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대간 9정맥종주▩/금북정맥(완주)

금북정맥 제6구간(차동고개-학동고개) 종주산행

금북정맥 제6구간(차동고개 - 장학산 - 학동고개)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2년      08월       12일       (토요일)

◎ 산행위치 :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 아산시 송학면 / 예산군 대슬면 / 공주시 정안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차동(車東)고개 - 고재고개 - 장학산(長鶴山, 381m) - 성황당고개 - 천종산(409m)

                      서반봉(392m) - 사점미재 - 국사봉(國師峰, 489m) - 십자가탑옹(440m)

                      칠갑지맥분기점(헬기장, 416m) - 금자봉(370m) - 위라리마을 - 18번송전탑(염소)

                      분골도로 - 70번지방도(효제고개) - 문박산(337.8m) - 여우실고개 - 29번지방도(학동고개) 

 

◎ 산행거리 : 차동고개 ~ 3.5Km ~ 장학산정상 ~ 1.6Km ~ 천종산 정상 ~ 3.7Km ~ 국사봉정상 ~ 3.2Km

                      칠갑산분기점 ~ 3.7Km ~ 금자봉 ~ 1.8Km ~ 분골도로 ~ 3.8Km ~ 문박산 ~ 3.5Km ~ 학동고개

                      도보거리   =   약 24.8Km           실제도보거리   =   약 25.5Km

 

◎ 산행인원 : 한울산악회와 함께     ◎ 산행시간 : 07 : 45 ~ 16 : 05  (08시간 25분)      ◎ 날씨 : 흐림, 맑음

 

            ◐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는 산줄기의 금북정맥(金北正脈)종주 산행이란?

속리산에서 분기된 한남금북정맥이 경기도 안성땅 칠장산까지 와서  소임을 다하고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에 그 자리를 내주고

한남정맥은 인천, 김포벌을 누비며 강화 문수산에서 끝을 바다로 담그고 금북정맥은 남으로 내려가다가 청양 백월산에서

북진하여 가야산을 빗고 서산 은봉산에서 서쪽으로 돌려 끝을 안흥진 바닷가에 담그는 도상거리 약 250Km의 산줄기를 말한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말자

 

 

 

 

차동(車東)고개는 순수한 우리말로 해석하면 "수레넘이 고개"가 되며

옛날에는 수레가 넘어갈 수 있는 넓은 큰 고갯길이었으며

현재 車東고개는 충남 예산군 신양면과 공주시 유구읍을 잇는 32번 국도가 지나간다

 

 

 

 

"백제의 고도 공주(公州)"입니다, 입간판을 우측으로 산행들머리에 접어든다

공주시(公州市)는 백제의 수도로 64년간 왕이 즉위했던 곳으로

북으로는 "錦北正脈"의 산줄기가 방어벽이 되었고

남으로는 "錦江"이 흐르는 분지로서 북녘에 적을 둔 백제로서는 새로운 서울로 알맞은 곳이였다

 

 

 

 

옛날의 웅천(熊川, 지금의 공주)은 동쪽과 서쪽, 남쪽은 구릉성 산지로서

웅(熊)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곰"인데 "곰"이 세월따라

음운변화를 이르키며 "공"이 되여 지금의 "공주"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부여로 다시 서울을 옮기기까지 63년 동안 공주시는 백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다

 

 

 

 

고재고개는 공주시 유구읍 녹천리(鹿川里) 2구 고재마을과 예산군 신양면

여래미리(如來味里) 고재동마을 사람들이 왕래하던 고갯길로

금북정맥이 주능선을 가로지르고 있는 곳으로 고갯마루에는 옛 서낭당 돌무더기 흔적이 남아 있다

 

 

 

앞에 봉우리가 지동상 342봉으로 임도를 따라 우측 산허리르 돌아간다

 

 

 

 

 

 

 

공주시 유구읍(維鳩邑)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구원병의 장수 이여송이 이 땅에 진군했다가유구의 지세가

