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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낙동정맥(완주)

낙동정맥 제13구간(아화고개-땅고개) 종주산행

낙동정맥 제13구간(아화고개 - 사룡산 - 땅고개)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4년         03월         30일         (일)

◎ 산행위치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 청도군 운문면 / 경주시 서면, 건천읍, 산내면 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아화고개(4번국도) - 경부고속도로(굴다리) - 909번지방도 - 형제목장고개 - 498m봉

                      비슬지맥분기봉 - 사룡산(四龍山, 685m) - 우라생식마을 - 숲재(시루미기)

                      부산성(富山城, 729.5m) - 산불감시초소봉(760m) - 독고불재 - 651.5m봉 - 땅고개(20번국도)

 

◎ 산행거리 : 아화고개 ~ 2.1Km ~ 경부고속도로(굴다리) ~ 2.0Km ~ 909지방도 ~ 4.7Km 

                      비슬지맥분기봉 ~ 0.6Km ~ 사룡산 ~ 2.1Km ~ 숲재(시루미기) ~ 2.0Km 

                      부산성 ~ 1.8Km ~ 산불감시초소봉(706봉) ~ 1.6Km ~ 독고불재 ~ 4.0Km ~ 땅고개 

                      도보거리   =   약 20.9Km           실제도보거리   =   약 22.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7 : 30 ~ 16 : 30  (08시간 20분)      ◎ 날씨 : 아주, 맑음

 

            ◐ 동해바다을 벗삼아 낙동강을 굽어보는 낙동정맥(落東正脈)이란?

낙동정맥(落東正脈)은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며 남하하던 백두대간이 태백의 매봉산(천의봉)에서 분기하여 백병산과 면산을 거쳐

동해바다를 가까이 두고 남하하면서 울진 통고산, 맹동산, 청송의 주왕산, 포항의 운주산, 삼성산, 경주의 단석산을 지나

고헌산, 신불산, 천성산의 영남알프스란 거대한 산줄기를 따라 내려오다 부산 금정산을 거쳐 다대포 몰운대(沒雲臺)에서

맥을 다하는 약 400km에 이르는 산줄기를 말한다 우리나라 1대간 9정맥 중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에 이어 세번째로 긴 산줄기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오늘 진행하는 아화고개-땅고개구간은 삼국시대 신라 천년을 지켜준 방어벽으로

이 두 고개는 군사들이 이동하는 주요 관문이었던 셈이다

아화고개와 땅고개를 넘지 않고서는 서라벌로 들어갈 수가 없었으며

이곳을 낙동정맥이라는 울타리가 막아 서고 있었으니 오늘 산행은 신라 천년의 방어벽을 걸어가기에 의미가 있다

 

 

 

 

아화고개는 영천시 북안면 고지리(庫旨里)와 경주 서면 아화리의 경계지점으로 4번국도가 지나가며

영천쪽에서는 "시모골재"라 불렀고 아화리쪽에선 "지경고개"로 불렀으며

시모골은 아화에 있는 골짜기이고 지경(地境)은 경계선에 있는 고지리 마을 이름에서 고개이름을 만들어 놓았다

 

 

 

 

산행을 시작하자 마자 경주에서 청량리로 향하는 중앙선 철로를 건너 저온창고 앞을 통과 한다

중앙선 철도는 일본이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만들었으며, 또한 내륙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수탈하고 조선과 만주간의 화물의 수송을 원활히 할 목적으로 이 노선을 건설하였다고 한다

 

 

 

 

저온창고를 우측으로 지나면 삼거리 동광석재 표지석에서 좌측 방향으로 진행한다

아화리의 하추마을 과수원을 지나서 마루금에 접속하게 되는데

아화리(阿火里)는 이 지역이 물이 항상 부족하여 농사를 짓지 못 하여

하절기에는 초목이 고사될 정도로 피해가 극심하여

언덕에 불을 지르면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탔다 하여 "아화((阿火)"라 불렀다고 한다

 

 

 

 

아화고개에서 과수원을 통과하면서 길 찾기가 상당히 어렵다

선답자의 시그널도 보이지 않았으며

목장입구에서 다시 좌측 과수원길을 따르면 우측으로 구부러진 지점에서 좌측으로 오른다

 

