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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백두대간(완주)

백두대간 제22구간(삼수령,피재-댓재) 종주산행

백두대간 22구간(피재, 삼수령 - 덕항산 - 댓재)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 산행위치 :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하사미동, 상사미동 / 삼척시 도계읍, 신기면, 하장면 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피재(三水嶺) - 노루메기 - 건의령 - 푯대봉갈림길 - 푯대봉(1,009.2m) - 한내령

                      구부시령 - 새목이재 - 덕항산(德項山, 1,071m) - 환선봉(지각산, 1,081m)

                      자암재 - 귀네미마을(배추밭) - 큰재 - 황장산(黃腸山, 1,059m) - 댓재(424번지방도)

 

◎ 산행거리 : 피재(삼수령) ~ 6.3Km ~ 건의령 ~ 1.2Km ~ 푯대봉 ~ 5.6Km ~ 구부시령 ~ 1.1Km 

                      덕항산 ~ 1.8Km ~ 환선봉(지각산) ~ 4.6Km ~ 큰재 ~ 4.3Km ~ 황장산 ~ 0.7Km ~ 댓재 

                      도보거리   =   약  25.5Km           실제도보거리   =   약 26.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3 : 50 ~ 14 : 25  (10시간 35분)      ◎ 날씨 : 흐림, 비

 

            ◐ 한반도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의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 산행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의 병사봉(兵使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江)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 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하며,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 금수강산이 되었으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여의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피재은 태백시와 삼척시 하장면을 잇는 35번 국도가 지나가는 고갯마루이다

삼척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이상향으로 알려진 황지(지금의 태백)로

넘어온 고개란 뜻에서 피재라고 불렀으며, 피재라는 지명이 붙기전에

사람의 왕래가 없는 고독한 산이란 뜻에서 고적령(孤跡嶺)이라 불렀다고 한다

 

 

 

 

피재로 불리우는 삼수령은 삼강(三江 : 한강, 낙동강, 오십천)이 발원(發源)한다

빗물 한가족이 삼수령(三水嶺)으로 내려오면서 서해로 흘러가는 한강

남해로 흘러가는 낙동강, 동해로 헤여지는 기구한 운명을 삼수령(三水嶺)이라 한다

 

 

 

 

피재 정상엔 삼수정(三水亭)이란 정자각이 있고,

기념 조형물들이 있으며, 돌을 깎아 만든 앉을 자리에 아리송한 시가 한 수 새겨져 있다

 

***** 빗물의 운명(Destiny of Rainwater) *****

하늘이 열리고 우주가 재편된 아득한 옛날옥황상제의 命으로

빗물 한 가족이 大地로 내려와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겠노라 굳게 약속을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 빗물 한 가족은 한반도의 등마루인 이곳 삼수령(三水嶺)으로 내려오면서

아빠는 낙동강으로,  엄마는 한강으로,  아들은 오십천으로 헤어지는 운명이 되었다

 

한반도 그 어느 곳에 내려도 행복했으리라

이곳에서 헤어져 바다에서나 만날 수밖에 없는 빗물가족의 기구한 운명을 이곳 삼수령만이 전해 주고 있다

 

 

 

 

태백시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 03시 30분 피재에서 산정에 발을 올려 놓는다

낙동정맥을 시작할 때 다시만날것을 기약하면서 삼수령탑과

삼수정(三水亭)이란 정자 사이로 칡흙같은 어둠속에서 해드렌턴의 불빛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출입 통제선을 넘어서 백두대간이란 무엇인가?  백두대간은 우리민족 고유의 지리적인식 세계이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금강산, 설악산, 투타산, 매봉산,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이어지면서 국토의 골격을 형성하며 자연과 사람 문화가 함께 살아 숨 쉬는 풍요로운 큰 산줄기를 말한다

 

 

 

 

<노루메기" 임도에 내려선다>   

밤하늘에 별들이 아무리 아름답게 반짝이는 스타일지라도누군가가

저 별을 보아주지 않은다면 아무 쓸모없는 별이 아닐까요?

