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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산행 분류▩/♡100대 명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산(향로봉-안렴대) 명산산행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산(서창마을 - 적상산 - 치목마을) 웰빙산행

◎ 산행일시 : 2015년         05월         30일         (일요일)

◎ 산행위치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신대마을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서창마을(탐방지원센터) - 장도(長刀)바위 - 서문지(西門址) - 향로봉(1,024m)

                      적상산(기봉 기지국, 1.034m) -  안렴대 - 안국사 - 적상호 - 송대폭포 - 치목마을

 

◎ 산행거리 : 서창탐방지원센터 ~ 2.5Km ~ 서문지 ~ 1.1Km ~ 향로봉 ~ 1.2Km ~ 적상산(기봉) ~ 0.9Km

                      안렴대 ~ 0.6Km ~ 안국사 ~ 0.9Km ~ 정상호 ~ 0.8 ~ 송대폭포 ~ 2.4Km ~ 치목마을 

                      도보거리   =   약 10.3Km           실제도보거리   =   약 10.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7 : 50 ~ 12 : 30  (04시간 40분)      ◎ 날씨 : 흐림, 비

 

                ◐ 역사가 살아 숨쉬는 천하만민의 보배로운 적상산 산행이란?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동쪽에 병풍을 두른 듯 우뚝한 적상산(赤裳山)은 한국 백경 중 하나로 손꼽히며 사방이 깍아지른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적상산은 지대가 높고 일교차가 심해 기암괴석과 어루어진 단풍이 유달리 곱고 아름답다

절벽 주변에 유난히도 빨간 단풍나무가 많아 가을철이면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듯 하다고 하여 적상산이라 한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산(赤裳山) 등산안내도 *****

 

 

 

 

 

 

 

서창 마을 어귀에는 임진왜란 때 추풍령(秋風嶺)전투에서 최후의 일각까지 혈전을 벌이다가

장열하게 순국한 충신(忠臣) 장지현(張智賢) 장군의 묘가 있다

묘소를 지키고 있는 명품 소나무(수령 420년 추정)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일명 "장군소나무"라고도 불리운다

 

 

 

 

전라북도 무주군의 명산 적상산은 덕유산과 마주하고 있다

적상산은 단풍으로 유명한 산이지만

유서깊은 문화유적의 운치와 봄에도 야생화 천국으로 많은 산꾼들이 찾고 있다

 

 

 

 

주차장 아래에는 보호수 느티나무(수령 520년)가 반갑게 맞아준다

무주군 향토 문화유산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이른 아침이라 마지막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서창마을앞 도로를 따라 오르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신대(新垈)마을은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으로  지금의 서창(西倉)마을이며

길왕마을과 분리되면서 신대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 마을이며

옛적에 적상산성을 오르는 길목에 위치하여 지소담(紙所)으로 부르던

바깥 서창과 본래 서창이던 안서창마을 등 3개의 작은 마을을 합쳐 행정상 신대라 부르게 된 것이다

 

 

 

 

서창 공원지킴터는 마을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이른 아침이라 지킴이는 없었지만

국립공원답게 이정표가 잘되어 있어 들머리 찾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서창 공원지킴터에서 우측으로 조금 오르면 들머리가 나타난다

단풍나무가  초록빛으로 채색하고 있었으며

온통 초록 세상의 청량한 공기가 피부 깊숙히 파고들면서 초입부터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계수기를 통과하면 차곡차곡 잘 쌓은 돌계단 길이 이어지는데

이 길은 옛날에 산성을 오르내렸던 길이며

또한 민초들이 지게짐을 지고 오르던 길이라서 이렇게 좋은 길이 생겨 났다고 한다

 

 

 

 

비가 오려고 하는 날씨에 등산하는 사람은 없고

달랑 우리 둘만이 산길을 오른다

비옷 차림을 단단히 준비하고 왔건만 생각보다 비는 오지 않아 다행이다

 

 

 

 

우렁찬 물소리는 아니지만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찾아오는 산객의 마음을  싯어 주었으며

옛날 지게짐을 지고 힘들게 오르내리면서 목을 축였던  곳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등산로는 제법 널찍해서 연인이 손을잡고 거닐어도 부족함이 없었으며

밑에서 바라보이는 바위산의 분위기는 오간데없고

짙은 안개속에 어둑어둑하게 느껴지는 숲 속길은 비가오면서 음울한 느낌마져 든다

 

 

 

 

넉넉한 산길이 지그재그로 오르면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으며

커다란 돌마다 누군가 쌓아 올려 놓은 돌탑들!