 

 

 

철탑봉을 오르는 좌측으로 꺾어진 지점에 선답자의 시그널이 달려 있어 반갑다

하지만 안개 때문에 한치 앞도 볼 수가 없을 정도이며

낙남정맥에서나 느낄 수 있는 풍경을 이곳에서 느낀다, 과수원 언덕빼기를 올라 송전철탑 70번을 통과한다

 

 

 

 

철탑봉에서 내려서면 마을에서 올라오는 비포장길을 만나게 되는데

안개가 잔뜩끼어 목표물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엿으며

과수원이라 시그널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에 홀로가는 산객은 어려움이 많았다

 

 

 

 

고도차이가 거의 없는 구릉지대이고 별도의 지형지물도 없는 과수원이라서

산악회의 5만분의 1지도로서는 판별하기 어렵고

이곳에서 조금 헤메이다가 과수원 사잇길로 내려가 경부고속도로 철조망에 도착한다

 

 

 

 

낙동정맥의 산들이 살며시 마을로 내려와 인간사(人間事)를 구경한다

과수원 가정집 앞마당을 통과하여 내려서면

철조망 아래가 경부고속도로이며,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가서 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한다

 

 

 

 

흙탕물이 찰랑찰랑 흥건히 고여있는 굴다리를 어렵게 통과해야 한다

굴다리를 통과하면 우측으로 고속도로 옆길을 따르며

우측으로 진행하녀 좌측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마루금에 접속하게 된다

 

 

 

 

첫번째 삼거리에서 우측 고속도로 옆 임도을 따라 올라가면

고속도로옆 큰 임도를 버리고 좌측 산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송신탑을 기준으로 올라간다(사진을 참고로 가져옴)

 

 

 

 

비포장 임도를 100m정도 올라서면 선답자의 시그널이 보이기 시작하고

좌측으로 야산의 구릉지대를 지나게 된다

혹자는 1대간 9정맥을 하면서 지도 한장으로 정맥길을 찾아 다녔는데 이곳은 감을 잡을 수 없는 구간이다

 

 

 

 

구릉지대 야산을 지나면서 묘지를 만나게 되는데

시그널도 없고 우측길이 뚜렷하다

하지만 마루금은 좌측으로 꺾어지면서 임도 따라 진행하게 된다

 

 

 

 

아화고개에서 909번지방도가 있는 서오리까지는 야산이다

길만 잘 찾아간다면 아주 편안한 길이며

이곳에서 비포장도로를 건너서 보리밭의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서 한동안 가야한다

 

 

 

 

노란선 방향으로 시그널이 호객행휘를 하지만 철탑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서 마루금은 직진 방향이며

보리밭 의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보리밭이 끝나고도 계속해서 넓은 수레길을 따라 진행한다

 

보리밭을 지나면서 학창시절에 자주 불렀던 가곡이 생각나는 길이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러가면, 뉘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보리밭 / 박화목>

 

 

 

 

보리밭이 끝나고도 야산의 구릉지대을 넘어가면서 수레길은 계속 이어지는데

보리밭을 보니 초등시절 보리밭 밭기를 하던시절!

지금은 보리밥이 별미이지만 60년대 말까지만 해도 가난의 상징이었다고 생각된다^^

 

 

 

 

야산을 넘어서면 다시 목장초지지역을 지나고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도 되지만 정맥길은 아니며

이곳에서 수레길을 따라 한 정거장을 더 넘어서면 좌측으로 내려서는 삼거리가 정맥길이다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909번지방도가 있는 호용지골고개에 내려선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주린배를 채웠고 울~몽실님의 정성이 담긴

따끈한 모닝커피도 제공받았으니 다시 힘을 내여 사룡산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논두렁 밭두렁 과수원을 지나서야 서오리의 호용지골 고개인 909번지방에 내려선다

서오리(棲梧里)는 선산(善山) 박씨가 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오동(梧桐)이 많은 것을 보고 살아 왔고 그 후 어느 날

봉이 날아와서 오동가지에 앉아 울고갔다 하여 동명을 서오리(棲梧里)라 하였다고 한다

 

