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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백두대간(완주)

백두대간 1구간(중산리-성삼재) 종주산행

백두대간 제1구간(중산리 - 지리산,천왕봉 - 성삼재)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2년         05월         21일         월요일

◎ 산행위치 : 경상남도 산청군, 함양군, 하동군 / 전라북도 남원군 / 전라남도 구례군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중산리탐방지원센터 - 지리산(천왕봉, 1.915m) - 제석봉(1.808m) - 장터목산장 - 연화봉(1.730m)

                      촛대봉(1.703m) - 세석산장 - 영신봉(1.651m) - 칠선봉1.558m) - 선비샘 - 덕평봉(1.552m)

                      벽소령산장 - 형제봉 - 삼각고지(1.586m) - 연화천대피소 - 명선봉(1.586) - 토끼봉(1.553m)

                      삼도봉(1.499m) - 노루목(1.550m) - 임걸령 - 돼지령 (1.390m) - 노고단(1.507m) - 성삼재주차장

 

◎ 산행거리 : 중산리매표소 ~ 3.3Km ~ 법계사 ~ 2.0Km ~ 지리산(천왕봉) ~ 1.6Km ~ 장터목산장 ~ 2.7Km 

                      촛대봉 ~ 0.6Km ~ 세석산장 ~ 3.5Km ~ 선비샘 ~ 2.5Km ~ 벽소령산장 ~ 2.4Km 

                      연화천산장 ~ 3.0Km ~ 토끼봉 ~ 2.1Km ~ 삼도봉 ~ 5.5Km ~ 노고단산장 ~ 2.5Km ~ 성삼재주차장

                      도보거리   =   약 33.5Km           실제도보거리   =   약 34.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3 : 00 ~ 17 : 50  (14시간 50분)      ◎ 날씨 : 아주, 맑음

 

            ◐ 한반도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의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 산행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의 병사봉(兵使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江)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 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하며,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 금수강산이 되었으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여의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백두대간 구성(白頭大幹)체계도는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시된 15개의 산줄기들은 10개의 큰강에 물을 대는 젖줄이자 그것을 구획하는 울타리이다

 

 

 

 

산인(山人)으로 자부해 왔었지만 우리의 산줄기 백두대간을 밟지못한 아쉬움을 가슴앓이로 남아 있었다

오래전부터 계획 하였던 백두대간 종주의 깃발을 오늘에야 올리게 되었으며

태양의 밝음을 의미 하기에 우리의 민족은 백의 민족으로 불리게 된 것이고

옛부터 왕들이 친이 영험스런 산을 성역으로 숭배하여 온 것이 우리 민족이다

우리의 영산인 백두대간을 나의 발로 걸어보겠다는 도전 정신으로 긴 여정에 들어가기 위해 천왕봉에 올랐다

 

 

 

 

천왕봉을 오르는 가장 짧은 접속구간은 중산리에서 오르는 길이다, 경남 하동에서 택시(55.000원)로

일출을 보기위해 1시 30분에 도착했지만 탐방지원센터에서 3시 30분부터 산행이 가능했다

중산리 매표소에 계시는 관리자님의 따뜻한 배려로 커피도 마시고 좋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3시 30분에 출발을 했었다, 중산리 매표소에 계시는 관리소 관리자님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언젠가 지리산을 찾으면 꼭 그 때도 기억하시고 반갑게 맞아 주세요, 그리고 좋은날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야영장 입구에서 천왕봉까지는 5.4km의 거리로 약 4시간이 소요된다

해마다 연례행사로 지리산종주를 하여 왔었지만

오늘은 백두대간 첫 구간으로 작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지명으로 "칼바위"에 도착한다

칼로 자른것 같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면

칼바위보다는 오히려 쌍칼바위가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까요?

 

 

 

 

별빛이 초롱 초롱한 새벽의 밤 하늘은 유난히도 밝았다

또한 계곡의 물소리는 오케스트라의 음률처럼

웅장한 음률에 맞춰 가벼운 마음으로 칼바위삼거리에 도착한다

 

 

 

 

장터목산장과 로타리산장으로 갈라지는 칼바위 삼거리다

우측으로 오르면 로타리대피소와 법계사 방향이며

좌측으로는 법천폭포와 유암폭포를 거쳐 장터목대피소로 가는 방향이다

 

 

 

 

칼바위 삼거리부터는 가파르게 고도를 높이면서 뒤지겠다

어깨에서 짓누르는 베낭무게에 낑낑거리며

돌계단길이 힘들어 엉덩이를 좌, 우로 흔들며 바란스를 맞추어 힘겹게 오른다

 

