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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산행 분류▩/♡100대 명산

경상남도 남해군 금산(부소암-상사바위) 명산산행

경상남도 남해군 금산(두모계곡 - 금산 - 금산주차장) 웰빙산행

◎ 산행일시 : 2014년          6월          07일          (일요일)

◎ 산행위치 :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상부면, 상동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두모계곡주차장 - 남해양아리석각 - 부소암(夫蘇岩) - 상사바위 - 좌선대 - 흔들바위

                      단군성전사거리 - 금산(錦山, 701m) - 보리암 - 쌍홍문 - 도선바위 - 금산탐방지원센터

 

◎ 산행거리 : 두모계곡주차장 ~ 2.5Km ~ 부소암 ~ 0.9Km ~ 상사바위 ~ 0.5Km ~ 좌선대 ~ 0.4Km

                      흔들바위 ~ 0.7Km ~ 금산정상 ~ 0.8Km ~ 보리암 ~ 2.5Km  ~ 금산탐방지원센터

                      도보거리   =   약 8.3Km           실제도보거리   =   약 10.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8 : 40 ~ 13 : 20  (04시간 40분)      ◎ 날씨 : 아주, 흐림

 

            ◐ 기암괴석들이 절경을 이루는 남해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금산 산행이란?

남해 금산은 신라 때 원효대사가 보광사라는 절을 지어 보광산이라 불렀던 것을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 산에서 100일 기도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되어 온 산을 비단으로 덮어 준다는 약속을 하였는데, 조선의 개국 후 이를 실행하기 위해 중신들의

회의를 가졌으나, 중신중 산 사람이 "우리나라에는 그 산 전체를 덮을 만한 비단이 없으며, 비단으로 산을 감싼 이후에도

몇년이 지나지 않아 누더기가 되므로 산 이름을 '금산(비단금)"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금산(錦山)으로 불리우기 시작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 경상남도 남해군 금산(金山) 등산안내도 *****

 

 

 

 

 

 

 

남해대교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계속 가다보면 남해읍이 나온다

남해읍을 지나 계속 가면 이동면이 나오고

이곳에서 상주방면으로 난 길을 계속 따라가면 두모계곡입구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은 1968년 우리나라 최초의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공원의 범위는 남쪽 거제 지심도에서~ 여수 오동도에 이르며

6개 지구 (거제, 통영, 사천, 하동, 남해, 여수오동도)로 나누어진다

"한려해상"이라는 명칭은 한산도에서 여수까지 300리의 아름다운 뱃길을 가리키는 한려수도에서 유래 되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두모계곡은 그 동안 출입을 통제했었는데

2013년 9월부터 탐방로를 개방하였으며

두모계곡 탐방로에서 빼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전설이 깃들어 있는 부소암을 볼 수 있다

 

 

 

 

남해 금산(錦山)은 다양한 산길로 여러번 올랐던 금산이지만

오늘은 부소암을 거쳐 정상으로 가고자 한다

하지만 한동안 등산로가 폐쇄되어 있었던 길이어서 그런지~ 사람 구경 하기가 힘들다

 

 

 

 

남해 금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중에서 가장 평탄한 코스이며

등산로는 의회로 가파르지 않고

중간에 두모계곡을 가로지르며 계곡의 물줄기가 산객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두모계곡~부소암 구간은 최근 한려해상국립공원측이 2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목재데크, 안전난간, 철 계단, 철교량 등의

안전시설과 종합안내판, 이정표 등 잘 정비돼 있어 초등학생도 오를 수 있을 정도이다

 

 

 

 

천하를 통일한 중국 진시황이 삼신산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시중인 서불(徐市)을 불렀다

"서불아 너에게 동남동녀 500명을 줄 터이니 불로초를 구해오너라"

서불은 산 넘고 물 건너 남해 금산까지 찾아왔지만 불로초는 구하지 못했다

늙지 않게 해 주는 풀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한동안 사냥만 즐기다가 금산을 떠나면서 바위위에 글을 새기고 갔다 라는 전설이 있는 "거북바위"이다

 

 

 

 

금산은 부드러움과 장엄함이 장군형의 풍모를 갖춘 산으로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산!