 

 

 

호용지골고개는 경주시 서면과 영천시 북안면의 경계에 위치한 곳으로

909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인근에 조남지가 있으며

건너편으로 희미하게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사룡산의 이정표와 안내도의 개념도가 있다

 

 

 

 

지금까지 별 특징이 없는 야산을 산자분수령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밭두렁과 과수원 사이로 술레잡기 하듯이 지나왔다

하지만 이곳부터는 사룡산정상까지 등산로 정비가 잘 되어 있고 이정표가 길 안내를 잘 해준다

 

 

 

 

고즈넉한 산길을 따라 가는데 세상 밖으로 나올려고 하는 쑥을 보니 어릴적에

국과 떡을 해먹었던 시절이 생각이 난다

지금은 이해가 안되겠지만 시골에서는 남자 아이들도 쑥을 뜯었다^^

남는 것은 시장에 팔아서 생필품을 구입할 정도로 궁핍하였던 것이다, 향긋한 쑥 냄새만 맡아도 발길은 가볍다

 

 

 

 

송전철탑 No59. 60번을 지나면서 임도가 가로지르는 형제목장고개에 도착한다

고개에는 성황당 흔적이 있는 돌무더기가 있으며

좌측으로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경주 전통체험학교가 자리잡고 있어 비상시 탈출이 가능한 곳이다

 

 

 

 

형제목장갈림길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사룡산 오름길이 시작된다

오름길에 진달래가 참으로 곱게 피었으며

특별하게 볼것도 없는 산길에서 지친 산꾼의 마음을 달래준것은 진달래 뿐이다

 

 

 

 

어디 쉬운 산이 있을까마는 사룡산 오름길은 산꾼의 인내를 시험하는 것 같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의 된비알은 곡소리가 날 정도로 올라야 하며

산은 고통을 즐기라 하였지만 만만치 않은 오름길에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다

 

 

 

 

사룡산(四龍山)의 일룡(一龍)인 480m봉을 넘어서면

용계리갈림길 이정목을 만난다

사룡산 정상까지는 편의상 봉우리를 지날 때마다 이룡, 삼룡, 사룡이라 부른다^^

 

 

 

 

이룡(二龍, 520m봉)으로 추정되는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시야가 확 트인다

영천시 북안면 용계리일대가 넓은 평야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경부부고속철도 넘어로 날씨가 좋은 날은 팔공산이 보이는데

오늘은 운무(雲霧)로 인하여 대구, 영천 주변의 고산 준봉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이 암릉을 올라서면 삼룡(三龍, 659m)인 사룡산갈림길(비슬지맥분기봉)에 도착한다

 

 

 

 

 

 

사룡산은 분기점에서 우측으로 0.6Km정도 떨어져 있으므로

사룡산 정상까지는 왕복 20분정도 소요되며

정상에 갔다가 되돌아와 이곳에서 부산성(富山城) 방향으로 진행한다

 

 

 

 

비슬지맥은 낙동정맥 분기점에서 분기하여 경산시와 청도군의 경계를 이루며 서진하는 산줄기로

사룡산에서 구룡산, 대왕산, 용각산, 달성의 비슬산, 천왕산, 화학산

밀양 종남산을 거쳐 오우진나루까지 도상거리 약 146.5Km에 이르는 산줄기를 비슬지맥이라 칭한다

 

낙동정맥 이정목에는 밀양지맥(부산같이하는산악회)분기점이라고 새겨져 있었고

돌비석에는 비슬지맥(청도산악회)라고 새겨져 있어 헷갈리게 한다

경남, 부산사람들은 밀양강을 더 중시해 "밀양지맥"이란 개념을 정립하는데

경북, 대구 사람들은 대구생활권을 중심으로 금호강 수계를 따라 "비슬지맥"으로 설정하려는 모양인것 같다

 

 

 

 

사룡산(四龍山, 685m)은 경북 영천시 북안면, 청도군 운문면, 경주시 서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옛날 용(龍) 네마리가 승천한 산이라는 뜻에서 지명이 유래하였으며

