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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백두대간(완주)

백두대간 제23구간(댓재-백봉령) 종주산행

백두대간 23구간(댓재 - 두타산 - 백봉령)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3년          03월          13일          (토요일)

◎ 산행위치 : 강원도 정성군 임계면 / 삼척시 미로면, 하장면 / 동해시 이기동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댓재(424번지방도) - 햇댓등 - 통골재 - 두타산(頭陀山, 1.353m) - 박달령 - 청옥산(靑玉山, 1.404m)

                      고적대(高積臺, 1.539m) - 갈미봉(1.260m) - 이기령 - 상월산(970.3m) - 원방재 - 백봉령(42번국도)

 

◎ 산행거리 : 댓재(죽현) ~ 4.4Km ~ 통골재 ~ 2.0Km ~ 두타산 ~ 2.2Km ~ 박달령 ~ 1.3Km 

                      청옥산 ~ 2.3Km ~ 고적대 ~ 2.5Km ~ 갈미봉 ~ 4.1Km ~ 이기령 ~ 1.0Km

                      상월산 ~ 1.9Km ~ 원방재 ~ 2.2Km ~ 1.026봉 ~ 1.6Km ~ 970봉 ~ 3.6Km ~ 백봉령

                      도보거리   =   약 29.1Km           실제도보거리   =   약 30.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4 : 10 ~ 17 : 35  (13시간 25분)      ◎ 날씨 : 비, 오후 흐림

 

            ◐ 한반도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의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 산행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의 병사봉(兵使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江)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 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하며,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 금수강산이 되었으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여의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댓재(810m)은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일명 죽현(竹峴), 죽치령(竹峙嶺)이라고 불린다

1984년 10월 지금의 도로가 개통 되기전까지는 영동과 영서지방을 넘나들던

옛 고갯길로 수 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며, 기록으로 보아 고려시대까지

죽현(竹峴)~죽령(竹嶺) 등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는 "죽치(竹峙)"로 부렸으며~

지금은 큰 산줄기를 넘어가는 고개라는 의미인 "대고개"가 변음이 되어 "댓재"라고 부르고 있다

 

 

 

 

삼척에서 구절양장 돌고 돌아 댓재로 향하는 길은 내 인생길과 같이 험난하고 험준하였다

적막한 밤이지만 댓재에 도착하니 가로등 불빛에 익숙한 흔적들이 반겼으며~

남도를 출발하여 도착한 시각이 새벽 01시라 잠시 차에서 눈을 붙이고 04시에 산정에 발을 올려 놓았다

 

 

 

 

댓재에서 백두대간 표지석 건너편으로 조금 오르면 산신각이 있다

고갯마루에서 50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두타영산지신을 모신 곳이기에 산신각에 무사산해의 기도를 올린 후 산신각 우측으로 오른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춘삼월에 시작한 햇댓등 오름길은 삭막하고 엄청 추었다

남쪽에는 꽃 물결이 봄의 상춘객들로 넘쳐나고 있는데~

잔설이 녹지 않아 오늘 댓재~백봉령까지 약 30km의 장거리 산행이 초입부터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지도상 첫봉우리의인 햇댓등에 도착하면 마루금은 급하게 좌측으로 꺾어 떨어진다

햇대는 경상도와 북한 그리고 강원도에서 "햇대"로 변음되는 사투리로

"햇댓등"의 지명은 댓재와 합성하여 "햇댓"이라 한 것으로 보이며

등(登)은 산즐기에서 전망하기 좋게 튀어나온 부분을 말하는 것으로

두타산과 청옥산은 물론이고, 주변의 산군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보아 "햇댓등"이라 부른 것으로 판단된다

 

 

 

 

명주목이는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에 속하는 여러 마을 중 하나이다

명주목이(고개)의 원래 이름은 "데바지령"이며~

그 뜻은 삼척지방을 넘어 다녔던 험난한 고개로

협소한 계곡의 지류를 따라 오르기가 힘들었다는 데서 유래 한것으로 보인다

 

 

 

 

밤의 고요속에 하늘에 달빛은 유난히 밝고 등로길에 보이는 것은 시그널 뿐이다

싸늘한 새벽 찬공기를 마시며 봉우리를 넘어가며 렌턴 불빛속에서

춘양에서 보았던 금강송소나무가 힘들게 오르는 이방인과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강원도 땅은 동고서저형으로 동쪽은 수직에 가까운 벼랑이다

야밤에 산행하시는 분들은 주의를 요하는 구간이며~

어두컴컴한 산길에서 솔직히 겁이 않난다고 하면 말이 안 되겠지요?

