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2구간(성삼재 - 만복대 - 여원재)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2년 06월 04일 월요일
◎ 산행위치 :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 경상남도 하동군에 걸쳐 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성삼재(1.090m) - 작은고리봉(1.248m) - 묘봉치 - 만복대(萬福臺, 1.438m) - 정령치(1.172m)
고리봉(1.035m) - 고기리삼거리 - 노치(샘)마을 - 수정봉(水晶峰, 805m) - 갓바래봉 - 여원재
◎ 산행거리 : 섬삼재 ~ 1.7Km ~ 작은고리봉 ~ 3.6Km ~ 만복대 ~ 2.1Km ~ 점령치 ~ 0.9Km
큰고리봉 ~ 3.2Km ~ 고기리삼거리 ~ 1.9Km ~ 노치마을 ~ 1.9Km ~ 수정봉 ~ 4.3Km ~ 여원재
도보거리 = 약 20.24Km 실제도보거리 = 약 22.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4 : 40 ~ 13 : 20 (08시간 40분) ◎ 날씨 : 아주, 맑음
◐ 한반도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의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 산행이란? ◑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의 병사봉(兵使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江)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 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하며,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 금수강산이 되었으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여의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오월은 "계절의 여왕, 가정의 달"이란 수많은 수식어를 달고 있었다
하지만 오월은 스치는 바람처럼 말없이 사라졌으며~
연록의 푸르름이 펼쳐지는 바래봉능선은 6월의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밤잠을 설쳐가며 구례 버스터미날에 도착했지만 첫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시간이 30분 당겨져 있어 택시(30.000)로 성삼재에 올라 왔는데
성삼재는 6월인데도 날씨가 엄청 추워서 옷깃을 여미게 하였으며
버스에 내린 지리산 종주객들이 북쩍북쩍하면서 우리도 산행 준비를 하었다
성삼재는 삼한시대에 마한군에 밀리던 진한왕이 전란을 피하여 지리산 심산유곡으로 들어왔다
달궁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북쪽능선에 8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다는 팔랑재
팔랑재 서쪽능선은 정장군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고 하여 정령치(鄭嶺峙)
동쪽은 황장군이 맡아 지키게 하였으므로 황령재 그리고 남쪽은 가장 중요한 요지이므로
성씨가 다른 3명의 장군이 방어케 하였으므로 성삼재(姓三峙)라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성삼재에서 좌측 달궁계곡 방면으로 100m정도 내려가야 한다
만복대, 당동마을 이정목이 있는 곳이 산행 들머리이며~
경방기간이라 통제하는 철조망을 넘어 숲길을 따라 고리봉으로 향한다
<작은 고리봉 오름길에서 뒤돌아본 성삼재의 풍경이다>
지리산의 옛 이름은 두류산이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방장산 등 여러가지 이름이 있지만
조선 말까지만 하여도 두류산으로 불리워져 왔으며 두류산(頭流山)의 명칭은
백두산이 흘러(流)와 자리를 잡았다 하여 백두의 끝인 지금의 지리산으로 바뀐 것이라 한다
지리산 콘도 등 온천 유락시설이 있는 전남 구례군 산동면 산동마을 전경이다
지리산의 남쪽 자락을 휘감고 도는 섬진강의 습한 기온 때문에
산들은 구름바다에 잠겨 버렸으며, 저 멀리 봉두산과 조계산 등
다도해의 섬처럼 선경을 연출하면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아름다운 풍경이다
고리봉 정상석 바로 옆에 "탐방로 아님"이란 곳이 있다
그곳이 심마니들이 산동면으로 내려가는 길이며~
당동마을로 내려가는 길목은 통제 안내판을 설치해 놓았다
이곳의 고리봉은 정령치 뒤에 있는 고리봉과 구별하기 위해 "작은 고리봉"이라 한다
고리봉은 한자로 "환봉(環峰)"이라 하는데, 고리 環이니 같은 뜻이다
아주 옛날에 남해바다 하동에서부터 섬진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오면
전라북도 남원의 오수정까지 배들이 오르 내렸다고 하여 오르 내리던
