 벽송사 선방을 기준으로 우측에 있는 청허당이다

 

 

 

 

 

 

 

 

벽송사의 배치는 두류전지에 의하면 수효봉과 귀쌍봉이 오도산을 받치고 있다

그 안을 안락하고 밝게 하며 금대산이 화표(華表)가 된다고 하였으며

보편적으로 화표(華表)란 무덤에 있는 망부석 같은 것을 얘기하는데

여기서는 풍수적으로 명당 입구에 기아한 봉우리가 우뚝 서 있는 것을 의미한다

 

 

 

지리산벽송사(智異山碧松寺)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선방(禪房)이다

 

 

 

 

 

 

 

 

<선방 좌측에 정면으로 보는 건물은 간월루이다>

그 흔한 절집 건물들과는 달리 대가집 한옥처럼 생긴 선방(禪房)에 모습이다

이 절이 조선 최고의 선풍을 일으킨 종가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으며~

주법당의 선방에서 "벽송사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선방 뒤쪽의 당우는 원통전(圓通殿)이고 오른쪽이 산신각이다

 

 

 

 

 

 

 

 

<벽송사 옛 절터에 있는 도인송과 미인송이다>

벽송사(碧松寺)라는 절 이름이 이 두 소나무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300년이나 된 이 소나무는 보물 제474호로 지정된 보호수이며~

도인송의 기운을 받으면 건강을 이루고, 미인송에 기원하면 미인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언덕에 서면 맞은편으로 지리산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도인송을 향한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미인송의 구애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미인이 도인에게 연정을 품고 유혹을 했으나 도인은 흔들리지 않았으며

미인은 연정을 버리고 존경의 마음으로 곁에서 바라보기로 했다는 것이

두 소나무에 얽힌 전설이지만 지금도 버팀목에 의지해 도인송을 향해 기울고 있다

 

 

 

도인송과 미인송이 있는 우측으로 백일홍이 형형색색 우리를 환하게 하였다

 

 

 

 

 

 

 

 

이곳이 웅장한 지리산의 산자락이라서 그러할까요

포근한 가을날의 기운이 느껴지는 예쁜꽃과 벽송(碧松)이라~^^

가을 바람따라 노송의 기운을 받으면서 예쁜꽃과 함께 둘러보기 좋은 벽송사 투어이다

 

 

 

 

가을 햇살에 눈부시게 화사하고 청초한 백일홍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꽃은 세사(世事)에 지친 모든 사람들에게 맑은 영혼을 주었으며~

꽃들이 품어내는 향기와 고운 빛깔로 우리의 가슴속을 물들어 주었다

 

 

 

 

대부분의 전각들은 단청(丹靑)도 하지 않은 그대로 고요한 기운을 내뿜는다

내노라하는 유명한 대사들을 배출한 사찰치고는 소박한 외모였으며~

흐트러짐 없는 선원의 이미지에 오히려 선불교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였다

 

 

 

 

<벽송사는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한국 선불교 양대 산맥인 청허(서산대사1520-1604)와 부휴(1543-1615)가 수행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서산대사의 제자 사명대사 등 선교 겸수 대종장도 108명이나 배출되었다

그리하여 "백팔조사 행화도량(百八祖師 行化道場 )"이라는 별명이 붙으게 되었으며

조선시대 선종의 법맥을 지켜내었고, 흐트러진 불교의 중심 역할을 해왔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벽송사 절집 투어를 마치고 입구로 되돌아와 우측 둘레길로 진입한다

 

 

 

 

 

 

 

 

벽송사에서 송대마을 능선까지 약 700m를 가파르게 올라가야 한다

노랗고 빨갛게 물든 단풍이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었으며~

화려한 단풍이 여심의 마음을 자극하여 감탄사를 연발하며 올라간다

 

 

 

산자락을 가로지는 임도 갈림길에서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

 

 

 

 

 

 

 

 

산 길에 머물면서 그 산을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산속을 걸어봐야 그 길을 알 수 있을 테지요!

동네 뒷동산 하나 오름을 해야만 하는 수고로운 길이다

 

 

 

 

솔숲이 듬성한 산길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해야 할 된비알이다

하지만 힘들다는 잡생각이 파고들 틈새가 어디 있겠는가!