큰나라도 위협할 장군출생형임을 알고 이를 막기위해 유구리 뒷산을 끊었는데, 이 때 땅속에서

세 마리의 금빛 비둘기가 피를 흘리며 날아 갔는데 이후 전염병이 퍼져 수많은 군졸들이

죽어가서 고승을 찾아가 치유방법을 묻자 이곳의 지명을 유구라 고쳐부르라 하는데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지도상 350m봉에 오르면 금강송으로 보이는 소나무가 울창하다

삼국시대에 백제와 고구려는 자주 맞서 싸웠는데 싸움이 치열하게 된 것은 고구려 고국원왕이서기 369년에

백제를 침범한 때이다,이 때에 백제의 근초고왕은 고구려 군대를 물리치고 도리어 평양성에 있던

고국원왕을 죽이기 된것이다, 그러나 고구려도 점차로 국력을 키워서 광개토왕의 뒤를 이은

장수왕이 평양으로 서울을 옮겨 남쪽 정벌의 계획을 세운다, 장수왕은 백제를 공격하여

개로왕을 죽이자 백제는 한강 유역을 빼앗기게 되어 지금의 공주읍자리인 웅천으로 서울을 옮기게 된 것이다

 

 

 

 

374m봉을 넘어서면 벌목지대가 나타나면서 시야가 확트인다

좌측에 지금 올라야 할 장학산(長鶴山)이 있고

우측으로 삼면경계봉(공주-예산-청양)의 오름길은 온통 잡풀로 덮여 있는 곳이다

 

 

 

 

장학산(長鶴山, 381m)은 산맥이 길고 비학지형이 있어 조선시대 때 묘를 쓰는데

학이 날아갔다 하여 산명을 장학산(長鶴山)이라 하였으며

장학산은 능선갈림길에서 좌측으로 10m 떨어져 있으므로 정상에 갔다가 되돌아와 우측으로 내려서야 한다

 

 

 

 

서낭당고개는 공주시 유구읍 노동리와 청양군 운곡면 추광리의 들과이 마을을 잇는 고개로

옛날 추광리 사람들이 유구장을 보기위해 넘어 다녔다는 고개이며

노동리(盧洞里)는 노씨(盧氏) 중에서 천석꾼이 살았다 하여 노동(盧洞)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도상  350m봉은 삼면(공주, 예산, 청양)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주는 봉우리다

삼면경계봉을 지나면서는 예산군과는 작별을 하게 된다

 

 

 

 

천종산(天鐘산, 409m)은 국토 지리원상에 나타나지도 않은 봉우리이다

또한 천종산은 우회길이 있어 자칫하면  지나치기 쉬운 봉우리이며

천봉(千鳳)은 봉우리가 수 없이 많은 산이라 하여 천봉(千鳳)이라 부른다고 한다

 

 

 

 

야광고개는 청양군 추광리 들광이마을과 공주시 신풍면 구분실 마을을 이어주는 고개로

추광리(楸光里)는 추동과 야광리가 합쳐진 이름으로 밤에도 달빛처럼밝았다는

전설에 의해 부야광마을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또한 굉이로 개간한 들판이 있어서

돌굉이고개로도 불리우지만 지금은 그 흔적만 간직한채 옛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공주시 신풍면 조풍리의 산촌 마을인 구분실 마을의 풍경으로 구산짓골, 조선골 등이 있다

구산짓골 마을은 구씨의 산지가 있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조선골 마을은

조평리 막바지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조씨의 산이 있었다 해서 조선골 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서반봉(西盤峰, 392m)은 청양군 운곡면 추광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반봉 꼭대기에는 돌로 만든 간결한 제단이 있는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가끔 외지 사람들이 와서 산제를 지낸다고 하는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맥길은 능선으로 이어져 정점에서 우측으로 내려서야 하지만

길이 막혀 있어  이와같이 화살표 방향으로

벌목구간을 사면으로 가로질러 산속으로 접어들어 415m봉을 오른다

 

 

 

 

사점미재는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와 청양군 운곡면 신대리 사점미 마을을 잇는 고개로

좌측에 축사가 보이는 유구읍 조평리 감나무골이고

우측은 사점미 마을로 해서 삼광광업소로로 가는 길이다

사점미재는 국사봉에서 바라볼 때 사자의 꼬리부분에 해당된다 하여 사점미재(獅点尾峙)라 한다

 

 

 

 

국사봉 직전의 헬기장 바위는 마치 호남정맥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설산 오름길에서 만난 차돌바위가 이곳에도 있다

헬기장이긴 하지만 잡풀이 무성해서 기능을 상실하여 헬기가 내리기나 할까요?

