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정맥 재4구간(월성봉 - 함박봉 - 양정고개)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2년 11월 08일 목요일
◎ 산행위치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촌면, 연산면 / 계룡시 엄사면, 두마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수락재(무수재) - 월성봉(月星峰, 651m) - 바람산(555.4m) - 물한이재 - 곰치재 - 덕목재
깃대봉(395m) - 함박봉(404m) - 황령재 - 대목재 - 천호산(311m) - 천마산(287m) - 양정고개
◎ 산행거리 : 수락재(무수재) ~ 1.7Km ~ 월성봉 ~ 1.5Km ~ 바랑산 ~ 2.0Km ~ 물한이재 ~ 4.0Km
덕목재~ 3.3Km ~함박봉 ~ 4.6Km ~천호산 ~ 4.0Km ~ 천마산 ~ 2.5Km ~ 양정고개
도보거리 = 약 23.6Km 실제도보거리 = 약 24.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5 : 40 ~ 16 : 15 (10시간 35분) ◎ 날씨 : 흐림(안개)
◐ 호서지방의 뼈대를 돌아가는 산줄기의 금남정맥(錦南正脈)이란? ◑
금남정맥이란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가지를 뻗은 금남,호남정맥이 전북 완주군 소양면과 진안군 부귀면의 경계인 모래재 북쪽
조약봉 분기점에서 다시 호남정맥과 분기하여 금남정맥은 북으로 금강과 나란히 치달으면서 연석산, 운장산, 장군봉
대둔산, 계룡산, 망월산, 등을 거쳐 부소산을 지나 낙화암으로 유명한 백마강 조룡대까지 총 128Km에 이르는 산줄기를 말한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수락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05시 40분이다
야간산행이라 그전에 대둔산에서 수락계곡으로 내려온 사진으로 대신한다
일교차가 심한 요즈음~ 오늘도 승용차로 한숨도 못자고
새벽같이 달려와 향긋한 커피한잔으로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산행을 시작한다
수락주차장을 출발해 관리사무소 앞 승전교(勝戰橋)에서 우측으로 올라간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승전탑과 대둔산을 오르는 들머리가 있으며~
수락폭포는 물이 깨끗하여 대둔산 8경중 하나로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은 곳이다
수락폭포는 삼복더위에도 물이 차가워서 5분이상 앉아 있지 못한다
이곳에서 백제시대 청장년들이 호연지기를 길렀던 곳이며~
또한 심신수련과 애국충절의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수락재(무수재)에 접속 하였지만 아지도 하늘이 열리지 않고 캄캄하다
수락재는 지도상에 무수재로 되어 있는데, 수락계곡이 유명하여 수락재로 부르고 있다
무수재는 무학대사가 이곳이 산수가 좋다고 하면서 춤(舞)을 추었다고 하여
무수재라 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동쪽의 산자락에 무수티라는 마을이 있는데
선인무수형의 명당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고개 이름도 여기서 따온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오늘은 어두움속에서도 월성봉을 오르는 계단길에 함께한 사람이 있다
금남정맥 단독종주라는 플랑카드를 베낭에 메달고 있었는데~
71세의 고령이면서도 백두대간과 9정맥 2회차 도전하고 있는 부산 산사람이다
전망대에 올라섰지만 마을에서 닭우는 소리만 들린뿐 캄캄하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면서 대둔산이 깨어나고 있으며~
좌측으로는 천길 단애의 절벽으로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하다
운무(雲舞)로 인하여 작은 표지석도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흔들바위는 거북이 등처럼 넓적하게 생겼으며~
궁금증이 많아서 올라가 확인을 하였더니 진짜로 바위가 흔들렸다
<이곳에는 월성고지 전적비가 세워져 있고 좌측으로 양촌리 마을이 있다>
