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제1구간 2차(모래재 - 만덕산 - 슬치재)까지 종주산행▣
◎ 산행일시 : 2015년 03월 28일 (토요일)
◎ 산행위치 : 전라북도 전주시 소양면 / 진안군 부귀면, 마령면, 관촌면 / 완주군 상관면 / 임실군 상관면에 있는 산이다
◎ 산행구간 : 모래재 - 주화산(珠華山, 565m) - 곰티재 - 웅치전적비 - 오두재 - 만덕산(嚴光山, 504m)
관음봉 - 삼군봉 - 마재(馬峙) - 남산(414.3m) - 신덕리재 - 박이뫼산 - 슬치재(17번국도))
◎ 산행거리 : 모래재 ~ 1.3Km ~ 3정맥분기점 ~ 5.8Km ~ 곰치재 ~ 1.9Km ~ 오두재 ~ 1.4Km
만덕산 ~ 2.1Km ~ 마재 ~ 5.5Km ~ 신덕리재 ~ 5.8Km ~ 박이뫼산 ~ 0.7Km ~ 슬치재
도보거리 = 약 24.8Km 실제도보거리 = 약 25.5Km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4 : 20 ~ 15 : 50 (09시간 30분) ◎ 날씨 : 흐림, 맑음
◐ 조약봉에서 시작하여 호남 내륙을 관통하는 호남정맥(湖南正脈)이란 ? ◑
호남정맥은 3정맥 분기점인 조약봉(鳥躍峰)에서 시작하여 호남(湖南) 내륙을 관통하여 백운산(白雲山)과 망덕산(望德山)을 거쳐
광양만 외망 포구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430Km의 산줄기를 말하며 호남정맥상에 있는 주요산으로는 최고봉인
광양 백운산을 비롯 내장산, 추월산, 강천산, 무등산, 제암산, 조계산 등의 명산이 있으며, 9정맥중에서 가장 긴 정맥(正脈)입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어지고, 자연을 훼손 한다면 갈곳이 없어진다
산악인은 산에 오르면 쓰레기와 추억의 사진외에는 가져오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금수강산 발자국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
***** 호남정맥 제1구간(모래재~슬치재) 구글형 산행지도 *****
전북 전주에서 "전북의 지붕"으로 불리는 무진장을 잇는 모래재에 도착한다
4차선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잊혀져가는 고개였는데
요즈음 9정맥의 열풍이 불면서 새롭게 주목을 받으면서 산꾼들이 찾는 고갯길로 변하였다
모래는 몰이라는 우리의 옛말로 산을 뜻하고 재는 고개를 뜻하니
즉 다시 말해서 산고개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강원도 오지의 산골을 연상케 할 정도로 길은 있으나 주위가 온통 산 뿐이다
모래재는 완주군 소양면에서 진안군 부귀면을 잇는 고갯길이다
전주공원묘지 좌측으로 정맥분기점인 조약봉이 있으며
오늘은 역사의 향취가 살아 있는 유서깊은 호남정맥길을 탐험하고자 한다
전주공원묘지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오면 세봉임도에 도착한다
임도 우측으로는 쇠사슬로 차단기를 설치해 놓았으며
사유지을 알리는 공고문과 세봉임도 기념식수비 표시석 뒤쪽으로 조약봉을 오른다
3정맥 분기점인 주화산(珠華山, 565m)은 전북 진안군 부귀면과 완주군 소양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의 이름은 구슬주(珠), 빛날화(華)를 써서 산세가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뜻이다
하지만 옛 문헌에서 주화산으로 보기에는 위치로 보나 글자가 가진 뜻으로 보았을 때 전혀 어울리지 않은 산이다
스텐인레스에 "주화산" "조약봉"이라고 쓴 글씨가 지워지고 썼다를 반복했다
주즐산, 주화산, 조약봉, 삼수봉 등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데~