배들을 묶어 놓았던 고리같은 큰 바위가 이 산 어딘가에 있어 산이름이 유래되었는 것이다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여 지리산 천왕봉이 눈앞에 가까이 다가온다
천왕봉에서 시작한 백두의 길이 말발굽으로 여기까지 왔으며~
건너편으로 반야봉은 손에 잡힐 듯 마주보니 반야의 전설이 생각이 난다
<노고단은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가 살고 있었다>
지리산(智異山) 어느 구석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盤若)를 만나서 경혼한뒤 천왕봉에서 살았다
마고할미는 슬하에 여덟 명의 딸을 두었는데, 그 뒤 반야가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처와 딸들을 뒤로하고 반야봉으로 들어 갔다고 한다, 마고할미는 백발이 되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남편 반야를 기다리며 나무껍질을 벗겨서 남편 반야를 위해 옷을 지었단다
그리고 딸들을 한 명씩 전국 팔도로 내려 보내고 홀로 남편 반야를 기다리다 돌아오지 않자
옷을 갈기 갈기 찢어버리고 숨을 거두었는데, 찢겨진 옷은 바람에 날려 "반야봉"으로 날아가 풍란이 되었다고 한다
묘봉치는 고개가 통과하는 산지가 다소 험준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예를들면 정령치, 팔랑치, 소백산의 마당치 등을 말하며~
치(峙)는 우뚝한 곳에 적과의 방어선을 구축하였던 고개를 칭하는 것 같다
만복대(萬福臺)에서 바라본 반야봉은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곳이라 하여 반야봉이라 부른다
노고할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딸들은 八道로 내려가 "팔도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며
반야봉에 안개와 구름이 자주끼는 것은 하늘이 저승에서 반야와 마고할미가 서로 상봉하도록 하는 것이라 한다
만복대(萬福臺, 1.438m)은 성삼재와 여원재 구간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다
지리산을 찾은 사람에게 만가지 복을 준다고 하여 만복대라 하였으며~
시골 아낙의 엉덩이처럼 풍만하고 넉넉하여 바라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만복대는 전남 구례군 산동면과 전북 남원시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가을철이면 지리산 최고의 억새꽃 능선으로 유명하며~
해질녘에 황금빛으로 물들어 지리산 주능선의 웅장함과 어우러져 환상적이다
정령치를 넘어서 우리가 가야할 큰고리봉 능선이 일목요연하다
큰고리봉에서 좌측으로 노치마을과 수정봉이 있으며~
백두대간의 산줄기도 북으로 가면서 섬처럼 떠 있는 풍경이 운치를 더한다
<정령치(鄭嶺峙)는 서산대사의 황령암기에 의하면>
기원전 84년에 마한(馬韓)의 왕이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鄭)씨 성을 가진 장군으로 하여금 성(城)을 쌓고
지키게 하였다고 하여 지명이 정령치(鄭嶺峙)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정령치는 안개가 낀날에는 자신이 신선이 된 기분이라고 한다
이곳은 신라시대 화랑이 무술을 연마한 곳이라고 하며~
산정에는 옛날의 역사를 실증이라도 하듯 군데 군데 유적이 남아 있다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만수천계곡에 있는 달궁(達宮)은 달의 궁전이라는 의미란다
그리고 용성지에 의하면 기원 전 350년 마한의 왕이 별궁(달궁)을 짓고
진한의 내습을 막고자 정령치와 황령치에 성을 쌓아 71년간 성을 지켰다는 기록이 있다
큰 고리봉(環峰, 1.305m)에서 직진으로 가는 길은 세걸산을 거쳐 바래봉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서 좌측 고기리 방향으로 내려서면서 지리산 주능선과는 이별을 하고~
옛날에 이 지역 일대가 물에 잠기는 바다였기 때문에 정령치 고갯마루까지
배가 들어 왔는데, 아직도 배를 매어 놓았다는 고리같은 큰 바위가 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다
성삼재에서 큰고리봉은 서북능선의 지리산 구간에 속한다
고리봉을 내려서면 전혀 다른 산세를 만나게 되며~
소나무 명품길은 하루종일 걷고 싶을 정도로 정겨운 길이다
주천면 고기리 삼거리는 정령치와 남원시내로 들어가는 갈림길이다
낮은 평치처럼 보이는 이 곳은 해발 500m가 넘는 곳이며~
주변은 민박집과 가든이 있어서 홀로 종주하는 분들에게는 편리할 듯하다
<737번 지방도를 따라 약 2Km 정도 노치마을까지 가야한다>
옛날에는 이 지역 일대가 물에 잠기 바다였기 때문에 배가 들어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그래서 이곳에는 앞 동네 이름도 "배 마을"이라는 뜻의 주촌(舟村)이라 하고
가재마을(노치마을)역시 "바닷가재"에서 따온 이름이고, 고기리도 고기와 관게 있는 이름인지~
