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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금남정맥(완주)

금남정맥 제5구간(양정고개-중장리고개) 종주산행

금남정맥 제5구간(양정고개 - 계룡산 - 중장리고개)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2년         11월         09일         금요일

◎ 산행위치 : 충청남도 계룡시 엄사면, 남선면 / 논산시 상월면 / 공주시 반포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양정고개 - 음정마을들머리 - 향적봉갈림길(45m5) - 멘재 - 큰서무다리재 - 천황석문

                     계룡산(鷄龍山, 845m) - 쌀계봉(830m) - 관음봉(觀音峰, 816m) - 자연성능

                     삼불봉(三佛峰, 777m) - 금잔디고개 - 수정봉(662m) - 만학골재 - 중장리고개(691번지방도)

 

◎ 산행거리 : 양정고개 ~ 1.0Km ~ 음절마을 ~ 3.5Km ~ 멘재 ~ 5.0Km ~ 천황봉 ~ 1.5Km

                     관음봉  ~ 1.5Km ~ 삼불봉 ~ 1.6Km ~ 수정봉 ~ 2.7Km ~ 만학골재 ~ 2.1Km ~ 윗장고개

                      도보거리   =   약 18.9Km           실제도보거리   =   약20.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4 : 40 ~ 13 : 15  (08시간 05분)      ◎ 날씨 : 흐림, 맑음

 

                ◐ 호서지방의 뼈대를 돌아가는 산줄기의 금남정맥(錦南正脈)이란?

금남정맥이란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가지를 뻗은 금남,호남정맥이 전북 완주군 소양면과 진안군 부귀면의 경계인 모래재 북쪽

조약봉 분기점에서 다시 호남정맥과 분기하여 금남정맥은 북으로 금강과 나란히 치달으면서 연석산, 운장산, 장군봉

대둔산, 계룡산, 망월산, 등을 거쳐 부소산을 지나 낙화암으로 유명한 백마강 조룡대까지 총 128Km에 이르는 산줄기를 말한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말자

 

 

 

 

오늘도 계룡산 천황봉이 비탐방구역이라 양정고개에서 새벽 04시 20분에 산행을 시작한다

양정고개에서 음절마을 산행 진입로까지는 4구간 때 답사한 사진으로 대신 하였으며~

양정고개는 정씨 두 사람이 왕 자리를 놓고 싸운다고 하여 "양정(兩鄭)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 양정고개에서~음절마을 들머리까지의 구글지도 *****

 

 

 

 

 

 

양정고개에서 좌측에 횡단보도를 건너 양정슈퍼로 향한다

양정슈퍼에서 우측 도로를 따라 진행하게 되는데~

앞쪽에 보이는 굴다리를 통과하여 우측으로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오르면 바로 앞에 비사빌아파트 104동을 만난다

도로에 올라서면 비사빌아파트 104동앞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하여 104동과 103동을 지난다

 

 

 

 

비사빌아파트 103동 끝머리에서 우측으로 진행한다

어두운밤에 길찾기 퍼즐게임을 하고 있으며~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엄사초등학교 앞까지 진행한다

 

 

 

 

<엄사초등학교을 만나면 좌측 담장을 따라 진행한다>

계룡시는 2003년 9월 19일 전국에서 가장 작은 규모의 시로 개칭했다

1990년 충청남도 직할의 계룡출장소가 설치된 뒤 주민들의 민원이 잇따르면서 2003년 계룡시

도농복합 형태의 시 설치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 되었고 출장소에서 계룡시로 승격했으며~

시 승격 이후 3만 6.000여명(2006년 12월)에 불과 하던 인구가 2009년 현재 4만 2.000여명으로 늘었다

 

 

 

 

<엄사초등학교 좌측담장을 따라 진행하면 이조돌구이 앞에서 우측 방향으로 진행한다>

계룡시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었던 이 지역이 대한민국 최고의 군사 요충지로 변한건 1993년 무렵이다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완료된 계룡대(육, 해 공군본부) 이전 사업으로 군대시설이 들어서고~

전국에서 군인 가족들이 유입했다, 1989년 육군과 공군본부가 계룡대로 이전했고 그 후 해군본부가 이전을 했다

 

 

 

 

<이조돌구이 앞에서 우측으로 틀어 진행하면 한진택배가 나온다>

계룡시 행정구역은 엄사면, 신도안면, 두마면 3개면과 금암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농복합도시라는 특성 때문에 자연 경관이 수려하고 거주 환경이 뛰어나며~