 

 

 

해발 1,080m에 위치한 망바위는 빨치산들이 은거하였던 곳이다

망을 보았던 곳이라 해서 망바위라 붙여진 이름이며

지리산 주능선이 펼쳐지면서 망을 볼 수 있는 좋은 위치라고 한다

 

 

 

 

지리산은 중산리를 기점으로 오르는 코스는 당일 산행코스로는 적합하다

하지만 웬만큼 산행 경력이 없으면 오르기 힘들 정도로 가파르며

법계사의 목탁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온 것은 로타리산장에 가까이 왔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로타리산장은 1978년 부산로터리 클럽에서 "로터리의 집"으로 문을 열었다

2007년 부산 로타리클럽에서는 국가에 기부체납 하였고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낡고 볼품없는 산장을 새롭게 단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법계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년) 인도에서 건너온 연기조사가 건립했으며

국내에서 가장 높은 해발 1,450m에 위치한 절이라고 하는데~

한국전쟁 당시에는 이현상 부대의 지휘본부가 있던 곳으로 동족에 상흔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한발 한발 올라가는 발걸음이 힘들어지는 시간이다

백두대간을 시작하는 마음이라 그렇게는 힘들지 않았지만~

오름길이 너무 지루해 "지리하다"는 뜻으로 지리산이라 하였다는 말도 있다

 

 

 

 

문창대(文昌臺)는 고운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지리산 법계사에 자주왕래하면서 저곳에 올라

멀리 서편에 위치한 향적대의 바위에 과녁을 설치해두고 활을 쏘기도 하였으며

시궁대(矢弓臺) 또는 고운대(孤雲臺) 최치원이 문창후(文昌候)의 시호(諡號)를 따서 문창대로 개칭하였다

 

 

 

 

개선문은 다른말로 "하늘을 여는 문"이라 하여

개천문(凱天門)이라고도 한다

우리처럼 천왕봉으로 오르는 사람에게는 개천문이라 해야 할 것이다

 

 

 

 

천왕봉 아래 300m전방에 신이 내려준 하늘아래 첫 샘물이다

천왕샘은 서부경남지역의 생명의 원천인 식수원으로 남강댐의 발원지이다

이 조그만 물줄기들이 모여 모여서 덕천강을 따라 흘러 흘러

남강댐을 이루고 낙동강으로 흘러 가므로 물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되세긴다

 

 

 

 

천왕봉을 오르기전 뜨거운 피를 품으며 숨져간 영혼들에게 명복을 빌어본다

통곡에 한을 지리산에 묻어야 했던 영혼들이여!

이젠 통곡에 한을 지리산의 품속에 남기고 고이 잠드소서

하나의 목숨을 버리면서 지키려했던 당신들의 꿈은 바로 우리와 지리산에서 함께하는 것이였으리요

 

 

 

 

천왕봉(天王峰, 1.915m)은 대륙의 최고봉이며, 남한에서는 한라산 다음으로 높다

전면에는 "智異山 天王峰"이라 표기 되어 있고

뒤면에는 "韓國人의 氣像 이곳에서 發源되다"라는 라는 문구가 새겨 있으며

백두산에서 강을 건너지 않고 능선을 따라 지리산까지를 백두대간이라 한다 그래서 오늘 우린 그 길을 가려고 한다

 

 

 

 

지리산(智異山)은 신선이 내려와서 살았다는 삼신산(三神山;금강산, 한라산, 지리산)의 하나로

"지혜(智慧)로운 이인(異人)이 많이 계시는 산"이란 뜻의 지리산(智異山)!

불가에서 깨달음을 얻은 큰 스님의 처소를 가르키는 뜻의 방장산(方丈山),

백두대간의 맥이 뻗어 내렸다 하여 두류산(頭流山) 등으로 불리우며 옛 선인들의 수많은 문화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비록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천지 계벽을 보는것 같았으며

천왕봉 해돋이 장관은 지리산(智異山) 10경(景)중 1경으로 손꼽힌다

 

 

 

 

날씨만 좋다면 너덜바위에 앉아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를 듣고 싶지만

강하게 몰아친 강풍에 몸을 가누기 조차 힘들어

사진 몇장 주어담고 따스한 햇빛을 찾아 서둘러 장터목대피소로 발길을 재촉해야 했다

 

 

 

 