산은 의연하고 가만히 있는데, 인간들이 옳다고 주장할 따름이며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다고 무조건 무시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3정맥분기점인 주화산(珠華山)에서 오른쪽으로 금남정맥길이 이어지고
왼쪽이 오늘 가고자 하는 호남정맥(湖南正脈)길이다
막걸리 한잔 올려놓고 호남정맥의 무사종주를 기원하며 많은 추억을 만들어 보리라
어둠속에서 새롭게 시작한 호남정맥은 모래재터널위로 시작을 알린다
조약봉에 올라 마음을 다지고 시작하는 것이 예의이나
공원묘지로 오르는 밤길이 무서워 구간을 마치고 정맥분기봉에 올라 무사완주를 기원하였다
밤의 고요속에 별빛은 유난히 밝고 등로길에 보이는 것은 시그널 뿐이다
싸늘한 새벽 찬공기를 마시며 마루금에 안착하였으며
혹자는 호남정맥이 두번째 종주이기에 어두움속에서도 조용한 산사가 친근감이 든다
이곳은 남도에서도 가장 낙후되어 있는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 지역이다
옛날에는 첩첩산중으로 접근하기 힘든 곳이였는데
이젠 교통이 좋아져서 정맥 산꾼들이 어려움없이 문화와 풍습을 배우러 찾고 있다
굴참나무가울창한 수림이 등산로 주변에 도열해 있는 530m봉을 지나고
수레길을 따라 내려서면 적천재(죽천치)에 이른다
옛고개에서 조금 지나면 신보활석광산이란 삼각점이 있는데
옛날에 이곳에서 활석을 채굴하여 전주에 있는 분쇄공장에서 가공하였다고 한다
무명봉을 넘어서니 척박한 땅에는 산죽이 터줏대감이다
한동한 산죽터널을 지나야 했는데
산죽과 잡목들이 등로를 덮고 있어 어둠속에서 어려운 산행을 한다
571m봉에 올라서면 코팅지가 짐마봉이라고 알려준다
정맥길은 우측으로 가파르게 꺾어지며
무심코 직진으로 갈 수 있으므로 주의가 요망되는 봉우리이다
어렴풋이 마루금의 윤곽이 조금씩 보이기 사작한다
마을의 닭울음소리가 정겹기만 하고
세상이 구분되면서 아래로 세동리 마을쪽으로 흰색지붕의 축사가 보인다
탁트인 묘지터에서 정맥길은 오른쪽으로 살짝 꺾이며
맞은 편으로 오늘의 최고봉인 만덕산이 보인다
잠시 후 철망 울타리를 만나 동행하다가 옛 곰티재에 도착한다
옛 곰티재 안내판 앞쪽에 좌우로 뚜렷한 옛길이 열려 있었다
이곳이 임진왜란당시 유명한 적적지 였다고 하며
안내판을 한번 흩어보고 휘리릭 직진 방향으로 계속 마루금을 이어간다
좌측으로 녹슨철망에 그늘막이 드리워져 있고
사유지로 들어서는 철문이 있었으며
넓은 수레길 임도사거리에서 직진 방향으로 올라선다
제법 험악한 지형도상의 607m봉을 빡세계 오르면
사면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좌측 방향으로 알바를 막기위해 통나무로 막아둔 흔적이 있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시야가 트이는 봉분군을 만난다
앞쪽에 560m봉 뒤쪽으로 만덕산이 숨어 있으며
아침 햇살에 산군들이 용트림하는 아름다운 빛의 향연에 발걸음은 가볍다
웅치전적지(熊峙戰蹟池)는 임진왜란 때 우리 조상들이 왜전에 맞서 전투를 벌인 현장이다
왜군은 해로(海路)를 통해 곡장지대인 전라도를 장악하러 했으나 이순신장군의 활약으로 해로가 막히자
육로로 침공할 계획을 세워 왜적은 선조 25년 웅치(熊峙)로 쳐들어 왔으며
김제군수 정담, 나주판관 이복남, 의병장 황박 등이 왜적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였다
왜군은 조선군의 충성심과 용맹함에 감탄하여 우리 병사의 시신을 묻고 추모하는 뜻을 모아
"조조선국(弔朝鮮國) 충간의담(忠肝義膽)"이라고 쓴 표지판을 세워서
조선의 충신(忠臣)과 의사(義士)에게 영혼(靈魂)을 조상하기도 하였다
1979년에 전라북도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곳에 웅치전적비를 세웠으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선열들의 혼이 가슴 깊이 느껴지는 곳에서 묵념을 해본다
웅치(熊峙)전투는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징비록(懲毖錄)"에 기록될 만큼 중요한 싸움이었다