오색단풍 영롱하고 자연의 조화가 절묘한 풍경속으로 빨려든다

 

 

 

 

이 길은 왼쪽으로는 송대마을이 있고, 오른쪽은 추성마을을 가르는 능선이다

서산대사도 넘고 승병들도 넘었을 이 길을 넘으니 고개가 숙여졌으며~

목탁대신 창을 들어야 했던 스님들이 지켜 내었기에 우리가 걷고 있는 것이다

 

 

 

이 길은 스님이 누워있는 와불산(臥佛山)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안부 모전마을 삼거리갈림길(이정표 : 동강 8.9㎞ / 금계 3.8㎞)이 나온다

지리산둘레길은 이곳에서 좌측 모전마을 방향으로 내려서야 하며~

계속해서 능선을 타고서 송대삼거리에서 송대마을로 내려서는 방법도 있다

 

 

 

 

<요즈음은 송대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끊어졌단다>

발단은 둘레길 걷는 사람들이 농산물에 손을 대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주인과 실랑이가 벌어졌고 급기야 길은 폐쇄 되었지만~

최근 둘레길을 다시 열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니 기대해 볼 일이다

 

 

 

 

삼거리에서 모전마을까지의 구간은 가파른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서암정사와 벽송사 구간은 스틱 챙겨 오는 것을 잊지마셔요!

가파르면 내리막길 또한 까플막한 것은 자연의 법칙이 아니겠는가!

 

 

 

탐방로 정비가 잘 되어 있어 길를 잃을 염려는 없는 구간이다

 

 

 

 

 

 

 

 

한동안 내려서자 이번에는 아담한 계곡의 나무데크 교각을 건너간다

계곡은 지친 다리를 풀고 잠깐 쉬어 가기에 딱 좋은 장소였으며~

우리도 이곳 계곡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요깃거리로 당을  보충하였다

 

 

 

 

그렇게 한동안 내리막 길을 약 30분 정도 내려왔을까요!

갑자기 앞쪽으로 시야가 확 트이면서 보이는 것은

엄청강과 그 건너편에 법화산이 성벽처럼 높게 솟아있었다

 

 

 

 

산길을 내려서면 용유담(龍游潭)의 전설이 있는 모전마을을 만난다

의중마을에서 두 갈래로 나눠진 길은 모전마을에서 합쳐지며~

엄천과 법화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낸 멋진 구간이다

 

 

 

 

<지명선원은 석불 작업을 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벽송사를 거쳐 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지명선원에서 용유담(龍遊潭)은 좌측으로 100m떨어져 있으며

용유담을 구경하고 지명선원으로 되돌아와 다시 둘레길을 이어가야 한다

 

 

 

 

지리산의 계류가 억겁의 세월 흐르면서 깎고 다듬어 빚은 바위들이 장관을 이룬다

용유담을 가로지르는 합성형 라멘교의 일체형 다리도 아름답게 보였으며~

상판과 교각이 타원형으로 만들어 용유담보다 눈길을 끌었다면 나만의 생각일까요

 

 

 

 

용유담은 엄천강의 상류에 있는 마천면과 휴천면의 경계인 곳에 위치한다

지리산 아름다운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합류하면서 형성된 곳으로

아홉마리의 용이 놀았다고 할 만큼 크고 수심도 깊은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용유담은 지리산을 유람하던 선인들이 여홍을 즐기고 가던 곳이다>

정여창과 김일손은 함양 출신의 대표적인 유학자들이고 점필재, 김종직도 다녔갔다

절경이라는 소문과는 달리 용유교에서 바라본 용유담은 물길에 불과하였지만~

함양군수를 지낸 김종직은 가뭄이 들었을 때 이곳을 찾아와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용유담 근처에 마적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마적도사라는 법우화상이 살았다>

하루는 구름 한점없는 맑은 날인데도 천왕봉에서 흘러내리는 엄천강에 붉은 황토물이 홍수가 졌다

이상히 여겨 강을 따라 올라가보니  천왕봉의 천태산 마고할멈이 앉아 오줌을 누고 있었다

법우화상은 이 여자가 바로 나의 천생배필임을 알고 부부의 연을 맺고 결혼을 하게 되였다

부부는 딸을 아흔아홉명이나 낳았는데 모두 무당이 되었다, 마고할멈까지 합쳐서 100명의

무당이 되어 백무동이란 이름이 생겨났고, 팔도로 흩어져 팔도 무당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용유담은 신선이 노는 별천지로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지만 지리산댐이 건설될 경우 물에 잠길 수도 있단다