국방증추도시로써 교육, 국방, 복지의 살기 좋은 계룡이라는 도시를 지향하고 있는 곳이다

 

 

 

 

<마시기통차와 한진택배사이 좌측으로 틀어지면 들머리가 보인다>

신도안은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이곳을 신 도읍지로 꼽은 천하명당이라 한다

이성계의 뜻이 펼쳐지지 못한 이유느 이곳이 정씨의 도읍지라는 도참설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 때문에 새로이 도읍지를 세우려 했던 이성계는 왕궁을 짓는 공사를 그만두고

지금의 서울로 옮겨 갔다고 전해지며, 뱃길과 다른 교통이 불편하여 도읍으로

적당치 않다는 무학대사의 말을 듣고 그 만 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그 때의 왕궁을 세울 공사가 진행됐음을 입증하는 왕궁 초석 105개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고 한다

 

 

 

 

<한식전문점인 국사봉과 춘천닭갈비 식당을 지나면 음절마을 산행들머리가 보인다>

엄사리는 음절부락에 엄사(奄寺)라는 유명한 절이 있어서 엄사리라 하였으며~

계룡시는 동쪽으로 대전 유성구, 서쪽은 논산 상월면과 연산면, 남쪽은 벌곡면

북쪽은 공주와 접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향적산, 국사봉이 북쪽으로 신라 오악의 하나인 계룡산과 맛닿아 있다

 

 

 

 

<이곳이 음절마을 산행 들머리이다>

좌측 건물이 우유대리점으로 새벽 04시 40분에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은 국공파들이 출근하기전에 천단을 오를 예정이며~

금잔디고개서는 점심시간을 맞추어서 국공파들을 피해갈 계획이다

 

 

 

 

음정마을을 올라서면 등산로는 부드러운 산길이 이어진다

어둠속에서 두번째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를 지나면~

이정표의 향적봉이나 국사봉 방향으로 계속해서 진행해야 한다

 

 

 

 

칡흙같은 어두움속에서 나홀로 무상무념으로 걸어가는데

일반인께서 이 새벽에 홀로 산책 하러 왔다고 한다~

렌턴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서 얼마나 놀랬는지 말로 표현이 안된다

 

 

 

 

고도를 높여 체육시설이 있는 305m봉의 헬기장을 지난다

어두움속에서도 시그널이 길라잡이를 해 주었으며~

향적산 가는 길은 시민의 휴식처로 곳곳에 쉼터가 만들어져 있다

 

 

 

 

513m능선 이정표가 있는 곳이 향적산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향적산(香積山)과는 헤어지고~

금남점맥은 513m능선 방향인 우측으로 된비알을 오른다

 

 

 

 

<능선에 오르면 지도상 455m봉인 전망대가 나타난다>

어두움속에서 시원한 조망은 볼 수는 없었지만 계룡시의 불빛이 아름답고 정겨웠다

전망대를 넘어서자 출입금지구역이라는 안내판이 산객을 놀라게 하였는데~

이곳에서 계룡산 천단까지는 2017년까지 출입을 금지하였지만 눈감고 목책을 넘어간다

 

 

 

 

향적산 분기봉에서 능선길은 고도편차가 거의 없어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이곳은 단속 구간이라 선답자의 시그널을 볼 수가 없었는데~

팔랑이는 산이슬님의 시그널을 보니 무척이나 반갑고 정겹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멘재로 추정되는 안부에 군사보호시설구역 말뚝이 박혀 있었다

멘재는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과 계룡시 남선면의 경계에 있는 고갯마루이다

향적산(香積山, 575m)에 메달린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멘재 또는 현령이라고도 부른다

 

 

 

 

암릉구간도 잠시 지나고 좌측으로 조망이 좋을 듯한데 아직도 어둠이 캄캄하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야간산행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날도 있다

도시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가도 살피고 아름다운 절경을 만날땐

산경에 취해 보기도 해야 하는데, 이렇게 칠흙같은 어두운 새벽에

도주하듯이 산행을 한다는 것은 적어도 대간과 정맥 산행에 있어서 원치 않은 일이다

 

 

 

 

<지도상의 507m봉은 계룡대갈림길 주의 구간이다>

이곳에서 "예인밀양손씨지묘" 비석이 있는 방향이 정맥길이고, 우측은 계룡대 가는 길이다

우측 방향에 있는 계룡대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지로 삼으려 하였던 땅이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별을 볼수 있는 곳으로 3군(육,해,공)본부가 있고