 

 

 

 

국사봉(國師峰, 489m)은 나뭇가지에 하얀스텐레스에 빨간 글씨로

달랑 "국사봉(國師峰)"이란 펫말만 걸어 있다

옛날에 능터를 잡기 위하여 국사(國師)가 와서 보고 간 산이라 하여 국사봉이라 한다

 

 

 

 

국사(國師)가 왕에게 하사받은 금잎을 국사봉 자락에 묻고 칩거하여 30여년을 살다가 "금이 지금도 자란다"는 말을 하고

운명을 했기에 그가 쓰러진 곳의 산봉우리를 국사봉(國師峰)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옛날 세자를 가르치는 국사가 있었는데, 똑똑하게 수업을 받던 세자가 갑자기 병으로 죽게되자 세자를 가르치던 선생은

너무도 허무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을 하게된다, 그러자 임금이 세자와 그의 뜻을 기려 많은 금(金)을 하사하였다

여러 곳을 유람하던 그는 이곳에 정착을 하고 금은 땅속에 묻어두고 혼자서 산중 생활을 하였는데

세월이 흘러 나이가 많아 죽을 때가 되자 마을로 내려가 역시 홀어머니를 모시고 총각으로 산 젊은이에게

땅속에 금이 자라고 있다는 유언을 하고 죽었다 금괴에 대한 유언을 들었지만 제사만 지내주면서 살아가든 총각도

어느 덧 늙은이가 되자 마을 사람들에게 그제야 금괴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고, 그가 죽자 모두들 금을 캐겠다고

이곳을 파헤쳤지만 발견하지 못하였단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 최대의 金鑛 중의 하나인 "삼광광업소"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국사봉(國師峰)은 오는 구간에 최고봉으로 이렇게 명백한 국사봉 전설이 담겨 있는데

공주시와 청양군에서는 정상석이 없다고 하면 말이 될까요?

이곳에서 양쪽으로 수리치골 성지라고 표시가 되어 있으므로 정맥길은 우측 수리치골  4.6Km방향이다

 

 

 

 

십자가 철탑이 있는 탑봉(440m)은수리치치골에 천주교 성지가 있어 봉우리 정상에 십자가를 세운 모양이다

수리치골 천주교 성지는 조선말 천주교 박해시대 때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살았던 곳으로

천주교 인들의 은신처가 "안성-천안-공주" 등 금북정맥 산골자기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수리치골은

한국에 있는 모든 성모라리아 인들에게 하나의 성지(聖地)가 되며 금북정맥을 걸으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낀다

 

 

 

 

세월은 이기지 못한 것은 사람이나

나무나 똑 같은 모양이다

봉우리 정점에서 마루금은 좌측으로 내려선다

 

 

 

 

고사목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청양군 운곡면 신대리에 옛 "삼광광업소"가 보인다

금광(金鑛)은 폐광이 되었지만 "활석채취장"으로 이용하는데, 활석은 광물중에서

강도가 가장 약한 것으로 아트지나 화장품, 보온용 내화재 등에 쓰이는 고급 광물이라고 한다

 

 

 

 

밧줄구간의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수리치골 성지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데

수리치골은 공주시 신풍면 봉갑리에 있는 골짜기 이름으로

수리취는 취나물의 일종으로 나물로 무쳐 먹기보다는 주로 떡을 해 먹었으며

수리취나물이 이 골짜기에 많이 자생하고 있다고 하여 수리치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지도상 헬기봉인 416m봉으로 칠갑지맥(七甲枝脈)의 분기봉이다 이곳을 산경표에선 이렇게 표기하고 있다