천왕봉에서 철계단길을 내려오면 통천문(通天門)를 통과하게 되는데

통천문은 제석단과 아울러 신성하고 엄숙했던 성지였으며

부정한자는 통천문을 통과할 수 없다는 옛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석봉(帝釋峰, 1808m)은 6.25 이후 까지만 하더라도 전나무 구상나무들이 울창하였으나

자유당 말기 농림부장관의 삼촌 되는 자가 권력을 등에 업고

제석단에 제재소를 차려놓고 거목들을 베어내면서 말썽이 생기자

증거인멸차원에서 제석봉에 불을 질러 나무들이 불타 없어져 이렇게 고사목이 슬픈 역사의 현장을 대변하고 있다

 

 

 

 

요즘은 산을 찾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래서 더욱 산이 그리워지고

높은 산을 오르려는 것은 넓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제석봉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지리산 능선들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빨치산의 슬픈 역사를 가슴에 품고 있는 남부능선 넘어로 광양 백운산이 선명하다

 

 

 

 

장터목산장은 산천군 시천면 사람들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옛날에 장(場)이 열렸던 곳으로

봄, 가을이 되면 이곳에서 물물교환 또는 생산품을 사고 팔았던 데에서 유래되었다

 

 

 

 

장터목대피소는 1971년 "지리산 산장"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1997년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확대 되었으며

지금도 자연보호와 탐방객의 편의시설 및 안전을 제공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연화봉 가는 길은 천상에 정원을 걸어가는 듯한 느깸이 들었으며

좌측으로 삼신봉과  촛대봉이 얼굴을 내밀고

싱그러운 푸르름이 엄마의 품안에 안긴것처럼 포근하게 느껴지면서 발걸음이 빨라진다

 

 

 

 

연화봉(烟霞峰, 1,730m)은 한자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연기 연(烟) 놀 하(霞) 봉우리 봉(峰)

늘 운무가 자욱해 연기가 노는 듯한 풍경이란 뜻이다

연하선경은 고색창연하게 이끼 낀 기암괴석에서 새벽 여명의 실루엣이 환상적이며

기암괴석과 자연 고사목이 숲을 이루고 아래로 수백년 원시림이 가득하여 연화봉 일대 비경을 연화선경이라 부른다

 

 

 

 

촛대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황홀한 기분을 안겨 주웠던 천왕봉

천왕봉에서 기세가 등등했던 바람을 한풀꺾이고 너덜길를 따라 촛대봉을 오른다

 

 

 

 

음양샘의 슬픈 전설을 가진 촛대봉은 연진의 몸이 굳어진 모습이라 전해진다

연진은 낮에는 철쭉을 가꾸고 밤에는 촛대봉 정상에 올라가

촛불을 켜놓고 산신령께 죄를 빌다가 촛대봉이 되었다고 한다

세석고원의 철쭉꽃이 유별나게 많고 아름다운 것은 호야와 연진의 슬픈 넋이 살아있기 때문이란다

 

 

 

 

세석고원(細石平田)은 신라 때 화랑도의 수련장으로 이용됐으나

6.25를 전후해서는 빨치산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평화의 땅으로 말끔한 모습의 세석대피소가 들어서 있다

 

 

 

 

세석대피소은 1996년에 건립되어 2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한국최대의 대피소이다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의 광할한 고산지대의 넓은 평야지대는 과거에 작은

돌밖에 없는 토양지대라 해서 잔돌고원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바꾸어 세석평원이라 부르고 있다

 

 

 

 

영신봉(靈神峰, 1.651m)은 산 이름 자체가 신을 맞이하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제단은 마련되어 있지 않지만 지리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며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들 중 가장 영험한 기운이 모였다해서 영신봉이라 불리우고 있다

 

 

 

 

지리산은 언제 찾아와도 넉넉한 어머니 품속 같은 산이다

편안하고 넉넉함을 간직하고 있는 지리산

그래서 넉넉하고 포근함 때문에 힘들어도 자꾸만 지리산을 찾게 되는 것이다

 

 

 

 

칠선봉(七仙峰, 1,558m)은 이정표 뒤로 있는 바위와 함께 주변으로

일곱 개의 암봉이 기묘한 모양으로 우뚝 서 있는데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일곱선녀가

한자리에 모여서 노는 모습 같다고 해서 칠선봉(七仙峰)이라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지리산은 남한에서는 한라산 다음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육지의 최고봉이다

거대한 암괴(岩塊)가 하늘을 받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서쪽 암벽에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의미의 "천주(天主)라는 음각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지리산은 대한민국 최초의 1967년 12월 29일 국립공원으로 지정 되었다

