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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산행 분류▩/♡100대 명산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고위봉-용장사지) 명산산행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용장리-고위봉-금오산-삼릉) 웰빙산행

◎ 산행일시 : 2015년         08월         09일         (일요일)

◎ 산행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남산동, 배동, 내남면 용장리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용장리주차장 - 이무기능선 - 고위봉(高位峯, 494m) - 백운재 -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

                      칠불암 - 이영재 - 용장사지갈림길 - 용장사지 - 연화대좌 - 금오봉(金鰲峯, 484m)

                      금송정(琴松亭) - 상사바위 - 바둑바위 - 상선암 - 석불좌상 - 마애관음보살상 - 삼릉주차장

 

◎ 산행거리 : 용장리주차장 ~ 13Km ~ 천우사 ~ 1.8Km ~ 고위봉 ~ 1.5Km ~ 칠불암 ~ 1.9Km

                      이영재 ~ 1.6Km ~ 용장사지 ~ 1.5Km ~ 금오봉 ~ 1.3Km ~ 상선암 ~ 1.3Km ~ 삼릉주차장

                      도보거리   =   약 12.2Km           실제도보거리   =   약 13.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6 : 10 ~ 12 : 30  (05시간 30분)      ◎ 날씨 : 흐림후, 맑음

 

            ◐ 천년 역사가 살아 숨쉬는 지붕없는 박물관 경주 남산 산행이란?

남산에는 온갖 전설이 남아 있고, 신라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역사의 산이며, 선조들의 숨결이 가득한 민족문화의 산실이다

이 산 주변에는 신석기 말기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고, 신라시조 박혁거세 거서간이 탄강(誕降)한 나정(蘿井)과

초기 왕궁, 나을신궁(奈乙神宮), 왕릉이 즐비하며, 도성(都城)을 지켜온 남산신성(南山新城)을 비롯한 4곳의 산성과

망국의 한이 서린 포석정지(鮑石亭趾)가 있어 남산(南山)은 실로 신라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보배로운 산이라 할 수 있다

 

 

2015년 을미년(乙未年)에는 북쪽과 남쪽이 하나로 엮으시게 하여 주소서~

또한 싸우게 하지말고, 조국과 민족의 이름을 하나되게 하시고~^^ 

우리의 슬펐던 자리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답게 닦으시고 영원하게 하소서~

 

 

 

*****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고위봉-금오봉) 등산안내도 *****

 

 

 

 

 

 

 

경주 남산은 "노천박물관"이라 불리는 신라 천년의 향수를 고스란히 간직한 산이다

신라를 빼고 남산을 말할 수 없고 남산을 빼고 신라를 말할 수 없으며

남산은 신라 태동의 성지이자 불국토를 꿈꾸었던 신라인들의 신앙지였고 신라의 역사가 막을 내린 곳이다

 

 

 

 

용장(茸長)이라는 말은 신라 때  사찰인 용장사(茸長寺) 앞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용장리(茸長里)라 불리였다고 한다

용장골은 계곡의 골짜기가 남산에서 가장크고 산에서 흐르는 물이 깨끗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용장계곡을 중심으로 온갖 전설이 얽힌  옛 조상들의 신화가 서려 있는 곳으로

월성이씨의 집성촌으로 주민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으며

용장리 암소숯불갈비 앞 임시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용장교앞 좌측으로 하천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용장교앞에서 천우사라는 이정표를 보고 하천을 따라 올라간다

앞쪽에 보이는 전봇대 좌측으로 태봉이 보이고

우측으로 잠시 후 우리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올라야 할 이무기능선과 고위봉이다

 

 

 

 

좌측으로 계수기를 통과하면 용장사지의 삼층석탑으로 가는 길이다

갈림길 이정표에서 고위봉은 우측 직진길이며

용장(茸長)골 깊은 계곡은 천년 역사가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용장사(茸長寺)는 조선 단종(端宗) 때 생육신(生六臣)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은거하면서 금오신화(金鰲新話)와

매월당집(梅月當集)을 집필하였던 곳이였는데, 절은 허물어지고 석탑과 석불만 남아 있다

 

