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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종주▩/낙남정맥(완주)

낙남정맥 제8구간(발산재-한치재) 종주산행

낙남정맥 제8구간(발산재 - 여항산 - 한치재)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5년         02월         28일         (토요일)

◎ 산행위치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여항면 / 진주시 이반성면 / 창원시 진전면, 진북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발산재(2번국도) - 큰정고개 - 오봉산갈림길 - 오곡재 - 미산령 - 여항산(艅航山, 770m)

                      소무덤봉(669m) - 서북산(西北山, 738.5m) - 감재고개 - 대부산(649.2m) - 한치재

 

◎ 산행거리 : 발산재 ~ 4.3Km ~ 363m봉 ~ 2.5Km ~ 큰정고개 ~ 5.3Km ~ 오곡재 ~ 2.0K

                      미산령 ~ 1.8Km ~ 여항산 ~ 3.8Km ~ 서북산 ~3.5Km ~ 대부산 ~ 2.1Km ~ 한치재

                      도보거리   =   약 19.3Km           실제도보거리   =   약 19.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7 : 45 ~ 16 : 30  (08시간 45분)      ◎ 날씨 : 흐림, 안개

 

            ◐ 남부 해안지방 내륙의 문화권을 가로 지르는 낙남정맥(落南正脈)이란?

낙남정맥(落南正脈)은 낙동강 남쪽에 위치한 정맥으로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끝나는 지리산의 영신봉에서

동남쪽으로 흘러 북쪽으로 남강의 진주와 남쪽의 하동, 사천 사이로 이어져 동쪽으로 마산, 창원 등지의 높이 300~800m의

높고 낮은 산으로 연결되면서 김해의 분성산(360m)을 지나 낙동강 하류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232Km의 산줄기이다

 

 

내가 지금 산(山)을 오르는 한걸음 한걸음에는 내 인생의 삶에 희망이다

지나온 나의 발자국은 아름다운 내 인생의 흔적이 되고 있으며~

남은 세월은 늘~ 산과 함께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욕심으로 살아 가련다

 

 

 

***** 낙남정맥 8구간(발산재 ~ 한치재) 구글형지도 *****

 

 

 

 

 

 

발산재는 한국전쟁 초기 북한군에 밀려 후퇴하다 창설된지 얼마 되지 않은 "김성은 부대"로 불리던 해병대가

진주에서 발산재를 넘어오는 북한군 6사단의 정찰부대를 궤멸시키고

또한 통영 장평리 해안에 기습 상륙하여 통영의 관문인 원문고개에서 북한군 7사단과

치열한 백병전을 펼친 끝에 대승을 거두기도 했던 해병대의 기상이 서린 지역으로

미국의 여기자 마거릿 히긴스가 김성은 부대를 일컬어 "귀신 잡는 해병"이라고 기사를 쓰게 되었던 고개이기도 하다

 

 

 

 

발산재는 스님의 탁발을 엎어 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산허리를 잘라 4차선 도로가 생기면서 재라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으며

굴다리를 통과하여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은 발산재휴게소 우측으로 산행 들머리가 나온다

 

 

 

 

발산재(鉢山峙)는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과 창원시 진전면의 경계지점으로 2번국도가 지나간다

이곳은 역사의 현장으로 예사롭게 지나갈 고개가 아님을 알려주는 곳으로

400년 전 임진왜란 당시에도 김준민 장군과 고종후 장군 등의 선열들이 왜적과 싸웠던 치열한 격전지였다

 

 

 

 

민가처럼 보이는 저 건물은 예전에 (구)발산재휴게소였다고 한다

좌측으로 새로운 휴게소가 한창 공사중이었으며

공터에 주차를 하고 한켠에서 가볍게 몸을 푼다음 우측에 있는 들머리로 향한다

 

 

 

 