獅子山 靑陽北二十一里 大興東二十一里 分二枝 1-大峴 七甲山, 大朴山

차유령을 지나 청양 북쪽 21리 대흥 동쪽21리에 있는 사자산(獅子山)에서 두줄기로 분기하여

한줄기는 금북정맥을 따라가고 한줄기는 大峴 七甲山, 대박산(大朴山)으로 흐른다고 표기하였으며

산경표상의 표기대로라면 이 봉우리의 이름은 사자산(獅子山)이다, 하지만

청양쪽에선 국사봉을 사자산이라 칭하기도 했다고 하므로 이거다 저거다 단정짓기가 어려운 봉우리로 보인다

 

 

 

 

칠갑지맥(七甲)은  청양군 운곡면과 대치면, 공주시 신풍면의 삼면경계봉으로 정맥은 서남방향인 금자봉으로 가고

한줄기는 동남방향으로 분기하여 즐바위고개, 대덕산(471.5m), 칠갑산(560.6m), 마재, 낙지재, 백토고개

문드래미고개, 명덕봉(168.7m)을 넘어 청양군 청남면 인량리 금강천이 만나는 곳에서 끝이 나는 산줄기를 말한다

 

 

 

 

지도상 401m봉 우측으로 배실이 마을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마을이 배를 닮았다하여 배실마을이라 부르는데

배가 육지에서 짐을 푸는데 7년이 걸릴 정도로 배가 그만큼 크다는 것인데 마을이 그런 배(船) 형이라 한다

그런 연유로 여기 사는 사람들은 이 마을에서 7년을 살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한다는 것이다,원인인즉

7년을 넘게 살면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듯 어려움이 닥치면서 큰 재앙을 만나서 집안이 망한다는 전설이 있다

 

 

 

 

지도상의 산불이 난 지역으로 길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수풀이 무성하고

하늘도 보이지 않은 잡목지역을 헤치며 걸어야 했다

자연의 선물이라 생각하며서 마지못해 걸어 왔지만

청양군은 민둥산 만드는데는 뛰어난 재주를 가졌으나 등산로 정비는 빵점인것 같다

 

 

 

 

커다란 참나무가 있는 장고개는 대치면 상갑리와 운곡면 신대리(냉정골)를 왕래하는 옛고갯길로

옛날 상갑리 사람들이 운곡장(운곡시장)을 보기위해 넘어 다녔던 고개이며

장을 보러 넘어 다니는 고개라고 해서 "장고개"이고 고갯마루에 아름드리 참나무가 있어 "참나무장고개"라고 부른다

 

 

 

 

찌는듯한 폭염속에 열심히 발품을 팔아서 준,희님의 아크릴팔이 달려있는 424.4m봉에 올라선다

충남에서 청양은 무진장한 오지였고 군세가 작어서 발전이 느렸으며

근래에는 인구도 줄어 선거 때마다 예산군과 부여군에 묶여 제 소리를 내지 못한다

산이 많아 충남알프스라 불릴정도로 청정 오지지역이지만 앞으로는 등산로 관리도 잘 될 것으로 보여진다

 

 

 

 

산제당이 있는운곡고개는 위라리에서 신대리 운곡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산등성이에 금이 많이 있어 일제 때 4년 동안 금광을 운영하였다

그래서 금, 은 보화가 나는 곳이라 해서 마을 이름을 금곡, 은곡이라 부른다고 한다

 

 

 

 

금자봉 갈림길에서 좌측 우회길이 뚜렷하여

자칫하면 금자봉을 놓칠 수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름도 예쁜 금자씨를  만나고 가야지요

 

 

 

 

금자봉(金子峰, 370m)은 청양군 운곡면 상갑리와 대치면 농소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름도 예쁜 금자씨가 어디를 갔는지 지명에 대한 유래를 알 수가 없으며

작은 바위가 몇 개 흩어져 있고 소나무에 준,희님의 아크릴판이 금자봉임을 알려줄 뿐 허망한 봉우리다

 

 

 

 

이곳은 본관 "慶州"인 김씨 묘지들이 많이 보인다

충청남도  보령, 서산, 예산, 부여, 청양

지역에는유난히 경주 김씨( 慶州 金氏)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위라리(位羅里)마을에 농경지 비닐하우스 등이 보인다

이제 마루금이 마을로 내려 왔으며

사라골 마을 우측으로 밤나무밭 야산 능선을 따라 진행한다

 

 

