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도(격자봉 - 망월봉 - 세연정) 테마산행▣
◎ 산행일시 : 2013년 4월 08일 (월요일)
◎ 산행위치 : 전라남도 완도군 청별리, 예송리, 보옥리, 선창리, 부용동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청별리파출소 - 광대봉(廣大峰, 311m) - 수리봉(406m) - 격자봉(赤紫峰, 430m) - 누룩바위
뽀래기재 - 망월봉(望月峰, 364m) - 선창리재 - 동천석실 - 세연정(洗然亭,) - 청별리파출소
◎ 산행거리 : 청별리파출소 ~ 3.5Km ~ 광대봉 ~ 2.0Km ~ 수리봉 ~ 0.9Km ~ 격자봉 ~ 0.5Km
누룩바위 ~ 2.4Km ~ 망월봉 ~ 2.8Km ~ 선창리재 ~ 3.5Km ~ 세연정 ~ 1.2Km ~ 청별리파출소
도보거리 = 약 16.8Km 실제도보거리 = 약 18.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7 : 50 ~ 14 : 45 (06시간 55분) ◎ 날씨 : 아주, 맑음
◐ 고산 윤선도의 발길을 묶고 시상이 떠올리는 섬! 보길도 격자봉 산행이란? ◑
보길도는 조선조의 탁월한 가객 윤선도의 유배지로 그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지만, 윤선도는 어디까지나 윤선도일 뿐!
보길도는 스스로도 그 자태를 뽐낸다, 널리 알려진 보길도(甫吉島)의 멋은 부용동 세연정과 예송리의 해수욕장이다
해송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예송리 해수욕장은 한 겨울에도 온화한 바닷 바람을 일으켜 나그네의 여정을 깊게 한다
보길도에서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멋은 적자봉 산행이다,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산행은 자체만으로도 신비로운 곳이다
하늘에 죄를 지은다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山)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말자
****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도 격자봉 산행안내도****
오늘은 고산 윤선도(尹善道)의 시상이 떠 올리는 섬! 보길도를 가려고 해남 땅끝마을에 도착을 하였다
가사문학의 대가 윤선도가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신선이 사는 곳>이라고 일컬었던 "보길도"
<어부사시사>의 윤선도가 제주도 유배길에 정착하여 문학의 태를 묻었던 보길도로 문학기행을 떠난다
뉴 장보고호가 보이는 여객선선착장 우측쪽으로 두개의 작은 섬이 맴섬이라고 한다
한쌍의 매미처럼 생겼다고 하여 맴섬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지며~
가운데가 비어 있는 맴섬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을 때 황홀감에 젖어 든다
해남 땅끝선착장에서 노화도로 가는 배는 하마 입처럼 크게 벌리고 우리를 기다립니다
역시 완도하면 해상왕국 해신 장보고지요~ 그래서 배이름도 장보고호 첫배는 오전 6시 40분~
승용차와 1인요금 18.000원+1인(6.500원) = 24.500원이구요
참고로 2인이 갈 때에는 산양진항에서 왕복 택시요금을 계산하면 승용차를 가지고 가는게 경비가 절약된다
뉴~장보고호 선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정말로 장엄하다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바다가 환상적이며
맴섬사이로 일출을 보지는 못하였지만 선상에서 바라보는 일출도 황홀감에 들게 한다