월성고지 전적비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남침으로 일어난 전쟁중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38선이 차단되어 미쳐 월북하지 못한 북한군들이 전북 덕유산을 거쳐 이곳의 대둔산에서
북한군 6개 지대 1.200여명과 좌익계 1.000여명이 지방 곳곳에 은거하면서 지역민의 인명과
재산을 약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양촌 지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전투대를 조직하여
공비와의 대작전을 시작하였고, 양촌면민은 이곳에서 월성고지를 구축하고 공비와의 처절한 전투를 벌인 장소이다
월성봉(月星峰, 651m)은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와 벌곡면 수락리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이다
토성(土城)에 달이 비치면 그 고요함이 숨을 죽이는 듯 했고, 성벽에 비친 달빛의
수려함이 으뜸이라 하여 월성(月城)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또한 달이성봉 또는 달이봉이라 한다
<이곳의 지역민들이 월성봉(月星峰)을 달이성봉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양촌면에서 바라보면 달이 월성산과 바랑산 사이의 중앙에서 떠 올라 달이 떠 오른 바위성과
같은 산이라 하여 "달의 성"이라 하게 되었고 쉽게 부르면 "달이 성"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한가지는 고려시대 때 도적의 다리(達李)가 이곳에 성을 쌓고
응거하면서 노략질이 심해서 관군이 포위한지 해가 넘어서야 토벌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월성봉에는 아직 어느 시대의 것인지 알려지지 않은 산성이 있는데, 그 이름이 달이산성이다
달이산성이 있는 월성봉의 월(月)과 달이(達里)는 같은 음이며, 성(星)은 성(城)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상부근에 성터 흔적이 남아 있는데, 옛날 이곳에 "달이"라는 의적이 은거하였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권력으로 모은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누어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으며
어느 해 조정 군사들이 의적 소탕을 위해 산성을 포위하여 군사들과 싸우기를 3년 지칠대로
지친 의적들은 포위망을 뚫고 북쪽으로 탈출했는데. 달이도 칼을 내팽캐치고 우리도 고향에 가서
농사나 짓고 살자고 뿔뿔이 헤여지면서 달이(達里)가 진을 쳤던 곳이라 하여 달이산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달이산성을 내려서면 정맥길은 좌측으로 꺾어 진행한다
직진길이 뚜렸하여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곳이며~
좌측으로 시그널이 주렁주렁 메달려 있으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능선을 따라 서쪽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높은 바위벼랑의 반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낙락장송이 어우러져 경관이 매우 수려하나 안개로 주변을 볼 수가 없어 사진을 가져왔다
벼랑 아래로 오산리 방향 풍경으로 비구니 스님 수도 도량인 법계사가 있으며~
불교연수원은 여덟을 상징하는 8각형으로 지어졌는데, 108번뇌를 상징하는 108개의 방이 있다고 한다
바랑산 가는 바위전망대에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대충산사 "덕배님"의 비석>
산이 있네 싸리문박 느티나무꼭대기 달을 걸어 놓으니
속세의 시름이야 흐르는 세월의 강을 건너네 산이여!
고독해 하지마라 강 건너 덕배 머무는 이곳은 극락이니
행여! 외로울까 이 마을 한 웅큼 떼어놓고 가네 이 마음~
이렇게 좋은 친구들이 있어 부러우이~ 난 저런 친구가 없는 것 같으니 ~
대충산사 덕배 친구여! 금남정맥의 산꾼들이 당신과 함게 할 것이니~ 편히 잠드소서!