각 군 총장을 포함하여 수백여 개의 별(장성)을 볼 수 있어 사람들은 계룡시를 "별천지"라고 부른다

 

 

 

 

지도상 463m봉의 헬기장에서 아침을 깨우는 성스러운 기운이 감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신도안을 도읍으로 삼으래 했을 때

향적산 정상 국사봉에서 지형을 살폈다고 한다(신도안은 3군 통합기지 계룡대를 말한다)

 

 

 

 

<계속해서 군사시설물이 있는 이런 참호를 여러번 지난다>

신도(新都)는 산천이 풍부하고 조야(朝野)가 넓고 백성을 다스림에 모두 순하여

8백년 도읍의 땅이다 라고 예언했다, 어떠하든 지금의 신도안에는

비록 수도는 아니지만 육군, 해군, 공군본부가 자리잡은 계룡대가 들어서 있는 곳이다

 

 

 

 

<참호를 내려서면 성황당 돌무더기 흔적이 있는 안부를 만난다>

계룡산은 한 때 토속신앙의 터전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계속되는 국난으로 국민들은

피난처를 찾았고, 당시 새 도읍지 신도안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으며

1984년에는 100여개의 종교단체들이 밀집하여 집성촌을 이루기도 했지만

삼군통합본부가 이전함에 따라 모두 인근 지역으로 옮겨가고 지금은 작은 흔적만 남아있다

 

 

 

 

계룡산은 신령스런 산이다, 날이 어두울지라도 닭(鷄)은 반드시 울고만다

구름에 가려진다 할 지라도 용(龍)은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바다는 태평양이 사해(四海)의 중심이란 말을 하고 있듯이

계룡산이 모든 산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말은 풍수가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지도상 434m봉의 바위전망대에서 뒤돌아보니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박무(薄舞) 때문에 가시거리가 나빠서 시원한 조망은 볼 수가 없으며~

계룡시의 진산인 향적봉(香積峰)은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것 같다하여

노적봉 또는 미양봉으로도 부르기도 하며, 이곳 마을 주민들은 망향봉이라고도 부른다

 

 

 

 

좌측으로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마을 풍경이 운무(雲舞)에 아스름히 보인다

상월들판 우측 연천봉 아래로 고왕암(古王庵)이 있다고 하는데

경치가 무척이나 아름답다고한다, 고왕암은 이름에서 풍기 듯이

태조 이성계가 도읍지를 정하려고 계룡산에 왔다 머물렀던 절이라고 전해진다

 

 

 

 

전망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큰서문다리재에 내려선다

용화사(龍華寺)에서 두마면 암용추로 넘어가는 고개로~

이곳 주민들은 용추현 고개라고도 부르며 또한 용충이고개라고도 부른다

 

 

 

신원사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틀어지면서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천왕석문 오름길에서 바위 슬랩구간도 오르지만 시그널 보기가 힘들다

좌측에 있는 신원사(新元寺)는 동학사에 비해 한적한 절이지만

조선태조 이성계가 산신에게 제을 올리는 계룡단으로 건립했고

1879년에 명성황후(明成皇后) 민비가 재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앞쪽에 보이는 천황석문은 계룡산 천황봉을 오르기 위한 관문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암릉을 우회하여 천단(天壇)를 바로갈 수 있으나

바위슬랩 구간으로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혹자는 직진으로 진행하여

참호가 있는 지점의 쌀개봉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천단을 오르는 길을 선택 하였다

 

 

 

 

천황석문을 직진으로 넘어서면 우측 암릉을 바짝 붙어서 진행한다

선답자의 누군가가 녹색끈으로 표시를 하여 놓았으며~

등로는 희미하지만 사람이 지나가는 흔적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우측 산자락에 붙어서 돌아오면 참호를 만나게 된다

참호에서 좌측으로 쌀개봉으로 가는 길이고~

천단은 우측으로 갔다가 되돌아와 쌀개봉으로 가야한다

 

 

 

 

참호에서 우측으로 돌아서면 중계소 우측으로 천단(天壇)이 있다

민족의 영산 계룡산(鷄龍山) 천황봉은 국립공원이지만~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평소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된 곳이다

 

 

 

 