저 별들을 우리가 보아주고 있기에 스타가 되는 것이었고

우리는 아무도 알아 주지도 않은데도 어둠을 가르며 백두의 길을 걷고 있다

 

 

 

 

<임도를 따라 400m정도 진행하면 노루메기재에서 좌측 숲으로 들어선다>

노루메기의 유래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노루가 많았던 지역으로 노루가 다니는 길목

또는 산이 막히는 막다른 곳이라해서 노루메기라 한다, 지형도상의 표기에는

"노루목이" 또는 장항(獐項) 등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노루메기는 지방사투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등로를 밝혀주는 스타(별)가 오늘따라 정감있는 분위기을 연출하는것 같다

심산의 대간길에서 낙엽을 밟는 기분은 여전히 부드럽고

좌측으로 태백시 창죽동마을 불빛이 우측으로 독골마을 불빛이 정겹게 느껴지는 새벽이기도 하다

 

 

 

 

강원도는 아직도 오염이 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오지의 땅 덩어리이다

고도차가 없는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빨래판같은 구간으로

가끔씩 나타나는 이정목이 밤길 나그네의 친구가 되어 주어 강원도의 신토불이 산행을 이어간다

 

 

 

 

새벽 차가운 삭풍은 몸속으로 파고들며 산객의 마음을 작게 만들었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히는 소리에 기분좋은

청량감이 귀를 자극하면서 낙엽 소리에 박자를 맞쳐가며

발걸음은 빨라지고 지형도상의 960.2m봉으로 좌표가 있는 구조목 지점을 지나간다

 

 

 

 

어둠속에서 널찍한 공터에 쉼터가 있어서 건의령(巾衣嶺)인줄 알았건만

"가짜 건의령"인 사거리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정표에 건의령 500m라 적혀 있다~ 그래서 건의령에 다 왔다는 생각에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너덜지대인 암릉에서 좌측으로 상사미동 일대의 산곡평야가 보이는 곳인데

칡흙같은 어둠속에서 볼 수가 없음이 참으로

안타까운 발길이며 산곡평야는 태백시 상사미동마을과

참말부락의 농경지가 한반도 지도를 닮은 모양으로 아름답고 멋진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태백시 상사미마을과 삼척시 도계동을 잇는 고개인 건의령(巾衣嶺)에 도착한다

지금은 밑으로 터널이 뚫리면서 비포장 임도로 변하였지만

육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옛날에 태백 통리에서 도계로 이어지는 태백선 철길과 함께 주요한 통로였다고 한다

 

 

 

 

건의령에 유래를 보면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이 삼척시 근덕면 궁촌에 유배를 와 있었다

그리하여 정선 두문동에 은거해 있던 일곱명의 충신들이 공양왕을 배알하러 갔다가 돌아가면서

이 고개에 이르러 복건과 관복을 벗어 나무에 걸어 놓고 다시는 관직에 나가지 않기로 맹세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복건(巾)과 관복(衣)을 벗어 걸었던 고개라 해서 "건의령(巾衣嶺)"이라 했다고 하는데

산경표에는 "建儀嶺"이라 기재되어 있고 일명 한의령(寒衣嶺)이라고도 한다, 한의령이라 하게 된 것은

옛날 삼척 지방에서 태백으로 갈 때 겨울에 눈이 엄청나게 오고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 이 고개를 넘다가

얼어 죽은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리 옷을 두껍게 입어도 얼어 죽는다고 하여 한의령이라 했다고 한다

 

 

 

 

푯대봉 삼거리에 도착하면서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정상은 약 50m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으므로

갔다가 되돌아와 우측으로 구부시령 방향으로 마루금을 이어가야 한다

 

 

 

 

푯대봉(1,009.2m) 산불감시탑에는 선답자의 시그널이 팔랑이고 멋진 정상석이 있었으며

측량 기준점이 있어서 푯대를 세웠다 하여 푯대봉이라 부르는데

일제가 우리의 농토를 수탈하기 위하여 1912년부터 1918년까지 실시한

토지조사 사업 때 토지를 측량하기 위하여 푯대를 세웠는데, 이곳도 그 당시에

일본인들에 의해서 산봉우리에 삼각 기점을 잡은 푯대가 세워졌으므로 "푯대봉"이라 부른것 같다

 

 

 

 

푯대봉 삼거리를 내려서자 황장목(黃腸木)군락지를 만난다

황장목은 임금님의 관을 만드는  목재용 소나무이며

피재에서 부터 곳곳에 이정목이 설치가 잘 되어 있어 알바 할일은 없을것으로 보여진다

 