 

 

 

 

1.028m봉에 올라서니 동해시의 불빛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군 제대후 동해시에서 근무 한적이 있었는데~

망상해수욕장의 명사십리 파도 소리가 밤의 정적을 따라 들려오는 듯하다

 

 

 

 

아랫마을 지명이 통골마을이어서 통골목이(통골재)인지는 모르겠으마 통골재를 통과한다

통골목이(통골재)는 탯재와 두타산의 중간 지점으로

햇댓등, 명주목이, 통골목이 등 이름이 예쁘다, 이곳에서 부터 1.243m봉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골 때리는 산"이란 지명답게 끊임없이 오르면서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한다

한걸음 한걸음이 고행처럼 느껴지지만 두타산의 두타(頭陀)는

"세소그이 욕심을 버리고 청정하게 불도를 수행하는 것"을 말하며

그러기에 마음을 비우고 오르면 정상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산행 지도상 1.243m봉 갈림길에 올라서니 우측으로 두타산의 모습이 드러난다

어두운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중간 중간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 뿐!

이곳에서 직진으로 1.243m봉을 올라야 했으나 눈길에 날씨도 춥고

내일도 가고 모래도 가야 하기에 산행안내도 우측 우회하는 길을 따라 두타산을 향한다

 

 

 

 

우회하는 음달에는 눈이 녹지 않아 몇차례 미끄러지고 넘어지기를 반복한다

아이젠은 가져오지 안은 것은 아직 산악인으로써 수행이 덜 되었으며~

1.243봉의 내림길과 합류를 하면서 두타산 오름길이 시작되는데 어렵지 않게 올라선다

 

 

 

 

두타산 정상에는 화전미느이 묘지가 있고, 정상석 우측으로 산행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었다

두타산 정상에 있는 묘지는 두타산 자락에서 화전을 하던 사람이 쓴 묘지로

명당을 찾아 가족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산정에 묘지를 쓴것이라 한다

산정에 묘지를 쓴 것을 비난할게 아니라 생활 터전에서 고향을 그리는 화전민들의 애환을 이해해야 한다

 

 

 

 

두타산(頭陀山, 1.353)은 강원도 동해시와 삼척시 하장면, 미로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예로부터 삼척 지방에서 영적인 모산(母山)으로 숭상되어 왔으며~

두타라 함은 인간사의 모든 번되를 털어 없애 버리고 청정하게 불도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불가에서는 모든 번되를 벗어나 산천을 떠돌며 수행하는 "스님"을 가르켜 "두타(頭陀)"라 한다

오늘은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버리고 두타가 되어 나를 뒤돌아보고 싶었는데~

조망도 보이지 않고 춘삼월이라도 매서운 칼바람은 손이 시럽고 오래 머물지 못하도록 갈길을 재촉한다

 

 

 

 

두타산과 청옥산의 산수가 아름다운 무릉계곡을 만들어 놓았다

웅장한 능선과 온갖 야생화와 약초가 가득한 곳이며~

정상에서 짙푸른 동해바다를 볼 수 있고, 여름철 계곡 산행지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동해바다가 저 멀리 보이고 남쪽으로 잔설들이 수놓은 산하가 아름답기만 하다

새벽을 가르며 올라 왔기에 다른 산에서 맛 볼 수 없는 쾌감을 느꼈으며~

자연이 빛은 절로 절로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경외감(敬畏感)을 가질 수 있는 것마능로도 세속의 범부에겐 두타가 아닐까 싶어진다

 

 

 

 

<한 시구가 생각나서 읊어보고 청옥산으로 향한다>

오고가는 사람들은 오늘 내일 다르건만 정상에 묘지만은 예나없이 우리 모습 지켜보네~^^

무슨 영화 누리려고 이리 높게 묘를 썼을고~^^ 인생사 생옹지마 일회일비 뭣하리오~

오름있어 내림있고 거저먹는 밥 있으리오, 사진한장 박아 놓고 두타산 맘에 담고 청옥산을 향하노라

 

 

 

 

두타산은 부처가 누어있는 형상으로 박달령을 사이에 두고 청옥산과 마주보고 있다

두타산과 청옥산(靑玉山)을 잇는 능선을 "의가등"이라 했던가

의가(衣架)는 "옷걸이"란 뜻인데, 일자능선이 마치 옷걸이를 연상하 듯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렇게 명산의 덕목을 갖춘 산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빙판 내림길이 사람을 잡는다

두타산은 백두대간에서 가장 역동적인 산세를 자랑하는 곳 중에 하나이다

 

 

 

 