<앞 사진에서 조금더 돌아가면 "천단(天壇)"이 보인다>

국공파에게 걸리면 딱지 떼어주자는 심산으로 여류롭게 올라갔다

하지만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으며~

적장이 되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오르는데 뒤통수가 부끄럽기도 하였다

 

 

 

 

까짓껏 걸리면 어찌 하겠어~^^ 여유롭게 사진도 찍으면서 올라 갔지요

군인들이 알면서도 묵인해주는 것인지 알 수는 없는 일이었으며~

군부대 막사 철계단을 오르면 좌측으로 천단을 오르는 통로 구멍이 있었다

 

 

 

 

<천단(天壇)을 오르기전에 우측으로 할머니 제단과 천단의 유래가 적혀있다>

계룡산은 충청인과 애환을 함께 한 첫 기록이 이미 백제 때 명산이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오악중 서악이라 불리었다

고려 이후 나라에서 영산으로 받들었던 이 산은 조선 말기에는 신원사의 경내에 중악단(中嶽壇)이 세워 졌으며

계룡산 제일봉인 이곳 천황봉(天皇峯)에는 통일신라시대 이래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나라에서 제단을 설치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하고자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장소로 보존되어 왔다, 민족의 운명이 암담했던 시절에도

이 산은 우리에게 위안을 안겨주는 명소로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는데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이 천왕봉에 군사시설 및 통신시설이 설치되면서 본래의 모습이 크게 훼손되어 안타까운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근래에 계룡 영산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천황봉을 복원하자는 의지를 추진함으로써

옛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21세기를 맞아 계룡산의 정기와 함께 충청인의 기개를 더욱 높히기 위해

천황봉의 옛 자리에 천단을 세우고 그 유래를 적어 비를 세웠다고 적혀있다, <2003년 5월 12일 충청남도지사 심대평>

 

 

 

 

계룡산(鷄龍山, 845m)은 대전시, 공주시, 논산시, 계룡시에 걸쳐 있는 산이다

무학대사가 신도를 정하기 위해 태조 이성계와 함께 신도의 좌우 산세를 둘러보고 산의 한쪽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요, 다른 한쪽은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이니 두 주체인

계(鷄)와 용(龍)자을 따서 계룡(鷄龍)이라 하여 계룡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갑사는 금계포란형에 앉아 있고, 동학사는 비룡승천하는 암릉을 병풍으로 둘러쳐진 절이라고 한다

 

 

 

 

계룡산은 파도가 일렁이듯 굽이치는 봉우리가 수려하고 사계절 자연이 살아 있다

하지만 운무(雲舞)로 인해서 시원한 조망을 볼 수가 없어 아쉬웁지만

아침을 깨우는 성스러운 천단에 올라 이렇게 인증샷을 남긴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다

 

 

 

 

계룡산은 오랜 역사속에 숭배 받아온 산으로 만주 골륜산과 같은 영산(靈算)으로 여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품어왔던 산이다, 계룡산의 일대는 풍수리지적으로 신비스런

곳이라고 믿고 있기에 웬만한 도인들은 계룡산을 다녀와야 명함을 내밀었다고 한다

혹자도 할머니 제단에 소주한잔 올려놓고 소원을 빌었지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기를 말이예요

 

 

 

 

계룡산을 갈망했던 이유는 성스러운 산이라 하여 하늘에 간절한 기도를 올려보고 싶었을까요?

천단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은 평온 하였으며, 내림길은 붉은 화살표 방향이며

계룡산 천황봉이 출입금지된 것은 1972년 국방부가 지하벙커를 만들면서 부터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건축물과 장비 보호를 위해 설치했던 방호벽까지 모두 다 해체 하였으며

2003년 충청남도가 도민들과 함께 지하벙커도 메웠다 정상에 천단 정상석을 세웠으며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어 둘 명분은 이젠 이미 사라졌다, 천황봉 출입을 통제하는 이유는

계룡대가 보인다는 것인데, 북한산을 개방하는 용단을 내려듯이 천황봉도 하루빨리 개방되기를 기대한다

 

 

 

 

<참호로 되돌아와 쌀개봉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천단유래비에 계룡산의 정기와 함께 충청인의 기개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렇다면 더욱더 계룡산 천황봉을 하루빨리 개방해야 될 것이 아닌가!