<오산리 갈림길을 지난다> 법계사는 충남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에 있다
법계사는 400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곳으로~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거나 노스님들이 아파트처럼 기거하는 곳이라 한다
바랑산(555.4m)은 논산시 양촌면 채광리에 있는 산으로 어느 고승이 입적할 곳을 찾아
바랑을 둘러메고 헤메다 겨우 찾았다는 산이라 하여 바랑산이라 불렀으며~
바랑이란 스님들이 메고 다이는 배낭을 말하는데, 그 배낭이 변음되어 바랑산이 되었다고 한다
부산(山)사람 본명 진상귀님과 인증샷을 한장 남겼습니다
71세의 고령에도 하루 10시간 넘게 장거리 산행을 강행하고 있을 만큼 산사람이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뒤따라 가면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며~
아무쪼록 목적지까지 안전한 산행 이어가시고 항상 즐겁고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이곳에 전해오는 전설이 있는데>옛날 수도를 한 고승이 열반에 들어갈 자리를 찾아 바랑산을 찾아 왔다고 한다
바랑을 바랑산에 걸고 장삼은 앞에 있는 장삼봉에 건 뒤에 장삼봉 아래 목탁골에서 목탁을 치면서 상여를
받쳐둔 채 장삼봉 위의 상여봉에 머리를 받치고 서쪽의 채광리 방면으로 길게 다리를 뻗고 입적을 하였다
그래서 월성봉과 바랑산 사이에 절이 많아 절골이라 하였고, 이 산의 전설과 걸맞는 불교연수원이 들어 섰다고 한다
영주사갈림길을 만나면 영주사 방향으로 정맥길을 이어간다
상당히 위험한 급경사 가파른 내림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겨울철 눈길을 고려한 밧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낙엽속에 돌들이 박혀있어 조심해서 내려서야 하는 구간이다
작은 물한이재를 지나면 오름길에서 암릉 구간을 만난다
ROPE가 설치되어 있어 위험한 곳은 아니었으며~
오늘 유일하게 암벽을 오르면 지도상의 426m봉에 올라선다
426m봉은 시그널만 주렁주렁 메달려 있을 뿐이다
이렇다할 아무런 특징이 별로 없는 봉우리로~
고스락에서 정맥길은 왼쪽으로 꺾어져 물한이재로 내려간다
물한이재는 충남 논산시 양촌면과 벌곡면을 잇는 고개로 물한터널이 있다
주변의 환경을 엄청나게 훼손하면서 만들어진 통로는 사람도 못가게
만들어져 국민의 녹봉(綠奉)으로 살아가는 공무원들 참으로 한심스럽기만 하다
물한이재 고갯마루를 건너와서 우측 능선으로 오른다
물한이재는 고개가 아주 급경사여서 한겨울에도
이곳에 오르는 사람은 땀을 흘린다 하여 물한이재라 부른다
물한산(勿汗山, 363.9m)은 삼각점이 박혀 있는 봉우리이다
이곳에는 서래야 박건석님의 코팅지가 걸려 있으며~
고개 이름이 물한이재라서 물한산이라 명명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름없는 무명봉을 수도 없이 넘고 또 넘어간다
이렇게 조망이 좋은 암릉길도 지나지만~
안개로 인해 조망을 볼 수가 없어 아쉬운 산행길이다
좌측으로 백제와 신라가 국운을 걸고 전투를 벌인 황산벌이다
옛날 삼국시대부터 이곳은 국경지대 였다고 하는데~
그 당시 쌓은 성곽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 이곳이 성터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임도와 연결되어 있는 곰티재에서 좌측으로 올라선다
곰치재는 재(峙)가 아니라 임도로 보여지는데~
산림을 보호하는 방화용으로 만든 임도와 연결되어 있는 재이다
곰티재에서 올라서면 높은 봉우리 하나를 좌측으로 우회한다
낙엽으로 인하여 사면길이 미끄럽고 위험 하였으며~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봉우리에 올라섰지만 무명봉이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이곳이 인삼밭이었다
그리고 좌측으로는 숲이 우거져 있었는데~
민둥산이 되어 버렸고 인삼밭은 묘목이 심어져 있었다
인삼밭을 넘어서면 갈림길에서 우측 방향이다
이곳에서 직진길이 실제로 정맥길이지만~
호남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우측 지하통로를 우회하여야 한다
우측으로 내려서면 저 멀리 지하통로가 보인다
좌측 방향에 68번지방도가 지나가고~
우측으로는 호남고속도로가 나란히 지나가는 곳이다
호남고속도로 아래의 지하통로를 통과한다
지하통로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등산화를 적시시 않을 만큼 돌들이 징검다리 역활을 한다
덕목재는 충남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와 벌곡면 덕목리의 경계이다