박달령(朴達嶺)에 도착한다 밝달에서 온 말로 "밝"은 광명을 비추는 높고 큰 산을 의미하며

"달"은 산과 들을 뜻하는 말로 청옥산과 두타산을 합하여 광명을 주는 큰 산이라 하여

두 산을 연결하는 안부를 박달령으로 부른것으로 보이며 천등산 박달재와는 아무 인연도 없는 이름이다

 

 

 

 

두타산과 청옥산 중간사이에 "문바위재"라는 곳이 나오는데

門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보여지며

바위들이 산재해 있으나 확인 할 길은 없었으며 이곳에서 청옥산을 가파르게 오른다

 

 

 

 

청옥산.두타산 일원은 궁예시대부터 새로운 세상을 그리워하던 이들이 몸을 숨긴 채 살았던 곳이다

또한 정선과 임계를 거쳐 서울로 가던 옛길이었던 이곳에 6.25때는 인민군 피복창이

들어섰던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전쟁중에는 인민군 병참기지였던 이곳에 미공군의 융단폭격이 있기도 했다

 

 

 

 

청옥산 오름길에 "학등(鶴嶝)"이라는 이정목을 만난다

학처럼 생긴 산 능성이를 의미하는 말인데

산비탈고개"라는 뜻으로 능성이에 있는 고개란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청옥산(靑玉山, 1403m)은 고지도에는 두타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아미타경에 나오는

일곱가지의 보석 중 하나인 청옥에서 온 지명이라 하기도 하며

임지왜란 때 유생들이 의병들의 정신이 죽지 않았다는 뜻에서

"청옥산"이라 불렀다고도 하며 또한 보석에 버금가는 청옥이 발견되어 청옥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청옥산은 넓은 공터에 헬기장이 자리하고 있으며 고적대와 함께 야생화 천국을 이루고 있으며

동해시 쪽에서 바라보는 산세가 "푸르다"고 하여 청옥산이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청옥산 주봉에 있던 소나무는 임란 때 불타버려 경복궁을 중건 하기 위해 대들보용 목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연칠성령(連七星嶺)은 예로부터 삼척시 하장면과 동해시 삼화동(무릉계곡)을 오가는 고개로

그 산세가 험준하여 난출령(難出嶺)이라 불리웠다 한다 이곳 난출령을 망경대(望京臺)라고도 하는데

인조 원년 명재상 이었던 택당(澤堂) 이 식(李 植)선생이 은퇴한 후 고적대 서북 지맥의

중봉산 단교암에 머물면서 이곳에 가끔씩 올라와 한양을 사모하며 망경(望京)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두타산-고적대 구간에서는 동쪽으로 강원도 국민관광지 제1호이자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무릉계곡의 절경이 있다

무릉계곡이라는 이름은 조선조 명필 양사언이 이곳의 절경에 감탄해 무릉반석에

무릉계곡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院 中坮泉石 頭陀洞天)이라고 쓰면서부터 무릉계곡으로 불리게 되었다

 

 

 

 

청옥산에서 연칠성령을 지나 고적대로 오르는 길은 상당히 가파르며 험하다

등산로 정비가 잘 되어 있지만 조심하여야 하며

고적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기암절벽으로 이루워져 땀을 쏟은 사람에게만 시원한 조망을 선사한다

 

 

 

 

고적대(高積臺) 기암괴석의 암릉은 인고의 세월이 역역하다

허리굽혀 수도없이 인사를 하고 오르니

사방으로 시원한 조망이 펼쳐지면서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땀방울을 식혀준다

 

 

 

 

두타산에서 청옥산으로 지나온 산줄기는 잔설이 남아 있어

아직도 한 겨울을 실감나게 하지만

지능선의 장엄한 경치는 여성의 고운한복의 맵시처럼 이쁘가먼 하다

 

 

 

 

고적대(高積臺, 1,353,9m)는 동해시와 삼척시, 정선군의 분수령을 이루는 산으로 기암절벽이

대(臺)를 이루워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수행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동쪽으로 뻗혀진 청옥산, 두타산과 함께 해동 3봉(海東三峰)으로 일컬어지며

신선이 산다는 무릉계곡의 시발점이 되는 명산으로 높고 험준하여 넘나드는 사람들의 많은 애환이 서린 곳이다

 

 

 

 

고적대에서 내림길은 적설량이 많아서 진행속도가 느리다

굼뱅이가 굴러가도 우리보단 빠를것 같으며

남도에서 꽃구경만 하다가 아이젠을 가져오지 못해 굼뱅이 보다 못한 신세로 전략했다

 

 

 

 

고적대 삼거리 전에서 바라본 기암(奇岩)으로 이어지는 갈미봉 능선!