뉴~장보고호 선상(船上)에서 바라본 땅끝 전망대와 갈두항이 점점 멀어져 가고
우리가 탄 장보호는 땅끝~노화를 오가는 배중에 가장 큰 배로
승용차가 그대로 들어와 선상안에서 유턴해서 주차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폐리호이다
보길도 볼라꼬~ 꼭 두 새벽에 눈 부라리고 일어나 왔는데 기념샷 한장 남겼지요
장보호는 노화도 산양진항을 향해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다도해 해상국립구역답게 잔잔한 바다위에는 이름모를 작은 섬들이 떠 오르는 붉은 햇살에 서로 인사를 나눈다
예전에는 상대적으로 큰섬인 보길도가 주 선착장이고 노화도는 경유하는 섬이었는데
두섬을 잇는 연륙교인 보길대교가 생긴 후부터는
완도군 노화도 산양선착장(산양진항)에 도착하여 보길도는 택시나 승용차로 이용하여 들어가게 되었다
노화도 산양선착장에 도착하여 관광안내도를 잠시 살펴본다
제일먼저 눈에 띄는것은 전복의 고장 노화도
산행을 마치고 시간이 되면 전복이나 실컷 먹고 가야하는디~ 어쩔랑가 모르겄다
보길대교는 2008년에 개통된 길이 620m로 산양항에서 승용차로 10여분 달려오면 만난다
빨간색 보길대교가 멀리서도 눈에 띠게 아름답게 보였으며, 저 다리를 건너면
바로 보길도이고 좌측은면 예송리 해수욕장이고,오른쪽으로 우회전하면 세연정으로 가게 된다
보길대교를 건너면 바로 보길파출소 좌측 뒷편으로 산행 들머리이다
보길파출소가 있는 곳은 청별리 마을이며
면사무소와 행정관서와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있고 건너편으로 노화읍과 마주보고 있다
보길파출소 좌측 뒷편 산행들머리에 격자봉 안내표지판이 있다
벌써 봄의 전령이 산하를 점령하고 있고 남도의 훈풍과
비릿한 바다내음이 옷깃을 스치는 보길도의 아침은 그야말로 산행하기 좋은 날 상쾌하게 출발한다
산행들머리에 올라서자 좌측으로 산행안내도와 숲으로 들어서는 산길이 열려 있었으며
순수함을 닮은 향긋한 동백나무가 가장 먼저 우릴 반겨 주었고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면 상록수림으로 뒤덮혀 있는 동백숲의 터널은 자꾸만 황홀감에 빠져들게 한다
보길도의 유래를 보면, 옛날 영암의 한 부자가 선친의 묘자리를 잡기 위해 풍수지리에 능한 지관을 불렀는데
지관이 이 섬을 두루 살핀 뒤 "십용십일구(十用十一口, 甫吉)"라는 글을 남기고 있다
이 글의 뜻을 풀기 위해 월출산 선암사의 스님에게 내용을 물으니 섬 내에 명당자리가
11구가 있는데 10구는 이미 사용되었고 나머지 1구도 이미 쓸 사람이 정해졌다고 풀어 보길도라 불렀다고 한다
오름길에 뒤돌아본 노화읍 전경~ 보길도보다 훨 작은 섬인데 인구가 더 많다고 하네요
보길도는 국립공원이라 개발이 제한되어 있고 노화도는 국립공원이 아니라서
각종 유흥주점들이 늘어서 있으며~ 천용택 전 국방장관의 고향이기도 하다 섬에서 인물 났었지요?
다도해의 섬들이 다 그렇듯! 보길도에도 온 산이 동백꽃 터널이다
산행길은 초입부터 약간의 오름짓을 하게 되며
여기 저기 콩란이 유난히도 눈에 많이 띄고 일엽초와 바위에는 부처손도 보이기도 한다
보길도는 전남 완도군에 속한 하나의 면으로 14개 마을에 인구 3000여명이 살고 있다
3개의 초등학교와 1개의 중학교가 있고 우리나라의 크고작은
섬들중 22번째로 큰섬으로 식수가 풍부하고 주민들의 인심이 넉넉하고 마음도 따뜻하다
암릉지대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조망은 완도의 상왕봉과 달마산까지 보인다
보길도는 전복의 고향이라 부를정도로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며
전복의 주 먹이가 되는 미역, 다시마양식장과 더불어 온통 양식장시설로 바다가 가득하다
사월의 보길도는 갓 시집온 새색시의 모습처럼 빨간 동백꽃으로 치장을 하였다
