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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산행 분류▩/♡100대 명산

경상북도 상주시 속리산(문장대-천왕봉) 명산산행

경상북도 상주시 속리산(법주사주차장 - 문장대 - 천왕봉) 웰빙산행

◎ 산행일시 : 2015년         07월         05일         (일요일)

◎ 산행위치 :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산면, 괴산군 /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법주사주차장 - 법주사 - 세심정 - 중사자암 - 냉천골휴게소 - 문장대(1.054m)

                      신선대 - 천왕봉(天王峯, 1.058m) - 상고암 - 배석대 - 상환암 - 세심정 - 법주사

 

◎ 산행거리 : 법주사주차장 ~ 1.4Km ~ 법주사 ~ 2.7Km ~ 세심정휴게소 ~ 3.3Km 

                      문장대 ~ 1.3Km ~ 신선대 ~ 2.1Km ~ 천왕봉 ~ 1.4Km 

                      상고암 ~ 0.8Km ~ 배석대 ~ 1.6Km ~ 세심정 ~ 4.1Km ~ 사내리야영장

                      도보거리   =   약 18.7Km           실제도보거리   =   약 19.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5 : 40 ~ 13 : 45  (08시간 05분)      ◎ 날씨 : 아주, 맑음

 

            ◐ 호서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한국 팔경의 하나인 속리산 산행이란?

속리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법주사가 창건된지 233년 만인 신라 선덕왕5년(784년)에 진표율사가 김제 금산사로부터

이곳에 이르자 들판에서 밭갈이 하던 소들이 전부 무릎을 꿇고 율사를 맞았는데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들도

저렇게 뉘우치는 마음이 절실한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 서랴 하며 머리를 깎고 진표율사(眞表律師)를 따라

입산수도 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데서 연유하며 속세를 떠난다는 뜻으로  산이름을 속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 경상북도 상주시 속리산(俗離山) 등산안내도 *****

 

 

 

 

 

 

 

수관이 우산처럼 보이는 이 소나무는 세조가 이곳을 행차하는데, 가지가 쳐져 있어 "연(輦)이 걸린다"고

말하자 이 소나무는 가지를 위로 들어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였다고 한다, 훗날 세조는 연걸이

소나무라고 칭송하고 정이품의 벼슬을 하사(下賜)하였다고 전한다, 충성스런 이 소나무는

수령이 600년으로 추정되는데 강풍, 폭설로 피해를 보아 한쪽이 훼손되었다, 아직도 늠름한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세월을 속일 수 없는 일, 인생도 마찬가지로 늙는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노인의 지팡이는 죽음의 문을 두드리는 망치라는 어느 선각자의 말씀이 생각난다

진갑을 넘어서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로서는 지팡이 짚기전에

이산 저산 다니면서 풍류나 즐기면서 후회없는 삶을 살아가고자 속리산을 찾아왔다

 

 

 

 

속리산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해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많이 찾는 산 중의 하나다

예로부터 속리산을 호서(湖西)의 소금강이라 불리우고 있는데

호서란 충청남북도를 통칭해 부르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천 의림지의 서쪽"이라는 뜻이다

 

 

 

 

사내리 야영장 부근에 주차를 하고 법주사 방향으로 올라간다

속리산은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시에 걸쳐 있지만

속리산의 관문은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에 위치한 법주사 탐방지원센터다

 

 

 

 

사내리(寺內里)는 절 사(寺)에 안 내(內)자로 이름 그대로 절 안에 있는 마을이다

지금의 위치로 보면 절과 마을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지만

사내리 땅이  모두가 절 땅이니 "절 안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은 관광객 방문이 줄어 들었지만 예전에는 경주와 경쟁할 만큼 관광 특수를 누린 곳이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었지만, 법주사 쪽의 등산로를 이용하려면 문화재 관람료 4천원을 내야 한다 

일부 등산객들은 요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경북 상주시 화북면 쪽에서 등산을 하지만

여전히 많은 등산객들이 법주사 탐방지원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속리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정이품송과 법주사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찰로라는 명분으로 문화재관람료 4천원을 징수하고 있었는데