 

 

 

용장사지 갈림길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천우사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천우사는 우측으로 5분거리에 있으며

화장실좌측 계수기를 통과하여 계곡을 건너면 고위봉 오름길이 시작된다

 

 

 

 

지계곡을 건너면 구조요청 안내판이 나타난다

이무기능선 초입에 들어서는 지점이며

고위봉 정상까지는 거의 외길 수순으로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경주 남산은 산 자체로는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많은 골짜기를 거느릴 만큼 그 품이 넉넉하며

흙산과 돌산이 적절히 어우러져 균형있는 산세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올라가는 이무기 능선은 거의 바위암릉으로 되어있다

이렇게 척박한 곳에  명품 소나무가 즐비하며

이무기능선은 공룡능선에 버금간다는 뜻에 비유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보여진다

 

 

 

 

단석산(斷石山, 827m)은 옛 신라 오악(남산, 선도산, 토암산, 소금강산)중 중악이라 불린 명산으로

김 유신이 17세에 삼국통일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얻고자 산에 올라 홀로 수도하고 있을 때

난승이란 도승을 만났는데, 난승에게 보검을 얻은 김 유신은 바위를 두동강으로 짤랐다하여 단석산이라 하였다

 

 

 

 

이무기능선으로 접어들면 본격적인 로프 구간이 나온다

주의하면 그렇게 위험한 구간은 아니며

이무기능선은 남산 최고의 조망과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라 할 수 있다

 

 

 

 

고위봉 오름길은 경주 시민의 체력단련장이나 다름없다

경주는 옛날부터 소나무가 많았으며

울통불통하고 구불구불하게 튀어나온 바위는 마치 이무기바위처럼 보인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 바위를 이무기바위라고 한다

옛날 신라시대 때 용(龍)과 이무기가 싸웠는데

이무기가 져서 떨어져 이렇게 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남산은 금오봉(468m)과 고위봉(495m)의 두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다

남산을 오르지 않고 경주를 논하지 말고 이무기능선을 오르지 않고

남산을 올랐다고 하지말라"는 말이 있듯이  고위봉은 남산의 명산이다

 

 

 

 

이무기능선에 있는 바위들도 멋지고

굿굿한 소나무도 멋지고

바라보는 조망 또한 어디를 둘어보아도 멋지다

 

 

 

 

고위봉 최고의 난코스라고 할 수 있는 짜릿한 암릉 릿지구간~

조금은 위험하지만 산타는 맛은 최고다

울~몽실님! 암릉만 만나면 쩔쩔메는데 오늘은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나 펄펄 날은다

 

 

 

 

이무기능선의 아찔한 암릉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이 백미 중 백미다

위험하지만 암릉을 타고 오르는 재미가 솔솔하며

어느곳을 둘러보아도 경관이 확 트여서 산타는 멋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앞에 바라보이는 저 봉우리가 남산의 주봉인 금오봉이다

가운데 두 개의 봉우리는 태봉이며

이무기능선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잘 어울린다

 

 

 

 

산행들머리 용장리마을 뒷쪽으로 망산(望山)이 봉긋하게 솟아있다

옛날 경주의 이름은 서라벌(徐羅伐) 또는 새벌이라 했으며

새벌은 동이 터서 솟아오른 햇님이 가장 먼저 빛쳐주는 광명에 땅이라는 뜻이다

 

온갖 곡식과 열매가 풍성하여 언제나 복된 웃음으로 가득 찬 평화로운 땅이었다

이 평화로운 땅에 어느날 두 신이 찾아 왔는데

두 신은 아름다운 새벌을 둘러보고 "야 우리가 살 땅은 이곳이구나"

하고 외쳤는데 처녀가 놀래는 소리에 두 신은 어느날 굳어져 산이 되었는데

소원대로 이곳 아름답고 기름진 새별에서 영원히 살게된 것이다

남신은 기암괴석이 울통불통하고 강하게 생긴 남산(南山)이 되었고

여신은 남산(南山) 서쪽에 솟아있는 부드럽고 포근한 망산(望山)이 되었다고 전해온다

 