징비록은 영의정 도제찰사 등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자리에서 임진왜란을 혹독하게 겪은
서애 유성룡이 지난날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 눈물과 회한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다
징비록은 우리 역사에서 드물게 보존되어 온 기록문학으로서 서책으로는 국보 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징비란 予其懲而毖後患(여기징이비후환 ; 훗날 환난을 경계한다)는 뜻이며
웅치에서 정담과 변응정은 목책을 이용해 산길을 가로질러 막고 왜적과 싸워 수많은 적을 물리쳤다
적은 물러서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저녁 무렵이 되자 적은 다시 쳐들어왔다
화살도 떨어진 우리 군사는 온 힘을 다해 싸웠으나 결국 당하지 못하고 무너져 두 장수의 목숨을 잃고 말았다
곰티재는 전북 진안의 부귀면과 완주 소양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한자로 웅치(熊峙)라 부른다
웅치(熊峙)는 일제시대부터 목탄차 등이 넘어 다니던 찻길이 열려 있었으며
또한 전주에서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을 오가는 버스길이 처음 열린 곳이 웅치이다
1975년경 모래재로 국도가 옮겨가면서 웅치는 무진장 백성들의 나들이 길이 되었고
이 나들이 길은 오룡고개 도로가 새로 개통되면서 곰치는 영영 오고 갈 수 없는 옛길로 남게 되었다
지도상의 560m봉을 오르는 능선 곳곳에 합장된 돌무덤이 많이 있었다
병사들의 원혼들만 조국의 안녕을 빌고 있었을 뿐이었으며
피어나는 아침의 안개속에서 잊혀져 가는 역사의 교훈들이 다시 살아 오른다
560m봉에 올라서니 사방으로 호남알프스의 산군들이 출렁이고
금남정맥의 최고봉인 운장산도 우뚝 솟아 있으며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하며 가방을 내리고 우리의 금수강산을 가슴속에 담아본다
560m봉을 완전히 넘어 좌측으로 90도 가까이 꺾어 내려간다
익산-포항간 고속도로 터널위를 통과하면
좌측으로 흑염소 목장으로 보이는 전기가 흐르는 철선담장을 쳐 놓았다
울타리를 따라 올라오는 동안에 흑염소는 구경도 못하였다
하지만 바위마다 고성방가 금지 낙서가 씌여 있는데
도대체 힘든 산행을 하면서 고성방가를 하는 사람도 있는지 궁금하다
무명봉 갈림길에서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내려선다
좌측에 고사리밭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으며
안부에서 조금 오르면 565m봉 사면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 오른다
이곳은 원불교수련원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있는 오두재(烏頭峙)에 도착한다
오두재의 형상이 새 머리를 닮았다고 조두치(鳥頭峙)라고 하며
어떤 기록에는 까마귀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오두치(烏頭峙)라고 불리기도 하는 고개이다
고도를 높여 능선길을 따라 오르면 이정표와 벤취가 있는 제2쉼터라는 푯말이 있다
원불교 만덕산 훈련원은 진안군 성수면 중길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원불교를 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80여년전 12명의 제자에게
처음으로 선(禪) 훈련을 했던 곳이라 하여 "초선성지(初禪聖地)의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오늘 산행의 최고로 위험하고 가파른 오르막의 암릉구간이다
적적한 산길은 우리의 숨소리만 헉헉 할 뿐!