우측으로 덕목리 마을이 있어서 덕목고개라 부르고 있으며~
좌측에 절개지가 정맥길인데 공사중이라서 임도 따라 쭈욱 올라간다
좌측 능선이 정맥길이지만 공사로 인해 임도 따라 올라간다
임도를 따라 오면 컨테이너에서 우측으로 올라간다
공사중으로 인하여 원 정맥길이 사라졌으며~
콘테이너에서 우측으로 올라가면 정맥길에 접속하는 지점이다
깃대봉 오르기 직전에 성터의 흔적이 있는 돌무더기를 만난다
이곳은 신라와 백제가 치열하게 전쟁을 벌었던 곳이며~
또한 후백제와 고려 왕건과의 전쟁터이기도 했던 곳이라고 한다
깃대봉(394.4m)은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덕목리와 연산군 신양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국사봉만큼이나 자주 만나는 깃대봉을 대부분 일제시대에 붙여진 지명이며~
자본 수탈을 하기 위해 측량을 하면서 자기들이 임의로 깃대를 꽂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까지는 논산시 벌곡면과 양촌면의 경계를 따라서 걸어왔다
깃대봉을 지나면서 벌곡면과 연산면의 경계를 이루며~
이곳 이정표에서 함박봉은 좌측으로 틀어지는데 이정목을 잘 보아야 한다
부산(山)사람 님과는 깃대봉에서 헤어지고 홀로 간다
지도상에 표기되어 있는 임도를 가로 지르고~
이곳을 지나면서 고도 편차가 없는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함박봉 오름길에 ROPE가 설치되어 있지만 그렇게 까풀막은 아니다
논산시는 지리학상으로 힘의 원천을 상징하는 땅으로~
삼한시대에는 마한이 정착하였고, 삼국시대에는 백제가 터를 잡았던 곳이다
함박봉(404m)은 정상에서 논산읍과 강경지역까지 시원하게 보이는 산이다
일반 산행객들에게는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멀리서 보면 산 봉우리가 작약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며
정맥길은 직진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우측 송전탑 방향으로 가면 알바하는 곳이다
<함박봉에서 바라본 논산시 양촌면 일대의 황산벌 풍경이다>
젊은 날의 꿈과 추억을 간직한 "한국 남성의 제2의 고향"인 논산시 육군훈련소가 있는 곳이다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 남성들에겐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며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군에 간 아들을 보기 위해 먼길을 찾아 오셨던 부모님들의 기억과
고된 훈련과 열악한 환경속에서 젊음의 열정을 불사르던 청년의 아련한 추억들이 생각나게 한다
<깃대봉에서 함박봉으로 이어지는 정맥길이 일목요연하다>
우측에 논산시 황산벌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후백제의 신검도 고려의 왕건에게 항복한 땅이고~
수많은 병사들이 국가의 존망을 걸고 싸웠던 황산벌을 바라보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어본다
함박봉은 페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는 활공장이다
그래서 등산로 정비가 잘 되어 있었으며~
푸른 창공을 날으고 싶은데, 세월이 흐르면 한번 도전해 보련다
<황령재가 있는 공터에 내려서니 황산벌 전투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충청인의 얼이 살아 있는 항산벌을 이야기할 때 계백장군 유적지를 빼놓을 수 없다
계백장군은 660년 소정방과 김유신의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과 백강으로 쳐들어오자
5.000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맞서 싸웠다, 일당백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4번을 싸워 이겼으나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장렬하게 전사한 계백장군의 충절어린 의로운 죽음을 보고 백제 유민들이 장군의 시신을 거두어 가매장하였고
현재 계백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장사에서 매년 제향을 모시고 있고, 군사박물관에서 장군의 충의정신을 기리고 있다
<황령재 차도에서 우측으로 약 100m정도 내려가야 한다>
황령재는 논산시 벌곡면 한삼천리와 연산군 신암리를 잇는 고개로 20번국도가 지나간다
황령재에는 함박산성 또는 황령산성이라 불리는 토성이 있다고 한다, 백제 때 구축한