또한 3개 면(面)이 만나는 지점으로 삼면봉(三面峯)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망은 전혀 없고

정상석은 3개면에서 설치하였는지 3개나 되고 중앙에 무덤 한기만이 외로이 정상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사룡산은 이웃한 경주 오봉산의 부산성과 연결되는 군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요충지였으며

신라시대 병사들이 이 산을 거점으로 삼아 적을 물리쳤다 하여 영천 사람들은 

사룡산을 전방산이라고도 불렀으며, 연세 많은 어르신들은 "전뱅이"라고 부르며

비슬지맥은 사룡산을 출발하여 구룡산, 비슬산, 열왕산과 창녕 종암산을 거쳐 낙동강에서 끝을 맺는다

 

 

 

 

사룡산 정상을 둘러본 후 다시 낙동정맥분기봉에 되돌아와 왔다

분기점에서 경주와 영천시계가 나뉘어지고, 낙동정맥길은

부산성 방향으로 내려서면서 온전히 경주시 건천읍과 산내면의 면경계를 따라 마루금이 이어진다

 

 

 

 

사룡산을 올라설 때 그렇게 힘들게 올라왔는데 참으로 황량함을 느끼는 곳이다

비슬지맥분기봉을 내려서자 마자 마을이 있는데, 이렇게 높은 고온지대에

우라생식마을이 형성되어 보이는데 외부세계와 다른 분위기로 딴세상을 보는듯 하다

 

 

 

 

분기봉에서 내려서면 시멘트 포장길 따라 정문까지 가면된다, 이곳이 정문이 아니고

좌측으로 소(牛)의 형상물을 지나 계속가면 정문이 나온다, 우라생식마을은

6.25전쟁 때 이 골짜기로 숨어든 기독인들이 전쟁통에 먹을게 없어 생식을 하게 되었는데

전쟁이 끝난 후에도 생식을 이어가게 되었고 그대로 눌러앉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모두들 수행중인지 인기척하나 없고 정적만 흐를 뿐이다

 

 

 

 

우라리(牛羅里)는 마을 모양이 소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래서 이렇게 소(牛形)의 형상물도 있고, 성경에 관한

조형 형상물들이 설치되어 있어 일반인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표석 뒷쪽으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보이지가 않고

마을 곳곳의 표석에 성경, 생식 약초, 무슨 기원을 하는 글귀들

기독교 색채가 강한 구절들이 쓰여 있거나 조각이 되어 있는 등 우리의 정서와는 달리 다른 세상이다

 

 

 

 

뒷쪽으로 식물분석장이라고 쓰여있는 곳이 정문이며~ 정문에서 마루금은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

정문 안내판에는 특별한 것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생산되는 살아 있는

음식물을 섭취하고 있다고 되어 있고 수행자들을 위해 외부인의 출입을 삼가해 달라는 문구도 함께 있다

 

 

 

 

식물분석장이라고 써 있는 우라생식마을 정문을 나와 우측으로 603m봉을 오른다

임도파님들은 포장도로를 따라 숲재까지 가도 되며, 603m을 넘어 내려오면

숲재와 연결된다, 비슬지맥을 하려고 한다면 우라생식마을로 접근하면 쉽겠다는 생각이 든다

 

 

 

 

603m봉은 어렵지 않게 올라 산상 만찬을 즐기고 내려서면 상당히 급비탈이다

우라생식마을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 골짜기의 지형이

시루와 같이 생겼다하여 "시루미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603m봉을 내려서면 안부에 묘 1기가 있으며 건너편 봉우리가 마루금인데~ 성벽처럼 올려다 보인다

시루미기(우라생식마을)은 도로에서 조차 마을이 있는 줄 눈치채지 못 할 정도로 였다고 한다

마을과 도로 사이 낙동정맥 상의 603m봉이 마을을 가린 결과이며, 시루미기는 1970년 전후

한 신앙인이 들어가 생식마을을 일구기 시작하면서 40여 호의 100여 명이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숲재는 경주시 천촌리와 청도 운문면을 넘어가는 고개로 909번지방도가 지나간다