들머리에는 특이하게 생긴 목장승 두 개가 반가히 맞아 주었다

장승에게 두손을 합장하고 산으로 들어섰으며

산꾼들에게 옛것을 알리는 지혜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아름답게 느껴진다

 

 

 

 

목장승의 환대를 받으며 숲길로 들어서자 된비알 오름길이 한동안 이어졌다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의 유래를 보면>

인조대왕이 능양군으로 있을 때 고성에 있는 심부원군 배알차 미복으로 장안산을 지날 때

산세가 수려하여 산중 암자에서 국난을 타개하기 위한 기도를 올리게 되었는데

그 후 인조 임금이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장안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성전암에는 조선시대 인조가 능양군으로 있을 때 백일기도처라 하여 인조 임금의 조각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묘지가 늘어선 안부를 지나고 가파르게 오르니 벤취가 있는 290m봉에 올라선다

좌측으로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이 있는 곳을 지나고

무명봉을 내려서면 편안한 등로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넓은 임도길이 영봉산 갈림길까지 함께한다

 

 

 

 

산 전체가 온통 건강한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 차 있는 산이다

그저 고향의 뒷동산을 걸아가는 기분이며

적송(赤松)에서 품어져 나오는 피톤치드 향은 이 강산의 머리를 맑게 해준다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소나무 오솔길을 따라 영봉산갈림길에 도착한다

좌측으로 들어가면 영봉산으로 가는 길이고

낙남정맥 마루금은 우측 능선쪽으로 오르면서 진행해야 하는 길주의 구간이다

 

 

 

 

빼곡히 들어선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전진한다

쌀쌀했던 기운도 사라져 재킷을 가방에 넣고

계속해서 조금씩 고도를 높여 지도상 356m봉에 도착하여 잠시 쉬어간다

 

 

 

 

제법 많은 시그널이 메달려 있는 곳이 큰정고개로 짐작이 된다

사람이 지나가는 흔적이 없는 작은 고개였으며

옛날에 인조 임금이 머물렀다고 하는 장안리로 내려가는 고개로 보여진다

 

 

 

 

아름답고 황홀한 숲길을 따라 올라서면 오봉산갈림길에 도착한다

이렇게 조망의 즐거움은 인색하지만

솔향기 은은한 소나무 오솔길을 걸으면서 깊은 사색의 시간을 산객에게 선사한다

 

 

 

 

힘들게 올라온 527m봉의 전망바위는 초라하고 조망도 빈약하다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는 장안리를 바라보며

따뜻한 꿀차와 과일을 먹으며 허기를 채우고 오곡재를 향해 마루금을 이어간다

 

 

 

 

삼계봉(523m)을 지나면 함안군 군북면을 만나게 된다

좌측으로 군북면 오곡리 마을 풍경이며

꾸불꾸불 구절양장으로 올라오는 1029번 지방도로가 오곡재를 넘어간다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삼각점 안내판이 있는 524.4m봉에 도착한다

준,희님의 코팅지가 걸려 있고, 삼각점이 있으며

옆에는 나무로 만든 벤취가 설치되어 있어 가방을 내리고 잠시나마 쉬었다가 내려간다

 

 

 

 

오곡재(비실재, 360m)는 함안군 군북면 오곡리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산서를 잇는 고개로

옛날에 보부상들이 넘어다녔던 중요한 고개마루였다고 한다

함안군 군북면쪽에서는 오곡재라 부르고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서는 비실재로 자기네들 지명을 부른다

 

 

 

 

오곡재는 신라말엽 고운 최치원선생이 어린시절 어머님을 모시고 이곳을 넘어가던 중

피로하고 배가고파 뒷산에서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까마귀가 날아와

하늘위로 빙빙돌다가 선생앞에 닭고기를 물어주고 갔다 하여 오곡(烏谷)이라 불리우고 있다

 

 

 

 

상당히 빡세게 오르면 지도상의 557m봉으로 여겨지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군북면 오곡리에는 일제시대에 금을 캐는 광산이었는데