산성으로 백제군의 중요한 산성이었으며, 삼국시대 말기에 신라와 백제간의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황령재는 바로 황령산성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백제의 한을 간직한 고개라 한다
황령재에서 우측으로 넘어오면 천호산을 오르는 이정표가 있다
이곳에서 부터는 논산시와 계룡시의 경계를 이루며~
계룡시에서 등산로 정비를 잘 해 두어서 룰루랄라 산행이 이어진다
신행지도의 쉼터봉에서 천호산 방향으로 향한다
논산시에 위치한 황산벌은 삼국시대에 망해가는 백제를 구하기 위해
계백장군이 이끄는 오천만 결사대와 신라 김유신장군이 이끄는
5만군대와 맞선 백제의 마지막 장수 계백장군의 한(恨)이 서린 곳이다
겨울철 눈길을 고려해서 설치한 밧줄구간도 지난다
지도상의 332m봉에는 팔각정 정자가 만들어져 있다
정상에서 뚜렸한 직진 방향은 농공단지 방향이며~
정맥길은 이정표의 오른쪽 개태사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대목재는 한림정에서 눈산시 벌곡면 대목리를 넘나드는 고개이다
옛날 목잴로 사용하던 큰 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여 대목재(大木峙)라 불렀다다고 한다
한림정(翰林亭)은 하송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한림학사를 지낸 남씨가 정자를 짓고 살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도상의 353m봉에는 감마로드님이 돌에다 정상석을 새겨 놓았다
산아래 시정골이라는 골짜기가 대목재 아래에 있는데
옛날에 백제군과 신라군이 황산벌에서 싸우다 죽었던
사람의 시체를 장사지냈다 하여 시장골(屍葬谷) 또는 시장곡이라 부른다
운치가 있는 천호산의 전위봉인 337m봉을 지난다
능선상에 방화선같은 등로가 열려 있었는데~
마치 천호산 둘레길을 걸어가는 듯한 편안한 산행길이다
천호산은 주변은 수많은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산이다
육산길이라서 누구나 편안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으며~
봉우리에서 황산벌일대를 바라보면 우리의 마음을 숭고하게 만든다
천호산(天護山, 311m)은 산이 용마루 같이 길게 남쪽에서 북쪽으로 뻗어 갔으므로
누르기재 또는 황산이라 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신검을 일천에서 크게 이기고 계속 추격하여
이곳에 이르러 항복을 받아 마침내 삼한을 통일하여 고려 왕조를 세우게 되었는데 하느님이 도와주신
산이라 하여 천호산(天護山)으로 고치고 산 밑에 개태사를 지어 고려 왕조의 무궁함을 빌게 하였다고 한다
천호산은 명성과는 달리 정상석도 없고 주위의 조망도 볼 수가 없는 산이다
이정표 상단에 새겨진 천호산이라 새겨진 글씨마져도 희미하여
그냥 지니치면 평범한 봉우리이다, 논산시장님 멋진 정상석 하나 기대해도 될까요
<천호산을 지나면서 부터는 천마산 이정표 방향으로 정맥길을 이어간다>
개태사 일대는 후삼국 통일이 이곳에서 벌어졌던 것처럼 우리 역사에서 나라가 바뀔 때마다
이름이 바뀌는 소용돌이의 중심이 되어왔다, 백제 때는 황등야산(黃等也山)이었으나
신라가 주인이 되자 황산(黃山)이 되었고, 다시 주인이 고려로 바뀌게 되자 연산(蓮山)
또한 천호산으로 바뀌면서 그 과정에서 숱한 목숨이 희생되기도 하여 지명을 고쳐
아픔을 잊고 새로운 절을 창건해 원혼을 달랜 셈이다, 연산은 서기 660년 백제 계백장군이
오천결사대가 장렬히 산화한 곳이다, 어쩌면 개태사는 백제 망국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인지도 모른다
<농소리와 개태사를 연결하는 임도가 나타난다>
개태사는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을 이곳에서 항복받고 후삼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창건한 국찰이다
태조 왕건은 개태사(開泰寺)를 창건하면서 후삼국 통일과 더불어 제불 제천의 가호력으로
만세 태평의 운을 개벽한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천호산, 절의 이름을 개태사(開泰寺)로 지었다고 한다
<지도상의 305m봉은 우회길이 뚜렸하여 삼각점을 노칠 수가 있다>
개태사의 창건주는 고려 태조 왕건이다, 대체로 사찰은 스님들이 창건하지만 개태사의 경우는 이곳에서
신검을 항복받고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이 부처님의 힘으로 나라의 평안을 빌기 위해 세운 절이다
왕건이 개태사를 세우고 승려 500여명의 밥을 지을 가마솥을 하사 하였는데 그 밥솥을 개태사에서 볼수 있다고 한다
가을산이 황금빛으로 변했고 낙엽이 쌓인 등로는 폭신폭신하여 엔돌핀이 솟구칠 정도이다
예나 지금이나 때가 되면 상수리 나무잎은 이 산하를 덮었을 것이고
그 상수리 나무잎이 떨어져 거름이 되어 새로운 나무잎을 키워 내 듯!