동백꽃은 붉은 순정을 뜻하죠! 봄 은 젊은 날을 떠 올리게 하며
감성이 많이 메마른 지금에도 꽃피는 모습을 보면 소년의 마음이 되살아나니, 그래서 봄은 참 좋은것 같네요
봄은 동백의 꽃망울에서 시작된다고 하지요? 동백꽃은 꽃이지고 난 후에도
아름다운것은 통째로 떨어지면서 꽃이 시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백꽃 떨어지는 것을 붉은 순정, 여인의 눈물에 비유한다, 동백꽃이 래드카펫으로 깔려 있다
봄꽃처럼 화사한 날씨에 동빽꽃은 여인의 발길을 자꾸만 붙잡는다
아마도 가슴벅찬 봄날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른가지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는 것은 삭막한 사람에게 살아 있음을 확인해 주는 소망이며 희망일 것이다
동백꽃 터널을 지나 세상밖의 암반지대에 올라선다
산행의 여유로움을 즐기며
계속되는 산길은 대체적으로 완만하여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암반지대에서 서북방향으로 넙도-마안도-노록도 조망이 됩니다
보길도는 윤선도를 상징하는 은자(隱者)의 섬이 아니라
완도에서 전복 양식으로 가장 활발하게 이름난 섬으로 보통 억대 수입을 올리는 부자섬 보길도가 되었단다
누구든 그 섬에 가고 싶어 한다고 한다
바로 그 섬이 "보길도"이며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시상이 떠올릴만믐 아름답다
보길도는 섬 중앙에 운동장을 연상케 하는 분지가 형성되어 있는 곳이 부용리 마을이다
한가운데에 주민들의 식수원인 수원지가 있으며, 섬의 최고봉인 격자봉 아래로
낙서재와 건너편으로 동천석실 등 고산 윤선도와 관련된 유적들이 즐비하게 있는 곳이다
통리 해수욕장과 바다건너 소안도가 가물가물 보이고
마치 나일 악어처럼 생긴 도미치가 있고
망둥어처럼 생긴 목섬이 낚시을 드리우면 금방이라도 망둥이가 올라올 것 같다
보길도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섬으로
보길도하면 고산, 윤선도이다, 윤선도가 명명한 산은
격자봉(格紫峰)으로 표기되고 있으나 국립지리원 지형도에는 적자봉(赤紫峰)으로 표기되어 있다
광대봉에서 바라보는 예송리 해변의 모습은 평화롭고 고즈넉해 보인다
울창한 숲, 조약돌 해변으로 유명한 곳이며
쪽빛바다와 깍아지른 해안절경이 어울려 한폭의 수채화를 그려내는 아름다운 마을 예송리이다
당사도는 예전에 제주방면에서 들어오는 첫 관문이라는 뜻에서 항문도(港門島)라고 불렀는데
어감이 좋지 않다고 해서
바꾼 지명이 자지도(者只島)였다가 이것 역시 어감이 좋지 않아 당사도(唐寺島)로 바꾸었다고 한다
적자봉(430m)을 중심으로 광대봉, 수리봉, 망월봉, 뾰족산으로 산줄기가 이어진다
격자봉(格紫峰)은 멀리서 바라보면 산세가 마치 황소가 드러누운 듯
부드럽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산속으로 들어서면
황소머리에 뿔이 난듯 기암이 나타나고 그 기암마다 독특한 모양을 뽐내며 발길을 멈추게 한다
보길도는 전남 완도군에 속해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해남 땅끝에서 12km 떨어져 있는 곳으로
섬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울창한 산림과 절벽의 기암괴석들이 천혜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보길도의 동백나무는 여수 오동도 동백나무에 비해 어려 보인다
오동도 동백나무는 오래 묵은 고목나무인데
동백나무만 놓고 본다면 조금 실망스럽긴 하여도 동백숲은 산행의 여유로움을 즐기기에 아주 좋다
지도상 280m봉의 큰바위를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조그만 자연동굴도 눈에 보인다