지금도 광산을 캐었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 동굴이 여러개 있다고 전해진다

 

 

 

 

오곡재를 지나면서 운무로 인하여 주위의 조망을 볼 수 없지만

빼곡히 들어차 있는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를 타고 

스잔한 분위기속에  스마트폰으로 음악도 들어가면서 사색에 길을 걸어간다

 

 

 

 

군북 사촌(사랑목) 방향의 이정표가 있는 곳을 오르면 미산봉갈림길에 올라선다

좌측에 있는 미산봉(660m)은 말그대로 안개속이며

앞쪽으로 여항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지만 산객의 눈을 즐겁게 해주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다

 

 

 

 

미산령은 진전면 여양리와 함안면 파수리 미산마을을 이어주는 옛 고개마루로

지금은 도로를 포장하여 동물이동통로 에코브릿지를 만들어 놓았으며

미산령까지 자동차 통행이 가능하지만 차단기를 설치하여 고개를 넘어 갈 수는 없다

 

 

 

 

미산령의 정자는 그야말로 꿈같은 궁전이라 할 수 있는 천혜의 지붕이다

주변에 잔디밭이 널찍하여서 비박하기에 좋은 곳으로

밤하늘에 둥굴달을 바라보며 하룻밤을 보내고 여항산을 오르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미산령에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한뒤에 여항산을 향해 오른다

여항산이 유명한 탓인지 등산로 정비가 잘 되어 있으며

통나무계단을 타고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지가 스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날씨가 좋으면 우측으로 창원시 진전면 여양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6.25전쟁당시 군인, 경찰, 학도병 등이 국가를 지키기 위해

장렬히 산화한 장소로 많은 유해가 발견되어 국립묘지에 안장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받았던 동네이다

 

 

 

 

조망바위에 오르면 지나온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곳이다(가져온 사진)

저 멀리 진주의 방어산(550m) 능선이 6.25때 격전지였으며

진주의 이반성면의 월아산을 비롯하여 산군들이  저마다 모습을 자랑하며 산객의 마음을 흔든다

 

 

 

 

조망을 즐기고 바위계단을 오르면 무너진 성터흔적이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옛 아라가야의 성곽이 지금은 기원탑으로  가득하며

조선시대 <함수지>에 파산산성이 신라 이전에 축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산성이 바로 여항산 능선을 따라 남아 있는 산성으로 추측하고 있다

 

 

 

 

기원탑을 지나면 이정목에 119구조목이 있는 743.5m봉이다

이정표에는 거리 표시가 적혀 있지 않으며

이곳에서 서북산 방향으로 진행하면 암릉을 따라 양쪽으로 조망이 터지는 곳이다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돋을샘의 이정표를 만난다

여항산까지의 거리가 500m정도가 남아 있으며

아래의 작으마한  119구조목에 누군가 "배능재"라고 써 놓았기에 숙지한다

 

 

 

 

소나무 우거진 산릉을 따라 배가 넘어다녔다는 배능재(여항산 0.5km)를 지나자

파산산성으로 추정된다는 성곽 위로 올라선다

함안쪽에서 바라보면 드러누워 있는 사람의 얼굴 옆모습 같다는 여항산의 이마로 올라서는 시간이다

 

 

 

 

여항산 0.3km를 알리는 이정목을 넘어서면 헬기장이다

톨탑이 있는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면

여항산 정상바위가 눈앞에 모습을 보이지만 한치앞도 보이지 않은 안개속이다

 

 

 

 

산전체를 두꺼운 운무(雲霧)로 인해 조망을 볼 수 없어 실망스럽지만

그것도 자연의 섭리인지라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사방으로 조망이 일품이며 지리산 천왕봉까지 조망된다고 한다

 

 

 

 

여항산(艅航山, 770m)은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와 창원시 진전면 여양리에 위치한 산으로