벼랑으로 절경을 이루는 풍치와 창아한 맑은 물빛  거울 같은 물에 비친 산그림자

푸른 못의 반석에 펼쳐지는 황홀한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하염없이 도취되게 하였다

 

 

 

용유담을 둘러보고 지명선원으로 되돌아와 다시 둘레길을 이어간다

 

 

 

 

 

 

 

 

그래도 자꾸만 남아있는 아쉬움에 자꾸만 용유교를 돌아본다

무궁 무진한 역사와 인문지리의 보고 용유담(龍遊潭)!

이곳에 지리산 댐을 만들겠다고 하였으니 무조건 막아야겠죠!

 

 

 

 

이 길은 노래를 부르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걷기도 한다

우리는 몸을 따라 마음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따라 길을 걸으면서 오늘 하루를 불태우는 둘레길이다

 

 

 

우리나라 코스모스는 대표적인 가을꽃이다

 

 

 

 

 

 

 

 

<이곳에서 좌측 아래로 세동마을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곳의 세동마을은 한 때에 전형적인 지리산 산촌마을로 아주 유명한 마을이었다

2007년 전국에서 최우수 산촌생태마을로 선정되었던 마을이기도 하였으며~

50년 전만 해도  모든 가옥은 산과 계곡에서 자라는 억새를 띠로 얹은 샛집이었다

 

 

 

 

<옛날 용유담에 아홉마리 용과 마적도사가 살았다는 전설이다>

마적도사가 쇠도장을 찍어 나귀에게 보내면 나귀가 생필품을 싣고 와 용유담가에 와서 크게 울면

마적도사가 다리를 놓아 나귀를 건너오게 했다,  어느 날 장기삼매경에 빠졌던 마적도사가

용들이 싸우는 소리에 나귀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고 결국 나귀는 울다 지쳐 죽고 말았다

화가 난 마적도사는 자신을 질책하여 장기판을 던져버리고 용들을 쫓아버렸다, 그 때 던진

장기판 조각들이 용유담에 있는 바위들이란다, 지금 걷는 길이 용유담의 전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구간은 지라산 자락 깊숙히 들어온 산촌마을과 사찰을 지나 엄청강을 만나는 길이다

 

 

 

 

 

 

 

 

세동마을은 송전리의 5개 자연부락(송대, 마적동, 고양터, 모전) 중 하나이다

한국전쟁 때에는 빨치산들이 활약할 당시에는 주요 은식처였던 곳이며~

또한 양식을 공급하였던 송대마을은 최근에 산촌생태마을로 거듭났다고 한다

 

 

 

 

<세동마을에서 송대마을은 마적도사 전설이 깃든 곳이다>

그래서 옛길을 따라 마적도사에 얽힌 전설을 담은 탐방로를 조성해 놓았다

용유담을 비롯하여 옛 길을 따라가면서 만나는 거품소, 나귀 바위

장기판 바위, 마적동과 마적사 터 등이 모두 마적도사 전설과 관련된 곳이다

 

 

 

 

<둘레길은 계속해서 엄천강을 옆구리에 차고 간다>

엇그제만 해도 닥나무를 삶고 종이를 뜨는 일로 분주하였던 마을이다

이제 종이 뜨는 일상과 샛집 지붕의 산촌 풍경은 볼 수 없으며~

예쁜 기와집의 펜션과 가든이 들어서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산비탈에도 마을이 들어섰고 층층의 다랑이논에 산촌마을은 한적하면서 평화롭다

그림엽서 같은 모습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하였으며~

법화산과 엄천강을 벗삼아서 굽이굽이 애돌아가는 길은 힘이들지만 정겨운 길이다

 

 

 

 

<건너편으로 휴천면 문정리(백년마을)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황금을 강에 던져 버린 일화로 유명한 이억년과 조년 형제 중 형인 억년이 말년을 보낸 곳이다

이조년은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로 시작되는 <다정가>를 쓴 고려의 문신

이들 형제 중 맏형인 백년이 동생 억년과 함께 저곳으로 낙향하여 "백연"이란 지명이 생겨났다

 

 

 

 

송문교를 바로 앞에 두고 어~엉^ 이게 뭐시람 무료 커피집이라니!