산을 오르는 목적만을 갖고 찾아온 등산객에게는

문화재관람료를 지불해야 한다는게 썩 기분좋은 일만도 아니고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일주문을 지나 법주사까지 울창하고 아름다운 숲길을 걷는다

이 울창한 숲길을 "오리숲"이라 부른다

실제거리가 2km정도 되는 길이라서 그 거리가 오리라서 오리숲이라 부르고 있다

 

 

 

 

한참을 걸어 법주사갈림길에서 법주사를 왼편에 두고 오른쪽 등산로를 택한다

절간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고 우리는 산행이 목적이며

비싼 입장료 때문에 기분이 상하여 들어가 보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도 동양 최대의 "금동미륵대불"은 보고가야 하기에 하산할 때 들러 보기로 한다

 

 

 

 

속리산의 유래는 신라 말 진표(眞表)율사가 법주사를 중창하기 위해 보은 땅을 들어서는데

밭을 갈던 소들이 대사를 알아보고 일제히 무릎을 끓었다고 한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들이 저럴진대 하물며 우리야" 하며 대사를 알아보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그 길로 낫과 괭이를 버리고 속세(俗)를 떠나니(離) "俗離山"이란 이름이 여기서 유래 되었다 한다

 

 

 

 

지도상에 표기된 기둥에 연꽃 모양이 새겨진 태평교를 지난다

좌측으로 상수원으로 쓰이는 저수지가 있으며

태평교 아래로 물고기들이 지나가는 산객들에게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

 

 

 

 

울창한 산림은 천년고찰 법주사와 잘 조화되어 승경(勝景)을 이루고 있다

속리산에 들어가면 속세를 잊게 된다는 말이 틀린말은 아니며

산들이 겹겹이 펼쳐놓은 절경을 통해 속세의 아름다움도 더불어 깨닫게 되는 산이 속리산이다

 

 

 

 

목욕소(沐浴沼)는 조선 7대왕 세조가 법주사에서 국운의 번창 기원을 위한 대법회를 연 후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약사여래의 명을 받고 온

월광태자라는 미소년이 나타나 "피부병이 곧 완쾌될 것이다" 하고 사라졌다

세조가 목을 마치고 보니 신기하게도 몸의 종기가 깨끗이 없어 졌다 하여 목욕소(沐浴沼)라 불린 곳이다

 

 

 

 

잘 관리된 계곡길을 걸어 세심정(洗心亭)에 도착했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은 천왕봉 방향이고

우리는 좌측으로 문장대를 거쳐 시계 방향으로 천왕봉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세심정은 마음을 씻는 곳이라 하지만

사실상 휴게소인 매점이다

세심정(洗心亭)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세심정을 지나자 "이뭣고다리" 기둥에  새겨진 이름이 특이하다

좌측에는 "시심마교(是甚麽橋)"라고 쓰여 있으며

是甚麽는 인생의 모든 현상에 관한 근복적인 의문으로 "이것이 무엇이냐"라는 뜻이다>

 

불교에서 인생사 생활 현상에 관한 근본적이 의문을 다룬다는 의미로

한국 불교만의 독특한 화두라는 주장이라 하지만 뭔 소린지~

알지 못하는 무지가 안타까울 뿐! 고개를 한번 갸우뚱하고 극락가는 관문인 문장대로 향한다

 

 

 

 

우측에 복천암(福泉庵)은 조선 세조가 물을 마시고 감탄을 했다는 "석간수"가 나온다

세조가 이곳에 머물면서 피부병을 치료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며

암자의 이름과 관련한 복천(福泉)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이 흘러 넘쳐도, 샘물은 한결 같다고 한다 

 

 

 

 

첫번째 만나게 되는 용바위골휴게소의 기와집이 이쁘게 보인다

속리산에는 유난히 많은 휴게소가 있으며

이곳에까지 장사하는 차량들이 올라오지만 일반인들은 탐방지원센터에서 걸어와야 한다

 

 

 

 

용바위휴게소를 지나고 경사도가 상당한 고개를 힘들게 올라서면

고개 이름이 깔딱고개인 보현재휴게소에 도착한다

이 고개에 오르면 숨이 차서 할딱거린다는 뜻으로 깔딱고개(할딱고개)로 부르고 있다

 

