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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백두대간(완주)

백두대간 4구간(복성이재-육십령) 종주산행

백두대간 제4구간(복성이재 - 영취산 - 육십령고개)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3년         08월          19일         (월요일)

◎ 산행위치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 장수군 장수읍, 번안면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복성이재(751번지방도) - 매봉(712.2m) - 봉화산(烽火山, 919.8m) - 광대치(廣大峙)

                      중치(中峙) - 중고개재 - 백운산(白雲山, 1,278.6m)   - 영취산(靈鷲山, 1,075.6m)

                      논개생가갈림길 - 덕운봉갈림길 - 북바위 - 구시봉(깃대봉, 1,014.8m) - 육십령(六十嶺)

 

◎ 산행거리 : 복성이재 ~ 4.2Km ~ 봉화산 ~ 6.2Km ~ 광대치 ~ 4.3Km ~ 중고고개 ~ 2.5Km 

                      백운산 ~ 3.5Km ~ 영취산 ~ 1.9Km ~ 덕운봉갈림길 ~ 5.9Km ~ 구시봉 ~ 2.7Km ~ 육십령 

                      도보거리   =   약  30.9Km           실제도보거리   =   약 31.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5 : 10 ~ 18 : 55  (13시간 45분)      ◎ 날씨 : 아주, 맑음

 

            ◐ 한반도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의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 산행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의 병사봉(兵使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江)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 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하며,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 금수강산이 되었으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여의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복성이재는 기인(奇人) 변도탄이 천기(天氣)를 보니 삼년내에 국가에 큰 전란을 예시하고

국방을 튼튼히 할것을 상소하였으나 평화로운 기운을 어지럽게 한다하여 삭탈관직을 당하고전란을 대비

피난처를 탐색하던 중 천기의 기운이 북두칠성 중에 복성이 남쪽으로 비쳐 별빛을 따라 지리산으로 향하는데

복성 별빛이 멈추는 곳에 자리를 잡고 움막을 지었다 하여 복성이재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후 쌀가루로 만든 움막은 군량미로 사용하여 왜적을 물리치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조정에서 변도탄의

충성심을 인정해서 큰 상을 내리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복성이 마을을 이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의 하나인 흥부전의 배경이다

이곳은 전해내려오는 설화와 지명을 근거로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발복지(發福地)로 밝혀졌다

이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복덕가(福德家) 춘보설화(春甫說話)가 전해져 오고 있다

흥부가와 춘보설화는 가난 끝에 부자가 된 인생역정, 선덕의 베품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내용이 유사하다

성리마을에는 박춘보의 묘로 추정된 무덤이 있다. 매년 정월 보름에 망제단에서 흥부를 기리는 춘보망제를 지내오고 있다

 

 

 

 

복성이재는 번암면의 복성이마을과 아영면의 성리마을을 연결하는

고갯마루로 751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며

고개를 남원시 아영면 사람들은 마을 이름을 따서 짓재(치재)라고 부르고 있다

 

 

 

 

흥부와 춘양이 그리고 충절의 고장 논개의 아름다운 고장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산속은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목기의 고장답게 소나무에서 품어져 나오는 솔향기에 "흥부가" 한 대목을 읊조리면서 산정에 들어선다

 

 

 

 

올라가세~ 올라가세~ 에이어루 봉화산을 오르는 몸쓸놈의 팔자로다, 어떤 사람은 팔자 좋아 일대영화 부귀헌디~

이놈의 팔자는 어히 허여 산을 오르는가~ 에이여루~ 올라가세! 산이 웬수로구나~

흥부가 한대목을 읊조리면 우측 아영면의 흥부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산군들이 아침햇살에 춤을 추기 시작한다

 

 

 

 

1960년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보리고개. 보리 농사를 수확하기 전까지 배고픈 춘공기를 지냈다

초근목피로 굶주림을 면하느라 뒷간마다 피똥의 흔적들!