 

 

 

날씨가 쌀쌀해졌지만 산행하기는 좋은 날씨다

"♪아~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 지나친 그 세월이 나을 울립니다~"♪♬

고복수 선생님이 불렀던 "짝사랑"이라는 노래다

이 노래마냥 스산한 기운을  새 울음소리의 으악새로 표현한 것일까요

울긋불긋한 단풍은 볼 수 없지만 가을의 쓸쓸함이 묻어나는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면서 백두의 길을 걷고 있다

 

 

 

 

비바람에 꺾어진 고사목 참나무가 황철촌(黃鐵村)이 있는 삼밭골 골짜기를 내려다 보고 있다

황철촌은 삼밭골 아랫쪽에 있는데 황철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부르는 이름이며

삼밭골은 사조동사무소가 있는 골짜기로 대마를 삼(蔘)이라 하는데 삼을 많이 심어 삼밭골이라 부른다

 

 

 

 

목장지대 안부의 이곳은 "삼밭골 잘루목"이라고도 하고 "한내령"이라고도 한다

태백시 상사미동 삼밭골에서 삼척시 한내리로 넘어가던 고갯마루로

잘루목에는 목장지대가 조성이 되어 있어 지금은 고개의 그 흔적조차 찾을길이 없어져 버렸다

 

 

 

 

삼밭골 잘루목을 지나고  오름길이 가팔라서 다람쥐도 눈물을 흘릴만큼 힘든 오르막이다

지도상 1,161.6m봉으로 오늘 구간의 최고봉이지만

고스락에는 시그널만 팔랑이고 이름도 없는 무명봉으로 관심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봉우리이다

 

 

 

 

명산도 없고 풍광이 뛰어난 곳도 없는 평범한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석희봉(1,017m)이라는 코팅지가 걸려 있었지만

왜 석희봉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었으며

그냥 무명봉보다는 노란 코팅지가 있어서 관심을 가져본다는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남도에는 한창 단풍시즌인데 이곳은 벌써 겨울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도 낭만이 뒹구는 낙엽길을 걸어 가노라면

갈빛의 단풍색깔이 가을산의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힘든 여정의 피로를 풀어주기도 한다

 

 

 

 

이번에는 둘 산악회의 코팅지가 1,017m봉을 알리는 봉우리에 도착했다

아무특징이 없는 봉우리이지만 코팅지마져 없다면

그냥 지나치는 봉우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 강산에 관심을 가져준분들이 있기에 홀로가는 산꾼은 외롭지가 않은것 같다

 

 

 

 

고스락 봉우리에는 부산낙동산악회에서 산님들 힘내세요라는 글귀와 함께

1,055m봉을 알려준다 ♪산행하기 좋은 날씨는 어딜가고♪

낭만적인 가을 풍경은 세찬 바람이 불어 오면서 비를 맞으며 힘겨운 산행이 이어진다

 

 

 

 

1,055m봉에서 가파르게 내려서면 안부에서 마루금은 좌측으로 틀어진다

직진으로 이어질 듯한 등산로가 흐릿하면서

선답자의 시그널이 사방에 널려 있어 진행방향을 혼동스럽게 하는 곳으로 주의구간이다

 

 

 

 

구부시령(九夫侍嶺)의 돌무더기 있는곳에 도착한다 성황신(서낭신)을 상징하는 형체는 신목과 돌무지가 있다

그 중에서 신목은 신위로 변신시켜 전각을 지어 따로 모시기도 하였는데 그것이 성황당(국사당)이다

돌무지 역시 성황당이라 불렀으며, 구부시령의 돌무덤은 목메어 죽은 여인을 성황신으로 모신 성황당일 것이다

 

 

 

 

구부시령은 옛날에는 서쪽 태백시 하사미의 외나무골에서 동쪽 삼척시 도계읍 한내리로 이어주던 고개였다

그런데 한내리 마을 주막에 어여쁜 여주인이 있었다는데 이 여인은 어찌 된 일인지 지아비를 얻으면

요절하는 바람에 재혼을 거듭하여 아홉 명의 지아비를 모셨으나 다 죽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여인은 스스로 죄인임을 자탄하고 고갯마루에 올라가서 목메여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고갯마루를 구부시령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구부시령 분위기가