우암 송시열은 역설적이게도 고산 윤선도를 81세가 되도록 유배시킨 장본인이라고 하는데
그런 송시열이 뒷날 제주도로 귀양을 가던 도중 보길도에 들렸다고 한다
윤선도가 만든 부용리 세연정에 송시열은 한번쯤 다녀갔을까 가 궁금해진다, 남인과 서인이라는
이념으로 대립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사람! 고산 윤선도와 우암 송시열이 보길도에 유적지가 있다
큰길재 내림길 전망바위에서 예송리 예작도를 바라보며 산상만찬을 즐기면서
고산, 윤선도할아버지께 소주한잔 올렸으며, 보길도에는 큰 나무나 바위에
고사를 지내는 안녕과 무사고를 비는 풍습이 있다 하여 우리도 무사산행의 안녕을 빌었다
안부사거리인 큰길재(고도 180m)는 좌측 예송리와 우측 부용리를 넘어가는 큰길을 말한것 같다
넓은 공터에 산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간이 의자가 설치되어 있으며
우측 부용리에는 조선조 전형적인 정원 양식을 취한 낙서재, 세연지, 동천석실 등이 있고
좌측 예송리에는 천연기념물 40호 예송리 상록수림과 해변 등이 어우러진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수리봉 오름길에 뒤돌아본 광대봉과 지나온 산줄기가 일목요연하게 보이며
좌측으로 윤선도 유적지가 있는 부용리 마을이며
저 멀리 완도의 상왕봉과 해남 달마산도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같은 선경이 펼쳐진다
눈은 청산에 있고 귀는 거문고에 있으니 세상의 무슨일이 내마음에 이르리요
가슴 가득한 호연지기를 아는 이 없으니 한 곡의 미친 노래를 홀로 읊어 보노라
고산이 지은 시 한 구절이며, 어쩌면 사업에 실패하고 방랑했던 신세처럼 고산도 나처럼 외로웠나 봅니다
보길도 최고의 절경지는 예송리해변으로 상록수림이 장관이며
보길도 앞바다는 온통 전복 양식장 일색이다
진시황제가 불로장생을 위해 먹었다는 전복은 비타민, 단백질 칼슘 등 미네널의 보고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수리봉(352m)은 이정표에 수리봉이란 글씨가 정상임을 알려주며
크고 작은 섬들이 수반위의 수석처럼 보이고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쪽빛바다는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격자봉(格紫峰, 430m)은 정상석은 없고 이정목에 격자봉이라 적혀 있다
또한 동백나무에 준,희님의 아크릴판이 걸려 있지만
보길도의 최고봉답지 않게 정상석도 없고 시원한 조망마져도 제한적이라 실망감이 컷다
격자봉을 다른 이름으로 적자봉(赤紫峰)이라 불리기도 한다
산 전체에 상록활엽수의 난대림에 해가 비추면
나무잎이 햇볕을 반사해 산이 붉은색을 띈 것같다하여 적자봉(赤紫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물외가경(物外佳境)에 물외한인(物外閒人)이라!
고산 윤선도가 격자봉(格紫峰)에 올라 보길도의 수려한 자연을 찬탄한 말이다
물외(物外)란 세속을 초월한 경지를 이르는 말이나 세상 밖인 듯
아름다운 경치"를 품은 물외가경(物外佳境)의 보길도에서 물외한인(物外閒人)의 삶을 살고자 하였다
격자봉에서 뽀래기재로 발길을 옮기면 누룩바위가 실채를 드러낸다
월요일이라 인적이 없는 산행길이 아쉽다
이처럼 멋진 바위가 있으면 형형색색 등산객들이 붐비고 카메라 소리가 찰칵 찰각 할텐데~
누룩처럼 쌓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일까?
지명에 대한 유래를 알 수 없었으며
어디를 보아도 누룩처럼 생기지는 않은것 같은데~
격자봉 능선에는 자연식물원을 연상케하는 각종 야생화와 수목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천지 빼가리로 널부러져 있는 마삭줄과 콩란!