 

 

 

보현재휴게소의 젊은 주인장이 꽁지머리를 휘날리며

냉커피 한잔하고 쉬어 가라고 하지만

세심정에서 간식먹고 온지가 20분도 안되어 인사만 받고 줄행랑이다

 

 

 

 

속리산은 산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유달리 불교 색채가 짙은 산이다

돌다리에서도 부처의 가르침을 배우게 하고

중사자암은 이정목의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갔다가 되돌아와 문장대로 가야한다

 

 

 

 

문장대 아래에 원래는 상사자, 중사사, 하사자의 세암자가 있었으나

상사자암과 하사자암은 폐사되었다고 한다

지형과 이 바위 모양이 사자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전혀 다른 모습이다

 

 

 

 

중사자암 입구에 불(佛)자가 씌여진 큰 바위가 정면을 가로막고 서 있다

그 뒤로 나즈막히 보이는 기와지붕 중사자암이 있으며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조선 인조가 아버지 능원대군(綾原大君)의 명복을 빌기위해 창건했다고 한다

 

 

 

 

중사자암(中獅子庵)은 신라 성덕왕 19년(720년) 의신조사에 의해서 창건되었으며

현재 건물은 6.25때 소실되었던 것을 1957년에 새롭게 지었고

이후 종현스님이 1985년도에 사찰을 중수했다고 전한다

원종은 선조의 아들로 조선의 16대 왕인 인조의 아버지이니 조선 때는 인조의 도움을 받아 번성했다고 전해진다

 

 

 

 

중사자암에서 되돌아와 다시 문장대를 가파르게 오른다

갈림길에 거대한 바위가 있기는 하지만

무엇을 배경으로 수 없이 사진을 찍고 찍어주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등로 주변에는 동물 형상을 하고 있는 기암들이 즐비한데

이 바위는 배암이 얼굴을 내민 모습으로

참나무와 어우러져 자꾸만 산객의 발목을 붙잡고 눈을 즐겁게 해준다

 

 

 

 

이번에는 고속도로 진입전 주유소입구처럼 플랜카드를 걸어 놓았다

이곳이 "냉천골 마지막 휴게소" 라고

하지만 우린 세심정에서 주유를 했으니 주인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지나간다

 

 

 

 

이 마지막휴게소를 그냥 지나치면 큰 낭패를 본다는 의도일까

냉천골이란 이름만큼 시원한 냉기가 느껴지며

메르스가 아니라면 초여름의 신록이 가득한 냉천골에서 잠시 쉬어가고 싶은 곳이다

 

 

 

 

속리산은 그 이름과 달리 산자락마다 많은 속세의 이야기 전설들을 담고 있다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올려 조선 건국을 꿈 꾼 곳이 여기이며

그의 아들 이방원은 두 명의 형제를 죽이면서 쟁취한 왕권의 기틀을 만들었던 곳도 이 지역이다

 

 

 

 

어느덧 파란 하늘을 마주하는 능선의 마지막 계단을 오르고 있다

두꺼비바위에  돌 하나 올려놓고 무사 안녕을 빌며

문장대 오름길에서 제일 힘든 구간을 오르면서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긴장되는 순간이다

 

 

 

 

신선대 갈림길에서 문장대 방향의 널다란 공터를 지나 암봉에 올라서면

경찰통신중계소와 문장대가 그림처럼 한눈에 들어오고

앞쪽으로는 푸른 능선이 물결치 듯 일렁이면서 힘들게 올라온 우리를 기쁘게 맞이한다

 

 

 

 

속리산은 법주사를 중심으로 천왕봉(1,058m)과 관음봉을 연결하는 주능선를 말하는 바

조선 8경의 하나로 빼어난 암봉을 자랑하는 명산으로

9개의 봉우리가 있어 원래는 "구봉산"이라고 불렀으나 신라 때부터 속리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문장대(운장대)는 세번을 다녀와야 극락에 간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첫번째는 고등학교 까까머리 시절에 무전여행을 왔었고

두번째는 3년전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지나 갔었고

이번에는 100대 명산을 찾아 세번째 찾아 왔으므로 극락에 가는 한자리를 예약한 셈이다

 