음산하여 여인네의 넋을 위로 하기위하여 지나가는 산꾼들이 돌멩이를 올려 놓은  작은 돌탑이 자리하고 있다

 

 

 

 

구부시령에서 능선을 올라서면 마루금은 좌측으로 내려선다

이정목은 없지만 좌측으로 내려선 지점에

선답자의 시그널이  주렁주렁 메달려 있어 어렵지 않게 내려설 수 있다

 

 

 

 

새목이재(鳥項, 850m)은 안부에 넓은 공터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넘나드는 고개마루가 아니고

능선의 V선을 이루는 곳으로 새의 목과 닮은 산세에서 유래된것으로 보인다

 

 

 

 

덕항산(德項山, 1,071m)은 삼척시 신기면과 태백시 하사미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옛날 먹거리가 부족하여 한평의 경작지가 아쉬웠을 때에

삼척지역 사람들이 이 산을 넘어가면 화전(火田)을 할 수 있는 땅이 많아

"덕을 봤다는 의미에서 덕메기산"으로 불리었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덕항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덕항산은 화전민들의 애환을 가장 실감나게 체득할 수 있는 산이다

산 아래 "골말"은 골짜기의 끝 마을을 의미하는 곳으로

동네 사람들이 화전(火田)을 일구며 전쟁이 터진 것도 모르고 살았던 산골이다

 

 

 

 

덕항산에서 동해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인데  안개로 인하여 시원한 조망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덕항산 아래로 붉게 물든 가을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였고

자연이 주는 선물 중 가을의 색채감은 사람을 황홀하게 만들었으며 가을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사람이 돈이 아무리 많고, 직위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능선을 물들인 가을 풍경을 바라보며

해발1,000m가 넘는 고지에서 라면을 끓여 소주 한잔 곁들이는 맛을 알까요

아름다운 가을빛을 느끼지 못하고 인생을 제대로 즐겼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마음을 느끼게 한다

 

 

 

 

덕항산(德項山)은 전형적인 산세가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으로

동쪽 방향은 기암괴석의 바위벼랑의 협곡이다

그래서 동쪽을 보고 "오줌도 누지 마라" 할 정도로 내려다보면 가슴을 싸늘하게 한다

 

 

 

 

사거리 안부의 쉼터 갈림길에서는 왼쪽은 예수원 하산길이고 오른쪽은 골말가는 방향이다

환선봉(지각산)으로 가는 백두의 길은 직진으로 이어지며

오른쪽의 골말은 수많은 동굴이 산재해 있고 참나무 껍질을 겹쳐 얹어 지은 굴피집이 있는 산골마을이다

 

 

 

 

환선봉 오름길에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리지만 동쪽사면으로 펼쳐지는 멋진 조망에 힘들지도 않다

우측으로 대이리 골말 일대는 한국전쟁 조차도 모르고 살았으며, 주변에는 너와집, 굴피집 등

많은 민속유물이 잘 보존되어 있고 강원도 민속자료(너와집 제221호, 굴피집 제223호)로 지정되어 있다

 

 

 

 

굴피집은 굴참나무 껍질을 벗겨 지붕에 차례로 포개어 만든 집을 말하는데

보기와는 달리 수명이 길어 흔히 "굴피천년"이라 한다

너와집이란 지붕에 기와나 이엉 대신 얇은 나무판이나 돌판을 덥는데 이 집은 나무판을 덮었다

목재라서 뒤틀리고 사이가 떠서 빗물이 샐것 같지만

목재가 습기를 받으면 차분하게 가라않는 성질이 있어 빗물이 새지 않은다고 하며

굴피집 위쪽 언덕에 자리한 "너와집"은 지금의 집주인 인

이종옥씨의 11대 선조가 350년 전 병자호란 때 경기도 포천에서 피난와 정착한 집이라고 한다

 

 

 

 

광동댐 이주단지의 고냉지 배추밭의 풍력발전단지가 눈 앞에 보인다

우측으로 동해의 검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보일 것인데

세찬바람과 비가 내리면서 시원한 동해바다를 볼 수 없음이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환선굴(幻仙窟)이 있는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자암골 주차장이 보이며