바위의 군상들! 주목들과 절묘하게 자라난 노송들!

우측으로 동해바다의 아름다움도 마주하는 시원한 조망은 갈미봉을 향한 산객의 지루함을 달래준다

 

 

 

 

고적대 삼거리 이정목에서 우측 무릉계곡쪽으로 내려가면 물방아골로 해서 용추폭포로 이어진다

무릉계곡은 번뇌조차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 "골짜기"란 뜻으로 누구나 무릉계곡에

들어서면 인간의 세계를 넘어 신선이 거니는 선계로 느낄만큼 아름다움의 극치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좌측 사면을 휘돌아 가는데, 발자욱도 전후무후하고 시그널도 없어 짐작으로 걸었다

무릉계곡은 고려 왕건의 원찰이던 삼화사(三和寺)와 아름다운 계곡이 있어

연중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삼화사는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인데

삼국을 하나로 화합시킨 영험한 "절"이라 하여 삼화사(三和寺)라 이름이 지었졌다고 한다

 

 

 

 

너럭바위에서 바라본 두타산, 청옥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두타산에서 갈미봉까지 거대한 산줄기가 "갈 지(之)"자로 힘차게 요동을 치는 구간으로

의가능선의 진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밤을 잊고 그 밤을 쫓아

다섯달만에 불원천리 찾아왔건만 민낯을 보이기가 쑥스러웠던지 잔설을 뒤집어쓴채 실루엣으로 보고 가라한다

 

 

 

 

갈미봉(葛味峯, 1,260m)은 봉우리가 두개로 갈라져 있는 산을 말한다고 한다

'갈"은 나누다(分)와 "미"는 山을 뜻하니 두 개의 봉우리다

갈미봉은 모두 같은 어원으로 쓰인 것으로 보이며, 이곳의 갈미봉은 수병산(괘병산)과 함께 두 개의 봉우리를 이룬다

 

 

 

 

갈미봉에서 무심코 괘방산 방향으로 가면 알바다 시그널에 주의를 요한 구간이다

갈미봉이란 이름은 우리나라에서는 참 많으며

한자로 표기하면 칡이 많이 자생한다는 뜻으로 이곳에 자생하는 칡들은 고냉칡이라서 맛이 좋을 것이다

 

 

 

 

갈미봉에서 내려서면 안부에서 직진으로 이어질 듯한 마루금은 좌측으로 꺾어진다

오늘 구간은 지리산 종주보다 힘들다는 구간으로

좌측으로 내려가면 너덜길에다 자작나무 군락지를 지나면서 지루 할 정도로 특징이 없는 산길이 이어진다

 

 

 

 

소나무숲이 우거진 곳에 박석이 깔린 등로가 나타난다

아마도 습지대인 것으로 보여지며

비가 많이 오면 물이 고여 질척해지기 때문에 박석을 깔아 놓은 듯 싶어진다

 

 

 

 

이정목이 있는 쉼터에서 지루한 시간을 잠깐 쉬어간다

간단한 만찬을 즐기고 이기령으로 향한다

완만한 능선길이 적송들과 어우려져 정원같은 아담하고 포근한길이다

 

 

 

 

조릿대의 화사함도 마루금을 이어가는 지친 산객의

마음을 달래주기에는 손색이 없었다

이기령 가는길의 소나무들은 크기와 관계없이 하늘로 쭉쭉 뻗치고 있다

 

 

 

 

이기령((耳基嶺)은 동해시 이기동과 정선군 임계면을 잇는 고개로 "동기(銅基)는

순수한 우리말로 구리터가 있던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 되었다

"구리터'의 중간 자음인 ㄹ이 탈락되어 "구이터"가 되고

"구이"가 "귀"로 축약되어 "귀이(耳)로 표기되었다 구리터의 "구리"는

"동"이니 자연스럽게 동(銅)이고 터는 기(基)이니 동기(銅基)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재"를 뜻하는 "(嶺)"을 넘어가니 그 이름도 찬란한 이기령이 되었단다

 

 

 

 

이기령을 지나면 지속적인 오름길에서 헬기장이 있는 상월산은 가짜이고

다시 봉우리 하나를 넘어야 진짜 상월산을 만난다

산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정상을 확실히 하여 혼돈이 없었으면 좋겠다

 

 

 

삼각점이 있는 상원산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상월산 뒷쪽사면은 단애(斷崖)를 이루는 멋진 암릉이 조망된다

지친 산객의 눈을 즐겁게 하여 주웠으며

노송 한그루가 쓰러진채 정리가 되지않은 곳에 진짜 상월산 표지판이 걸려 있다

 