닥치는대로 먹어야 했기에 거친 음식 탓도 못할 만큼,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했기 때문이다~

추수로 비축했던 겨울 양식은 떨어지고 산과 들은 얼어붙어 봄나물도 나지 않고

아직 보리순도 나오기 전 4월은 잔인한 달 다이어트는 상상 조차도 못할 만큼, 굶어 죽었던 보리고개.

시집 장가가기 전까지 보리 한말 먹기도 어려웠던 두메산골. 굶주림의 애환을 가장 잘 대변한것이 흥부전이다

 

 

 

 

매봉에서는 흥부마을로 유명한 아영리 성리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그리고 동화저수지가 보이고, 흥부전의 판소리에

나오는 화초장, 바윗거리, 흰죽배미. 노리다리 등의 지명이 실제로 있다고 한다

 

 

 

 

오랜 세월 지리산 자락에서 철쭉이라 하면 바래봉이 으뜸이었으나

봉화산 철쭉 또한 바래봉에 뒤지지 않는다, 바래봉이 화려하다면 봉화산은 그윽하다

멀리서는 매혹적인 빛깔로 유혹하고 다가서면 몽롱한 향기로 발길을 붙잡는다

 

 

 

 

매봉의 산 이름은 지도에도 없는 이름인데~ 최근에 만들어진 정상석과

봉화산이란 안내판 그리고 전에 없던 전망테크도 있어

매봉 정상에서 흥부골을 바라보면서 흥부의 발자취를 두루두루 살펴보다가 한동안 머물다가 내려선다

 

 

 

 

어른 키보다도 큰 철쭉 터널이 치재까지 이어지고

눈부신 뜨거운 매년 5월이면 철쭉 군락이

봉수대의 횃불이 타오르는 듯 철쭉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이다

 

 

 

 

나무테크가 설치되어 있는 치재사거리에 도착한다~ 치재마을의 서쪽 언덕위에 있는 고개다

동쪽가까이 까지 임도가 올라와 있어서 흔히 이용하는 교통로는 아니다~

이 지역은 각종 산채나물이 많은 지역으로 고개라는 뜻의 "峙"와 "재"를 합쳐서 지명이 되었다 한다

 

 

 

 

매봉에서 치재에 이르는 봉화산 철쭉은

그 빛깔이 유난히 붉어

산이 불타오르는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킬 정도라고 한다

 

 

 

 

봄철에 만났으면 좋으련만 잔인한 무더위에 만난 봉화산!

붉게 물든 철쭉은 언제다시 볼것인가

미련을 남겨둔채로 쏟아지는 햇살을 피해 초록의 향연이 펼쳐지는 나무숲으로 들어선다

 

 

 

 

철쭉터널을 지나면 봉화산 정상까지는 남원특유의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숲길 주변에는 딸기나무, 가시나무, 산초나무

칡넝쿨이 발목을 붙잡기도 한 잡목지대을 지나기도 하였지만 초록의 향연으로 초대된 기분이었다

 

 

 

 

저 산자락에 장자골이 있단다

장자란 부자(富者)의 존칭이며~ 흥부가 형 놀부와 같이 살던 곳으로 추정된다

노승(老僧)에게 나쁜 짓을 하여 재산이 폭망했다는

심술궂은 놀부와는 대조적으로 흥부는 잘 후대하여 도승(道僧)으로 부터 집터를 얻어 부자((富者)가 됐다 한다

 

 

 

 

장수군 번암면은 백운산, 장안산, 팔공산, 대성산, 고남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이렇듯 큰 산들이 첩첩으로 둘러 있어 수분계곡, 국포계곡, 사암계곡

지지계곡, 유정계곡 등이 골짜기를 이루고 자연경관이 빼어나서 가히 무릉선경을 연상케 한다

 

 

 

 