그리고 덩쿨식물은 바위와 나무에 마치 비리처럼 참 많이 달라 붙어 마치 원시림을 연상케한다
격자봉은 멀리서 바라보면 황소가 드러누워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였는데
마치 뽀죽산과 망월봉이 황소뿔처럼 솟아 있으며
좋은말로 애기하면 부드러운 능선이 마치 따뜻한 어머니 젖가슴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
사거리 안부인 뽀래기재는 옛날에 보옥리(甫玉里)가 뽀래기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이 뽀래기재로 부른것 같으며
옛날에는 "뽀래기에 뽈뚝 따 먹으러 가자"며 예송리나 부항리에 살던 아이들이 자주 찾았던 곳이란다
망월봉까지의 산행길은 동백숲 터널로 촉촉하고 부드러운 산길이다
보길도는 정말로 동백섬인것 같으며, 울창한 수림으로
하늘을 가리는 숲길을 걷다 가도 시원한 바다를 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린다
망월봉 오름길에 너럭바위에서 바라본 보옥리 마을과 공룡알 해변, 그리고 가운데 작은 섬은 치도!
추자도의 새벽 닭 울음소리가 들리고 제주도의 밤불이 훤히 보인 곳이며,
>산 아래 해변에 용이 살다가 여의 뾰족산주를 물고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어 "뾰록" 이라 칭했다 한다
완도는 웃음이 넘치는 고장이다, 완도(莞島)의 "莞"자는 "빙그레 웃을 완"자 이다
그래서 완도(莞島)를 웃음 섬이라고 하며
자연환경이 깨끗하고 신선한 먹거리가 넘쳐나고 돈이 많은 지역이라 저절로 웃음이 난다고 한다
망월봉은 높지는 않지만 상당히 가파른 암릉를 오른다
하지만 어려운 구간은 하나도 없으며
황소뿔처럼 생긴 산새가 밧줄 한번 안잡고 가서야 어디 망월산이라 할수 있겠는가?
망월봉에 올라서면 보옥리 마을은 여성, 보죽산을 남성으로 비유한다면 멋진 이름인것 같다
보석을 연상했다면 착각이며, 보옥리는 순 우리말로 "뽀래기"나 "뽀리기"로 불렀는데
보리수나무라는 뜻이며, 한자로 옮기면서 이름이 보옥리(甫玉里)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마을 앞에 보죽산(甫竹山, 195m)은 바다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산이다
저 산을 다른말로 "뾰죽산"이라고 부르고 있죠!
이곳에서 바라보면 끝이 뾰족하게 생긴 산이라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된다
망월봉(望月峰, 364m)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사방팔방 막힘이 없으며
동쪽으로는 격자봉의 주능선이 펼쳐지고
망월봉에서 분부시게 넘실되는 푸른바다와 그림같은 해안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망월봉은 정말로 아름다운 풍경인데 왜 윤선도의 시 한구절이 없을까요?
사월의 신록이 격자봉에 면류관처럼 싱그럽게 피어날 때
아마도 고산 윤선도가 보름달이 뜨면 망월봉에 올라 달과 벗이 되어 망월봉이라 하지 않았을까요?
보길도는 섬 전체가 자연이 만들어낸 정원이며, 한 겨울에도 초록으로 우거진 숲!