일명 숙재(淑嶺)-숙재고개로 표기되어 있는데, 고개가 아화쪽으로

급하게 숙이고 있다고 하여 숙재라고도 한다~ 하지만 정맥꾼들에게는 숲재로 알려져 있다

 

 

 

 

입구쪽에 "기원정사"라는 안내입간판이 걸려 있는데 그 입간판을 보고 시멘트길을 따라 올라간다

우라리는 중리와 상리 그리고 지경 및 시루미기(생식촌)로 이뤄져 있는데

중리는 개척 당시 동쪽 산정에 산성이 있어 성촌이라 하였고,  산에서 우렁이 소리가 들린다하여

명라동이라 칭하다 자연부락의 중간에 위치한다 하여 중리로 하였다고 한다, 버스 승강장 안에는

우라생식마을을 시루미기라고 적혀 있고~ 석두암은 산불감시초소봉(청천봉)인 760m을 말하는 듯하다

 

 

 

 

숲재인 전봇대의 기워원정사 푯말이 있는곳에서 5분정도 올라서면

우측으로 구부러진 지점에서 좌측 산으로 진입한다

임도파님들은 그냥 도로따라 올라가도 봉우리를 넘어서면 임도와 만나게 되어 있다

 

 

 

 

가파르게 올라선 봉우리에는 소나무 향기가 지친 산꾼을 달려준다

우리나라 문화를 소나무 문화라고도 한다지요

죽어서는 소나무 관에 묻히게 되는데

태어나 자라고 죽을 때까지 우리의 삶은 소나무와 함께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봉우리를 넘어서면 헤여졌던 임도와 다시 만나게 되며

임도를 따라 약 5분정도 진행한다

우측능선이 마루금이지만 "기원정사"(옛적에는 도솔암)의 요사체가 막고 있어 우회하는 길이다

 

 

 

 

기원정사란 돌비석에서 좌측 산으로 들어선다

우측 기원정사는 철문이 막고 있으며

이곳에서 부터 부산성을 향한 오름길이 시작되는데, 제법 가파르게 올라선다

 

 

 

 

오늘 코스는 낙동정맥 구간 중에서 가장 멋 없는 코스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아주 쉬운 코스도 아니며

그렇다고 아주 난해한 코스도 아니다~ 특별하게 볼 곳도 없으니 소나무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신라천년을 지켜준 방어벽인 부산성(富山城) 서문(西門)을 올라선다

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이 전장으로 넘나들던 이곳은 적들의 침공에 대비하여

100만평이라는 산꼭대기 분지에 쌓은 부산성은 서라벌의 최후의 방어벽이었단다

 

 

 

 

부산성 서문터를 지나자 묘지가 있는 곳이 오봉산 분기봉이다

좌측으로 오봉산으로 향하는 길이 연결되고, 우측으로

옛 산성길을 따라 마루금은 이어지지만 산성의 흔적은 묘연하고 억새밭이 옛 산성길을 대신하고 있다

 

 

 

 

묘지가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고랭지 채소밭 가장자리를 따라간다

이곳이 서라벌 최후의 방어벽이었던 부산성 능선으로

그런데 이곳이 의외로 풍광이 제법 괜찮다

성밖은 경사가 심하고 험준하였으며 성안에는 넓고 평탄한 지형에 물이 풍부하여 중요한 군사기지였던 것이다

 

 

 

 

고랭지채소밭을 지나면서 왼쪽으로 오봉산을 바라보니 주사바위랑 주사암이 어렴풋이 보인다

오봉산(五峰山, 685m)은 주사산(朱沙山)으로도 불리우며~ 여근곡, 옥문지로 더 알려진 곳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백제군이 이 산을 넘어 여근곡(女根谷), 옥문지(玉門池)에 잠입하자

선덕여왕의 혜안으로 이를 간파하여 옥문지에 숨어든 백제 군사를 포위하여 섬멸한 이후로

신라도성의 방위를 위하여 축조한 성이 부산성 즉 주사산성이고, 축성 후 주사산성으로

잠입한 백제 첩자에 의해 성문이 열리면서 신라군이 전멸당하는 뼈아픈 신라 백제의 항전이 있었던 곳이다

 

 

 

 