꼬부랑재를 꼬불꼬불 돌아서 긴 오름길을 올라서야 다리재에 다다른다

봉화산의 전위봉으로 보여지는 곳인데

이곳이 다리재라고 한다~ 필자는 지도상의 꼬부랑재와 다리재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백두대간의 덕유산과 지리산 중간 지점에 위치한 봉화산은

봄이면 철쭉으로 가을이면 억새로

최근에야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산으로 봉화산에서의 조망 역시 일품이다

 

 

 

 

남원시 인월면 성리마을은 예로부터 흥부전의 주인공인 흥부가 실존 인물이라고 전해옴에 따라

1992년 경희대학교 미속연구소에 고중을 의뢰하였다

그 결과 남원시 인월면 성산마을은 흥부가 출생한 곳이며

아영면 성리마을은 흥부가 놀부에게 쫓겨난 유랑 끝에 정착하여 복을 누리고 살았던 곳으로 밝혀졌다

성산리는 전라북도 남원시와 경상남도 함양군을 잇는 팔랑치(八良峙)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다

 

"흥부가"에 전라도는 운봉이요 경상도는 함양이라,

운봉, 함양 두 얼품에 흥보가 사는지라... 라는 대목에서 보듯이~ 운봉읍과 함양군 사이에 있는 성산리를 말한다

 

 

 

 

봉화산(烽火山,919.8m)은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시 아영면

경상남도 함양군의 2개군 3개 시군의 경계에 위치한다

봉화를 상징하는 정상석이 서 있고 그 옆에는 삼각점이 자리한다

덕유산과 지리산에 이르는 중간지점에 봉화대의 유적이 존재하였던 곳으로 역사적인 의미가 담긴 산이다

 

 

 

 

봉화산의 봉수대(烽燧臺)는 연기와 불로 급한 일을 전달하던 고대의 통신수단이다

높은 산에 있는 봉수대(烽燧臺)에서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로

위급한 소식을 중앙으로 전했다 동양에서는 물론 서양의 고대사회 및 미개사회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한다

 

 

 

 

오늘 가야할 백운산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아래로 영취산이~

그 너머로 남덕유산이 아물아물한다

좌측으로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 산줄기가 꿈틀거리면서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봉화산은 전에는 장안산으로 불리워졌고 봉수대가 있어서 봉화산으로 불리운것이 확인된다

동북쪽으로 떨어진 무명봉에서 "봉화산 봉화대"라는 팻말로 짐작할 뿐이며

봉화산은 5월이면 철쭉 군락이 봉수대의 횃불이 타오르는 듯이 펼쳐지고 가을이면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신록의 푸르름에 온 산이 향기롭게 느껴진다

억새가 살아 있네요

연예인이 아름답다 했는가~ 억새를 헤치고 사색하는 저 여인이 아름답지 않은가

 

 

 

 

화창한 날씨속에 초원의 푸르름이 모든것 하나 하나가 감동이요

산에는 행복이 넘고 넘치는것 같다

온갖 산새들이 아침을 알리는듯 노래를 하고 울~몽실님도 고맙다는 인사를 빼놓지 않군요

 

 

 

 

온갓 풀벌레가 옹알옹알 합창을 하는 소리에 발걸음은 가벼웁고

우측으로 봉화산쉼터의 정자가 보이고

이슬에 젖은 산길은 그래도 부드럽고 아름다운 길이기에 산꾼의 매력을 느끼게 합니다

 

 

 

 

내가 만약 화가였다면 봉화산 쉼터에서 그림을 그렸을 것이고

그리고 시인이었다면 시를 지었을 것이다

그 어느 유명한 화가가 이 아름다운 모습을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지리산 주능선이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이다

 

 

 

 

연비지맥의 분기점인 무명봉(870m) 오르기전에 "준희"님의 연비지맥의 아크릴판이 걸려 있다

동남쪽으로 옥잠봉, 매치재. 연비산, 오봉산, 팔령재를 넘어

삼봉산, 지안치, 팔두재, 화장산을 거쳐 남으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8Km의 산줄기를 연비지맥이라 한다

