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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백두대간(완주)

백두대간 제3구간(여원재-복성이재) 종주산행

백두대간 제3구간(여원재 - 고남산 - 복성이재)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3년         05월          20일          (월요일)

◎ 산행위치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아영면 / 장수군 번안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여원재(女院峙, 470m) - 장치 - 고남산古南山, 846.4m() - 통안재 - 매요마을(휴게소)

                      유치삼거리 - 사치재 - 새맥이재 - 시리봉(776.8m) - 남근석바위 - 아막성터 - 복성이재

 

◎ 산행거리 : 여원재 ~ 5.3Km ~ 고남산 ~ 2.8Km ~ 유치재 ~ 2.3Km ~ 매요마을(휴게소) ~ 2.5Km 

                      사치재 ~ 2.4Km ~ 새맥이재 ~ 1.3Km ~ 시리봉갈림길 ~ 2.3Km ~ 아막성터 ~ 1.3Km ~ 복성이재 

                      도보거리   =   약  120.2Km           실제도보거리   =   약 22.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5 : 50 ~ 14 : 20  (08시간 20분)      ◎ 날씨 : 맑음 후 흐림

 

            ◐ 한반도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의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 산행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의 병사봉(兵使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江)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 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하며,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 금수강산이 되었으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여의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여원재(女院峙)는 해발 470m로 남원시 운봉읍 장교리와 이백면 양가리를 잇는 고갯마루이다

일명 연재(鳶峙)라 부르기도 하는데, 고개 서편으로 평원을 이룬 구릉이 운봉면이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여원낙조라 하여 운봉팔경 중 한 곳으로 등산 동호인이나

문화유산 답사 애호가들은 지리산 연봉을 한눈에 감상하기 좋은 곳이 이곳 여원치라고 대답한다

 

 

 

 

여원재(女院峙)는 남원쪽에서 올 때에는 99구비 고개를 돌고 돌아 올라야 하는 높은 고갯마루이다

운봉쪽에서는 해발 500m의 고냉지라서 그다지 높게 느껴지지 않는 평지와 같은 곳이며

운봉의 지형을 간접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으며, 고갯마루를 넘어가면~

들녁 끝에 지리산 서부능선인 만복대, 고리봉에서 팔랑치로 이어진 바래봉의 산줄기가 장엄하게 펼쳐진다

 

 

 

 

여원치는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기도 했다, 고려말 침입한 왜군을 무찌르기 위해 이성계장군이

황산 운봉평야에 도달했을 때, 백발의 할머니 한분이 나타나 전략을 알려줌으로써

대승을 거두었으니 이것이 황산대첩이고,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이성계가 이곳에

그 여인을 모시는 "여원(女院)"을 지어 주었다, 그리하여 "여원"이 있는 곳이라 하여 여원재(女院峙)가 되었다

 

 

 

 

여원재를 지나가는 24번 국도는 전남 신안군 지도읍에서 동서로 가로 지른다

이곳에 여원재에서 계속 동진하면서 울산에 닿을 수 있는 일반 국도이며

백두대간 등산안내도가 있는 좌측으로 이른 아침에 들어서면서 장치마을로 길을 잡는다

 

 

 

 

여원재에서 올라서면 좌측으로 연재마을이 보이고 안쪽으로 장치부락(장동)이 있다

옛부터 노루가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는 형국이라 하여 "노루골"이라 불렀는데

이것을 한문으로 표기해서 노루장(獐)를 써서 장동(獐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솔길을 내려서면 여원재 1.2Km 고남산5.2Km 이정표를 만난다

밭을 가로질러 야산이 마루금이나 밭 주인에게 폐가 될까봐

마을길을 따라 200m정도 우회하여 장치고개의 마루금에 복귀한다

 

 

 

 

콘크리트 마을길을 따라 파란지붕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장치고개에서 우측 산으로 접어든다

장치마을은 통상 백두대간상 두번째 마을을 지나는 셈이 되어 버렸다

 

 

 

 

오솔길 양 옆으로 빽빽하게 우거진 소나무 숲에서 솔향기가 어우러져 뿜어져 나온다

이 향기가 온 몸에 퍼지자 산을 오를 때의 힘든 고통은 사라지고

온 몸의 신경들이 흥겨워서 춤을 춘다 이 맛에 중독되면 그 어떤 명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좌,우 마을로 내려서는 듯한 임도를 가로 질러 송림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장치마을 이름을 붙여 장치고개라 한다

우측으로 장치마을이 보이는데 우리나라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마을이다

 

 

 

 