오봉산(五峰山, 632m)은 5개의 암봉이 낙타등 같이 솟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그래서 닭벼슬산이라고도 불리었고 붉은 빛을 띤 주암(朱岩) 아래의

마당바위(너럭바위)는 얼마전 인기 드라마 선덕여왕이 숨을 거두는 장면을 촬영한 장소였단다

 

또한 부산성과 관련된 삼국유사의 설화엔 신라화랑 죽지랑의 낭도였던

득오가 이 부산성내에 창직으로 있을 때 친형제처럼 따르던 죽지랑을

사모하여 부른 향가 노래인 "모죽지랑가(募竹知郞歌)"의 배경지가 되는 곳이 이곳 부산성이다

 

 

 

 

부산성(富山城)은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에 위치하며 사적 제 25호로 주사산성(朱砂山城)이라고도 한다

백제가 멸망한 3년후인 663년 정월에 착공하여 3년뒤에 완공하였으며

신라는 승리에 자만하지 않고 도성을 더욱 굳건히 지키기 위해 이곳에 성(城)을 쌓았다

그러한 정신이 어쩌면 삼국통일을 이루게 한 신라의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부산성 축성당시 의상대사가 예언가기를 성(城) 안에다 "주사암"을 두면 신라는 영원히

망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으나 주사암을 밖에 두고 산성을 쌓았다, 결국 대사의 예언대로 신라는 망하고 말았다

 

 

 

 

부산성정상(729.5m)을 넘어서니 왼편으로 고랭지 채소밭이 넓게 자리하고 있고

건너편으로 다음구간에 가야할 단석산이 한 눈에 들어오며 아화고개와 단석산을

넘지 않고서는 서라벌로 들어갈 수가 없는 현장을 우리는 낙동정맥을 통해서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삼국시대 군사들의 함성이 메아리쳤던 현장이 고랭지 채소밭으로 변했으며

봄철이면 시골아낙들의 손길이 분주해질터인데, 등산복 차림에

이곳을 지날 때는 좀 민망하지 않을까 싶다~ 이곳에서 고랭지 채소밭과는 아웃이다

 

 

 

 

고랭지 채소밭 우측으로 내려서면 제법 규모를 갖춘 남문성터를 만나게 된다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쌓은 신라 산성으로 부산(富山)의 정상을

중심으로 세 줄기의 골짜기를 따라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석축성이다

 

 

 

 

부산성 남문터를 내려서면 십자로 안부를 지나게 되는데

숲속에 아크릴표지판이 걸려 있다

아름다운 산! 아름다운 경주! 대부산(大富山) 가는길이란~ 산불감시탑이 있는 봉우리를 말한것 같다

 

 

 

 

십자로 안부에서 오름길이 길게 이어지는데 경사가 제법이라

코평수를 넓히면서 씩씩거리고 올라서면

넓은 시멘트헬기장을 만나고 곧이어 산불감시탑이 있는 760m봉에 올라선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를 석두산 또는 대부산, 만금봉으로 불린다고 한다

하지만 왠 뜬금없는 "청천봉"이란 족보도 없는 이름이,,,, 아마도 동아高

"청천산악회" 분들이 자신들의 산악회 명칭을 봉우리명으로 칭한 것 같은데~ 뭐라 評을 해야 할지~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에 올라서면 조망은 막힘이 없다

정맥길 마루금은 좌측으로 틀어지고

가야할 651.2m봉을 마주보고 내려서면 땅고개를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산불감시탑을 뒤로하면 651.2m봉 좌측으로 영남채석장이 보이고

아래로 어두목장이라는 축사 우측이 독고불재다

채석장에선 이젠 파 먹을만큼 먹었겠구만 아직도 배가 고픈지 중장비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

 

 

 

 

어두목장 좌측으로 경상북도 건천읍 모량리 지역이 청록파 시인 박목월 선생의 고향이다

본명은 영종(泳鐘)으로 1916년 박준필씨의 4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으며

생가 뒤편에 펼쳐진 모량뜰은 경주의 유명한 찰보리빵의 재료인 찰보리가 전량 이 뜰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포장된 임도의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임도를 따라가면 독고불재 임도에 도착한다