고즈넉한 해변에 금빛 모래밭, 신비로운 해안절경 등
쪽빛바다 위에 크고 작은 섬 들이 수석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보길도의 숨어 있는 비경이다
선창(仙昌)마을 전경인데, 신선(神仙)들이 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한라산의 산신이 지리산의 초청을 받고 가던 도중
이 마을 남쪽 망뫼산(망월봉)에서 달 구경을 하다가 산 아래를 내려다 보니
장차 주민이 창성할 곳이라는 계시가 있어 마을을 이루었다는 뜻으로 선창리라 하였다고 한다
봄을 시샘하는 진달래도 얼굴을 내밀고 쳐다보고 가란다
망월봉을 내려서는 발길이 아쉬웠으며
보길도는 동백꽃과 진달래, 콩난, 벗꽃, 해당화 등이 계절별로 만발하는 아름다운 섬이다
망월봉에서 내려서면 망끝전망대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이 망끝전망대 내려가는 갈림길이며
해남땅끝에서 망끝까지 왔으니 우리가 참 멀리도 왔음을 실감한다
망월봉에서 되돌아오면 능선삼거리 갈림길을 만난다
이곳에서 삼창리재는 좌측 방향이며
혹자는 좌측 382m봉을 올라 삼창리재에서 부용동 세연정으로 해서 청별리로 갈 예정이다
삼천리재 가는길에 바위 전망대에서 망월봉 아래의 망끝전망대을 바라본다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가슴속에 소망 하나를 빌어 보았으며
망끝전망대는 마을 아낙네들이 고깃배가 무사히 들어오는지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길도는 섬 전체가 동백꽃밭이라 할 만큼 상록수림이 산을 뒤덮고 있으며
곳곳에 바위전망대가 있어서 주변경관도 좋으며
적절히 조망할 수 있어 어느 섬 산행에 못지않은 훌륭한 자태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보길도는 우리나라 육지의 끝이라는 해남땅끝에서도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섬 보길도
그렇지만 자연 풍광이 빼어난 이 섬은 조선시대 이름을 날리던
고산 윤선도가 은둔해 살면서 "어부사시사'를 지은 곳이 바로 저 아래 부용동 마을 세연정이다
이곳의 선창리재는 부용동 마을에서 선창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선창리 마을의 지명을 붙여서 부르는 지명으로 보이며
지금은 더 이상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아름다운 옛길로 남아 있는것 같다
선창리재에서 오른쪽으로 동백숲터널이 보길저수지 까지 이어져 있다
보길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고산 윤선도와는 떼어 놓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섬이다
남인 가문에 태어난 고산은 꼿꼿한 성품으로 집권세력인 서인에 맞섰던
인물로써 특히 서인의 우두머리인 송시열과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탓에
일생 중 20여년을 유배지에서 보내야만 했었던 그의 유적이 보길도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부용동 마을은 분지가 형성되어 있고 주민들의 식수원인 수원지가 자리한다
전답이 널려 있어 마치 신선이 살만한 명당이었다 하며 천연적인 요새라 할 수 있는
이곳에 고산 윤선도가 세연정, 동천석실, 낙서재 등을 만들어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관광객을 불러들여 돈을 뿌리게 하고 있고, 상처뿐이었던 바다는 전복을 키워 섬 사람을 배부르게 하고 있다
부용동마을로 들어선다, 빨강지붕 좌측 상단이 낙서재가 있는 곳인데 시간상 그냥 지나친다
윤선도는 섬의 산세가 피어나는 연꽃을 닮았다고 하여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짓고
격자봉 아래에 낙서재를 지어 거쳐를 마련했다고 하며, 낙서재는 그의 아들이 공부를 했다고도 전해진다
동천석실이란 이름은 신선이 사는 곳을 "동천복지"라고 하는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동천이란 산천이 두루 경치 좋은 곳이란 의미도 되고 하늘로 통한다는 뜻이며~
석실은 석조로 된 거실이지만 산중에 의거하는 방이나 책을 잘 보존해 둔 곳이란 뜻이다
시간 관계로 동천석실을 오지 못해서 남의 사진을 가져와 부용동을 내려본다
고산이 죽는날까지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을까요
윤선도가 이곳을 제일 절승이라 하여 정자를 짓고 시가를 읊으며 사색을 즐겼다는 명소다
고산 윤선도는 두 차레 귀양을 가고 벼슬을 하여 다른 곳에서도 지내기도 했으나
이곳 낙서재에서 85세로 삶을 마쳤다고 한다, 보길도에는 세연정
무민당, 곡수당 등을 세우며 바위 등 자연경승에 세운 대(臺)가 모두 25여 개소에 이른다고 한다
보길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곳이다
아지랑이 일렁이는 들판에 청보리가 자라 있고 봄동이나 냉이도 지천으로 돋아나 있으며