절벽 아래로 하늘을 향채 치솟은 암봉이 촛대바위이며

5억년의 신비를 간직한 동양 최대의 환선굴은 다양한 종유석과 폭포가 장관이라고 한다

 

 

 

 

환선봉(幻仙峯, 1.080)은 태백시 하사미동과 삼척시 신기면에 있는 산으로

예전에 산 이름이 지각산(地角山)이라 불렀는데

산아래 동쪽 절벽에 환선굴이 유명해지면서 이곳의 산이름도 환선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환선굴(幻仙窟)은 엣날 한 스님이 수도를 위해 산 아래에 있는 동굴로 들어갔는데

스님이 나오는 것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스님이 신선(神仙)어 되었다고 믿고 이 스님을 환선이라 하였는데 동굴 이름도 환선굴이 되었다고 한다

 

 

 

 

광동댐 부근의 지각산 자락이 Y자로 벌어져 있고 계곡에 계집바위가 있어 남녀가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둘 사이에 꼭 무슨 사단이 벌어졌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의 지각산(地角山) 역시 원래는 "찌걱산"이었던 것이

고상한 이름의 지각산이 되었으며 이후 환선굴이 유명해지면서 환선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 지각산(地角山, 890m)은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산으로 수려한 계곡이 좋았다고 한다

개울가로 난 길을 따라 숙암리로 가려면 찌걱산 쪽으로 걸어 다녔는데

남녀가 만나면 꼭일이 생겼다는데  지금의 조탄리와 하장을 잇는  새 길이 뚫리면서

숫산인 고갯등이 잘리었다고 한다, 그 뒤로 부터 주변 마을에서 바람나는 일이 사라졌다고 한다

 

 

 

 

낙엽송은 일본의 소나무과에 속하는 잎갈나무로 우리나라에서 전봇대나 건축자재로 쓰기위해

수입을 해서 인공림으로 강원도 산지(山地)에서 자라는데, 보기에는 쭉쭉 뻗은

나무가 아름답게 보일지 몰라도 낙엽송이 자라는 아래는 식물들이 자라지 않아 골치거리라고 한다

 

 

 

 

환선봉과 자암재 중간을 지나는 헬기장이다 우측에 "환선굴의 유래와 전설을 보면"

먼 옛날 대이리 마을의 촛대바위 근처에 폭포와 소가 있어 아름다운 한 여인이 나타나 목욕을 하였는데

어느날 마을 사람들이 쫓아가자 지금의 환선굴 부근에서 천둥번개와 함께 커다란 바위더미들이

쏟아져 나오고 여인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여인을 선녀가 환생한 것이라 하여

바위가 쏟아져 나온곳을 환선굴이라 이름짓고 제를 올려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게 되었는데, 여인이 사라진 후

촛대바위 근처의 폭포는 물이 마르고 환선굴에서 물이 넘쳐 나와 선녀폭포를 이루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자암재는 신기면 대이리와 하사미동 귀네미골을 이어주는 고갯마루인 자암재는 장암재라고도 부른다

예전에 큰 바위 위에 장암밭목이 있었던 지명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보여지며

"장암재"가 자암재로 표기 되었을 가능성이 많으므로 "장암재"의 표기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으로 비스틈히 난 길에도 시그널이 달려 있어 잘못하면 환선굴 쪽으로 알바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신기면 대이리 마을에 삽살개 한 마리가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져 버려 안타까워 하던 중

산너머 하장면 조탄리(현 태백시 사조동, 해발 1,000m)마을의 땅속에서 개 짖는 소리가 나 확인한 결과

조장안이라 불리우는 웅덩이 옆 큰 구멍속에 삽살개를 발견하여 꺼내었는데

스님이 소지하는 백팔염주가 목에 걸려 있어 사람들은 오래전 환선굴에서 사라진 스님의 염주라하여

크게 놀랐다고 한다 그 후 삽살개는 주인의 방에 걸어 놓은 염주를 물고 또다시 사라졌고

며칠 후 환선굴에서 나오는 폭포수 밑에서 개의 시체가 떠내려 왔는데 염주는 찾을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동급서완(東急西緩)의 지형으로 가끔씩 멋진 풍경을 볼 수가 있어 좋지만