 

 

 

 

아영마을 저 멀리 끝없이 이어진 지리산의 연봉들! 산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노고단과 반야봉도 가물거리고

만복대와 백두의 산줄기가 꿈틀거리며 고남산을 거쳐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산그리메가 환상적이다

 

 

 

 

초록의 향연과 대자연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어찌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명봉에서 뒤돌아본 봉화산 뒷쪽으로 고남산과도 인사를 나눈다

사방팔방 시원한 산군들이 머리를 내민채 자기 이름을 맞춰 보라는 듯 그 높이를 자랑한다

 

 

 

 

백운산 넘어로 덕유산의 두 봉우리도 우리을 흥분시키고

억새능선 또한 아름답다, 오늘은 하늘을 보며

여백을 느끼는 산행이 펼쳐지면서 대자연의 위대함에 눈이 호사를 누린다

 

 

 

 

신록의 푸르름이 살아있네~ 살아 있어~

한없이 초라하고 작게 느껴질 때

산에 오르면 정상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백만장자가 부럽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낮의 더위는 더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철쪽능선, 억새능선을 지나서 이젠 암릉지대다

산길을 따라 돌아설적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더위도 잊은채 자연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것이 산꾼이다

 

 

 

 

백전면 대안리에서 올라오는 임도인듯! 출입금지란다

사람들이 많이 다닌 흔적이 있다

제발 힘들게 가꾼 농작물에 우리 산꾼님들께서는 절대로 손대지 말아야 할것이다

 

 

 

 

숲속으로 들어서면서 광대치를 향해 걸다보면 처음보는 이정목이다

지도상 944m봉으로 보이는데~ 고도계는 없고~

숲속 어디선가 솔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새들의 지저귐에 자연을 함께 즐기다가 광대치를 향해 내려선다

 

 

 

 

장수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지지리계곡과 함양군 대안리를 나누는 고갯길이다

광대치(廣大峙)는 "넓고 큰 고개"라는 뜻이지만, 원래의 민초들이

넘나들었던 길은 퇴색되고 이름만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고개중의 한곳이라 생각이 든다

 

 

 

 

이정목에는 약초재배단지라 쓰여져 있는데~ 궁금하다

어떤 귀한 약초를 재배를 하길래

이 높은 산중에 마치 삼팔선에 있는 철짹보다 더 높게 튼튼이 만들었을까요?

 

 

 

 

"달이 기우는 산"이란 뜻의 월경산(月鏡山, 981.9m) 갈림길에 도착한다

월경산은 마루금에서 150m쯤 벗어나 있다

갔다가 되돌와서 다시 마루금을 이어가야 한다~ 오늘은 갈길도 바쁘고 날씨가 무더워 그냥 지나친다

 

 

 

 

백운산을 오르기위한 기운이 잠시 중치로 떨어진다

잣나무 숲이 인상적이며

산행을 하다보면 수많은 고개를 넘나들게 되는데~ 오늘은 유난히도 고개가 많은것 같다

 

 

 

 

중치(中峙)는 장수군 번암면을 연결하는 비포장도로가 남북으로 연결되어 있다

중치라는 지명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가운데에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백운산과 월경산의 가운데라는 의미이며~ 운산리에 있는 중재마을에서 이름을 딴 이름이다

 

 

 

 

중치(中峙)의 고갯마루에는 잘 생긴 큰 고목나무옆에 쉼터가 설치되어 있다

쉬어가기 좋아서 사진도 찍고 한동안 꿀맛같은 휴식을 취했으며~

지지계곡쪽으로 50m쯤 내려가면 식수도 보충할 수 있어 비박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부터는 오늘 산행의 백미인 백운산 오름길이 시작된다

2년전 이곳으 올랐을 때 고통의 희열을 맛본적이 있는데~

오늘은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려야 백운산에 오를 수 있을런지~

 