백두대간 길에서 차가 다니는 도로를 걷는 경우는 여기가 유일한 곳이 아닐런지~
산자분수령은 즉 산을 스스로 물을 가른다는 말이 실감이 가는 곳으로
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왼쪽의 빗물은 섬진강으로 오른쪽의 빗물은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모내기한 시골 풍경이 한없이 정겨운 길이다
장사익에 찔레꽃 노래가 생각이 납니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내가 사랑한 여인은 하얀 찔레꽃럼 순박하고 아름다웠지요, 그래서 비가오면 생각이 납니다
노치(蘆峙)마을은 해발 550의 고원지대로서 본래의 이름은 갈재였다고 한다
지리산의 관문인 고리봉과 만복대에 억새가 많이 있어 갈재라 불렀는데
지금은 갈대"蘆" 고개"峙"자를 써서 노치(蘆峙)마을이라 부르고 있으며
그렇다면 선조들은 이곳이 평지가 아니라 "고개"였음을 옛날부터 알았다는 것이다
노치(蘆峙)마을 회관 옆에는 백두대간 지도가 새겨진 구조물이 한반도 모양이다
좌측에 표지석에는 14정맥이 새겨져 있고 우측의 표지석은 백두대간을
통과하는 국내 유일의 주천면 덕치리 노치(盧峙)마을이라 새겨져 있었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진부령을 지나 백두산까지 두발로 걸어갈 수 있기를 염원해 본다
<백두대간 마루금상에 샘이 있을 수가 없겠지요>
노치샘은 사시사철 수량이 풍부하고 물 맛이 좋기로 소문나 있다
백두의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샘이 아닌가 싶으며~
농사일을 하는 마을 사람들은 대간꾼들의 방문이 반갑지만은 않겠지요
노치샘을 지나 마을 어귀를 올라서면 우람한 노송들이 반긴다
노송 네 그루가 노치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백두대간이 마을로 마실을 왔다가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노치마을에는 풍수지리상의 황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자리라는 당산제전이 있다
옛날 첩첩산중인 이곳에 짚신을 만들어 팔았던 가난한 거지가 있었는데~
추운 겨울에 거지가 죽자 동네 사람들이 그를 묻어 주려고 하였으나
고산지대인 이곳에 눈이 많이 쌓여 묻을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히 관이 하나 들어 갈 정도로 눈이 녹아 있는 땅을 발견하고
그 곳에 거지를 묻어 주었는데 그 곳이 바로 황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이었다는 것이다
당산제전 뒷쪽으로 수정봉을 올라가는 산행 들머리가 있다
선답자의 시그널이 주령주렁 메달려 반기였으며~
입구에 백두대간 안내도가 있어 길 잃을 염려는 없을 듯하다
수정봉 오름길은 흑룡이 용트림을 하듯 꼬불꼬불 올라간다
땀 방울이 흘러 내리면서 시원한 바람이 그리웠으며~
황룡무주의 명당이라 그런지 힘들어도 한없이 걷고 싶은 길이다
<지도상 덕운봉(745m)을 넘어서면 삼거리 이정목을 만난다>
이곳에서 구룡폭포를 거쳐 육모정으로 내려가는 일반등로가 연결된다
여름철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구룡폭포를 찾아 오는 곳이며~
구룡폭포는 아홉마리의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폭포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마치 고인돌처럼 생긴 자연석바위를 지난다>
송흥록 명창이 수정봉 정상 소나무숲에서 귀곡성을 불렀다고 한다
그럴때마다 귀신이 나타난줄 알고 혼비백산을 하였는데~
혹시나 이 바위에 앉아서 귀곡성을 불렀는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는가
수정봉(水晶峰, 805m)은 운봉읍 행정리와 주촌면 덕치리 경계의 산이다
거대한 정상석이 백두대간상의 명산임을 자랑하고 있으며~
산 중턱에 수정(水晶)을 채굴하던 암벽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정봉은 이백면에서 바라보면 650m의 높은 산이다>
하지만 운봉읍 주촌리의 고지대에서 바라보면 250m의 낮은 산이다
특히 수정봉은 운봉의 분지를 에워싸는 북서 산릉의 봉우리로
화강암이 변성받은 암석으로 이루어져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수정봉은 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날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섬진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의 분수계가 되는 곳으로 구룡천이 상류쪽으로 심하게 침식이 진전되는
두부침식(頭部侵蝕)에 의해 정령치 물줄기를 만나면서 물줄기가 방향을 바꾸어 구룡천으로
흘러 들어가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하천이 흐르지 않는 구간이 낙동강과 섬진강의 분수계가 된 것이다