 

 

 

자연이 주는 선물이 이렇게 감동적인 것은 오르는 자만이 느낄 수 있으리라

단석산을 비롯한 주변에 산들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고

옛 서라벌의 기름진 땅이 한 눈에 들어오고 수많은 옛 이야기를 품어서인지 정겹게 느껴진다

 

 

 

 

천년고도(古都) 경주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남산

모든 돌들은 부처님의 형상으로 보이며

산을 오르면 즐겁고 소원 한가지쯤은 들어 줄 듯한 그런 산이다

 

 

 

 

바위틈에서 뿌리를 내리고 제법 많은 세월을 보낸 듯하다

힘겹게 생명을 이어가는 소나무의 삶

아름다운 자태가 보면 볼 수록 오묘한 신라의 역사를 보는 듯하다

 

 

 

 

고위봉(高位峯, 494m)은 흔히 고위산이라 하여 독립된 산으로 부르고 있지만

금오봉(金鰲峯)과 함께 남산에 속하는 대표적인 봉우리이며

다시 말하면 금오봉과 고위봉이 중심이 되어 이룬 산줄기 전체를 남산이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고위봉을 수리봉 또는 천룡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리봉이라는 이름은 가장 높고 빼어나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천룡산은 정상 서쪽 사면에 위치한 천룡사라는 절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고위봉 정상 부근에 자리한 천용사(天 龍寺)는 신라 때 천녀(天女)와 용녀(龍女)라는

두 딸을 가진 부모가 딸들을 위해 창건했다고 전한다

신라 때 천룡사가 없어지면 나라가 망한다고 까지 존숭되었으며 석가 만일도량이 열릴 정도로 중요한 사찰이었다

 

호미지맥은 낙동정맥상의 백운산 부근에서 북동쪽으로 천마산을 거쳐 치술령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져

한줄기는 마석산을 지나 고위산에 이르고 다시 금오산을 거쳐 경주 남천(南川)에서

그 맥을 떨구고 있으며 또 한 줄기는 치술령에서 토함산을 거쳐 삼봉산, 조항산, 금오산을 지나

포항 호미곶 봉화산에서 그 맥을 동해 바다에 떨구고 사라지는 줄기를 이름하여 호미지맥(虎尾支脈)이라 한다

 

 

 

 

백운재는 우측에 백운암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보여진다

남산은 등산로가 70가닥에 이른다고 하는데

거미처럼 이어져 있는 등산로의 정점은 언제나 고위봉과 금오봉이다

 

 

 

 

고위봉에서 금오봉 가는 길은 힘든 오르막이 없어

편안한 마음으로 걸을만한 길이다

하지만 찌는 듯한 무더위의 폭염으로 숲속이지만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번 산행에 가보고 싶었던 칠불암 갈림길에 도착하였다

칠불암은 우측으로 400m정도 떨어져 있으며

암벽등반 수준의 바위길을 중턱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와야 하는 힘든 코스다

 

 

 

 

내려서는 바위전망대에서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산너머 보문단지가 있는 곳이며

멀리 정면은 동방역 부근이고, 우측으로 토함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칠불암으로 내려가는 길에 신선암 안내판이 걸려있다

위험지역에는 출입을 금지하여 놓았으며

새로운 길을 찾아가면 신선암에서 칠불암이 아늑하게 보인다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보물 제199호로 삼면보관을 쓰고 있는 보상으로

오른손에 꽃가지를 들고 왼손을 가슴까지 들어 올린 채

구름위에 앉아 중생 제도를 위해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모습이다

 

 

 

 

마당에 있는 바위에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하여 사방불이 조각되어 있어 칠불암이라 부른다

원효가 머문 도량과 현존하는 유물로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 불상들은 경주 남산 봉화골의 정상 가까이 위치한 마애삼존불과 사방불로서 "칠불암마애석불"이라 한다

 

 

 

 

칠불암은 봉화대 능선 아래로 요사채와 삼성각이 아늑하다

지금의 암자는 1930년에 세워졌는데

이 칠불은 조각이 빼어날 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방불의 연구에 귀중한 유물이다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칠불암 마애불상군(국보 제312호)은 일곱 부처다