개방하는 것이야 말로 금기 시대를 끝내고 충청인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 아닐런지~

 

 

 

 

<쌀개봉을 오르면서 다시한번 천단을 뒤돌아본다>

이성계가 천도를 위해 신도에 주춧돌을 놓을 때의 전설적인 이야기이다

어느날 꿈에 계룡산 할머니가 나타나 "만약 공사를 계속하면 큰 화가 미쳐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라고 했다

이성계는 천도를 포기하고 한양으로 돌아갔다, "흙 한줌이라도 가져가서는 안된다"는 할미의 뜻에 따라

그 때 일군들이 신발에 묻었던 흙을 털어내게 했는데 그 자리가 흙이 모여 신털봉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쌀개봉 정상에도 시설물이 점령하고 있는데 금강 홍수를 조절하는 시설물이다>

일찍이 우리 민족에게 있어 산은 위로 하늘(天神)과 통하고 아래로 땅(世上)을 거느리는 존재로 되었다

고 한다산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기본적인 강(물)과 들(곡식)을 모태였으며,

사람들은 산중에 절을 짓고 산에 기대어 마을을 형성해 살았는데, 계룡산의 영험함에 사람들이 기대는지 모른다

 

 

 

 

쌀개봉은 산의 형상이 디딜방아 받침대의 쌀개를 닮았다고 하여 쌀개봉이라 한다

날씨가 좋으면 동학사가 보이는데, 안개 때문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으며

옛부터 동학사 쪽은 신록이 좋아서 생동감이 넘치고,

갑사쪽은 아늑하고 소박하여 편안함을 준다고 했다 그래서 봄 동악, 가을 갑사라 불렀다

 

 

 

 

쌀개봉을 내려서면 돌아가세요, 팻말을 만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너덜길을 돌아서면~

우측에 보이는 통천문(通天門)처럼 생긴 구멍을 통과한다

 

 

 

 

팻말에서 돌아오면 만나는 통천문이다

이곳에서 통천문을 통과하면~

바로 좌측 능선을 오르면서 우측으로 꺾어 내려간다

 

 

 

 

능선에서 우측으로 바라보년 닭벼슬 같은 암릉이 나타난다

날씨가 좋으면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하는데~

아쉬운 마음으로 소나무앞에서 좌측 바위 절벽으로 내려선다

 

 

 

 

백두대간 대야산이 3단 직벽으로 되어 있다면 이곳의 직벽은 2단으로 되어 있다

가느다란 ROPE가 두 가덕으로 되어 있지만 조금 부실한 편이었으며~

직벽을 내려서면 앞쪽의 암릉을 타고 가야하나 칼날같이 뾰족하여 산자락으로 우회하였다

 

 

 

 

<앞게 보이는 능선을 넘어서면 관음고개이기에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향한다>

흔히들 계룡산을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의 극치라고 말한다

금남호남정맥의 마이산을 휘돌아 주화산에서 운장산, 대둔산으로 휘어지며 계룡산까지 굽이치니 산태극이다

또한 금남정맥 따라 흐르는 금강은 계룡산의 북쪽으로 휘감아 돌며 서해바다로 태극 형상으로 돌아가니

이를 수태극(水太極)이라 한다, 이렇듯 강물과 산맥이 태극 형상으로 굽이치는 계룡산을 천하명산이라고 한다

 

 

 

 

향적산 갈림길에서 시작되었던 출입금지구역이 이곳의 관음고개에서 벗어난다

잠시 주위를 살펴 보았지만 아직도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었으며~

이곳에서 부터 관음봉, 삼불봉을 거쳐 금잔디고개까지는 정규 등산로를 따라 진행한다

 

 

 

 

관음고개에서 우측 동학사 방향으로 한동안 내려가면 은선폭포(隱仙瀑佈)를 만난다

옛날 신선들이 숨어 놀았던 만큼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이름 지어졌으며~

폭포의 물줄기가 낙차되어 피어나는 운무는 계룡팔경 중 7경으로 지정되어 자랑거리이다

 

 

 

 

관음봉(觀音峰, 816m)은 천왕봉과 쌀개봉으로 이어지는 계룡산의 주봉의 하나이다

관음봉 한운(觀音峰 閑雲)은 계룡산을 공주 십경의 하나이기 때문이며

동학사계곡과 신원사계곡이 앞뒤로 있고 문필봉, 연천봉이 지척에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관음봉에서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면 평화로움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운무(雲舞)가 뒤덮고 있어서 떠가는 구름을 볼 수가 없었으며~

관음봉은 산의 모습이 후더덕하고 자비로운 관세음보살님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관음봉에는 6각 지붕의 정자가 있는데 그 이름을 관음정이라 부른다