 

 

 

앞에 보이는 암릉은 백두대간 마루금으로 삼년전의 감동에 넋을 잃고 바라본다

속리산은 예로부터 산수가 아름다워 속리 36경이라 하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문장대는 제1경인 문장기운(文藏起雲)으로 시인묵객들로부터 찬사을 받아왔다

 

 

 

 

속리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수려하여 옛부터 선인들은 봉우리들을 푸른 연꽃에 비유하였다

옥(玉)으로 빚은 연꽃같다고도 하고, 또한 처음피는 연꽃 같기고 하고

멀리서 횃불을 벌리어 놓은 것 같다고 하여 이 산을 소금강산이라 불릴 정도로 명산으로 일컬어 왔다

 

 

 

 

문장대의 늠름한 위용의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며

역시 속리산 하면 문장대를 떠 올릴 만하다

천연적으로 돌이 포개져 있고 힘차게 솟구쳐 마치 공중부양을 하는 듯한 모양이다

 

 

 

 

속리산은 한 폭의 동양화를 담을 수 있을 만큼 산세가 수려하다

문장대에 서면 문수봉, 신선대, 비로봉, 천왕봉 등

암봉들이 시원하게 펼쳐지면서 정상에 오른자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을 맛보게 만든다

 

 

 

 

이렇게 쉽게 극락에 갈 수 있다면 아무나 오르지 않겠는가

문장대에 오를 때 처럼 교만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고 분별심을 버리라는 교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장대는 세조가 복천암에서 감로수를 마시며 요양을 하고 있을 때 꿈속에 귀공자가 나타나

인근의 영봉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 현몽하여

운장대에 올랐더니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명시한 책 한귄이 있어

세조가 그 자리에서 하루종일 글을 읽었다 하여 문장대(文藏臺)라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탁월한 조망과 암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관음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있으며

묘봉과 상학봉, 미남봉으로 이어지는 충북알프스 구간으로

자연속에서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눈앞에 펼쳐진 산그리메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다 내려간다

 

 

 

 

道不遠人 人遠道(도불원인 인원도)     山非離俗 俗離山(산비이속 속리산)

바르고 참된 도는 사람을 멀리 하지 않는데, 사람은 그 도를 멀리 하려 들고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으나~  속세는 산을 떠나는구나

신라 때 고운 최치원 선생이 속리산을 찾아보고 읊은 시(詩),  한 수를 떠 올리며 신선대를 향한다

 

 

 

 

속리산(俗離山)은 호서 제일의 가람인 법주사가 있어 더욱 유명해진 곳으로

1970면 3월 20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칡넝쿨, 할미꽃, 모기가 없어 삼무(三無)의 산으로 유명하며

충북도 보은군과 경북 상주시에 걸친 관계로 보은 속리산과 상주 속리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문수봉(文殊峰, 1.037m)은 문수보살을 상징하는 봉우리로

과거에는 사자봉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문수보살은 사자를 타고 다니며 불교에서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이다

 

 

 

 

문수봉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청법대의 풍경이다

철계단에서 왼쪽으로 들머리가 있으며

마치 부처님이 앉아 있는 듯한 좌대처럼 생겼다고 해서 청법대라고 한다

 

 

 

 

돌계단의 된비알을 오르면 고즈넉한 산죽길이 신선대로 안내를 한다

문장대에서 천황봉에 이르는 백두대간길은

기암괴봉들의 전시장일 뿐만 아니라 키높이 산죽(조릿대)들이 청량감을 더해 준다

 

 

 

 

신선대에서 바라본 청법대는 문수봉과 신선대 사이에 위치한 절벽으로

옛날 어느 고승이 속리산 절경에 넋을 잃고 방황하다가

이 봉우리에서 불경 외우는 소리를 듣고 제 정신을 차렸다 하여 청법대라고도 한다

 

 

 

 

신선대휴게소의 지글지글한 감자전 맛은 잘 알려져 있지만

메르스로 인해 장사가 되지 않은것 같다

당귀주 맛은 먹어보면 기통차지만 마음으로 쳐다만 보아야 했다

 

 

 

 