삼존불은 중앙에 여래좌상을 두고 좌우에 협시보살입상을 배치하였으며

삼존불 가운데 본존불은 부처님의 자비를 한껏 드러내며 화려한 연꽃 위에 앉아 있고

미소를 지은 얼굴은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으며 사방불도 연꽃이 화사하게 핀 자리에 앉아 있다

 

 

 

 

현재도 이 곳 주변에서 당시의 구조물을 짐작게 하는 기와조각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이 칠불은 통일신라시대 8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 석공들이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 탄생했을 것 같은 마애석불을 뒤로하고 금오봉를 향해 올라간다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로 돌아와 금오봉을 향하면서 토함산을 바라본다

천년고도(千年古都) 경주는 토암산을 품고 있으며

토함산(吐含山)은 동해를 막는 성벽 구실을 하고 있어 서라벌을 지키는 요새로서 역활을 하였다

 

 

 

 

칠불암갈림길에서 이영재로 향하는 능선길에서 대문바위를 만난다

대문이라는 느낌은 없고 커다란 바위로 형성되어 있으며

배꼽 시계가 명령하는대로 대문바위에서 점심상을 펼치고 한참을 머물다 간다

 

 

 

 

남산의 주봉인 금오봉을 바라보니 애국가의 가사가 생각난다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애국가의 남산이 경주의 남산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국립공원이라 상세한 이정표 따라서 이영재에 도착한다

마치 친구의 이름처럼 느껴지는 이영재!

오산골 동북쪽에서 경주시 남산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름이다

 

 

 

 

소나무 분재를 보는 듯한 착각속에 산행이 진행된다

남산은 많은 석탑과 불상들이 즐비하고

또한 옮겨 놓으면 천연 분재가 되는 소나무들도 남산에는 즐비하다

 

 

 

 

이영재를 지나 자그마한 능선을 넘으면 포석정에서 시작되어

남산동으로 연결되는 순환도로와 만나게 된다

신라 때부터 서라벌에서 언양으로 걸었던 옛 고갯길을 따라 삼화령으로 올라간다

 

 

 

 

정상부 능선을 따라 큰 도로가 있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않되는데

옛 시절에도 관광 목적으로 만들었던 도로로 보여지며

천년전에 우리 조상들이 걸었던 옛 길이 금오봉 정상 우측으로 포석정까지 연결되어 있다

 

 

 

 

삼화령(三花嶺)은 "삼화수리"라고도 하는데 수리(頂)는 높은 곳을 의미하며

남산에는 세곳에 수리가 있는데 금오봉과 고위봉

그리고 두 봉우리의 삼각형 위치에 해당하는 이 봉우리를 합하여 삼화령(三花嶺)이라 부른다

 

 

 

 

삼화령에서 바라본 고위봉과 지나온 이무기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산은 유적뿐 만 아니라 자연 경관도 뛰어나며

기암괴석들이 만물상을 이루고 변화 무쌍한 계곡이 많아 수많은 등산로가 있다

 

 

 

 

선덕여왕 때 생의(生義)스님의 꿈에 노승이 나타나 "나를 따라 오라"하며 골짜기로 데리고 가서

풀을 묶어 놓으며 "내가 이곳에 묻혀 있으니 스님은 나를 파내어

시원한 곳에 있게 해 주시요"라고 했다,생의스님은 땅을 파 미륵불을 발견하고

삼화령 꼭대기에 모셔놓고 그 자리에 절을 지어 공양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미륵불과 비석이 사라지고 없으며 연화대좌만이 남아 있어 역사의 궁금증을 더해 주고 있다

 

 

 

 

용장사지 갈림길에서  찌는듯한 무더위에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좌측으로 용장사지는 550m떨어져 있는데

그렇다고 천년 역사의 유적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힘들지만 다녀오기로 한다

 

 

 

 