숙바과 음식점하는 집도 아닌데, 공짜로 봉사하는 천사님!

와~앙^ 김연아가 선전했던 내가 좋아하는 맥심커피까징!

대박이다, 대박, 앉아 쉴 수도 있고 이래서 둘레길 4코스가 유명하다

 

 

 

 

SBS 프로그램인 <세상에 이런 일이>에 딱 어울리는 상황이 아닐까요?

인심이 좋아도 너무 좋으시당^^ 비싼 커피를 공짜로 주시다닝!

15년째 산을 돌아다녔지만 이런 상황을 처음 만난다 <감사합니다 천사님!>

 

 

 

Welcome To 함양! 송문교(와룡교)에 도착한다

 

 

 

 

 

 

 

 

송문교에서 바라보면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와룡대(臥龍臺)을 볼 수 있다

계곡의 바위가 용이 누워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와룡대라 하였으며~

화산12곡의 주인공 강용하가 친구 일곱명과 해마다 계(契)모임을 가진 곳이다

 

 

 

 

와룡대(臥龍臺) 바위틈에는 반송이 자라고 있고 바위는 평평하여 수백명이 앉을 수 있다

강과 주변 경치가 빼어나 여름에는 많은 행락객이 찾아와 래프팅을 즐길 수 있으며~

이 일대는 정여창과 김일손이 지리산을 유람하며 살만한 곳이라 하여 가거동으로 불렀다

 

 

 

 

바위암벽에 와룡대에 모인 계원들 이름이 새겨진 각자이다

의병활동은 하지 못하여도 일제에 부역하지 않겠다는

계원들에 최소한의 다짐이자 저항이었을 것이라는 평가이다

 

 

 

지리산 둘레길 4코스에서 자주 보이는 풍경이다

 

 

 

 

 

 

 

 

제4코스(금계-동강)구간을 걸으면서 하늘이 너무 예쁘다

멋지다, 아름답다, 예쁘다, 최고다, 대박이다 등으로

이렇게 감탄할 멋진 단어로는 설명이 끝날 정도가 아니었다

 

 

 

금계-동강 구간 4코스는 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길이다

 

 

 

 

 

 

 

지리산청정낙원 펜션은 엄천강을 보며 하루밤 머물기에도 좋을 듯하다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엄천강의 물돌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엄천강이 휘돌아가는 우측 암벽에 양화대(楊花臺)라는 각자(刻字)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 뒤로 한남마을은 세종대왕 열두째 왕자 한남군이 귀양살이 왔던 새우섬이 있으며~

지리산 북쪽을 유유히 흘러가는 엄천강변에는 천년을 거스르는 역사의 흔적들이 즐비하다

 

 

 

 

운서마을로 가면서 도로를 따라 걷는 길에 솔숲 길이 너무 반가웁다

이곳에서는 나무가 있고 없고 너무도 차이가 많은 코스였으며~

도열하듯이 늘어서 있는 노송들의 솔향기에 힘들어도 힘을 내어본다

 

 

 

 

운서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얕으막한 고개를 넘어야 한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구간이기에 무심으로 걷는 길이며~

아니 산촌마을의 소박한 풍경이 볼거리라면 볼거리일 수도 있겠다

 

 

 

운서1교를 건너기전 어마무시한 바위가 금방 굴러내릴 듯하다

 

 

 

 

 

 

 

 

세동마을에서 농로를 따라가면 작은 산골마을인 운서고개에 다다른다

운서마을 고갯마루에는 우측으로 쉬어갈 수 있는 정자가 있으며~

평화로운 작은 마을에서 민초들의 힘겨운 삶의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운서마을은 휴천면에서도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작은 마을이다

마을 전체 면적의 3/1이상이 지리산국립공원구역내에 있으며~

산에 의지해서 생활하니 산악지역이라서 농경지가 별로 없는 마을이다

 

 

 

 

<저 멀리 어딘가에 새우섬이 있는 곳에 한남마을이 있을 것이다>

한남마을에는 세종대왕 열두번째 왕자인 한남군이 귀양살이 왔던 새우섬이 있다

조카인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돼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던 곳이며~

금성군복위사건에 연류되어서 서른 한살의 나이로 일생을 새우섬에서 마감하였다

 

 

 

 