동백꽃은 벌겋게 활짝 피어 상춘객을 부르고 있다, 또한 부용동에 문학체험공원을
만들어 "고산 모실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이 "고산모실길"로 보여진다
고산이 보길도 부용리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구전설화"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해남을 출발하여 제주로 향하던 중 도선은 풍랑이 심해 보길도 대풍항에 정박을 했단다
이날 그의 꿈에 신선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굳이 제주로 갈게 없다"
보길도가 제주에 지지 않을 락지(樂地)이니 이곳에서 지내라"고 현몽하여 뒷날뱃머리를 돌려
장사도옆 등문에 배를 대고 골짜기를 올라가니 산이 에워싼 모습이 부용화가 피어오르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고산 윤선도 원림이란 세연정이 있는 곳으로 세연정을 들리지 않고 보길도에 갔다 왔다란 말은 못할 것이다
고산, 윤선도 선생(1587-1671)은 남인의 거두로서 26세에 진사시에 급제하고
30세에 이이첨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7년간의 유배생활을 거친다
42세에 별시에 급제하고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의 사부가 되었으며
이후에도 사복시 첨정, 예조정랑, 시강원 문학 등을 역임하였고 51세에는 보길도를 들어왔다가
52세에 경상도 영덕으로 귀양 65세에 완도 보길도 부용동에서 어부사시사 40수를 지었으며, 66세에 예조참의
74세에 함경도 삼수로 귀양갔다 81세에 귀양 풀리고 1671년 6월 11일 보길도 부용동에서 85세로 생을 마쳤다
세연정(洗然亭)은 자연과 인공을 교묘히 접합시킨 조원(造苑)이다
연못과 정자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정원으로 물과 바위 그리고 정자와 소나무 등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정원의 모습은 고산의 독특한 정원 조성기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고산의 나이 67세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면적이 약 3.000평에 달하는 민간정원으로서는 큰 규모라고 한다
혹약암(惑躍岩)은 세연지 계담(溪潭)에 있는 칠암(七岩) 중의 하나다
이 바위는 역경(易經)의 건(乾)에 나오는 혹약재연(惑躍在淵)이란
효사(爻辭)에서 따온 말로 뛸 듯하면서 아직 뛰지 않고 못에 있다는 뜻이며
즉 혹약암은 마치 힘차게 뛰어갈 것 같은 큰 황소의 모습을 닮은 바위를 말한다
사투암은 세연정에서 잘 생긴 바위 일곱을 지칭하여 칠암(七岩)이라 불렀는데
그 중 하나인 사투암(射投岩)은 "옥소대를 향하여 활을 쏘는데
발 받침 역활을 하였다"고 전해지는 바위로 연못쪽이 들려진 모습이다
들려진 부분에 발을 딛고 옥소대쪽 과녁을 향하여 활을 쏘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비홍교(飛虹橋)는 정자 서쪽 제방 동쪽 겨우 한 칸쯤의 넓이에 물이 고여 있으며
못 중앙에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의 암석이 있다
거북이 등에 다리를 놓아 누(樓)에 오른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 다리를 비홍교(飛虹橋)라 불렀다
세연정(洗然亭)이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뜻이다
소나무와 상록수림으로 둘러싸인 세연정 현판 글씨도 참 아름답더군요
정자의 중앙에 세연정(洗然亭), 동쪽에 호광루(呼光樓), 서쪽에 동하각(同何閣)
남쪽에 낙기란(樂飢欄)이란 편액을 걸었으며 또 서쪽에는 칠암헌(七岩軒)이라는 편액을 따로 걸었다
회수담(回水潭)은 세연정 동쪽 축담 밑에 계담에서 인공 연못으로 흘러드는 수입구(水入口)를 말한다
계담 쪽에서 물이 들어가느 수구는 다섯구멍이며, 인공 연못 쪽으로 나오는 수구는 세 구멍이다
이를 오입삼출(五入三出)이라 하는데, 이런 구조는 독특하여 석축에 다섯 곳의 흡수구를 만들어
흐른 물을 받아들이되 배출하는 구멍은 세 곳만 들어오고 나가는 수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든 구조이다
정자를 중심으로 기생들이 군무(群舞)를 하던 동대(東臺), 서대(西臺)의 무대를 만들어
윤선도와 무리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호사와 사치속에 문학를 논하고
풍류를 즐겼던 것으로 '어부사시사"나 "오우가" 같은 대표작들이 만들어진 곳이라고 한다
판석보(板石洑)는 우리나라 조원 유적 중 유일한 석조보(石造洑)로 일명 "굴뚝다리"라 부르며
세연지의 저수를 위해 만들었으며, 건조할 때는 돌다리가 되고 우기에는
폭포가 되어 일정한 수면을 유지하도록 만들었고 보(洑)의 구조는 양쪽에