낭떠러지 지역에는 추락위험 표지판을 달아 두었고 추락의 위험의 있는

곳에는 밧줄과 보호 목책을 설치하여 등산객들이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도록 잘 되어 있다

 

 

 

 

귀네미마을은 본래 고지대에 위치한 원시림으로 울창한 산이었다고 한다

1985년 삼척시 하장면에 광동댐이 생기면서 광동리를 비롯해 숙암리와 조탄리 등 흩어져 살던 주민들이

집단으로 이주하면서 형성된 마을로 V자형 마을의 풍경이 더 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정든 고향땅을

댐 속에 묻은 수몰민들은 쥐꼬리만한 보상비를 받아 이곳에 마을을 만들고 산을 개간해 오늘날 삶의 터전이 되었다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진 35만평의 고냉지 채소밭 상단으로 백두대간 마루금이 이어진다

귀네미골(牛耳谷)이란 쇠귀를 닮은 산 너머 마을이란 뜻으로 정감록에도 등장하는 지명이며

정강록에 이르기를 귀내미골이 이상향(무릉도원)으로 가는 길목이라 했다, 귀내미골(牛耳谷)은

우귀(소귀)의 이두표기인 우이령(牛耳嶺)으로 되었다가 "귀넘이"→"귀내미"로 변음되어 현재에 이른다

 

 

 

 

잠시 포장도로를 따라 왔다가 비료포대를 쌓아둔 우측 숲으로 들어선다

귀네미마을은 해양성 기류가 교차하는 지점이라 일교차가 커서 한 여름에도 긴 옷을 입어야 할 만큼

서늘하고  이곳에서 생산된 고랭지 배추는 수분이 적고

당도가 높아 씹는 맛이 아삭아삭하다,  그러나 날씨가 춥다보니 일년에 1모작밖에 할 수 없는게 단점이란다

 

 

 

 

강원도 태백 귀네미 마을은 땅이 하늘보다 푸르고 바다보다 거칠다라고 표현을 한다

쟁기질하던 소도 굴러 떨어질 정도로 산비탈이 가파르며

수몰민들의 눈물을 먹고 자란 배추들의 초록물결이 아름다운 곳인데 파종을 하여 볼 수 없어 아쉬웁다

 

 

 

 

좌측에 봉우리가 지도상 1,059m봉으로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엄청난 바람이 불면서 사람도 날아갈 정도로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매봉산이 "바람의 언덕"이라면 이곳은 "폭풍의 언덕"이라고 불러야 될 정도로 세찬 바람이 불고 있다

 

 

 

 

이곳은 강호동의 "1박2일"팀이 저 아래 외롭게 서 있는 나무에서 비박을 하면서 촬영을 했단다

그래서 저 나무를 "이승기나무"로 불리우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은 오랜 세월을

흙과 함께 살아온 수몰민들의 눈물과 땀 그리고 정(情)이 배추김치처럼 한데 버무려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좌측 백두대간 안내도가 있는 쪽의 봉우리로 마루금이 이어져야 하지만

대부분의 대간꾼들이 편의상 임도를 따라 큰재에 이른다

혹자도 좌측으로 길을 열어 보았지만 사람이 다닌 흔적도 없고 체력도 따라 주지 않아 임도를 따른다

 

 

 

 

1,062m봉이 보이고 차단막이를 지나 임도를 따라가면 큰재에 이르며

귀네미골은 "1박 2일"에서 고랭지 배추밭이 알려지면서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돋이와 해넘이을 볼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큰재은 삼척시 신기면 고무릉리와 태백시 하사미동을 이어주는 고개로

옛날에 물물교환 장소로 중요한 고개였다고 한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만 무심코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알바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할 지점이다

 

 

 

 

지도상1,062m봉은 원래가 억새가 많은 초원지대로 유명한 곳이였는데

억새가 많이 사라지고 낙엽송 군락지로 변하였으며

삼척시 방향의 동해바다를 지척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 봉우리인데 박무로 인해서 볼 수가 없었다

 

 

 

 

이정표의 준경묘(浚慶墓)는 강원도 삼척시에 있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양무장군의 묘소로