입망치(笠望峙)는 옛날에 우마차가 많이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고개마루가 삿갓쓴 양반들이 쉬어가는 쉼터가 아닐런지~
운봉읍과 행정리 갓바래 마을과 이백면 과립리 입촌마을을 잇는 고갯길이다
지도상의 705m봉은 누군가 매직으로 갓바래봉이라고 씌여 있다
입망치를 순수한 우리말로 하면 갓바래기라는 뜻인데
동쪽의 남원시 운봉읍 행정리 갓바래마을에서 따온 명칭으로 보인다
수정봉과 갓바래봉 부근에는 산성의 흔적이 많이 보인다
들이 넓고 물산이 풍부하다보니 백제와 신라가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치열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갓바래봉을 내려서면 전망바위에서 좌측으로 바라본 주촌면과 남원시 전경이다
남원하면 목기의 대명사로 여길만큼 유명하다, 오죽하면 운봉읍 동쪽의
산봉우리 이름을 스님들의 밥그릇인 바리떼를 엎어 놓은 것 같다 하여
바래봉이라 이름을 지었을까요, 남원의 목기는 특유의 향기와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양, 단단한 나무 재질과 벗겨지지 않은 옻칠로 남원의 특산품으로 손꼽혀 왔다
동쪽으로 보이는 공안리 벌판은 황산대첩 현장으로 고려 우왕 6년(1380)에
이성계가 왜군 아지발도(아키바쓰)를 격퇴시킨 황산벌 현장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선조 10년(1577)에 세운 황산대첩비가 사적 제 104호로 지정되었다
임도에 내려서면 다시 산으로 들어가는데 여원재(女院峙)가 멀지 않았다
산행길에 야생화가 봄의 끝자락 정취를 마음껏 느끼게 하였으며~
소나무 숲길을 걸으면서 혹시나 송이버섯이 있을지 눈길을 바쁘게 움직여 보았다
이정목에서 좌측으로 주지봉이 있는데, 아들 낳을 일이 없어 그냥 지나친다
봉우리에 주지봉이라는 산신단이 있는데, 소원을 비는 유명한 곳인데~
전국에 아들이 없는 여성들이 찾아와 아들 낳아 달라고 비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원재가 가까워지면서 마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전라북도 운봉읍 비전마을은 예로부터 판소리의 창시자인 송흥록이 태어난 곳이다
소리 한 대목이 울려 나올것만 같아 어깨라도 들썩거리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흥겨운 고장이다
백두대간길은 마을 농로를 따라 운성대장군(雲城大將軍) 석상이 있는 여원재에 도착한다
이곳의 명물 장승은 장성, 벅수, 벅시, 법수, 당산 등의 명칭으로 불려지는데~
각양각색의 장승들은 마을에 닥칠 화마(火魔)를 달래려는 사람들의 소박한 마음을 담고 있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눅두밭에 않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동학농민운동(1894)때에 일본군이 파란군복을 입어 파랑새는 일본군을 뜻하며, 농민 운동의
중심에 섰던 전봉준이 녹두장군이라고 불리워 졌던 것으로 보아 녹두밭은 전봉준을
뜻하며, 청포장수는 그 시대의 민중을 뜻하는 말인데, 동학혁명 때 농인혁명군들이
이곳 여원재에서 수 없이 희생되어 슬프고도 암울했던 역사가 우리의 가슴을 적시게 하는 곳이다
여원재는 고려말 이성계가 황산전투에 임할 때 꿈에 여신이 나타나서 길을 인도했다는 전설이 있다
꿈에 여신은 청상 과부로 왜구의 우두머리 아지발도(아키바쓰)가 가슴을 만지고 희롱하자
칼로 더럽혀진 자신의 가슴을 도려내고 자결 하였는데. 훗날 원수를 갚고자 이성계장군의
꿈에 현몽하여 전략을 알려주어 아지발도를 죽이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대승을 거두었다
이성계는 그 여인의 넋을 모시기 위해 "여원(女院)"을 지어 여원이 있는 고개라 하여 여원재라 부른다
옛날 왜구들이 경상도로 들어와 먹을 것이 풍부한 전라도를 쳐들어 가려면 이 고개를 넘어야 했다
이곳을 지나는 24번국도는 전남 신안군 지도읍에서 동서로 가르는데. 계속 동진하면서
경남 울산에 닿을 수 있는 일반 국도다, 백제와 신라를 잇는 중요한 도로 일 뿐만 아니라
양국의 전략적 군사 요충지로 여원재(女院峙)는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고개라 할 수 있는 곳이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4 : 40 ~ 13 : 20 (08시간 40분) ◎ 날씨 : 아주, 맑음
I'd Love You To Want Me - Lobo
'▩1대간 9정맥종주▩ > 백두대간(완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대간 6구간(신풍령-덕산재) 종주산행 (0) | 2012.08.05 |
---|---|
백두대간 5구간(육십령-신풍령) 종주산행 (0) | 2012.06.19 |
백두대간 4구간(복성이재-육십령) 종주산행 (0) | 2012.06.12 |
백두대간 제3구간(여원재-복성이재) 종주산행 (0) | 2012.06.06 |
백두대간 1구간(중산리-성삼재) 종주산행 (0) | 2012.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