이내 마루금은 임도같은 너른 산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방향이 꺽이면서

대간길은 서서히 산속으로 빨려 들어가며서 고남산을 오른다

 

 

 

 

운봉(雲峰)은 철쭉과 판소리의 고장으로 말 그대로 구름에 뒤덮힌 큰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을 고원지대이다

산에서 내려다 보면 정말 넓고 싱싱한 들판이 무척 풍요롭게 보이며, 바래봉과 고리봉 정령치를 이어

노고단으로 향하는 산줄기와 고리봉에서 수정봉을 통하여 고남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운봉읍을 감싸면서 스잔한 구름이 고원지대에 걸려 있는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어 운봉이란 말이 실감이 난다

 

 

 

 

<지도상에 합민성(641)은 서쪽 시루봉으로 향하는 방향에 위치하여 대간길에서 벗어나 있다>

합민성(장교산성, 할미성, 합미성)은 남원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산성으로 기록에 의하면 동학농민혁명 때

운봉 민보군의 거점이엇다고 한다, 성곽은 능선을 따라 서남 방향으로 누어고치 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돌출된 적대가 있고, 그 동편에 남문, 북편에 우루대, 서북각에 서문 등 세 군데의 성문 유지가 있고

서북편 중앙에 샘터가 남아 있다, 성내에서는 다수의 기와조각, 토기조각등 삼국시대의 유물이 채집되었으며

합미성은 쌀을 저장해 두었던 곳이라 하여 합미성으로 불린다, 또한 남원 이백면 주민들은 방학산성이라 부른다

 

 

 

 

소나무 향기에 중독 되었던 기운을 쏟아 부을곳이 없었는데

짧은 암벽을 오르면서 힘을 써야 하는 곳이 나온다

암릉을 올라서면 고남산 정상에 다가섬을 의미하는 목제계단길이 나온다

 

 

 

 

암릉 오름길에 있는 철계단을 지나야 고남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나무계단에 올라 목마름에 물도 흘러 보내주고

빵도 한조각 텅빈 위장에 채워도 주고 사방팔방 펼쳐지는 산그리매에 길게 인사를 가졌다

 

 

 

 

횡재를 만난 듯한 아름답게 펼쳐진 운해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힘들게 올라온 만큼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들었으며~

번암면 마을 풍경이 운해에 가리어 산을 오르는 참맛을 느끼게 하였다

 

 

 

 

여원재에서 시작한 우리의 발걸음이 일목요연하게 바라보인다

산그리메에 마음을 다 뺏기고도 가슴이 이렇게 행복한데

마치 사랑하는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마음도 이런 기분이겠지요?

 

 

 

 

조망바위부터 고남산(古南山) 정수리까지는 암릉이 곳곳에 솟구쳐 있다

산객의 마음을 깊은 산속으로 빠져들게 하였으며

운해의 고즈넉한 풍경은 마치 바다위에 떠 있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환상적이다

 

 

 

 

우리의 금수강산 백두대간의 길에서 처음 맛보는 멋진 풍경이다

저 멀리 덕유산도 반갑게 얼굴을 내밀고 있고, 우측으로

함양 백운산이 바통을 이어 받을 준비를 하면서 백두의 산줄기가 힘차가 뻗어가고 있다

 

 

 

 

와~ 다른 말이 필요 할까요? 마치 구름위에 떠 있는 기분이다

연분홍 철쭉의 향기에 코가 벌름거리게 하였으며

철쭉이 꽃망울을 활짝 터드리고 힘들게 올라온 산객의 마을을 달래준다

 

 

 

 

두개의 나무계단을 올라서자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고남산 정상에 올라선다

이른 아침이라 지킴이 아저씨는 없었으며, 전일상호신용금고에서

세운 정상표지판이 정상임을 알려 주었으며 정상석은 50m아래에 세워져 있다

 

 

 

 

고남산에서 시선을 돌리면 지리산의 서부능선이 장쾌하게 보인다

뒷쪽으로 지리낫 천왕봉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운봉(雲峰)이란 이름이 실감날 정도로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진다

 

 

 

 

화사하게 만개한 연분홍빛 철쭉이 자꾸만 우리의 발길을 붙잡고 늘어진다

우메~ 우메~ 멋져라, 연분홍빛 철쭉은 5월의 푸르름과 아침 운해와

함께 천상화원을 만들어 놓은 듯한 멋진 풍경에 마음도 벌겋게 물들어 버렸다

 

 

 

 

북동으로 보면 봉화산과 백운산, 장안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 광주의 무등산이 오락가락하고 지형을 살펴보면