근육이 뻐져근하도록 쉼없이 고도를 높이는데 만덕산은 보이지 않는다
전북 익산과 경북 포항을 잇는 고속도로가 시원스럽게 나 있고 연석산과 운장산이 조망된다
아래로 북사면 계곡에 자리잡은 미륵사 요사채의 빨간 지붕이 가깝게 보이는데
본래 불교 이전의 민속 기도처로 금강암이라 불리우던 암자였는데
조선시대 진묵대사 일옥(一玉)스님이 모전석탑의 전설을 남긴 곳으로
1928년 원불교의 초기성지로 결의를 보인 후 오늘날 만덕산 초선성지(初禪聖地)의 기도처로 자리를 잡았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진묵대사가 수도했던 정상 부근의 바위 구멍속에서
세 식구만 먹을 수 있는 쌀이 솔솔 나왔다고 하는데
어느 날 버릇없는 사람이 쌀을 더 많이 나오게 하려고
꼬챙이로 쌀구멍을 쑤신 이후부터 쌀이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군부대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는 만덕산 삼거리에 도착한다
이정표에서 정맥길은 좌측 정수사 방향이고
만덕산 정상은 우측으로 조금 벗어나 있어 갔다가 되돌아와야 한다
만덕산(萬德山, 763.3m)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맞이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역사적 전적지요
한국전쟁 때 공비의 출몰이 심했던 곳으로 곰티재를 지키는 수문장과 같은 산이며
만덕산의 유래는 한자로 일만만(萬). 큰덕(德)을 써서 만인에게 덕을 베푸는 산이라 하여 만덕산이라 한다
지역 주민들에 의하면 수많은 전란을 겪으면서도 지역 주민들이 화를 입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만덕산이 덕(德)을 베풀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또한 고구려 때 보덕화상이 산자락에 만덕사(萬德寺)를 개창한데서 유래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만덕산(萬德山)은 정맥길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호남정맥 1구간에서 상징적인 봉우리로
오늘 산행중 최고봉으로 정상에서 둘러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만덕산은 초선성지(初禪聖地)라는 곳이 무색할 정도로 정상석 하나 없었다
스텐 정상주 하나가 초라하고 빈약하게 세워져 있었는데
록봉을 먹는 사람들이시여 정상석 하나 세워서 부처님 산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여 주시옵소서~
만덕산은 삼거리 갈림길로 되돌아와 날등에서 바라보면 조망이 좋다
이곳 주민들은 만덕산을 부처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만 가지에 달하는 덕(德)을 가진 이는 부처뿐이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만덕산은 어느 명산 못지 않게 등산의 조건을 갖춘 산이라 할 수 있다
동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미륵사의 경관이 일품이며
만덕산의 남.북으로 유명한 화심온천과 죽림온천이 있어 산행후 피로를 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저 멀리 모악산이 감싸고 있는 능선들이 한 눈에 들어오며
하나하나 연결되어 있는 산줄기를 바라보면
내가 호남정맥을 걸어가야 하는 당위성을 가지게 됨을 느끼게 한다
옛날에 만덕산 안질바위 아래에 만덕암(萬德庵)이란 절이 있었는데
그 절을 사람들은 도시락절이라 불렀다고 한다
절에 물이 귀해서 밥을 먹을 수가 없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가야할 호남정맥의 산군들이 한눈에 시원스럽게 굽이친다
그래서 산은 설레임이 되고 그리움이 된것 같으며
마냥 퍼질러 앉아 놀고 있을 수가 없어 베낭을 짊어지고 맥길을 이어간다
만덕산 계곡에 자리한 정수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 말사이다
신라 진성여왕 2년(서기889)에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하나 확실치 않으며
정수사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정수사(淨水寺)라고 하였다고 한다
오늘 산행에서 제일 전망이 좋고 절경인 구간이 바로 이 곳이 아닐런지~
관음봉은 우회를 하는것 보다는 정상을 타고 넘는 것이 편하며
위험한 암릉길 요소마다 쇠사슬이 설치되어 있고 사방이 탁 트인 조망이 일품이다
전철역에서 보았던 그런 의자가 이런 곳에도 있다
제5쉼터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으며