아라가야의 유서 깊은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함안군의 진산으로 낙남정맥의 한가운데 위치하며 지리산권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다

 

 

 

 

몇년전에 산악회를 따라 종주길에 올랐던 추억을 회상해 보는 시간이다

강추위와 바람으로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었는데

오늘도 박무로 인하여 조망을 볼 수 없으니 여항산은 저와는 좋은 인연이 아닌가 보다

 

 

 

 

오랜 옛날 천지사방이 물에 잠겼을 때 이 산의 꼭대기가 배만큼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산 이름을 여항산(艅航山)이라 했다고 하며

실제로 여항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길게 늘어진 암릉의 모습이 배의 형상을 닮았다고 한다

 

또한 여항산은  장벽처럼 솟아오른 정상에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하여

6,25전쟁당시 이험난한 산에서 전투에 지친 미군들이

"갓뎀(goddam)"이라고 욕을 하였는데 그 이후부터 주민들이 갓데미산이고 불리기도 하였다

 

 

 

 

날씨가 좋으면 두팔을 벌려 천지기운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아쉬운 마음으로 내려선다

옛날에는 밧줄을 붙들고 힘들게 내려가야 했었는데

이렇게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산객들이 편안하게 내려살 수 있도록 만들어준 함안군에게 감사를 드린다

 

 

 

 

한편으로 1586년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군수로 부임하면서 함안이 남고북저의 지형으로

물이 억류하는 까닭에 역모를 꾀할 기운이 있다 하여

이를 풍수지리적으로 바로 잡고자 낮은 북쪽은 뜻과 글자로써 높여 대산(代山)으로

높은 남쪽은 배가 다닐 수 있는 낮은 곳이라는 의미에서 여항(艅航)으로 고쳤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소무덤봉(668m)은 우측 암릉으로 이루진 가파른 암벽을 타고 올라야 하는데

암벽에 위험하다는 경고판이 우회하기를 권장하고 있었다

암릉에는 자일이 설치되어 있어 암벽을 올라보고 싶었지만 무중이라 우회하여 내려선다

 

 

 

 

오른쪽 진전면의 하산길을 지나고 왼쪽의 별천으로 하산하는 이정목을 만난다

이정표와 함께 좌우로 별촌과 대촌으로 하산길이 열려 있으며

별촌은 뒷산의 계곡 풍경이 아름다워 정한강 선생이 노닐다 간 곳으로 별천지라 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함안(咸安)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아 억류가 흐르기 때문에 이를 고르게 하고자

풍수지리설에 의거  명명된 지세를 고치고자 산이 많은 남쪽에 배를 띄우라는 뜻에서 여항이라 하고

산이 없는 북쪽에는 산을 대신하기 위하여 대산(代山)이라 하였으며

동쪽에 위치한 산인면(山仁面)은  위험하여 뫼 "山" 어질 "仁"자로 하였다

그러므로 함안(咸安)이라는 지명은 다함께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뜻의 "안(安)"자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약수터산장이란 안내판과 별천으로 하산하는 이정목을 다시 만난다

산에오면 요구하는 것도 없고, 속박하는 것도 없으니~

산꾼만의 세상이고, 걸아가는 자만의 세상이니 바로 이곳이 별천지가 아니겠는가

 

 

 

 

여항산을 주산으로 삼는 함안은 아라가야(阿羅伽倻 : 안라국)의 옛 도읍지로서 변한의 소국이었을 때부터

신라에 병합될 때까지 약 500년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고을이다

아라가야는 4세기 무렵, 변한 12국 중 하나인 안라국이

주변 나라들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고대국가로서 함안을 중심으로 창원, 의령, 진주의 일부를 영역으로 삼았다

 

 

 

 

함안군민들은 특히 아라가야가 여러 가야국들을 대표하는 강력한 국가로서

우수한 토기와 철기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해 고대 한반도 남부의 발전을 주도해 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서북산에 설치된 <서북산전적비>에는 한글과 영문으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서북산 전투는 6.25 한국전쟁 중 낙동강 방어전투가 치열하였던 곳으로