이곳 고남산이 남원일대의 중추적인 방위 역활을 하지 않았나 싶다

 

 

 

 

남원시에서 세운 고남산 정상석이 잔디밭 넓은 공터에 세워져 있었다

남성적이면서 이삐고 멋지다, 이성계 장군이 큰 제를 올린 후

왕위에 등극했다고 했는데 아마도 시원하게 열려 있는 조망덕이 아닐까 한다

 

 

 

 

고남산(古南山, 846.8m)은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 북서쪽에 산동면과 경계를 이루며 솟아 잇다

고려말 태조 이성계가 왜구를 격퇴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도착하여 제단을 쌓고

이곳에서 산신제를 올리고 대승을 거두었다고하여 "태조봉" 또는 "제왕봉" 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고려말인 1380년(우왕6)에 500여척의 배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온 왜구들이 금강 입구인 진포(지금의 장항)로

침입하여 약탈과 살육 등 만해을 저지르다 퇴로가 막히자 약관 16살에 불과한 아지발도를 대장으로 한

수천명이 경상도 지역을 우회하여 상주, 함양 등를 약탈한 후 팔량치를 넘어 인월에 진을 치면서

한양으로 진격한다고 소문을 퍼트려 민심이 흉흉하여 당시 삼도(양광, 전라, 경상)순찰사로 임명된

이성계장군이 장수 이두란, 배극렴 등과 함께 여원치와 운봉을 지나 황산 북서쪽의 협곡에서

적장을 활로 쏘아 죽이고 왜적을 섬멸시켜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것이 유명한 "황산대첩"이라고 합니다

 

 

 

 

고남산 정상부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고남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통신중계탑 방향으로

내려서면 첫번째 임도에서 빨깐 페인트의 화살표가 우측으로 안내를 한다

 

 

 

 

이어서 두번째 임도를 만나면 우측으로 50m 진행하다가 좌측으로 내려선다

이 일대는 이성계와 관련된 지명이 많이 전해진다

고남산 초입에 장교리는 이성계를 수행하던 무학대사가 지세를 보고 고남산의 산줄기가 마을까지

뻗어내린 모습이 마치 긴 다리를 이어 놓은것 같다 하여 장교리(長橋里)라 하였고

운봉과 이웃한 인월은 황산대첩당시 이성계장군이 달을 끌어 올렸다 하여 인월(引月)이란 지명이 생겼다 한다

 

 

 

 

세번째 임도에 내려서면 좌측방향이다, 이도로를 따라 가면 권포리 마을이 있는데

이성계 장군이 산신제를 올릴 때 주둔하던 군사와 말들의 식수로 썼던

샘터 주변에 터를 잡은 권씨 일가의 권세가 크다고 하여 권포리(權布里)라 하였다

 

 

 

 

통안재(670m)는 권포리에서 산동 월석리 독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작은 독골재라고도 부르기도 하며, 독골재에 비하여

동네 안쪽에 있는 고개란 의미로 동리 안 고개란 뜻으로 통안재라 부른것 같다

 

 

 

 

통안재를 편안하게 넘어서면 경운기가 다닐 수 있는 불당재를 만난다

우측으로 보이는 임리저수지는 메요저수지의 담수 용량이

적어서 몇년전에 이곳에 댐을 만들어 산불방수 및 농업용수로 활용한단다

 

 

 

 

황금빛깔의 솔갈비(떨어진 솔잎)가 깔려 있는 양탄자 길이 매요마을까지 이어진다

연탄이 없었던 시절 솔갈비로 불을 지피던 생각이 떠 올랐으며~

그래서 이렇게 솔밭길을 걸어가면 고향의 향수에 젖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지도상에 유치재(573.2m)은 고갯마루로 보기에는 조금 이상하다

유치봉이라 해야 맞지 않을까 싶어지며

이곳은 산 봉우리 능선인 지점에 삼각점이 있으므로 고갯마루로 보는것은 엉성하다

 

 

 

 

산자락에 있는 밭뚝을 넘어서면 매요고개가 나온다

이곳이 유치재라 해야 맞지 않을까요?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 적어본 것잉께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백두대간상에 마을길을 통과하는 매요마을회관이다,<매요(梅腰)마을은 풍수설에 의하면>