우측으로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 정수마을에 정수사(淨水寺)가 있는 곳이다
지금까지는 진안군 성수면과 완주군 상관면의 군계를 따라 왔는데
이곳에 이르러 진안군 성수면과는 영영 이별을 하고
이곳에서 부터는 임실군 관촌면과 완주군 상관면의 군계를 따라 진행하게 된다
지도상에 표시 되지도 않은 삼군봉(三郡峰)으로 코팅지가 걸려 있다
우회로가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쉬운 봉우리이며
아마 봉우리가 진안군과 임실군 그리고 완주군이 만나는 지점이라 하여 삼군봉이라 부른 모양이다
마치리 정수리마을의 유래는 한자로 맑을정(淨), 물수(水)를 써서 물이 맑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마치리는 말마(馬), 고개치(峙)를 쓰는데, 옛날 진안, 마령 방면의 사람들이
말을 타고 지나 다니던 길목(고개)이라서 마치(馬峙)라고 하였으며
또한 마치의 용정(龍井)에서 물을 먹이고, 큰 귀목나무 밑에서 쉬어 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마치리(馬峙里) 정수(淨水)마을은 이름 그대로 첩첩 산으로 둘러싸워 있어
주변의 산세가 수려하고 물이 맑아서 전주천의 발원지이며
정수마을 아래의 상관수원지는 전주 시민들의 식수를 공급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도상에는 566m봉이라 표시를 해 놓았지만 특징이 없는 봉우리이다
한현우님에 코팅지에는 사자산(獅子山)으로 되어 있는데
전혀 어울리지 않은 이름으로 보이며 이곳이 오늘 산행 절반의 지점으로 보여진다
만덕산을 지나면서 능선길은 부드러운 육산으로 이어진다
물론 계속해서 작은 오르내림도 있지만
지난 가을에 떨어졌던 낙엽이 뒹굴지만 계절은 어느새 봄을 향해 달리고 있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소나무는 없고 온통 등로상에는 참나무가 터줏대감이다
신갈나무 잎은 짚신 크기로 깔창 대용으로 써서 붙여진 이름이며
굴참나무는 껍데기로 지붕을 얹은 집을 굴피집이라고 한다
또한 졸참나무는 이름처럼 나무와 잎의 크기도 작고 도토리 크기도 작아서 졸참나무라 한다
울몽실 할매는 그래도 쉼없이 또박또박 잘도 가지만
세월 탓인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오늘은 어쩐지 걸음이 자꾸만 뒤쳐지고 힘들게 느껴지는 산행이다
앞쪽으로 임실군 관촌면의 상월리 마을을 보면서 내려간다
골짜기 마을이 고향을 그립게 하는 풍경이며
올망졸망한 산그리메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추억을 만들어 주고 있다
숲길을 벗어나 눈이 시원해지는 묘목단지를 걸어간다
농민들에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겠으나
온 산이 벌거숭이가 되어 있어 산꾼의 마음은 아프기만 하다
벌목지대의 상단으로 가야할 임도를 따라 정맥길이 선명하고
무엇을 심기 위한 벌목인지 알 수는 없지만
온통 구상나무묘목단지 이거나 산야초 심는 재배단지로 산야가 망가져 있다
부드러운 산판 상부의 임도를 따라 진행한다
좌측에 산수유 과수원이 있는데
산수유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산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무명봉에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열정의 산꾼들을 생각할 때
가야할 호남의 길이 힘들지 않을 것으로 보여지며
체력이 다 하는 날까지 지평선들의 산들을 두루두루 보면서 열심히 걸어 가리라
이곳이 북치라고 불리는 지점이지만 또한 슬치라고도 불리운다
좌측으로는 상월리 마을이 지척에 있으며
이곳에서 우측으로 죽림온천(신촌마을)으로 탈출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북치에서 뒤돌아 바라보면 상월리 마을이 지척에 보인다
지나온 산줄기의 만덕산이 가물가물하고
우리의 삶이 이런 굴곡된 산길을 걸어가는 것과 다름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고사리 재배구역이라고 안내문이 씌여져 있는 봉우리를 지난다
산수유과수원과 고사리밭 그리고 인삼밭도 지나며
그야말로 종합선물셋트 구간을 걸어가면서 우리의 풍습과 문화와 지리를 배운다
지도상의 416.2m봉에는 "남산"이라는 코팅지가 떨어져 있었다
오봉산의 남쪽에 있다고 하여 남산이라 했을까요
어쨋든 지도상의 한 봉우리를 지나고 있음을 알게 해주어 감사한 마음이다
산양 산삼은 심산유곡에서 자란 야생 산삼의 종자를 채취하여
산속에 뿌려서 인위적으로 재배한 것이다
인삼은 구경도 못하지만 삼밭을 통과하며 냄새만으로 마음을 충전한다
잡목으로 어수선한 구간을 오르면 430m봉 정수리에서
직진길을 버리고 정맥길은 왼쪽으로 꺾이며
별다른 특징이 없는 완만한 능선길을 오르내래며 한동안 진행한다