 

 

 

중고개재는 동쪽 백운산 자락에 신라 영은조사가 창건한 영은사지를 비롯하여 많은 암자가 있다

특히 선농일치(禪農一致)에 의한 선농불교를 제창한 용성스님이 평소 선사의 지론이었던

선농일치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서 스스로 호미를 들고 세운 농장인 화과원이 이곳에 있다

화과원 동쪽 백운산을 넘는 고개가 절고개인데, 중들이 많이 넘나들었다하여 중(衆)고개라 부른다

 

 

 

고스락에 올라서면 함양군에서 세운 묵계암쪽의 이정표이다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는 등로를 따라 오늘도 백운산 오름길은 많은 땀을 뿌렸다

하지만 뒤돌아 보는 순간 심장이 멈출것 같은 황홀한 풍경이 펼쳐졌으며~

만복대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면서 지리산 연봉들이 산객의 흥분이 전율로 느껴진다

 

 

 

 

<백운산 정상의 헬기장에서 바라보면 조망 하나는 환상적이다>

백운산은 산세가 웅장해서 심산유곡의 풍부한 계곡과 울창한 수림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백운산 계곡에서 쏟아내는 수원과 남덕유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합쳐져 장수 출신의

주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순절했던 진주 남강과 그 주변에 수많은 명소와 관광지를 살찌우고 있다

 

 

 

 

백운산(白雲山, 1,279m)은 전북 장수군 번암면과 경남 함양군 백전면 경계의 산이다

봉우리가 높아서 항상 정상에 하얀 구름이 감싸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명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백운산은 함양의 진산으로 산세는 전형적인 육산이다

 

 

 

 

우리나라 산봉우리 중에서 백운산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는 산은 이곳 함양땅의 백운산을 비롯하여

강원 사북면의 백운산(1,426m), 광양 백운산(1,218m), 경기 포천군의 백운산(904m)

강원도 홍천군에 있는 백운산(895.2m) 등 50여개가 넘는 수 많은 산중에서 2번째로 높은 산이다

 

 

 

 

부드러운 능선을 한동안 진행하면 사람 키보다 큰 산죽밭을 지난다

등로를 예쁘게 정리를 해두어서 어려움없이 진행을 하였으며~

시야가 트이는 좌측으로 내려다보면 지지계곡의 풍경 역시 절경이다

 

 

 

백운산과 영취산의 중간지점에 있는 이정표를 지난다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멋진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나게 된다

 

 

 

 

 

 

 

지도상 1.066봉의 헬기장은 부전계곡으로 하산하는 갈림길이다

능선상에서 부전계곡 방향으로 3곳의 갈림길이 있는데~

그 중에서 상태가 가장 좋은 곳으로 벤취 뒤쪽으로 시그널이 있다

 

 

 

 

백운산에서 영취산을 내려서는 등로는 굴곡이 없어 산행 속도가 엉청 빠르다

선바위고개에서 좌측은 무룡고개이고 영취산을 계단을 올라가야 하며~

보편적으로 복성이재에서 무룡고개까지이지만 우리는 육십령으로 고고 합니다

 

 

 

 

영취산(靈鷲山, 1,075.6m)은 원래 인도 마갈타국(摩竭陀國) 왕사성 동, 북쪽에 있는 산으로

석가모니가 이 산에서 법화경과 무량수경을 설법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영취산은 "영산"또는 "취산"으로 축약하여 부르는데 신령스러운 산이라 하여 신령(靈)과 수리(鷲)를 쓰고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사료에 의하면 현재의 영취산은 그냥 무명봉에 불과하고 진짜 영취산은 장안산이라는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장수현 읍지류에 영취산은