옛부터 말의 허리처럼 생겼다하여 마을 이름을 말마(馬)자와 허리요(腰)자를 합하여 마요리라 하였는데

임진왜란 때에 고승인 유정대사(사명당)가 산천을 유람하다가 마요리에 당도하여

매화는 순결하여 이 마을에서 낳은 사람들은 매화같이 순결하고 선향할 것이니

마요리를 매요리로 고치는 것이 지형과 합당하다고 한 후에 이름을 지금의 매요리(梅腰里)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매요마을을 가로질러 가다보면 백두대간 산꾼들에게 너무나 유명한 오아시스 매요휴게실이 나타난다

매요할머니의 이름은 신순남이고 79세로 할아버지와 한마을에서 연애해서 결혼했는데

할아버지는 오래전에 콩장사 하러가시고(돌아가심) 자식들은 출가하여 대전과 서울에 살고 있으며

두번째 만난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시어 병원에 왔다 갔다 하시는데도 우리를 잊지 않고 반갑게 맞아 주신다

 

 

 

 

백두대간을 종주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할머니가 끓여주는 라면 한 그릇과

막걸리 한 사발을 마셔야만 비로서 그 자격이 주어지고

완주도 공인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맛은 대한민국 최고다~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매요휴게소를 지나면 백두대간 안내도가 세워져 있는 곳에서 도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야산을 올랐다 유치재삼거리 도로에 내려선다

매요마을은 산들이 구릉을 이루어 방풍 구실을 하니 풍해와 수해가 없어 농사 짓기에 좋은 환경으로 알려져 있다

 

 

 

 

매요리와 가산리의 중간, 사치마을과 연결되는 엉뚱한 지점에

"유치재"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은 "흐름고개" 즉 경사가 거의 없는 고개라는 의미다 "버드나무고개"로도 부른다

 

 

 

 

비록 야산과 같은 산들을 넘은것 같지만 만만치 않으며

소나무 숲길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백두대간상에 소나무 숲길로 가장 아름다운 명품길은 남원땅일 것이다

 

 

 

 

지도상 618m봉에서 사치재로 내려서기전 산성터였을 흔적을 만난다

성이라기 보다는 봉화를 올리던 곳이 아닌가 싶어지며

사치(모래재 부락)는 과거 백제의 영토였으며 신라 영토인 가산리와는 국경분쟁지였다고 한다

 

 

 

 

사치재(아실재, 498m)은 아실에서 장수군 반암면 유정리로 가는 고개이며

사치재의 원래 명칭은 모래언덕고개라는 뜻의 "모래재"였는데

한자와 하면서 모래 사(沙)자로 바꾸면서 사치(沙峙)재라 부르게 된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제의 잔재를 버리고 우리 고유 지명인 "모래재"로 바꾸어야 할 것이며

한창 고속도로가 공사중이어서 무단횡단으로 건너는데 위험하오니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다

 

 

 

 

지도상 697m봉 오름길에 가야할 길을 잠시 잊고 발길을 멈춘다

우측으로 88고속도로 지리산 휴게소가 있으며

허허로운 벌판의 아곡리마을 동산은 마치 작은 섬들이 바다위에 떠 있는 듯 한폭의 정겨운 풍경이다

 

 

 

 

제법 힘들게 697m봉 정상에 올라서니 헬기장이다

2년전에 올랐을 때는 산불지역이었는데

산불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숲이 우거져 있으며 마루금은 우측이다

 

 

 

 

새맥이재로 가야할 능선길이 일목요연하게 조망된다

우측으로 바래봉 능선길을 바라보면서

자연이 주는 산수화 풍경을 벗삼아 한동안 상념에 잠기면서 능선길을 걸어간다

 

 

 

 

우측으로 운봉읍과 인월면의 경계에 있는 황산(荒山, 697.2m)이 조망된다

소나무 숲이 울창해서 멋이 있고

피바위가 있는 나천쪽으로 깎아지른 벼랑을 이루고 있어 노송과 잘 어우러져 경관이 아주 좋은 곳이다

 

 

 

 

새맥이재는 꼬부랑재와 당동을 잇는 우마차길로 임도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남원시 아영면 봉대리마을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 북쪽에 있는 아막성과

남쪽에 잇는 가산산성의 중간에 위치하여 새맥이재나 모래재를 넘어 장수군과 통하는 옛날의 군사기지였단다

 

 

 

 

(여원재~복성이재)구간은 큰 산이 아니어서 시간과 힘을 들이 않고

가볍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구간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진달래가 어우러져 더욱더 멋진 산행의 묘미를 느끼는 것 같다

 

 

 

 

등로상에 거대한 입석바위를 만나는데~ 남근석이라나~

전혀 닮지도 않은 듯! 싶은데~

남자들이란 상징물을 만들어서라도 과시하고 싶은 욕망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싶어진다