기암괴석의 암석들이 곳곳에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 낭만적이면서 목가적이다

 

 

 

 

부소대로 향하는 등로상에는 담이 쌓아진 흔적이 폐가인지~ 폐사인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곳곳에 있어 보이는데

어디에서도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으며 지금은 편백나무숲이 조성이 잘 되어 있다

 

 

 

 

남해 금산은 한려해상 국립공원 중에 유일한 산악공원이라 불린다

기암괴석의 절경과 남해를 한눈에 굽어보고 있어

전망도 장쾌하며 삼남 제일의 명산으로 기암괴석이 금강산을 빼어 닮아 소금강으로 불린다

 

 

 

 

평탄했던 산길은 큰 바위들을 타고 넘어가면서 부소암을 향한다

철계단을 오르면서 우측으로 시야가 트이지만

"비단 산"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이 산은 오늘은 그저 "안개의 산"으로 변해 버렸다

 

 

 

 

부소암을 오르는 통천문(通天門)은 지금까지 본 중에서 말 그대로 하늘문이다

몸짓이 큰 사람은 통과하기가 쉽지 않았으며

통천문을 빠져나가면 우뚝선 부소암과 그 앞에 펼쳐진 앵강만(鶯江灣) 바다풍경이 기다린다

 

 

 

 

금산의 아침은 싱그러움을 가득 담고 있다

솔바람 향기가 느껴지며

부소암갈림길에서 부소암(夫蘇庵)은 우측으로 100m떨어져 있다

 

 

 

 

삼거리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부소암입구 철망문이 있다

부소암 오르는 계단이 인상적이며

세심이 보게 되면 돌 하나 하나 올려서 만든것이 아니고 바위 덩어리 자체를 깎아 만든 계단이다

 

 

 

 

두모마을 입구에는 다랭이논 형태로 황금빛 물결을 이룬 유채꽃단지가 조성돼 있다

남해군 최대규모로 마치 노란 물결이 출렁이는 듯한 유채 다랭이논은

남해 금산자락과 어우러져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두모녹색농촌체험마을이 농림축산식품부 선정 "봄꽃이 있는 농촌체험 휴양마을 10선"에 선정됐다

 

 

 

 

부소암 암자는 암자라고 하기보단 가정집 같지만

들어가보면 여느 사찰과 다르지 않다

쳐다보면 볼 수록 어떻게 이런 절벽에 암자가 있을까 싶어진다

 

 

 

 

부소암과 남해금산을 연결하는 아치형의 철다리는

마치 영화에 나오는 한장면처럼 보이며

금산을 여러번 올랐지만 이렇게 아름다운곳에 운치 있는 암자가 있었나 싶다

 

 

 

 

부소암(夫蘇庵)은 산꾼들에게 발견되어 지금은 금산의 숨은 비경으로 알려져 있으며

보물 제1736호"대광방불화엄경 진본 권53"을 보유하고 있는 암자란다

2013년 9월 2일 두모계곡~부소암구간에 탐방로를 개방하면서 많은 산꾼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부소암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지만 해무로 인하여 안개속을 헤멘다

절벽끝에 담장을 쌓고 작은 텃밭을 가꾸고

쫓빛바다와 금산이 어우러진 풍경에 오래 눈길이 머무르다 많은 것을 가슴에 담고 떠난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온 고인 물로 식수로 사용한다고 한다

풍경도 아름답지만 물 맛도 좋으며

부소암을 구경하고 등로상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삼거리로 되돌아 간다

 

 

 

 

지금은 철제다리를 따라 암봉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만약철제다리를 시설하지 않았다면

부소암의 기도처는 아무나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성지나 다름없는 장소로 보인다

 

 

 

 

부소암(夫蘇岩)은 금산 제 34경으로 중국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이곳에 유배되어 살다가 갔다는 전설과

단군의 셋째아들 부소가 방황하다 이곳에 앉아 천일기도를 하였다는 전설이다

 

 

 

 

부소암(夫蘇岩)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돌산으로 우뚝 솟은 바위가 마치 인간의 뇌를 연상하게 한다