 

 

 

상월산(上月山, 970.8m)에 대한 지명의 유래는 찾을 수가 없었으나

한자로 표기하면 "떠오르는 달을 맞이하는 산"이라 뜻이며

고사목 사이로 펼쳐진 조망이 일품이며 넉동산악회의 글귀가 "힘내세요" 지친 산객에게 미소를 짖게 한다

 

 

 

 

상월산 날등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내려서면 원방재에 도착한다

원방재는 옛적에 삼척사람들이 정선으로 소금팔러 넘어 다녔던 고개였다고 한다

소금을 팔았다는 사실이 의아해 하지만

서해에서 올라오는 남한강의 소금길은 충북의 단양에서 다시 육지로 올라와

영월쯤에 닿아 멈추었고 정선땅은 강릉과 삼척에서 나는 동해의 소금을 의지하여 살았다고 한다

 

 

 

 

원방재는 "원방"은 먼 지방을 또는 먼 곳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 먼 거리의 고개로

힘들게 넘나들던 민초들의 애환이 만들어 낸 지명이 구전으로 전해져 온 순수한 우리말로 보인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부수베리골이고, 우측은 동해 서학동으로 가는길이 확실치 않다

부수베리골은 정선 사람들만 주로 찾아가는 피서 계곡이라 하는데요

참으로 암반 풍치가 아름답다고 하며 부수베리란 지명은 "부수"는 부싯돌 "베리"는 벼랑이란 뜻이라고 한다

 

 

 

 

종착지가 가까워짐을 내심 기대해보았지만 원방재의 이정목에서 백봉령까지 7km를 더 가야한다

울~몽실님 입가에 미소를 짖는것이 아니고 비명소리 가까운 신음소리를 낸다

가도 가도 능선만 보이고 좋은 전망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끝이 안보이는 삭막한 구간으로

앞쪽에 우뚝솟은 1.022m봉을 쳐다보면 태산보다도 높게 보이고 체력이 인내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인간이 오르지 못할것 같은 쉼터봉(1.022m)에 올라서니 헬기장이 자리하고 있다

베낭을 내리고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하여 마루금을 이어가는데

다섯달만에 밤잠을 설처가며 불원천리 찾아왔건만 산객에게 너무나 많은 고통을 안겨준다

 

 

 

 

백봉령을 목전에 두고도 험준한 봉우리를 넘어야 하는 힘든 코스가 계속된다

얼마남지 않은 마루금이기에 온 힘을 쏟아 부으며 걸어가는데

오늘따라 무척 힘이들고 지루함이 느껴지는 구간으로 선답자의 산행기에

이 코스가 지리산 종주와 덕유능선 종주보다 힘들다고 하였는데 실감이 갈 정도로 힘든 구간이다

 

 

 

 

지도상 832m봉으로 간이의자가 설치된 쉼터봉으로 전망대가 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인 것을 백봉령이

눈앞에 있는 봉우리로 모진세월 이겨낸 노송의 위로에 남은 힘으로 백봉령을 향한다

 

 

 

 

소나무숲길을 따라 그렇게 힘들고 길고도 긴~

오르고 내림에 백봉령 표지석이 보이며

종착지인 백봉령(百鳳嶺)에 지친 몸둥아리를 내려 놓는다

 

 

 

 

어서오십시요" 아리랑의 고장 정선입니다" 라는 표지석도 반겨주고

"소담스런 정자와 주차장시설도 있다

휴게소는 임계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있으며 춘삼월에 백봉령에는 눈이 내린다

 

 

 

 

백봉령(780m)은 영동과 영서를 있는 교통로로써 옛 조상들의 애환과 숨결이 묻어 있는 고개이다

백봉령(白鳳嶺)인지~ 백복령(百福嶺)으로 불러야할지 햇갈리지만

흰 봉황의 뜻인 백봉령((白鳳嶺)으로 부르기를 홍보하고 있으며

백두대간 표지석과 지도상에는 백복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현재의 백복령은 복령이라는 약초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흰 복령이 많이 자생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체력의 한계를 이기고 도전하며 보이지 않은 눈물을 흘리면서 정신력으로 완주를 하였다

무엇보다 먼 거리를 힘들게 완주를 한 구간이기에 기쁨이 두배가 된 것 같았으며~

댓재에서 차량을 회수하여  삽당령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대관령 구간을 종주할 예정이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4 : 10 ~ 17 : 35  (13시간 25분)       ◎ 날씨 : 비, 오후 흐림

 

 

Clear Sky Over The Mountain / Band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