1950년 5월에 미 제25사단 이하 제5연대 전투단이 북괴군을 격퇴하여

유엔군이 총반격작전을 가능케 하였던 격전지이며, 이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 중대장  티몬스대위외 100여 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 그의 아들

주한 미8군 사령관 리차드 티몬스 중장과 제39사단장 하재평 소장을

비롯한 사단장병 및 지역주민들이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 1995년, 11월 >

 

 

 

 

운무(雲霧)로 인하여 사라졌던 위풍당당한 산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북산에서 흐르는 물줄기는 학동저수지로 유입되고 있으며

서북산 산행은 항상 여항산을 주봉으로 하고 양념처럼 끼어 넣어서 산행을 한다

 

 

 

 

서북산(西北山, 738.5m)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에 있는 산으로

진북면의 서북쪽에서 있다고 해서 서북산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한국전쟁당시 미군이 고전을 면치 못한데서 "갓데미산"이라고도 불리며

또한 이 산의 격전에서 아군의 백골이 산적하였다 하여 "백마산"이라 불리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서북산은 여항산과 북쪽으로 줄기를 잇고 있어 전형적인 장년 산지의 특색을 보이고 있다

전체적인 산세는 부두러우나 봉우리가 뾰족하고 사면이 급하며

동남쪽으로는 평지산에 이어 베틀산과 산맥이 이어져 있고 북동쪽으로는 봉화산으로 연결되어 있다

 

 

 

 

 

여항산과 서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한국전쟁당시 대단한 격전지였다고 한다

이곳이 무너졌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없지 않았을까요

낙동강 방어선에 희생된 우리의 자랑스런 민초들이여! 모든 원한을 버리고 극락왕생하소서~

 

 

 

 

전적비를 지나 헬기장에 오르면 남쪽으로 진동만의 푸른바다가 보인다

한국전쟁 때  바다에서 함대가 포로 이곳을 공격을 하여

북한군이 물러가고 인천상륙작적이 이루어져 오늘날 우리가 낙남정맥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서북산에서 급경사 내림길은 낙엽이 쌓여 미끄럽기도 하고

얼음이 녹으면서 물기가 있어 더욱 위험하였으며

어렵게 급경사을 무사히 내려서면 의자가 나란히 있는 쉼터를 지나간다

 

 

 

 

산기슭에 감재고개가 있어 진북면과 여항면의 교통로가 되고 있다

고개 좌측으로 버드내와 별천계곡으로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창원시 진북면 영학리 대밭골로 내려가는 널찍한 임도를 가로 지른다

 

 

 

 

감재고개를 오르면 방화선으로 보이는 임도가 정맥길을 따라 능선으로 이어진다

우측의 진북면 영학리에서 올라오는 삼거리를 지나면

가파르게 오르면 바위들이 많이 나오는 곳에서 한동안 별천지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며 올라간다

 

 

 

 

빛바랜 억새밭을 오르면 706m봉인 능선삼거리에 도착한다

우측으로 평지산 방향은 송접탑이 높게 서 있으며

마루금은 좌측으로  진행하는데 낙엽이 쌓여 마치 가을 산행을 하는 기분이다

 

 

 

 

한동안 가을 분위기를 느끼며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 대부산 정상이다

대부산은 경남 함안군 여항면 주동리의 산으로

몇년전 산악회를 따라 이곳을 지나갔던 생각을 잠시나마 회상해보는 시간이다

 

 

 

 

대부산(649.2m) 정상은 산꾼이 판자로 만든 표지판 하나만 초라하게 달려 있다

표지판이 없었더라면 여기가 어디인지 알 길이 없었으며

넓은 공터에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지만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봉화산으로 잘 못 표기되어 있다

 