어머리는 신라 때 전란으로 왕자가 피신하여 있던 곳으로

황자동이라 하다가 이를 은폐하기 위해 지형이 물고기처럼 생겼다하여 "어머리" 어두(魚頭)라고 불렀다고 한다

 

 

 

 

어두목장 입구인 이곳이 독고불재 임도이며

마루금은 우측으로 틀어지면서

좌측에 철조망을 두고 651.5m봉 오름길은 엄청난 체력과 인내를 요구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개인 재산을 보호하는데는 누가 뭐라 한들 어쩔까마는

목장주가 설치해둔 철조망 때문에 나무들이 아파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목장주가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고불재에서 개거품을 물고 까풀막을 올라서면 651.2m봉에는 삼각점과 준,희님의 아크릴판이 달려 있다

 

 

 

 

능선을 내려서면서도 철조망이 널부러져 있었는데~ 자연보호 차원에서 목장주님!

사용하지 않은 철조망좀 치워주면 어떻겠수!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마을은 약 400여년전

임진왜란 후에 오천정씨(烏川鄭氏)가 이곳에 정착을 하면서

소나무밭을 개간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여 송전(松田)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오천정씨 묘지를 지나면서 능선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며

숲에서 품어져 나온 피톤치드 향이 발걸음도 가볍게 해준다

하여 암릉에서 잠깐 영양을 보충하고 피톤치드 향도 마시면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땅고개를 향하여 힘을내어 본다

 

 

 

 

시야가 트이기 시작하면서 단석산 신선사로 연결되는 우중골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인다

우중굴(雨中屈)은 신라 때 위증이라는 당 태조의 신하가  이 마을에서 수도하였다 하여

"우중골"이라고 부르다가 송산(松山)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에

구름이 덮히고 어두워지면 곧잘 비가 몰려온다고 하여 "우징곡(雨徵谷)이 우중굴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 다왔나 싶었는데~ 임도가 가로막는 오리재에 안착한다

경주시 건천면과 청도군 운문면의 경계지점으로

작은 봉우리를 또 치고 올라야 하는데~ 낙동정맥의 마지막은 항상 끝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산은 예로부터 우리가 기댈 언덕이자 삶의 터전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산비탈에 일구어 놓은 논과 밭 옹기종기 있는 시골집들,,,

구석구석 사람들이 살지 않은 곳은 없는것 같다, 벌목지에 자그마한 삼각점이 박혀있는 397봉에 올라선다

 

 

 

 

상당히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면 땅고개가 보이는 절개지 위에 서게 된다

왠지 오늘은 짧은 거리인데도 길게 느껴지기도~

절개지 위에서 휴게소를 바라보면 현기증이 날 만큼 가파르며~ 우측으로 배수구를 따라가면 땅(당)고개다

 

 

 

 

당고개에서 20번국도가 지나가는 건너편으로 다음 구간의 들머리이다

좌측에 휴게소 앞 단석산 이정표에 진입로가 있지만

그곳은 단석산의 일반산행로이며 정맥마루금은 아니며

휴게소에서 조금 오르면 교차하게 되지만 정맥마루금에 충실한 분들을 위해 원칙을 적어본다

 

 

 

 

건천과 청도를 연결하는 20번 국도인 땅고개는 지형도에 당고개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당고개"는 경주시 건천읍과 산내면의 면경계선에 해당하는 고개로 건천읍 송선2리

우중골마을 어르신들은 "그 너머 산내쪽에 옛날 당집이 있었다며 "당고개"란 이름이 맞을 것이라 했다

 

 

 

 

휴게소의 이름은 땅고개휴게소이지만 당고개버스정류장과 당고개공원으로 당고개임을 알 수 있다

산내쪽에 당집이 있었다 하여 당고개란 설이 유력하며, 붉은 화살표 방향으로

단석산 진입로 입구에 이정표가 있는 곳이며, 신라 천년을 지켜준 방어벽의

땅고개가 있었지만 주사암을 품지 못하여 신라는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현장에서 오늘 산행을 접는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7 : 30 ~ 15 : 50 ( 08시간 20분)    ◎ 날 씨 : 아주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