저 돌탑들에는 우리의 민초들이 힘든 삶의 애환이 담겨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서창은 적상산사고의 수직군사들이 먹을 군량미(軍糧米)를 보관하던 창고가 2개소 있었는데

그 중 서쪽에 있는 창고라 하여 서창(西倉)이란 지명이 붙여졌다

또한 서창(西倉)은 옛날 용담문(龍潭門)이라 부르던

적상산성 서문(西門)의 아랫마을로 이곳을 거쳐 적상산성을 오르면 최영 장군과 관련된 장도바위를 만나게 된다

 

 

 

 

적상산성 서문지(西門址) 아래에 하늘을 찌를 듯한 이 바위는

고려말 최영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가 길이 막혀

장도를 내리쳐 길을내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는 장도(長刀)바위의 전설을 이야기 한다

 

 

 

 

고려말 최영장군이 민란을 평정하고 개선 하던 중 이곳에 이르렀을 때, 산 전체의 붉은 단풍과

깎아 세운 듯한 암벽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산 정상을 오르게 되었는데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 바위가 길을 막고 있어 더 이상 갈 수 없게되자

정상을 두고 발길을 돌릴 수 없었던 최영장군은 허리에 차고 있던 장도(長刀)를 뽑아

바위를 힘껏 내래치는 순간 바위가 양쪽으로 쪼개지면서 길이 열였다 하여 장도바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가을에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네의 모습과 같다 하여

적상산이란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경관이 아름답고

문화유적 및 덕유산 국립공원인 점 등을 고려하여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선정되었다

 

 

 

 

장도바위 암릉의 급비탈 지대를 오르면 적상산성 서문지가 나온다

고려 공민왕 23년(1374) 최영 장군이 탐라를 토벌한 후

귀경길에 산의 형세가 요새로서 적지임을 알고 왕에게 건의하여 축성된 산성이라고 한다

 

 

 

 

일명:용담문(龍潭門)이라고 불리웠다는 적상산성의 새로 복원된 서문지!

이 높은 곳에 성(城)을 쌓으면서 동원되었을 민초들|

얼마나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 하였을까? 돌 하나 하나에서 애환과 통곡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적상산성 서문지(赤裳山城 西門址)는 사적 제14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북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규장각에 소장된 <적상산성조진정책>의 기록에 의하면 2층 3칸의 문루가 있다고 전한다

 

 

 

 

서창(西倉)은 미창(米倉)과 군기창이 있었으나 지헝이 험하여

성내 까지의 운반이 어려워 조정에 상소하여

성내 사고지 옆으로 옮겼다고 전하며 지금도 마을 이름을 "서창"이라고 부르고 있다

 

 

 

 

원시림을 연상케 하는 울창한 숲 속은 여전히 안개 속이지만

초록의 향기속에 포근하고 아늑한 산행길이라

비가와도 힘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따가운 햇살이 없어 산행하기 좋은 기분이다

 

 

 

 

향로봉(1,024m)과 적상산 기봉(1,034m)으로 가는 갈림길 지점이다

비오는 날씨라 인적이 없는 산행길이었는데

이곳 향로봉 갈림길에서 산행객의 무리를 만났는데 발걸음이 왠지 가벼워 보였다

 

 

 

 

향로봉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가면 향로봉을 만날 수 있으며

우측은 안렴대와 안국사로 가는 길이다

갈림길에서 향로봉으로 갔다가  되돌아와 적상산 기봉으로 향하는 것이 오늘의 산행 코스이다

 

 

 

 

적상산은 인근 덕유산의 유명세에 가려져 그렇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제법 숨겨진 비경이 많으 곳으로 여겨진다

안개가 일순간에 사라지면서 따스한 햇살이 빽빽한 나뭇가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적상산은 전북 무주군 적상면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향로봉을 거느리고 있다