 

 

 

 

입석바위를 올라서면 산행 지도상의 제법 높은 781m봉으로

일부 지도에서는 아막성산이라고 표기된 곳이다

철쭉 터널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키 만큼 자란 철쭉이 빽빽하여 진행이 어려울 정도다

 

 

 

 

아막성산을 내려서면 복성이재가 운무에 아스름히 보인다

5월은 어디를 가도 꽃을 만날 수 있는데

이렇게 화려한 꽃망울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 오늘 산행은 행운이 아닌가 싶어지네요

 

 

 

 

산과 들이 푸르르면 마음도 푸른물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있잖아요"

푸른물이 든게 아니구요~ 철쭉이 꽃바다를 이루면서 연분홍빛 물이 들었다

 

 

 

 

연분홍빛 철쭉이 눈부신 햇살과 어우러져 산상화원을 이루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 감탄이었으며

연홍색의  화려한 철쭉은 우리를 영원히 기억해 달라고 하는것 같았다

 

 

 

 

정성스레 쌓아 올린 돌탑이 있는곳을 지난다

아막산성이 있는 곳이며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가 격렬하게 영토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라 한다

 

 

 

 

아막산성(阿莫山城)은 龍城誌 기록에 의하면

신라와 백제의 옛성루이다

옛 산성이 있어서인지 고느넉한 풍경이 왠지 포근한 마음이 들었다

 

 

 

 

아막성(阿幕城)은 신라에서는 "모산성"이라 했고 백제에서는 아막성이라 했던 곳이다

아영고원 줄기에 자리한 산봉우리를 에워싼 것으로 성 둘레는 632m이고

북쪽에 수구와 복문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전북 지방기념물 제 38호로 지정되어 있다

 

 

 

 

아막성 주변에는 기와조각과 백제토기 파편들이 발견되고 있고

동쪽에 직경 1.5m의 원형 석축으로 된 정호지가 있으며

일부구간을 제외하고는 성벽이 무너져내려 성을 쌓았던 돌들이 너덜처럼 사면에 널려 있다

 

 

 

 

작은 복성이재에 도착한다~ 우측으로 성리(흥부마을)이 있는데

우리나라 판소리중 "동편제"의 발생지이며

또한 판소리 다섯마당 가운데 하나인 흥부가의 배경이된 마을이기도 합니다

 

 

 

 

복성이재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흥부전의 배경이 된 남원시 아영면 성리(흥부마을)이 있다

성리마을은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발복지로 밝혀졌다

흥부가와 춘보설화는 가난끝에 부자가 된 인생역정, 선덕의 베품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내용이 유사하다

 

 

 

 

복성이재는 기인(奇人) 변도탄이 천기(天氣)를 보니 삼년내에 국가에 큰 전란을 예시하고

국방을 튼튼히 할것을 상소하였으나 평화로운 기운을 어지럽게 한다하여 삭탈관직을 당하고

전란을 대비 피난처를 탐색하던 중 천기의 기운이 북두칠성 중에 복성이 남쪽으로 비쳐

별빛을 따라 지리산으로 향하는데 복성 별빛이 멈추는 곳에 자리를 잡고 움막을 지었다 하여 복성이재로 부른다

 

 

 

 

복성이재는 남원시와 장수군 경계에 위치한 고갯마루로

751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며

해발발 550m봄이면 봉화산 철쭉재와 흥부마을 테마산행으로 북쩍거린다

 

 

 

 

성리마을앞의 흥부내외의 박타는 조형물에서 "흥보가의 한 대목을 읊어보면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시르렁 실근 톱질이야 에이여루 톱질이로고나 몹쓸 놈의 팔자로다 원수놈의 가난이로구나~

어떤 사람은 팔자 좋아 일대영화 부귀헌듸 이놈의 팔자는 어히 허여 박을 타서 먹고사느냐 에이여루 당거주소!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5 : 50 ~ 14 : 20  (08시간 20분)      ◎ 날씨 : 맑음 후 흐림

 

 

 

The Evening Bell(저녁종) / Sheila Ryan

 

캐나다에서 활동중인 "Sheila Ryan"은 아일랜드출생으로 아이리쉬 하프와 키타에 능숙하며

아이리쉬 캘틱음악을 주로 하고 있다, Sheila Ryan - Evening Bell(저녁 종소리)은

일명:상사화(相思花)는 그녀의 3집 앨범 "Down by the Glenside"에 수록된 곡으로

그녀가 아이리쉬 하프를 연주하며 부른 애틋하고도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곡이 "Evening Bell"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