지리산은 예로부터 우리의 영산(靈山) 추앙받아 왔으며

그래서 산자락에 고찰이 많아서 옛 선인들의 수많은 문화유적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선비샘에 유래를 살펴보면>

엣날 선비샘 아래 상덕평(上德坪)마을에 평생 가난하고 천대 받으며 살아온 노인이 있었는데

이 노인은 죽어서라도 사람대접 한번 받아 보는 것이 소원이어서 지식들에게

자신의 묘를 상덕평의 샘터위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했는데, 효성스런 자식들은

그의 무덤을 샘터위에 묻었고 그로부터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샘터의 물을 마시고자 하면

자연스럽게 허리를 구부려 무덤으로 절을 하는 형상이 되어 죽어서 남들로부터 존경 아닌 존경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생전에 갖은 고생에 천대 속에서 화전민으로 살아온 한 노인의 애틋한 소망이

실제로 몇 년전까지 실현되고 있었는데 지금은 무덤도 안보이고

샘도 파이프로 연결하여 서서 받도록 되어 있어 씁쓸한 전설은 잊혀진 애기로 전해지고 있다

 

 

 

 

벽소령대피소는 예로부터 남쪽의 하동군 화개면과 북쭉의 함양군 마천면을 연결하는 고개였다

푸른 숲 위에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 맑아서 오히려 푸른빛이 돈다고 하여

푸른 벽(碧), 밤 소(宵)를 써서 벽소령이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심산유곡의 고사목과 벽소령의 달밤(碧宵明月 혹은 碧宵夜月)이 유난히 아름다워 지리산 10景중의 하나로 꼽힌다

 

 

 

 

고려 공민왕의 왕사(王師)였던 나옹(懶翁)스님의 선시(禪詩)가 떠 오릅니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水如風而終我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형제봉(1,452m)은 높이 10m가 넘는 두 개의 큰바위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입석바위를 형제바위라고 한다

엣날 성불수도 하던 두 형제가 산의 요정 지리산녀(智異山女)의 유혹을 경계하여 도신(道身)을 지키려고

서로 등을 맞대고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서 있어 그만 몸이 굳어버려 지금의 바위모습이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삼각고지(三角高地,1,462m)는 함양군 마천면 삼정마을에서 연하천 산장으로 이어진 직등 코스이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군사 요충(要衝)의 고지로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봉우리이며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군경 토벌작전 기록에도 등장 할 뿐더러 근처에는 옛 벙커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고  총알 맞은 나무도 아직 남아 있으며, 지리산 빨치산 가운데

남부군의 총사령관(總司令官)이었던 이현상이 사살당하기 전까지 이 일대를 무대로 활약했다고 한다

 

 

 

 

연하천(烟霞泉)산장은 명선봉 북쪽 가슴턱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은 고산지대 임에도 숲속을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구름속에서 흐르고 있다고 하여 연하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토끼봉(1,534m)은 주변에 토끼가 많거나 봉우리가 토끼 모양이라서 그러는게 아니다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토끼봉(卯方)으로 부르며, "지보등"이란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며, 서쪽으로는

반야봉의 웅장한 모습과 토끼봉 남쪽 능선길을 따라서 내려가면 칠불사에 도착하게 된다

 

 

 

 

<화개재는 지리산 장터중 하나이다>  경남에서는 연등골을 따라 올라오는 소금과 해산물을

전북에서는 뱀사골에서 삼베와 산나물 등을 물물 교환하였던 장소였다고 한다

지금은 지역간 도로가 개설되어 사람들이 편하게 이동하고 있지만 옛날에 어떻게 짐을 지고 오르내렸을까요

 

 

 

 

화개재에서 힘들게 목조테크 550계단를 밟고 삼도봉에 올라선다

삼각 투구모양의 청동 표시물이 석양에 빛이나고 반야봉의 봉우리에 가려져서 

눈에 띌만한 봉우리는 아니지만 지리산을 삼도로 구분하는 기점으로

청동표시물에는 전남, 전북, 경남 3도민이 마주보며 천지인이 하나됨을 기리다 라는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삼도봉(三道峰, 1,499m)은 3개 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어 삼도봉으로 불린다

원래 삼도봉은 정상 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낫날봉으로 불렸다고 한다

낫날이란 표현의 발음이 어려웠던 탓에 등산객들 사이에선 "낫날봉"이 "날라리봉"