 

 

밤나무밭 야산을 내려서면 물탱크 앞에서 우측으로 틀어진다

우측으로 틀어지면 밤나무밭을 다시 만나고

계속해서 밤나무밭과 묘지와 억새밭을 성지순례 하듯이 계속해서 걸어간다

 

 

 

 

야산의 묵은밭 잡풀은 사람키 만큼이나  자랐다

위라리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자연과 어우러져 마을이 평화로워 보이고 정겹게 느껴진다

 

 

 

 

NO:18번송전탑은 금북정맥 산꾼들에게 스타가 되어버린 할아버지 염소 두마리다

사람들을 하도 많이 보아서인지 놀라지도 않고 포즈까지 잡아준다

금북정맥을 지키는 파수꾼 염소 두마리~ 오래 오래 살거라~ 산행중에서 너라도 만나니 반갑구나

 

 

 

 

초록의 들녘이 황금색으로 변하여 올해는 풍년이 들었으며 좋겠다

이곳 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한 인조 5년 정묘호란 때

의주에서 전사한 박신용 장군의 관복을 보관하고 있는 유의각이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위라리 마을 산 능선에는 온통 밤나무 단지이다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구간이며

지금은 밤나무철이 아니라서 괜찮겟지만 수확철에는 어떨까 궁금하다

 

 

 

 

분골고개는 우측으로 청양군 운곡면 효제리와 좌측으로 대치면 위라리를 잇는 고개로

분골은 질그릇을 만드는 분토가 많이나서 얻은 이름이라고 하며

옛날에는 이곳을 통하여 과거를 보러 다녔는데 이곳 부근에 주막이 있었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옛날 전설에 의하면>

150년 전에 명씨 중에 한 사람이 과거를 보던 중에 한 글자가 생각이 나지 않아 막히게 되었은데

시험관이 옆에서 보니 "물 水자인 고로, 안타까워" 이 선비 목이 마른가 보다 물 좀 갖다 주어라"라고

말을하며, 힌트를 주었는데, 하지만 명씨는 물만 마시고 물 水를 생각해 내지 못하고

시험을 그냥 마치고 나오다 보니 그제야 생각이 났다고 한다, 원통한 명씨는 "내가 죽거든

과거 보러 다니는 사람이나 구경하게 이곳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였다, 그래서 이곳에는 묘지들이 많다

 

 

 

 

우측으로  청양군 운곡면 효제리 마을 풍경이 서정적이며

뒷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법산(459m)이다

윤형갑 윤세웅 부자의 효자가 살았으므로 효젯골 또는 효제동이라 하였다

 

 

 

 

정맥길은 지도상에 표시된 11기의 묘지 상단을 지나간다

묘지 끝머리서 오른쪽으로 마루금은 틀어지며

단디 숙지하시고 무심코 직진하시면 알바 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건너편 고추밭 좌측으로 돌아서 마루금은 효제고개로 내려간다

청량하면 언뜻 떠오른것이 맵기로 유명한 청량고추와 칠갑산이 아닌가

콩밭매는 아낙내여 배적삼이 흠뻑 젖는다~

아낙내가 아니라 할머니가 고추밭에서 젊은이들 왠 생고생들을 하는거야 하면서 반긴다

 

 

 

 

70번 지방도로는 청양군 대치면과 운곡면의 경계에 있는 도로로

효제골의 이름을 따서 일명 효제고개라고도 불리우며

마루금은 도로에서 좌측으로 이동하여 전봇대 앞에서 밭과 밭사이를 따라 올라간다

 

 

 

 

지금까지 예산, 공주를 거쳐 오던 정맥길은 어실리 고개에 이르러 청양군에 접어든다

마루금 좌측으로 문박산 아래의 안어실리 마을 전경으로

청양군은 한자로 "푸를(靑) 볕(陽) 자를 쓰고 있어 글자 그대로 푸르고 따스한 오지의 동네라는 뜻이다

 

 

 

 

문박산 직전의 산불감시초소는 잡풀이 우거져 비암이 살것 같다

산꾼들의 비박장소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얼마나 관리를 안했는지 잡풀이 무성하여 산불감시 기능은 상실한것으로 보여진다