 

 

 

밋밋한 능선을 따라 짤막한 된비알을 올려치면 봉화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낙남정맥은 여기서 오른쪽(동쪽)으로 꺾어지면서 뚝 떨어지고

봉화산은 멀리서 보아도 산 정수리에 돌로 쌓은 봉수대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봉화산 봉수대는 조선 전기에 축조되어 조선 후기까지 국가기간 연락망 역활을 하였다

진해의 봉수를 받아 의령의 가막산 봉수와 연결했으며

원래는 5기의 봉수대가 있었는데  이 산에서 2기의 흔적이 발견되었지만 지금은 1기만 복원을 하였다

 

 

 

 

한치재의 급경사 내림길에는 나무계단으로 설치되어

매우 가파르게 내려서기 시작한다

직벽에 가까운 내림길에 낙엽과 물기가 있어 위험한 곳이였다

 

 

 

 

내림길에 혼쭐이 난 후에 너럭바위가 있는 곳을 지난다

지도상에 마당바위로 표기된 곳이며

여러개의 마당바위를 지나면서 평탄한 등로를 타고 봉곡갈림길에 도착한다

 

 

 

 

봉곡갈림길에 도착하니 높다란 봉우리(330m)가 힘을 쪽빠지게 만든다

좌측으로 여항에 속한 마을인 봉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며

이 고개를 음앙골고개라 하며, 한번더 땀방울을 흘리고 330m봉을 넘어야 한치재에 이른다

 

여항면 봉곡마을은 내곡에서 분리된 마을로 예전에는 만절이라 하였다

유래는 함안군 최남단 높은 곳에 있다는 뜻도 있고

양쪽으로 높은 산이 가려져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진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한티재가 보이면서 건너편으로 광려산 삿갓봉이 철옹성같이 드높아 보인다

좌측에 밭을 두고 진고개휴게소 건물이 눈에 들어오고

등산안내도를 지나면 함안과 창원을 잇는 79번국도가 지나가는 한치(진고개) 고갯마루에 내려선다

 

 

 

 

한치재에는 이방실장군의 유적비가 도로가에 자리하고 있다

이방실장군은 고려 공민왕 때 20만 무리를 이끌고 수도 개성으로 침략해 온 홍건적의 난을 평정한

3원수(이방실, 안우, 김득배) 중 한사람으로 함안 사람들이 을지문덕과 이충무공에 추앙받는 사람으로

그는 충렬왕 24년(1298)에 지금의 여항면 내곡마을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나이 47세 때

원나라에 볼모로 끌려간 충목왕을 지모와 무용으로 보필한 공으로 중랑장(정5품)에 올랐다

그 후 호군과 도지휘사로 영전되어 무장생활을 하다가 홍건적이 국경을 수시로 침탈할 때마다 물리쳤던 인물이다

 

 

 

 

한치고개(봉곡리고개)는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진북면과 함안군 여항면을 잇는 고개마루로

창원시 진동면에서 약 30십리, 함안군 가야읍에서 약 30십리 지점으로

남포선의 중앙에 위치한 고개로 행인들이 이 길을 많이 지나갔던 곳이라 한다

이 고개에 올라서면 진동앞바다가 한눈에 확 트이게 보인다는 뜻에서 한치재라 불리었다고 한다

 

 

 

 

이곳에 왔으니 적석산아래 양촌리 온천장에 들려 물 좋은 곳에서 산행의 피로도 한번 풀어 보시고

진동만의 미더덕은 생긴 것과는 달리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식품이니

산행에서 지친 마음을 바닷가에서 기분 전환으로 한번쯤 들려보는 것이 어떠하실지~

"여항산보리 한우"라 적힌 간판과 커다란 느티나무사이로  다음구간 들머리를 확인하고 산행을 마루리한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7 : 45 ~ 16 : 30  (08시간 45분)      ◎ 날씨 : 흐림, 안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