향로봉에서는 예로부터 하늘에 제을 지냈으며

지척에 있는 덕유산이 더 높지만 적상산의 기운이 하늘에 더 가까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적상상 향로봉(1,024m))은 사실상 정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상산 기봉(1,034m)이 주봉이기는 하나

정상에 통신기지국이 점령을 하고 있어 오를 수 없기 때문에 이곳을 정상으로 본 것이다

 

 

 

 

적상산(赤裳山)은 덕유산국립공원 지역에 속해 있으며 사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붉은색 바위지대가 마치 산이 붉은 치마을 입은 것 같다하여

붉은 적(赤), 치마 상(裳)자를 써서 적상산이란 이름이 유래하였고 한국 100경 중 하나로 꼽힌다

 

 

 

 

향로봉에서는 국립공원내 출입 통제구역이기에 북쪽의 산맥을 따라 갈 수가 없다

날씨 때문에 이런 조망을 보는 것으로 되돌아서야 했으며

날씨가 좋은날은 충남 금산의 서대산과 북서쪽 방향으로 대전의 계룡산까지 조망이 된다고 한다

 

 

 

 

향로봉을 둘러보고 삼거리 갈림길로 되돌아와 안렴대(按廉臺)로 향한다

능선길은 해발고도 850~1,000m의 평정봉(平頂峰)으로

주봉(主峰)인 기봉과 향로봉이 마주보고 있고 정상 일대가 토산(土山)이라서 숲이 울창하다

 

 

 

 

고산지대 능선길을 화사하게 수놓은 야생화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산 아래의 봄꽃과는 느낌부터가 달랐으며

마치 영산의 기운을 받기라도 한 듯이 아름다운 자태가 신비스럽기까지 하였다

 

 

 

 

적산산성은 산정이 평탄한 반면 지면에서 산허리까지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세가 험준하고 물이 풍부하여 방어상 천혜의 요새였으며

그 까닭에 적상산성(사적 제146호)이 축성되었는데 고려말 최영 장군이 축조를 건의하였다고 전해진다

 

 

 

 

시어머니의 변덕스런 마음처럼 오늘 날씨가 오락가락 한다

적상산 기봉(1,034m)의 정점에 도착하여

통신탑 기지국을 사진으로 인증샷을 찍으려 하였으나 짙은 안개로 인하여 담을 수가 없었다

 

 

 

 

정상인 통신기지국은 철조망이 막혀 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으며

이렇게 쳐다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100대 명산의 주봉을 쳐다만 보고 그냥 스쳐 가야한다는게 참으로 아쉬움이 남았다

 

 

 

 

안렴대와 안국사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이른다

왼쪽길은 안국사로 내려가는 길이며

이곳에서 직진으로 가면 빼어난 전망을 자랑하는 안렴대에 이른다

 

 

 

 

적상산의 정상 남쪽 층암절벽 위에 위치한 안렴대는 사방이 천길 낭떠러지로

이 곳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한다

적상산 최고의 조망대로 알려진 안렴대는 박무로 인하여 한치 앞도 볼 수 없어 아쉬움뿐이다

 

안렴대(按廉臺)라는 이름은 고려시대 거란이 침입했을 때 삼도(三道) 안렴사(按廉使)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에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했다는 데서 비롯되었으며

병자호란 때는 적상산사고의 실록을 이 바위 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라 불리운다

 

 

 

 

안렴대(按廉臺)에서 지척에 있는 덕유산의 산그리메도 볼 수 없었다

아름다운 운해(雲海)라도 보았으면 좋으련만

적상산의 유일한 천혜의 전망대에서 빼어난 풍경을 보지 못하고 안국사로 내려서는 발길이 무겁다

 

 

 

 

정상에서 안국사 내려가는 중간쯤에 5월 끝자락에 핀 피나물군락지가 있다

일명:노랑매미꽃으로 불리는 피나물은 양귀비과에 속하며

꽃잎이 밝고 화사하며 나무가 우거지고 습기가 많은 고산지대인 적상산의 북사면에서 만날 수 있다

 

 

 

 

적상산성 산중 분지(해발 800m)에는 안국사(安國寺)와 조선시대에

승병을 양성하던 호국사(護國寺) 등의 사찰이 있고

조선실록을 봉안하였던 사고(史庫)의 옛터가 남아 있어 유서깊은 문화유적이 운치를 더한다

 