판석을 견고하게 새우고 그 안에 가회를 채워서 물이 새지 않게 한 다음 그 위를 판석으로 뚜껑돌을 덮었다
세연정의 앞뒤로는 연못이 있고 녹음이 짙은 계절에 오면 매우 운치가 있을 경관이다
아름다운 자연에 기발한 머리로 인공미를 보태여 세연정을 만들었다
연못의 바위들은 비홍교, 사투암, 혹약암, 등 해설을 늘어 놓았지만
학문이 깊지를 못한 나로서는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아 주마간산으로 흩어 보았다
고산 윤선도는 이곳에 머물면서 부용동에 연못을 파고 세연정을 세워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이곳에서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지어 동대와 서대에서 연주하게 하고 때로는
기녀들에게 연못 가운데 바위에서 춤추게 하여 물위에 어리는 그림자를 보며 즐겼다고 하니 호사의 극치다
세연정은 고산이 직접 조성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별서 정원으로 임금이 언제 올지 몰라 임금을 위해
온돌방이 꾸며져 있을 만큼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고 한다
권력 있는 양반을 위해 동원된 민초의 눈물도 함께 느껴지는 곳이다
저 거대한 바위들은 어디서 가져온 것일까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인공적인 못을 만들었는데
기계장비가 없던 시절에 내 머리로는 도저히 해석이 불가능하는데, 그 때 평민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하다
개똥이면 어떻고 소똥이면 어떠랴 중국의 만리장성도 700년 동안 만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가
하지만 지금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오고 있지 않은가, 이곳 보길도의 세연정도
역사가 말한것이지 그렇다는 애기를 표현한것 뿐이지 다른뜻은 전혀 없으며,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멋이 없으면 윤선도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지 않겠는가! 나도 부를 누렸다면 더 멋지게 꾸몄을지도 모른다
보길도 윤선도원림은 윤선도가 13년간 머물면서 물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을 일컬어 다섯 친구라 부르며
낙서재와 무민당을 짓고 생활하면서 학문에 몰두하고 제자를 가르치면서 세상근심을 잊었다고 한다
자연과 함께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큰 족적을 남긴 곳에서 우리도 문학기행을 마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승용차를 가져왔기에 해안도로 투어를 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없어 생략하고 돌아서야 했다
송시열 "글쓴바위"를 가보지 못한것이 못내 아쉬움이 많았으며
또한 전복의 고장 노화읍을 스쳐 오는데 배시간 때문에 전복을 포기해야 심정은 참담한 마음이었다
당대 숙적이었던 윤선도 유적지는 만나 보았지만 송시열의 글쓴바위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영원한 승자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두 사람을 통해서 권력은 "화무는 십일홍"인 것을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간 관계상 다 돌아보지 못했지만 아쉬움은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다
먹지 못한 전복아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라
하루종일 기분좋았던 보길도 여행은 가슴속에 그리움하나를 또 남기면서 추억을 뒤로한다
예로부터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시기에는 하늘이 반드시 한 인물을 내려보내 목숨을 걸고
예의를 지키게 하여 한 세상에 경종을 울려 주고 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바로 윤선도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란다, 보길도에서 아지랑이 일렁이는 들판에
청보리가 봄소식을 전하고 동백꽃은 상춘객의 마음을 붉게 물들였고 망월봉에서 바라보는
신비스런 해안절경, 동백꽃터널, 어부서사시의 세연정, 아름다웠던 추억들이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7 : 50 ~ 14 : 45 (06시간 55분) ◎ 날씨 : 아주, 맑음
♬ Scarborough Fair연주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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