일명 장안산(山水靈鷲山一云長安山東二里)이며 읍치로부터 이십리 지점에 있다)라고 기록해 놓고 있다

영취산이라는 이름은 장안산의 또다른 별명이고, 이곳은 금남호남정맥이 분기하는 무명봉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영취산(靈鷲山)은 금남호남정맥의 시발점으로 장수의 얼로 추앙받고 있는 논개의 고장 영취산에서 분기하여

장안산-수분재-팔공산-서구이재-성수산-마이산으로 이어지는 약 70km의 산줄기이다

금남호남정맥은 산경표상의 정맥 중 가장 짧은 산줄기로 조약봉 분기점에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갈라진다

 

금남정맥은 주화산 조약봉 분기점에서 북으로 치달아 대둔산, 계룡산을 거친 후 서쪽으로 망월산을 지나

부여의 부소산 조룡대, 즉 구두레나루터에서 맥을 다한다

 

호남정맥은 전라북도 장수군 주화산을 시작으로 내장산으로 뻗어 전남 장성군 북하면 백암산을 가로지르며

담양 추월산, 광주 무등산을 거쳐 광양 백운산에 이르는 총 430km 산맥으로 우리나라 9정맥 중 가장 긴 산줄기이다

 

 

 

 

논개생가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에 도착한다

의기 주논개는 아버지 주문달과 어머니 밀양박씨의 외동딸로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특 하여 논개 나이 17세 되던 해 담양부사 최경회와 깊은 사연으로 부부의 예까지 올렸는데

1593년 4월 최경회가 그간 의병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병마절도사로 영전되어 진주성에 입성 후

10만 대군의 왜군과 싸워 대패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왕이 계신 북쪽을 향해 하직인사를 올린 뒤

동료 장수들과 흐르는 남강에 투신 순국하고 말았다, 이러한 슬픔을 전해들은 논개는 비장한 결심을 하게 된다

마침 칠월칠석에 왜장들이 관기를 불러 놓고 촉석루에서 승전 축하연을 베푼다는 소식을 듣고 교묘하게 침투하여

반지를 낀 손가락으로 왜장 중의 맹장인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충절의 여인이다

장수군 장계면에 묘를 쓰려했으나 집안의 반대로 육십령을 넘어 고향에 가지 못하고 경남 함양군 서상면에 묻혔다

 

 

 

 

이정표에 "덕운봉 갈림봉(988m)이라 새겨진 삼거리 우측으로 덕운봉이 지척에 있다

덕운봉(956m)은 우측으로 왕봉 1Km넘게 걸리며

덕운봉을 내려가면 물 맑기로 유명한 함양군의 보물인 부전계곡이 있는 곳이며

뜨거운 열기에 당장이라도 부전계곡으로 내려가 베낭던져 놓고 풍덩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가야할길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지고 남덕유산에서 기백산으로 이어지는 진양기맥이 남강을 살찌게 한다

우측에 있는 함양군 서상면 부전계곡은 함양이 자랑하는 용추계곡, 화림동계곡과 달리

함양 고장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계곡으로 함양군에서는

이 계곡만은 개발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보존하기 위하여 길 포장도 하지 않고 대외에 알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조망이 좋은 곳에서 논개생가 부근의 오동저수지와 대곡리, 그리고 장계면 일대가 내려다 보인다

임진왜란 당시에 진주 남강에 왜장을 끌어안고 순절한 여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서

조성한 곳으로 20,400평의 부지위에 각종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생가내 음식점에는

우리의 고유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청국장과 두부김치, 장수돼지 삼겹살 등 토속음식점의 맛을 음미할 수 있는 곳이다

 

 

 

 

전망이 좋은 암릉봉(948m)에서 논개가 묻혀있는 거창군 서상면 방지마을을 내려다 본다

논개를 진정으로 충절의 표상이라 생각했다면 논개의 초상이 일본 내

사당에 걸리는 수모를 당하는 일을 없었들 것이다  지금와서는 논개가 죽은 진주와 

논개의 출생지인 장수, 그리고 논개의 묘소가 있는 함양이 각각 인연을 앞세워 연고를 주장하고 있다

 