진시황은 직언을 하는 부소를 북쪽 변방으로 보내 상군에서 몽염의 군대를 감독하게 하지만

진시황이 죽자 조고가 조칙을 고쳐 막내아들 호해를 즉위시키고 부소, 몽염, 몽의를 죽임으로서

진나라는 멸망했다, 전설이 어찌되었던 먼 이국땅에 진시황의 맏아들 이야기가 왜 존재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부소암을 떠나 나무목제 계단을 오르면 헬기장에 도착한다

 

중국의 진시황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똑똑하고 착한 부소와 흐리멍텅한 호해가 있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소인은 자신보다 똑똑하고 착한 사람을 싫어하는 법

간신배 이사와 환관 조고는 장차 부소가 임금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진시황에게 참소를 넣었다

"부소가 폐하를 바라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부소를 만리장성 쌓는 곳으로 보내라"

진시황은 호해를 가까이하고 부소를 멀리 변방으로 내쳤다

올빼미의 무리 이사와 조고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부소가 폐하를 원망합니다"

진시황은 부소에게 칼을 내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어라는 말이다,

부소는 그것이 간신배가 꾸민 간괴인 줄 알고 불로초를 찾아 삼신산으로 서불의 배를 타고 도망을 쳤다

서불이 동으로 동으로 배를 몰다가 남해 금산에 도착하였다, "서불이 이곳을 지나다가"

서불은 양아리 골짜기의 바위에 왔다는 흔적만 남기고 다시 떠났단다,  그러나 부소는 떠나지 않았다

바위 아래에 움막을 짓고 살다가 수명을 누리고 죽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바위를 부소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부소암을 거쳐 도착하면 능선상에 헬기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코스선택이 중요하며

금산 탐방안내도를 살펴 보고 우리는 상사바위를 가기위해 우측방향으로 간다

 

 

 

 

아련이 추억이 깃든 고향에 텃밭이 생각나서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남해 금산에 오면 한번쯤 독일마을도 들려보고

상주해수욕장의 은모래 비치에서 아침 산책도 해보고

또한 미조항에 들렸다가 남해의 별미인 멸치 쌈밥과 갈치회 등 짭잘한 맛 기행도 괜찮다

 

 

 

 

금산 제27경인 상사암은 여수 돌산 출신의 총각과 과부의 사랑 이야기가 있는 금산의 명소이다

조선 숙종시대 돌산 출신 총각이 이곳에 살았는데,이웃에 살았던 아름다운 과부를

사모하여상사병으로 사경을 헤메이고 있었다고 한다,남자가 죽을 지경에 이르자

아름다운 과부가 이 바위에서 총각의 상사를 풀었다고 하여 저 바위를 상사암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상사바위에 얽힌 전설은 호남지방과 생활권을 같이했던 남해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여수 돌산에 사는 총각이 남해에 고기 잡으러 왔다가 우연히 만난 과수댁을

사모한 끝에 상사병에 걸려 죽을 처지에 있었다,이를 안 과수댁은 상사병을

고칠 수 있다는 이 바위에서 총각과 운우의 정을 나눈 뒤 둘이 백년해로했다는 전설이다

 

 

 

 

수많은 기암괴석들이 금강산을 빼어 닮았다는 자연 수석들이다

금산 38경의 기암괴석들이 한눈에 펼쳐지는 곳으로

향로봉, 제석봉, 일월봉, 해수관음상을 받치고 있는 만장대까지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금산이 더 유명한 이유는 시인 이성복의 "남해금산"> 때문이다

한 여자를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금산의 상사바위 전설을 모티브로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상사바위에서 내려다보는 앵강만 조망이 일품이다

앵강만 입구에 있는 노도는

서포 김만중(金萬重)이 유배 새활을 하며 <사씨남정기>를 집필한 섬이다

 

 

 

 

금산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거대한 상사바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으로

발아래 미조 앞바다와 상주해수욕장이다

날씨가 좋은 날은 돌산반도의 향일암 금오봉과 우주발사기지가 있는 나로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상사바위에서 전해주는 풍성한 전설을 양 손에 쥐고

좌선대를 거쳐 금산산장으로 향한다

오늘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유유자적 금산의 가슴에 푹 안겼다 가리라

 

 

 

 

금산산장에서 바라보는 좌선대(坐禪臺)의 풍경이다

금산다방이라 불러야할 듯!