 

 

 

 

문박산(文博山, 337m)은 충남 청양군 운곡면과 비봉면 경계 능선에 자리잡은 산이다

문박산 정기를 이어받은 학당마을에선 옛 부터 인물들이 많이 났었고

효제마을엔 열녀비가 세워질정도로 충효의 고장이며 한나라당 이회창씨의 선영도 문박산에 있다고 한다

 

 

 

 

문박산에서 밤나무단지를 내려서면 임도를 만난다

저 멀리 보이는 9번송전탑을 향해 가야하며

청양이란 이름은 청무군과 안양군이 합병하면서 한 글짜씩을 합쳐 청양군이 되었다

 

 

 

 

사기점 고개 고추모양의 이정표가 이채롭다

그렇다면 여기가 어딘갑유~  청양군 대치면 백천리 사기점마을이 있는 곳이랑께유~~

고추의 원산지는 멕시코이며 콜롬비아가 전 세계로 퍼뜨렸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이 시작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보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하며

"동의보감"에도 고추에 대한 기록이 없으며 임진왜란 때 일본을 통해 들어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갈림길에서 마을로 내려서는 포장도로를 버리고 직진방향인 넓은 임도를 따라 밤나무단지로 들어간다

흔히 청양(靑陽)고추를 충남 청양군에서 자란 재래종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지금도 청양군에서는 청양이 원산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객관적인 사실은 청양군의 주장과 다르다

경북 청송, 영양지역 고추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3년간 연구 및 시험재배를 했지만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고추재배 농민들의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무상으로 제공하면서경북 청송의 청(靑)자와  영양의 양(陽)자를 써서 청양고추로 품종을 붙였다는 것이다

 

 

 

 

이곳은 사유지라서 마루금을 우측 사면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놓았다

우측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에 시그널이 달려 있으므로

밤다무단지에서 무심코 그냥 지나칠 수 있으니 알바에 주의해야 할 지점이다

 

 

 

 

여우실고개는 좌측에 여우실마을이 있어 여우실고개라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옛날 이 마을에 여우가 많았다 해서 지어진 이름으로

청양군 청양읍 학당리에 속한 여우실마을은 학당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마루금은 직진한다

 

 

 

 

지도상 225m봉은 나지막한 산이지만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청양읍 학당리에는 옛날 젊은 부부의 애뜻한 사랑이 전해지는 전설이 있다

산에 나무하러 갔던 남편이 호랑이 밥이 된 사실을 알고 아내가 슬픔에 못이겨 바위가 됐다는 임바위전설이 있다

 

 

 

 

오늘 구간은 밤나무단지 과수원 시찰을 왔다고 할까

사유지인데도 막아 놓은 곳은 없으며

충청도 인심을 느낄 수 있어서 그저 감사함을 잊지 못하겠다

 

 

 

 

칠갑산의 가사답게 온천지가 콩밭이고

감나무밭 과수원 단지이다

그래도 베낭메고 걸어왔던 시간만큼은 행복하다

 

 

 

 

비산비야 구간의 맥 잇기 산행에 열정을 불태워 보는 시간이다

이젠 공밭과 과수원 중앙을 가로 지르면서

앞쪽으로 29번국도가 지나가는 학당고개가 보이면서 마지막을 달리고 있다

 

 

 

 

고추밭과 밤남무 과수원 순례를 마치고 무탈하게 학당고개에 도착한다

청양읍을 지나는 29번국도 좌측으로 청양장례시작이 보이며

청양과 예산을 잇는 이곳 학동고개는 지대가 낮다고 하여 아리고개라고도 부른다

 

 

 

 

학당고개는 청양군 서하면에 글을 배우는 학당이 있어 학당 또는 학당동, 학댕이라 하였다

70번지방도로인 효제고개에서 마치려던 여정을 학동고개까지 이어 왔으며

무덥고 긴 여정에 힘들었던 한~울님들! 수고 하였으며, 다음에 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시길 ~

 

◎ 산행인원 : 한울산악회와 함께     ◎ 산행시간 : 07 : 45 ~ 16 : 05  (08시간 25분)      ◎ 날씨 : 흐림,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