논개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남콩보다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을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 흔들이우며 그 석류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네~ 생략

 

 

 

 

육산으로 잘 다듬어진 등로길을 따라

한발은 경상남도 또 한발은 

전라북도를 넘나드는 편안한 등로가 한동안 이어진다

 

 

 

 

지도상(966m)봉을 지나는 산줄기는 동물의 4~5번 요추에 해당되는 곳으로

지도상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김면이 이곳을 철통같이 지켜

전라도를 통하는 외적의 침입을 막음으로써 전라도의 피해가 없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북바위봉 절벽아래로 논개 생가마을인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이 선명하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경계짓는 마루금이 삼국시대에는

신라, 백제의 영토분쟁 지역이 되어 승리하면 이곳에 올라 북을 쳤다고 하여 북바위라 전해진다

 

 

 

 

능선의 솔바람 향기는 내마음을 싣고 또 한고개를 넘어간다

부귀도, 명예도, 사랑도, 다 일장춘몽이다

우리네 인생 백년세월 살 것도 아닌데~ 허공같이 비워두고 산과 들을 벗삼아 이 내몸 두둥실 떠다닐것이다

 

 

 

 

깃대봉과 영취산 사이에 있는 민령은 논개의 생가와 무덤을 오가는 고갯길이다

생가는 장수군 장계면 대곡면 주촌마을이고

무덤은 경남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방지마을이다~

"밋밋한 고개"라는 우리이름인데 소리에 따라 "岷" 이라는 한자를 음차 하였단다

 

 

 

 

북바위를 내려서니 바람에 실려온 구절초 향기가 코끝을 스미게하고 억새는 바람에 춤을 춘다

꽃은 바람을 머금어야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다고 했다~ 억새도 마찬가지다

스치는 바람에 정든님 뒷모습도 정겨웁고 한 여름의 무더위도 잊은채 추억에 길을 걷고 있다

허망할 사 우리인생~ 늙어지면 젊음은 다시 오지 않은다~ 뜬 구름은 바람에 가고 내청춘은 세월에 갈것이다

 

 

 

 

억새풀 사이로 백운산에서 깃대봉을 향해 걷고 또 걸어온 능선길이 춤을 춘다

장수(長水)는 산줄기 뿐만 아니라

물줄기도 중요한 역활을 해주므로 물길이 길다는 뜻에서 장수(長水)라고 불리운다고 한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오름길에서 한여름의 찌는 듯한 무더위가 산꾼을 지치게 한다

잠시 땀방울을 닦아내며 오던길을 뒤돌아 보는데

눈 앞에 펼쳐지는 건 훤히 뚫린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아닌가^^

대전과 덕유산 등 주변산을 찾을 때마다 무심코 내달렸던 육십령터널~ 그 터널위로 내가 백두의 길을 걷고 있다

 

 

 

 

깃대봉(1,014.8m)은 옛날 임금님이 신하나 백성들 중에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땅을 하사 하였는데 이를 사패지(賜牌地)라 했고

이 땅에는 누구의 사패지라고 하는 깃대를 꽂아 놓은 데서 깃대봉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서 그 아래 주둔하고 있던 군사들이 기를 꽂았다고 하여 "깃대봉"이라 불렀으나

옛날 한 풍수가 이 산에 올라 산의 형태가 구시형이라 하여

(구시는 구유의 경상도 방언으로 소나 말등 가축의 먹이를 담아주던 나무나 돌로 만든 길다랗게 파인 그릇을 말함)

2006년 1월 "구시봉"으로 지명이 변경되었는데, 지도상은 깃대봉으로 표시돼 있어 구시봉이란 말이 웬지 낯설다

 

 

 

 

깃대봉 정상에 오르면 가을의 억새와 구절초 향으로 유명하다

북으로 남덕유산의 웅장한 자태~

동으로는 기백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남쪽으로는 장안산과 백화산이 사방팔방 시원한 조망을 선사한다