원형탁자에서 물 한잔을 마시더라도 이보다 멋진 산상다방은 없으리라

 

 

 

 

백년이 된 이곳 금산산장은 원래는 비구니스님들이 사시는 곳이였으며

옛적에는 백년산장이었는데 지금은 금산산장 현판이

바로 휴먼다큐 사노라면에 나오셨던 남해 금산 신바람 할머니가 계시는 곳이다

 

 

 

 

벼랑끝에 지어진 산장이 파란 함석지붕에 붉은 지붕선이 잘 어울린다

참 집이 좋으네요~ 경치도 죽이고요 했더니~

"막걸리나 한 잔 하고 가시요  그러면 풍경도 그만이제"

마음 같아선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으련만 주객이 아니라서~

 

 

 

 

부산(금산)산장 텃밭에서 직접 키우고 가꾼 싱싱한 채소들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직접 담근 막걸리(8.000)맛이 아주 좋으며, 숙박도 할 수 있다

할무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다음에 술 마실 수 있을 때 그땐 꼭 한 잔 하고 가겠나이다

 

 

 

 

금산의 흔들바위는 거북이 모양을 닮아 귀암이라고 하였으나

큰 바위가 한 사람의 힘으로 흔들리기 때문에

요암이라고도 하는데, 하지만 밀어보아도 흔들리지 않으니 이름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단군성전 사거리갈림길로 우측으로 정상을 향해 간다

금산은 등산로가 짧고 단조로우면서도

발길머무는 곳마다 들려야 할 곳이 많고, 전설이 깃든 곳도 많다

 

 

 

 

망대에 오르는 길목에 운장암으로 불리는 집채만한 큰 바위가 있는데

"유홍문(由虹門, 上錦山)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조선중종 때 학자인 주세붕이 금산이 명산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쌍홍문을 통해 정상에 오른 뒤 전설이 가득한 비경에 감탄해서 이런 글귀를 남겼다고 전한다

 

 

 

 

주세봉은 풍기군수 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을 세운 사람으로

주세붕이 가정 무술년에 썼다고 되어 있는데

가정(嘉靖)은 명나라 세종은 세종조(1522~1566)의 년호이며

이곳에 글씨는 1522년 이후에 쓴 것으로 추정하며 약 500여 년 전에 쓰여진 글씨로 보여진다고 한다

 

 

 

 

금산(錦山, 705m)은 영남에서는 합천의 가야산, 지리산과 자웅을 겨루고 중국의 남악(南嶽)에 비견 되었다

바다속의 신비한 명산이라 하여 "소금강산" 혹은 작은 봉래산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금산이 작은 봉래산(蓬萊山)이라는 이름을 얻을 만큼 명산으로 칭송을 받게 된 것은

바다를 눈 앞에 두고 우뚝하게 솟은 돌산이라는 점에서 유람객에게 속세를 떠난 신비감을 주기 때문이 것으로 보인다

 

 

 

 

금산(錦山)은 원래 보타산이라 하였으나 신라 초 원효대사가 이 산을 찾았을 때

갑자기 서광이 비쳐서 "보광산"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 후 고려말 이성계가 입산하여 100일 기도로 조선왕조를 세우고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산 전체를 비단으로 두르려고 하였으나 신하들이

비단금(錦)자를 붙인 금산 이름을 내리는것이 좋겠다고 하여 그 때부터 금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고려 명종 때 설치된 높이 4.5m의 봉수대가 있는 망대가 정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최남단에 있는 봉수대로 여수에서 온 신호를 진주로 연결했다고 한다

남해에서 한양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4시간 30분정도 오늘날 휴대폰으로 전국이 커버되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느리지만 승용차 속도와 맞먹는 비상연락체계를 갖추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금산(錦山)은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온통 기암괴석들로 뒤덮혀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남해지맥 순천바위 우측으로 666봉을 넘어 욕지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망대에 서면 사방으로 시야가 트여 만경창파를 굽어 볼 수 있다

보리암은 물론 상주해주욕장과 쫓빛 남해바다 점점이 떠 있는 섬 등

날씨만 도와준다면 그림같은 풍광이 한 눈에 펼쳐지면서 올라온 발품이 아깝지 않을 정도이다

 

 

 

 