여기에서 한가롭게 떠가는 구름을 보노라면 우리들의 인생을

새롭게 느낄 수 있다고 하여 관음봉 한운(閑雲)을 계룡산 4경으로 꼽고 있다

 

 

 

 

관음봉 정자 쉼터에서 바라보면 가야할 자연성능의 정맥길 풍경이 아주 서정적이다

봄이면 분홍빛으로 물드는 쌀개능선과 서북능선의 철쭉을 보기 위하여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협소한 자연성능은 사람들이 개미때처럼 보인다고 한다

 

 

 

 

자연성릉(自然城稜)이란 자연적으로 형성된 성곽 능선이란 뜻이다

타원형으로 활등처럼 휘어져 있는 형태가 성곽과흡사한 모습이 아닐 수 없으며

난공불락의 거대한 성곽과 같고 앞쪽은 천애의 낭떠러지로 보는이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천황봉에서 쌀개봉, 삼불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닭벼슬을 한 용(龍)의 형상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계룡산은 수려한 산세와 울창한 숲과 산줄기 곳곳에 기암괴석의 경관이 아름다우며~

신선이 노닐다 간 자리에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을것 같은 풍경은 산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계룡산은 관음봉에서 삼불봉으로 이어진 자연성능 코스가 가장 인기다

자연이 만들어낸 천혜의 성벽이 신비스럽고 경관이 아름다우며~

수려한 소나무가 바위 곳곳에 있어 동양화 속을 걸어가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자연성능에서 도도한 모습으로 자리잡은 소나무 한 그루가 산객을 반긴다

금남정맥의 끝이 대체적으로 바다가 되어야 하는데, 부여 백마강에서 끝나는 것은

계룡산을 제외하지 못해서 그랬다는 설도 있다, 그 만큼 계룡산의 경관이

수려하고 자비가 넘치고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산이라서 빼 놓을 수가 없었겟지요

 

 

 

 

자연성능의 바위들은 나름대로의 멋진 암릉미를 갖추고 있다

바위 봉우리에는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산봉우리 위로 까마귀가 까악까악 큰 소리를 내면서 날고 있는데~

낮에 우는 까마귀는 길조(吉鳥)라고 했는데, 오늘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길 모양이다

 

 

 

 

금잔디고개로 바로가는 길과 삼불봉을 거쳐서 가는 갈림길이다

산행지도처럼 대부분 금남정맥길은 삼불봉을 경유하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GPS상으로는 삼불봉이 마루금상에서 벗어나 있다고 애기들을 한다

삼불봉을 경유하면 20분정도의 시간이 더 소요가 되지만 삼불봉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삼불봉(三佛峰)으로 올라가는 철계단은 상당히 가파르게 올라간다

풍수상으로는 계룡산의 주봉은 삼불봉(三佛峰)이고~

계룡산(鷄龍山)의 모든 기(氣)와 혈이 삼불봉에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삼불봉(三佛峰)의 "세 부처님"를 아련하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계룡산의 주봉인 천황봉(天皇峰)과 마주보고 있으며~

삼불봉은 북쪽 능선으로 연결된 봉우리 중에서 빼어난 암골미를 자랑한다

 

 

 

 

삼불봉(三佛峰, 775m)에 오르면 그야말로 선계의 아름다운 풍광이다

천황봉에서 바라보면 세 부처님을 닮아 삼불봉이라 부르며~

삼불봉은 사계절 조망이 아름다우나 특히 겨울 설경이 백미로 꼽히는 곳이다

 

 

 

 

삼불봉고개에 도착하니 모처럼 일반 등산객들이 보인다

우측으로 남매탑을 거쳐 동학사로 가는 길이고~

이곳에서 금잔디고개는 좌측으로 돌계단길을 내려가야 한다

 

 

 

 

<금잔디고개에 도착하니 산객과 국공파가 실갱이를 버리고 있다>

낮에 까마귀가 울면 길조(吉鳥)라 했던가! 저는 우측으로 돌아 오르면서 용쾌도 피해간다

금잔디고개는 1960년대 큰 산불로 나무가 죽은 자리에 억새가 돋아 가을이 되면

억새풀이 노랗게 말라있는 것이 마치 금잔디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맥길은 표지판 뒷쪽으로 오른다

 

 

 

 