먼저 세상을 살다간 선인들의 자취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닐런지~
시야가 확트이면서 아래로 농소리고개가 보이고,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천마봉이 지척이다
농소리는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와 계룡시 두마면 농소리를 잇는 고갯마루이며
농소리(農所里)는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에 산제를 지낸 터가 있다고 전해진다
물과 산세가 좋아 농토가 많고 누운 누에의 형상으로 농사에 알맞다 하여 농소(農所)라 하였다고 한다
농소리고개에 도착하면 막사 좌측으로 두마봉을 오른다
두리봉 직전의 묘지에서 염소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묘 주인이 염소롤 이 세상에 환생을 하였는지~
혹자가 등로를 벗어나자 그 자리에가서 지키고 있더라구요
두리봉(278m)은 넓은 공터 정상 가운데에 벤취가 있다
소나무에 두리봉 표지판이 메달려 있었지만~
귀퉁이에 작은 글씨로 씌여 있어 무심코 지나면 지나치기 쉬웁다
두리봉과 천마산 사이의 안부 쉼터에는 (시청, 양정, 팔각정, 천마산→)
세워진 이정표에 많이 달려 있는 지시표가 웃음을 자아낸다
어디로 그렇게 갈곳이 많은지 부러질정도로 복잡하게 이정표가 메달려 있다
천마산(天馬山, 287m)은 계룡시를 감싸고 있는 진산이다
정상석은 없고 고스락에 금남정맥 설명판이 있으며~
하늘로 비상하는 말의 형상이라 하여 천마산(天馬山)이라 부른다
천마산 좌측 톨탑에서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기를 빌었다
계룡시의 진산인데 정상석이 없어 아쉬움이었으며~
계룡지구 아파트 입주민에게 천마산은 사랑을 듬뿍 받는 산이다
천마산을 지나오면 정수리에 천마정(天馬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소의 머리와 몸통을 닮은 금바위에 멋지게 자리를 잡았으며~
계룡시 금암동이 한눈에 보이고, 계룡산이 보일 정도로 조망이 뛰어나다
금암(金岩)은 여러가지 전설이 깃든 바위가 많아 "금암"이라 하였다
쇠(金) 바위(岩)의 글자로 이루어져 "금바위"라고도 부르며~
이곳에 금융과 관련된 시설이 들어선다 예견 되었는데, 계룡시 금암동이 들어섰다
금바위 우측으로 삼군사령부가 이전해 오면서 새롭게 태어난 계룡시 풍경이다
중앙에 시청이 자리한 계룡시는 이제 새로 만들어진 신도시이며~
이곳에 오기전까지만 해도 계룡시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편안한 등로를 타고 완만한 능선길을 걸어간다
계룡시 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인지~
등산로에 체력단련시설과 쉼터가 아주 잘 되어 있다
오늘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248.3m봉에 올라섰다
특징은 없지만 삼각점이 박혀 있는 봉우리이며~
앞쪽의 산자락 아래로 종착지인 양정고개가 눈앞에 보인다
계룡시 두마면 엄사리에 있는 양정고개에 내려선다
우측으로 등산 안내도가 있고, 좌측으로는 계룡지구 파출소가 자리하고 있다
양정고개는 두 다리에서 전쟁을 한다고 하여 불여진 이름이라고 하고~
또한 정씨(鄭氏) 두 사람이 "王"자리를 놓고 싸운다고 하여 "양정(兩鄭)고개"라 부른다
오늘은 함박산 정상에서 젊은날 육군훈련소의 아련한 추억이 떠올리기도 하였다
황산벌은 많은 목숨이 희생 되기도 하였던 가슴 아픈 역사 현장 이었으며~
논산훈련소의 황산벌을 바라보며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어 행복한 산행이었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5 : 40 ~ 16 : 15 (10시간 35분) ◎ 날씨 : 흐림(안개)
Ever Green - Susan Ja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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