 

 

 

 

장수군의 장계면은 전라북도의 강원도라 불릴 정도로 산간 마을이다

하지만 장수군은 장계면이 있어 넉넉하다

왜냐하면 장계는 산수가 잘 어우러진 너른 분지로 만들어진 곡창지대로 살기 좋은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깃대봉을 내려오면 산꾼들의 생명수인 깊은 산속에 샘터가 있다

이런 샘이 중간에나 산꼭대기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목을 축이는 길손이여 사랑 한모금" 이란 글귀가 정겨웁듯이 물맛 또한 시원하고 좋다

 

 

 

 

깊은산속 옹달샘에서 토끼대신 산꾼이 목을 축이고 내려오면 유순한 내림길이 지루하지 않으며

마사토 흙을 깔아 놓은 곳을 지나면 육십령고개 갈림길에 도착한다

육십령 우측에는 경상도 휴게소가 있고 좌측에는 전라도 휴게소가 있다, 필자는 직진해서 전라도 휴게소쪽으로 간다

 

 

 

 

충령비는 1950년 6.25사변 직후 국군 8사단, 11사단, 수도사단에서 덕유산지구 공비토벌을 위하여

작전을 수행하다 산화한 국군영령들의 혼을 기리기 위해 1954년 6월 16일 장계 남산공원에

육군 7839부대장 대령 김동혁이 세웠으나 덕유산과 인접한 육십령으로 이전되었다

"호국 영령들이시여! 조국 품에 영원 하소서"  보훈처에서는 충혼비를 2003년 12월 현충시설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육십령에는 이름과 관련한 세가지 설이 전해진다

첫째는 이 고개가 안의 감영에서 60리, 장수 감영에서 60리 떨어져 있어 육십령으로 이름이 지어졌다는 것이다

둘째는 크고 작은 60개의 고개를 넘어가는 탓에 육십령으로 불리게 됐다는 설이고

셋째는 전설과 관련이 깊다. 옛적에 산적들이 많아서 고개를 넘는 사람이 재물을 빼앗기거나

목숨을 잃은 일이 잦았다고 한다 그래서 산 아래 주막에서 며칠씩 묵으며 장정 육십명이 모이면

죽창과 몽둥이로 무장한 뒤 떼를 지어 넘었던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산적들을 피해 내려와 이룬 마을이라 해서 피적래(避賊來) 마을이 지금도 서상면에 있으며

도로를 넓히면서 지금은 사라진 "도둑놈굼티"라고 불리는

꽤 험한 낭떠러지도 있었기 때문에 산적과 관련해 육십령이라고 고개 이름을 지었다는 말이 더 맞는것 같다고 말한다

 

 

 

 

육십령(해발 730m)은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을 잇는 고갯길로 26번국도가 지나간다

백두대간이 남덕유산에서 뻗어 내려와 할미봉과 깃대봉을 잇는 고갯길로

죽령, 조령, 추풍령, 팔령 등과 함께 소백산맥의 대표적인 고개로 차량이 줄을 이었지만

2001년 11월에 개통된 대전~통영 고속도로에 의해 육십령터널이 뚫리면서 이 길도 옛길이 되어 버렸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5 : 10 ~ 18 : 55  (13시간 45분)      ◎ 날씨 : 아주, 맑음

 

 

바람에 실려(Saddle the Wind) - 노래 : 찬진

 

하늘을 나는 새는 / 푸른 저하늘 위에서 / 꿈따라 바람따라

날아서 희망을 찾아 가네 / 바람따라 떠나리 저먼곳에 / 고향떠난 철새처럼

그리워 못잊어 떠나면 / 사랑하는 내님 날 반기리

바람따라 떠나리 저먼곳에 / 고향떠난 철새처럼 / 그리워 못잊어 떠나면 / 사랑하는 내님 날 반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