용비어천가 첫장에 나오는 목조 이안사를 지칭한다 목조가

한 도승의 백우금관으로 양친을 안장한 뒤 5대에 이르러 조선을 건국하게 되었다

준경묘(浚慶墓)주변에는 울창한 황장목(黃腸木)으로 둘러 싸여 있는데 경복궁중건시 자재로 쓰였다고 한다

 

 

 

 

낙동산악회 표지판은 1,069m봉으로 되어 있지만 지도상에는 1,059m봉으로 되어 있다

둘 산악회에서는 "1.059m봉으로 "아미산"이라 적혀 있으며

잡목속에 특징도 없는 봉우리가 개똥이면 어떻고 말똥이면 어떠랴마는 그래도 진짜 높이가 궁금하다

 

 

 

 

조망이 없는 삭막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면서 1,105m봉의 무명봉에 도착한다

높은 봉우리인데도 이름표를 달지 못한것이 안타까울 뿐이며

이곳에서 부터는 세찬 강풍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면서 가파른 내림길을 힘들게 진행한다

 

 

 

 

황장산(黃腸山, 1,059m)의 실질적인 정상은 삼각점이 놓여 있는 이곳이 정상이다

정상석이 삼각점에서 50m 떨어진 아래에 설치되어 있는것은

특별하게 좋은 위치는 아닌것 같아 보였지만 조망이 좋은 위치에 정상석을 세운것으로 보여진다

 

 

 

 

황장산(黃腸山)은 삼척시 신기면 활기리와 하장면 번천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이 산의 유래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금강송(金剛松) 군락지로서 임금님의 관을 만드는데

쓰이는 품질 좋은 황장(黃腸)으로 된 목재용 소나무를 생산한 산이라 하여 황장산이라 부른다

 

 

 

 

산죽밭을 통과하여 댓재에 무거운 발걸음을 내려 놓으니 매서운 비 바람이 몰아친다

댓재(810m)은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일명 죽현(竹峴), 죽치령(竹峙嶺)이라 불린다

1984년 10월 지금의 도로가 개통되기전 영동과 영서지방을 넘나들던 옛 고갯길로써

수 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기록으로 보아 고려시대까지는

죽현(竹峴)~죽령(竹嶺)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는 "죽치(竹峙)"로 불렸고

지금은 큰 산줄기를 넘어가는 고개의 의미인 "대고개"가 변음 되어 "댓재"라고 부르고 있다

 

 

 

 

댓재의 백두대간 표지석 뒷쪽에는 정일남 시인의 "댓재"란 시가 새겨져 있다

소금장수 등짐지고 넘던고개,  산새도 고개를 넘자고 울고

저 아래 구릉지로 산비 질러가네,  불같은 진달래 무더기로 피던 능선

바위에 앉아 옷고름 날리던 님은  머슴살이 십년을 기다려 주었네

옛날은 허기져도 칡덩굴 좋았던 것을 살아온 목숨은 산메아리 되어 숨고

오늘 이 고개를 넘는 사람아~ 구름도 나그네와 함께 쉬었다 가네  **** 댓재 ****

오늘처럼 매서운 비 바람이 휘몰아치는 댓재에 도착한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시" 같아 보인다

 

 

 

 

댓재는 안개상습지역으로 고갯마루에는 넓은 주차장과 휴계소가 있으며

삼척에서 가장 오지 마을인 하장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강풍과 폭우로 힘들었지만 한구간을 무사히 마감하여 뿌뜻한 마음으로 산행을 마감할 수 있었다

 

 

 

 

남도에서 자란 우리는 한겨울 산행은 춥고 힘들어 따뜻한 봄이오면 백두대간을 다시 이어갈 예정이다

봄에 들꽃이 온 산야를 수놓을 때  두루두루 보면서 의미있는 백두의길을 걷고자 하며

금년 5월에 지리산을 출발해 전라남북도를 지나고  충북, 경북, 강원도 태백시를 거쳐

삼척시까지 왔으니 참으로 많이 왔다, 오늘 강원도 오지산행에서 환선굴도 바라보았고

귀네미골이라는 배추밭이 있는 동네도 인상적이었으며 가을 산행의 비경도 멋진 선물이었던 산행이었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3 : 50 ~ 14 : 25  (10시간 35분)      ◎ 날씨 : 흐림,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