몇번을 오르고, 또 가고 싶은 산을 우리는 명산이라 했던가

사시사철 철따라 눈 오고, 단풍들 때

자연의 조화에 이끌러 또 올라도 싫증나지 않은 산이 남해 금산이라고 한다

 

 

 

 

화엄봉은 바위 모양이 화엄의 한자 "화(華)"자를 닮았고

또한 신라시대의 유명한 원효대사가 이 바위에서

화엄경을 읽었다하여 화엄봉(華嚴峰)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보리암은 좌측에 범종각이 있고 보광전을 비롯해 요사채 등이 있다

이름은 암자인데 큰 절 못지않은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문화재로는 대나무 조각을 배경으로 좌정하고 있는 향나무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남해 금산은 언제 찾아와도 좋다, 사계절 모두가 아름답다 할 수 있다

유명한 만큼 많은 방문객이 끊이지 않으며

보리암에 전설이 하나가 있는데 보리암에서 소원을 빌면

관음보살님이 소원 하나는 꼭 들어준다고 한다

헌데 조건이~ 자신을 위하는 소원은 안들어주고, 남을 위한 소원만 들어준다고 한다

 

 

 

 

이성계가 천운의 뜻을 품고서 백두산에 들어갔는데 산신은 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두번째로 지리산에 들어갔으나 산신이 받아주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마지막으로 남해섬 보광산에 들어와 백일기도를 올리고서야 비로서 왕조 창업의 뜻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신라 신문왕 3년(683년) 원효대사가 이 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원래 이름은 보광사였고 산 이름도 보광산(普光山)이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이 곳에서 약 200m 떨어진 큰 바위 아래에서 기도를 올리고 세상을 얻었다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어주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그러나 그 만큼 큰 비단을 구할 수가 없자

비단이란 이름으로 산을 덮어주었다, 이후 현종은 보광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자 보리암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절벽에 자리잡은 보리암은 강화 보문사, 여수 향일한, 양양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대표 관음기도 도량으로 유명하며, 관음성지는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성수러운 곳"이라는 뜻으로 기도 효험이 잘 받는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남해 바다를 자애로운 표정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해수관음보살상은 보리암을 대표한다

마음속으로 관음보살을 간절하게 염원하면 불구덩이가 연못으로 변하고 성난 파도가

잠잠해진다고 하며 이곳 보리암은 한 가지 소원은 받드시 들어주는 자비스런 관음기도 도량이란다

 

 

 

 

해수관음보살상이 세워지는 계기는 고산스님의 예언 덕분이란다(현재 쌍계사 총림 방장)

해수관음을 세우면 중생들에게 더 없는 기도 도량이 될 것이라 하여 헬기를 이용해

보리암으로 해수관음상을 옮겼을 때 그 때 찬란한 서광이 빛추면서 더 유명해 졌다고 한다

 

 

 

 

신선의 섬, 일점선도(一點仙島)라 불릴만큼 아름다운 남해섬은 최고의 경승지는 누가 뭐래도 금산이다

금산은 아주 높지는 않지만 조물주의 조각 같은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그 주변에 울창한 난대림이

어우러져 금강산에 견주어 "소금강산"이라 불려왔다 보리암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의 경치가 그만이다

 

 

 

 

바다를 보고 있는 보리암의 해수관음보살상은 앙련(仰蓮)의 연꽃대좌 위에 서서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다

보관에는 아미타블 좌상이 새겨져 있고 옷주름은 바람에 휘날리 듯 생동감이 느껴지는 보살상이며

이 관음보살상은 1989년에 제작된 것으로 치성을 드리면 효험이 있다하여 많은 기도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전설의 삼층석탑은 신라 신문왕 3년(683)에 원효가 금산에 처음오로 절을 세운것을 기념하기 위해

가락국의 수로왕비인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을 이용하여 탑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허태우가 가져 온 부처님 사리를 이곳에 안치하기 위해 탑을 세웠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보리암을 좌측으로 내려서면 음성굴(音聲窟)을 건너편으로 보게 되는데

돌로 바닥을 두드리면 장구소리가 난다하여 음성굴이라 하며

그 소리가 사람들을 노래 부르게 하고 춤을 추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한다

 

 

 

 