아늑한 옛날 속리산 절경에 혼을 빼앗긴 한 고승이 청법대에서 불경소리를 듣고 멀리 남쪽을 바라보니 산봉우리에

백학이 수없이 날아 오르며 춤을 추고 있고 그 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신선들이 앉아 놀고 있는데

그 모습은 고승이 평생 원하는 신세계 인지라 황급히 청법대를 떠나 달려 갔으나 막상 당도하여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크게 실망하고 아쉬워서 그 자리를 떠나 다음 봉우리로 가서 다시 그곳을 바라보니

여전히 주위에는 백학이 놀고 신선들이 담소를 하는지라 고승은 아직도 자신이 신선들과 만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곳으로 달려갈 염두도 못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신선들이 놀던 봉우리라 하여 신선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휴게소 아주머니가 냉커피 한잔하고 가라고 하는데

자릿세를 달라는 말처럼 들렸기에

예전 같으면 한잔 했을 터인데 사정상 서둘러 자리를 떠나야 했다

 

 

 

 

이곳에서 경업대(慶業臺)와 금강휴게소는 우측으로 내려선다

경업대는 임경업 장군이 무예 훈련장으로

독보대사(獨步大師)를 모시고 심신을 단련하던 곳이라는 전설을 품고 있다

 

 

 

 

조망바위에 찾아 올라서면 한없이 아름다운 속리산의 속살을 구경한다

땅만 열심히 쳐다보고 걸으면 찾을 수 없는 곳이며

속리산 산행의 묘미는 능선길에서 이렇게 숨어 있는 비경을 찾아 다니며 산행을 해야한다

 

 

 

 

이렇게 좋은 곳을 놔두고 빨리 가야할 이유가 있겠는가

곳곳이 기암들의 축제 전시장이며

구름한점 없이 맑은날 속리산의 아름다운 비경을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입석대(立石臺, 970m)은 기둥같은 모양의 바위로 높이는 약 13m정도이다

임경업 장군이 속리산에서 수련을 한지 7년째 되던 때

이 돌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이 돌을 입석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중앙부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봉우리가 문장대이다

북한산 어드메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설악산의 공룡능선을 쳐다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비로봉(毘盧峯, 1.022m)은 진표율사가 속리산 법주사에 온 이튿날 아침 새벽 방안에서 자선을 할 때

밝은 빛이 방문 가득히 비쳤고 이에 대사가 감짝 놀라 방문을 열었더니 맞은편 산봉우리에서

눈부신 햇빛이 오색 무지개를 띠고 비추고 있었다, 대사가 황급히 합장배례를 한 후 그 곳으로

달려가 보니 비로자나불 암석에 앉아 있다가 서쪽 하늘을 향하여 구름을 타고 떠났다,대사는

비로자나불(모든것을 두루 바친다는 뜻)을 직접 배알할 수 있던 산봉을 이름을 붙여 비로봉이라 하였다

 

 

 

 

고릴라바위(상고외석문)은 고릴라 형상을 닮은 이 바위는

자세히 보면 어미와 새끼 고릴라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 경관을 감상하고 있는 듯한 모양이며 속리산 8석문 중의 하나이다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치악산과 소백산에 이어 속리산이다

그리고 오대산과 팔공산의 비로봉도 올랐는데

북한의 금강산에도 비로봉이 있다고 하는데 언젠가 오를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다

 

 

 

 

이곳도 땅만 열심히 쳐다보고 간다면 찾을 수 없다

바위 절벽에 한 마리의 도롱뇽이

붙어 있는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어 도롱뇽바위라고 부른다

 

 

 

 

두껍등은 등산화를 올려 놓은 듯한 모양의 바위로 반대편에서 보면

두꺼비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어

두껍등이라 불리며 기암들의 천국으로 마치 풍족한 충청도 인심을 드러내는 것 같다

 

 

 

 

갖가지 형상으로 보이는 기암괴석의 풍광을 눈에 하나 하나 담으며 걷다보니

지리산 천왕봉 아래 통천문과 같은 천왕석문을 지난다

아마도 욕심을 부리지말고 고개를 숙이고 숙연하게 올라오라는 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상고암 갈림길에는 산죽 군락이  푸르름을 간직하며