 

 

 

안국사 본전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는 "청하루(淸霞樓)"

오대산의 상원사를 연상케 하였으며

초록의 화사함을 바라보며 번뇌가 사라지기를 기원하면서 안국사를 들어선다

 

 

 

 

안국사(安國寺)의 경내에는 본전인 극락전을 중심으로

양 옆에 명부전과 산신각이 배치되어 있었고

극락전 앞마당 전면에는 계류에 면하여 청하루(淸霞樓)가 있었다.

 

 

 

 

안국사(安國寺)는 고려 충렬왕 3년(1277년) 월인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뒤 1613년(광해군 5) 3월에 증축하였고

1864년(고종 1년)에 이면광(李冕光)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또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는 승병의 병사(兵舍)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범종은 1788년(정조 12)에 제작된 것으로 요사 옆에 걸려 있고

불교의 사물(법고,범종,목어,운판)이 보관된 곳으로

처마 끝마루에 걸린 풍경소리가 세속에서 온 우리의 마음을 씻어준것 같았다

 

 

 

 

극락전은 극락 세계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는 불전으로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이라고도 하며

아미타전이라 할 때는 아마타여래를 주불로 모신 불전임을 뜻하고 무량수전이라 했을경우

무량수불이 주불을 의미하여 아미타여래와 무량수불이 같으므로 그 뜻은 결국 같다고 한다

극락전이라 명칭은 아미타여래나 무량수불의 정토를 극락이라 한데서 유래 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대웅전, 대적광전과 함께 3대 불전으로 건립되어 이상향의 극락이 서쪽에 있으므로 보통 동향으로 배치한다

 

 

 

 

극락전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된 전각으로

본래 1772년(영조 48) 제작된 후불탱화가 있었으나

최근 도난당하였으며 현재의 탱화는 최근에 만든 것들이라고 한다

 

 

 

 

안국사는 승병들이 거처할 수 있는 숙소로 건립한 사찰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 속에 승방은 훼철되었지만

청하루와 극락전 사이의 마당 옆으로 산성과 사고(史庫)를 지키는 승병들의 숙소인 승방이 있었다

 

 

 

 

천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는 안국사 "천불전"은 일제시대 이전까지

조선왕들의 족보가 보관됐던 선원각이었다

천불전은 주춧돌을 비롯해 오백여년 간 원형 그대로 보존된 건물이라고 한다

 

 

 

 

안국사는 아담하고 조용하고 정말 한적했다

스님의 염불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한시간 가까이 머물렀는데도 스님에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안국사 아래에 적상산성이 길게 띠를 두른 채 쌓여 있다

무주 적상산성은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에 축성되어 한때 방치되기도 하였으나

고려 시대에는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인근 백성의 피난처가 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조선왕조실록을 지키는 요지가 되었다, 그러나 1910

경술국치 이후 사고가 폐지되고, 그 기능을 상실함에 따라 성벽 일부의 보존과 함께 유지가 남아 있다

 

 

 

 

적상산성에서 조망한 장군바위가 있는 풍경이다(빌려온 사진)

절벽 아래에 장엄하게 우뚝솟은 바위의 모습은 고려시대의 충신이었던

최영(崔瑩, 1316~1388)장군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장군바위라 부른다

 

 

 

 

안국사와 적상산성(赤裳山城)을 둘러보고 일주문(一柱門)을 빠져 나간다, 일주문 앞쪽

"赤裳山 安國寺(적상산 안국사)" 편액은 강암 송성용(剛菴 宋成鏞, 1913~1993) 선생이 쓰셨고

뒷쪽 "國中第一淨土道場(국중제일정토도장)"은 여산 권갑석(如山 權甲石, 1924~2008) 선생이 쓰셨다고 한다

 

 

 

 

안국사를 나와 도로를 따라 치목마을 갈림길로 내려간다

도로 양쪽으로는 단풍나무가 도열해 있어

가을이면 모든산이 아름답겠지만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산이 적상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치목마을 갈림길에서 산정호수(적상호)가 지척에 있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는가