용장계곡은 금오봉과 고위봉 사이의 골짜기로 남산에서 가장 큰 계곡이었고

용장사는 이 계곡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다

용장사터 동쪽 높은 바위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삼층석탑이 우뚝 솟아 장관을 이룬다

 

 

 

 

아득한 하늘나라 부처님 세계에서 가장 높이 우뚝 솟은 삼층석탑

이 탑은 9세기경 신라 말기의 탑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확 트인 공간과 어우러진 탑의 모습이 조상들의 신앙과 정열에 감탄하고 머리가 숙여진다

 

 

 

 

용장사(茸長寺)는 통일신라시대 법상종을 개창한 대현(大賢)스님이 거주하신 곳이며

조선 세조 때의 대학자이자 승려인 설잠(雪岑)스님(매월당 김시습)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우측으로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은 지금도 따뜻한 미소로 사바세계를 굽어보고 있다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은 자연석 기단 위에 3층탑 같은 특이한 원형 대좌가 인상적이다

대현스님이 염불을 하면서 돌면 부처님도 따라 머리를 돌렸다고 하며

주변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그 자태가 아름다웠지만 불상의 머리 부분이 없어져 참으로 안타까웠다

 

 

 

 

용장사지에서 콩죽같은 땀방울을 흘리며 금오봉 갈림길에 도착한다

폭염으로 36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이며

이곳에서 천년 고도(古都)의 옛길인 임도를 버리고 좌측 숲속으로 들어간다

 

 

 

 

금오봉(金鰲峯, 484)과 고위봉이 중심이 되어 이룬 산줄기 전체를 남산이라 한다

남산(南山)은 옛 서라벌의 남쪽에 있다고 하여 남산이라 하고

금오봉은 한 마리의 거북이가 서라벌 깊숙히 들어와 엎드린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산은 온갖 전설이 남아 있고 신라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역사의 산이며

선조들의 숨결이 가득한 민족문화의 산실이다

골은 깊고 능선은 변화무쌍한 기암괴석이 만물상을 이루었으니 작으면서도 큰 산이다

 

 

 

 

남산은 아득한 옛날부터 바위속에는 하늘나라의 신들과 땅위의 선신(善神)들이

머물면서 이 땅의 백성들을 지켜준다고 믿었으며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는 바위속의 신들이 부처와 보살로 바뀌어 불교의 성산(聖山)으로 신앙되어 왔다

 

 

 

 

경주 남산(南山)은 우리 겨레의 숨결이 살아있는 소중한 산이다

겨래의 꿈이 서린 신화가 전해져올 뿐만 아니라

그 안에 겨례의 정신과 종교가 숨쉬고 조상의 예술과 문화가 깃들어 있는 역사의 산이기도 하다

 

 

 

 

남산 삼릉계곡에서 가장 크고 조각이 우수한 마애석가여래좌상이라고 하는데

절벽에서 낙석이 떨어질 위험이 있어 통제하고 있었는데

유명한 부처상의 얼굴을 가까이서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많았다

이 불상은 금오봉에서 북서쪽으로 작은 봉우리를 형성한 바둑바위의 남쪽에 위치해있다

 

 

 

 

상사바위(想思岩)은 상사병에 걸린 사람은 이 바위에서 빌면 병이 낫는다고 한다

또한 신라 때 자손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빌었던 곳으로

지금도 산아당(産兒堂)이 있고 아랫쪽에는 아예 제당을 만들어 놓고 무속행위를 하는 사람도 있다

 

 

 

 

금송정(琴松亭)은 이곳 금오산(金鰲山)에 있던 정자였는데 경덕왕 때

음악가 옥보고(玉寶高)가 거문고을 타며 즐기던 곳이다

옥보고는 금송정에서 바위들과 솔잎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흰구름을 벗 삼아 거문고를 뜯으며 세상 시름을 잊었다고 한다

 

 

 

 

바둑바위에서 천년 고도 경주의 멋진 조망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역사를 지켜온 역사박물관이며

그 중에서도 남산은 많은 문화재를 품고 있어 세계유산에 등제되어 소중하게 지켜야 할 산이다

 

 

 

 