등로에 생명력을 불어주어 좋아 보이며

천왕봉에 갔다가 되돌아와 상고암  방향으로 내려설 예정이다

 

 

 

 

장각동 갈림길의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시원하다

장각동(長角洞)은 소의 뱃속 모양의

명당터를 일컫는 우복동(牛腹洞)의 쇠뿔에 해당한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한다

 

 

 

 

천왕봉(天王峰, 1058m)은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시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속리산의 주봉으로 한남금북정맥이 분기하고 있으며

또한 남북으로 백두대간이 지나고, 속리산 9개 봉우리중 가장 남쪽 끝머리에 있는 봉우리다

 

 

 

 

문장대의 유명세에 가려 속리산 주봉으로서 대접을 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속리산의  진면목은 아무래도 천왕봉에 올라봐야 한다

사방천지 골과 산들이 겹쳐 구봉구대의 절경이 화려하며 그윽한 맛은 단연 천왕봉이 압권이다

 

 

 

 

천황봉은 속리산의 최고봉으로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낙동강의 근원이 되고

남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금강유역을 가르며 흘러가고

서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한강의 유역을 가른다 그래서 삼파수(三派水)라고 부른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격조 높은 문화를 품에 안은 상주시(尙州市)

그래서 1년내내 상주(常主)하고 싶은 곳이다

보은군 구병리에서 상주의 갈골로 이어지는 이 길은 오지(奧地)중의 오지라고 한다

 

 

 

 

속리산 최고봉인 천왕봉 정상 부근에 옛날에 대자재천왕사라는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천왕신이 해마다 10월 인일축시에 이곳으로 내려와 법주사에서 45동안 머물다

하늘로 올라가는데 천왕신이 내려오는 날 속리산 산자락에 사는 사람들은

천왕신을 법주사로 모셔와 제사를 지내고 풍악을 울렸으며 이 대자재천왕제는 곧 속리산신제이다

 

 

 

 

속리산의 주능선은 마치 암릉 전시장 같은 천상선경(天上仙境)처럼 보이고

비로자나불의 의미처럼 온누리의 사바세계를 보는 듯하며

하얀 뭉게구름이 떠다니며 춤사위를 펼치면서 멋진 암봉들이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준다

 

 

 

 

신라의 경순왕이 고려에 신라를 이양하고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는 영화를 누렸지만

그의 처자식들은 어떠했는가 마의태자는 월악산 덕주사에 동생 덕주공주를 두고

망국의 한을 품고 백두대간 하늘재를 넘어 소백산 국망봉에서 한을 달래다

금강산으로 들어가고 그간 행방이 묘연했던 경순왕비 행적은 장각동(長角洞) 상오리마을에 있다고 한다

 

 

 

 

천왕봉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상고암갈림길로 되돌아왔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상고암 가는 길이며

속리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상고암은 속리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상고암(上庫庵)은 720년(성덕왕 19년)에 창건하였으며 처음은 법주사를 짓기 위한

목재를 저장하여 두었던 창고로 이용 되었다가 뒤에

암자로 바뀌어다고 한다, 일설에는 비로봉을 중심으로 해서

모자성을 구축하고 군량미軍糧米를 비축하였다고 해서 훗날 상고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사찰 입구에서 주지스님이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약수물부터 먹을 것을 권한다

상고암(上庫庵) 산신각 뒤로 올라가 너럭바위에서 바라보면

음부처럼 감추어진 계곡 구석구석이 보이고 속리산의 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상고암은 해발 930m에 관음암과 함께 속리산의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로 유명하다

가까이에  이런 천연 바위동굴을 이용한 굴법당이 있으며

법당 안에 만병을 고쳐주는 약사열불이 봉안되어 있다고 하는데

문이 닫혀 법당안를 구경할 수 없었으며 굴법당 앞에 펼쳐진 연봉들을 한참을 바라보다 되돌아왔다

 

 

 

 