남해바래길의 다랭이 논들처럼 이곳은 땅 한평이라도 놀린 곳이 없었다

아주 깊은 산중마을인데, 땅 모서리라도 놀리는 곳이 없었으며~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부지런하게 살라는 메세지를 심어준다

 

 

 

 

구시락재를 넘어가기 전 지나왔던 운서마을 농로 길을 되돌아본다

고단함으로 일궈내었던 논과 밭의 그 풍경에 눈이 아리지만~

산촌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모습에서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하였다

 

 

 

 

구시락재를 넘어서면 엄천강이 넓은 들녘과 함께 그림처럼 펼쳐진다

제일 먼저 엄천강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이 아는 척을 하였으며~

저 멀리는 중앙에 산청군 왕산이, 가깝게는 우측으로 꽃봉산(236m)이 보인다

 

 

 

 

구시락재는 "유두류록"에 운서마을에서 동강마을에 이르는 고갯길이다

김종직이 품었을 호연지기와는 달리 고갯길은 보잘 것이 없었으며~

이 길은 조선말 유학자인 김종직이 지리산을 유람할 때 넘었던 옛길이다

 

 

 

 

강 건너 원기동은 새우섬에 유배된 한남군을 감시하기 위해 관리들이 쉬던 곳이라 한다

조선시대 나라의 긴급 사항을 전달하거나 민의를 수렴하기 위하여 심부름꾼들이

머물던 숙소가 있었다 하여 유래된 지명으로 "역원(驛院)이 있었던 터(基)"라는 것이다

 

 

 

 

동강마을 상단에는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는 마을 "당산쉼터"가 있다

느티나무는 오랜세월 이곳 지역민들의 쉼터 역활을 해왔으며~

마을 사람들은 신성하게 여겨 안녕을 기원하며 당산제를 지내는 곳이다

 

 

 

약꽃 민박집의 정원이 예뻐서 하룻밤 묵어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한편 김종직의 <유두류록>에서는 이곳을 화암(花巖)으로 소개하고 있다

쉼터 뒷산의 모양새가 연꽃봉우리처럼 생긴데서 유래된 지명으로

예로부터 이 산을 꽃봉산으로 불렀으며, 부근에 있는 공개바위도 유명하다

 

 

 

 

동강(桐江)마을은 평촌과 점촌 그리고 기암(개암터) 3개마을이 강 옆에 있었다

이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강 옆에 있다고 하여 동강이라 하였으며~

조선 고종 때  엄천면사무소가 마을에 있어 공무와 지방행정을 수행하던 곳이다

 

 

 

 

두 개의 사찰과 용유담을 둘러보느라 제시된 시간보다 조금 많이 걸렸다

이곳 동강을 지리산 에코빌리지 마을이라고 멋지게 포장을 했네요!

지리산 산자락의 동강마을은 강과 산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마을이다

 

 

 

 

당산나무에서 물이 없는 개울가를 따라 내려가면 동강마을 종점이 나온다

지리산둘레길 4코스(금계-동강) 구간의 장정이 막을 내리는 곳이며~

이색적인 모양새의 화장실앞에는 벅수의 이정표가 5코스 경계임을 알린다

 

 

 

 

동강마을은 지리산을 닮아 포근하고 강과 산이 함께 역사가 흐르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지리산둘레길 4코스는 전설이 깃든 유적지가 많아서 역사 공부를 많이 하였으며~

청아한 가을날 지리산둘레길과 함께 낮선 풍경을 만나고 느끼면서 걷는 게 아주 좋았다

 

◎ 산행인원 : 울~산다화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8 : 30 ~ 14 : 15  (05시간  15분)      ◎ 날씨 : 흐림 후  맑음

 

 

 

 

<엄천(嚴川)이란 뜻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었다>

계혜(戒慧)를 지키고 복을 하천의 모래처럼 받는 것은 마치 냇물이 흘러 쉬지 않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엄천은 지역의 지명을 딴 것이 아니라, 불교의 계율을 엄하게 계혜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지명이며~

절이 생긴 이후 이 고을을 엄천골이라 하였고 절 앞에 흐르는 냇물을 엄천강이라 부른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는 주말이면 함께 문화와 역사가 있는 곳이라면 산행이건 여행이든 가리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요즈음은 도란도란 애기를 나누면서 걷는 둘레길을 선호한 편이며~

오늘도 지리산둘레길 4코스를 걸으면서 많은 추억을 만들어 잊지못할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