바둑바위에서 옛 서라벌의 조망을 만끽하고 하산을 하다보면

상선암으로 들어가는 이정표를 만난다

유서 깊은 산사에 들리면 처마밑의 풍경 소리에  온갖 번뇌가 사라진다

 

 

 

 

상선암은 불자가 아니더라도 금오봉을 오르면 꼭 거쳐가야 하는 암자로

암자는 해방후  박배월 스님이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산승을 거쳐

그의 아들 박태진이 지난해까지 머물다  지금은 곽해일 스님이 주석하고 있다고 한다

 

 

 

 

삼릉계곡 석불좌상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맺고 연꽃으로 된 대좌위에 결가부좌한 석불좌상이다

이 불상은 머리와 몸채를 따로 제작하여 결합하여 복원하였으며, 이 불상의 안면부는

파손이 심하여서 얼굴과 코, 입 등 대부분을 복원하였으며 당당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자세를 하고 있다

 

 

 

 

삼릉계곡 석각육존불(線刻六尊佛)은 바위에 선으로 새겨놓은 6개의 불상인데

좌측이 아미타삼존불이고, 우측이 석가삼존불이라고 한다

좌우의 바위에 정교하게 선으로 새긴것이 특징인데 선각마애불 중에서 으뜸가는 작품이라고 한다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은 동국대 발굴조사단에 의해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용장사 삼륜대좌불과 함께 복식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옷깃과 주름이 섬세하여 두상이 멀쩡했더라면 예술성이 뛰어났을 것이지만

그래도 이 불상은 손과 머리가 파손되었으나 통일신라시대의 우수한 조각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은 돌기둥 모양의 암벽에 양각(돋을새김)되어 있는데

풍만한 얼굴에 머리 위에는 삼면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그 앞에 작은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으며

입술에는 붉은 색이 마치 립스틱을 바른 듯 남아 있는데, 이곳에만  철분 성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삼릉계곡은 계곡이 깊고 여름에는 찬 기운이 돌아 냉골이라고 부른다

이 계곡에는 남산에서 가장 많은 유적이 있어

금오봉산행이 정해진 시간이라면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선 부지런히 뛰어다녀야 한다

 

 

 

 

남산 바위에는 수많은 불상(佛像)과 탑(塔)들이 즐비(櫛比)하여

그야말로 "노천박물관(露天搏物館)" 이다

게다가 나무중에 귀공자인 소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 천하에 으뜸산이 아닌가

 

 

 

 

삼릉계곡 어귀에 위치한 삼릉(사적 제219호)은 신라 박씨 왕들의 무덤이다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경명왕으로 추정되며

그림같은 명품 소나무 아래 곡선이 어우러진 능의 조화가 참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역사를 지켜온 전지역이 불교유적지 역사박물관이다

그중에도 남산은 문화재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산 자체가 문화재이며 그래서 2000년 12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그 가치를 보호받고 있다

 

남산이 역사적 의의를 갖는 이유는 또 있다, 신라의 시작과 끝이 모두 남산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서남산의 나정(羅井)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 신화가 깃든 곳이며

남쪽으로 1Km거리에 있는 포석정(鮑石亭)은 신라 말기에 경애왕이 후백제의 견훤에게 죽음을 당한 곳이다

 

 

 

 

신라인들은 바위에 부처를 새긴 것이 아니라 바위속에 있는 부처를 찾아낸 것이다

남산은 자연과 예술이 조화되어 산 전체가 보물이며

남산을 오르지 않고 신라를 말할 수 없음을 한번 더 실감한 하루였으며

옛 선조들의 숨결이 묻어있는 서라벌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서 멋진 산행이 되었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6 : 10 ~ 12 : 30  (05시간 30분)      ◎ 날씨 : 흐림후, 맑음

 

 

 

 

이제는 어떤곳에서 무슨 일이든지. 그저 담담하게 받아 들이는 나이가 되었다

저기 유연하고 부드럽게 뻗어가는 산줄기가 우리를 품어주는 것처럼~

모든 것들을 넉넉하게 품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산은 산, 물은 물 ~ 노래 : 김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