또는 "늴리리봉" 등으로 더 알려져 있었지만 하지만 조금 천박한 느낌의 날라리봉

늴리리봉 등 보다 삼도의 경계기점이란 뜻의 삼도봉이 훨씬 잘 어울려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반야봉을 오르는 노루목 삼거리로 반야봉은 작년 가실에 단풍구경차 올랐다가

피아골로 하산하였기에 오늘은 백두대간 길에만 충실한다

3대 주봉의 하나인 반야봉(般若峰,)을 다녀 오려면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임걸령(林傑嶺)은 고령(高嶺)인데도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능선이 동남풍을 막아주니 녹림속에서 천혜의 요지이며

샘터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고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조선 명종 때의 초적두목 임걸년의 이름에서 유래되어 임걸령이 되었는데

이곳에 진을 치고 말을 길렀다고 하고 실제로 마구와 철촉이 발견되었다고 전해진다

 

 

 

 

<피아골 삼거리는 단풍철이 되면 북적 북적 하는 곳이다>

지리산 낭인의 한 사람인 시인 이원규는 지리산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거든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길 바랍니다

다만 등산(登山)은 말고 입산(入山)하러 오시라고 하였다, 등산은

인간의 정복욕과 교만의 길이지만 입산은 자연과 한 몸이 되는 상생(相生)의 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리산은 다닐때마다 힘들어도 그래도 또 오고 싶은 산이다

내가 사랑했던 여인같은 지리산~

아름다운 모습을 가슴깊이 담으려 했지만 다 둘러보지 못한것이 아쉽다

 

 

 

 

<돼지 평지전이란?> 옛날 고산지대에 평평한 평전(平田)에 멧돼지가

하두 많아 붙여진 이름이며, 또한 능선 안부에 진달래와 철쭉으로

유명한 돼지령에 멧돼지가 원추리 뿌리를 종종 파 먹던 곳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노고단에서 뻗어 내려간 왕시리봉의 능선이다>

장장 14시간 사투끝에 노고단이 가까워졌으며, 어느 뉘가 지리산의 모습에 취하지 않겠는가

싱그러운 5월의 햇살이 온 골을 더 듬으며 광활한 산줄기들이 출렁거리게 하였으며~

좌측으로 불무장등 너머로 지리산의 아름다운 비경들이 백두대간 종주길에 끝까지 함께 한다

 

 

 

 

노고단(老姑壇, 1,507)은 천왕봉(1,915), 반야봉(1,734)과 함꼐 지리산 3대봉의 하나이다

신라시대에 화랑국선(花郞國仙)의 연무도장이 되는 한편 제단을 만들어서

산신제를 지냈던 영봉(靈峰)이였으며, 노고단이란 도교(道敎)에서 온 말로

우리말로는 "할미단"이며, "할미"는 국모(國母神)인 서술성모(西述聖母)를 일컫는 말이란다

 

 

 

 

노고단 고개의 돌탑은 휴식년제로 올라가지 못했을 때 정상돌탑과 똑같은 오양으로 쌓았다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 산신을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묘셔 매년 제사를 올렸던 것으로 전한다 또한 고산지대로서 전망이 좋고

시원해서 신라시대에는 주로 화랑들의 심신 수련장이었고 휴양지이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좌측에 종석대는 백두대간 능선상에 있지만 통제구간이라 갈 수가 없는 곳이다

종석대란 이름은 바위에 부딪히는 바람소리가 돌송을 울리는 소리와 같다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이곳의 노고단대피소는 1920년대에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활동하였던 선교사들이

풍토병 치료를 위해 지었던 수양관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많은 등산인들이 사용하는

노고단대피소로 사용하고 있지만 한여름에도 날씨가 서늘하여 건강을 위해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새벽 3시 30분에 출발해서 15시간 사투끝에 성삼재에 도착했다>

5월의 싱그러운 자연과 함께 야생화에 취하고, 봄 향기에 취하고, 지리산의 아름다운 비경에 취했다

지리산은 걸어갈 때에는 힘들어도 내려오면 허전하고 또한 그리움이 자라난다

얼마간은 오늘 종주 했던날들에 취해서 살겠지만 그리우면 또 찾아 올 것이다

어렵고 힘들게 종주를 하였던 만큼 자신감으로 백두대간의 완주를 위해 열심히 도전해 나아갈 것이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3 : 00 ~ 17 : 50  (14시간 50분)      ◎ 날씨 : 아주, 맑음

 

 

Giovanni Marradi - You And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