밤나무단지를 좌측에 두고 제법 가파르게 오르면 478m봉에 올라선다
산행을 할 때에 어느 학자가 이야기 하였는데
산행은 독서와 같아 구석 구석을 음미하고 그 숨은 묘미를 터득하여야 좋은 산행이라고~
지도상 480m봉은 수북히 쌓여 있는 낙엽들로 등로가 희미하고
쓰러진 나무들이 등로상에 널부러져 있으며
좌측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직진 방향으로 길이 뻥 뚫려 있어서 알바에 조심해야 한다
신전리재에 도착하니 좌측으로 녹슨 철망문이 닫혀져 있다
주변에는 폐자재가 지저분하게 널려 있고
인적도 없는 컨테이너 박스 주변에는 관리가 안되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호남정맥은 세 번 속는다고 한다, 시작과 끝 그리고 중간에 1000m가 넘는 산들이 솟아 있어
전체적으로 산줄기가 뫼 山자 모양을 연상케 하는 골격을 갖추고 있다
시작인 장안산(1.237m)이 가장 높고, 중간에 무등산(1.187m)이 맨끝에는 백운산(1.222m)이 산군을 이룬다
빛을 받아 봄기운이 어느새 땅속까지 스며들었는지
아름다운 풀꽃들이 땅을 뚫고 나오며
봄의 전령인 새싹들이 발끝으로 전해지면서 상쾌한 산행이 이어진다
지도상에 표기되어 있지 않은 황산(447m)을 넘어선다
황산을 지나면 산길을 벗어난 셈이지만
그래도 산꾼은 조금 답답하여도 숲속을 걸어야 산행의 진맛을 느낀다
이젠 개간된 임도를 따라 걸어가는 또다른 정맥길을 체험한다
좋은 산이란 이름난 유명한 명산이 아니다
내 마음속에 좋은 산으로 들어오면 그것이 좋은 산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은 낙남정맥길처럼 마을이 산꼭대기까지 올라와 있다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고
시멘트 임도에서 오른쪽으로 시그널이 안내하는 소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하늘도 뚫려 있어 걷기에도 갑갑함이 덜해서 좋다
동네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오지만
지점 확인을 포기하고 오로지 시그널만 찾아서 가는데 열중한다
말이 없어도 끊임없이 자연과 대화를 하며 걸어가는 시간이다
소나무숲을 통과하여 계속해서 임도를 따라 진행하며
앞쪽으로 파란 물탱크 2개가 있는 봉우리가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박이뫼산이다
좌측으로 완주-순천간 고속도로 관촌휴게소 모습의 풍경이다
자주 쉬어갔던 곳이기에 정감이 느껴지며
오늘도 지리, 문화와 풍습을 눈으로 공부하고 여유있는 걸음으로 걸어간다
슬치재가 가까이 있음인지 길은 자꾸자꾸 굽이쳐 돈다
V자 갈림길에서 우측 방향으로 틀어지며
세월이 흐르면서 자꾸만 맥길은 사라지고 이런 길을 걸어야 할 지도 모른다
오른쪽 임도를 따라 산행지도에 표기된 박이뫼산 315.8m봉을 오른다
실질적인 박이뫼산(369m)은 좌측에 봉우리이며
개인적으로 생각해도 삼각점이 있는 좌측에 369m봉이 박이뫼산으로 보여진다
처음에는 밋밋한 이곳이 박이뫼산으로 알았는데
건너편에 있는 봉우리가 박이뫼산이며
박이뫼산은 박씨, 이씨의 묘터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건너편의 박이뫼산은 정맥길에서 벗어나 있어 다녀오고 싶었는데
정확한 위치 확인이 없어서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붉은 화살표 방향으로 임도를 따라 진행하면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봉우리이다
박이뫼산을 좌측에 두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묘지군을 내려서니 모텔 뒷문이다
슬치(瑟峙)를 넘나들던 도인(道人)의 비파소리는 들리지 않고
17번국도를 질주하는 차량들의 굉음소리가 호남정맥 첫구간을 완주하는 빵빠레로 들려온다
슬치(瑟峙)는 전북 완주군 상관면과 임실군 관촌면을 잇는 17번국도가 지나가는 곳이다
이도령도 남원에 춘향이가 그리워 이 길을 지나갔을지 모를 일이며
옛날 도인(道人)이 비파를 뜯으며 고개를 넘어왔다 하여 슬치(瑟峙)라 하였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울~몽실님과 하이파이브를 외치며 첫 구간을 무탈하게 완주함을 자축하는 시간이다
슬치마을 표지석에서 인증샷을 한장 남기고 내일 가야할 들머리를 쳐다보며
슬치휴게소에서 관촌택시로 슬치재를 출발해 모래재로 원점회귀하여 산행을 마친다
◎ 산행인원 : 울~몽실님과 함께 ◎ 산행시간 : 04 : 20 ~ 15 : 50 (09시간 30분) ◎ 날씨 : 흐림, 맑음
Amazing Grace / Melinda Dumitres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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