이곳에서 직진으로 적상호와 적상상 사고지를 둘러보고 되돌아와야 한다

 

 

 

 

적상호는 양수발전소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인공호수이다

이 저수지는 전기가 적게 사용되는 심야시간(한밤중)에

하부저수지의 물을 퍼 올려서 전기소비가 많은 시간에 발전을 하기 위한 시설이다

 

 

 

 

산정호수는 적상산 분지(해발 800m)에 위치한 댐으로 적상호라 명명하였다

적상호까지 도로가 포장되어 있어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고

문화유적 탑방 등 전망대에 올라 원경을 둘러보는 즐거움도 있어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 오르고 있다

 

 

 

 

천혜의 요새지인 적상산 사고지는 우리나라 300여 년간 국가의 귀중한 국사를 보존했던

한양의 춘추관, 정족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과 적상산 등 5대 사고 중 하나이고

적상산 사고(赤裳山 史庫)는 역대 왕조의 실록을 보관하던 곳으로 선원전과 실록전을 두었다

 

 

 

 

사고지와 적상호를 둘러보고  갈림길로 되돌아와 치목마을로 향한다

평지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해발 800m지점으로

치목마을 까지는 계속해서 고도를 낮추면서 계곡을 지나기도 하면서 진행한다

 

 

 

 

비가 오락가락 하면서 숲으로 들어서니 어둑어둑 할 정도로 사위가 어둡다

독특한 산세로 인해 산성(山城) 가운데에 거대한 분지가 있어

많은 주민들이 살았으며, 고려 때 거란이 침입했을 때 이곳에 사는 주민들만 참화를 면했다고 한다 

 

 

 

 

적상산 산길은 어느 코스든 참나무가 울창한 숲터널을 이루고 있어

걷기에 쉬운 길이기에 힘들지 않았으며

비가 오긴 하여도 어느길에서 느낄 수 없는 편안함과 상쾌함이 함께하는 시간이다

 

 

 

 

치마을 두른 듯한 적상산 산허리 절벽의 남쪽에 위치한

송대폭포가 있는 지점에 도착했다

여름철 수량이 많을 때면 송대폭포가 볼 만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송대폭포는 정상산 남쪽 계곡의 급경사를 타고 흐르면서

울창한 송림사이의 높은 암벽을 뛰어넘고

층층으로 된 암반위로 하얀 포말을 뿌리며 떨어지는 물줄기가 인상적이다

 

 

 

 

치목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너럭바위에서 울~몽실님의 정성이 가득한

점심만찬을 즐기면서 하늘이 열리기를 기다렸지만

시어머니의  마음처럼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덕유산을 실루엣으로만 바라보고 내려서야 했다

 

 

 

 

산불지역을 내려서면 적상면 반딧골의 오지마을로 불리웠던 치목마을에 도착한다

예전에는 무주 골짜기의 오지마을로 쉽게 가 볼 수 없는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청정 오지마을로 사람들이 자주 가 보고 싶은 마을로 손꼽히는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치목마을 사람들은 옛 부터 삼을 길러 전통 방법으로 삼베를 짜는 마을로

정이 많고 인심이 후한 마을로 알려져 있으며,  동네 주민들이 

시간 나는데로 삼베를 짜고 수의를 제작하며 살아가고 있는 삼베체험 마을이다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적상산의 비경을 치목마을 주차장에서 뒤돌아본다

옛부터 적상산의 비범한 산세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으며

최영장군은 이런 자연요새를 활용해 적상산성을 쌓아 놓은 비범한 산세는 명불허전이었다

 

 

 

 

적상산의 산행코스는 단순하여 치목마을로 내려오니 교통이 불편하였다

이곳에서 서창마을로 연결되는 교통편은 없었으며

적상면 개인택시(전화 063-324-6084) 요금 15.000원으로 서창마을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적상산 산행은 고찰 안국사 등 유서깊은 문화유적을 둘러보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늘도 두발로 걸어온 100대 명산의 흔적을 남기면서 저의 포토산행기가

산을 좋아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삶에 활력의 기폭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7 : 50 ~ 12 : 30  (04시간 40분)      ◎ 날씨 : 흐림, 비

 

 

인연 - 노래 ; 이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