쌍홍문에서 바라보는 바다풍경이 아름답다고 하였는데

나의 불심이 부족하였는지~

오늘은 스모그 현상으로 인하여 다도해 풍경을 보지 못함이 아쉬움이다

 

 

 

 

쌍홍문을 나가는 입구에 장군암이 있다 장군암은 장군이 검을 짚고 봉을 향하여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장군암이라 하였으며, 금산의 첫 관문인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이라 하여 수문장이라고 하며 송악이 휘감고 있는 장군에 모습이 더욱 늠름해 보인다

 

 

 

 

금산의 절경 38경 중세서 쌍홍문(雙虹門)은 여인의 눈동자 같기도 하고

커다란 해골에 두 눈이 뻥 뚫어진 듯한 쌍굴이다

쌍홍문은 금산의 관문으로 옛날에 천양문이라 불러 왔으나

신라원효대사가 두 굴이 쌍무지개 같다고 하여 쌍홍문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사선대(四仙臺)는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있던 네 신선(神仙)이

이 바위에서 모여 놀았다하여 사선대라 부른다

사선대에 올라가 보지는 않했지만 바라만 보아도 경치가 빼어나게 좋을 듯하다

 

 

 

 

쌍홍문에서 탐방지원센터로 내려가는 돌계단길이 매우 가파르므로

노약자나 실버님들은 복곡탑방지원센터로 이용하면

버스로 보리암이나 정상입구까지 쉽게 오를 수 있어 가족단위 산행을 하기에는 안성맞춤형이다

 

 

 

 

쌍거북이 샘터가 나오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터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수질 개선을 위해 샘터를 폐쇄시켜 놓았는데

"깊은산속 옹달샘"은 새벽에 토끼가 와서 마실만큼 깨끗하다고 하였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연록의 잎으로 하늘을 가린 울창한 숲 길은 가을에 오면 더 아름다울 듯하였고

금산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기전 좌측으로 야외관찰로가 있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다양한 생태 설명판이 있어 가족단위로 오시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가벼운 산행으로 계신기를 통과하면 금산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 내려선다

사계절 보리암을 찾는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금산은

그 자체가 영험한 신력(神力)을 가진 듯 장엄하면서도 수려한 경관을 갖추고 있다

 

 

 

 

오늘 하루 다양한 길을 경험하며 금산주차장에 내려선다

한려해상의 시원한 풍경은 보지 못햇지만

보리암에서 시원한 한려해상의 바닷바람을 실컷마시고 왔기에 오늘 하루도 행복한 산행이다

 

 

 

 

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금산의 원경에 모습은 정말 멋지다

가운데 높게 보이는 암봉이 상사바위이며

여수에 총각님이 반할만 한 바위가 아니겠는가

금산은 사랑에 대한 안내서이며 파고 들수록 아름답고 신비한 전설과 사연이 숨어 있다

 

 

 

 

금산 탐방지원센터에서 두모마을주차장까지는 도로를 따라 15분정도 걸아가야 한다

남해에 와서 금산을 오르지 않고서는 남해를 다녀갔다 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부소암을 보지 않고 금산을 다 보았다고 할 수 없다, 부소암은

남해 사람들이 자랑하는 새로운 비경으로 개방이 되면서 앞으로 많은 사랑을 받을 것이다

 

 

 

 

보리(菩提)란 깨달음을 성취함으로써 석가모니는 "부처(깨달은 이)"가 되었다

깨달음은 모든 불교도의 궁극적인 이상이며, 자신의 잘못된 믿음을 없애고

욕망을 제거함으로써 8정도(八正道)로 알려진 정신적 수련 과정을 밟음으로써 성취된다

 

 

 

 

남해군은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제주도, 거제도, 완도 다음으로 울~나라에서 네번째로 큰 섬이다

섬 전체가 "관광지"라 할 만큼 충무공의 유적지 등 맛 기행을 하면서 둘러 볼 곳이 많으며~

연록의 숲길을 걸으면서 부소암에서 바라보는 앵강만 풍광은  남해 사람들이 자랑하는 비경이었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8 : 40 ~ 13 : 20 (04시간 40분)     ◎ 날 씨 : 흐림

 

 

Carol Kidd - when i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