수정봉(水晶峰, 662m)은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과 계룡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수정봉이란 봉우리는 수정처럼 곱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이름하고 전혀 상관이 없는 봉우리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계룡산 주봉인 천황봉을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로 출입금지구역이며~

이 구간은 육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위험하지도 않은데 왜 입산금지를 제한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수정봉을 내려서면 안부에 징검다리 돌 세계가 있다

이곳에서 직진 방양의 좋은 길을 버리고~

정맥길은 우측으로 꺾어지면서 우측 산허리를 돌아간다

 

 

 

 

지도상의 612m봉은 특별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고스락에 파묘한 흔적과 바위돌이 있으며~

출입통제국역이라 시그널도 없어 홀로가는 산객은 답답하기만 하다

 

 

 

 

낙엽으로 뒤덮은 폭시폭신한 양탄자길을 걸어간다

호젖한 산길은 마음을 쓸쓸하게 만들었으며~

바람이 불때마다 낙엽이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떨어진다

 

 

 

 

지도상의 468m봉 직전에 바위전망대에서 멋진 소나무가 지친 산객을 반겨준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천진보탑이 있는 신흥암이 보인다, 신흥암으로 들어가 왼쪽 천진보궁으로 올라가면

천진보궁 뒤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안치해 놓은 천진보탑(天眞寶塔)이 있다고 한다

이 탑은 인간이 만든 인조물이 아니고 자연(自然) 석탑이다, 천진보탑은 그 앞에서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빛을 발하는 방광(放光)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여 유명하다

6.25 전쟁이 끝난 후 계룡산을 찾은 미군 병사가 천진보탑이 방광하는 모습을 최초로 카메라에 담아 알려졌다

 

 

 

 

좌측 아래로 갑사(甲寺)라는 절은 예전부터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있다

봄에는 태화산 마곡사가 좋고, 가을에는 계룡산 갑사가 좋다라는 말인데~

갑사의 가을 단풍은 계룡 8경(景)의 하나로 전국 각지에 소문이 나 있으며

현재는 동학사가 대전시와 가깝다보니 계룡산의 주된 산문 역활을 하고 있지만

동학사는 대부분의 영역이 비구니들의 수련도장으로 출입을 금하고 있고

예로부터 사찰의 목적 보다는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라 계룡산 대표 사찰은 갑사(甲寺)라고 한다

 

 

 

 

지도상의 486m봉은 봉우리가 초라하고 좌측으로 큰 바위암이 있었다

정맥길은 정상에서 우측으로 급속하게 길게 떨어져 내리는데~

등로가 낙엽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아 한참을 헤메다 만학골재에 내려선다

 

 

 

 

만학골재는 공주시 반포면 만학골과 계룡면 중장리를 잇는 고갯마루이다

우측에 만학골이 있어서 만학골재라 부르고 있으며~

만학골이란 학(鶴)이 밤에 잠을 자러 들어온다고 하여 만학골이라 부른다

 

 

 

 

지도상 327m봉은 드넓은 공터에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다

건너편으로 마지막 봉우리인 265m봉이 보이고~

이곳을 내려서면 좌측으로 계룡면의 젖줄인 계룡저수지가 보인다

 

 

 

 

잡목이 우거쳐 등로가 사라져 한참을 헤메다 강송(剛松) 지대를 지난다

소나무는 키가 쭉쭉 뻗은 강송과 원추형으로 가지가 퍼지는

반송(盤松)이 있는데 이곳 소나무는 보기 드물게 강송이 숲을 이루고 있다

 

 

 

 

지도상의 265m봉에 오르면 누군가 돌맹이에 265봉m이라 새겨 놓았다

정맥길은 좌측으로 꺾인다는 표시를 해 놓아 조그만 정성이지만

님들이 있기에 홀로가는 산객에게는 등불과도 같아서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중장리고개는 공주시 계룡면 구왕리에서 중장리 갑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이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마을의 이름을 붙여서 중장리고개라 하는데~

중장리 자연부락인 윗장마을이 가깝게 있으므로 윗장고개로도 불리고 있는 듯하다

 

 

 

 

오늘 운무(雲舞)로 인해 시야가 좋지 않아서 계룡산을 두루 볼 수 없어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계룡산 천황봉 천단(天壇)을 올랐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산행이었으며

지나온 나의 발자욱이 후답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4 : 40 ~ 13 : 15  (08시간 05분)      ◎ 날씨 : 흐림후, 맑음

 

 

Occidental Light / Guido Negrasz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