배석대(拜石臺, 898m)는 덕만공주(선덕여황)가 나라의 번창과 왕실의 평온을 기도하고

아버지(진평왕)가 있는 경주쪽을 향하여 매일 절을 올렸다고 하여

배석대라 부르고 있으며 하루는 옆에 있는 우람한 바위가

덕만공주를 따라 고개를 숙였는데 그 후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이 남쪽 천황봉을 향해 절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배례석(拜禮래)이라고도 부른다

 

 

 

 

바위틈이 절묘하게 만들어진 석문벽에 이덕수(李德壽)라는 분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조선 영조 때 청각장애인으로 이조 판서에 오른 사람이 아닐지

장애를 가지고도 이 정도로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은 조선왕조 5백년을 통틀어 그가 유일하다고 한다

 

 

 

 

상환암은 속리산 구봉구대(九峰九臺) 중의 하나인 학소대를 마주하고 있다

절벽에 자리잡은 상환암은 그 자체가 절경이었으며

상환암의 최고의 건축물은 암자 뒷편 절벽위에  아슬아슬하게 자리잡은 산신각이다

 

상환암은 신라 문무왕 10년에 신라의 고승 혜우가 들어와 창건했다고 전한다

적벽바위가 학이 둥지를 틀었다는 학소대(鶴巢臺)가 있으며

그 아래 계곡에는 바위아래에서 물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를 은폭동계곡이라 부른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속리산은 봄은 봄대로 봄의 향기가 있고

여름에는 수려한 숲과 맑고 시원한 계곡이 으뜸이며

가을은 형형색색 단풍의 고운 자태가 장관이고

겨울은 설경의 아름다움이 있어 계절별로 많은 산객들이 한번쯤 찾고 싶은 명산이다

 

 

 

 

문장대를 올라 능선을 따라 천왕봉으로 돌아와 만나는 곳이다

세심정은 고등학교시절 왔었던 기억이 아련하지만

오늘도 속세를 떠나 속리산에서 극락에 가는 좋은 인연을 맺고 돌아간다

 

세심정(洗心亭) 절구의 유래는 이곳 지형을 이용한 물레방바 형태로

곡식을 빻아서 밥과 떡과 곡주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절구가 만들어 졌던 시기에는 약 400여개의 암자와 많은 토굴이 속리산에 있었다고 한다

 

 

 

 

고통(苦痛)을 겪어보지 않은 수행(修行)은 참 도(道)를 행(行) 할 수 없다고 한다

무거운 배낭에 배고픔과 육체적 고통을 느끼는 속리산종주라도 해보라

자연적으로 도의 세계에 몰입하게 될 것이며 세속의 욕심과

부질없는 잡념 또한 깨끗이 없어지는 무아의 경지로 들 것이니

세상의 무거움 짐 지고 있는 자 들이여 속리산으로 오라 그러면 길(道)을 알게 될 것이다

 

 

 

 

상수원으로 쓸 물을 모아두는 산속의 인공호수 같은 저수지는

꼭 주왕산의 "주산지"같은 느낌을 준다

태평교 아래에는 산천어와 피라미떼들이 엄청 많아 산객의 발목을 붙잡는다

 

 

 

 

법주사는 많은 문화유산과 불교 전통을 간직한 호서지방의 제일의 가람이다

불법이 안주할 수 있는 탈속의 가람이란 뜻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사방이 험준한 이곳이 속세를 떠나 불법의 진리를 펼친곳이라고 여겼다고 했다

 

 

 

 

법주사(法住寺)는 신라 진흥왕 14년(553) 의신조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하여 법주사라 했다고 한다

경내에는 국보 3점(쌍사자석등, 팔상전, 석연지)과 보물 10점 등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세월의 깊이가 있는 법주사 주변은 웅장한 노송들이 둘러져 있다

때문에 느끼는 풍경은 사뭇 서정적이며

수백년 된 노송들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위용을 자랑하며 산객을 배웅한다

 

 

 

 

천천히 걸어가든  빨리 달려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한 세상이다

녹음이 우거진 계곡의 물소리와 청아한 목탁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속세를 떠나 속리산에서 극락에 가는 인연을 맺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왔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5 : 40 ~ 13 : 45 ( 08시간 05분)    ◎ 날 씨 : 아주 맑음

 

 

May it be ( 반지의 제왕 ost ) - En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